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최저임금 현실화, 저임금을 양산하는 간접고용을 근절하자
공공서비스 부문 간접고용 노동자 실태와 요구
지난 6월 27일 최저임금위원회는 노동자위원 전원(9인)과 공익위원 2인이 사퇴한 가운데, 2003년 9월부터 2004년 8월까지 적용될 최저임금을 월 56만7천2백60원(시급 2천5백10원)으로 최종 결정하였고, 노동부는 7월 30일 최종 공시하였다. 이는 지난해 최저임금에서 10.3% 인상된 금액이지만, 여전히 생계비에 턱없이 모자라며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공공서비스연맹, 민주노동당,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인권운동사랑방 그리고 사회진보연대는 2003년 4월부터 6월까지 공동으로 공공서비스 부문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실태 조사 사업을 진행하였다. 2001년부터 진행된 최저임금인상 과 최저임금제 개선투쟁은 일정 정도 사회쟁점화 되었고 2002년에는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불안정노동자 스스로가 투쟁주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실태조사사업은 최저임금 투쟁이 최저임금제 개선 뿐 아니라 저임금을 강제하는 구조적 요인에 대한 제거투쟁이자, 저임금 비정규직노동자에 대한 대중적 조직화의 계기로서 저임금․용역노동 철폐투쟁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특히 정부가 공공부문 구조조정, 정부정책 등을 통해 구조적인 저임금과 간접고용을 양산하며 민간부문까지 강제하고 있다는 것을 폭로하고자 공공부문을 그 조사대상으로 삼았다.
1. 조사대상 및 방법
실태조사는 2003년 5월 한 달 동안 진행했으며, 조사원이 해당 사업장의 노동자와 대면하여 설문지에 직접 기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대상은 해당 국가기관이 직접 관리하거나 출자한 기관과 기획예산처, 행정자치부 등의 예산운영지침을 따르고 있는 기관들로 선정했다. 총 9개 지역, 7개 부문, 34개 사업장이 조사대상으로 선정이 됐고, 대상 사업장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파견․용역노동자 중 44개의 직종 표본이 조사되었다
조사내용은 ① 고용형태 일반 ② 노동조건(근로계약, 임금, 근로시간, 휴가제도, 상여금, 퇴직금 등) ③ 사용업체가 가지는 권한(업무에 대한 지휘감독권, 고용관계에 대한 실질적인 결정권을 누가 가지고 있는가) ④ 노동조합(노조가입 여부, 노동조합에 바라는 점)에 관한 것이었다.
2. 공공서비스 부문 간접 고용의 실태(조사 결과)
1) 고용형태 일반
조사대상 직종을 고용형태별로 구분해보면 도급(용역)이 28개, 파견이 14개, 재도급이 2개였으며, 해당 사업장의 비정규직 사용형태의 변화에 대한 조사에서는 정규직이 퇴직한 후 용역업체 소속으로 재취업했다거나 이전에는 정규직이 수행하던 업무를 점차 파견․용역으로 대체했다는 응답이 25개 직종(57%)으로 다수를 차지했다. 이를 통해 일반 사기업에서 볼 수 있듯이 비핵심 인력에 대한 정규직 → 기간제 비정규직 → 간접고용 비정규직화 경로가 공공부문에서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용역계약기간 만료로 인해 용역업체가 바뀔 경우 해당 사업장 노동자들의 고용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질문에서는 10개 업체가 신규채용을 한다고 대답했다. 이 경우는 모두 파견업을 행하는 업체이다. 파견기간 2년경과 후의 고용의제 조항을 피해나가기 위해서 어김없이 신규채용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방송공사의 경우는 ‘파견근로자 관리프로그램’이라는 별도의 전산프로그램을 이용해서 파견노동자 개개인들의 인적사항과 근무현황을 관리하고 있다. 이번 조사과정에서 입수한 KBS의 공문(본사에서 지역총국에 발송한 공문 ‘파견근로자 사용 시 유의사항 및 지도․점검 준비 철저 통보’)에 보면 “파견근로자 사용기간 최장 2년 초과금지 준수”라고 되어 있고 “파견기간 2년으로 만료된 파견근로자를 일정기간 경과 후 다시 파견 사용하는 것은 절대 불가함”이라고 지침을 내리고 있다. 파견법 제6조 3항의 고용의제조항을 피하기 위해 재고용 불가 대상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2) 노동조건
임금 조사결과 법정 최저임금을 실질적인 기본임금으로 하고 있는 곳은 12곳(36.4%)이다. 법정 최저임금이 역설적이게도 임금상한액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현행(2002년 9월~2003년 8월) 514,150원으로 되어 있는 법정 최저임금은 임금총액이 아니라 별도로 임금항목을 분류하여 최저임금 산정에 적합하지 않은 수당은 제외한 금액이다. 즉, 최저임금액 산정 시 제외되어야 하는 임금은 1) 매월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임금 이외의 임금(예, 분기별 상여금 등), 2) 소정의 근로시간 또는 소정의 근로일에 대하여 지급하는 임금 이외의 임금(예, 연장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 등), 3) 기타 최저임금 산정에 적당하지 않은 임금(예, 연월차 수당, 가족수당, 통근수당 등) 등이다.
