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자유구역 폐기투쟁의 현황과 과제
경제자유구역법 시행이 이제 한 달을 남겨 놓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는 지난 5월 19일 경제자유구역법 시행령을 입법 예고했으며, 청와대 국정 과제 토론회 등을 거쳐 예정대로 7월 1일부터 경제자유구역법을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자유구역법의 문제점이 무엇이며, 만약 이대로 경제자유구역이 시행될 경우 노동자 민중의 삶에 어떤 해악을 가져올 지, 근본적으로 동북아 중심국가 구상의 문제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미 다양한 경로를 통해 지적된 바 있다.(편집자주-월간 사회진보연대 4월호 정세초점) 특히 이번에 입법 예고된 경제자유구역법 시행령안은 경제자유구역법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시행령안이 정하고 있는 국제공항, 항만의 기준에 따르면, 현재 우선 지정 대상 지역으로 되어 있는 인천, 부산, 광양뿐 만 아니라 마산, 울산, 군산·장항, 평택 등도 대상 지역이 될 수 있다. 또한 월차휴가 폐지, 주휴·생리휴가 무급화, 파견대상의 확대, 단체행동권 제약, 장애인·고령자 의무 고용기피 등 경제자유구역법안에 명시된 노동권을 심각하게 후퇴시키는 조항을 수정할 만한 어떤 내용도 시행령안에 담겨져 있지 않다.
이런 점을 살펴볼 때 정부는 경제자유구역법 시행을 강행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민중진영과 시민 사회단체의 끈질긴 문제제기가 있었음에도 경제자유구역을 폐기하거나 혹은 법 시행을 근본적으로 재고하려는 어떤 노력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이것은 노무현 정부가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는 사실과 오직 투쟁을 통해서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현재까지 투쟁현황과 계획
작년 경제자유구역법 제정 반대 투쟁 이후 현재까지 경제자유구역 반대 투쟁은 소강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부산, 경기 지역 등에서는 올해 초 지역 범대위가 구성되고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투쟁은 전국적이지 못했고 그다지 활발하지도 못했다. 또한 7월 법 시행을 앞두고 최근에 다시 구성된 경제자유구역 폐기 범대위와 민주노총 등의 활동을 계기로 투쟁이 다시 활성화되기 시작했으나 아직까지는 경제자유구역 우선 지정 대상 지역에 한정되어 투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법 시행을 앞두고 뒤늦었지만 경제자유구역 폐기를 위한 투쟁이 전국적으로 진행되려 하고 있는 점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진행되거나 앞으로 진행될 투쟁의 계획을 대강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기간 투쟁 평가와 이후 투쟁 방향
○ 경제자유구역 폐기로 투쟁의 목표를 분명히 하자.
'경제자유구역법 폐기'로 투쟁의 목표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미 법 제정이 됐고, 시행령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법 폐기를 내놓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경제자유구역법이 정부의 동북아 중심국가 구상이라는 총체적인 전망하에서 채택된 것이고, 경제자유구역법을 통해 한국사회 신자유주의 도입의 마지막 수순이 진행될 것이라는 점에서 경제자유구역법을 막는 것은 지난 몇 년간 끈질기게 벌여왔던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의 성과를 일정하게 확보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문제가 될 수 있다.
또한 경제자유구역법이 생리휴가·주휴 무급화, 월차 휴가 폐지 등 주 5일 근무제의 쟁점과 맞물려 있고, 비정규직 문제와 연결되어 있으며, 의료 및 교육시장 개방과 관련하여 이후 WTO에 맞선 투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서 투쟁의 목표가 경제자유구역법 폐기로 맞춰져야 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 관점을 명확히 하자
투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관점이 있다.
