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6.36호
강경애 '인간문제'의 장자못 전설 모티브와 민중의식
지난 호에 이어 1920-30년대 문단의 대표적인 흐름이었던 카프의 문학, 혹은 경향소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특히, 이번 호에 소개할 강경애는 식민지 시대 활동했던 여성작가로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가는 아니다. 추측컨대 그녀가 카프활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사회주의자로써 작품활동을 펼쳤고 또한 당시로써는 선구적으로 자유연애(양주동과의 열애는 당시 유명했던 것 같다)를 몸소 실천했던 여성이었기 때문에 그 동안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녀의 작품은 당시 카프문학이 보여주었던 도식성과 고대소설적인 우연의 빈번함 등이 자연스레 절제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경애 작품의 탁월함은 현실적인 묘사, 등장인물의 입체적인 성격창조에 있다.
그녀의 많은 대표적인 작품 중에서도 '인간문제'를 중심으로 소설가 강경애를 만나보자.
강경애의 동아일보 연재 장편소설 '인간문제'(1934)는 그녀의 세계관이 고스란히 반영된 경향소설이다. 이기영의 장편소설 '고향'과 함께 1930년대 한국 현대소설에 있어서 이른바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소설 '인간문제'는 용연마을에 있는 원소라는 못에 얽힌 전설을 소개하면서 시작된다. 악덕한 부자의 횡포로 가뭄에 굶주리던 마을 사람들의 투쟁이 시작되고 부자가 이를 법으로 벌하자 마을 사람들이 통곡을 해서 그 부자의 집이 물에 잠겼다는 원소의 전설로 시작된다. 원소 전설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갈등과 투쟁이 계속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상징한다. 이는 장자못 전설을 차용하였던 것으로 소설가가 기존의 전설을 패러디 해서 원소에 얽힌 전설을 사용하는 대목을 유의해서 살필 필요가 있다.
여기서 잠깐, <인간문제>의 모티프로 사용되고 있는 장자못 전설을 알아보자. 이 전설은 광범위한 지역에서 두루 발견되는 전설이다. 그 내용인 즉, 구두쇠이며 악덕한 부자가 스님이 찾아와 시주를 청하자 쪽박을 깬다거나 쇠똥을 담아준다. 이 때 며느리가 스님에게 시주를 하자 스님이 며느리에게만 앞으로 닥칠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하면서 절대 도망갈 때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말해주고 사라진다. 그리고 곧 구두쇠네 집에 천둥번개가 치면서 비가 퍼붓더니 그 구두쇠의 집이 물에 잠겨버리는데 그만 며느리가 뒤를 돌아보면서 며느리도 그 자리에 돌이 된다. 이 전설은 주로 연못과 돌을 증거물로 삼는 전설에 얽힌 사연으로 이런 전설은 성경의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케 한다.(실제로 염분이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소금기둥과 관련한 전설이 많다.) 구두쇠의 악행과 천벌이라는 내용을 살펴보면 부자이면서도 어려운 사람이나 이웃에게 인색한 자가 불행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며 남의 불행에 인색한 자에 대한 비판의식이 담겨있다. 이것은 바로 민중들의 배고픔, 애환에 대한 보상심리 혹은 저항적인 측면이 있는데 이 전설이 전승되는 과정에서 그들의 의식이 나타난 부분이라 할 것이다.(물론 며느리에 대한 부분은 비극적인 결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다만 전설이란 그 이야기를 증명하는 증거물이 있어야 하고 장자못은 연못과 함께 그 근처의 사람형상의 돌이 있어야 하는 전설이기에 돌에 얽힌 사연을 만들기 위해 며느리 이야기를 비극으로 맺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바로 이 점이 강경애의 '인간문제'의 주제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 장자못 모티프에서 고두쇠의 악덕을 중심으로 차용한 것인데 연못의 이름이 '원소 (怨素)'인 것도 앞으로의 내용 전개를 위한 창작인 듯하다. 바로 전설에 얽힌 문제가 곧 주인공 '첫째'와 '선비'가 해결하려고 몸부림치는 '인간 문제'다. 작가는 이러한 계급 투쟁의 문제를 농촌을 배경으로 한 전반부와 인천 지역 노동 현장을 무대로 한 후반부에서 모두 제기하고 있다. 전반부는 첫째와 선비가 가난과 억압에 시달리면서 막연한 반항심만이 나타난다. 그러나 후반부에 들어가면 그들은 계급의식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신철'(지식인)은 이를 매개한다. 하지만 신철의 구속과 전향으로 첫째가 눈뜨게 되는 것은 바로 그 인간문제를 풀 주체가 자신이라는 것이었다.
