한줄세우기의 망령이 초등학교를 습격할때-초등학교 3학년 진단평가의 숨겨지지 않는 진실
10월 15일, 전국의 초등학교에서 3학년들을 대상으로 읽기, 쓰기, 셈하기(3R's)영역에 대한 진단평가가 실시되었다. 교육부가 지난 6월 8일 '국민기초교육 보장을 위한 초등학생 기초학력 진단평가 실시’계획을 발표한지 4개월 후였다. 지난 4개월동안 초등학교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서울의 변두리에 위치한 64학급의 규모의 초등학교다. 우리학교 아이들은 부모들이 대부분 인근의 시장에서 장사나 봉제업을 해서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대졸자는 한 반에 겨우 2-3명에 불과하다. 개교한지 50년이래로 변변한 보수공사 제대로 하지 않은 허름한 교사(校舍)와 교과서에 나오는 실험과 실습 중 못하는 게 절반이 넘는 시설에서 공부하고 있다. 가정환경과 주변의 문화적 배경이 그 아이의 학력을 결정한다는 이론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우리 아이들은 학력뿐 아니라 생활태도에서도 강남에 위치한 많은 학교의 아이들과는 혁혁한 차이를 보여준다. 우리사회 치열한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이 아이들이 자리한 출발점부터가 너무나 뒤쳐진 곳이라는 점이 나를 비롯한 이곳에 근무하는 교사들까지도 우울하게 한다.
이런 우리 학교 역시 진단평가 열풍을 피해갈 수는 없었는지라 계획이 발표되고 공문이 내려오자 한바탕 술렁이기 시작했다. 당장 3학년 담임선생님들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시험을 쳐서 전국적으로 성적이 공개되면 교사와 학교평가가 가능해질 판이라고 하니 우리 아이들의 실력은 서울시내에서 바닥을 칠 것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지금부터 쪽지시험이라도 봐서 실력을 키워주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던지 어느날 찾아갔던 3학년 교실에서 나는 아주 해괴한 성적표를 발견했었다. 모둠별로 6명 아이들의 1주일간 쪽지시험 결과가 표로 정리되어 있고 그 아래 그 아이에 대한 학습조언이 적혀있었다. 그 반 담임선생님에 의하면 그 성적표를 1주일마다 집으로 보내 아이의 학업 상황을 부모가 확인하게끔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 아이의 성적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좀 더 교육열을 자극시키려는 의도였다. 그 많은 쪽지시험을 1주일마다 보려면 정해진 수업시수의 1/3은 써야할 것 같았다. 나는 10월 15일까지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3학년들을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각각의 아이들에 대한 조언을 다 써주다 보면 교사의 하루일과가 얼마나 바쁘고 고단했을까?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의 역사와 법적 근거
1997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법』법이 공표되면서 1998년 국립교육평가원의 기능과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과정 및 교수-학습 연구·개발 기능을 통합 수행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설립된다.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초·중·고의 한 학년을 0.5%이내의 표지평가를 실시하기 시작하여 2001년부터는 대상학년을 4개로 늘이고 표집의 범위도 1.2%로 확대하여 실시하였다. 올해 들어 '국가수준 학업 성취도 평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면서 대상학년과 과목이 변경을 거듭하다가 4월 시도교육청간 정책협의회때까지 초3부터 고1까지에 걸진 4개 학년이 5개 과목에 걸쳐 약 1%범위의 표집평가를 실시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6월 8일 교육부 평가관리과에 의해 '국민기초보장을 위한 초등학생 기초학력 진단평가 실시'계획이 발표되고 초등 3학년에 대해 읽기·쓰기·셈하기(3R's)영역을 전집평가 하겠다고 했다.