첫번째, 경제자유구역은 현정부가 외자유치를 통해 한국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을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외자유치는 궁극적으로 한국 민중의 삶을 피폐화 할 것이며, 초국적 자본과 미국 등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전세계 경제에서 궁극적으로 바람직한 외자유치는 없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 동안 외자 유치가 일국 내에서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제약하고 봉쇄하는 경향을 보여왔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외자유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건 더더욱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경제자유구역법의 시행의 효과가 마치 특정한 지역을 한정하여 시행했기 때문에 외자유치의 효과가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지 못하는 점이 문제라는 식의 비판이 가능한데, 이는 결국 자본의 논리와 맞닿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두번째, 경제자유구역이 국내 기업에 비해 외국 기업에 지나친 특혜를 주어 역차별을 일으키기 때문에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이러한 관점 역시 자본의 역공에 매우 취약하다. 이런 지적은 기본적으로 경제자유구역 폐기 투쟁의 협력 대상으로 국내 자본을 설정하고 있는 것처럼 비칠 소지가 있다. 또한, 기업 주식의 10%이상만 가지면 외국기업으로 인정되는 현행 법 체계 아래에서, 역차별 문제를 주장하는 것은 한국 기업도 주식의 10%를 외국인에게 매각한 후 경제자유구역 안에 들어와 특혜를 받을 수 있다는 반박에 무력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현행 법 제도에서 국내 기업 역시 외국인 기업과 똑같이 노동자 민중에 대한 착취를 기반으로 경제자유구역 안에서 각종 특혜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 전국적 투쟁, 노동계급의 전면적 투쟁이 필요하다.
그 동안의 투쟁은 앞서 지적했듯이 전국적이지도 못했고, 경제자유구역과 관련 있는 분야의 대중들과 함께 하는 투쟁이 되지도 못했다. 이는, 경제자유구역 우선 지정 대상지역을 제외하고는 투쟁의 필요성이 분명히 인식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투쟁의 내용이 광범위하여 오히려 투쟁에 나설 대중적 주체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전국적 투쟁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될 시기라는 사실이 모든 운동진영 사이에 동의되고 있는 시점에서 어떻게 경제자유구역 폐기 투쟁을 전국화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민주노총이 경제자유구역법 폐기를 올해 투쟁의 3대 요구안 중 하나로 결정한 것은 매우 의미 있다. 또한, 「WTO교육개방·시장화 저지와 교육공공성실현 교육구조개혁을 위한 범국민교육연대」가 발족하고 이를 통한 교육부문에서의 경제자유구역투쟁이 가능해졌다는 점, 「경제자유구역법폐기 및 의료시장개방 저지 공동대책위」가 발족하면서 보건의료 부문 노동자들의 경제자유구역 폐기 투쟁이 가능해졌다는 점 역시 매우 긍정적이다.
○ 전국적이고 전면적인 투쟁은 어떻게 가능한가?
앞서 밝힌 대로 민주노총은 경제자유구역법 폐기를 올해 투쟁의 3대 과제 중 하나로 선정하였다. 그러나 경제자유구역 문제는 노동자 대중들에게 주5일 근무제나 임단협 문제처럼 자신의 생활과 직결되는 사안으로 인식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경제자유구역이 노동자 민중의 삶에 얼마나 큰 폐해를 가져올 것인지를 대중적으로 선전·선동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필요하다.
두번째로 필요한 것은 다른 투쟁과의 관계를 잘 설정하는 문제이다. 이를 통해서 전국적 투쟁의 돌파구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민주노총이 이번에 제시한 3대 요구사항 중 주5일 근무제나 비정규직 문제는 이미 사회적 논의가 수없이 되어 왔던 사안이고 노동자 계급의 전국적 투쟁이 경제자유구역 폐기 투쟁에 비해 수월한 사안이다. 따라서 경제자유구역의 문제를 주5일 근무제나 비정규직 문제와 연결시켜 설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 5일 근무제 투쟁이 노동조건의 후퇴가 없는 노동시간단축으로 진행되더라도 만약 경제자유구역이 도입된다면, 현재까지 정부가 주5일 근무제 도입의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는 생리휴가·주휴일 무급화, 월차휴가 축소 등의 문제는 다시 되살아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더불어 경제자유구역이 도입된다면 노동 조건 후퇴 없는 주5일 근무 쟁취 투쟁은 이미 상당부분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경제자유구역이 시행되어 파견허용업무와 허용기간이 확대된다는 것은 비정규직 차별 철폐 투쟁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곧 비정규직 투쟁의 성과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자유구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주5일 근무, 비정규직 문제 등의 투쟁은 경제자유구역에 의해 더욱 영향 받을 수 있다. 동시에 이런 이유에서 경제자유구역 폐기 투쟁은 주 5일 근무 문제, 비정규직 문제 등으로 투쟁하는 대중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경제자유구역이 도입될 경우 영향을 받게 될 교육, 의료 분야 등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현재 투쟁을 벌이고 있는데 이러한 각각의 투쟁이 잘 조율되고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투쟁이 조율되고 집중되어야 한다는 것은 7월 법 시행 이전에 각 단위의 투쟁이 집중되는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교육·의료 분야에 대한 문제제기는 민중들이 경제자유구역의 문제점에 대해서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교육·의료 분야에 있어서 경제자유구역에 대한 끊임없는 반대투쟁은 계속해서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는다.
