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3.33호
[책과나]마키아벨리, 혹은 '현대의 군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이런 점에서 시사적이다. 이 책은 군주(또는 이 말을 일정한 정치세력의 리더나 리딩그룹으로 대신해도 좋을 것이다)가 대중(인민)의 지지를 얻고 이를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현실주의적으로(또는 역사와 경험에 근거해) 고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주론』은 마키아벨리가 1513년 메디치가(家)의 군주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바친 책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이 책을 꼼꼼히 읽고 그 뜻을 새기면 ‘운명’과 군주의‘능력’이 약속하는 위대함(당시 사분오열돼 주변 열강의 영향력 아래 있던 이탈리아의 통일)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이 책을 통해 군주의 환심을 사 요직에 등용되길 바랬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약육강식’의 시대에 군주에게 ‘패자(覇者)의 길’을 설파하며 전국을 유랑하던 제자백가(諸家百家)나 책사(策士)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머릿 속에 떠오른다.
마키아벨리는 우선 ‘윤리적 공상’과 ‘엄연한 현실’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현실 속의 군주를 분석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현실 속에 결코 존재한 것으로 알려지거나 목격된 적이 없는 공화국이나 군주국을 상상’하지 않는다.
현실 속의 군주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마키아벨리는 한 마디로“군주는 운명의 풍향과 변모하는 상황이 그를 제약함에 따라서 자신의 행동을 거기에 맞추어 자유자재로 바꿀 태세가 되어 있어야”만 권력을 유지·확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군주는 필요하다면 전통적인 윤리에 얽매이지 않고 부도덕하게 행동할 태세가 돼 있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나 선하게 행동할 것을 고집하는 군주는 “많은 무자비한 자들에게 둘러싸여 몰락을 자초할 것이 불가피”하다고 마키아벨리는 경고한다.
마키아벨리는 또 권력을 유지·확대하기 위해서는 “군주는 대중들이 흔히 좋다고 생각하는 성품을 실제 구비할 필요는 없지만, 구비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위장(僞裝)의 중요성을 지적한 셈이다.
군주의 싸움에 대해서는‘한편으론 동물로서(물리적 힘에 의해)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인간으로서(법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법만을 가지고 싸우는 것은 종종 불충분하다는 게 마키아벨리의 판단이다.‘짐승적인’ 방법을 따르기로 한 군주는 ‘사자(힘을 상징)와 여우(지혜를 상징)’의 기질을 함께 익히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키아벨리의 이같은 권고는 우리들이 흔히 떠올리는 ‘군주의 덕(德)’과는 거리가 있다. 이는 마키아벨리의 덕에 대한 개념이 기독교적 덕이나 유교적인 덕과는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의 덕은 고대 로마공화정 당시 덕의 개념에 해당하는 ‘남성다움’ ‘용맹스러움’‘단호함’ 등과 통한다. 덕의 개념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이러한 ‘혁신’은 정치적인 행위자에게 요구되는 정치적인 덕이 일반 사적인 생활에서 요구되는 윤리적인 덕과 구별된다는 점을, 곧 정치영역의 독자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흔히‘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른바 ‘마키아벨리즘’의 출발점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군주론』은 군주가 권력을 유지·확대하기 위해 취해야 할 방법을 현실주의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4백90년이 지난 지금도 ‘현대의 군주’에게 여전히 새로운‘상상력’을 불러 일으킨다. PSSP
참고: 인용 때 원문의 뜻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편의상 첨삭을 했음. 마키아벨리의 덕에 대한 설명은 역자해제를 참고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