전남대학교 미화직의 경우는 작년 5월에는 기본임금이 50만원이었다가 작년9월부터는 법정최저임금인 514,150원을 기본임금으로 하고 있다. 조사 사업장 중 전남대의 경우처럼 기본임금을 법정 최저임금액에 맞춰놓은 경우가 2곳이나 되었다. 법을 어기지 않는 한도에서 최대한 저임금을 지불하겠다는 것이다. 법정최저임금을 현재 위반하고 있는 사례 또한 2곳이 발견됐다. 경비직의 경우는 ‘감시단속적 근로’에 해당되어 법정최저임금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 것으로 되어있다.
단순직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임금체계상의 또 하나의 맹점은 근속기간의 차이에도 임금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기능직으로 분류할 수 있는 시설관리 직종은 그나마 근속에 따라서 일정정도 임금이 차이가 나지만 미화, 경비, 운전 등의 직종은 근속기간과 임금과는 별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지 않다. 조사대상직종 가운데 대학교 미화직의 사례 중 근무한지 1년 된 사람과 5년 된 사람의 임금이 똑같이 55만원인 경우도 있었다.
퇴직금에 대한 조사에서 퇴직금 제도가 있다고 대답한 곳 중에서도 임금총액을 크게 하기 위해 월급에 포함하여 분할지급 하는 경우가 6곳이나 된다. 월별로 퇴직금을 분할지급 하는 것이 적법한 중간정산이 되기 위해서는 1) 해당 노동자의 명시적 요구(서면), 2) 임금명세서에 퇴직금액 특정, 3) 실지급한 금액이 법정 퇴직금보다 상회할 것 등 세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조사대상자 중 퇴직금 분할지급을 먼저 요구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또한 1년 중 하루라도 결근할 경우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1년 미만기간(예를 들어 1년 6개월을 근무했을 경우 6개월)은 퇴직금 계산에서 제외시키는 등 변칙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사업장도 있었다. 퇴직금이 없다고 대답한 경우는 계약기간을 9개월과 3개월로 나누어서 한다든가 월별 분할지급 한다고 얘기하면서 실제 급여명세서에는 기재되지 않은 경우이다.
3) 사용자가 가지는 권한
도급계약을 맺고 있지만 실제로는 파견의 형식으로 사용되고 있는지의 여부를 살펴보기 위한 조사 항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원래부터 파견업을 하고 있는 14개 업체를 제외하고 도급계약을 통해 업무를 하고 있는 경우에도 용역 노동자에 대한 업무지휘권을 사용사업체에서 행사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근로자파견사업과 도급 등에 의한 사업의 구별기준에 관한 고시」의 내용을 보면 도급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수급인이 근로자를 직접 지시하고 관리하는 등 ‘노무관리상의 독립성’을 갖출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 내용으로는 1) 업무수행방법, 업무수행결과 평가 등 업무수행에 관한 사항, 2) 휴게시간, 휴일, 시간외 근로 등 근로시간에 관한 사항, 3) 인사이동과 징계 등 기업질서의 유지와 관련된 사항 등에서 수급인이 직접 권한을 행사해야 진정도급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사용사업체에서 업무지휘권 등을 행사하는 경우는 도급으로 위장된 불법파견에 해당할 소지가 크다. 실제로 한국해양대학교와 부산지하철 매표 용역의 경우는 지방노동청으로부터 불법파견으로 판정을 받은 상태이다.
