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5.35호
재견 장국영
再見 張國英
김준범 | 편집부장
장국영의 사망소식을 듣고 얼마 후 '영웅본색2'를 보게 되었다. 온갖 과장 속에서 영화가 현실감을 갖는 유일한 순간은 장국영의 죽음이었다. 주윤발이 화수분 탄창을 지닌 쌍권총을 난사하는 동안에도 긴장감이 유지되는 것은 장국영이 한 방의 총탄에 의해 죽었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은 그만큼 무게감이 있었다. '천녀유혼'에서 왕조현의 도대체 인간같지 않은 미모와 숱한 허풍스런 장면에서도 장국영은 유약한 서생의 모습으로 영화의 현실감을 채웠다.
하지만 장국영의 역할이 항상 현실감을 동반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다른 많은 영화에서 현실에 있을 것 같지 않은 귀공자의 역할들을 맡았다. 또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아비정전'의 아비 같은 캐릭터 역시 그에게서는 뗄 수 없는 역할이다. 그는 '패왕별희'와 '해피투게더' 이후에도 다만 그의 여전히 잘생긴 얼굴과 고급한 이미지만 보여 주는 '금지옥엽'이나 '성월동화' 같은 영화들을 찍었다. 홍콩의 모든 영화배우들이 수준 편차가 큰 다양한 영화들에 출연하는 것은 별로 주목할 일은 아니지만, 그의 그런 필모그래피는 불안함을 갖게 했다. 흔들리듯 꺼져버릴 듯한 위태함이 항상 그의 곁에 머물렀다. 그의 죽음을 이미 예상할 수 있었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8,90년대를 건너온 한 배우가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이미지들의 갈래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는 것이다.
80년대 말 90년대 대중문화에 있어 중요한 아이콘인 장국영과 주윤발은 홍콩영화계에 있어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홍콩반환을 기점으로 일견 상반되고 또 같은 길을 걷는다. 주윤발은 '화평본위'란 웨스턴 풍의 영화를 끝으로 홍콩 영화계를 떠나 헐리우드 행을 준비하게 된다. 다행히 주윤발은 오우삼의 페르소나라는 배경 덕택에 이연걸처럼 악역을 먼저 거치는 수모를 겪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가장 큰 매력이었고 독특한 마초적 이미지를 창출했던 우수를 감춘 웃음은 볼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아직은 익숙치 않은 영어 때문인지 그의 연기는 과거에 있다. 그것도 그에게서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안타까움으로 말이다.
하지만 장국영은 그런 주윤발과 같은 길을 가지는 않았다. 주윤발이 헐리우드 행을 갈망했던 이유인 홍콩에서의 잦은 출연에서도 그는 그의 매력을 잃지는 않았다. 다만 안타깝게 그의 이미지는 부유하는 느낌을 줄 뿐이었다. '해피투게더'의 그는 충분히 인상적이지만 왕가위에게서 그는 다만 유령처럼 현실감이 없이 날아다녔다. 나른한 표정과 너무 커서 우울한 눈 그리고 마른 몸은 삶을 유영하지 않고 다만 환상과 몽상을 오고 갔다. 장국영은 주윤발과는 다른 양상으로 어떤 결핍을 연기했다. 왕가위의 연출이었든 이미지의 과잉이었든 상관없이 장국영이 일관되게 연기한 것은 결핍이었다. 무언가 빠져버린 느낌 그것이 두 배우를 이어주는 끈이면 끈이라 할까.
다시 생각해 보면 80년대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모든 것을 다 이룬 듯 열광하는 386과 노무현에게서, 80년대의 아픈 추억 꺼냈던 이창동이 철도 파업은 엄단하겠다는 성명에 연명했던 것처럼 달뜬 기분을 긴 한숨으로 날리듯 80년대는 이제 없다. 축제 속에 있는 것은 부끄러운 자화자찬 뿐이다. 그때의 숨소리는 현재를 긍정하는 그네들의 선동 속에 의식적으로 배제된다. 없다. 무언가 중요한 것이 ... 아마 이것이 지금 장국영과 그때를 맞이할 때 드는 생각이리라. 결핍 그리고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자의 몽환적 유영.
장국영은 생애 마지막 영화가 된 '이도공간'을 찍으며 영화속 인물과 스스로를 동일시해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한다. 어쩌면 그가 마지막 했던 말처럼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은 세상이 더 이상 그가 살아갈 공간을 주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어쩌면 그는 어느 샌가부터 영화 속에서만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장국영과 8,90년대를 뗄 수 없듯 그에게 과거를 짊어지고 사는 것이 어려웠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의 당대가 우리의 당대는 아닐 테지만 그의 당대에서 나는 우리의 당대를 보았고 그의 위태로운 흔들림에서 오늘의 흔들림을 느낀다. 장국영의 죽음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건 그가 나의 80년대와 90년대에 있어 빼 놓을 수 없기 때문이리라. 再見 張國英!!! PSSP
김준범 | 편집부장
장국영의 사망소식을 듣고 얼마 후 '영웅본색2'를 보게 되었다. 온갖 과장 속에서 영화가 현실감을 갖는 유일한 순간은 장국영의 죽음이었다. 주윤발이 화수분 탄창을 지닌 쌍권총을 난사하는 동안에도 긴장감이 유지되는 것은 장국영이 한 방의 총탄에 의해 죽었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은 그만큼 무게감이 있었다. '천녀유혼'에서 왕조현의 도대체 인간같지 않은 미모와 숱한 허풍스런 장면에서도 장국영은 유약한 서생의 모습으로 영화의 현실감을 채웠다.