넷째, 이후 투쟁의 흐름 속에서 경제자유구역 폐기 투쟁의 위상과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자리잡아 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럴 때만이 경제자유구역 폐기 투쟁이 전면적인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는 주장의 의미가 분명해질 것이다. 특히 이후 계속될 자유무역협정과 WTO반대 투쟁 그리고 현재 계획하고 있는 11월 민중총궐기 투쟁,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어낼 신자유주의 폐기 투쟁에서 경제자유구역 폐기 투쟁은 매우 중요한 단계라는 사실이 강조되어야 한다.
○ 지역별 대응이 중요하다.
경제자유구역 폐기 투쟁은 명백히 전국적 사안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각 지역별로 쟁점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지역차원에서의 독자적인 대응논리 개발과 투쟁이 필요하다. 지역적 투쟁과 전국적 투쟁은 상호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서 궁극적으로는 경제자유구역법을 폐기시키는 데 집중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중앙에서는 총론적 투쟁을 통해 다른 투쟁과의 관계 설정을 적절히 해주면서 전체 일정을 진행시키되, 지역에서는 지역 현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폭로하고 타격지점을 세밀화 하여 투쟁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인천의 경우 송도신도시 개발과 관련하여 게일사와 인천시가 맺은 계약 내용이 공개 되지 않은 것 등이 현안이 될 수 있는데, 이렇듯 경제자유구역이 '대세'라고 인식되는 현재 지역의 상황을 일거에 반전시킬 수 있는 방법 등도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지역적 투쟁이 필요한 이유는 경제자유구역법 폐기(및 지정 반대 투쟁)이 자칫 각 지역에서 자기 지역 발전을 저해하는 논리라는 이유로 민중들에게 배척 당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역의 경우 해당 지자체에서 현재 경제자유구역 지정과 관련하여 어떤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지 면밀하게 분석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투쟁에 임해야 할 것이며, 지자체에 대한 공세적 문제제기를 통해 지역에서 경제자유구역 문제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키고 투쟁의 주체들을 모아나갈 필요가 있다.
마치며
경제 자유구역을 둘러싸고 여전히 고민이 되는 부분은 정부의 동북아 중심 국가 구상, 경제자유구역 등에 대해서 반대한다면 민중운동진영의 대안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특히 이점에 대해서는 지역에서 경제자유구역 투쟁을 진행하면서 지역 주민들을 만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는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해서는 한국경제에 대한 전반적인 대안 마련이 있지 않는 한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바가 전혀 없다.