또한 허가받은 파견업이라 하더라도 징계권이나 채용결정권은 파견사업주가 가지고 있음에도 거의 모든 권한이 사용사업주에게 맡겨져 있는 실정을 고려할 때 직접고용을 회피하기 위해 파견의 형식을 갖추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3. 공공서비스부문 간접 고용 확산의 구조적 요인
조사를 통해 법정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과 휴일․휴가사용의 제한과 직접고용의무를 피하기 위한 주기적 해고, 무분별한 재하도급으로 인한 다중적 착취, 노동3권 제한이라는 공공서비스 부문 간접고용 노동자의 실태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노동조건을 만들어내는 구조적 요인은 무엇인가.
1> 간접고용을 강요하는 조달청의 ‘물자조달계약’
노동자마저 사고 파는 ‘물자조달계약’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은 ⌈조달사업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일정 규모 이상의 물자나 시설공사계약이 필요한 경우 조달청에 의뢰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용역계약은 물품조달계약에 해당하는데 대부분 5000만원 이상으로 조달청에 용역계약체결을 의뢰하도록 되어 있다. 조달청 홈페이지에 따르면 현재 조달청을 이용할 수 있는 기관은 2만 6천여 개 공공기관으로, 교육기관 (9,100개/ 34%), 정부투자기관(7,541개/ 29%), 지방자치단체(5,670개/ 21%), 국가기관(4,148개/ 16%)이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정최저임금도 보장하지 못하는 최저가낙찰제
공공기관이 용역계약을 체결할 때에는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최저가낙찰제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조달청이 용역계약 예정가격을 책정할 때 용역노동자의 임금을 최저임금수준으로 계산하는데, 입찰의 과정에서 다시 최저가낙찰이 강제됨으로써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용역계약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불법파견의 온상
조달청이 맺은 용역계약내용을 보면 그 자체가 ‘도급’이 아니라 ‘불법적 근로자파견’의 소지를 가지고 있다. 특히 해양대의 사례 <청소용역특수계약조건 ; 제2조(용역기간) 청소용역기간은 2003. 3. 1~ 2004. 2. 29까지 한다. 다만 방학 중 건물의 특성을 고려하여 아래와 같이 근로자를 감축하여 청소계약기간을 체결한다.>는 방학 중 노동자를 감축하여 청소계약기간을 체결하도록 하여 사실상 탈법적으로 근로계약기간을 설정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2> 외주용역화 강요하는 정부의 각종 지침
1997년 12월부터 본격화된 공공부문 구조조정은 2000년 연말까지 공공부문 사유화, 14만 명에 이르는 인력감축, 외주용역화, 각종 복지제도의 축소, 성과주의 임금체계 도입 등으로 관철되었다. 2001년부터는 이른바 ‘상시적 구조개혁 시스템 정착’이라는 목표 아래, “사전경영혁신 지침 제출 → 경영혁신 진행 → 사후감사 결과를 통한 예산배정과의 연계” 방식으로 일상적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998년 2월 28일 신설된 기획예산위원회는 1998년 4월 13일 ⌈국민과 함께 하는 국가경영혁신⌋을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는데, 여기서 정부산하단체 정비원칙으로서 민간경영이 더 효율적인 분야는 민영화(외국자본 참여허용 등)하고, 공공성․기업성이 함께 요구되는 분야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거친 후 단계적으로 민영화하며, 공공성이 중시되는 분야는 강도 높은 내부 경영혁신을 하는 것으로 하고 있다. 또한 경영혁신의 원칙으로서 “건물 등 시설물 관리, 주차장관리, 식당운영 등 비교적 단순기능으로 수행하는 업무” 등을 민간위탁 할 것을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경우 기획예산처가 1998년 4월 ⌈정부출연연구기관 경영혁신 추진지침⌋을 발표한 이래, 민간위탁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즉 ⌈2001년 정부산하기관 경영혁신계획 검토기준⌋에 따르면 정규직 대 비정규직의 비율을 3:7로 변화시켜내는 것이 중장기 과제로 제시되어 있다. 또 ⌈2001년 정부산하기관 경영혁신 추진계획 보완제출⌋ 공문에서는 전산, 출판, 시설관리, 식당운영은 민간위탁 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2002년 과학기술노조의 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이 전체 인원의 49.5%를 차지하고 있는데 계속 증가추세에 있다.
