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쟁, 불가피성과 불가능성?
들어가기 전에
최근 미국 언론에 부시행정부의 정책을 두고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평가들이 여러차례 실렸다. 분명히 부시의 정책에는 일관성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근거를 확실히 들어내놓지 못하고 이락을 압박하거나, 경기부양을 한다면서 현재의 경기진작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대규모 감세안을 내놓고, 평등을 강조하면서 어퍼머티브액션(affirmative action)에는 반대하며, 같은 악의 축안에 포함된 이락과 북한에 대한 각기 다른 대응을 보면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부시의 업무수행에 대한 지지도가 60% 아래로 내려가 9.11 이전과 거의 비슷한 상태로 머무는 것은 이같은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더불어 9.11 이후로 생겨났던 일체화된 미국이라는 동질감이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는 점도 한몫 거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글은 부시의 대내외 정책을 포괄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여타 반대되는 사실이나 경향에도 불구하고 부시행정부가 어떤 측면에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왜 달라지는가, 즉 왜 서로 모순되는 듯이 보이는가를 공화당의 핵심이데올로기 측면에서 분석하려고 하였다. 따라서 이 글의 한계는 고려해야할 다른 많은 요인들을, 필자의 한계 때문에 불가피하게 사상하고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해석이 한방향으로 치우칠 수 있다는 점이다. 필자가 여기서 제시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해석들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따라서 이 글은 하나의 해답이라기 보다는 그 해답을 구하기 위한 여러 다양한 질문들 중의 하나로 이해해주기 바란다.
역사적인, 그러나 진퇴양난의 중간선거
지난해 11월의 미국 중간선거는 현직 대통령이 속한 당이 상하원 모두에서 의석을 늘리고 과반수를 장악하는 '역사적'인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이같은 외면적인 승리와는 달리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공화당의 입지가 결코 편안하지는 않다. 첫째, 선거는 뚜렷한 쟁점이 없이 치뤄진 이번 선거에서 부시와 공화당이 내세운 전쟁 레토릭이 가장 주요한 구호였음에도 불구하고 공화, 민주 어느한쪽으로도 유권자들의 표쏠림 현상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화당의 승리는 10여개 경합지역에서 부시가 적극적으로 유세한 결과였을 뿐이며, 그것도 미국 현대사상 가장 인기가 높은 대통령이 거의 상주하다시피 선거운동을 벌인 결과라는 점에서 눈에 보이는 것만큼 커다란 수확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결국 50:50의 선거였다고 평했고 이는 선거 직후 실제적인 전쟁준비에 들어가면서 부시의 인기도가 내리막길을 걷는 것으로 증명됐다. 공화당은 이후의 정국 운영에서 유리한 고지에 들어섰지만, 동시에 공화당 강경파인 트렌트 롯트 전 상원원내총무가 인종차별 발언을 구실로 좌초하고 중도파로 꼽히는 프리스트가 다수당 원내총무가 됨으로써 공화당 내의 분열의 조짐을 보이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롯트의 실각은 부시의 비난발언이 아니었다면 이루어지기 힘든 사건이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 하다. 롯트의 인종주의적 발언은 이번이 처음(알려진 것만 해도 80년대 이후 10여차례에 이른다)도 아니었고, 또 롯트가 그같은 정치성향을 가졌다는 것 또한 신문정치면만 꼬박꼬박 읽어온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 공화당의 주요 지지층 중의 하나인 남부의 기독교 근본주의를 대표하는 롯트가 급작스레 몰락한 것은 아직 그 의미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사안이다. (다수당 상원 원내총무는 정치서열 3위의 자리이다). 또 바로 선거 당일 그동안 부시가 절대적인 지지의사를 밝혀왔던 증권거래위원회의 의장인 하비 핏트가 사임하고 연이어 재무장관과 대통령산하 경제위원회 보좌관인 린제이가 교체된 것도 부시 행정부의 후퇴로 볼 수 있다. 새로 재무장관에 임용될 스콧트나 경제보좌관인 스티븐스는 모두 그동안 부시와 담을 쌓고 지내던 월스트리트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부시가 다른 분파들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게 된 것도 중요하다. 따라서 공화당의 '역사적' 승리는 선거 뒤 3개월여 남짓만에 사실상 명목밖에는 남은 것이 없게 되었다. 따라서 미국의 정치지형은 부시와 고어가 대통령직을 놓고 다투던 교착상태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그 전선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문제는 국가다.