다만,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경제자유구역 말고 다른 정책이 한국경제를 발전시킬 것이다.'는 식의 논리가 과연 타당한가 하는 점이다. 경제자유구역, 동북아 중심 국가 등에 대해서 한정해서만 말하자면, 위와 같은 논리보다는 예를 들어, 동북아 지역 민중이 공동으로 생산된 가치를 향유할 근본적 방안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경제중심국가나 또는 다른 발전 전략에서 보여지는 공통점은 한국경제만이 발전해야 한다는 사고 방식이다. 이렇게 될 경우 주변의 다른 나라 민중들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사라지게 된다. 이런 식의 결론은 운동가라면 피해야 할 내용이다. 세계 경제 체제 안에서 동북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있고, 동북아 지역에 일정한 물동량 유입이 상시적으로 가능하다면, 한국이 동북아 중심국가나 혹은 '허브'로서 기능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배타적인 경제적 지위를 차지할 것을 노리지 말고, 동북아 민중이 공동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할 공동의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쪽으로 고민을 돌려야 한다. 서로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세금 감면 등으로 출혈 경쟁을 할 것이 아니라, 동북아 지역에 들어오는 물류, 금융 등에 대한 공동의 통제 방안을 마련하고,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며, 근본적으로는 동북아 민중이 생산하는 가치를 공동으로 향유할 방안, 그 속에서 적절한 역할 분담 정도는 용인하는 그런 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PSSP
이런 점을 살펴볼 때 정부는 경제자유구역법 시행을 강행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민중진영과 시민 사회단체의 끈질긴 문제제기가 있었음에도 경제자유구역을 폐기하거나 혹은 법 시행을 근본적으로 재고하려는 어떤 노력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이것은 노무현 정부가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는 사실과 오직 투쟁을 통해서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현재까지 투쟁현황과 계획
작년 경제자유구역법 제정 반대 투쟁 이후 현재까지 경제자유구역 반대 투쟁은 소강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부산, 경기 지역 등에서는 올해 초 지역 범대위가 구성되고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투쟁은 전국적이지 못했고 그다지 활발하지도 못했다. 또한 7월 법 시행을 앞두고 최근에 다시 구성된 경제자유구역 폐기 범대위와 민주노총 등의 활동을 계기로 투쟁이 다시 활성화되기 시작했으나 아직까지는 경제자유구역 우선 지정 대상 지역에 한정되어 투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법 시행을 앞두고 뒤늦었지만 경제자유구역 폐기를 위한 투쟁이 전국적으로 진행되려 하고 있는 점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진행되거나 앞으로 진행될 투쟁의 계획을 대강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기간 투쟁 평가와 이후 투쟁 방향
○ 경제자유구역 폐기로 투쟁의 목표를 분명히 하자.
'경제자유구역법 폐기'로 투쟁의 목표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미 법 제정이 됐고, 시행령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법 폐기를 내놓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경제자유구역법이 정부의 동북아 중심국가 구상이라는 총체적인 전망하에서 채택된 것이고, 경제자유구역법을 통해 한국사회 신자유주의 도입의 마지막 수순이 진행될 것이라는 점에서 경제자유구역법을 막는 것은 지난 몇 년간 끈질기게 벌여왔던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의 성과를 일정하게 확보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문제가 될 수 있다.
또한 경제자유구역법이 생리휴가·주휴 무급화, 월차 휴가 폐지 등 주 5일 근무제의 쟁점과 맞물려 있고, 비정규직 문제와 연결되어 있으며, 의료 및 교육시장 개방과 관련하여 이후 WTO에 맞선 투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서 투쟁의 목표가 경제자유구역법 폐기로 맞춰져야 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 관점을 명확히 하자
투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관점이 있다.
첫번째, 경제자유구역은 현정부가 외자유치를 통해 한국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을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외자유치는 궁극적으로 한국 민중의 삶을 피폐화 할 것이며, 초국적 자본과 미국 등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전세계 경제에서 궁극적으로 바람직한 외자유치는 없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 동안 외자 유치가 일국 내에서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제약하고 봉쇄하는 경향을 보여왔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외자유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건 더더욱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경제자유구역법의 시행의 효과가 마치 특정한 지역을 한정하여 시행했기 때문에 외자유치의 효과가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지 못하는 점이 문제라는 식의 비판이 가능한데, 이는 결국 자본의 논리와 맞닿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두번째, 경제자유구역이 국내 기업에 비해 외국 기업에 지나친 특혜를 주어 역차별을 일으키기 때문에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이러한 관점 역시 자본의 역공에 매우 취약하다. 이런 지적은 기본적으로 경제자유구역 폐기 투쟁의 협력 대상으로 국내 자본을 설정하고 있는 것처럼 비칠 소지가 있다. 또한, 기업 주식의 10%이상만 가지면 외국기업으로 인정되는 현행 법 체계 아래에서, 역차별 문제를 주장하는 것은 한국 기업도 주식의 10%를 외국인에게 매각한 후 경제자유구역 안에 들어와 특혜를 받을 수 있다는 반박에 무력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현행 법 제도에서 국내 기업 역시 외국인 기업과 똑같이 노동자 민중에 대한 착취를 기반으로 경제자유구역 안에서 각종 특혜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 전국적 투쟁, 노동계급의 전면적 투쟁이 필요하다.