한편 정부혁신추진위원회가 마련한 ⌈03년도 공기업․산하기관 경영혁신추진지침⌋에 따르면, 2002년 말 수준으로 정원을 유지하면서 외부위탁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을 강제하고 있다. 또한 2002년 경영혁신추진지침에 따르면 44개 기관, 54건을 민간위탁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는데, 실제로는 이를 초과하여 49개 기관, 59건을 완료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처럼 공공부문에서 외주용역화가 마치 경영혁신의 지표인 것처럼 무리하게 추진되다보니 여러 가지 문제를 낳고 있다.
3> 예산낭비․중간착취가 만연하는 지자체의 민간위탁
행정자치부의 각종 구조조정 지침( ‘지방자치단체 비정규 상근인력 관리운영지침’, ‘지방조직개편 추진지침’, ‘지방자치단체 일용인부 관리개선지침’ 등)에 따라 지자체에서는 지속적인 인력감축과 정원동결, 비정규직화, 민간위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일례로 1998~2000년 동안 시설관리원, 환경미화원, 도로보수원 등 각 직종별로 30% 이상 인력 감축되고 민간위탁이 추진되었다. 이러한 민간위탁의 과정은 해당 노동자들에게는 강제적인 구조조정의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민간위탁은 예산의 낭비와 중간착취, 공직사회의 부패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원래 환경미화원의 임금은 1988년부터 행정자치부에서 일괄적으로 임금수준을 결정하여 지자체에 지침으로 내려보낸다. 그런데 지자체가 청소업무를 민간용역업체에 위탁한 뒤로 청소업체들은 갖은 명목으로 미화원에게 책정되어 있는 임금과 복리후생비를 착복하였고 법정 수당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4. 파견․용역노동자의 사회적 요구
1>공공부문에서부터 간접고용을 근절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먼저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과 간접고용을 확산시키는 주된 요인인 인력감축․사유화․외주용역화 중심의 구조조정정책을 중단해야 한다. 기획예산처와 정부혁신추진위원회의 각종 지침을 통한 구조조정을 중단하고, 지자체의 무분별한 민간위탁방침을 철회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조달청의 물자조달계약은 공공부문의 용역화를 강요하는 것일 뿐 아니라 최저임금법․근로기준법․근로자파견법을 위반하는 내용들을 포함하여 시행되고 있다. 따라서 조달청의 물자조달계약에서 노동력을 사고 파는 용역계약은 제외되는 것이 마땅하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불법파견에 대해 단속할 의지가 있다면 공공부문에서부터 위장노무도급계약 형식의 불법파견을 근절하여야 한다. 또한 불법파견으로 확인되었을 때에는 불법파견 사용시점부터 사용사업주가 직접 고용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2> 최저 임금․노동조건을 보장해야 한다.
