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투본 무산, 무엇을 평가할 것인가
공투본 무산{{) '공투본의 무산'이라는 표현에 대해 공투본 7차 예비모임이 진행되었고, 후속모임이 예정되어 있으므로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전국연합, 자통협 등이 참가하여 10월 26일 진행된 7차 예비모임의 결과를 보면, 이들 단체들의 공투본 논의에 임하는 태도가 얼마나 형식적이고, 기만적인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미 한 달여에 걸처 7차례의 모임이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공투본의 유의미성을 확인할 뿐, 공투본의 구체적인 향후 계획을 제출하는 단체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 이를 반증한다. 또한, 그간 논의과정에서도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의힘에서 노동해방 실천단의 논의를 통해 제출했던 공동투쟁에 대해서도 형식적인 검토만 이루어졌을 뿐이고, 민중경선방안과 관련해서는 공투본 예비모임 기획소위에서 실질적인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 무엇을 평가할 것인가?
지난 9월 17일 노동자의힘의 제안으로 시작된 '공투본 예비모임'은 6차 예비모임을 끝으로 사실상 무산되었다. 공투본의 무산을 두고 여러 가지 논점의 비판이 혼재된 채로 쏟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본디 좌파란 것들이 그렇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며 좌파라는 정치세력에 대한 불신에 찬 발언들을 쏟아냈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당류의 "민족주의/의회주의 세력과 연대/연합을 주장하더니 결과가 뭐냐"라며 좌파결집론 혹은 사회주의 세력화를 정당화하는 입장을 펼치기도 한다. 또한, "대중투쟁돌파론"을 주장하던 세력들은 "역시 선거투쟁하면 좌파가 분열할 수 밖에 없어. 선거대응 하지 말고 대중투쟁에 집중하는게 옳았어"라며 공투본의 실패가 자신의 정당성을 대변해 주는 양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고, 어떤 이들은 유력한 대선방침으로서 공투본의 유의미성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해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을 펼치는 이들은 공투본의 무산을 "특정한 정치세력의 제안으로서 공투본의 파산"으로만 한정하여 이해하기 때문에, 2002년 대선에서 공투본의 의미를 사장한 채 자신의 입장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데 만 급급해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공투본 무산이라는 사건에는 어느 특정한 정치세력의 제안의 실패로만 제한될 수 없는 남한운동의 현실적 조건이 존재한다고 판단한다. 그 제안자가 누군인가 혹은 정확하게 그 의미를 이해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상관없이2002년 대선에서, 공투본이 가지는 현실 운동지형에서 의미에 대해 각 운동진영이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다면, 대선이후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 전선의 구축"이라는 민족/민중민주운동의 공동의 과제는 또다시 공허한 메아리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운동진영은 2002년 대선을 통해 새롭게 정당성을 부여받은 반동화된 지배권력의 공세에 무력하게 무너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2002년 대선을 눈앞에 둔 현 정세, 운동현실은 어떠한지, 그 속에서 공투본을 제기한 배경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금 살펴보고자 한다. 그 속에서 우리운동의 일보전진을 가로막고 있는 왜곡된 논점과 운동지형을 평가하려 한다. 또한 90년대 초반 이후 무너진 반파쇼민주주의 전선을 대체할 것으로 "반제·반신자유주의" 전선이 대중운동 속에서 재구축되어야 하고 정파적, 노선적 차이를 넘어 민족/민중민주운동 전반의 과제임을 주장하고자 한다.
1. 현 정세와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조건
우리는 2002년 대선을 앞둔 현재의 정세를 "민주화운동의 적자를 자처하며 집권한 '개혁세력'의 붕괴 및 이것의 결과가 한나라당/정몽준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는 대중들의 보수화 경향과 이에 따른 반동적 권력재편"으로 규정했다. 현재 형성된 정세는 지난 10년여 동안의 계급투쟁 결과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독재타도/민주쟁취'의 슬로건 아래 함께 투쟁했던 반파쇼민주주의운동은 87년 6월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대선을 거치면서 자유민주주의(개혁주의)와 민족/민중민주운동으로 계급적 분화를 겪었다. 민족/민중민주운동은 90년 초반까지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기반으로 노동자, 민중들의 투쟁을 조직하는데 기여했지만, 91년 민족/민중민주운동이 암묵적, 보편적으로 동의했던 사회주의의 붕괴와 정권의 탄압, 계급투쟁의 패배 속에서 급격한 분화와 쇠락을 경험했다. 이러한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쇠락을 틈타 80년 민주화운동의 적자임을 자처하며, YS/DJ 양대 문민정권이 들어섰다. 이 과정에서 민족/민중민주운동은 세계/남한자본주의 조건에 대한 분석능력을 상실했으며, 양대 문민정권 등장의 실질적 의미-민주화운동 경력이라는 정치적 명분을 배경으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실행가능성을 제고하는-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채, 통일운동 및 운동노선을 둘러싼 분화와 다수 인사들이 부르주아정당으로 투항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개혁주의) 정권에 포섭{{) 통일운동의 개량화/민화협 건설을 주도했던 상층 인사들, 특히 98년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 이창복 전 상임의장의 민주당 입당, 노동운동 및 농민운동 상층 인사의 정치권 영입, 소위 NGO로 불리는 자유주의적 시민운동 인사들의 DJ 정권에의 대거 참여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겠다.
}}되어 갔다. 이러한 자유민주주의(개혁주의)의 헤게모니는 경실련, 참여연대로 이어지는 자유주의적 시민운동의 융성, 386과 전문가/지식인을 동원한 이데올로기 공세 속에서 공고화되었다. 그리고 노동운동/농민운동 등의 계급대중운동은 이익집단으로 폄하되었다. 그리고,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정치적 보편성은 대중 속에서 새롭게 구축되지 못한채, 해체되는 과정을 겪는다. 특히, 1997년 IMF 외환위기는 급격한 구조조정을 대세로 만들었다. 더구나 경제위기를 구실로 취임이전부터 비상대권을 거머쥔 DJ 정권의 수평적 정권교체는 민주화와 개혁의 이미지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정당화하였다. 또한, DJ정권은 민주노총으로부터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정리해고제와 근로자 파견법을 골격으로하는 노사정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유력한 저항세력이었던 노동운동의 예봉을 초기에 꺾을 수 있었다. DJ 정권은 개혁의 이름으로 자유주의적 NGO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민족/민중민주운동을 포섭/교란하는데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DJ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정치적 조건을 활용하여 일시적{{) 대표적으로 사유화(민영화) 정책의 경우, DJ정권 초기 대중적으로 거역할 수 없는 대세로 받아들여졌고, 대부분의 NGO들은 노동자들의 사유화저지/고용안정 투쟁을 집단이기주의로 몰아붙이며, 공기업 사유화(민영화) 정책을 지지(기껏해야 민영화 방법과 시기를 둘러싼 이견이 존재)했었다. 그러나, 지난 발전노조 파업 과정에서 보이듯이, 발전/철도산업 사유화(민영화) 반대에 대해 대다수 NGO들이 지지를 표명했으며, 국민 다수의 여론도 사유화(민영화) 반대의 입장으로 돌아섰다고 할 수 있다.
}}으로 대중을 포섭할 수는 있었지만, 노동대중의 고용/임금/노동조건을 끊임없이 불안정화함으로서 가능한 것이기에 대중적 불만과 저항에 부딪힐 수 밖에 없었다. 세계자본주의 위기심화와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금융개방, 자본시장의 완전개방, 주식시장 중심의 경제구조)은 한국경제의 대외 종속성을 심화(초민족적 금융자본, IMF/WTO 등 세계기구, 신용평가기관에 철저히 종속된)시켰으며, 그 투기적 성격과 부패성이 진승현/이용호 게이트와 DJ 세아들의 금융비리를 통해 대중적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결과로 개혁세력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급격히 철회되었고, 그 공백을 역설적이게도 한나라당과 정몽준이 잠식하는 퇴행적인 지형이 형성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개혁세력의 붕괴'는 단지 민주당의 실패가 아니라 민족/민중민주운동이 정치적 보편성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조건과 향후 세계자본주의 위기 하에서 한국사회의 전망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안없음에 대한 대중적 이데올로기가 보수/반동적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로 귀결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들 지배세력들이 현재 할 수 있는 일은 금융적 재편에 따른 대중의 궁핍화와 불만을 미봉적으로 관리하고, 위기를 지연하기 위한 구조조정을 지속하는 것 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세 하에서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주체적 조건은 어떠한가?