부시의 대내외 정책에 대한 정치적 발언은 혼란스럽지만 적어도 몇가지 정책에 있어서는 그는 명확히 일관성을 유지해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그의 감세정책이다. (실제 이것이 그의 경제정책의 전부이기도 하다). 부시의 감세정책을 단순히 친기업적이라거나 부자들을 위한 정책만으로 규정하기는 곤란하다. 앞으로 십년동안 2조 달러에 달하는 세금을 감면한다는 것은 그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느냐 문제만이 아니라 그것이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 어떤 정치적, 경제적 효과들을 낳느냐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부시 감세 정책의 정치적, 경제적 코드에 대해서는 그의 정책만을 들여다봐서는 해독하기 힘들다(거기에는 문자 그대로 정책수단과 정치적 수사만이 있을 뿐 그 배경이나 이념은 드러나지 않는다. 부시 정책을 이해하는데 어려운 점의 하나는, 이들이 정책에 대해서 비밀스럽다기 보다는 바로 이같은 독특한 방식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전체적인 국가발전전략의 밑그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채 개별정책들을 말한다. 따라서 이들 정책들이 어떤 맥락에 위치해 있는가를 외부에 있는 사람들이 알기가 어렵게 만든다). 이들 정책들이 기반으로 삼고 있는 이데올로기를 분석해서 파악하는 것이 차라리 더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워싱턴 정가에서 부시 정책노선의 가장 핵심적인 싱크탱크 가운데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 '세제 개혁을 위한 미국인 모임'(Americans for Tax Reform)의 구상이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밑그림중의 하나에 속한다.
이들의 계획은 야심차기 그지없다. 먼저 앞으로 2025년까지 정부의 규모를 절반으로 줄인다. 현재 국내총생산 가운데 정부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의 33%안팎에서 17%까지로 낮추고 전체 고용인력 가운데 정부부문 피고용자의 비중도 현재의 17%에서 8%로 낮춘다. 뿐만 아니라 국가 소유 자산도 민간에 매각,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만드는 것이 이들의 목표이다. 이를 실현하는 방법은 과감한 감세와 정부 부문의 민간이양이다. 이것이 국가의 절대규모가 줄어든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사회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을 최소화한다는 목표만은 확실하다. 이들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의 권력론을 옆으로 비틀었다. "권력은 세금에서 나온다" (세제개혁을 위한 미국인 모임의 의장 Grover Norquist). 이들의 국가 재조직화의 명제는 동시에 가장 파당적 (partisan)인 이해와도 일치한다. 세제 감면으로 가장 혜택을 보는 계층은 공화당 지지층이다. 외면적으로는 이들의 구호는 레이건 시절의 "작고 강력한 정부"론과 일치하는 듯 보이다. 그러나 이들에게서는 '강력한' 정부라는 수사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의 목표는 국가를 국제관계, 즉 안보 측면에서만 보호자로 상정하고 사회에의 개입을 최소화시키는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뜻 본다면 이는 국가의 약화를 뜻할 수도 있다. 민주당 이데올로그인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 폴 크룩만이 부시를 가르켜 심각한 어조로 '공산주의자'라고 부른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의 약화로 나타나는 복지기반의 해체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이다. 현재로서는 이 문제가 공화, 민주양당의 가장 중요한 대립점중의 하나를 이루고 있다. 비록 좌초하기는 했지만 클린턴 행정부 초기의 의료보험 정책이 유럽의 사민주의 복지국가 모델을 어느정도 수용하는데 반해서, 부시행정부의 복지정책은 철저히 국가의 개입을 배제한다는 것이다. 국가 개입의 배제가 곧 시장의 자율적 결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복지 문제에 시장이 개입되는 것은 사실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부시정권의 모델은 사회의 기관들, 즉 종교단체나 자선기관과 같은 자발적 기관들을 통한 사회복지이다. 부시의 보수주의(conservatism)앞에 온정적(compassionate)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부시에게 있어서는 이같은 사회기관의 역할이 훨씬 커진다. 단지 부시가 신앙심이 돈독해서가 아니라 그의 국가재조직화 전략속에 이같은 요인들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부시 정권은 사실 실제보다 더욱 '종교적'으로 보인다. 바우처프로그램, 부자들의 기부, 자선의 확대 등은 바로 이같은 정치 지형 속에서 강화되고 있는 이데올로기들이다. 그러나 이같은 부시정권의 노선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헌법 조항의 해석을 둘러싼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바로 이점에서 차기 연방대법원, 고등법원 판사가 어떻게 결정되는냐가 향후 10년 이상의 미국의 모습을 결정지을 중요한 정치적 장으로 떠오르게 된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을 가르고 있는 대립선의 숨은 당파적 현실이다. 부시 정권의 이같은 프로그램은 굳이 용어를 만들어내자면 자선국가 (charity state)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공화당이 꿈꾸고 있는 미국식 모델은 사실 유럽식 복지국가에 대한 최대의 위협이다. 따라서 부시의 미국과 유럽사이에 국제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의 근저에는 국제적 이해관계 뿐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 하에서 국가를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 하는 입장의 차이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현재 공화당 핵심층의 계획대로라면 민주당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민주당의 가장 중요한 조직기반의 하나인 노조의 조직률은 이미 현재도 14% 안팎에 불과한데다가 이중 9% 포인트는 공공부문에 속한 노조들이다. 따라서 정부의 상대적 규모가 축소된다면 이는 민주당의 주요 지지기반중의 하나가 약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화당은 단지 연방정부의 약화만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다. 동일한 맥락에서 이들은 주정부의 축소, 약화도 유도하고 있다. 이번 경기부양책에서 주정부의 엄청난 재정난(현재 50개 주정부 가운데 절반인 25곳이 재정적자가 불가피하고 특히 캘리포니아주의 경우에는 1년내에 technical default의 가능성까지도 존재한다. 