교육부는 초중등교육법 제 9조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학교에 재학중인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측정하기 위한 평가를 실시할 수 있다.'와 7차 교육과정 편성운영지침에 '교육과정 질 관리를 위하여 국가 수준에서는 주기적으로 학생 학력 평가, 학교와 교육기관 평가, 교육과정 편성 운영에 관한 평가를 실시한다.'라고 명시된 점 등을 들어 평가의 적법함을 강변하고 있다. 그런데 초중등교육법 제 9조의 내용은 '실시할 수 있다'이므로 강제조항이 아니다. 이러한 법적 근거의 한계를 평가원도 알고 있다. 따라서 평가원은 올해 5월 9일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주최 세미나에서 '실시한다'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평가 관련 법 정비와 관련하여 '평가 결과의 국회제출' 내용을 신설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짐작하겠지만, 평가원설립법이 공표되는 1997년은 김영삼정부가 5·31교육개혁안을 야심차게 발표하던 시점이며 이후로 우리나라는 다양한 신자유주의 교육정책들을 시도하게 된다. 올해는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된지 3년째로 접어드는 시기이며 현재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은 입학이후 7차 교육과정으로만 공부한 7차 교육과정 1세대이다. 이 아이들을 국가주도 하에 획일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7차 교육과정에 따르는 국가단위에서 교육과정 운영의 책무성 확인 및 교육과정의 국가 통제를 위한 첫 시도인 것이다.
성취도평가의 목적과 숨겨진 의도
교육부는 평가계획을 발표하면서 초등학교 저학년에서의 기초학력 부진학생(부진아) 판별 및 지도를 주목적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매년 3월초에 자체적인 평가를 통해 부진아를 판별하고 지역 교육청별로 개발된 프로그램으로 전담 강사에 의해 부진아 지도를 이미 실시하고 있다. 교육현장을 무시하는 탁상공론이 아니라면 이는 정당한 목적이 될 수 없다.
더욱이 OECD 학업 성취도 국제비교 연구(PISA2000)에 따르면 우리나라 아이들의 학력은 과학 1위, 수학 2위, 읽기 6위로 세계적으로 최상위권이다. 또한 국내 학생간의 성취 격차는 OECD 국가 중 가장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에서도 기초학력 부진학생은 전체의 3-4%정도라고 파악하고 있다. 겨우 이 정도의 아이들을 구별하기 위해 전국의 모든 아이들을 대상으로 평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 과연 합당한 목적일까?
교육부는 영국과 미국의 예를 들면서 국가차원의 기초학력 평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이들 나라는 다양한 인종이 모여사는 국가로 미국의 경우 알파벳에 대한 판독이 불가능한 난독증을 보이는 학생들이 전체 학생의 15∼20%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국가 차원에서 이들에게 국어(영어) 능력을 보장하지 않으면 사회 통합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교육과정 편성·운영이 주별, 교육구별로 다양한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어서 최소한의 기준을 설정하자는 것이 국가차원의 평가정책 실시의 이유였던 것이다.{{) 김영삼,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교사의 선택은」, 2002년 전국초등활동가연수 자료집, 2002. 8. 2∼3
}}
해방 이후 지금까지 50여 년 동안 국가수준의 교육과정만이 존재해왔을 뿐더러 세계최고의 학력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국가수준의 학업성취도 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영국과 미국의 국가수준 학력성취도 평가가 그들 교육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지를 살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할 일이다.{{) 전교조 서울지부의 초3진단평가에 대한 교선자료에서 영국과 미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국가수준 성취도 평가의 현황을 간략하게 알 수 있다.
(1)영국
-모든 학생이 7, 11, 13, 16세때 국가에서 출제한 시험을 일괄적으로 치름(SATs)
-16세때 치르는 시험은 중등교육 수료 자격고사(GCSE)로 상급중등학교 진급이나 대입시, 취업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로 사용됨
-SATs, GCSE 시험결과(Results)는 매년 7월마다 주요 일간지와 교육전문지에 실려 전국적으로 발표. 학부모들은 이 발표를 보고 9월 새학년도 시작 전에 학교 선택
-학생수에 따라 예산 차등 지급, 성취도에 따라 상여급 지급
(2)미국
-3년 연속 연도별 적정 학력 수준(AYP)에 미달하는 학교에 자녀가 다닐 경우 학부모들은 주 정부로부터 연간 500∼1000달러를 지급받아 과외나 각종 방학 학습 프로그램을 시킬 수 있다. 4년 연속 AYP에 미달되는 학교는 교장 교체와 학교 관리권 박탈 등 구조조정을 당한다.
-부시는 지난 5월 8일 "각 주가 정한 연도별 적정 학력 수준(AYP)을 지난 2년간 연속 달성하지 못한 학교는 116개교"라면서 "이들 학교에 다니는 7만여 명의 학생들은 새 법에 따라 새학년부터 다른 학교로 전학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진다"고 밝혔다.