민족/민중민주운동의 객관적 현실은 앞서 밝혔듯이, '개혁세력의 붕괴'라는 한국자본주의의 대안없음/대중들의 보수화 경향에 대해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하면 민족/민중민주운동이 지속적인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을 하고 있음에도 대중적으로 정치적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한다. 92년 YS정권 이후 민족민주운동과 민중민주운동은 모두 내적으로 노선적 분화와 정치적 투항, 쇠퇴의 과정을 걸었으며, 공동의 투쟁전선을 형성하지 못해온 것이 객관적 현실이다. 97년 대선에서 국민승리21을 통한 공동의 대선투쟁이 실패한 뒤{{) 돌이켜 보건데, 97년 대선에 대한 핵심적인 평가지점은 IMF 사태에 대한 제대로된 투쟁방침을 제출하지 못한 민중운동진영의 무능이다. 현실의 상황에 대한 분석능력을 상실한 민중운동진영 무능을 뼈져리게 자기비판했더라면, 적어도 현실을 설명하거나 개조하지 못하는 구래의 운동관계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폐쇄적인 운동구조를 재생산하는 지금의 상황은 상당히 개선되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민중운동진영의 주요한 평가가 '일어나라 코리아'라는 국민승리 21의 특정 정치노선에 대한 비판으로 제한된 것은 우리 운동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런 이유에서 2002년 공투본 무산과 대선투쟁 평가의 관점은 중요할 수 밖에 없다.
}}, 'IMF 범국민운동본부'(1998년), 민중대회위원회(2000) , 전국민중연대(준)(2001)으로 이어지는 공동투쟁체 건설 흐름이 있었다. 하지만 전국민중연대(준)은 건설된지 2년이 다되도록 본조직 건설을 결의하지 못할 정도로 참가단체 상호간의 정치적 신뢰{{) 2001년 3월 전국민중연대(준)의 출범을 전후한 시기는 전국민중연대(준)의 향후 진로에 있어서 중요한 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우자동차 투쟁, '김대중 퇴진'을 둘러싼 논쟁, 김대중정권 퇴진 투쟁본부(최종적으로 '신자유주의구조조정분쇄·민중생존권 쟁취 투쟁본부'로 합의됨) 건설논의 및 활동의 과정에서 '6·15 공동선언에 대한 정세인식의 차이'까지 더해져 상호간의 불신을 확대/재생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과잉된 논점을 형성(물론, 분명한 논점의 차이가 존재)했다는 것은 민주노총의 단병호 위원장의 자진출두 및 민주노총의 사실상의 '김대중정권 퇴진투쟁'의 철회에 대해서 김대중정권 퇴진투쟁을 주장했던 어떤 세력도 제대로된 비판과 계획을 제출하지 못했다는 것으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 형성되지 못한 채, 공동투쟁에 있어 대중적 지도력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IMF-DJ정권에 의한 민생파탄, 민주압살로 끊임없이 투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전국민중연대(준)을 통해 이러한 투쟁들이 수렴되고, 민족/민중민주운동의 단결과 역량강화로 귀결되기 보다는 수많은 사안별 투쟁/대책기구을 통해 개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재 민족/민중민주운동의 투쟁 슬로건을 보면, 신자유주의 반대투쟁과 반미·반제투쟁으로 수렴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공동의 투쟁과제를 공동의 투쟁조직을 통해 진행하지 못하는 것이 가슴아픈 현실이다.
이러한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상호불신과 분열이라는 조건에서 역설적이게도 하나의 수렴점이 있다면, 대부분의 정치세력이 '(합법)대중정당운동'을 자신의 정치적 전망과 계획으로 제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를 통한 집권을 주장하는 이러한 (합법)대중정당 흐름의 심각한 문제는 세계자본주의 위기와 한국사회의 금융적 재편이 초래한 구조적 종속과 국가자율성의 심각한 제약과 현재의 지배세력 조차도 정책결정권을 심각히 박탈당하는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는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이러한 (합법)대중정당운동이 지배계급의 포섭/분할전략에 의한 노동대중의 분화와 대중운동의 분열이라는 객관적 현실을 변혁하기 위한 적극적인 전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들은 대중운동의 자기방어적 실리주의를 넘어서는 현실의 투쟁계획과 조직전략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반제·반신자유주의라는 공동의 투쟁과제를 진정한 자신의 과제로 설정하지 못한 채, 정당운동을 이러한 반제·반신자유주의 전선구축을 위한 계기로 사고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중정당운동이 전선구축이라는 당면한 과제에 복무하지 못하는 한, 사회주의를 이념으로 표방하던, 혹은 사민주의, 민족민주당으로 좀더 우경화된 집권전략을 설정하던 간에, 이들이 말하는 변혁이란 지배계급 앞에 무력한 공염불이거나, 민중에 대한 기만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자본주의 위기라는 조건에서 노동대중의 내적 분화(불균등화)가 가속화되는 현실, 즉 중소/영세사업장의 경우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임금수준, 고용불안, 노동3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합법)대중정당은 노동대중의 계급적 단결을 이루고, 노동자/ 농민/여성들의 동맹을 현실화시키는 문제를 회피하고는 부르주아 정치위기를 봉합해주는 역할에 머무르거나 서구 사민주의정당들처럼 '제3의 길'이라는 그럴 듯한 명분으로 신자유주의의 집행관이 될 운명에 처할 것이다.
2. 2002년 대선투쟁에서 공투본은 민족/민중민주운동에게 어떤 의미였는가?
공투본 제안을 두고 많은 비판들이 있었다. 지난 7월 16일 10개단체 지도부가 합의한 '2002년 대선승리와 범진보진영 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범국민추진기구'(이하 '범추')의 재판이고, 민주노동당의 지지부대로 전락할 것임을 경고하는 내용이었다. 실제 범추의 제안대상을 보면, 정부와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노골적으로 지지했거나, 보조했던 세력뿐만 아니라 반노동자적인 '노동법 개악'에 합의했던 한국노총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를 통해서도 범추의 제안자인 민주노동당의 범추 추진세력이 생각하는 향후 당의 성격이나 득표에만 목매고 있는 모습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민주노동당의 당내 대선후보 선출 후 범진보진영 경선에 참가한다'는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실질적 연대 가능성을 저버리는 민주노동당의 자기 중심적인 방침으로 인해 범추는 실질적으로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범추의 추진목적과 과정이 분명히 문제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나, 공투본 제안을 범추의 재판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정치방침 및 전술운용을 판단함에 있어 지나치게 운동세력의 역관계만을 고려하는 편향에서 비롯된다고 판단한다. 어차피 남한사회운동에서 어떠한 투쟁기구를 꾸리던 간에 전국민중연대(준)에 참여한 단체와 조직들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동일한 단체와 조직이 참가하더라도 어떠한 의도와 계획을 가지고 모였는가에 따라 그 의미는 전혀 다르게 결과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개혁세력의 붕괴'라는 정세적 조건, 이는 이후 대안세력의 부재를 말하는 것이고, 이 틈을 한나라당, 정몽준 등이 보수/퇴행적 논점으로 대중 이데올로기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족/민중민주운동은 '반제·반신자유주의 ' 전선구축이라는 목표 하에 하나의 대안세력으로 자신을 구성해낼 절대적인 필요성이 존재한다. 이것이 공투본/민중경선 제안의 첫 번째 이유이다. 민족민주운동이나 민중민주운동이나 실상 그 투쟁요구를 보면, 비정규직철폐, 사유화 반대, 교육/의료의 공공성 강화, 미국반대/전쟁반대 등 대부분 주장의 차별성을 찾기 어렵다. 즉, 선거라는 공간에서 대중들이 보기에는 별반 차별화된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중들이 사회주의가 이미 실패한 상황에서 뜬금없이 사회주의를 외친다고 환호할 리 만무할 것이며, 따라서 이번 대선투쟁에서 '반제·반신자유주의'라는 쟁점을 통해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잊혀진 시민권을 확보하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사실, 우리의 입장에서는 공투본의 후보이면 되는 것이지, 그 법적 양식이 민주노동당이냐 사회당이냐는 부차적일 수 밖에 없다. 다만, 민중경선이 중요하게 강조된 이유는, 첫째로 노동자, 농민, 민중들이 자신의 투쟁요구를 제출하고, 자신의 후보를 선출했을 때 공투본의 후보로서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다는 의미이고, 둘째로 서로 다른 정치세력과 견해가 존재하기 때문에 각 정치세력이 공히 대중들에게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피력할 기회를 가져야 하고 그 속에서 대중적인 의사결정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앞서 언급했던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상호불신과 분열이라는 현실에서 공투본은 전국민중연대(준)이 현재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민족/민중민주운동의 단결을 위한 유력한 공간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것이 공투본/민중경선을 제안한 두 번째 이유이다. 공투본이 2003년 새롭게 집권한 반동적 권력에 맞서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 전선을 구축하는데, 유력한 발판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물론, 많은 동지들이 지적하듯이 공투본이 건설된다고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노총이 공투본을 실질적인 투쟁기구로 사고하리라고 판단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공투본/민중경선에 동의했던 노동해방 실천단의 경우, 적극적으로 11월, 12월 투쟁을 조직하는데 기여하려했다. 공투본은 하반기 예정된 노동자, 농민 투쟁의 폭발 가능성은 열려져 있는 것이기에 이러한 투쟁의 성과를 어디로 수렴시킬 것인가, 그를 통해 2003년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전선의 상징적 구심을 어디로부터 출발시킬 것인가하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도 민중경선이 중요한 이유는 민중경선이 없는 공투본은 사실상 전국민중연대(준)의 노동특위를 중심으로 하반기 투쟁계획이 잡혀있는 조건에서 충분한 명분을 확보하기 힘든 현실적 조건 때문이었다.