캘리포니아주는 복권수입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할 정도로 심각하다) 에도 불구하고 연방정부의 주정부에 대한 지원책이 전혀 제시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공화당은 분권화, 즉 연방정부의 약화와 주정부의 강화-분권적 자치확대-라는 도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번 경우를 통해서 연방정부의 약화의 다음 목표는 주정부라는 것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따라서 과거나 현재의 공화당의 정책은 분권화 자체와는 관계가 없다. 분권화는 다만 연방정부의 약화를 위한 지렛대였을 뿐이다. 이 모델이 국가로부터의 개입을 줄인다는 의미에서 감세론자들이 주장하는 '자유' (freedom)을 신장한다는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 자유는 사회에서 가장 큰 권력을 쥘 수 있는 집단에게 보다 유리한 자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에게 '친기업적' (pro-business)이라는 비판이 붙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 정치적, 사회적 자유는 동시에 경제적 이해관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의 노선이 '친기업적'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의 노선은 단지 국가를 그 중간에 매개체로 삼는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부시가 사회보장연금의 사유화를 주장하면서 '정치가들이 국민의 돈을 주물러 자신의 이익을 챙긴다'고 비난한 것은 이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부시정책의 이같은 '친자유적' 성격 때문에 전통적인 자유주의자(리버럴)들이 강력한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것이 동시에 민주당의 고민이기도 하다. 민주당이 최근 전략을 바꿔 반전평화를 정치적 지렛대로 삼고 있는 것은 자신들의 이해와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전쟁의 불가피성과 불가능성
지난 1월의 부시의 경기부양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당장의 경기문제를 해결하는 어떠한 방책도 없다는 것이다. 부시조차도 '미래'를 위해서라고 부연했지만, 그렇다면 당면한 현안 경제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관심일 수밖에 없다. 공화당은 경기가 회복중이라고 계속 말해왔지만 재무장관 경질은 그같은 수사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문제는 과연 지금의 미국식 성장시스템이 계속 유지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90년대 이후 미국의 성장은 세가지 축을 중심으로 움직여왔다. 첫째, 80년대를 거쳐 구조조정을 거쳤다. 둘째, 이른바 IT신기술을 통해 생산성 향상이 이루어졌다 (이부분에 대해서는 이견도 많다). 셋째, 사실상 가장 중요한 것으로 미국의 경제발전은 해외에서의 자본유입 및 저가의 수입품으로 실질 구매력을 높여 소비와 투자를 촉진시키고(따라서 강한 달러가 필수적이었다). 넷째, 세 번째 부문에서 발생하는 무역수지 적자는 해외자본의 유입과 달러화의 국제공용화폐화에 따른 수요에 의해 메꾸어왔다. 따라서 90년대의 미국 자본주의의 구호는 '성장'이었다. 미국의 90년대는 미국 개국 이래 최대의 호황기였다. 문제는 이 싸이클이 한계에 부닥쳤다는 데 있다. 근본적으로 이 성장을 보장해줄 이윤이 뒤따르지 못했기 때문(과잉투자로 인한 경쟁으로 인해)이다. 이 문제는 현재의 소비가 (경제성장의 60여 %를 차지한다) 계속 뒷받침해준다 하더라도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계속적인 자본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 소비조차도 유지될 수 없다. 그러나 이윤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자본투자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장과 이윤, 소비가 모두 역회전 하는 순간이다. 따라서 연방은행이 2년 사이에 12번이나 공격적인 금리인하를 취한 것은 단지 주기적인 불황이 아니라 미국 경제가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른바 더블딮 논쟁은 미국경제가 이 두 번째 하락기를 거친 다음에 다시 회복할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더블딮은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공황의 국면으로 진입한다는 전제를 깔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이 불황이 과연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이다. 이 점에 대해서도 민주당쪽과 공화당쪽의 대답은 판이하게 다르다. 공화당은 2001년부터 시작된 불황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심지어 이번에 교체예정인 오닐 재무장관은 불황이 있었다는 사실 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오닐의 교체를 발표하면서 나온 백악관의 논평은 "역사상 가장 빨리 불황을 끝낸" 재무장관이라고 칭송했다. 이같은 주장은 일견 타당성이 있다. 성장률 (GDP) 측면에서만 본다면 그 평가는 그렇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식 경제체제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찮다. 민주당의 대표 이데올로그중의 하나인 폴 크룩만은 80년대 말 90년대 초의 거품경제 뒤 지난 10년간 불황을 계속 겪고 있는 일본 경제의 사례를 통해 설사 연방지불준비위원회가 금리를 0%로 낮춘다고 하더라도 이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없다는 다소 암울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지난 세기의 경험은 이같은 불황이 공황으로 발전해서 결국 2차대전을 거친 뒤 종식되었다고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 공황을 끝낸 것이 과연 뉴딜이었는지 전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견해가 엇갈린다. 결국 문제는 특정 정치 분파와 거기에 기대고 있는 자본 분파가 전쟁이 유일하지는 않더라도 가장 손쉬운 효과적인 해결책이라는 인식에 도달하는 가에 달려있다. 그러나 동시에 공화당의 입장에서 국가 기능과 규모의 강화는 가장 부적절한 것이기 때문에 부시 정권의 호전적인 언사와는 달리 전쟁, 특히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전쟁은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실 냉전 조건이라면 이같은 공화당의 국가전략을 지금처럼 대담하게 실현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일방적 헤게모니 조건하에서는 미국 특정 정치분파의 이념이 국제적 요인에 제약받지 않고 보다 순수하게 관철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특정 분파의 국내적 정치조건이 국제적 요인보다 우위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부시 정권이 과연 대규모 전쟁을 수행할 수 있을까는 그런 의미에서 국내적인 요인, 국내정세에 대한 판단에 더 좌우된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부시 독트린 '선제공격론'이 얼마나 공격적인가는 정치적 수사만을 가지고 판단하기는 힘들다. 부시 정권이 실제 치뤘던 작은 규모의 전쟁, 아프간 전쟁을 보자.
