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여성
세계여성행진을 중심으로
“우리는 세계 도처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쟁, 인종주의, 신분차별, 빈곤, 가부장제 그리고 모든 형태의 경제적, 종족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성/젠더 차별과 배제에 대항하여 싸우는 사회운동들이다. 우리는 사회정의, 시민권, 참여 민주주의, 보편적 권리를 위해 싸우며, 인민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위해 싸운다... 우리는 사회적이며 가부장적인 폭력에 대항하여 싸우는 여성들과 연대한다... 우리는 모든 형태의 폭력과 가부장제에 반대하여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평등을 위해 싸우는 3․8 세계여성의 날에 함께 하고자 한다.”
- 사회운동국제총회, <세계사회포럼 3차 호소문> 중에서
“포르투알레그레에서 끝난 3차 세계사회포럼은 인간의 존엄성을 옹호하여 이윤이 아니라 인간을 우선시하고,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여 평화를 건설하는 저항과 대안을 일상 속에서 창조하려는 우리의 결의를 강화한다. 또한 우리는 포르투알레그레에 참가한 다른 사회운동들과의 연대 속에서 이런 작업을 하는 것이 중요함을 확신한다. 이 때문에 세계여성행진은 사회운동국제네트워크에 참가하기로 결정한다. 우리는 이 네트워크가 평등을 위한 투쟁을 포함하는 것이 사회운동들 전체가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이고, ‘또 다른 세계’가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해야 함―이는 새로운 종류의 행동을 발명하고 모든 형태의 억압이 소멸하는 발본적 유토피아를 구상해야 함을 뜻한다―을 증명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 세계여성행진, <2003 세계사회포럼: 여성의 관점에서 본 평가> 중에서
인용한 세계사회포럼의 호소문과 세계여성행진의 평가서는 오늘날 새롭게 확장되고 있는 사회운동의 흐름과 여성운동, 페미니즘 양자가 상호존중하며 함께 하려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한 수많은 조직들이 함께 검토하는 호소문은 운동의 일반적인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호소문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 착취에 맞서 투쟁하고 연대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사회운동들이 여성의 해방을 향한 길이 자신들의 방향성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세계여성행진의 평가서는 여성운동이 다른 사회운동들과의 연대 속에서 전반적인 사회운동들과 함께 가는 여성운동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여성행진은 세계사회포럼을 그 출발에서부터 적극적으로 결합해왔으며, 이제 새롭게 형성된 사회운동국제네트워크에도 기꺼이 참가했다. 또한 세계여성행진은 이 새로운 네트워크가 여성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사회운동 전체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이라고 지적한다. 여성운동과 사회운동 양자의 결합과 상호존중, 상호확장이 양자 모두에게 필수적인 것이고, 따라서 양자 모두가 개조되고 전화될 필요성을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세계여성행진을 중심으로 한 여성운동의 새로운 흐름은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의미들은 아직 명확하지 않고, 오히려 향후 전망이 되어야 할 것들이다. 우선 여성운동이 스스로 결집하여,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세계여성행진은 단일한 이념과 전략을 가진 조직이 아니다. 오히려 광범위하게 분포되어있는 여성들이 결집한 공간이다. 하지만 이들의 결집은 아직은 정식화되지 않았으나 일정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 여성이 겪는 빈곤과 성적 폭력의 문제를 중심으로 여성의 의제를 제기하고, 이를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운동과 결합하려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두 번째 의미는 이들이 여타의 사회운동들과의 연대와 공동의 전망을 모색하려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어떤 운동들보다 적극적으로 반세계화 운동에 나서고 있다. 1차 세계사회포럼에서 <동원을 위한 호소문(Call for Mobilization)>을 작성하기 위해 모였던 최초의 7개의 조직들 중 하나는 세계여성행진이었다. 이후 3차까지 발표된 호소문은 계속해서 다양한 운동들이 함께 나아가야 하는 운동의 전반적인 방향성을 지시하고 있다. 여성들의 운동은 이 속에 여성의 해방을 위한 투쟁의 의미를 포함시키고, 자신들의 투쟁에 세계화를 반대하고 또 다른 세계를 모색하는 전반적인 전망을 고려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마지막의 의미는 세계여성행진으로 표상되는 여성들의 운동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하고, 또 다른 세계를 건설하는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쟁점을 제기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는 기존의 운동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무엇이었던가를 드러내줄 수 있다. ‘계급의 문제가 먼저냐, 여성의 문제가 우선이냐’라는 사회운동과 여성운동 양자에게 결국은 불가능한 구도를 넘어서 진정 또 다른 세계,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세계여성행진