그리고 현재 민족/민중민주운동 내에 형성되어 있는 민주노동당 지지/반대, 민주노동당(사민주의)/사회당(사회주의)이라는 지극히 왜곡된 논점을 바로잡을 필요성이 존재했다. 이것이 공투본/민중경선을 제안한 세 번째 이유이다. 다수 노동자들의 열악한 임금수준, 고용불안, 노동3권마저도 박탈당한 현실, 한칠레자유무역협정이나 WTO 쌀개방 계획에서 보이듯이 농업포기로 내몰리는 농민들의 현실에서, 대다수는 정치적 불신으로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정규직 혹은 상층 노동자들, 그리고 일부 농민들의 경우는 자신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에 투표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대다수 노동자들은 당장 삶의 고통으로 인해 민주노동당에 조차 관심이 없는데, 여기에다 사민주의는 개량이고 사회주의 대통령 내야한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가. 이러한 현실에서 공투본/민중경선은 자신의 후보를 선출하고, 자신의 요구를 가지고 공동투쟁하는 과정을 통해 정치적 불신을 깨고, 보수 정치로 흡수되는 것을 막는데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또한 민중경선의 과정이 대중에게 민주노동당을 찍을 건지 말건지, 민주노동당/사회당 어느 당을 찍어야할지 왜곡된 선택을 강요하는 운동지형을 바꾸는데,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민중경선의 과정이 대중을 (합법)대중정당에 대한 수동적인 지지자/유권자로만 사고하는 현실 운동경향에 맞서 노동자, 민중을 정치의 주체로 세워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것이라 판단했다. 또한 이러한 대중에게 열린 공간을 통해, 현실 민생파탄의 원인과 지배세력의 무능에 대해서 비판하고, 노동자, 민중의 세상을 열기 위한 각 정치세력들의 입장이 논쟁되는 공간을 열고자 했다. 민주노총의 정치방침 문제도, 민주노동당의 개량적인 입장도 이러한 민중경선의 과정에서 대중적으로 비판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제안 취지에도 불구하고, 9월 17일 제안되고 10월 21일 발족할 계획이었던 공투본은 사실 "공동투쟁-민중경선"이라는 원칙을 제외하고 나면 빈 껍데기와 같은 조직인 것이 사실이다. 2001년 상설공투체로 발족한 전국민중연대(준) 내에서 본조직 건설조차 합의하지 못하는 것이 객관적인 민족/민중민주운동의 현실이 아니던가?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하반기 투쟁의 대강은 전국민중연대(준) 노동특위를 중심으로 민주노총, 전농, 전빈련에 의해 예정되어 있었다. 공투본은 몇몇 단체가 모여, 존재하지 않는 투쟁을 일구는 것이 아닌 바에야 현재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조건상 정치적 구심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전국민중연대(준)과의 유기적 관계를 통해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전선의 상징적 구심으로 자리잡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물론, 이를 위해 민중경선은 비껴갈 수 없는 핵심적 요소였다고 할 수 있다.
3/ "후보의 등록형식"이라는 쟁점은 공투본의 제안취지를 왜곡하는 쟁점이다.
이러한 공투본-민중경선의 의의에도 불구하고, 6차 예비모임에서 노동자의 힘이 '후보의 법적 등록형식'을 공투본 건설의 전제조건으로 거듭 주장하면서 공투본은 사실상 무산되었다. 우리가 극복하려고 했던 왜곡된 운동구도를 더욱 악화된 형태로 고착화-재생산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물론, 5차 모임에 이르기까지 공투본 예비모임에 참가했던 민주노동당, 민주노총을 비롯한 나머지 단체들이 실질적으로 공투본 성사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에 대해서는 모두가 원칙적인 동의와 참가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점을 알고 있다. 심지어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초기 사회당과의 후보단일화에 모든 관심이 있었고, 사회당의 불참 이후에도 실질적인 공동투쟁과 민중경선을 추진하는 것보다 득표전략에 손해될 것 없다는 입장으로 일관했다는 점 또한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사회진보연대와 노동자의 힘이 노동해방 실천단의 논의를 거쳐 제출한 공동투쟁계획은 형식적인 검토만 이루어졌을 뿐이며, 구체적인 민중경선의 방안은 공투본 예비모임 기획소위에서 논의조차 진행하지 않은 것이 객관적 현실이다. 따라서, 아무런 계획도 없이, 혹은 당세의 확장을 위해서 전농의 참여만을 기다리는 7차 예비모임 참가단체들 또한 공투본 무산에 대한 책임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민주노총에서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 지지'라는 기존의 정치방침이 대선공투본 경선 시 조합원들의 자유투표와 선거운동의 자유를 제약해서는 안되며, 대선공투본 후보로 민중진영의 정치적 단결이 이루어질 경우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 지지'라는 기존의 방침을 대선공투본(후보)에 대한 지지로 해석한다"는 입장을 제시했고, 민주노동당 또한 기존의 경선을 통해 선출된 후보가 결정한다는 패권적인 입장을 철회하고, "대선공투본 후보로 추대하며, 후보의 법적 등록 방식은 등록과 관련한 공투본 내 대중적 논의와 후보선출 후 공투본 내 민주적 의사수렴 과정을 거쳐 결정한다"는 사회진보연대의 입장에 동의를 표명한 상황에서 노동자의 힘의 태도는 대중적으로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고 판단한다. 더구나 노동자의 힘의 이러한 행보는 공투본-민중경선에 동의하는 민중민주운동이 함께 건설했던 노동해방 대선실천단 활동의 전제였던, 중요한 정치방침의 경우 각 조직의 결정에 우선하여 노동해방 실천단 총회{{) 이에 대한 평가는 10월 26일 개최된 노동해방 대선실천단 총회에 제출된 노동해방 대선실천단 이현대, 임필수, 이상훈, 박준도 4인 명의로 제출된 "공투본 무산에 대한 평가(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평가(안)에서는 평가서와 함께 '1)후보의 법적 등록형식 문제는 공투본 결성의 전제조건일 수 없었다 2)공투본 후보 및 민중경선 문제 등 변화된 조건에 따른 주요정치방침은 노동해방 대선실천단 총회에서 결정될 사안이었음을 확인하고, 6차 공투본 예비모임 과정에서 노동자의힘에 의해 이 총회의 권한이 침해되었음을 확인한다'를 평가안으로 채택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2)에 대해서는 총회 참석자들이 대체로 공감을 표시하였으나, 1)과 관련하여 이견이 존재했고, 표결처리 요구를 하였으나 표결처리 자체를 반대하는 의견이 있어 표결을 진행하지 못했다. 노동해방 대선실천단은 총회를 통해 정치적 책임을 통감하고 해산을 결정했다. 정확히는 사회자가 노동해방 실천단 해산에 대해 반대의사를 물었으나, 반대한 사람이 없었다.
}}에서 결정한다는 대중적 약속을 사실상 파기한 것이다.
