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3.6.36호

역사와 흔적 : 한국현대사 학습반

양동숙 | 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1.

한국현대사 학습반이 꾸려진지 어느덧 반년이 흘렀다. 한국현대사 전공자들과 사회진보연대 회원들, 그 외 한국현대사에 관심 있는 이들의 참여로 구성된 학습반이 걸어온 길을 잠시 되돌아보며 심호흡의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지난 겨울, 학습과 연구 영역의 범위조차 정하지 않은 채, 우리는 동료들에 대한 깊은 신뢰라는 유대감만을 갖고 서로 만났다. 우리는 한국 현대사에 대한 완벽한 발굴, 조사, 기록, 집필을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총체적 전략으로서 현실의 문제와 역사를 버리고 다른 운명을 갖다 놓으려는 것을 목표로 하지도 않았다. 역사와 정치에서 드러나는 구조와 현상에서 보여지는 신화적 차원을 밝히는데 목적을 두고자 한 것도 아니었다. 우리가 추구하는 근본적 문제들을 분리시키지 않으면서, 우리는 탐구의 여정을 계속해 나갔다. 우리는 끝없는 공간의 세계에서 몇몇 부문들을 답사했지만 어디서나 동일한 구성 요소들과 유사한 행동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국가들, 사회적 집단들, 그리고 개인들 사이의 관계와 인식의 대 모험이 지닌 물질적 무게와 압력을 느꼈다. 우리는 역사적 이론이 구조들의 영속성과 역동적 움직임에 따르는 개별성의 독특함과 구체성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포착하기를 갈구했다. 우리는 역사의 모든 분야에서, 모든 역사적 사건에서, 모든 사상에서, 그리고 모든 행동에서 무엇을 재발견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종국적으로 인간에 대한 보다 나은 이해에 기여하여, 퇴폐적이며 야만적인 결과를 낳지 않는 구체화되는 현재의 계획들로 이어지기를 희망했다. 또한 세계사를 다루는 우리의 역사가 인간 정신의 깊이를 향한 가장 확실한 접근로들 가운데 하나로 나타나기를 희망했다.

역사는 늘 승자의 기록이다. 인생의 패자, 주변인들, 역사에 참여한 권리를 박탈당한 자들, 그들은 누군가의 말처럼, 자신들의 기록 보관소를 가지지 못한 계급이다. 하지만 우리는 소외된 자,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애정의 눈길을 돌려 그들을 역사의 무대로 복권시키고자 한다. 우리는 '어둠의 자식들'로 묻혀진 이들을 밝은 세상에 드러내 보이고자 한다. 그것은 사회 전체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역사가들 사이에는 완전한 '침묵의 음모'가 형성되었다. 모든 것은 무대 뒤편으로 숨어 들어갔다. 모든 사람은 침묵의 음모에 공모자가 되었다. 오늘날 공산주의 운동과 공산당을 연구하는 역사가들은 멸종 위기에 놓여있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에게 마르크시스트 역사학에 기반을 둔 공산주의사 연구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남의 나라 논쟁 들여와 참으로 오랫동안 그것을 붙들며 씨름하던 시절이 있었다. 남의 나라 논쟁이 무슨 의미냐며 핀잔과 비판을 하는 시대와 사람들 틈에서 우리가 그렇게 한 데에는 그럴 이유가 있었다. 폭압적 지배체제를 깨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겠다는 문제 의식 하나만은 뜨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파쇼의 심장에 비수를' 운운하는 돼먹지 못한 소리를 하는 학생들과 역사학자는 하나도 없다. 모두 얌전히 세련되어 갔다. 더불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이던 그 열정마저도 날아가 버렸다. 지난 반년의 흔적이 '디테일'의 미덕과 장점으로 채워진 시간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열정의 불씨를 지피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2.

