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와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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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변화에 대한 콜론타이의 생각을 담은 이 팜플렛은 1918년에 쓰여졌다. 전쟁과 혁명의 혼란을 맞이한 소비에트의 당시 상황은 가족을 비롯한 사회 전반의 토대를 새롭게 구성해야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러시아에서 지배적인 결혼 형태는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종교에 기초한 결혼이었다. 이 결혼은 죽을 때까지 깨질 수 없는 것이었고, 글에 나타난 것처럼 여성들에게 가혹한 것이었다. 콜론타이는 러시아 혁명의 과정에서 이러한 전통적인 결혼이 유지될 수 없는 조건들이 출현하고, 실제 전통적인 결혼이 해체되고 있는 상황에 주목했다. 콜론타이는 이러한 상황을 공산주의 사회에서 새롭게 구성될 남녀의 관계와 그에 부합하는 가족의 형태를 발전시켜야하는 상황으로 보았다. 콜론타이는 새로운 남녀 관계는 소비에트의 동등한 두 구성원이 자유로운 사랑과 상호존중으로 결합하는 것이어야 함을 주장했다. 이러한 결합은 여성의 억압과 종속을 기초로 한 전통적인 가족을 전화시켜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여성이 가사와 양육의 부담에서 벗어나 자신의 일을 통해 경제적 독립을 달성해야하고,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언제든 그것이 자신에게 종속과 속박을 요구할 때 철수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가족은 이러한 방향에 부합할 수 있도록 전화되어야 했다. 이 글은 콜론타이의 이러한 생각을 담은 글이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전통적인 가족이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그것이 여성의 해방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주로 다루고 있다.
그 당시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1918년 소비에트의 가족법이 개정되었다. 이 가족법이 교회와 종교에 의한 결혼을 시민법에 의한 결혼으로 대체하는 등 그 시대의 상황을 반영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아버지가 자녀를 부양하고, 가족이 미성년자들의 교육과 양육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강조되었다. 뿐만 아니라 여전히 종교와 관습에 의존한 결혼이 다수였던 농민들의 결혼은 단지 사실혼으로 남게 되었다. 결국 새로운 노동자들의 국가 속에서 가족의 ‘전화’를 역설했던 콜론타이의 생각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사회 속에서 최소한의 생계단위, 상호의존적인 집단으로서 가족을 ‘강화’하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콜론타이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국가라는 공동체가 가사와 양육의 책임져야 함을 주장하면서, 전시 공산주의에서의 의무노동법안이나 그 후 신경제정책(NEP), 그리고 1926년 또 한번의 가족법 개정과 같은 계기 속에서 여성들의 조건과 권리에 입각한 주장을 펼쳤다. 이와 동시에 남녀 노동자의 새로운 관계에 대한 대답도 계속해서 발전시켜갔으며, ‘자유결합’이라고 일컬어지는 새로운 관계를 모색했다. 새로운 남녀관계에 대한 콜론타이의 더욱 자세한 생각은 월간사회진보연대 2003년 7․8월호에 실린 ⌈날개 달린 에로스의 길을 열자: 젊은 노동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참조할 수 있다.