그 동안의 투쟁은 앞서 지적했듯이 전국적이지도 못했고, 경제자유구역과 관련 있는 분야의 대중들과 함께 하는 투쟁이 되지도 못했다. 이는, 경제자유구역 우선 지정 대상지역을 제외하고는 투쟁의 필요성이 분명히 인식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투쟁의 내용이 광범위하여 오히려 투쟁에 나설 대중적 주체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전국적 투쟁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될 시기라는 사실이 모든 운동진영 사이에 동의되고 있는 시점에서 어떻게 경제자유구역 폐기 투쟁을 전국화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민주노총이 경제자유구역법 폐기를 올해 투쟁의 3대 요구안 중 하나로 결정한 것은 매우 의미 있다. 또한, 「WTO교육개방·시장화 저지와 교육공공성실현 교육구조개혁을 위한 범국민교육연대」가 발족하고 이를 통한 교육부문에서의 경제자유구역투쟁이 가능해졌다는 점, 「경제자유구역법폐기 및 의료시장개방 저지 공동대책위」가 발족하면서 보건의료 부문 노동자들의 경제자유구역 폐기 투쟁이 가능해졌다는 점 역시 매우 긍정적이다.
○ 전국적이고 전면적인 투쟁은 어떻게 가능한가?
앞서 밝힌 대로 민주노총은 경제자유구역법 폐기를 올해 투쟁의 3대 과제 중 하나로 선정하였다. 그러나 경제자유구역 문제는 노동자 대중들에게 주5일 근무제나 임단협 문제처럼 자신의 생활과 직결되는 사안으로 인식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경제자유구역이 노동자 민중의 삶에 얼마나 큰 폐해를 가져올 것인지를 대중적으로 선전·선동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필요하다.
두번째로 필요한 것은 다른 투쟁과의 관계를 잘 설정하는 문제이다. 이를 통해서 전국적 투쟁의 돌파구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민주노총이 이번에 제시한 3대 요구사항 중 주5일 근무제나 비정규직 문제는 이미 사회적 논의가 수없이 되어 왔던 사안이고 노동자 계급의 전국적 투쟁이 경제자유구역 폐기 투쟁에 비해 수월한 사안이다. 따라서 경제자유구역의 문제를 주5일 근무제나 비정규직 문제와 연결시켜 설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 5일 근무제 투쟁이 노동조건의 후퇴가 없는 노동시간단축으로 진행되더라도 만약 경제자유구역이 도입된다면, 현재까지 정부가 주5일 근무제 도입의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는 생리휴가·주휴일 무급화, 월차휴가 축소 등의 문제는 다시 되살아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더불어 경제자유구역이 도입된다면 노동 조건 후퇴 없는 주5일 근무 쟁취 투쟁은 이미 상당부분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경제자유구역이 시행되어 파견허용업무와 허용기간이 확대된다는 것은 비정규직 차별 철폐 투쟁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곧 비정규직 투쟁의 성과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자유구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주5일 근무, 비정규직 문제 등의 투쟁은 경제자유구역에 의해 더욱 영향 받을 수 있다. 동시에 이런 이유에서 경제자유구역 폐기 투쟁은 주 5일 근무 문제, 비정규직 문제 등으로 투쟁하는 대중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경제자유구역이 도입될 경우 영향을 받게 될 교육, 의료 분야 등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현재 투쟁을 벌이고 있는데 이러한 각각의 투쟁이 잘 조율되고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투쟁이 조율되고 집중되어야 한다는 것은 7월 법 시행 이전에 각 단위의 투쟁이 집중되는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교육·의료 분야에 대한 문제제기는 민중들이 경제자유구역의 문제점에 대해서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교육·의료 분야에 있어서 경제자유구역에 대한 끊임없는 반대투쟁은 계속해서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는다.