조사를 통해 법정최저임금이 사실상 파견․용역노동자의 임금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저임금제가 최고임금제가 아니라 실제로 노동자의 최소한의 노동조건을 보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법정최저임금을 현실화(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의 50%)해야 한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임금체계 자체가 왜곡되어 있어 이것이 저임금을 정당화시켜 주는 또 다른 기제가 되고 있다. 공공부문에서부터 탈법적 임금체계를 근절하기 위해 포괄임금제 등을 금지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현행 근로기준법상의 감시적․단속적 근로자에 대한 규정은 시설관리 노동자의 저임금․장시간노동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감시적․단속적 근로자에 대해 최저임금법의 적용을 제외하고 있는 나라는 OECD 국가 중에 한국과 일본 밖에 없다. 기준이 불명확한 감시적․단속적 근로자에 대한 근로기준법․최저임금법 적용제외 규정은 조속히 삭제되어야 한다.PSSP
공공서비스연맹, 민주노동당,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인권운동사랑방 그리고 사회진보연대는 2003년 4월부터 6월까지 공동으로 공공서비스 부문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실태 조사 사업을 진행하였다. 2001년부터 진행된 최저임금인상 과 최저임금제 개선투쟁은 일정 정도 사회쟁점화 되었고 2002년에는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불안정노동자 스스로가 투쟁주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실태조사사업은 최저임금 투쟁이 최저임금제 개선 뿐 아니라 저임금을 강제하는 구조적 요인에 대한 제거투쟁이자, 저임금 비정규직노동자에 대한 대중적 조직화의 계기로서 저임금․용역노동 철폐투쟁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특히 정부가 공공부문 구조조정, 정부정책 등을 통해 구조적인 저임금과 간접고용을 양산하며 민간부문까지 강제하고 있다는 것을 폭로하고자 공공부문을 그 조사대상으로 삼았다.
1. 조사대상 및 방법
실태조사는 2003년 5월 한 달 동안 진행했으며, 조사원이 해당 사업장의 노동자와 대면하여 설문지에 직접 기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대상은 해당 국가기관이 직접 관리하거나 출자한 기관과 기획예산처, 행정자치부 등의 예산운영지침을 따르고 있는 기관들로 선정했다. 총 9개 지역, 7개 부문, 34개 사업장이 조사대상으로 선정이 됐고, 대상 사업장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파견․용역노동자 중 44개의 직종 표본이 조사되었다
조사내용은 ① 고용형태 일반 ② 노동조건(근로계약, 임금, 근로시간, 휴가제도, 상여금, 퇴직금 등) ③ 사용업체가 가지는 권한(업무에 대한 지휘감독권, 고용관계에 대한 실질적인 결정권을 누가 가지고 있는가) ④ 노동조합(노조가입 여부, 노동조합에 바라는 점)에 관한 것이었다.
2. 공공서비스 부문 간접 고용의 실태(조사 결과)
1) 고용형태 일반
조사대상 직종을 고용형태별로 구분해보면 도급(용역)이 28개, 파견이 14개, 재도급이 2개였으며, 해당 사업장의 비정규직 사용형태의 변화에 대한 조사에서는 정규직이 퇴직한 후 용역업체 소속으로 재취업했다거나 이전에는 정규직이 수행하던 업무를 점차 파견․용역으로 대체했다는 응답이 25개 직종(57%)으로 다수를 차지했다. 이를 통해 일반 사기업에서 볼 수 있듯이 비핵심 인력에 대한 정규직 → 기간제 비정규직 → 간접고용 비정규직화 경로가 공공부문에서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용역계약기간 만료로 인해 용역업체가 바뀔 경우 해당 사업장 노동자들의 고용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질문에서는 10개 업체가 신규채용을 한다고 대답했다. 이 경우는 모두 파견업을 행하는 업체이다. 파견기간 2년경과 후의 고용의제 조항을 피해나가기 위해서 어김없이 신규채용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방송공사의 경우는 ‘파견근로자 관리프로그램’이라는 별도의 전산프로그램을 이용해서 파견노동자 개개인들의 인적사항과 근무현황을 관리하고 있다. 이번 조사과정에서 입수한 KBS의 공문(본사에서 지역총국에 발송한 공문 ‘파견근로자 사용 시 유의사항 및 지도․점검 준비 철저 통보’)에 보면 “파견근로자 사용기간 최장 2년 초과금지 준수”라고 되어 있고 “파견기간 2년으로 만료된 파견근로자를 일정기간 경과 후 다시 파견 사용하는 것은 절대 불가함”이라고 지침을 내리고 있다. 파견법 제6조 3항의 고용의제조항을 피하기 위해 재고용 불가 대상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2) 노동조건
임금 조사결과 법정 최저임금을 실질적인 기본임금으로 하고 있는 곳은 12곳(36.4%)이다. 법정 최저임금이 역설적이게도 임금상한액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현행(2002년 9월~2003년 8월) 514,150원으로 되어 있는 법정 최저임금은 임금총액이 아니라 별도로 임금항목을 분류하여 최저임금 산정에 적합하지 않은 수당은 제외한 금액이다. 즉, 최저임금액 산정 시 제외되어야 하는 임금은 1) 매월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임금 이외의 임금(예, 분기별 상여금 등), 2) 소정의 근로시간 또는 소정의 근로일에 대하여 지급하는 임금 이외의 임금(예, 연장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 등), 3) 기타 최저임금 산정에 적당하지 않은 임금(예, 연월차 수당, 가족수당, 통근수당 등) 등이다.