아프간전은 부시의 호전적인 언사가 사실은 군사적이기보다는 정치적이었음을 적확하게 보여준다. 아프간전 승리의 비밀은 첫째, 사실상 파키스탄의 지원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던 탈레반 정권을 그 이전의 상태, 즉 군벌들이 지배하는 봉건영주 체제로 재해체하는데 있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프간이 아니라 파키스탄을 설득, 강요하는 것이었다. 둘째로 전쟁 종식 몇 개월 뒤에 보도된 것으로, 탈레반 정권에 속해있던 군벌들을 설득하는데는 군사적 위협 뿐만이 아니라 '자금'이 들어갔다는 것, 즉 매수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어떠한 군사적 화려함도, 승리찬가도 없었다. 이후의 군사적 행동은 이미 그 전에 이루어진 정치적 배치를 확인하는 수단이었을 뿐이다. 더불어 탈레반의 신정국가는 대중속에 뿌리박지 못했으며, 단지 웅장한 언어로 치장되었을 뿐 별다른 물적인 기반을 갖지 못했고, 이슬람은 단일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후에 세워진 정권은 분명 미국의 대리정권이기는 하지만 현재는 미국의 보호하에서만 유지되는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하며 현재 아프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군벌들을 해체하려는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은 그곳에 하나의 교두보를 마련하기는 했지만 '장악'했다는 표현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아프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 파키스탄, 소련이 모두 합의할 수 있는, 그리고 미국이 월남전과 같은 골치아픈 지역적 저항에 부닥치지 않는 유일한, 그러나 잠정적인 방식이었다. 장기간의 지역적 저항만을 불러일으키는 소모전 (월남전이 대표적이다)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한 체제에 전혀 유용하지 않다. 따라서 전쟁이 유용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이락처럼 경제적, 전략적 의미에서 유용하거나 한반도처럼 세계적 차원의 과잉투자를 해소하거나 혹은 새로운 냉전을 만들어내는 계기로 이용되는 유용함이 있어야만한다. 이것이 부시 정권의 표면적인 호전적 언사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는 방어적인 세계전략을 취하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물론 이것이 전쟁 발발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전쟁의 필요성은 미국내의 경제상황 때문에, 또는 공화당의 이같은 이념을 확실하게 하기 위한 세계전략의 일환으로서 -이락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이 전쟁은 '정부'를 확장하는 정도까지에 이르지는 않도록 조절되고 통제되어야만 한다. 바로 이부분이 부시가 이번 국정연설에서 묘사한 불량국가의 범주에 북한이 이락보다도 더 잘들어맞는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이락에 대한 군사적 압박이 더 강한 이유로 지적될 수도 있다(그러나 동시에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 때문에 북한에 대한 공격은 예고없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군사기술적 측면도 주목해 보아야 한다).
부시가 1월달에 내놓은 이른바 '경기부양책'이 지금 당장의 경기를 부양시키는 어떠한 안도 포함시키고 있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런 원칙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천명한 것이다. 즉, 이락전은 -만일 그런 전쟁이 존재한다면- 철저하게 통제된 전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부시의 재선이 보장될 정도까지만의, 그리고 감세가 본격적인 효력을 발휘하는 미래에 이르기까지의 경기부양의 효과를 가지고. 그러나 여전히 부시에게 최선의 방안은 후세인의 망명이나 내부전복과 같은 비군사적인, 정치적 해결책일 것이다. 따라서 냉전 이후의 최초의 전쟁은 상호간의 적대 때문이 아니라 한 체제를 정체와 교착상태에서 구하기 위한 희생양의 선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선택은 결국 다시 적대를 만들어 낼 것이다.