-학부모들의 학교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3∼8학년 학생들을 둔 학부모들은 앞으로 학기말마다 수학과 읽기 시험을 토대로 작성된 성적표를 받게 된다. 단순히 자녀의 성적 뿐만 아니라 자녀가 다니는 학교와 주의 학력 수준, 교사에 대한 평가 등이 담겨질 예정이다.(조선일보 2002년 5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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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목적도 없이 국가가 획일적인 평가를 강행함으로써 교육현장에 가져올 폐해를 예상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앞서 우리 학교의 모습에서 보았듯이 학교와 교사, 학생은 모두 점수따기의 노예가 되어 전인교육은 간데 없고 파행적인 교육과정과 편법만이 판을 칠 것이다. 우리보다 입시열이 덜하지만 일찍이 신자유주의 교육을 시도했던 외국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성취도평가의 중압감으로 인하여 강도높은 주입식교육, 찍기방법 가르치기, 시험정보 게시, 문제유출, 후한점수 주기 등의 왜곡된 모습이 우리 학교현장을 황폐화시킬 것이다. 실제로 전국적으로 상당수의 초등학교에서 진단평가를 계기로 학력증진을 내세우며 각종 경시대회와 일제고사를 확대실시하고 있다.{{) 서울 강남의 ㄷ초는 지난주 2∼6학년 대상 기말고사를 치렀다. 지난해까지는 없었으나, 올해 처음으로 2학년 국어 수학, 3∼6학년 국어 수학 사회 과학 4과목을 치른 것이다. 수학 경시대회가 올해 안에 4번 예정돼 있어 이 학교 어린이들은 수학 시험만 6번 치르게 된다. .....고양시의 한 초등학교는 올해 처음으로 2∼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말고사를 실시하는 등 경기도내의 많은 학교가 이번주를 전후해 기말고사를 치렀거나 치를 예정이다. 의정부의 한 초등학교는 지난달 하순 6학년 기말시험을 치르고 시험성적까지 반별로 게시해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남지역에서는 지난해 김장환 새 교육감 취임한 것을 계기로 올 들어 '실력 전남'을 기치로 초등학생의 학력제고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때문에 고흥의 한 초등학교가 월말고사를 부활한 것을 필두로 다른 학교들도 갖가지 시험을 늘려 어린이들의 시험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한 교사는 전했다. 전남교육청은 또 이 달 중 도내 모든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한 일제고사도 실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한계레신문 2002년 7월 3일자)
}} 국가가 나서서 점수에 의해 한 줄을 세우겠다고 우기는 판에 물불 가릴 학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사교육의 팽창은 또한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진단평가계획이 발표되자마자 학원가에서는 진단평가 대비반이 꾸려지고 문제의 난이도를 강조하여 경쟁열을 부추기는 각종 학습지 회사들의 상술이 난무했다.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자연스런 성장과 발달대신에 시험으로 강요된 억척스런 경쟁의 쳇바퀴 속에 갖히게 될 것을 생각하면 우리의 미래가 너무 암울하기만 하다.
더욱이 아이들의 성적에 의해 학교와 교사 평가가 가능해지므로 교사노동의 유연화 즉, 성과급제나 계약제의 도입, 나아가서는 영국이나 미국의 경우처럼 학교전체의 교사가 교체되는 등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가능하게 하는 발판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생각대로라면 허울좋은 7차가 내걸은 '학교, 교사단위 자율적인 교육과정'은 '평가권을 제외한 교육권만 가져라. 이런 자율권을 주는 대신 평가를 통해 책무성을 추궁받아라'로 고쳐야 할 것이다.{{) "국가기초교육보장을 위한 최소성취기준을 개발하고, 모든 학생이 최소성취기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학교의 책임을 강화하고, 이를 위한 국가수준의 객관적 평가를 실시할 것이라는 계획은 장차 초·중·고등학교의 전학년과 전학생 혹은 일부 학년의 전학생들 대상으로 기초학력검사를 실시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단위학교에 자율성을 확대하면 할수록 그에 대한 책무를 확인하는 것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또한 단위학교의 책무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일부 학교 및 일부 학생에 대한 표집 평가로서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고, 전학년 혹은 특정 학년의 전학생을 대상으로 한 전집 평가를 매년 실시하는 것을 요구한다." 이명희,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토론회 자료집, (2002.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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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의 앞날
당초의 우려와는 달리 시험문제는 상당히 쉬웠다. 전교조를 비롯한 여러 교육단체들의 거센 반대에 전집을 고집하는 교육부는 궁지에 몰렸고 결국, 5%내의 표집평가로 변경되어 표집대상 학반 이외의 결과처리는 학교 자율에 맡겨졌다. 초3진단평가와 관련한 불씨는 한 고비를 넘겼다기보다는 오히려 이제부터 타기 시작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학업성취도평가를 위한 국가 예산을 살펴보면 올해는 4억원 가량이지만 2005년에는 약 50억원에 이른다. 이는 전학년 전집평가와 그 결과에 따라 미달된 학생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 및 책임지도를 실시하기 위한 비용이다.
