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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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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대선, 후보단일화에 즈음한 지배세력의 대응

박준도 | 편집실장
지난 11월 25일, 노무현과 정몽준은 후보 단일화를 이루었다. 이로써 한국의 지배세력은 IMF 이후 자신의 재생산 방식이 얼마나 피폐해지고, 초라해졌는지 유감 없이 드러냈다. 그들은 처참하게 붕괴된 정치정당과 함께-혹은 그것의 우산을 벗어 던지면서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짓(자신들이 생각해도 부끄럽기 짝이 없는) 말고는 더 이상 대통령 선거 때 할 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재생산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를 상실하고도, 10년이 넘도록 이를 대신할 어떤 정치 이데올로기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자신들이 (서로에게) 힐난해 마지 않던 일을 스스로 일삼기 시작했다. 물과 기름 같은 두 후보가 1987년에도 불가능했던 후보단일화를 성사하는가 하면, 비난을 일삼던 반대편 정당으로 자신의 몸을 의탁하기도 했다, 의원 '빼가기'라며 어떤 정계개편도 거부하던 정당이 의원 '영입'으로 몸집을 키우는가 하면, 정통보수의 왕정복고를 이루려는 세력들이 자신들의 선봉장으로 (이미 화석이 되어 버리긴 했지만) 재야인사, 노동운동가를 내세운다. 보기 드문 정치 희극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그토록 소중하게 지켜왔던 반공·발전주의와 민주주의를 한바탕 웃음거리로 만들어 놓고도 그들은 자신이 조장한 것이나 다름없는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을 엄한 얼굴로 꾸짖으며, 대선 참여를 독려한다.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이 저항이데올로기 뿐만 아니라, 결국 자신의 존립기반마저 위협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의 정치적 권리로서 선거권은 자유주의자들이 가장 중시하는 권리다. 이를 통해 그들은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구성하기도 하고, 부당한 권력의 역사적 정통성을 문제삼기도 한다. 그래서, 선거는 (드물게나마) 특정한 지배분파의 숨통마저 위협하기도 하고, (대개) 자신의 정치권력을 안정적으로 재생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선거를 통해 지배세력은 자신의 권력을 스스로에게 양도하는데, 이때, 주의깊게 살펴야 할 것은 선거가 단순히 권력이양으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지배세력이 감당하기 곤란한 문제가 권력의 분기점이 되는 선거에서 공식화되기도 하고, 이렇게 형성된 대중적인 의제가 해당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거는 일정하게나마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공간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정세적 고양기에는 이것이 대중적 심판의 형태를 띠게 될 수도 있지만, 잠시 민주주의의 급진화 문제를 논외로 한다면, 이같은 정치적 해결은 대개 제한적이고 의사(擬似)적인 모양을 띤다. 더구나 지배세력이 이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선거에서 보이는 대다수 사람들의 정치적 행동을 지배이데올로기에 따른 조작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면, 이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차기 정권은 자신의 권력행사에 필요한 정치적 정당성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눈앞에 닥친 대통령 선거에서 무엇이 주요한 쟁점이 되고 있는지-무엇이 의제로 제출되고 있는지, 이를 자세히 살펴 봐야 한다. 이번처럼 쟁점이 없는 선거(혹은 쟁점이 가려진 선거)에서는 더더구나 말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안정적인 추진

지난 2002년 1/2월호에서 우리는 올 한해 정세전망을 제출하면서(사회진보연대 정세분석팀, "2002년 정세, 그리고 전선재편 : 문제의 개요", [사회진보연대 22호], 2002.1/2), "정권교체, 김대중 정부의 출범"이 재벌의 게으름으로 지체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성공가능성을 높이는 결정적 계기"였음을 지적하면서, "김대중은 이른바 反패권 지역주의와 보수-개혁 정치연합을 통해 새로운 지지연합 : 신자유주의 지지연합"을 통해 정권을 창출하고, 이에 기반해 "IMF 구제금융협약 및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집행하는데 크게 성공"했다고 분석한 바 있다. '대마불사'라던 재벌을 포함해서 어떤 기업도 구조조정에서 예외일 수 없었던 상황에서, 1997년 대통령 선거의 핵심 쟁점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위한 정치적 조건이 어떻게 마련되어야 하는지 에 관한 것이었다. 'IMF 국란 극복, 책임자 처벌'에서 볼 수 있듯, 김영삼 정권에 대한 극도의 불만 속에서 어느 누구도 IMF 구조조정의 파괴적 효과를 충분히 살피지 못하였고, 결국 1997년 대선은 대통령 선거-정권 교체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끝났다. 그로부터 5년 간 우리는 이것의 후과로 구조조정의 뼈저린 고통을 충분히 맛보았다.