전남대학교 미화직의 경우는 작년 5월에는 기본임금이 50만원이었다가 작년9월부터는 법정최저임금인 514,150원을 기본임금으로 하고 있다. 조사 사업장 중 전남대의 경우처럼 기본임금을 법정 최저임금액에 맞춰놓은 경우가 2곳이나 되었다. 법을 어기지 않는 한도에서 최대한 저임금을 지불하겠다는 것이다. 법정최저임금을 현재 위반하고 있는 사례 또한 2곳이 발견됐다. 경비직의 경우는 ‘감시단속적 근로’에 해당되어 법정최저임금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 것으로 되어있다.
단순직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임금체계상의 또 하나의 맹점은 근속기간의 차이에도 임금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기능직으로 분류할 수 있는 시설관리 직종은 그나마 근속에 따라서 일정정도 임금이 차이가 나지만 미화, 경비, 운전 등의 직종은 근속기간과 임금과는 별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지 않다. 조사대상직종 가운데 대학교 미화직의 사례 중 근무한지 1년 된 사람과 5년 된 사람의 임금이 똑같이 55만원인 경우도 있었다.
퇴직금에 대한 조사에서 퇴직금 제도가 있다고 대답한 곳 중에서도 임금총액을 크게 하기 위해 월급에 포함하여 분할지급 하는 경우가 6곳이나 된다. 월별로 퇴직금을 분할지급 하는 것이 적법한 중간정산이 되기 위해서는 1) 해당 노동자의 명시적 요구(서면), 2) 임금명세서에 퇴직금액 특정, 3) 실지급한 금액이 법정 퇴직금보다 상회할 것 등 세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조사대상자 중 퇴직금 분할지급을 먼저 요구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또한 1년 중 하루라도 결근할 경우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1년 미만기간(예를 들어 1년 6개월을 근무했을 경우 6개월)은 퇴직금 계산에서 제외시키는 등 변칙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사업장도 있었다. 퇴직금이 없다고 대답한 경우는 계약기간을 9개월과 3개월로 나누어서 한다든가 월별 분할지급 한다고 얘기하면서 실제 급여명세서에는 기재되지 않은 경우이다.
3) 사용자가 가지는 권한
도급계약을 맺고 있지만 실제로는 파견의 형식으로 사용되고 있는지의 여부를 살펴보기 위한 조사 항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원래부터 파견업을 하고 있는 14개 업체를 제외하고 도급계약을 통해 업무를 하고 있는 경우에도 용역 노동자에 대한 업무지휘권을 사용사업체에서 행사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근로자파견사업과 도급 등에 의한 사업의 구별기준에 관한 고시」의 내용을 보면 도급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수급인이 근로자를 직접 지시하고 관리하는 등 ‘노무관리상의 독립성’을 갖출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 내용으로는 1) 업무수행방법, 업무수행결과 평가 등 업무수행에 관한 사항, 2) 휴게시간, 휴일, 시간외 근로 등 근로시간에 관한 사항, 3) 인사이동과 징계 등 기업질서의 유지와 관련된 사항 등에서 수급인이 직접 권한을 행사해야 진정도급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사용사업체에서 업무지휘권 등을 행사하는 경우는 도급으로 위장된 불법파견에 해당할 소지가 크다. 실제로 한국해양대학교와 부산지하철 매표 용역의 경우는 지방노동청으로부터 불법파견으로 판정을 받은 상태이다.