최근 미국 언론에 부시행정부의 정책을 두고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평가들이 여러차례 실렸다. 분명히 부시의 정책에는 일관성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근거를 확실히 들어내놓지 못하고 이락을 압박하거나, 경기부양을 한다면서 현재의 경기진작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대규모 감세안을 내놓고, 평등을 강조하면서 어퍼머티브액션(affirmative action)에는 반대하며, 같은 악의 축안에 포함된 이락과 북한에 대한 각기 다른 대응을 보면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부시의 업무수행에 대한 지지도가 60% 아래로 내려가 9.11 이전과 거의 비슷한 상태로 머무는 것은 이같은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더불어 9.11 이후로 생겨났던 일체화된 미국이라는 동질감이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는 점도 한몫 거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글은 부시의 대내외 정책을 포괄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여타 반대되는 사실이나 경향에도 불구하고 부시행정부가 어떤 측면에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왜 달라지는가, 즉 왜 서로 모순되는 듯이 보이는가를 공화당의 핵심이데올로기 측면에서 분석하려고 하였다. 따라서 이 글의 한계는 고려해야할 다른 많은 요인들을, 필자의 한계 때문에 불가피하게 사상하고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해석이 한방향으로 치우칠 수 있다는 점이다. 필자가 여기서 제시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해석들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따라서 이 글은 하나의 해답이라기 보다는 그 해답을 구하기 위한 여러 다양한 질문들 중의 하나로 이해해주기 바란다.
역사적인, 그러나 진퇴양난의 중간선거
지난해 11월의 미국 중간선거는 현직 대통령이 속한 당이 상하원 모두에서 의석을 늘리고 과반수를 장악하는 '역사적'인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이같은 외면적인 승리와는 달리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공화당의 입지가 결코 편안하지는 않다. 첫째, 선거는 뚜렷한 쟁점이 없이 치뤄진 이번 선거에서 부시와 공화당이 내세운 전쟁 레토릭이 가장 주요한 구호였음에도 불구하고 공화, 민주 어느한쪽으로도 유권자들의 표쏠림 현상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화당의 승리는 10여개 경합지역에서 부시가 적극적으로 유세한 결과였을 뿐이며, 그것도 미국 현대사상 가장 인기가 높은 대통령이 거의 상주하다시피 선거운동을 벌인 결과라는 점에서 눈에 보이는 것만큼 커다란 수확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결국 50:50의 선거였다고 평했고 이는 선거 직후 실제적인 전쟁준비에 들어가면서 부시의 인기도가 내리막길을 걷는 것으로 증명됐다. 공화당은 이후의 정국 운영에서 유리한 고지에 들어섰지만, 동시에 공화당 강경파인 트렌트 롯트 전 상원원내총무가 인종차별 발언을 구실로 좌초하고 중도파로 꼽히는 프리스트가 다수당 원내총무가 됨으로써 공화당 내의 분열의 조짐을 보이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롯트의 실각은 부시의 비난발언이 아니었다면 이루어지기 힘든 사건이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 하다. 롯트의 인종주의적 발언은 이번이 처음(알려진 것만 해도 80년대 이후 10여차례에 이른다)도 아니었고, 또 롯트가 그같은 정치성향을 가졌다는 것 또한 신문정치면만 꼬박꼬박 읽어온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 공화당의 주요 지지층 중의 하나인 남부의 기독교 근본주의를 대표하는 롯트가 급작스레 몰락한 것은 아직 그 의미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사안이다. (다수당 상원 원내총무는 정치서열 3위의 자리이다). 또 바로 선거 당일 그동안 부시가 절대적인 지지의사를 밝혀왔던 증권거래위원회의 의장인 하비 핏트가 사임하고 연이어 재무장관과 대통령산하 경제위원회 보좌관인 린제이가 교체된 것도 부시 행정부의 후퇴로 볼 수 있다. 새로 재무장관에 임용될 스콧트나 경제보좌관인 스티븐스는 모두 그동안 부시와 담을 쌓고 지내던 월스트리트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부시가 다른 분파들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게 된 것도 중요하다. 따라서 공화당의 '역사적' 승리는 선거 뒤 3개월여 남짓만에 사실상 명목밖에는 남은 것이 없게 되었다. 따라서 미국의 정치지형은 부시와 고어가 대통령직을 놓고 다투던 교착상태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그 전선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문제는 국가다.