하지만 장국영의 역할이 항상 현실감을 동반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다른 많은 영화에서 현실에 있을 것 같지 않은 귀공자의 역할들을 맡았다. 또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아비정전'의 아비 같은 캐릭터 역시 그에게서는 뗄 수 없는 역할이다. 그는 '패왕별희'와 '해피투게더' 이후에도 다만 그의 여전히 잘생긴 얼굴과 고급한 이미지만 보여 주는 '금지옥엽'이나 '성월동화' 같은 영화들을 찍었다. 홍콩의 모든 영화배우들이 수준 편차가 큰 다양한 영화들에 출연하는 것은 별로 주목할 일은 아니지만, 그의 그런 필모그래피는 불안함을 갖게 했다. 흔들리듯 꺼져버릴 듯한 위태함이 항상 그의 곁에 머물렀다. 그의 죽음을 이미 예상할 수 있었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8,90년대를 건너온 한 배우가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이미지들의 갈래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는 것이다.
80년대 말 90년대 대중문화에 있어 중요한 아이콘인 장국영과 주윤발은 홍콩영화계에 있어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홍콩반환을 기점으로 일견 상반되고 또 같은 길을 걷는다. 주윤발은 '화평본위'란 웨스턴 풍의 영화를 끝으로 홍콩 영화계를 떠나 헐리우드 행을 준비하게 된다. 다행히 주윤발은 오우삼의 페르소나라는 배경 덕택에 이연걸처럼 악역을 먼저 거치는 수모를 겪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가장 큰 매력이었고 독특한 마초적 이미지를 창출했던 우수를 감춘 웃음은 볼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아직은 익숙치 않은 영어 때문인지 그의 연기는 과거에 있다. 그것도 그에게서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안타까움으로 말이다.
하지만 장국영은 그런 주윤발과 같은 길을 가지는 않았다. 주윤발이 헐리우드 행을 갈망했던 이유인 홍콩에서의 잦은 출연에서도 그는 그의 매력을 잃지는 않았다. 다만 안타깝게 그의 이미지는 부유하는 느낌을 줄 뿐이었다. '해피투게더'의 그는 충분히 인상적이지만 왕가위에게서 그는 다만 유령처럼 현실감이 없이 날아다녔다. 나른한 표정과 너무 커서 우울한 눈 그리고 마른 몸은 삶을 유영하지 않고 다만 환상과 몽상을 오고 갔다. 장국영은 주윤발과는 다른 양상으로 어떤 결핍을 연기했다. 왕가위의 연출이었든 이미지의 과잉이었든 상관없이 장국영이 일관되게 연기한 것은 결핍이었다. 무언가 빠져버린 느낌 그것이 두 배우를 이어주는 끈이면 끈이라 할까.
다시 생각해 보면 80년대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모든 것을 다 이룬 듯 열광하는 386과 노무현에게서, 80년대의 아픈 추억 꺼냈던 이창동이 철도 파업은 엄단하겠다는 성명에 연명했던 것처럼 달뜬 기분을 긴 한숨으로 날리듯 80년대는 이제 없다. 축제 속에 있는 것은 부끄러운 자화자찬 뿐이다. 그때의 숨소리는 현재를 긍정하는 그네들의 선동 속에 의식적으로 배제된다. 없다. 무언가 중요한 것이 ... 아마 이것이 지금 장국영과 그때를 맞이할 때 드는 생각이리라. 결핍 그리고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자의 몽환적 유영.
장국영은 생애 마지막 영화가 된 '이도공간'을 찍으며 영화속 인물과 스스로를 동일시해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한다. 어쩌면 그가 마지막 했던 말처럼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은 세상이 더 이상 그가 살아갈 공간을 주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어쩌면 그는 어느 샌가부터 영화 속에서만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장국영과 8,90년대를 뗄 수 없듯 그에게 과거를 짊어지고 사는 것이 어려웠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의 당대가 우리의 당대는 아닐 테지만 그의 당대에서 나는 우리의 당대를 보았고 그의 위태로운 흔들림에서 오늘의 흔들림을 느낀다. 장국영의 죽음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건 그가 나의 80년대와 90년대에 있어 빼 놓을 수 없기 때문이리라. 再見 張國英!!!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