2001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미흡"하다는 지적에 따라 구조조정은 새로운 국면에 다다르게 되는데, 즉 "상시적 구조조정을 이룰 수 있도록 구조조정의 제도적 완성으로 모아"진 것이다(홍석만, "2001년 정세를 조망한다", [사회진보연대 12호], 2001.1/2). 상시적 구조조정은 애초에 이회창이 김대중의 구조조정 정책을 비판할 때 강조했던 것으로, 결과만 놓고 보면 DJ 행정부가 이를 수렴한 셈이 된다. 2000년 총선 당시 민주당의 '전국정당화 실패'에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듯, 정권교체라는 강력한 정치적 충격이 주도하는 구조조정은 이미 시효를 만료했다. 하지만 당시까지 '정권교체'라는 정치적 계기로 단행된 IMF 구조조정이 충분히 효과를 보았다는 것 역시 진실이다. 따라서, 구조조정의 안정화 단계로서 '시장의 힘'에 따른 구조조정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며, 이같은 제도적 보장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정치적 조건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경제 정책 결정에 결정적인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OECD도 IMF 극복의 성공사례라 치켜세우며 기업부문 구조개혁에 박차를 가할 것을 권고하고 있는데, "첫째, 구조조정투자회사를 활용하는 등 기업개선 제도를 활성화하고, 사전조정제도를 활용하여 기업퇴출 절차를 강화하고, 둘째, 산업은행의 신속인수제도와 CBO제도를 점차 폐지하여 기업구조조정이 시장의 힘에 이루어지는 여건을 마련하도록 권고하며, 셋째, 사외이사의 역할을 보다 강화하고 집중투표제의 활용을 권장하도록 함과 함께 집단소송제의 도입이나 기존 소송제의 개선을 통해 기업의 불법적 경영관행으로 인한 주주의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이경태, "OECD와 한국의 구조개혁",[OECD FOCUS 4호], 2002.11)
한편, IMF를 경과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된 노동분야 구조조정은 정책기조 상으로 볼 때 큰 변화 없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하고 사회안전망에 효율성 개념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인데, 앞서의 것은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의 입법으로 드러났고, 다른 것은 사회안전망을 뒤늦게나마 도입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효율성 개념이 강화된 형태로-즉, 생산적 복지. 여기서 특기할 것은 1997년 새로운 타협체계의 구축으로서 노사정위원회가 OECD에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정규근로자 중심의 과도한 고용보호를 완화하고 비정규근로자의 보호는 강화하여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완화할 것이며, 공공직업안전망의 전국적 단일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사회복지전달체계와 연계를 강화하며, 사회통합 유지를 위한 노동권 신장에 노력할 것"들을 권고하고 있는데 이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는 노동운동이 상대적으로 세력화되어 있는 데다 과거처럼 완전고용으로 노동자들의 불만을 무마할 수 없는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한데, 어찌되었든 이로써 노동정책을 가지고 상대적인 '진보'를 구별하려는 시도는 상당히 무의미해졌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김대중 정권의 강력한 노동정책을 상기해 보라! 물론, 이념적 성향으로 보았을 때, 여성과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서는 다소 완곡한 입장을 취하는 등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이 점에서 한나라당으로 대변되는 지배분파라고 크게 다를 바는 없다. 어차피 핵심은 이것이 아니다.