평가원의 계획에 의하면 평가결과를 공문서화 하고 상급학교 진학 시에 활용하도록 하며 대입 사정의 참고자료로서 활용하는 안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황당하게 들릴지라도 잠시의 쉴 틈도 주지 않고 가속화되는 우리나라의 신자유주의 교육공세로 볼 때 조만간에 실현될 수도 있다는 짐작이 가능하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아이들의 학업성취도를 결정하는 것은 학교가 아니라 그들의 가정과 지역환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끈질기게 전학년의 전집평가와 평가를 통한 책무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20대 80의 사회에서 풍족한 문화자본을 가진 20의 인구가 80을 발판으로 그들의 계급재생산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학력평가를 통한 서열화는 그들의 출신과 배경에 의해 패배자로 낙인찍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또한 이런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교사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절망감을 안겨주는 일이다.
언젠가 우리 반 아이들에게 농담 삼아 만약 너네들 한테도 전국의 5학년들이 모두 보는 시험을 보게 한다면 선생님은 교실에 있지 않고 교육부 앞에서 머리띠 두르고 있을 것이라고 했더니 아이들이 환호를 지르며 대답했다. 김밥사서 놀러오겠다고......
우리의 학교가 희망을 버리고 절망을 이야기한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리고 국가수준의 학업성취도 평가가 펼치는 암울한 풍경은 우리를 더욱 절망하게 한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생명감으로 통통 튀는 이 아이들과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해 교실에서 가르치고, 거리에서 투쟁한다. PSSP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서울의 변두리에 위치한 64학급의 규모의 초등학교다. 우리학교 아이들은 부모들이 대부분 인근의 시장에서 장사나 봉제업을 해서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대졸자는 한 반에 겨우 2-3명에 불과하다. 개교한지 50년이래로 변변한 보수공사 제대로 하지 않은 허름한 교사(校舍)와 교과서에 나오는 실험과 실습 중 못하는 게 절반이 넘는 시설에서 공부하고 있다. 가정환경과 주변의 문화적 배경이 그 아이의 학력을 결정한다는 이론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우리 아이들은 학력뿐 아니라 생활태도에서도 강남에 위치한 많은 학교의 아이들과는 혁혁한 차이를 보여준다. 우리사회 치열한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이 아이들이 자리한 출발점부터가 너무나 뒤쳐진 곳이라는 점이 나를 비롯한 이곳에 근무하는 교사들까지도 우울하게 한다.