부시의 대내외 정책에 대한 정치적 발언은 혼란스럽지만 적어도 몇가지 정책에 있어서는 그는 명확히 일관성을 유지해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그의 감세정책이다. (실제 이것이 그의 경제정책의 전부이기도 하다). 부시의 감세정책을 단순히 친기업적이라거나 부자들을 위한 정책만으로 규정하기는 곤란하다. 앞으로 십년동안 2조 달러에 달하는 세금을 감면한다는 것은 그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느냐 문제만이 아니라 그것이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 어떤 정치적, 경제적 효과들을 낳느냐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부시 감세 정책의 정치적, 경제적 코드에 대해서는 그의 정책만을 들여다봐서는 해독하기 힘들다(거기에는 문자 그대로 정책수단과 정치적 수사만이 있을 뿐 그 배경이나 이념은 드러나지 않는다. 부시 정책을 이해하는데 어려운 점의 하나는, 이들이 정책에 대해서 비밀스럽다기 보다는 바로 이같은 독특한 방식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전체적인 국가발전전략의 밑그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채 개별정책들을 말한다. 따라서 이들 정책들이 어떤 맥락에 위치해 있는가를 외부에 있는 사람들이 알기가 어렵게 만든다). 이들 정책들이 기반으로 삼고 있는 이데올로기를 분석해서 파악하는 것이 차라리 더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워싱턴 정가에서 부시 정책노선의 가장 핵심적인 싱크탱크 가운데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 '세제 개혁을 위한 미국인 모임'(Americans for Tax Reform)의 구상이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밑그림중의 하나에 속한다.
이들의 계획은 야심차기 그지없다. 먼저 앞으로 2025년까지 정부의 규모를 절반으로 줄인다. 현재 국내총생산 가운데 정부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의 33%안팎에서 17%까지로 낮추고 전체 고용인력 가운데 정부부문 피고용자의 비중도 현재의 17%에서 8%로 낮춘다. 뿐만 아니라 국가 소유 자산도 민간에 매각,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만드는 것이 이들의 목표이다. 이를 실현하는 방법은 과감한 감세와 정부 부문의 민간이양이다. 이것이 국가의 절대규모가 줄어든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사회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을 최소화한다는 목표만은 확실하다. 이들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의 권력론을 옆으로 비틀었다. "권력은 세금에서 나온다" (세제개혁을 위한 미국인 모임의 의장 Grover Norquist). 이들의 국가 재조직화의 명제는 동시에 가장 파당적 (partisan)인 이해와도 일치한다. 세제 감면으로 가장 혜택을 보는 계층은 공화당 지지층이다. 외면적으로는 이들의 구호는 레이건 시절의 "작고 강력한 정부"론과 일치하는 듯 보이다. 그러나 이들에게서는 '강력한' 정부라는 수사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의 목표는 국가를 국제관계, 즉 안보 측면에서만 보호자로 상정하고 사회에의 개입을 최소화시키는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뜻 본다면 이는 국가의 약화를 뜻할 수도 있다. 민주당 이데올로그인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 폴 크룩만이 부시를 가르켜 심각한 어조로 '공산주의자'라고 부른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의 약화로 나타나는 복지기반의 해체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이다. 현재로서는 이 문제가 공화, 민주양당의 가장 중요한 대립점중의 하나를 이루고 있다. 비록 좌초하기는 했지만 클린턴 행정부 초기의 의료보험 정책이 유럽의 사민주의 복지국가 모델을 어느정도 수용하는데 반해서, 부시행정부의 복지정책은 철저히 국가의 개입을 배제한다는 것이다. 국가 개입의 배제가 곧 시장의 자율적 결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복지 문제에 시장이 개입되는 것은 사실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부시정권의 모델은 사회의 기관들, 즉 종교단체나 자선기관과 같은 자발적 기관들을 통한 사회복지이다. 부시의 보수주의(conservatism)앞에 온정적(compassionate)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부시에게 있어서는 이같은 사회기관의 역할이 훨씬 커진다. 단지 부시가 신앙심이 돈독해서가 아니라 그의 국가재조직화 전략속에 이같은 요인들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부시 정권은 사실 실제보다 더욱 '종교적'으로 보인다. 바우처프로그램, 부자들의 기부, 자선의 확대 등은 바로 이같은 정치 지형 속에서 강화되고 있는 이데올로기들이다. 그러나 이같은 부시정권의 노선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헌법 조항의 해석을 둘러싼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바로 이점에서 차기 연방대법원, 고등법원 판사가 어떻게 결정되는냐가 향후 10년 이상의 미국의 모습을 결정지을 중요한 정치적 장으로 떠오르게 된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을 가르고 있는 대립선의 숨은 당파적 현실이다. 부시 정권의 이같은 프로그램은 굳이 용어를 만들어내자면 자선국가 (charity state)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공화당이 꿈꾸고 있는 미국식 모델은 사실 유럽식 복지국가에 대한 최대의 위협이다. 따라서 부시의 미국과 유럽사이에 국제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의 근저에는 국제적 이해관계 뿐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 하에서 국가를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 하는 입장의 차이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현재 공화당 핵심층의 계획대로라면 민주당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민주당의 가장 중요한 조직기반의 하나인 노조의 조직률은 이미 현재도 14% 안팎에 불과한데다가 이중 9% 포인트는 공공부문에 속한 노조들이다. 따라서 정부의 상대적 규모가 축소된다면 이는 민주당의 주요 지지기반중의 하나가 약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화당은 단지 연방정부의 약화만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다. 동일한 맥락에서 이들은 주정부의 축소, 약화도 유도하고 있다. 이번 경기부양책에서 주정부의 엄청난 재정난(현재 50개 주정부 가운데 절반인 25곳이 재정적자가 불가피하고 특히 캘리포니아주의 경우에는 1년내에 technical default의 가능성까지도 존재한다. 