북미관계에 종속된 대북정책

최근 북의 핵 개발 의혹이 제기된 이후 급격하게 북미관계가 냉각되면서 어떤 식으로든 햇볕정책을 평가 및 수정(유지)해야하는 상황에 다다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페리보고서' 때 처럼 외교관계협의회의 코리아태스크포스팀과 같은 역할을 맡은 정책팀이 구성되어, 이 정책팀이 남한에서 대통령 선거결과를 고려하여 2003년 2월에 한반도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할 것이라 한다.
대북정책에 있어 지배분파들 사이의 갈등은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을 확인하고, 최소한이나마 정치적 재생산을 보증하는 유효한 매개고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근본적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는데 남한 정부가 추진하는 대북 정책은 최소한 다음 두 가지 전제 위에서 수립되기 때문이다. 첫째 "한국과 미국의 확고한 정치적 공조체제와 군사적 동맹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둘째 그 결과로서 "한반도 통합(정세적 효과)이 결국 미국의 국익과 남한의 재벌 그리고 초국적 자본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해야 한다는 것. 따라서 한-미-일 삼각동맹이 견고히 유지되는 상황에서 대북 정책은 근본적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햇볕정책도 마찬가지다.(임필수, "김대중 정권 2년, 남북관계의 진전은 이루어지고 있는가?", [사회진보연대/접속 2호], 1999.8)
주지하는 대로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단순한 '봉쇄'정책을 넘어선 것은 1990년대의 일이다. 냉전이 붕괴된 이후 미국은 "자신의 세계전략에 도전하는 위협요인"이 중국 같은 전략 지역에서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부차적인 지역에서 발생"하는 비대칭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위협이 "미국의 세계적/지역적 지도력의 신뢰성과 자신의 세계헤게모니를 정당화하는 미국의 보편적 가치(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이를 간과할 수 없었다. 더구나 이들의 위협수단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대량파괴무기(핵-생화학-미사일) 개발로 집중"되었기 때문에 문제는 훨씬 심각했다.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파괴무기 개발을 막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가 된 것이다.(임필수, "2000년대 미국의 대외정책과 한반도", [사회진보연대 6], 2000.6)
하지만, 페리보고서의 '고려되었으나 거부된 정책대안'에서 확인할 수 있듯, 미국은 북한에 대해 '봉쇄'정책을 강화하거나 단순히 현상을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미국의 국익에 위험을 초래할 뿐이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북에 대한 포괄적 접근(engagement)을 통해, '협상'과 '군사력의 증강'이라는 두개의 경로를 동시에 추진하게 되는데 이의 축소판-혹은 부분적 역할이 바로 햇볕정책인 것이다. 이때 '협상'의 주요 내용이 북한의 경제 재건을 위한 최우선적인 조건인 한반도에서 북한의 정치적 안정 보장 즉, "남북한 교차승인"이며, 그 수위를 조절하는 문제가 핵심이 된다. 요컨대, 미국에게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막는 것과, 이를 전후하여 교차승인구도를 얼마나 안정화할 것인지가 구체적인 정책실현의 고려대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2001년 9·11 테러를 전후하여 미국으로서는 대외전략의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는데, 비대칭적인 상황이 가져다주는 위협의 체감도가 급격히 높아졌기 때문이다. 공격행위가 분쟁지역이 아니라 미국 본토에서 벌어지면서 전쟁은 이제 가상이 아니라 실제상황이 되었고, 이를 미국민들이 눈으로 똑똑히 너무도 충격적으로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곧바로 미국은 이를 '대테러전쟁'으로 공식화하였고, "비대칭적 위협이 가지는 불확실성을 격퇴하기 위해 압도적인 군사적 힘을 기반으로 강력하게 통제하겠다는 뜻"을 밝힌다. 이에 따라 '악의 축' 발언 등에서 드러나듯 한반도에서 미국의 신경질적인 반응이 눈에 두드러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제네바 합의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제거했다고 믿기에는 합의내용이 매우 제한적인 것 또한 사실임을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 무척 위협적으로 비쳐지는 농축 우라늄 문제, 미사일 발사 실험, 재래식 무기 등등은 제네바 합의 대상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자신도 준수하지 않았듯) 제네바 합의 자체가 강한 구속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어떤 형태로든 지금 상황을 개선해야 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여기서 한국의 지배분파들이 구사할 수 있는 정책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할 텐데, 그렇기 때문에 한국 지배세력의 논쟁이 남북 경제 교류에서 "상호주의"의 관철 정도에 머물게 된다.