이런 우리 학교 역시 진단평가 열풍을 피해갈 수는 없었는지라 계획이 발표되고 공문이 내려오자 한바탕 술렁이기 시작했다. 당장 3학년 담임선생님들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시험을 쳐서 전국적으로 성적이 공개되면 교사와 학교평가가 가능해질 판이라고 하니 우리 아이들의 실력은 서울시내에서 바닥을 칠 것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지금부터 쪽지시험이라도 봐서 실력을 키워주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던지 어느날 찾아갔던 3학년 교실에서 나는 아주 해괴한 성적표를 발견했었다. 모둠별로 6명 아이들의 1주일간 쪽지시험 결과가 표로 정리되어 있고 그 아래 그 아이에 대한 학습조언이 적혀있었다. 그 반 담임선생님에 의하면 그 성적표를 1주일마다 집으로 보내 아이의 학업 상황을 부모가 확인하게끔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 아이의 성적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좀 더 교육열을 자극시키려는 의도였다. 그 많은 쪽지시험을 1주일마다 보려면 정해진 수업시수의 1/3은 써야할 것 같았다. 나는 10월 15일까지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3학년들을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각각의 아이들에 대한 조언을 다 써주다 보면 교사의 하루일과가 얼마나 바쁘고 고단했을까?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의 역사와 법적 근거
1997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법』법이 공표되면서 1998년 국립교육평가원의 기능과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과정 및 교수-학습 연구·개발 기능을 통합 수행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설립된다.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초·중·고의 한 학년을 0.5%이내의 표지평가를 실시하기 시작하여 2001년부터는 대상학년을 4개로 늘이고 표집의 범위도 1.2%로 확대하여 실시하였다. 올해 들어 '국가수준 학업 성취도 평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면서 대상학년과 과목이 변경을 거듭하다가 4월 시도교육청간 정책협의회때까지 초3부터 고1까지에 걸진 4개 학년이 5개 과목에 걸쳐 약 1%범위의 표집평가를 실시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6월 8일 교육부 평가관리과에 의해 '국민기초보장을 위한 초등학생 기초학력 진단평가 실시'계획이 발표되고 초등 3학년에 대해 읽기·쓰기·셈하기(3R's)영역을 전집평가 하겠다고 했다.
교육부는 초중등교육법 제 9조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학교에 재학중인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측정하기 위한 평가를 실시할 수 있다.'와 7차 교육과정 편성운영지침에 '교육과정 질 관리를 위하여 국가 수준에서는 주기적으로 학생 학력 평가, 학교와 교육기관 평가, 교육과정 편성 운영에 관한 평가를 실시한다.'라고 명시된 점 등을 들어 평가의 적법함을 강변하고 있다. 그런데 초중등교육법 제 9조의 내용은 '실시할 수 있다'이므로 강제조항이 아니다. 이러한 법적 근거의 한계를 평가원도 알고 있다. 따라서 평가원은 올해 5월 9일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주최 세미나에서 '실시한다'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평가 관련 법 정비와 관련하여 '평가 결과의 국회제출' 내용을 신설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짐작하겠지만, 평가원설립법이 공표되는 1997년은 김영삼정부가 5·31교육개혁안을 야심차게 발표하던 시점이며 이후로 우리나라는 다양한 신자유주의 교육정책들을 시도하게 된다. 올해는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된지 3년째로 접어드는 시기이며 현재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은 입학이후 7차 교육과정으로만 공부한 7차 교육과정 1세대이다. 이 아이들을 국가주도 하에 획일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7차 교육과정에 따르는 국가단위에서 교육과정 운영의 책무성 확인 및 교육과정의 국가 통제를 위한 첫 시도인 것이다.
성취도평가의 목적과 숨겨진 의도
교육부는 평가계획을 발표하면서 초등학교 저학년에서의 기초학력 부진학생(부진아) 판별 및 지도를 주목적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매년 3월초에 자체적인 평가를 통해 부진아를 판별하고 지역 교육청별로 개발된 프로그램으로 전담 강사에 의해 부진아 지도를 이미 실시하고 있다. 교육현장을 무시하는 탁상공론이 아니라면 이는 정당한 목적이 될 수 없다.
더욱이 OECD 학업 성취도 국제비교 연구(PISA2000)에 따르면 우리나라 아이들의 학력은 과학 1위, 수학 2위, 읽기 6위로 세계적으로 최상위권이다. 또한 국내 학생간의 성취 격차는 OECD 국가 중 가장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에서도 기초학력 부진학생은 전체의 3-4%정도라고 파악하고 있다. 겨우 이 정도의 아이들을 구별하기 위해 전국의 모든 아이들을 대상으로 평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 과연 합당한 목적일까?