세계여성행진의 출발은 95년 UN의 북경여성대회에서 퀘백여성연맹이 빈곤과 여성에 대한 폭력에 맞서 투쟁하는 국제적인 여성행진을 제안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 제안은 1998년 <여성의 세계적 요구들을 위한 지침서(이하 지침서)>라는 요구 강령을 작성하는 과정을 거쳐 2000년 세계여성행진을 조직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퀘백여성연맹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세계여성행진이 조직되는 과정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여성들에게 가하는 폭력과 생존의 위협이라는 정세적인 조건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즉, 1980년대 외채위기 이후 더욱 성장한 라틴 아메리카의 여성들의 투쟁과 운동의 존재라는 조건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또한 기존의 통념에서 주류라고 볼 수 있는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을 뛰어넘는 현실의 여성운동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지침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요구강령에 레즈비언의 권리를 포함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이러한 조건을 잘 보여준다. 많은 여성운동 조직들이 이 강령이 아메리카와 유럽 이외 지역의 여성 조직들의 참여를 막는 역할을 할 것이라 우려하였다. 이러한 갈등은 명확히 여성들의 의제에 대한 다른 방식의 접근들이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논의들을 통해서 세계여성행진은 전 세계 여성운동들이 보편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문제들을 중심으로 한 요구 강령을 작성했고, 이를 기반으로 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 세계여성행진에는 161개의 국가와 지역의 6000개 이상의 조직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세계여성행진의 요구 강령은 자본의 위기극복 전략인 금융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대한 문제와 여성의 독자적인 권리로서 여성권에 대한 문제의식을 동시에 제기하고 사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여성의 의제 : 빈곤, 성적 폭력, 전쟁
세계여성행진은 여성이 겪는 억압과 착취를 폐절하기 위해 크게는 두 가지 과제를 내세웠다. 세계의 빈곤을 없애는 것과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을 제거하는 것. 그리고 이 과제가 실현되기 위해서 17가지의 요구안을 내고 있다. 이 과제와 요구는 여성들만의 무엇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보편적인 것이고, 여성들 내부의 다양한 편차와 분할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준다. 빈곤과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두 가지 의제를 가지고 세계의 사회운동과 연대하려는 세계여성행진은 빈곤과 폭력은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 그 원인이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문제가 따로 분리되어있는 것은 아니다. 뿌리깊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 체제에 필수적인 구성요소가 되었다. 이것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여성의 문제로서 빈곤과 폭력의 설정은 결국 세계화에 맞서는 여성의 투쟁은 여성의 고유한 권리에 대한 문제와 자본주의 사회의 변혁이라는 문제를 동시에 고민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 빈곤