또한 허가받은 파견업이라 하더라도 징계권이나 채용결정권은 파견사업주가 가지고 있음에도 거의 모든 권한이 사용사업주에게 맡겨져 있는 실정을 고려할 때 직접고용을 회피하기 위해 파견의 형식을 갖추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3. 공공서비스부문 간접 고용 확산의 구조적 요인
조사를 통해 법정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과 휴일․휴가사용의 제한과 직접고용의무를 피하기 위한 주기적 해고, 무분별한 재하도급으로 인한 다중적 착취, 노동3권 제한이라는 공공서비스 부문 간접고용 노동자의 실태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노동조건을 만들어내는 구조적 요인은 무엇인가.
1> 간접고용을 강요하는 조달청의 ‘물자조달계약’
노동자마저 사고 파는 ‘물자조달계약’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은 ⌈조달사업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일정 규모 이상의 물자나 시설공사계약이 필요한 경우 조달청에 의뢰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용역계약은 물품조달계약에 해당하는데 대부분 5000만원 이상으로 조달청에 용역계약체결을 의뢰하도록 되어 있다. 조달청 홈페이지에 따르면 현재 조달청을 이용할 수 있는 기관은 2만 6천여 개 공공기관으로, 교육기관 (9,100개/ 34%), 정부투자기관(7,541개/ 29%), 지방자치단체(5,670개/ 21%), 국가기관(4,148개/ 16%)이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정최저임금도 보장하지 못하는 최저가낙찰제
공공기관이 용역계약을 체결할 때에는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최저가낙찰제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조달청이 용역계약 예정가격을 책정할 때 용역노동자의 임금을 최저임금수준으로 계산하는데, 입찰의 과정에서 다시 최저가낙찰이 강제됨으로써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용역계약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불법파견의 온상
조달청이 맺은 용역계약내용을 보면 그 자체가 ‘도급’이 아니라 ‘불법적 근로자파견’의 소지를 가지고 있다. 특히 해양대의 사례 <청소용역특수계약조건 ; 제2조(용역기간) 청소용역기간은 2003. 3. 1~ 2004. 2. 29까지 한다. 다만 방학 중 건물의 특성을 고려하여 아래와 같이 근로자를 감축하여 청소계약기간을 체결한다.>는 방학 중 노동자를 감축하여 청소계약기간을 체결하도록 하여 사실상 탈법적으로 근로계약기간을 설정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2> 외주용역화 강요하는 정부의 각종 지침
1997년 12월부터 본격화된 공공부문 구조조정은 2000년 연말까지 공공부문 사유화, 14만 명에 이르는 인력감축, 외주용역화, 각종 복지제도의 축소, 성과주의 임금체계 도입 등으로 관철되었다. 2001년부터는 이른바 ‘상시적 구조개혁 시스템 정착’이라는 목표 아래, “사전경영혁신 지침 제출 → 경영혁신 진행 → 사후감사 결과를 통한 예산배정과의 연계” 방식으로 일상적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998년 2월 28일 신설된 기획예산위원회는 1998년 4월 13일 ⌈국민과 함께 하는 국가경영혁신⌋을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는데, 여기서 정부산하단체 정비원칙으로서 민간경영이 더 효율적인 분야는 민영화(외국자본 참여허용 등)하고, 공공성․기업성이 함께 요구되는 분야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거친 후 단계적으로 민영화하며, 공공성이 중시되는 분야는 강도 높은 내부 경영혁신을 하는 것으로 하고 있다. 또한 경영혁신의 원칙으로서 “건물 등 시설물 관리, 주차장관리, 식당운영 등 비교적 단순기능으로 수행하는 업무” 등을 민간위탁 할 것을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경우 기획예산처가 1998년 4월 ⌈정부출연연구기관 경영혁신 추진지침⌋을 발표한 이래, 민간위탁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즉 ⌈2001년 정부산하기관 경영혁신계획 검토기준⌋에 따르면 정규직 대 비정규직의 비율을 3:7로 변화시켜내는 것이 중장기 과제로 제시되어 있다. 또 ⌈2001년 정부산하기관 경영혁신 추진계획 보완제출⌋ 공문에서는 전산, 출판, 시설관리, 식당운영은 민간위탁 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2002년 과학기술노조의 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이 전체 인원의 49.5%를 차지하고 있는데 계속 증가추세에 있다.