그렇다면, "후보의 법적 등록형식"이 중심적인 쟁점이 된 것은 왜 문제인가? 무엇보다도, 그것이 일순간 모든 쟁점을 민주노동당 지지/반대, 민주노총 정치방침안 지지/반대라는 틀로 폭력적으로 정리시키면서, 대선방침의 본래 취지였던 기존의 민족/민중민주운동의 분열과 배타적 대립을 극복하고, '반제·반신자유주의'라는 정치적 과제를 중심으로 한 운동지형의 재구축의 발판을 삼고자 했던 공투본의 제안 의도 자체를 왜곡했다는 데 있다. 애초 공투본을 제기한 전제가 이러한 구도를 넘어서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러한 구도가 존재하기 때문에 공투본을 출범할 수 없다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노동자의 힘 중앙집행위(2002/10/30) 명의로 제출된 '공투본 제안 철회와 노동해방 대선실천단 해산에 대한 노동자의 힘의 입장'을 보면, 실제로 노동자의 힘이 공투본을 제안한 취지 자체를 무색하게 하고, 노동해방 대선실천단의 공투본 제안 취지를 왜곡하고 있다. 장문의 글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힘 주장의 요지는, '민주노동당의 선거주의와 민주노총 정치방침 밀월관계가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왜곡하고, 현장 노동자들을 선거주의 틀안에 가두고 있다. 따라서, 노동해방 실천단을 통해서 현장을 조직하고, 공투본의 상층협상을 통해 압박해서 민주노총 정치방침을 바꾸고, 민주노총-민주노동당의 밀월관계를 해체하려 했다. 그러나, 사회당의 불참으로 큰 장애가 발생했고, 노동해방 실천단을 통한 현장조직화도 여의치 않아 실패했다. 따라서 노동자의 힘이 애초 주요하게 판단했던 민주노동당의 탈계급적이고 계급연합적인 성격과 선거주의를 문제삼으며 퇴각하기로 하였다. 공투본을 제안하고 책임지지 못한 것은 노동자의 힘의 책임임을 통감하나, 결국 계급운동진영(좌파)의 실력이 부족한 탓이다'로 압축할 수 있겠다. 이 입장을 보면서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상층협상과 압박을 통해 이미 운동 내부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노동운동의 자기방어적 실리주의, 이를 기반으로하는 민주노동당의 선거주의를 바꿀 수 있다는 노동자의 힘의 발상이고, 이것이 공투본 제안의 핵심적인 요소임을 스스로 털어놓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의 힘이 입장을 통해 밝히고 있듯이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밀월관계는 선거주의를 넘어서는 노동대중의 계급적 단결과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전선의 강화 속에서만 극복될 수 있다. 불과 1개월여의 공투본 건설과정에서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는 것인데, 참으로 억지가 아닐 수 없다. 또 하나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민주노총의 정치방침과 관련한 노동자의 힘의 태도이다. 판단컨데,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이 문제가 되는 것은 현재 노동운동의 현실, 즉 노동계급 내부의 불균등화와 노동운동의 자기방어적 실리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실질적인 정치방침을 제출하지 못하고, 그것을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로 대체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 지지방침을 정치적 자유를 제약하는 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목표로 하는 노동자의 힘을 민주노동당/사회당에 대당하는 정당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잔존하기 때문이라 판단한다. 관건적인 것은 민주노총 정치방침이 아니라 노조운동-정당운동을 개입/개조할 수 있는 주체를 형성하는 운동계획의 문제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노동자의 힘은 공투본을 퇴각한 핵심적인 이유로 대부분이 노동조합 혹은 지역본부의 활동가인 조직원들이 실질적으로 공투본/노동해방 대선실천단 계획을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조직화하지 않음으로 인해, 현장이 조직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노동자의 힘이 애초에 공투본을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전선의 구축을 위한 발판이자 자기혁신의 계기로 사고하였다면, 공투본 제안의 취지자체가 우리의 힘이 미약했기에 제안된 것이고, 공투본-민중경선을 통해서 우리의 힘을 키우자는 문제의식이었던 점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더라면, 힘이 없어서 공투본을 깨야 했다는 식의 평가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초기부터 노동자의 힘 내부에 존재했던 '대중투쟁돌파론'을 내세운 현장과 지역의 동지들이 실질적인 투쟁계획도 없이, 대중들의 정치적 무관심에 편승할 뿐임을 직시하고 있었다면, 더디더라도 일부지역에서 지역별 공동투쟁 나아가 공동의 선거투쟁, 노동해방 실천단 구성의 의지들이 형성되고 있음을 주목했더라면 그러한 식의 결정은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나, "따라서 현장 세력이 이번 노동해방 대선실천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우리를 '비관'적으로 만들 이유가 없다. 오히려 그것은 훨씬 더 미래를 '낙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 왜냐 하면 이것은 현재 민주노동당-민주노총의 밀월관계가 노동자계급의 선진적 부대에 의해 얼마나 강하게 '계급적'으로 부정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라는 노동자의힘의 평가는 노동해방 실천단 건설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당황스럽게 한다. 노동해방 대선실천단은 현장의 정치적 무관심을 극복하고, 구래의 '대중투쟁돌파론'이라는 대중의 탈정치를 넘어서서, 공투본-민중경선이라는 계기를 통해 노동자, 민중을 실질적인 정치적 주체로 세우고,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전선 구축의 계기를 확보하기 위해 건설된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목표를 가지고 건설된 노동해방 실천단에 현장세력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것을 비관할 이유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견해로 판단컨데, 애초에 노동해방 대선실천단이건 공투본이건 제대로 할 생각이 있었는지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다.
4. 2003년 '반제·반신자유주의' 전선구축은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공투본-민중경선은 사실상 무산되었으나, 공투본의 제안을 통해 밝혔던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전선의 구축이라는 과제는 여전히 우리 앞에 남아있다. 공투본 무산의 책임을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비판으로 제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진보연대 또한 6차 예비모임에서 보인 정치적 태도에 대해 냉철하게 비판받아야 한다. 이에 책임지는 우리의 모습은 노동해방 대선실천단의 해소였다. 우리가 노동해방 대선실천단의 해소를 주장했던 핵심적인 이유는, 이미 '후보의 등록형식'이 쟁점이 되어 공투본이 무산된 상황에서, 공투본을 통해 넘어서고자 했던 민주노동당 반대, 민주노총 정치방침 반대라는 정체성으로 노동해방 실천단이 상징화되는 것이 공투본-민중경선-노동해방 실천단을 통해서 실현하고자 했던 바를 왜곡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투본-민중경선-노동해방 실천단의 취지는 민주노동당 반대, 민주노총 정치방침 변경으로 축소될 성질의 것이 아니기에, 민족/민중민주운동의 반목과 불신을 넘어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 전선을 구축하고자 했던 애초의 취지를 다시금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다. 노동해방 실천단의 이름으로 (노동)대중들을 헌신적으로 조직하고 있는 지역, 학생 동지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하고, 많은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가 노동해방 실천단 총회에서 실천단의 해산을 제안할 수 밖에 없었던 진실은 여기에 있다.
공투본의 무산으로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상호간의 불신과 분열을 넘어서고자 했던 유력한 계기가 무산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하반기 전국민중연대(준)의 민중연대특위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30만 농민항쟁과 노동자들의 투쟁을 함께 진행하면서, 2003년 반동권력의 집권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 현재 전국민중연대(준)의 내적 한계를 넘어 민족/민중민주운동이 이번 경험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통해 자기혁신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 위기와 지배계급의 무능에 의해 고통받는 노동자, 민중들의 해방된 세상을 여는 것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의 기본적 기능은 노동대중(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치분파)의 계급적 통일을 저지하는 기능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한다면, 현존하는 국가 및 역사적 형태에 대한 투쟁을 통해서만, 계급적 통일을 가로막는 장애들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실천을 통해서만 노동대중(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치분파)의 계급적 통일을 이루고, 계급동맹을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10년여의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지속적인 분화와 쇠퇴의 과정은 변화된 현실조건을 정확히 분석하지 못하는 무능의 과정이었고, 대중적 운동과 논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구래의 운동관계로부터 배타적인 자신의 정체성(좌파, 사회주의...)을 선언하는 왜곡된 운동지형을 낳고 있다.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와 지배계급의 무능이라는 조건에서 지배세력의 포섭/분할 전략에 맞서 노동대중의 계급적 단결을 이루고,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 전선을 구축하여 민족/민중민주운동이 새롭게 정치적 보편성을 획득할 것인가 아니면, 각 정치세력의 자폐적인 폐쇄회로 속에서 갇혀 민족/민중민주운동 공도동망(共倒同亡)의 길을 갈 것인가에 대해 우리는 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 정세적 과제를 보지 못한 채 운동진영 내의 세력관계가 절대시 되고, 배타적인 운동관계를 형성할 때, 미소짓는 것은 지배계급이고 노동자, 민중의 계급적 단결은 그만큼 지체될 것이다. '반제·반신자유주의'라는 현실의 공동 투쟁과제를 중심으로 단결하고, 현실인식과 운동노선을 둘러싼 대중적인 논쟁을 새롭게 형성하는 것만이 민족/민중민주운동에게 미래를 보증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존재하는 상설공투체로서 전국민중연대(준)에 대한 정치적 판단을 명확히 내려야 한다.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전선 구축의 조직적 거점으로 전국민중연대(준)가 기능할 수 있는지, 혹은 그러하기 위해서 어떠한 조건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모든 정치세력이 진지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전국민중연대(준)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동지들 또한 공히 적용되는 것이다. 참가해서 함께하면 되지 않느냐는 식의 태도가 아니라 실제로 함께 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기존에 적극적으로 결합하지 않던 세력들 또한 전국민중연대(준)을 통해 공동의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제기할 필요가 있고, 전국민중연대(준)이 공동의 투쟁 거점으로 기능할 수 없다면, 그 근거와 책임있는 제안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번 대선에 대한 평가는 진보정당의 득표율에 대한 평가로 한계지어질 수 없다. 짧게는 공투본의 무산에 대한 공동의 책임있는 평가가 필요하고, 길게는 지난 10년여의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가 있어야 될 것이다. 새로운 출발은 언제나 과거의 연장이 아니라 역사적 단절의 과정이 필요하다. 공투본의 무산이라는 2002년의 경험이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자기비판과 혁신, 그리고 단결과 연대의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는다. 2003년 반동권력에 맞선 노동자, 민중의 투쟁에 대한 책임있는 평가의 시기로 2002년 하반기가 위치 지어져야 한다. PSSP
}}, 무엇을 평가할 것인가?