해방 후 조선 공산주의자들은 이승만을 비롯한 우익 정치세력이 세력화하기 전에 조선공산당(이하 조공)을 재건하는 한편, 미군의 진주에 대비하여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선인민공화국'으로 개편하고, 각 지방에 인민위원회를 조직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해방 직전까지 국내 공산주의자들은 일제의 엄혹한 감시와 탄압에 의해 합법적 운동영역이 봉쇄된 상황에서 광범한 대중투쟁을 전개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비합법 지하운동 형태를 통해 자신들의 조직을 유지하며 활동을 전개해 왔다. 일제의 징용, 징병에 대한 반대 투쟁을 통해 새로운 조직 성원을 발굴하고 단련시켰으며, 공장지대에 들어가 노동자를 조직화하고, 일제의 패망에 대비하여 결정적 시기의 무장봉기 전술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 공산주의자들의 운동은 대중운동에 대한 경험 부족, 해방 후 사회변혁에 대한 통일적인 구체적 전망 부재라는 한계도 내재하고 있었다. 공산주의 운동이 합법적 운동 영역에서 차단되어, 지하운동 형태로 전개될 수밖에 없던 상황과 관련한 이러한 한계는, 조선 공산주의 운동이 여러 그룹별로, 개별적으로 전개되어온 사실과도 관계 깊다. 대중운동에 대한 경험 부족과 통일적 지도 없이 전개되어온 공산주의 운동은 그 내에 수공업적 운동방식을 만연하게 했다. 이는 해방 후 당 재건 과정에서 분파투쟁의 중요한 배경으로 자리잡기도 했지만, 조공은 이러한 분파투쟁 원인의 한 요소인 국내 공산주의 운동의 주체적 한계를 국내외적 객관적 정치 정세와 결합하여, 자신이 삽입된 당대의 사회운동의 실험자 및 집단적 분석자로서 기능하도록 하여 극복하고자 했다. 분파문제를 노동계급 대중운동과 투쟁을 통한 서로간의 연계 모색이라는 시도와 실험으로서 물질화 시키면서, 분파간 존재 문제와 연대, 교통의 문제를 구체적인 역사적 문제로 제기했다. 이는 분파형성 문제의 근본이 당과 그 외의 조직들과 관련한 조직 방법들의 수준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통일성의 정치적 및 사회적 조건들의 수준에 위치함을 인식한 것이며, 당내 분파형성권의 실천적 전화 가능성이 지도부들의 규약상의 결정들 보다 대중적 실천들의 발전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음에 다름 아니다.

일제 말기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며, 조직을 유지했던 세력들과 해방 후 각지 형무소에서 풀려난 공산주의자들은 그러한 활동에서 중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은 일제시기에 조공 재건운동의 마지막 조직이었던 경성 콤그룹이 해체된 이후 일제의 눈을 피해 활동을 유지하면서 해방을 준비해 왔다. 중경임시정부를 비롯한 해외 독립운동세력이 귀국하기 전까지 일반 민중들에게 새로운 국가건설과 관련한 미래상을 제시해줄 수 있는 세력은 국내에서 좌익으로 대표된 공산주의 운동세력 밖에 없었다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니다. 이러한 공산주의 운동과 활동 중심에 조공이 존재했다. 따라서 이시기 조공의 역할과 활동을 규명하는 일은 해방 정국의 시대상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다. 1970년대까지 한국전쟁과 냉전으로 인한 남북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학문적 접근조차 어려웠던 공산주의 운동과 조공 연구는 국내외 연구자들로부터 시작되었지만, 당시 사정을 반영하는 반공적 관점은 현재 비판적으로 재평가되어야한다. 이러한 연구에 대한 비판이 1980년대 중반부터 민중운동의 성장을 반영하며, 단편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고 이후 80년대 후반 90년대 들어 사회주의권의 동요와 해체로 인한 이데올로기적 정치 지형도의 변화로 이 부문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활발히 진행되었다. 하지만 주로 좌우합작운동이 해방 후 제반 사회적 모순과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가능한 길이었다는 전제에서, 당시 조공-남로당의 활동과 노선을 비판하고, 좌우합작을 절대선으로 강조하는 연구 경향이 이어졌다. 이러한 연구 경향은 남한 내 변혁운동의 실패와 관련해 조공-남로당 지도부의 제한성과 종파성을 강조하는 견해들과 조공-남로당 지도부의 부분적인 오류와 한계를 인정하나 미군정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물리력과 운동의 객관적 조건과 상황을 강조하는 견해들간에 대립점을 형성시켰다. 이러한 논쟁점의 형성에도 불구하고, 해방 후 공산주의 운동과 조공 연구는 진전되지 못한 채 여전히 그 성과는 미흡한 실정이다. 정치 사상적, 이론적 고민 부재는 조공에 대한 내용 분석 수준을 한계 지우고 있으며, 해방 후 나타났던 역사적 공산주의의 모순의 실체 파악을 위한 상황 이해와 성격 규명은 아직 많은 과제로 남아있다. 공산주의운동과 조공 연구는 노동계급 대중운동 및 사회운동과의 연관성을 밝혀, 그 성격을 기초짓고 평가하는데서, 공산주의 운동 자체의 객관적 평가 기준을 확보, 마련해야 한다. 또한 역사적 공산주의의 모순의 담지자로서 조공이 '걸어갈 수밖에 없었던' 행보를 이해하려는 진지한 성찰은 여전히 중요하다.