여성들은 지표에서도 현실에서도 남성들보다 가난하다. 물론 대다수의 민중들은 언제나 빈곤하게 살았다. 그러나 그 중에서 여성들은 빈곤의 최저층을 형성하고 있다. 하루에 고작 2달러 이하의 돈으로 살아야 하는 전세계 45억 인구의 70%가 여성과 아동이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은 전 세계의 토지 중 단 1%만, 세계전체 소득의 10%만 소유하고 있다. 이것은 여성들의 이등 시민이라는 지위 때문이다. 그녀들은 독립적인 인간으로 인정받기보다는 아버지와 남편에게 의존하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실제 아직도 세계의 많은 여성들은 토지를 소유할 권리와 재산을 소유할 어떤 법적 권리도 갖지 못하고 있다. 또한 여성들의 노동은 비가시적이다. 실제 여성들은 세계 공식 노동의 1/3을 차지하고, 비공식 부문의 4/5에 달하는 노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가사노동은 국가의 부를 계산하는 어떤 통계에도 들어가지 않고, 무임으로 여성에게 의존한다. 여성이 책임져야하는 가사노동은 노동시장에서 여성에게 저임금을 할당하는 논리가 된다. 게다가 아직까지도 약 10억의 세계 문맹 인구 중 2/3이 여성인데, 이것은 여성이 자신의 생계나 발전을 위해 교육받을 기회를 박탈당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이런 여성들이 겪는 빈곤을 더욱 심화시켰다. 세계화가 촉진하는 자유무역지대, 자유무역협정과 같은 것들은 민중들의 삶에 가혹하다. 노동권은 무시되고,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횡행한다. 남반구에 들어선 수많은 자유무역지대는 원주민의 터전을 빼앗고,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박탈했으며, 환경을 파괴했다. 이러한 상황은 여성에게 특히 극적이다.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은 여성에게 더욱 불리했다. 민영화, 탈규제화 조치는 여성에게 더욱 커다란 재생산 노동의 부담을 지웠다. 교육과 의료 등 각종 사회적 재생산 영역들이 사유화되면서 가난한 민중들의 재생산 노동은 가족 내로 집중되고 이것은 여성의 일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게다가 민중들의 삶을 더욱 궁핍하게 하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여성들은 부족한 가계를 보충하기 위해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감내하고 노동시장에 진출해야 했다.
빈곤은 여성들에게 특히 더 고통스럽다. 이중의 부담과 빈곤으로 인한 성매매로의 유입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니 말이다. 그럼에도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빈곤하다는 말은 이제 큰 의미가 없게 되었다. 빈곤의 여성화란 말이 말해주듯이 여성이 처한 빈곤의 현실이 일반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세계의 빈곤 자체를 제거해나가기 위한 투쟁과 그 속에서 여성이 여성이기 때문에 특수하게 위협받는 것에 대한 투쟁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에 대한 폭력이란 여성이 가족과 여러 공동체 내에서 겪게되는 육체적․성적․심리적 폭력을 말한다. 가정폭력(아내구타, 성적 학대, 여아에 대한 차별적인 관행 등)과 여성의 육체에 대한 상품화, 강간을 비롯한 다양한 성폭력, 공적인 작업장에서의 성희롱, 성매매, 전쟁에서의 여성 살해, 집단 강간 등이 포함된다. 사실 이런 폭력에 대한 수치는 점점 더 비극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여성에 대한 폭력은 가부장제 하에서 역사적으로 지속되어 온 남녀간의 불평등한 권력관계와 위치에서 기인하지만 신자유주의 하에서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금융세계화에서 자금회전이 빠르고 손쉽고, 단기에 이익을 낼 수 있는 서비스 산업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이런 서비스 산업의 중심적인 부분은 성산업이다. 현재 성산업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고 있다. 심지어 신자유주의 시대 고소득을 낼 수 있다는 문화산업의 경우 여성들의 육체에 대한 상품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속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육체에 대한 권리를 훼손당한다. 그리고 빈곤의 문제와 더불어 성의 상품화가 용인되는 사회적 분위기는 여성들이 성매매를 비롯한 자신의 육체에 대한 상품화를 통한 경제활동에 유입하기 쉬운 조건을 만든다.
빈곤의 문제와는 약간 다르게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제거하기 위한 요구들에 대해서는 세계여성행진 내부의 단체들 간의 의견 조율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말한 레즈비언의 권리를 둘러싼 갈등도 그렇고, 성매매를 둘러싼 논쟁도 그렇다. 지금 당장 성매매를 폐지시키자는 의견과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인식하는 조건 속에서 성매매를 탈범죄화하고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과 생존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갈라지고 있다. 하지만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반대하는 투쟁이 여성의 육체와 정신에 대한 자기 권리를 쟁취하는 투쟁임은 누구나 인식하고 있다. 재생산에 대한 권리, 여성의 성적 자율성에 대한 권리가 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것은 여성들의 권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전체 사회와 어떠한 관계 속에 위치하는지를 고민하게 한다.