지난 9월 17일 노동자의힘의 제안으로 시작된 '공투본 예비모임'은 6차 예비모임을 끝으로 사실상 무산되었다. 공투본의 무산을 두고 여러 가지 논점의 비판이 혼재된 채로 쏟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본디 좌파란 것들이 그렇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며 좌파라는 정치세력에 대한 불신에 찬 발언들을 쏟아냈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당류의 "민족주의/의회주의 세력과 연대/연합을 주장하더니 결과가 뭐냐"라며 좌파결집론 혹은 사회주의 세력화를 정당화하는 입장을 펼치기도 한다. 또한, "대중투쟁돌파론"을 주장하던 세력들은 "역시 선거투쟁하면 좌파가 분열할 수 밖에 없어. 선거대응 하지 말고 대중투쟁에 집중하는게 옳았어"라며 공투본의 실패가 자신의 정당성을 대변해 주는 양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고, 어떤 이들은 유력한 대선방침으로서 공투본의 유의미성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해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을 펼치는 이들은 공투본의 무산을 "특정한 정치세력의 제안으로서 공투본의 파산"으로만 한정하여 이해하기 때문에, 2002년 대선에서 공투본의 의미를 사장한 채 자신의 입장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데 만 급급해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공투본 무산이라는 사건에는 어느 특정한 정치세력의 제안의 실패로만 제한될 수 없는 남한운동의 현실적 조건이 존재한다고 판단한다. 그 제안자가 누군인가 혹은 정확하게 그 의미를 이해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상관없이2002년 대선에서, 공투본이 가지는 현실 운동지형에서 의미에 대해 각 운동진영이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다면, 대선이후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 전선의 구축"이라는 민족/민중민주운동의 공동의 과제는 또다시 공허한 메아리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운동진영은 2002년 대선을 통해 새롭게 정당성을 부여받은 반동화된 지배권력의 공세에 무력하게 무너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2002년 대선을 눈앞에 둔 현 정세, 운동현실은 어떠한지, 그 속에서 공투본을 제기한 배경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금 살펴보고자 한다. 그 속에서 우리운동의 일보전진을 가로막고 있는 왜곡된 논점과 운동지형을 평가하려 한다. 또한 90년대 초반 이후 무너진 반파쇼민주주의 전선을 대체할 것으로 "반제·반신자유주의" 전선이 대중운동 속에서 재구축되어야 하고 정파적, 노선적 차이를 넘어 민족/민중민주운동 전반의 과제임을 주장하고자 한다.
1. 현 정세와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조건
우리는 2002년 대선을 앞둔 현재의 정세를 "민주화운동의 적자를 자처하며 집권한 '개혁세력'의 붕괴 및 이것의 결과가 한나라당/정몽준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는 대중들의 보수화 경향과 이에 따른 반동적 권력재편"으로 규정했다. 현재 형성된 정세는 지난 10년여 동안의 계급투쟁 결과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독재타도/민주쟁취'의 슬로건 아래 함께 투쟁했던 반파쇼민주주의운동은 87년 6월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대선을 거치면서 자유민주주의(개혁주의)와 민족/민중민주운동으로 계급적 분화를 겪었다. 민족/민중민주운동은 90년 초반까지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기반으로 노동자, 민중들의 투쟁을 조직하는데 기여했지만, 91년 민족/민중민주운동이 암묵적, 보편적으로 동의했던 사회주의의 붕괴와 정권의 탄압, 계급투쟁의 패배 속에서 급격한 분화와 쇠락을 경험했다. 이러한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쇠락을 틈타 80년 민주화운동의 적자임을 자처하며, YS/DJ 양대 문민정권이 들어섰다. 이 과정에서 민족/민중민주운동은 세계/남한자본주의 조건에 대한 분석능력을 상실했으며, 양대 문민정권 등장의 실질적 의미-민주화운동 경력이라는 정치적 명분을 배경으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실행가능성을 제고하는-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채, 통일운동 및 운동노선을 둘러싼 분화와 다수 인사들이 부르주아정당으로 투항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개혁주의) 정권에 포섭{{) 통일운동의 개량화/민화협 건설을 주도했던 상층 인사들, 특히 98년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 이창복 전 상임의장의 민주당 입당, 노동운동 및 농민운동 상층 인사의 정치권 영입, 소위 NGO로 불리는 자유주의적 시민운동 인사들의 DJ 정권에의 대거 참여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겠다.
}}되어 갔다. 이러한 자유민주주의(개혁주의)의 헤게모니는 경실련, 참여연대로 이어지는 자유주의적 시민운동의 융성, 386과 전문가/지식인을 동원한 이데올로기 공세 속에서 공고화되었다. 그리고 노동운동/농민운동 등의 계급대중운동은 이익집단으로 폄하되었다. 그리고,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정치적 보편성은 대중 속에서 새롭게 구축되지 못한채, 해체되는 과정을 겪는다. 특히, 1997년 IMF 외환위기는 급격한 구조조정을 대세로 만들었다. 더구나 경제위기를 구실로 취임이전부터 비상대권을 거머쥔 DJ 정권의 수평적 정권교체는 민주화와 개혁의 이미지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정당화하였다. 또한, DJ정권은 민주노총으로부터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정리해고제와 근로자 파견법을 골격으로하는 노사정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유력한 저항세력이었던 노동운동의 예봉을 초기에 꺾을 수 있었다. DJ 정권은 개혁의 이름으로 자유주의적 NGO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민족/민중민주운동을 포섭/교란하는데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DJ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정치적 조건을 활용하여 일시적{{) 대표적으로 사유화(민영화) 정책의 경우, DJ정권 초기 대중적으로 거역할 수 없는 대세로 받아들여졌고, 대부분의 NGO들은 노동자들의 사유화저지/고용안정 투쟁을 집단이기주의로 몰아붙이며, 공기업 사유화(민영화) 정책을 지지(기껏해야 민영화 방법과 시기를 둘러싼 이견이 존재)했었다. 그러나, 지난 발전노조 파업 과정에서 보이듯이, 발전/철도산업 사유화(민영화) 반대에 대해 대다수 NGO들이 지지를 표명했으며, 국민 다수의 여론도 사유화(민영화) 반대의 입장으로 돌아섰다고 할 수 있다.
}}으로 대중을 포섭할 수는 있었지만, 노동대중의 고용/임금/노동조건을 끊임없이 불안정화함으로서 가능한 것이기에 대중적 불만과 저항에 부딪힐 수 밖에 없었다. 세계자본주의 위기심화와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금융개방, 자본시장의 완전개방, 주식시장 중심의 경제구조)은 한국경제의 대외 종속성을 심화(초민족적 금융자본, IMF/WTO 등 세계기구, 신용평가기관에 철저히 종속된)시켰으며, 그 투기적 성격과 부패성이 진승현/이용호 게이트와 DJ 세아들의 금융비리를 통해 대중적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결과로 개혁세력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급격히 철회되었고, 그 공백을 역설적이게도 한나라당과 정몽준이 잠식하는 퇴행적인 지형이 형성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개혁세력의 붕괴'는 단지 민주당의 실패가 아니라 민족/민중민주운동이 정치적 보편성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조건과 향후 세계자본주의 위기 하에서 한국사회의 전망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안없음에 대한 대중적 이데올로기가 보수/반동적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로 귀결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들 지배세력들이 현재 할 수 있는 일은 금융적 재편에 따른 대중의 궁핍화와 불만을 미봉적으로 관리하고, 위기를 지연하기 위한 구조조정을 지속하는 것 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세 하에서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주체적 조건은 어떠한가?
민족/민중민주운동의 객관적 현실은 앞서 밝혔듯이, '개혁세력의 붕괴'라는 한국자본주의의 대안없음/대중들의 보수화 경향에 대해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하면 민족/민중민주운동이 지속적인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을 하고 있음에도 대중적으로 정치적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한다. 92년 YS정권 이후 민족민주운동과 민중민주운동은 모두 내적으로 노선적 분화와 정치적 투항, 쇠퇴의 과정을 걸었으며, 공동의 투쟁전선을 형성하지 못해온 것이 객관적 현실이다. 97년 대선에서 국민승리21을 통한 공동의 대선투쟁이 실패한 뒤{{) 돌이켜 보건데, 97년 대선에 대한 핵심적인 평가지점은 IMF 사태에 대한 제대로된 투쟁방침을 제출하지 못한 민중운동진영의 무능이다. 현실의 상황에 대한 분석능력을 상실한 민중운동진영 무능을 뼈져리게 자기비판했더라면, 적어도 현실을 설명하거나 개조하지 못하는 구래의 운동관계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폐쇄적인 운동구조를 재생산하는 지금의 상황은 상당히 개선되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민중운동진영의 주요한 평가가 '일어나라 코리아'라는 국민승리 21의 특정 정치노선에 대한 비판으로 제한된 것은 우리 운동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런 이유에서 2002년 공투본 무산과 대선투쟁 평가의 관점은 중요할 수 밖에 없다.