한편 정부혁신추진위원회가 마련한 ⌈03년도 공기업․산하기관 경영혁신추진지침⌋에 따르면, 2002년 말 수준으로 정원을 유지하면서 외부위탁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을 강제하고 있다. 또한 2002년 경영혁신추진지침에 따르면 44개 기관, 54건을 민간위탁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는데, 실제로는 이를 초과하여 49개 기관, 59건을 완료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처럼 공공부문에서 외주용역화가 마치 경영혁신의 지표인 것처럼 무리하게 추진되다보니 여러 가지 문제를 낳고 있다.
3> 예산낭비․중간착취가 만연하는 지자체의 민간위탁
행정자치부의 각종 구조조정 지침( ‘지방자치단체 비정규 상근인력 관리운영지침’, ‘지방조직개편 추진지침’, ‘지방자치단체 일용인부 관리개선지침’ 등)에 따라 지자체에서는 지속적인 인력감축과 정원동결, 비정규직화, 민간위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일례로 1998~2000년 동안 시설관리원, 환경미화원, 도로보수원 등 각 직종별로 30% 이상 인력 감축되고 민간위탁이 추진되었다. 이러한 민간위탁의 과정은 해당 노동자들에게는 강제적인 구조조정의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민간위탁은 예산의 낭비와 중간착취, 공직사회의 부패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원래 환경미화원의 임금은 1988년부터 행정자치부에서 일괄적으로 임금수준을 결정하여 지자체에 지침으로 내려보낸다. 그런데 지자체가 청소업무를 민간용역업체에 위탁한 뒤로 청소업체들은 갖은 명목으로 미화원에게 책정되어 있는 임금과 복리후생비를 착복하였고 법정 수당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4. 파견․용역노동자의 사회적 요구
1>공공부문에서부터 간접고용을 근절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먼저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과 간접고용을 확산시키는 주된 요인인 인력감축․사유화․외주용역화 중심의 구조조정정책을 중단해야 한다. 기획예산처와 정부혁신추진위원회의 각종 지침을 통한 구조조정을 중단하고, 지자체의 무분별한 민간위탁방침을 철회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조달청의 물자조달계약은 공공부문의 용역화를 강요하는 것일 뿐 아니라 최저임금법․근로기준법․근로자파견법을 위반하는 내용들을 포함하여 시행되고 있다. 따라서 조달청의 물자조달계약에서 노동력을 사고 파는 용역계약은 제외되는 것이 마땅하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불법파견에 대해 단속할 의지가 있다면 공공부문에서부터 위장노무도급계약 형식의 불법파견을 근절하여야 한다. 또한 불법파견으로 확인되었을 때에는 불법파견 사용시점부터 사용사업주가 직접 고용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2> 최저 임금․노동조건을 보장해야 한다.
조사를 통해 법정최저임금이 사실상 파견․용역노동자의 임금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저임금제가 최고임금제가 아니라 실제로 노동자의 최소한의 노동조건을 보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법정최저임금을 현실화(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의 50%)해야 한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임금체계 자체가 왜곡되어 있어 이것이 저임금을 정당화시켜 주는 또 다른 기제가 되고 있다. 공공부문에서부터 탈법적 임금체계를 근절하기 위해 포괄임금제 등을 금지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현행 근로기준법상의 감시적․단속적 근로자에 대한 규정은 시설관리 노동자의 저임금․장시간노동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감시적․단속적 근로자에 대해 최저임금법의 적용을 제외하고 있는 나라는 OECD 국가 중에 한국과 일본 밖에 없다. 기준이 불명확한 감시적․단속적 근로자에 대한 근로기준법․최저임금법 적용제외 규정은 조속히 삭제되어야 한다.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