▶ 전쟁
여성에 대한 폭력 중 특수하고도 극단적인 형태 중의 하나는 전쟁에서 여성이 겪는 폭력이다. 그렇지만 전쟁은 더 이상 이례적인 상황은 아니게 되었다. 90년대 이후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국지전이나 내전의 형태로. 그리고 9.11 테러 이후 확산된 예방전쟁의 개념은 전쟁의 위험성을 더욱 일상적으로 느끼게 만들고 있다. 이런 전쟁들은 종종 여성에 대한 폭력을 무기로 그리고 전략으로 행사한다. 특히 금융세계화의 진전과 더불어 드러나는 다양한 갈등과 불만을 관리하면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통치성을 유지하기 위한 ‘새로운 전쟁’은 종종 한 인종(혹은 민족)의 배제와 절멸을 목적으로 한다. 이 때 여성학살은 인종의 절멸의 핵심적인 수단이다. 따라서 여성학살의 방식으로 여성에 대한 집단적이고 체계적인 강간이 일어나고, 이것이 전쟁의 목적이자 수단이 되는 양상이 드러난다. 이러한 폭력은 여성이 스스로의 해방을 위한 조건을 인식하고,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이다. 전쟁을 반대하는 것은 평화라는 전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는 과정이다. 동시에 여성에 대한 극단적인 폭력을 제거하고, 해방을 위한 조건을 창출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정말 중요한 여성의 의제가 된다.
세계여성행진은 전쟁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에 대해 반대해야 함을 역설하며 여성운동이 반전투쟁에 나설 것을 호소하고 결의하는 <반전선언문>을 발표했다. 여성운동과 반전투쟁의 매개고리를 만들어가려는 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대안세계화 운동과 여성운동
세계여성행진을 중심으로 한 여성운동은 대안세계화 운동에서 아주 중요하고도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사회포럼의 참가자 중 절반 이상은 여성이며, 그들은 노동자이자 여성으로서, 실업자이자 여성으로서, 농민이자 여성으로서 세계화를 반대하고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이미 여성들의 투쟁과 여성들의 문제는 반세계화 운동이라는 새로운 운동 속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사실 1980년대 이래로 라틴 아메리카에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맞서 끈질기게 싸워온 인민들의 대부분은 여성들이었다. 그들은 원주민으로서, 실업자로서, 노동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했지만, 그것이 여성들의 운동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여성운동의 성공이 없이 대안세계화 운동이 성공할 수 없고, 대안세계화 운동의 성공 없이 여성운동이 성공할 수 없다고. 양자 모두의 성공을 위해서는 양자 모두가 상호작용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양자 모두가 고려해야 할 지점이 있을 것이다.
우선 여성의 해방을 위한 조건을 창출하는 문제가 세계사회포럼의 장기적인 전망 속에 결합될 수 있는가하는 점이다. 물론 세계사회포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전략이나 강령을 만들어가려는 단위가 아니고, 다양성의 존중을 무엇보다 우선시 한다. 그렇지만 <호소문>과 같이 일반적인 방향성을 지시하려는 시도가 포럼에 참가한 많은 단체들의 참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여성의 의제에 대해 개방적이어야 하고, 참여한 단위들이 이 문제에 대해 소통하고 확장해야 한다. 단지 정치적인 용인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 패널토론과 같이 조직위원회가 준비하는 행사에 남녀동수 패널의 원칙을 고수하자와 같은 토론과 논의의 원칙을 수립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고려해볼 수 있다.