}}, 'IMF 범국민운동본부'(1998년), 민중대회위원회(2000) , 전국민중연대(준)(2001)으로 이어지는 공동투쟁체 건설 흐름이 있었다. 하지만 전국민중연대(준)은 건설된지 2년이 다되도록 본조직 건설을 결의하지 못할 정도로 참가단체 상호간의 정치적 신뢰{{) 2001년 3월 전국민중연대(준)의 출범을 전후한 시기는 전국민중연대(준)의 향후 진로에 있어서 중요한 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우자동차 투쟁, '김대중 퇴진'을 둘러싼 논쟁, 김대중정권 퇴진 투쟁본부(최종적으로 '신자유주의구조조정분쇄·민중생존권 쟁취 투쟁본부'로 합의됨) 건설논의 및 활동의 과정에서 '6·15 공동선언에 대한 정세인식의 차이'까지 더해져 상호간의 불신을 확대/재생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과잉된 논점을 형성(물론, 분명한 논점의 차이가 존재)했다는 것은 민주노총의 단병호 위원장의 자진출두 및 민주노총의 사실상의 '김대중정권 퇴진투쟁'의 철회에 대해서 김대중정권 퇴진투쟁을 주장했던 어떤 세력도 제대로된 비판과 계획을 제출하지 못했다는 것으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 형성되지 못한 채, 공동투쟁에 있어 대중적 지도력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IMF-DJ정권에 의한 민생파탄, 민주압살로 끊임없이 투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전국민중연대(준)을 통해 이러한 투쟁들이 수렴되고, 민족/민중민주운동의 단결과 역량강화로 귀결되기 보다는 수많은 사안별 투쟁/대책기구을 통해 개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재 민족/민중민주운동의 투쟁 슬로건을 보면, 신자유주의 반대투쟁과 반미·반제투쟁으로 수렴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공동의 투쟁과제를 공동의 투쟁조직을 통해 진행하지 못하는 것이 가슴아픈 현실이다.
이러한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상호불신과 분열이라는 조건에서 역설적이게도 하나의 수렴점이 있다면, 대부분의 정치세력이 '(합법)대중정당운동'을 자신의 정치적 전망과 계획으로 제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를 통한 집권을 주장하는 이러한 (합법)대중정당 흐름의 심각한 문제는 세계자본주의 위기와 한국사회의 금융적 재편이 초래한 구조적 종속과 국가자율성의 심각한 제약과 현재의 지배세력 조차도 정책결정권을 심각히 박탈당하는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는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이러한 (합법)대중정당운동이 지배계급의 포섭/분할전략에 의한 노동대중의 분화와 대중운동의 분열이라는 객관적 현실을 변혁하기 위한 적극적인 전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들은 대중운동의 자기방어적 실리주의를 넘어서는 현실의 투쟁계획과 조직전략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반제·반신자유주의라는 공동의 투쟁과제를 진정한 자신의 과제로 설정하지 못한 채, 정당운동을 이러한 반제·반신자유주의 전선구축을 위한 계기로 사고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중정당운동이 전선구축이라는 당면한 과제에 복무하지 못하는 한, 사회주의를 이념으로 표방하던, 혹은 사민주의, 민족민주당으로 좀더 우경화된 집권전략을 설정하던 간에, 이들이 말하는 변혁이란 지배계급 앞에 무력한 공염불이거나, 민중에 대한 기만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자본주의 위기라는 조건에서 노동대중의 내적 분화(불균등화)가 가속화되는 현실, 즉 중소/영세사업장의 경우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임금수준, 고용불안, 노동3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합법)대중정당은 노동대중의 계급적 단결을 이루고, 노동자/ 농민/여성들의 동맹을 현실화시키는 문제를 회피하고는 부르주아 정치위기를 봉합해주는 역할에 머무르거나 서구 사민주의정당들처럼 '제3의 길'이라는 그럴 듯한 명분으로 신자유주의의 집행관이 될 운명에 처할 것이다.
2. 2002년 대선투쟁에서 공투본은 민족/민중민주운동에게 어떤 의미였는가?
공투본 제안을 두고 많은 비판들이 있었다. 지난 7월 16일 10개단체 지도부가 합의한 '2002년 대선승리와 범진보진영 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범국민추진기구'(이하 '범추')의 재판이고, 민주노동당의 지지부대로 전락할 것임을 경고하는 내용이었다. 실제 범추의 제안대상을 보면, 정부와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노골적으로 지지했거나, 보조했던 세력뿐만 아니라 반노동자적인 '노동법 개악'에 합의했던 한국노총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를 통해서도 범추의 제안자인 민주노동당의 범추 추진세력이 생각하는 향후 당의 성격이나 득표에만 목매고 있는 모습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민주노동당의 당내 대선후보 선출 후 범진보진영 경선에 참가한다'는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실질적 연대 가능성을 저버리는 민주노동당의 자기 중심적인 방침으로 인해 범추는 실질적으로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범추의 추진목적과 과정이 분명히 문제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나, 공투본 제안을 범추의 재판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정치방침 및 전술운용을 판단함에 있어 지나치게 운동세력의 역관계만을 고려하는 편향에서 비롯된다고 판단한다. 어차피 남한사회운동에서 어떠한 투쟁기구를 꾸리던 간에 전국민중연대(준)에 참여한 단체와 조직들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동일한 단체와 조직이 참가하더라도 어떠한 의도와 계획을 가지고 모였는가에 따라 그 의미는 전혀 다르게 결과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개혁세력의 붕괴'라는 정세적 조건, 이는 이후 대안세력의 부재를 말하는 것이고, 이 틈을 한나라당, 정몽준 등이 보수/퇴행적 논점으로 대중 이데올로기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족/민중민주운동은 '반제·반신자유주의 ' 전선구축이라는 목표 하에 하나의 대안세력으로 자신을 구성해낼 절대적인 필요성이 존재한다. 이것이 공투본/민중경선 제안의 첫 번째 이유이다. 민족민주운동이나 민중민주운동이나 실상 그 투쟁요구를 보면, 비정규직철폐, 사유화 반대, 교육/의료의 공공성 강화, 미국반대/전쟁반대 등 대부분 주장의 차별성을 찾기 어렵다. 즉, 선거라는 공간에서 대중들이 보기에는 별반 차별화된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중들이 사회주의가 이미 실패한 상황에서 뜬금없이 사회주의를 외친다고 환호할 리 만무할 것이며, 따라서 이번 대선투쟁에서 '반제·반신자유주의'라는 쟁점을 통해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잊혀진 시민권을 확보하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사실, 우리의 입장에서는 공투본의 후보이면 되는 것이지, 그 법적 양식이 민주노동당이냐 사회당이냐는 부차적일 수 밖에 없다. 다만, 민중경선이 중요하게 강조된 이유는, 첫째로 노동자, 농민, 민중들이 자신의 투쟁요구를 제출하고, 자신의 후보를 선출했을 때 공투본의 후보로서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다는 의미이고, 둘째로 서로 다른 정치세력과 견해가 존재하기 때문에 각 정치세력이 공히 대중들에게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피력할 기회를 가져야 하고 그 속에서 대중적인 의사결정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앞서 언급했던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상호불신과 분열이라는 현실에서 공투본은 전국민중연대(준)이 현재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민족/민중민주운동의 단결을 위한 유력한 공간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것이 공투본/민중경선을 제안한 두 번째 이유이다. 공투본이 2003년 새롭게 집권한 반동적 권력에 맞서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 전선을 구축하는데, 유력한 발판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물론, 많은 동지들이 지적하듯이 공투본이 건설된다고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노총이 공투본을 실질적인 투쟁기구로 사고하리라고 판단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공투본/민중경선에 동의했던 노동해방 실천단의 경우, 적극적으로 11월, 12월 투쟁을 조직하는데 기여하려했다. 공투본은 하반기 예정된 노동자, 농민 투쟁의 폭발 가능성은 열려져 있는 것이기에 이러한 투쟁의 성과를 어디로 수렴시킬 것인가, 그를 통해 2003년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전선의 상징적 구심을 어디로부터 출발시킬 것인가하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도 민중경선이 중요한 이유는 민중경선이 없는 공투본은 사실상 전국민중연대(준)의 노동특위를 중심으로 하반기 투쟁계획이 잡혀있는 조건에서 충분한 명분을 확보하기 힘든 현실적 조건 때문이었다.