캘리포니아주는 복권수입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할 정도로 심각하다) 에도 불구하고 연방정부의 주정부에 대한 지원책이 전혀 제시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공화당은 분권화, 즉 연방정부의 약화와 주정부의 강화-분권적 자치확대-라는 도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번 경우를 통해서 연방정부의 약화의 다음 목표는 주정부라는 것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따라서 과거나 현재의 공화당의 정책은 분권화 자체와는 관계가 없다. 분권화는 다만 연방정부의 약화를 위한 지렛대였을 뿐이다. 이 모델이 국가로부터의 개입을 줄인다는 의미에서 감세론자들이 주장하는 '자유' (freedom)을 신장한다는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 자유는 사회에서 가장 큰 권력을 쥘 수 있는 집단에게 보다 유리한 자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에게 '친기업적' (pro-business)이라는 비판이 붙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 정치적, 사회적 자유는 동시에 경제적 이해관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의 노선이 '친기업적'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의 노선은 단지 국가를 그 중간에 매개체로 삼는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부시가 사회보장연금의 사유화를 주장하면서 '정치가들이 국민의 돈을 주물러 자신의 이익을 챙긴다'고 비난한 것은 이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부시정책의 이같은 '친자유적' 성격 때문에 전통적인 자유주의자(리버럴)들이 강력한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것이 동시에 민주당의 고민이기도 하다. 민주당이 최근 전략을 바꿔 반전평화를 정치적 지렛대로 삼고 있는 것은 자신들의 이해와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전쟁의 불가피성과 불가능성
지난 1월의 부시의 경기부양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당장의 경기문제를 해결하는 어떠한 방책도 없다는 것이다. 부시조차도 '미래'를 위해서라고 부연했지만, 그렇다면 당면한 현안 경제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관심일 수밖에 없다. 공화당은 경기가 회복중이라고 계속 말해왔지만 재무장관 경질은 그같은 수사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문제는 과연 지금의 미국식 성장시스템이 계속 유지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90년대 이후 미국의 성장은 세가지 축을 중심으로 움직여왔다. 첫째, 80년대를 거쳐 구조조정을 거쳤다. 둘째, 이른바 IT신기술을 통해 생산성 향상이 이루어졌다 (이부분에 대해서는 이견도 많다). 셋째, 사실상 가장 중요한 것으로 미국의 경제발전은 해외에서의 자본유입 및 저가의 수입품으로 실질 구매력을 높여 소비와 투자를 촉진시키고(따라서 강한 달러가 필수적이었다). 넷째, 세 번째 부문에서 발생하는 무역수지 적자는 해외자본의 유입과 달러화의 국제공용화폐화에 따른 수요에 의해 메꾸어왔다. 따라서 90년대의 미국 자본주의의 구호는 '성장'이었다. 미국의 90년대는 미국 개국 이래 최대의 호황기였다. 문제는 이 싸이클이 한계에 부닥쳤다는 데 있다. 근본적으로 이 성장을 보장해줄 이윤이 뒤따르지 못했기 때문(과잉투자로 인한 경쟁으로 인해)이다. 이 문제는 현재의 소비가 (경제성장의 60여 %를 차지한다) 계속 뒷받침해준다 하더라도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계속적인 자본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 소비조차도 유지될 수 없다. 그러나 이윤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자본투자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장과 이윤, 소비가 모두 역회전 하는 순간이다. 따라서 연방은행이 2년 사이에 12번이나 공격적인 금리인하를 취한 것은 단지 주기적인 불황이 아니라 미국 경제가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른바 더블딮 논쟁은 미국경제가 이 두 번째 하락기를 거친 다음에 다시 회복할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더블딮은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공황의 국면으로 진입한다는 전제를 깔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이 불황이 과연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이다. 이 점에 대해서도 민주당쪽과 공화당쪽의 대답은 판이하게 다르다. 공화당은 2001년부터 시작된 불황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심지어 이번에 교체예정인 오닐 재무장관은 불황이 있었다는 사실 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오닐의 교체를 발표하면서 나온 백악관의 논평은 "역사상 가장 빨리 불황을 끝낸" 재무장관이라고 칭송했다. 이같은 주장은 일견 타당성이 있다. 성장률 (GDP) 측면에서만 본다면 그 평가는 그렇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식 경제체제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찮다. 민주당의 대표 이데올로그중의 하나인 폴 크룩만은 80년대 말 90년대 초의 거품경제 뒤 지난 10년간 불황을 계속 겪고 있는 일본 경제의 사례를 통해 설사 연방지불준비위원회가 금리를 0%로 낮춘다고 하더라도 이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없다는 다소 암울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지난 세기의 경험은 이같은 불황이 공황으로 발전해서 결국 2차대전을 거친 뒤 종식되었다고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 공황을 끝낸 것이 과연 뉴딜이었는지 전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견해가 엇갈린다. 결국 문제는 특정 정치 분파와 거기에 기대고 있는 자본 분파가 전쟁이 유일하지는 않더라도 가장 손쉬운 효과적인 해결책이라는 인식에 도달하는 가에 달려있다. 그러나 동시에 공화당의 입장에서 국가 기능과 규모의 강화는 가장 부적절한 것이기 때문에 부시 정권의 호전적인 언사와는 달리 전쟁, 특히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전쟁은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실 냉전 조건이라면 이같은 공화당의 국가전략을 지금처럼 대담하게 실현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일방적 헤게모니 조건하에서는 미국 특정 정치분파의 이념이 국제적 요인에 제약받지 않고 보다 순수하게 관철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특정 분파의 국내적 정치조건이 국제적 요인보다 우위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부시 정권이 과연 대규모 전쟁을 수행할 수 있을까는 그런 의미에서 국내적인 요인, 국내정세에 대한 판단에 더 좌우된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부시 독트린 '선제공격론'이 얼마나 공격적인가는 정치적 수사만을 가지고 판단하기는 힘들다. 부시 정권이 실제 치뤘던 작은 규모의 전쟁, 아프간 전쟁을 보자.