}}

지배세력의 정치적 목표

이렇게 해서 우리는 간단하게나마 지금 한국사회가 어디로 가려하는지, 그리고 이에 발맞추어 지배세력들이 향후 정국을 어떻게 운영하려 하는지,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쟁점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요약하면, 한국의 지배세력은 2002년 대선을 거치면서 구조조정의 다른 국면으로서 상시적 구조조정 체제의 안정화를 꾀해야 하고, 미국이 동북아 정세를 결정짓는 몇 가지 요인들을 재조정하는데 방해가 되지 말아야 하는 바, 이에 발맞추어 모든 지배분파들은 열과 성의를 다해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이것이 노동배제적이며, 성적·지역적 갈등을 배가하는, 미국의 패권을 제고하는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겠다.
이렇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우리는 한국의 지배분파들이 서로 후보를 달리 해서 나오고도 한국사회의 구조조정의 전망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이견을 확인할 수 없는 - 즉, 정치적 쟁점이 없는 선거를 보고 있는 것이다. 다소 당혹스럽겠지만, 한나라당이 '법을 엄격히 세우겠다'는 말만 빼고는 노사정 위원회를 위시하여 '주 5일제 실시' 등 민주당의 주요한 노동정책 및 복지정책이 거의 같은 데는, 마찬가지로 '상호주의의 관철', '탈북자 문제 적극 해결'이라는 말만 빼고는 대북 접촉 등 민주당의 주요 대북 정책과 거의 같은 데는 다 사정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1987년 이후 한국의 구조개혁을 선도해온 집단으로서 군부세력을 대신하는 정치세력의 형성이 상당히 오랜 기간 지체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 시점에서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집단은 이회창으로 상징하는 보수적인 관료·테크노라트(전문가)들이다. 어느덧 한국 정치사의 혐오 대상으로 분류되어 버린 군부세력에 대해 이들은 일정한 거리를 갖는 것으로 표상되는 데다, 자유주의적인 개혁(즉, 김대중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불러 온 실망의 반사적인 표현으로, 과거로 회귀하고 싶은 대중들의 실리적 지향(완전고용)과도 맥을 같이 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덜한 보수주의 정치세력이다. 더구나 오랜 기간 정국을 운영해온 경험을 통해 당면한 구조조정의 목표와 대외정책 조율에 있어서 별다른 무리수를 두지 않는 것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안전성에 있어 대외적인 신임마저 상당한 편이다.
반면, 개혁세력이라 불리는 이들의 경우 지난 2000년 총선에서 확인할 수 있듯, 집권세력의 파트너를 넘어 직접적인 정치세력으로 나서기를 주저하고 있으며, 반정립으로서 세대갈등을 내세우는 것 말고는 잘하는 것이 별로 없는 매우 무기력한 집단이다. 사실 이는 이들의 정치적 기반이 매우 취약한데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그들 자신의 고백대로 군부독재시절 너무 오랜 기간 핍박을 받은 데다, 대중 - 특히, 노동자들을 전취할 수 있는 한국사회의 물질적 토대가 너무도 빈약하기 때문에 이들에겐 운신의 폭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대중을 전취하기 위해서는 사회 총체적인 개혁방향을 그리며, 한국사회의 자유주의적인 미래를 그려야 하는데, 반주변부 국가의 특성상 이 역시 여의치 않았다. 오랜 구력으로 이런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던 동교동계 인사들이 이들을 얼마간 농락할 수 있었던 근저에는 이같은 무능이 있었다. 그리하여, 이들 개혁세력은 역사적인 정권교체와 함께 한국 정치사의 본무대에 등장하였으나 IMF 구조조정이 일단락 되던 2000년을 마지막으로 온갖 부정비리와 함께 퇴장해야 하는 참담한 신세가 되고 말았고, 급기야는 개혁세력의 종가라 불릴 민주당의 처참한 붕괴 위에서 대선을 맞이한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부지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럽게 여겨야 할 만큼 처참한 몰골로 말이다.