그리고 현재 민족/민중민주운동 내에 형성되어 있는 민주노동당 지지/반대, 민주노동당(사민주의)/사회당(사회주의)이라는 지극히 왜곡된 논점을 바로잡을 필요성이 존재했다. 이것이 공투본/민중경선을 제안한 세 번째 이유이다. 다수 노동자들의 열악한 임금수준, 고용불안, 노동3권마저도 박탈당한 현실, 한칠레자유무역협정이나 WTO 쌀개방 계획에서 보이듯이 농업포기로 내몰리는 농민들의 현실에서, 대다수는 정치적 불신으로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정규직 혹은 상층 노동자들, 그리고 일부 농민들의 경우는 자신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에 투표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대다수 노동자들은 당장 삶의 고통으로 인해 민주노동당에 조차 관심이 없는데, 여기에다 사민주의는 개량이고 사회주의 대통령 내야한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가. 이러한 현실에서 공투본/민중경선은 자신의 후보를 선출하고, 자신의 요구를 가지고 공동투쟁하는 과정을 통해 정치적 불신을 깨고, 보수 정치로 흡수되는 것을 막는데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또한 민중경선의 과정이 대중에게 민주노동당을 찍을 건지 말건지, 민주노동당/사회당 어느 당을 찍어야할지 왜곡된 선택을 강요하는 운동지형을 바꾸는데,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민중경선의 과정이 대중을 (합법)대중정당에 대한 수동적인 지지자/유권자로만 사고하는 현실 운동경향에 맞서 노동자, 민중을 정치의 주체로 세워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것이라 판단했다. 또한 이러한 대중에게 열린 공간을 통해, 현실 민생파탄의 원인과 지배세력의 무능에 대해서 비판하고, 노동자, 민중의 세상을 열기 위한 각 정치세력들의 입장이 논쟁되는 공간을 열고자 했다. 민주노총의 정치방침 문제도, 민주노동당의 개량적인 입장도 이러한 민중경선의 과정에서 대중적으로 비판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제안 취지에도 불구하고, 9월 17일 제안되고 10월 21일 발족할 계획이었던 공투본은 사실 "공동투쟁-민중경선"이라는 원칙을 제외하고 나면 빈 껍데기와 같은 조직인 것이 사실이다. 2001년 상설공투체로 발족한 전국민중연대(준) 내에서 본조직 건설조차 합의하지 못하는 것이 객관적인 민족/민중민주운동의 현실이 아니던가?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하반기 투쟁의 대강은 전국민중연대(준) 노동특위를 중심으로 민주노총, 전농, 전빈련에 의해 예정되어 있었다. 공투본은 몇몇 단체가 모여, 존재하지 않는 투쟁을 일구는 것이 아닌 바에야 현재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조건상 정치적 구심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전국민중연대(준)과의 유기적 관계를 통해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전선의 상징적 구심으로 자리잡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물론, 이를 위해 민중경선은 비껴갈 수 없는 핵심적 요소였다고 할 수 있다.
3/ "후보의 등록형식"이라는 쟁점은 공투본의 제안취지를 왜곡하는 쟁점이다.
이러한 공투본-민중경선의 의의에도 불구하고, 6차 예비모임에서 노동자의 힘이 '후보의 법적 등록형식'을 공투본 건설의 전제조건으로 거듭 주장하면서 공투본은 사실상 무산되었다. 우리가 극복하려고 했던 왜곡된 운동구도를 더욱 악화된 형태로 고착화-재생산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물론, 5차 모임에 이르기까지 공투본 예비모임에 참가했던 민주노동당, 민주노총을 비롯한 나머지 단체들이 실질적으로 공투본 성사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에 대해서는 모두가 원칙적인 동의와 참가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점을 알고 있다. 심지어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초기 사회당과의 후보단일화에 모든 관심이 있었고, 사회당의 불참 이후에도 실질적인 공동투쟁과 민중경선을 추진하는 것보다 득표전략에 손해될 것 없다는 입장으로 일관했다는 점 또한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사회진보연대와 노동자의 힘이 노동해방 실천단의 논의를 거쳐 제출한 공동투쟁계획은 형식적인 검토만 이루어졌을 뿐이며, 구체적인 민중경선의 방안은 공투본 예비모임 기획소위에서 논의조차 진행하지 않은 것이 객관적 현실이다. 따라서, 아무런 계획도 없이, 혹은 당세의 확장을 위해서 전농의 참여만을 기다리는 7차 예비모임 참가단체들 또한 공투본 무산에 대한 책임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민주노총에서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 지지'라는 기존의 정치방침이 대선공투본 경선 시 조합원들의 자유투표와 선거운동의 자유를 제약해서는 안되며, 대선공투본 후보로 민중진영의 정치적 단결이 이루어질 경우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 지지'라는 기존의 방침을 대선공투본(후보)에 대한 지지로 해석한다"는 입장을 제시했고, 민주노동당 또한 기존의 경선을 통해 선출된 후보가 결정한다는 패권적인 입장을 철회하고, "대선공투본 후보로 추대하며, 후보의 법적 등록 방식은 등록과 관련한 공투본 내 대중적 논의와 후보선출 후 공투본 내 민주적 의사수렴 과정을 거쳐 결정한다"는 사회진보연대의 입장에 동의를 표명한 상황에서 노동자의 힘의 태도는 대중적으로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고 판단한다. 더구나 노동자의 힘의 이러한 행보는 공투본-민중경선에 동의하는 민중민주운동이 함께 건설했던 노동해방 대선실천단 활동의 전제였던, 중요한 정치방침의 경우 각 조직의 결정에 우선하여 노동해방 실천단 총회{{) 이에 대한 평가는 10월 26일 개최된 노동해방 대선실천단 총회에 제출된 노동해방 대선실천단 이현대, 임필수, 이상훈, 박준도 4인 명의로 제출된 "공투본 무산에 대한 평가(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평가(안)에서는 평가서와 함께 '1)후보의 법적 등록형식 문제는 공투본 결성의 전제조건일 수 없었다 2)공투본 후보 및 민중경선 문제 등 변화된 조건에 따른 주요정치방침은 노동해방 대선실천단 총회에서 결정될 사안이었음을 확인하고, 6차 공투본 예비모임 과정에서 노동자의힘에 의해 이 총회의 권한이 침해되었음을 확인한다'를 평가안으로 채택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2)에 대해서는 총회 참석자들이 대체로 공감을 표시하였으나, 1)과 관련하여 이견이 존재했고, 표결처리 요구를 하였으나 표결처리 자체를 반대하는 의견이 있어 표결을 진행하지 못했다. 노동해방 대선실천단은 총회를 통해 정치적 책임을 통감하고 해산을 결정했다. 정확히는 사회자가 노동해방 실천단 해산에 대해 반대의사를 물었으나, 반대한 사람이 없었다.
}}에서 결정한다는 대중적 약속을 사실상 파기한 것이다.