3.

한국현대사 학습반에서 해방 후 공산주의 운동과 조공 관련 학습을 진행하면서, 우리는 현재, 우리의 관심과 고민이 어디로 모아지는가를 희미하나마 발견할 수 있었다. 전위당, 대중정당, 대중조직 문제와 관련한 국가-당 개념의 전화 문제, 연관하여 당내 분파문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계 변혁운동과 조선공산주의 운동 관련성 문제로 집약되는 국제주의 문제가 그것이다. 우리는 당-대중조직 개념과 국가와 당 개념 전화 문제의 상관성에 대해 고민했다. 전위당 개념이 사상적 통일과 전국적 범위에서의 조직적 통일이라는 이상적 목표의 상징과 현실적으로는 대중정당과 대립되는 조직화의 한 형태임을 비로소 인지하며, 당-대중조직 관련, 우리들의 인식론적 장애 문제조차도 초보적이나마 객관화시켜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정치적 분파간의 연대 문제를 사고해야 할 필요성을 이해했다. 현재 역사적 당 형태 위기 논의의 내용이, 대안과 전망을 당내에서만 발견하여 힘을 집중하려는 문제라는 식으로 표현되거나, 혹은 모든 운동을 하나의 당으로 총화 시키려는 문제라는 식으로 주장되면서, 공산주의자들이 그러한 잘못된 인식 하에 실천했다고 비판, 그것을 사실화시키는 경향에서 논의하는 맥락이 있다. 당 형태 위기의 본질적 원인과 의미를 협소화 시키는 이러한 논의에 우리는 비판적이다. 우리는 당 형태 위기의 문제를 정세에 조응하는 조직형식(형태)의 문제와 연관짓고, 조직형태 문제가 당대의 지적분할의 형태에 의해 규정됨을 이해하는 문제와 연결시켰다. 분파 조직화 문제,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분파들의 생산에서 추구되는 질서, 즉 초민족적 수준에서 '사회운동을 위한 당'으로서의 의미를 가지는 새로운 전위당 개념의 질서로 분파 조직화 문제를 이해해야 할 필요성의 중요성을 조금이나마 깨닫기 시작했다. 이는 필연적으로 '국가의 민주화' 또 다른 의미에서 '지적 차이의 사멸'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고민하도록 제기한다.