넷째, 이후 투쟁의 흐름 속에서 경제자유구역 폐기 투쟁의 위상과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자리잡아 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럴 때만이 경제자유구역 폐기 투쟁이 전면적인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는 주장의 의미가 분명해질 것이다. 특히 이후 계속될 자유무역협정과 WTO반대 투쟁 그리고 현재 계획하고 있는 11월 민중총궐기 투쟁,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어낼 신자유주의 폐기 투쟁에서 경제자유구역 폐기 투쟁은 매우 중요한 단계라는 사실이 강조되어야 한다.
○ 지역별 대응이 중요하다.
경제자유구역 폐기 투쟁은 명백히 전국적 사안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각 지역별로 쟁점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지역차원에서의 독자적인 대응논리 개발과 투쟁이 필요하다. 지역적 투쟁과 전국적 투쟁은 상호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서 궁극적으로는 경제자유구역법을 폐기시키는 데 집중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중앙에서는 총론적 투쟁을 통해 다른 투쟁과의 관계 설정을 적절히 해주면서 전체 일정을 진행시키되, 지역에서는 지역 현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폭로하고 타격지점을 세밀화 하여 투쟁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인천의 경우 송도신도시 개발과 관련하여 게일사와 인천시가 맺은 계약 내용이 공개 되지 않은 것 등이 현안이 될 수 있는데, 이렇듯 경제자유구역이 '대세'라고 인식되는 현재 지역의 상황을 일거에 반전시킬 수 있는 방법 등도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지역적 투쟁이 필요한 이유는 경제자유구역법 폐기(및 지정 반대 투쟁)이 자칫 각 지역에서 자기 지역 발전을 저해하는 논리라는 이유로 민중들에게 배척 당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역의 경우 해당 지자체에서 현재 경제자유구역 지정과 관련하여 어떤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지 면밀하게 분석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투쟁에 임해야 할 것이며, 지자체에 대한 공세적 문제제기를 통해 지역에서 경제자유구역 문제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키고 투쟁의 주체들을 모아나갈 필요가 있다.
마치며
경제 자유구역을 둘러싸고 여전히 고민이 되는 부분은 정부의 동북아 중심 국가 구상, 경제자유구역 등에 대해서 반대한다면 민중운동진영의 대안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특히 이점에 대해서는 지역에서 경제자유구역 투쟁을 진행하면서 지역 주민들을 만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는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해서는 한국경제에 대한 전반적인 대안 마련이 있지 않는 한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바가 전혀 없다.
다만,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경제자유구역 말고 다른 정책이 한국경제를 발전시킬 것이다.'는 식의 논리가 과연 타당한가 하는 점이다. 경제자유구역, 동북아 중심 국가 등에 대해서 한정해서만 말하자면, 위와 같은 논리보다는 예를 들어, 동북아 지역 민중이 공동으로 생산된 가치를 향유할 근본적 방안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경제중심국가나 또는 다른 발전 전략에서 보여지는 공통점은 한국경제만이 발전해야 한다는 사고 방식이다. 이렇게 될 경우 주변의 다른 나라 민중들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사라지게 된다. 이런 식의 결론은 운동가라면 피해야 할 내용이다. 세계 경제 체제 안에서 동북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있고, 동북아 지역에 일정한 물동량 유입이 상시적으로 가능하다면, 한국이 동북아 중심국가나 혹은 '허브'로서 기능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배타적인 경제적 지위를 차지할 것을 노리지 말고, 동북아 민중이 공동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할 공동의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쪽으로 고민을 돌려야 한다. 서로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세금 감면 등으로 출혈 경쟁을 할 것이 아니라, 동북아 지역에 들어오는 물류, 금융 등에 대한 공동의 통제 방안을 마련하고,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며, 근본적으로는 동북아 민중이 생산하는 가치를 공동으로 향유할 방안, 그 속에서 적절한 역할 분담 정도는 용인하는 그런 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