그렇다면, "후보의 법적 등록형식"이 중심적인 쟁점이 된 것은 왜 문제인가? 무엇보다도, 그것이 일순간 모든 쟁점을 민주노동당 지지/반대, 민주노총 정치방침안 지지/반대라는 틀로 폭력적으로 정리시키면서, 대선방침의 본래 취지였던 기존의 민족/민중민주운동의 분열과 배타적 대립을 극복하고, '반제·반신자유주의'라는 정치적 과제를 중심으로 한 운동지형의 재구축의 발판을 삼고자 했던 공투본의 제안 의도 자체를 왜곡했다는 데 있다. 애초 공투본을 제기한 전제가 이러한 구도를 넘어서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러한 구도가 존재하기 때문에 공투본을 출범할 수 없다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노동자의 힘 중앙집행위(2002/10/30) 명의로 제출된 '공투본 제안 철회와 노동해방 대선실천단 해산에 대한 노동자의 힘의 입장'을 보면, 실제로 노동자의 힘이 공투본을 제안한 취지 자체를 무색하게 하고, 노동해방 대선실천단의 공투본 제안 취지를 왜곡하고 있다. 장문의 글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힘 주장의 요지는, '민주노동당의 선거주의와 민주노총 정치방침 밀월관계가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왜곡하고, 현장 노동자들을 선거주의 틀안에 가두고 있다. 따라서, 노동해방 실천단을 통해서 현장을 조직하고, 공투본의 상층협상을 통해 압박해서 민주노총 정치방침을 바꾸고, 민주노총-민주노동당의 밀월관계를 해체하려 했다. 그러나, 사회당의 불참으로 큰 장애가 발생했고, 노동해방 실천단을 통한 현장조직화도 여의치 않아 실패했다. 따라서 노동자의 힘이 애초 주요하게 판단했던 민주노동당의 탈계급적이고 계급연합적인 성격과 선거주의를 문제삼으며 퇴각하기로 하였다. 공투본을 제안하고 책임지지 못한 것은 노동자의 힘의 책임임을 통감하나, 결국 계급운동진영(좌파)의 실력이 부족한 탓이다'로 압축할 수 있겠다. 이 입장을 보면서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상층협상과 압박을 통해 이미 운동 내부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노동운동의 자기방어적 실리주의, 이를 기반으로하는 민주노동당의 선거주의를 바꿀 수 있다는 노동자의 힘의 발상이고, 이것이 공투본 제안의 핵심적인 요소임을 스스로 털어놓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의 힘이 입장을 통해 밝히고 있듯이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밀월관계는 선거주의를 넘어서는 노동대중의 계급적 단결과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전선의 강화 속에서만 극복될 수 있다. 불과 1개월여의 공투본 건설과정에서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는 것인데, 참으로 억지가 아닐 수 없다. 또 하나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민주노총의 정치방침과 관련한 노동자의 힘의 태도이다. 판단컨데,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이 문제가 되는 것은 현재 노동운동의 현실, 즉 노동계급 내부의 불균등화와 노동운동의 자기방어적 실리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실질적인 정치방침을 제출하지 못하고, 그것을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로 대체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 지지방침을 정치적 자유를 제약하는 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목표로 하는 노동자의 힘을 민주노동당/사회당에 대당하는 정당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잔존하기 때문이라 판단한다. 관건적인 것은 민주노총 정치방침이 아니라 노조운동-정당운동을 개입/개조할 수 있는 주체를 형성하는 운동계획의 문제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노동자의 힘은 공투본을 퇴각한 핵심적인 이유로 대부분이 노동조합 혹은 지역본부의 활동가인 조직원들이 실질적으로 공투본/노동해방 대선실천단 계획을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조직화하지 않음으로 인해, 현장이 조직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노동자의 힘이 애초에 공투본을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전선의 구축을 위한 발판이자 자기혁신의 계기로 사고하였다면, 공투본 제안의 취지자체가 우리의 힘이 미약했기에 제안된 것이고, 공투본-민중경선을 통해서 우리의 힘을 키우자는 문제의식이었던 점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더라면, 힘이 없어서 공투본을 깨야 했다는 식의 평가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초기부터 노동자의 힘 내부에 존재했던 '대중투쟁돌파론'을 내세운 현장과 지역의 동지들이 실질적인 투쟁계획도 없이, 대중들의 정치적 무관심에 편승할 뿐임을 직시하고 있었다면, 더디더라도 일부지역에서 지역별 공동투쟁 나아가 공동의 선거투쟁, 노동해방 실천단 구성의 의지들이 형성되고 있음을 주목했더라면 그러한 식의 결정은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나, "따라서 현장 세력이 이번 노동해방 대선실천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우리를 '비관'적으로 만들 이유가 없다. 오히려 그것은 훨씬 더 미래를 '낙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 왜냐 하면 이것은 현재 민주노동당-민주노총의 밀월관계가 노동자계급의 선진적 부대에 의해 얼마나 강하게 '계급적'으로 부정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라는 노동자의힘의 평가는 노동해방 실천단 건설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당황스럽게 한다. 노동해방 대선실천단은 현장의 정치적 무관심을 극복하고, 구래의 '대중투쟁돌파론'이라는 대중의 탈정치를 넘어서서, 공투본-민중경선이라는 계기를 통해 노동자, 민중을 실질적인 정치적 주체로 세우고,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전선 구축의 계기를 확보하기 위해 건설된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목표를 가지고 건설된 노동해방 실천단에 현장세력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것을 비관할 이유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견해로 판단컨데, 애초에 노동해방 대선실천단이건 공투본이건 제대로 할 생각이 있었는지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다.
4. 2003년 '반제·반신자유주의' 전선구축은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공투본-민중경선은 사실상 무산되었으나, 공투본의 제안을 통해 밝혔던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전선의 구축이라는 과제는 여전히 우리 앞에 남아있다. 공투본 무산의 책임을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비판으로 제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진보연대 또한 6차 예비모임에서 보인 정치적 태도에 대해 냉철하게 비판받아야 한다. 이에 책임지는 우리의 모습은 노동해방 대선실천단의 해소였다. 우리가 노동해방 대선실천단의 해소를 주장했던 핵심적인 이유는, 이미 '후보의 등록형식'이 쟁점이 되어 공투본이 무산된 상황에서, 공투본을 통해 넘어서고자 했던 민주노동당 반대, 민주노총 정치방침 반대라는 정체성으로 노동해방 실천단이 상징화되는 것이 공투본-민중경선-노동해방 실천단을 통해서 실현하고자 했던 바를 왜곡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투본-민중경선-노동해방 실천단의 취지는 민주노동당 반대, 민주노총 정치방침 변경으로 축소될 성질의 것이 아니기에, 민족/민중민주운동의 반목과 불신을 넘어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 전선을 구축하고자 했던 애초의 취지를 다시금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다. 노동해방 실천단의 이름으로 (노동)대중들을 헌신적으로 조직하고 있는 지역, 학생 동지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하고, 많은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가 노동해방 실천단 총회에서 실천단의 해산을 제안할 수 밖에 없었던 진실은 여기에 있다.
공투본의 무산으로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상호간의 불신과 분열을 넘어서고자 했던 유력한 계기가 무산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하반기 전국민중연대(준)의 민중연대특위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30만 농민항쟁과 노동자들의 투쟁을 함께 진행하면서, 2003년 반동권력의 집권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 현재 전국민중연대(준)의 내적 한계를 넘어 민족/민중민주운동이 이번 경험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통해 자기혁신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 위기와 지배계급의 무능에 의해 고통받는 노동자, 민중들의 해방된 세상을 여는 것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의 기본적 기능은 노동대중(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치분파)의 계급적 통일을 저지하는 기능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한다면, 현존하는 국가 및 역사적 형태에 대한 투쟁을 통해서만, 계급적 통일을 가로막는 장애들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실천을 통해서만 노동대중(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치분파)의 계급적 통일을 이루고, 계급동맹을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10년여의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지속적인 분화와 쇠퇴의 과정은 변화된 현실조건을 정확히 분석하지 못하는 무능의 과정이었고, 대중적 운동과 논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구래의 운동관계로부터 배타적인 자신의 정체성(좌파, 사회주의...)을 선언하는 왜곡된 운동지형을 낳고 있다.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와 지배계급의 무능이라는 조건에서 지배세력의 포섭/분할 전략에 맞서 노동대중의 계급적 단결을 이루고,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 전선을 구축하여 민족/민중민주운동이 새롭게 정치적 보편성을 획득할 것인가 아니면, 각 정치세력의 자폐적인 폐쇄회로 속에서 갇혀 민족/민중민주운동 공도동망(共倒同亡)의 길을 갈 것인가에 대해 우리는 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 정세적 과제를 보지 못한 채 운동진영 내의 세력관계가 절대시 되고, 배타적인 운동관계를 형성할 때, 미소짓는 것은 지배계급이고 노동자, 민중의 계급적 단결은 그만큼 지체될 것이다. '반제·반신자유주의'라는 현실의 공동 투쟁과제를 중심으로 단결하고, 현실인식과 운동노선을 둘러싼 대중적인 논쟁을 새롭게 형성하는 것만이 민족/민중민주운동에게 미래를 보증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존재하는 상설공투체로서 전국민중연대(준)에 대한 정치적 판단을 명확히 내려야 한다.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전선 구축의 조직적 거점으로 전국민중연대(준)가 기능할 수 있는지, 혹은 그러하기 위해서 어떠한 조건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모든 정치세력이 진지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전국민중연대(준)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동지들 또한 공히 적용되는 것이다. 참가해서 함께하면 되지 않느냐는 식의 태도가 아니라 실제로 함께 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기존에 적극적으로 결합하지 않던 세력들 또한 전국민중연대(준)을 통해 공동의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제기할 필요가 있고, 전국민중연대(준)이 공동의 투쟁 거점으로 기능할 수 없다면, 그 근거와 책임있는 제안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번 대선에 대한 평가는 진보정당의 득표율에 대한 평가로 한계지어질 수 없다. 짧게는 공투본의 무산에 대한 공동의 책임있는 평가가 필요하고, 길게는 지난 10년여의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가 있어야 될 것이다. 새로운 출발은 언제나 과거의 연장이 아니라 역사적 단절의 과정이 필요하다. 공투본의 무산이라는 2002년의 경험이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자기비판과 혁신, 그리고 단결과 연대의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는다. 2003년 반동권력에 맞선 노동자, 민중의 투쟁에 대한 책임있는 평가의 시기로 2002년 하반기가 위치 지어져야 한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