장자못 전설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인물의 등장과 세부 묘사, 그리고 좀 더 복잡한 스토리와 구성을 가지면서 인간문제는 현대소설로서 가치를 획득한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는 근대가 만든, 강경애가 구연한 또 다른 장자못 전설이지 않을까. 다만 입으로 전승되지 않고 활자로 전승되고 그 형태가 많이 다르지만 장자못 전설이 당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것처럼 그렇게 원소에 얽힌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어 용연의 이야기 그리고 그 곳에 살았던, 하지만 결국 그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얽힌 이야기이지 않을까.
대개의 카프문학이 가진 한계처럼 '인간문제'를 보면 우연의 연발이라던가, 가끔 내면의 묘사가 너무나 도식적이고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오히려 이런 부분은 이야기의 재미와 속도감 있는 전개로 내용을 압도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강경애가 이룬 가장 훌륭한 부분은 공장 노동의 생생한 현장 묘사다. 이는 한국소설의 약점이었던 소재의 빈약성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특히, 인천부두와 방적공장의 묘사는 탁월하다. 당시 일제시대의 노동현장이 어떤 풍경이었는지 이 소설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강경애의 유년을 연상케 하는 주인공들의 고향시절은 당시 상황에 대한 보편성을 담고 있으며 인물도 이후 서울이나 인천으로 간 당시보다 더욱 입체적이고 구체적인 감성이 살아있다.
강경애가 당시 보았던 인천과 농촌의 상황, 그리고 농민일 수도 없는 사람들(더욱 소외된 사람들)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참상이야말로 근대에 본격적으로 드러난 핵심적인 문제이며 이를 형상화한 것은 어쩌면 당대를 사는 지식인으로써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강경애는 계급의 문제를 근본적인 변혁의 길이라 생각하면서도 당대 여성들의 비참한 삶에 주목하고 있다. 부모님을 여의고 아버지처럼 여겼던 자에게 겁탈을 당한 후에 자신과 같은 고통을 당한 친구를 의지하며 인천 노동자로 살아가는 여자주인공의 삶, 그리고 그 인천의 방적공장 안에서 벌어지는 여성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이 어떻게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는가 생각하면서 읽는 것도 이 작품을 보는 중요한 포인트라 할 것이다. PSSP
* 다음 호에는 카프의 대표적인 소설가 이기영의 단편소설 '서화'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그녀의 많은 대표적인 작품 중에서도 '인간문제'를 중심으로 소설가 강경애를 만나보자.
강경애의 동아일보 연재 장편소설 '인간문제'(1934)는 그녀의 세계관이 고스란히 반영된 경향소설이다. 이기영의 장편소설 '고향'과 함께 1930년대 한국 현대소설에 있어서 이른바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소설 '인간문제'는 용연마을에 있는 원소라는 못에 얽힌 전설을 소개하면서 시작된다. 악덕한 부자의 횡포로 가뭄에 굶주리던 마을 사람들의 투쟁이 시작되고 부자가 이를 법으로 벌하자 마을 사람들이 통곡을 해서 그 부자의 집이 물에 잠겼다는 원소의 전설로 시작된다. 원소 전설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갈등과 투쟁이 계속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상징한다. 이는 장자못 전설을 차용하였던 것으로 소설가가 기존의 전설을 패러디 해서 원소에 얽힌 전설을 사용하는 대목을 유의해서 살필 필요가 있다.