교육부는 영국과 미국의 예를 들면서 국가차원의 기초학력 평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이들 나라는 다양한 인종이 모여사는 국가로 미국의 경우 알파벳에 대한 판독이 불가능한 난독증을 보이는 학생들이 전체 학생의 15∼20%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국가 차원에서 이들에게 국어(영어) 능력을 보장하지 않으면 사회 통합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교육과정 편성·운영이 주별, 교육구별로 다양한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어서 최소한의 기준을 설정하자는 것이 국가차원의 평가정책 실시의 이유였던 것이다.{{) 김영삼,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교사의 선택은」, 2002년 전국초등활동가연수 자료집, 2002.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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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지금까지 50여 년 동안 국가수준의 교육과정만이 존재해왔을 뿐더러 세계최고의 학력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국가수준의 학업성취도 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영국과 미국의 국가수준 학력성취도 평가가 그들 교육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지를 살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할 일이다.{{) 전교조 서울지부의 초3진단평가에 대한 교선자료에서 영국과 미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국가수준 성취도 평가의 현황을 간략하게 알 수 있다.
(1)영국
-모든 학생이 7, 11, 13, 16세때 국가에서 출제한 시험을 일괄적으로 치름(SATs)
-16세때 치르는 시험은 중등교육 수료 자격고사(GCSE)로 상급중등학교 진급이나 대입시, 취업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로 사용됨
-SATs, GCSE 시험결과(Results)는 매년 7월마다 주요 일간지와 교육전문지에 실려 전국적으로 발표. 학부모들은 이 발표를 보고 9월 새학년도 시작 전에 학교 선택
-학생수에 따라 예산 차등 지급, 성취도에 따라 상여급 지급
(2)미국
-3년 연속 연도별 적정 학력 수준(AYP)에 미달하는 학교에 자녀가 다닐 경우 학부모들은 주 정부로부터 연간 500∼1000달러를 지급받아 과외나 각종 방학 학습 프로그램을 시킬 수 있다. 4년 연속 AYP에 미달되는 학교는 교장 교체와 학교 관리권 박탈 등 구조조정을 당한다.
-부시는 지난 5월 8일 "각 주가 정한 연도별 적정 학력 수준(AYP)을 지난 2년간 연속 달성하지 못한 학교는 116개교"라면서 "이들 학교에 다니는 7만여 명의 학생들은 새 법에 따라 새학년부터 다른 학교로 전학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진다"고 밝혔다.
-학부모들의 학교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3∼8학년 학생들을 둔 학부모들은 앞으로 학기말마다 수학과 읽기 시험을 토대로 작성된 성적표를 받게 된다. 단순히 자녀의 성적 뿐만 아니라 자녀가 다니는 학교와 주의 학력 수준, 교사에 대한 평가 등이 담겨질 예정이다.(조선일보 2002년 5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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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목적도 없이 국가가 획일적인 평가를 강행함으로써 교육현장에 가져올 폐해를 예상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앞서 우리 학교의 모습에서 보았듯이 학교와 교사, 학생은 모두 점수따기의 노예가 되어 전인교육은 간데 없고 파행적인 교육과정과 편법만이 판을 칠 것이다. 우리보다 입시열이 덜하지만 일찍이 신자유주의 교육을 시도했던 외국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성취도평가의 중압감으로 인하여 강도높은 주입식교육, 찍기방법 가르치기, 시험정보 게시, 문제유출, 후한점수 주기 등의 왜곡된 모습이 우리 학교현장을 황폐화시킬 것이다. 실제로 전국적으로 상당수의 초등학교에서 진단평가를 계기로 학력증진을 내세우며 각종 경시대회와 일제고사를 확대실시하고 있다.{{) 서울 강남의 ㄷ초는 지난주 2∼6학년 대상 기말고사를 치렀다. 지난해까지는 없었으나, 올해 처음으로 2학년 국어 수학, 3∼6학년 국어 수학 사회 과학 4과목을 치른 것이다. 수학 경시대회가 올해 안에 4번 예정돼 있어 이 학교 어린이들은 수학 시험만 6번 치르게 된다. .....고양시의 한 초등학교는 올해 처음으로 2∼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말고사를 실시하는 등 경기도내의 많은 학교가 이번주를 전후해 기말고사를 치렀거나 치를 예정이다. 의정부의 한 초등학교는 지난달 하순 6학년 기말시험을 치르고 시험성적까지 반별로 게시해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남지역에서는 지난해 김장환 새 교육감 취임한 것을 계기로 올 들어 '실력 전남'을 기치로 초등학생의 학력제고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때문에 고흥의 한 초등학교가 월말고사를 부활한 것을 필두로 다른 학교들도 갖가지 시험을 늘려 어린이들의 시험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한 교사는 전했다. 전남교육청은 또 이 달 중 도내 모든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한 일제고사도 실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한계레신문 2002년 7월 3일자)
}} 국가가 나서서 점수에 의해 한 줄을 세우겠다고 우기는 판에 물불 가릴 학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사교육의 팽창은 또한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진단평가계획이 발표되자마자 학원가에서는 진단평가 대비반이 꾸려지고 문제의 난이도를 강조하여 경쟁열을 부추기는 각종 학습지 회사들의 상술이 난무했다.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자연스런 성장과 발달대신에 시험으로 강요된 억척스런 경쟁의 쳇바퀴 속에 갖히게 될 것을 생각하면 우리의 미래가 너무 암울하기만 하다.