아프간전은 부시의 호전적인 언사가 사실은 군사적이기보다는 정치적이었음을 적확하게 보여준다. 아프간전 승리의 비밀은 첫째, 사실상 파키스탄의 지원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던 탈레반 정권을 그 이전의 상태, 즉 군벌들이 지배하는 봉건영주 체제로 재해체하는데 있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프간이 아니라 파키스탄을 설득, 강요하는 것이었다. 둘째로 전쟁 종식 몇 개월 뒤에 보도된 것으로, 탈레반 정권에 속해있던 군벌들을 설득하는데는 군사적 위협 뿐만이 아니라 '자금'이 들어갔다는 것, 즉 매수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어떠한 군사적 화려함도, 승리찬가도 없었다. 이후의 군사적 행동은 이미 그 전에 이루어진 정치적 배치를 확인하는 수단이었을 뿐이다. 더불어 탈레반의 신정국가는 대중속에 뿌리박지 못했으며, 단지 웅장한 언어로 치장되었을 뿐 별다른 물적인 기반을 갖지 못했고, 이슬람은 단일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후에 세워진 정권은 분명 미국의 대리정권이기는 하지만 현재는 미국의 보호하에서만 유지되는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하며 현재 아프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군벌들을 해체하려는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은 그곳에 하나의 교두보를 마련하기는 했지만 '장악'했다는 표현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아프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 파키스탄, 소련이 모두 합의할 수 있는, 그리고 미국이 월남전과 같은 골치아픈 지역적 저항에 부닥치지 않는 유일한, 그러나 잠정적인 방식이었다. 장기간의 지역적 저항만을 불러일으키는 소모전 (월남전이 대표적이다)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한 체제에 전혀 유용하지 않다. 따라서 전쟁이 유용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이락처럼 경제적, 전략적 의미에서 유용하거나 한반도처럼 세계적 차원의 과잉투자를 해소하거나 혹은 새로운 냉전을 만들어내는 계기로 이용되는 유용함이 있어야만한다. 이것이 부시 정권의 표면적인 호전적 언사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는 방어적인 세계전략을 취하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물론 이것이 전쟁 발발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전쟁의 필요성은 미국내의 경제상황 때문에, 또는 공화당의 이같은 이념을 확실하게 하기 위한 세계전략의 일환으로서 -이락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이 전쟁은 '정부'를 확장하는 정도까지에 이르지는 않도록 조절되고 통제되어야만 한다. 바로 이부분이 부시가 이번 국정연설에서 묘사한 불량국가의 범주에 북한이 이락보다도 더 잘들어맞는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이락에 대한 군사적 압박이 더 강한 이유로 지적될 수도 있다(그러나 동시에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 때문에 북한에 대한 공격은 예고없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군사기술적 측면도 주목해 보아야 한다).
부시가 1월달에 내놓은 이른바 '경기부양책'이 지금 당장의 경기를 부양시키는 어떠한 안도 포함시키고 있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런 원칙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천명한 것이다. 즉, 이락전은 -만일 그런 전쟁이 존재한다면- 철저하게 통제된 전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부시의 재선이 보장될 정도까지만의, 그리고 감세가 본격적인 효력을 발휘하는 미래에 이르기까지의 경기부양의 효과를 가지고. 그러나 여전히 부시에게 최선의 방안은 후세인의 망명이나 내부전복과 같은 비군사적인, 정치적 해결책일 것이다. 따라서 냉전 이후의 최초의 전쟁은 상호간의 적대 때문이 아니라 한 체제를 정체와 교착상태에서 구하기 위한 희생양의 선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선택은 결국 다시 적대를 만들어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