그리고 세계여성행진이 빈곤과 여성에 대한 폭력을 중심으로 여성의 상황을 분석하고, 그것으로부터 도출된 여성의 권리를 더욱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이를 통해 여성운동들 사이의 연대와 결집, 그리고 여타의 사회운동과의 연대를 확장시킬 수 있겠는가하는 점이다. 지금까지 세계여성행진의 활동과 그 방향성은 이에 부합되었다. 여러 지역과 국가로 분포되어있는 여성운동의 그룹과 조직들과의 논의와 소통을 더욱 활발히 하고, 그에 기반을 둔 공동의 행동을 조직하는 일이 강화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국제사회운동네트워크, 세계사회포럼에서의 역할과 발언을 더욱 높여가야 하는 과제도 있다. 세계여성행진은 2005년 10월, 거대한 세계 여성들의 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인류를 위한 세계여성헌장>을 선포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계획이 실현되는 과정이 위의 두 과제가 달성되고 실현되는 과정과 맞물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세계여성헌장>이 세계사회운동들의 헌장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것은 여성들을 대안세계화 운동의 일주체로 인식하고, 대안세계화 운동 자체가 여성의 권리와 요구를 인식할 수 있는 전화의 과정과 맞물릴 때 가능해질 것이다.PSSP
- 사회운동국제총회, <세계사회포럼 3차 호소문> 중에서
“포르투알레그레에서 끝난 3차 세계사회포럼은 인간의 존엄성을 옹호하여 이윤이 아니라 인간을 우선시하고,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여 평화를 건설하는 저항과 대안을 일상 속에서 창조하려는 우리의 결의를 강화한다. 또한 우리는 포르투알레그레에 참가한 다른 사회운동들과의 연대 속에서 이런 작업을 하는 것이 중요함을 확신한다. 이 때문에 세계여성행진은 사회운동국제네트워크에 참가하기로 결정한다. 우리는 이 네트워크가 평등을 위한 투쟁을 포함하는 것이 사회운동들 전체가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이고, ‘또 다른 세계’가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해야 함―이는 새로운 종류의 행동을 발명하고 모든 형태의 억압이 소멸하는 발본적 유토피아를 구상해야 함을 뜻한다―을 증명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 세계여성행진, <2003 세계사회포럼: 여성의 관점에서 본 평가> 중에서
인용한 세계사회포럼의 호소문과 세계여성행진의 평가서는 오늘날 새롭게 확장되고 있는 사회운동의 흐름과 여성운동, 페미니즘 양자가 상호존중하며 함께 하려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한 수많은 조직들이 함께 검토하는 호소문은 운동의 일반적인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호소문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 착취에 맞서 투쟁하고 연대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사회운동들이 여성의 해방을 향한 길이 자신들의 방향성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세계여성행진의 평가서는 여성운동이 다른 사회운동들과의 연대 속에서 전반적인 사회운동들과 함께 가는 여성운동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여성행진은 세계사회포럼을 그 출발에서부터 적극적으로 결합해왔으며, 이제 새롭게 형성된 사회운동국제네트워크에도 기꺼이 참가했다. 또한 세계여성행진은 이 새로운 네트워크가 여성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사회운동 전체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이라고 지적한다. 여성운동과 사회운동 양자의 결합과 상호존중, 상호확장이 양자 모두에게 필수적인 것이고, 따라서 양자 모두가 개조되고 전화될 필요성을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세계여성행진을 중심으로 한 여성운동의 새로운 흐름은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의미들은 아직 명확하지 않고, 오히려 향후 전망이 되어야 할 것들이다. 우선 여성운동이 스스로 결집하여,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세계여성행진은 단일한 이념과 전략을 가진 조직이 아니다. 오히려 광범위하게 분포되어있는 여성들이 결집한 공간이다. 하지만 이들의 결집은 아직은 정식화되지 않았으나 일정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 여성이 겪는 빈곤과 성적 폭력의 문제를 중심으로 여성의 의제를 제기하고, 이를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운동과 결합하려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두 번째 의미는 이들이 여타의 사회운동들과의 연대와 공동의 전망을 모색하려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어떤 운동들보다 적극적으로 반세계화 운동에 나서고 있다. 1차 세계사회포럼에서 <동원을 위한 호소문(Call for Mobilization)>을 작성하기 위해 모였던 최초의 7개의 조직들 중 하나는 세계여성행진이었다. 이후 3차까지 발표된 호소문은 계속해서 다양한 운동들이 함께 나아가야 하는 운동의 전반적인 방향성을 지시하고 있다. 여성들의 운동은 이 속에 여성의 해방을 위한 투쟁의 의미를 포함시키고, 자신들의 투쟁에 세계화를 반대하고 또 다른 세계를 모색하는 전반적인 전망을 고려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마지막의 의미는 세계여성행진으로 표상되는 여성들의 운동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하고, 또 다른 세계를 건설하는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쟁점을 제기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는 기존의 운동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무엇이었던가를 드러내줄 수 있다. ‘계급의 문제가 먼저냐, 여성의 문제가 우선이냐’라는 사회운동과 여성운동 양자에게 결국은 불가능한 구도를 넘어서 진정 또 다른 세계,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세계여성행진