더욱이 아이들의 성적에 의해 학교와 교사 평가가 가능해지므로 교사노동의 유연화 즉, 성과급제나 계약제의 도입, 나아가서는 영국이나 미국의 경우처럼 학교전체의 교사가 교체되는 등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가능하게 하는 발판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생각대로라면 허울좋은 7차가 내걸은 '학교, 교사단위 자율적인 교육과정'은 '평가권을 제외한 교육권만 가져라. 이런 자율권을 주는 대신 평가를 통해 책무성을 추궁받아라'로 고쳐야 할 것이다.{{) "국가기초교육보장을 위한 최소성취기준을 개발하고, 모든 학생이 최소성취기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학교의 책임을 강화하고, 이를 위한 국가수준의 객관적 평가를 실시할 것이라는 계획은 장차 초·중·고등학교의 전학년과 전학생 혹은 일부 학년의 전학생들 대상으로 기초학력검사를 실시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단위학교에 자율성을 확대하면 할수록 그에 대한 책무를 확인하는 것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또한 단위학교의 책무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일부 학교 및 일부 학생에 대한 표집 평가로서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고, 전학년 혹은 특정 학년의 전학생을 대상으로 한 전집 평가를 매년 실시하는 것을 요구한다." 이명희,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토론회 자료집, (2002.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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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의 앞날
당초의 우려와는 달리 시험문제는 상당히 쉬웠다. 전교조를 비롯한 여러 교육단체들의 거센 반대에 전집을 고집하는 교육부는 궁지에 몰렸고 결국, 5%내의 표집평가로 변경되어 표집대상 학반 이외의 결과처리는 학교 자율에 맡겨졌다. 초3진단평가와 관련한 불씨는 한 고비를 넘겼다기보다는 오히려 이제부터 타기 시작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학업성취도평가를 위한 국가 예산을 살펴보면 올해는 4억원 가량이지만 2005년에는 약 50억원에 이른다. 이는 전학년 전집평가와 그 결과에 따라 미달된 학생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 및 책임지도를 실시하기 위한 비용이다.
평가원의 계획에 의하면 평가결과를 공문서화 하고 상급학교 진학 시에 활용하도록 하며 대입 사정의 참고자료로서 활용하는 안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황당하게 들릴지라도 잠시의 쉴 틈도 주지 않고 가속화되는 우리나라의 신자유주의 교육공세로 볼 때 조만간에 실현될 수도 있다는 짐작이 가능하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아이들의 학업성취도를 결정하는 것은 학교가 아니라 그들의 가정과 지역환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끈질기게 전학년의 전집평가와 평가를 통한 책무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20대 80의 사회에서 풍족한 문화자본을 가진 20의 인구가 80을 발판으로 그들의 계급재생산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학력평가를 통한 서열화는 그들의 출신과 배경에 의해 패배자로 낙인찍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또한 이런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교사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절망감을 안겨주는 일이다.
언젠가 우리 반 아이들에게 농담 삼아 만약 너네들 한테도 전국의 5학년들이 모두 보는 시험을 보게 한다면 선생님은 교실에 있지 않고 교육부 앞에서 머리띠 두르고 있을 것이라고 했더니 아이들이 환호를 지르며 대답했다. 김밥사서 놀러오겠다고......
우리의 학교가 희망을 버리고 절망을 이야기한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리고 국가수준의 학업성취도 평가가 펼치는 암울한 풍경은 우리를 더욱 절망하게 한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생명감으로 통통 튀는 이 아이들과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해 교실에서 가르치고, 거리에서 투쟁한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