후보단일화, 잊지 못하는 연민의 정?
: 개혁세력의 후보단일화 비판

그렇다고 이들의 명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미국사회에 대한 선망이 깊었던 만큼 이들은 정책정당이 무엇인지 훨씬 잘 알고 있었고, (국민경선제에서 확인할 수 있듯) 무엇보다도 이벤트를 조직하는 데 능숙했으며, 정치의 미디어화에는 탁월했다. 이들의 정치기술이 보수적인 테크노라트들에 비하면 좀더 세련된(미국적인) 것이 사실인데, "1980년대 말 3저 호황 때와 같은 물질적 뒷받침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며, 부르주아 내부에서 어느 누구도 이니셔티브를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 …… 부르주아의 정치적 우위는 대중을 동원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정치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사회진보연대 정세분석팀, 같은 글)에서 이들은 자신의 솜씨를 매우 능숙하게 발휘했다. '후보단일화'. 그들은 이것으로 구차한 목숨을 연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사후적 효과까지 단단히 보고 있는 것이다.
1987년 6월 '대중의 반역'의 정치적 성과를 대통령 선거까지 지연시키고는 이마저도 선거 패배로 유실되자 자유주의자들은 모든 책임을 후보단일화 실패로 돌렸다. 논쟁이 격렬했던 선거였던 만큼 이렇게 유실된 대중의 정치는 후보단일화에 대한 미련과 자유주의적 개혁에 대한 연민으로 남았는데. 이는 대통령 선거 때마다 '비판적 지지'의 망령이 되어 되살아나고는 했다. 이것이 정권교체 이후에 아예 있는 그대로 바로, 못 다 이룬 꿈 '후보단일화'로 되살아난 것이다. 이것의 효과는 놀라웠다. '후보단일화'는 그 자체로 자유주의적 개혁에 대한 대중의 연민을 떠올리게 한데다, 당시의 대립구도를 오늘에 똑같이 재현하였다. 그리하여 모든 민주-개혁세력의 결집을 부르며, 반창 결집으로 이회창을 국민들이 그렇게 혐오해 마지않았던 군부세력의 잔당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물론 노무현 자신은 민주주의와 개혁의 화신이 되어서 말이다. 말 그대로 못 다 이룬 꿈 '후보단일화'가 월드컵의 화신 정몽준을 통해 꿈을 이룬 것이다. 뿐만 아니라 '후보단일화'를 이룸으로써 노무현은 '후보단일화'를 이루지 못했던 DJ(YS)보다 더한 정치적·도덕적인 우월감을 단숨에 획득했다. DJ의 후계자라는 부담스러운 지위마저 한번에 털어 버린 것이다. 정말로(?) 노무현(!)은 달랐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대선 초장부터 뜻밖에 형성된 전선을 무마하려고 황망히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는데, 다 죽은 김대중이 산 이회창을 잡도록 놔둘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보수/개혁 구도가 자신들에게 하등 유리할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이회창을 수구냉전세력으로 몰아넣는 것의 부당함을 강조했다. 동시에 이들은 역시 죽어버린 민주인사와 노동인사를 전면에 배치하였다. 민주당보다 앞서 SOFA 개정을 내걸기도 했다. 어느새 재등장한 '노풍'에 기선을 제압 당한 채로 대선에 뛰어든 것이다.