특히 분파문제는 분파형성권 문제와 관련, 정세적 문제로 봐야함을 추가로 강조한다. 분파들의 허용과 영속적인 집단들 존재간의 상관성과 유대 문제는 의견과 견해차의 영속적인 존재 만큼이나 본질적 모순의 문제다. 분파주의의 원인을 당내 기회주의적 요소들의 현존에서 지적하거나 그러한 기회주의는 소부르조아적 주변들에서 유래하는 것이라 확정짓는 방식과 방향에서 원인을 지적하는 것에 우리는 비판적이다. 그러한 방식은 우리가 그토록 원망하며 회피하고자 한 공산당 내 영속적 숙청의 필연성을 근거 지우며 비극적인 역사로 우리에게 앙갚음했다. 분파 문제 관련, 당내 투쟁을 노동계급 대중 투쟁 성공의 선결조건이라 이해한 것은 당내 분파 문제를 당대의 정세적 투쟁과 변혁 과제를 관련시켜 이해했음을 한편 반증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그 관련성의 문제는 설명되어야 하며, 그러한 관련성의 고리를 해명, 결합시켜 이해해야한다. 분파문제를 정세적 문제와 동떨어지게 만들며, 부르조아 국가 자체를 표상하는 제도들의 다원주의의 구현과 연관시켜 보는 문제로 협소하게 치환시켜, 당의 역사적 기능, 조직 방법에 대한 형식적 논쟁으로 치환하는 논의에 우리는 비판적이다. 분파문제 자체를 역사적으로 공산주의 운동세력들과 당들은 어떻게 이해하며 해결하려 했는가는 여전히 더욱 해명되어야 할 문제다. 유효한 민주적인 독창적 정치적 실천의 형태들을 우리는 분명 발견할 수 있다. 당을 단순히 권력장악의 수단으로 생각함과 동시에 새로운 방식으로의 권력행사의 수단으로 만들어, 권력 내부에서 육체노동과 지식노동의 분할, 통치자들과 피통치자들의 대립을 전진적으로 극복하려 했던 점, 또 다른 정치적 실천 위에 착취 및 사회적 압제들에 대한 투쟁의 차별적 형태들을 통일할 가능성을 기초 지우려 했던 점, 정세의 반전들에 적응할 수 있고 기회주의적 편향들을 교정할 수 있는 대중노선을 정의하기 위해 고민했던 점은 사실 조선 공산주의 운동과 조공 연구에서도 분명히 발견된다. 이러한 노력은 계급적 지배와 결부된 통치가능성과 사회화 가능성의 형태들을 고정적인 불가변의 것으로 간주하지 않으면서 현실화시키려는 실천적 노력이었다.

4.

한국현대사 학습반에서 국제주의 문제는 우리의 중요한 관심 대상의 문제였다. 이에 대한 구체적 토론과 인식 심화가 이루어지기에 아직 우리의 역량과 학습은 일천하다. 그러나 우리의 이러한 자생적 학습의 가능성이 지향하는 목표는 분명하다. 사회변혁을 위한 비판적이고 상호-주체적인 지식생산을 향한 인문학의 재개, 학계-외부의 세계와 접촉하는데 실패해온 역사학의 영원한 아킬레스건으로부터의 해방, 해방적 지식과 문화적 교류의 창조, 새로운 국제적 연대 같은 실천들로의 귀결이다. 어떤 종류의 사회적 관계를 형성, 발전해 갈 것인가를 끊임없이 자문, 상기시키는 실험 모색의 연장선상에서 우리는 학습 결과를 모아낼 것이다. 또한 운동-지향적인 연구에 헌신한다는 우리 자신의 몸부림의 선언을 구체화시켜갈 것이다. 우리는 현재 지속적인 학습과 토론을 통해 우리의 문제 의식들이 발전되기를 희망한다. 미래에 생존할 수 있는 우리의 연구와 교육 현장과 형태를 사고해야할 필요성을 각인하며, 우리는 기본적으로 역사가의 '신의성실의 원칙'에 속하는 문제이기도 한, 바로 지금 여기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야만적 반격과 대응에 대항하며, 계속 학습, 실천해 나갈 것이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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