세계여성행진의 출발은 95년 UN의 북경여성대회에서 퀘백여성연맹이 빈곤과 여성에 대한 폭력에 맞서 투쟁하는 국제적인 여성행진을 제안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 제안은 1998년 <여성의 세계적 요구들을 위한 지침서(이하 지침서)>라는 요구 강령을 작성하는 과정을 거쳐 2000년 세계여성행진을 조직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퀘백여성연맹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세계여성행진이 조직되는 과정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여성들에게 가하는 폭력과 생존의 위협이라는 정세적인 조건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즉, 1980년대 외채위기 이후 더욱 성장한 라틴 아메리카의 여성들의 투쟁과 운동의 존재라는 조건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또한 기존의 통념에서 주류라고 볼 수 있는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을 뛰어넘는 현실의 여성운동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지침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요구강령에 레즈비언의 권리를 포함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이러한 조건을 잘 보여준다. 많은 여성운동 조직들이 이 강령이 아메리카와 유럽 이외 지역의 여성 조직들의 참여를 막는 역할을 할 것이라 우려하였다. 이러한 갈등은 명확히 여성들의 의제에 대한 다른 방식의 접근들이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논의들을 통해서 세계여성행진은 전 세계 여성운동들이 보편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문제들을 중심으로 한 요구 강령을 작성했고, 이를 기반으로 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 세계여성행진에는 161개의 국가와 지역의 6000개 이상의 조직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세계여성행진의 요구 강령은 자본의 위기극복 전략인 금융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대한 문제와 여성의 독자적인 권리로서 여성권에 대한 문제의식을 동시에 제기하고 사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여성의 의제 : 빈곤, 성적 폭력, 전쟁
세계여성행진은 여성이 겪는 억압과 착취를 폐절하기 위해 크게는 두 가지 과제를 내세웠다. 세계의 빈곤을 없애는 것과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을 제거하는 것. 그리고 이 과제가 실현되기 위해서 17가지의 요구안을 내고 있다. 이 과제와 요구는 여성들만의 무엇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보편적인 것이고, 여성들 내부의 다양한 편차와 분할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준다. 빈곤과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두 가지 의제를 가지고 세계의 사회운동과 연대하려는 세계여성행진은 빈곤과 폭력은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 그 원인이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문제가 따로 분리되어있는 것은 아니다. 뿌리깊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 체제에 필수적인 구성요소가 되었다. 이것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여성의 문제로서 빈곤과 폭력의 설정은 결국 세계화에 맞서는 여성의 투쟁은 여성의 고유한 권리에 대한 문제와 자본주의 사회의 변혁이라는 문제를 동시에 고민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 빈곤
여성들은 지표에서도 현실에서도 남성들보다 가난하다. 물론 대다수의 민중들은 언제나 빈곤하게 살았다. 그러나 그 중에서 여성들은 빈곤의 최저층을 형성하고 있다. 하루에 고작 2달러 이하의 돈으로 살아야 하는 전세계 45억 인구의 70%가 여성과 아동이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은 전 세계의 토지 중 단 1%만, 세계전체 소득의 10%만 소유하고 있다. 이것은 여성들의 이등 시민이라는 지위 때문이다. 그녀들은 독립적인 인간으로 인정받기보다는 아버지와 남편에게 의존하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실제 아직도 세계의 많은 여성들은 토지를 소유할 권리와 재산을 소유할 어떤 법적 권리도 갖지 못하고 있다. 또한 여성들의 노동은 비가시적이다. 실제 여성들은 세계 공식 노동의 1/3을 차지하고, 비공식 부문의 4/5에 달하는 노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가사노동은 국가의 부를 계산하는 어떤 통계에도 들어가지 않고, 무임으로 여성에게 의존한다. 여성이 책임져야하는 가사노동은 노동시장에서 여성에게 저임금을 할당하는 논리가 된다. 게다가 아직까지도 약 10억의 세계 문맹 인구 중 2/3이 여성인데, 이것은 여성이 자신의 생계나 발전을 위해 교육받을 기회를 박탈당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이런 여성들이 겪는 빈곤을 더욱 심화시켰다. 세계화가 촉진하는 자유무역지대, 자유무역협정과 같은 것들은 민중들의 삶에 가혹하다. 노동권은 무시되고,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횡행한다. 남반구에 들어선 수많은 자유무역지대는 원주민의 터전을 빼앗고,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박탈했으며, 환경을 파괴했다. 이러한 상황은 여성에게 특히 극적이다.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은 여성에게 더욱 불리했다. 민영화, 탈규제화 조치는 여성에게 더욱 커다란 재생산 노동의 부담을 지웠다. 교육과 의료 등 각종 사회적 재생산 영역들이 사유화되면서 가난한 민중들의 재생산 노동은 가족 내로 집중되고 이것은 여성의 일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게다가 민중들의 삶을 더욱 궁핍하게 하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여성들은 부족한 가계를 보충하기 위해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감내하고 노동시장에 진출해야 했다.