이렇게 노무현이 강력한 기선제압으로 대선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후보단일화 실패'로 상징되는 자유주의적 개혁의 굴곡많은 역사에 대해 대중들의 연민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DJ의 배신으로 인한 대중의 정치적 냉소주의-정치적 보수화에 잠시나마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이런 지향을 개혁세력들이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일단 앞서 지적한 것처럼 개혁세력은 이를 추진할 물질적 토대도, 미래를 제시할 총체적인 상도 없는 데다 어떤 고유한 이데올로기로 자신을 재생산하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제 정치세력들의 이합집산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불어 (이것이 가장 중요할 텐데) 1987년과 달리 오늘날 대중운동의 상황은 오랜 침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세력들이 자신의 힘도 계획도 없이, 대중운동의 뒷받침도 없이 (1987년 봉기하는 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도 힘들었던)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 몽상에 사로잡혀 있거나, 대중에게 거짓을 고하고 있는 것이다. 더더구나 오늘 한국의 지배세력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뻔히 잘 알고 있는 개혁세력들이 말이다.
따라서, 노무현을 앞세운 개혁세력의 개혁이 잠시라도 주춤거리면(노무현은 DJ보다 정치적 입지가 훨씬 취약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가 더 개연성이 높다), 이에 대한 대중의 배신감은 DJ의 그것보다 더 크고 더 깊숙이 스며들 가능성이 짙다. 이때 자유주의적 개혁에 대한 소박함은 다시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고 이것이 개혁세력에 의해 다른 방식으로 또다시 조장될 것이고 이것이 다시 한번 배신을 낳을 것이고…… 이것이 만일 현실로 드러나면 이렇게 기대와 배신이 무한히 반복되는 악순환에 빠지면서 대중의 정치는 뒷전으로 밀리고 말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중의 정치적 냉소주의가 강하게 작동할 것이며 이는 대중을 침묵의 깊은 수렁에 밀어 넣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중의 무덤 아닌가?
개혁세력을 향한 대중의 연민은 불행히도 대중의 발목을 붙잡고 말 것이다. 개혁세력의 약속은 애초에 지킬 수도 없는 약속이다. 개혁세력의 현란한 정치기술은 그저 정치기술일 뿐이다. 이들의 장기(長技)이기도 한 정치의 미디어화와 이벤트화는 이런 문제를 더욱 가속시킨다. 정치의 대상을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로 상징하여 다루기 때문이다. 당면한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회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정치는 문제를 우회하고 대중들 사이에서 미끄러지게 한다. 문제를 외면하는 정치! 문제를 봉합하는 정치! 그리하여 대중을 침묵의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는 정치! 이를 잘 활용하는 것이 바로 개혁세력의 정치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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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를 위시하여 유수의 정책전문가들은 내년도 경기전망을 상당히 어둡게 내다봤다. 선진권 경제(특히 일본)와 신자유주의 경제의 구세주라 할 수 있는 IT경기의 회복세가 여전히 미약하고,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동반될 단기적인 유가 불안, 중남미 금융불안 등 그 어느 때보다도 불안요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2003년 시작부터 요란하게 펼쳐질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패권을 한층 더 강화시킬 것이며, 새롭게 출범하게 될 정권은 '상시적인 구조조정의 안정화'와 '북미관계의 재조정'을 위해 모든 정책을 집중시킬 것이며, 벌써부터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자본가들의 요구 즉, 노동 유연화를 강화하고 노동운동을 무릎꿇게 하는 요구는 극을 달릴 것이다. 그리고 개혁세력의 기선제압이 얼마나 지속할지 알 수 없지만, 당락과 관계없이 불안정한 상황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다. 당선이 되면 되는대로,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강력한 정개 개편의 회오리가 몰아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만일 우리가 상대적으로 진보된 정치공간이 열렸다고 말할 수 있다면(사실 극히 의심스러운 것인데) 그것은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1987년 대중운동 내에 일었던 반역의 기운이, 그 효과가 오늘 이 시간에도 미미하게나마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 만일 우리가 상대적으로 조금이라도 열려진 공간에서 활동할 수 있다면, 아니 그것을 기대한다면, 그것은 대중운동의 급진화 와 함께 대중의 정치적 발언이 곳곳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열려진 공간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대중의 역능과 우리가 마주친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제각기 흩어져 존재하는 대중운동이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공동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지 않은가? 이것이 '좀 더 개혁적인(진보적인) 누군가를 투표하는 것'에 제한되지 않음은 너무도 자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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