여기서 잠깐, <인간문제>의 모티프로 사용되고 있는 장자못 전설을 알아보자. 이 전설은 광범위한 지역에서 두루 발견되는 전설이다. 그 내용인 즉, 구두쇠이며 악덕한 부자가 스님이 찾아와 시주를 청하자 쪽박을 깬다거나 쇠똥을 담아준다. 이 때 며느리가 스님에게 시주를 하자 스님이 며느리에게만 앞으로 닥칠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하면서 절대 도망갈 때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말해주고 사라진다. 그리고 곧 구두쇠네 집에 천둥번개가 치면서 비가 퍼붓더니 그 구두쇠의 집이 물에 잠겨버리는데 그만 며느리가 뒤를 돌아보면서 며느리도 그 자리에 돌이 된다. 이 전설은 주로 연못과 돌을 증거물로 삼는 전설에 얽힌 사연으로 이런 전설은 성경의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케 한다.(실제로 염분이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소금기둥과 관련한 전설이 많다.) 구두쇠의 악행과 천벌이라는 내용을 살펴보면 부자이면서도 어려운 사람이나 이웃에게 인색한 자가 불행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며 남의 불행에 인색한 자에 대한 비판의식이 담겨있다. 이것은 바로 민중들의 배고픔, 애환에 대한 보상심리 혹은 저항적인 측면이 있는데 이 전설이 전승되는 과정에서 그들의 의식이 나타난 부분이라 할 것이다.(물론 며느리에 대한 부분은 비극적인 결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다만 전설이란 그 이야기를 증명하는 증거물이 있어야 하고 장자못은 연못과 함께 그 근처의 사람형상의 돌이 있어야 하는 전설이기에 돌에 얽힌 사연을 만들기 위해 며느리 이야기를 비극으로 맺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바로 이 점이 강경애의 '인간문제'의 주제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 장자못 모티프에서 고두쇠의 악덕을 중심으로 차용한 것인데 연못의 이름이 '원소 (怨素)'인 것도 앞으로의 내용 전개를 위한 창작인 듯하다. 바로 전설에 얽힌 문제가 곧 주인공 '첫째'와 '선비'가 해결하려고 몸부림치는 '인간 문제'다. 작가는 이러한 계급 투쟁의 문제를 농촌을 배경으로 한 전반부와 인천 지역 노동 현장을 무대로 한 후반부에서 모두 제기하고 있다. 전반부는 첫째와 선비가 가난과 억압에 시달리면서 막연한 반항심만이 나타난다. 그러나 후반부에 들어가면 그들은 계급의식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신철'(지식인)은 이를 매개한다. 하지만 신철의 구속과 전향으로 첫째가 눈뜨게 되는 것은 바로 그 인간문제를 풀 주체가 자신이라는 것이었다.
장자못 전설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인물의 등장과 세부 묘사, 그리고 좀 더 복잡한 스토리와 구성을 가지면서 인간문제는 현대소설로서 가치를 획득한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는 근대가 만든, 강경애가 구연한 또 다른 장자못 전설이지 않을까. 다만 입으로 전승되지 않고 활자로 전승되고 그 형태가 많이 다르지만 장자못 전설이 당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것처럼 그렇게 원소에 얽힌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어 용연의 이야기 그리고 그 곳에 살았던, 하지만 결국 그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얽힌 이야기이지 않을까.
대개의 카프문학이 가진 한계처럼 '인간문제'를 보면 우연의 연발이라던가, 가끔 내면의 묘사가 너무나 도식적이고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오히려 이런 부분은 이야기의 재미와 속도감 있는 전개로 내용을 압도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강경애가 이룬 가장 훌륭한 부분은 공장 노동의 생생한 현장 묘사다. 이는 한국소설의 약점이었던 소재의 빈약성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특히, 인천부두와 방적공장의 묘사는 탁월하다. 당시 일제시대의 노동현장이 어떤 풍경이었는지 이 소설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강경애의 유년을 연상케 하는 주인공들의 고향시절은 당시 상황에 대한 보편성을 담고 있으며 인물도 이후 서울이나 인천으로 간 당시보다 더욱 입체적이고 구체적인 감성이 살아있다.
강경애가 당시 보았던 인천과 농촌의 상황, 그리고 농민일 수도 없는 사람들(더욱 소외된 사람들)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참상이야말로 근대에 본격적으로 드러난 핵심적인 문제이며 이를 형상화한 것은 어쩌면 당대를 사는 지식인으로써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강경애는 계급의 문제를 근본적인 변혁의 길이라 생각하면서도 당대 여성들의 비참한 삶에 주목하고 있다. 부모님을 여의고 아버지처럼 여겼던 자에게 겁탈을 당한 후에 자신과 같은 고통을 당한 친구를 의지하며 인천 노동자로 살아가는 여자주인공의 삶, 그리고 그 인천의 방적공장 안에서 벌어지는 여성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이 어떻게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는가 생각하면서 읽는 것도 이 작품을 보는 중요한 포인트라 할 것이다. PSSP
* 다음 호에는 카프의 대표적인 소설가 이기영의 단편소설 '서화'를 소개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