빈곤은 여성들에게 특히 더 고통스럽다. 이중의 부담과 빈곤으로 인한 성매매로의 유입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니 말이다. 그럼에도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빈곤하다는 말은 이제 큰 의미가 없게 되었다. 빈곤의 여성화란 말이 말해주듯이 여성이 처한 빈곤의 현실이 일반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세계의 빈곤 자체를 제거해나가기 위한 투쟁과 그 속에서 여성이 여성이기 때문에 특수하게 위협받는 것에 대한 투쟁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에 대한 폭력이란 여성이 가족과 여러 공동체 내에서 겪게되는 육체적․성적․심리적 폭력을 말한다. 가정폭력(아내구타, 성적 학대, 여아에 대한 차별적인 관행 등)과 여성의 육체에 대한 상품화, 강간을 비롯한 다양한 성폭력, 공적인 작업장에서의 성희롱, 성매매, 전쟁에서의 여성 살해, 집단 강간 등이 포함된다. 사실 이런 폭력에 대한 수치는 점점 더 비극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여성에 대한 폭력은 가부장제 하에서 역사적으로 지속되어 온 남녀간의 불평등한 권력관계와 위치에서 기인하지만 신자유주의 하에서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금융세계화에서 자금회전이 빠르고 손쉽고, 단기에 이익을 낼 수 있는 서비스 산업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이런 서비스 산업의 중심적인 부분은 성산업이다. 현재 성산업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고 있다. 심지어 신자유주의 시대 고소득을 낼 수 있다는 문화산업의 경우 여성들의 육체에 대한 상품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속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육체에 대한 권리를 훼손당한다. 그리고 빈곤의 문제와 더불어 성의 상품화가 용인되는 사회적 분위기는 여성들이 성매매를 비롯한 자신의 육체에 대한 상품화를 통한 경제활동에 유입하기 쉬운 조건을 만든다.
빈곤의 문제와는 약간 다르게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제거하기 위한 요구들에 대해서는 세계여성행진 내부의 단체들 간의 의견 조율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말한 레즈비언의 권리를 둘러싼 갈등도 그렇고, 성매매를 둘러싼 논쟁도 그렇다. 지금 당장 성매매를 폐지시키자는 의견과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인식하는 조건 속에서 성매매를 탈범죄화하고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과 생존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갈라지고 있다. 하지만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반대하는 투쟁이 여성의 육체와 정신에 대한 자기 권리를 쟁취하는 투쟁임은 누구나 인식하고 있다. 재생산에 대한 권리, 여성의 성적 자율성에 대한 권리가 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것은 여성들의 권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전체 사회와 어떠한 관계 속에 위치하는지를 고민하게 한다.
▶ 전쟁
여성에 대한 폭력 중 특수하고도 극단적인 형태 중의 하나는 전쟁에서 여성이 겪는 폭력이다. 그렇지만 전쟁은 더 이상 이례적인 상황은 아니게 되었다. 90년대 이후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국지전이나 내전의 형태로. 그리고 9.11 테러 이후 확산된 예방전쟁의 개념은 전쟁의 위험성을 더욱 일상적으로 느끼게 만들고 있다. 이런 전쟁들은 종종 여성에 대한 폭력을 무기로 그리고 전략으로 행사한다. 특히 금융세계화의 진전과 더불어 드러나는 다양한 갈등과 불만을 관리하면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통치성을 유지하기 위한 ‘새로운 전쟁’은 종종 한 인종(혹은 민족)의 배제와 절멸을 목적으로 한다. 이 때 여성학살은 인종의 절멸의 핵심적인 수단이다. 따라서 여성학살의 방식으로 여성에 대한 집단적이고 체계적인 강간이 일어나고, 이것이 전쟁의 목적이자 수단이 되는 양상이 드러난다. 이러한 폭력은 여성이 스스로의 해방을 위한 조건을 인식하고,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이다. 전쟁을 반대하는 것은 평화라는 전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는 과정이다. 동시에 여성에 대한 극단적인 폭력을 제거하고, 해방을 위한 조건을 창출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정말 중요한 여성의 의제가 된다.
세계여성행진은 전쟁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에 대해 반대해야 함을 역설하며 여성운동이 반전투쟁에 나설 것을 호소하고 결의하는 <반전선언문>을 발표했다. 여성운동과 반전투쟁의 매개고리를 만들어가려는 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대안세계화 운동과 여성운동
세계여성행진을 중심으로 한 여성운동은 대안세계화 운동에서 아주 중요하고도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사회포럼의 참가자 중 절반 이상은 여성이며, 그들은 노동자이자 여성으로서, 실업자이자 여성으로서, 농민이자 여성으로서 세계화를 반대하고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이미 여성들의 투쟁과 여성들의 문제는 반세계화 운동이라는 새로운 운동 속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사실 1980년대 이래로 라틴 아메리카에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맞서 끈질기게 싸워온 인민들의 대부분은 여성들이었다. 그들은 원주민으로서, 실업자로서, 노동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했지만, 그것이 여성들의 운동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여성운동의 성공이 없이 대안세계화 운동이 성공할 수 없고, 대안세계화 운동의 성공 없이 여성운동이 성공할 수 없다고. 양자 모두의 성공을 위해서는 양자 모두가 상호작용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양자 모두가 고려해야 할 지점이 있을 것이다.
우선 여성의 해방을 위한 조건을 창출하는 문제가 세계사회포럼의 장기적인 전망 속에 결합될 수 있는가하는 점이다. 물론 세계사회포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전략이나 강령을 만들어가려는 단위가 아니고, 다양성의 존중을 무엇보다 우선시 한다. 그렇지만 <호소문>과 같이 일반적인 방향성을 지시하려는 시도가 포럼에 참가한 많은 단체들의 참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여성의 의제에 대해 개방적이어야 하고, 참여한 단위들이 이 문제에 대해 소통하고 확장해야 한다. 단지 정치적인 용인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 패널토론과 같이 조직위원회가 준비하는 행사에 남녀동수 패널의 원칙을 고수하자와 같은 토론과 논의의 원칙을 수립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고려해볼 수 있다.
그리고 세계여성행진이 빈곤과 여성에 대한 폭력을 중심으로 여성의 상황을 분석하고, 그것으로부터 도출된 여성의 권리를 더욱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이를 통해 여성운동들 사이의 연대와 결집, 그리고 여타의 사회운동과의 연대를 확장시킬 수 있겠는가하는 점이다. 지금까지 세계여성행진의 활동과 그 방향성은 이에 부합되었다. 여러 지역과 국가로 분포되어있는 여성운동의 그룹과 조직들과의 논의와 소통을 더욱 활발히 하고, 그에 기반을 둔 공동의 행동을 조직하는 일이 강화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국제사회운동네트워크, 세계사회포럼에서의 역할과 발언을 더욱 높여가야 하는 과제도 있다. 세계여성행진은 2005년 10월, 거대한 세계 여성들의 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인류를 위한 세계여성헌장>을 선포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계획이 실현되는 과정이 위의 두 과제가 달성되고 실현되는 과정과 맞물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세계여성헌장>이 세계사회운동들의 헌장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것은 여성들을 대안세계화 운동의 일주체로 인식하고, 대안세계화 운동 자체가 여성의 권리와 요구를 인식할 수 있는 전화의 과정과 맞물릴 때 가능해질 것이다.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