생산에서 여성의 역할; 그것이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
공산주의 하에서도 가족은 계속 존재할 것인가? 가족은 같은 형태로 유지될 것인가? 이런 질문들은 많은 노동자 계급의 여성들을 곤란하게 하고 남자들 또한 걱정하게 만들고 있다. 삶은 바로 눈앞에서 변화하고 있다; 오랜 습관과 관행들은 사라져가고 있으며, 프롤레타리아 가족의 삶은 새롭고 친숙하지 않은, 또 어떤 이들의 눈에는 "괴기한"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여성노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주의를 끄는 또 다른 사실은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이혼이 더 쉬워진 것이다. 1917년 12월 18일 발포된 인민위원의회의 법령은 이혼이 더 이상 부자들만 할 수 있는 사치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여성노동자는 그녀를 때리고 술주정과 거친 행동으로 그녀의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 남편과 떨어져 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몇 달 심지어 몇 년 동안 청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제 상호 동의에 의한 이혼은 1~2주 이상 걸리지 않는다. 결혼한 삶이 행복하지 않았던 여성들은 이 쉬운 이혼을 환영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 특히 남편을 “생계수단”으로 여기는데 익숙해진 사람들은 두려워했다. 그들은 여성이 개별적인 남성이 아니라 공동체와 사회 안에서 지원을 요구하고 찾는 것에 스스로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진실을 회피하려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남자가 모든 것이고 여자는 아무것도 아닌 오래된 가족, 여성의 의지, 그녀를 위한 돈과 시간은 어디에도 없는 전통적인 가족은 바로 눈앞에서 변하고 있다. 그러나 놀랄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결코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단지 우리의 무지일 뿐이다. “늘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는 속담만큼 진실이 아닌 것도 없다. 모든 것은 바뀔 수 있고, 어떤 관습이나 정치적인 조직들, 도덕적인 원칙들도 고정되거나 신성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단지 과거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살펴보기만 하면 된다. 역사의 과정에서 가족의 구조는 여러 번 변했다; 한때 가족은 오늘날의 가족과 상당히 달랐다. 친족가족이 표준으로 사고되던 때도 있었다: 어머니가 그녀의 자녀들과 손자․손녀, 증손자․증손녀로 구성된 가족을 이끌었고, 그들은 함께 살고, 함께 일했다. 다른 시기에는 가부장적인 가족이 규칙이었다. 이 경우에 아버지의 의지는 가족의 다른 구성원 모두에게 법이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러시아 시골의 소농계급 사이에서 이런 가족들이 발견될 수 있다. 여기서 가족생활의 도덕과 관습은 도시지역 프롤레타리아의 그것과는 다르다. 시골에서 그들은 노동자들이 이미 오래 전에 잊어버린 규범을 지키고 있다. 게다가 가족의 구조와 가족생활의 관습은 나라마다 다르다. 터키나 아랍 또는 페르시아 같은 나라들에서는 한 남자가 여러 명의 아내들을 가지는 일이 허용된다. 우리는 어린 소녀가 결혼할 때까지는 처녀로 남아있을 거라는 기대를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많은 연인을 가졌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여자들이 그 수만큼의 팔찌를 팔과 다리에 장식하는 종족들도 있다. 우리를 깜짝 놀라게 만들고 심지어 비도덕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 많은 관습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상적인 것으로 사고되며, 그들의 입장에서는 우리의 법과 관습들이 ‘죄스러운’ 것으로 사고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가족이 변화의 과정에 있다는 사실에, 낡고 필요 없는 것들은 사라지고 새로운 남녀 관계가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에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우리의 일은 가족 체계의 어떤 측면이 시효가 만료된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고, 노동자․농민 계급 남녀 사이의 어떤 관계가 그리고 어떤 권리와 의무가 새롭게 형성된 노동자들의 러시아의 생활조건들과 가장 잘 조화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새로운 삶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들은 유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오래되고 낡은 모든 것, 지배와 예속의 저주받은 시대, 지주와 자본가들의 시대로부터 유래한 모든 것들은 착취하는 계급 그 자체와 프롤레타리아와 빈민의 다른 적들과 함께 사라져야만 한다.
도시와 시골의 프롤레타리아에게 익숙했던 가족 형태는 이러한 과거의 유산들 중 하나이다. 교회 결혼에 기초한 고립되고 견고하게 짜여진 가족이 가족구성원들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했던 시절이 있었다. 만약 가족이 없었다면 누가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길렀겠는가? 누가 아이들에게 충고를 해주었겠는가? 지난날, 고아가 되는 것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운명이었다. 예전의 가족에서 남편은 돈을 벌고 아내와 아이들을 부양했다. 아내로서 그녀의 역할은 그녀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집안을 돌보고 아이를 양육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백년동안 이런 관습적인 가족 구조는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모든 나라에서, 고용주가 노동자를 고용하는 공장과 다른 기업들의 수가 증가하는 모든 나라에서 점차 쇠약해졌다. 삶의 일반적인 조건들이 변화함에 따라 가족생활의 관습들과 도덕적 원칙들도 변화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족 생활의 급진적인 변화에 기여했던 것은 보편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여성 노동이다. 이전에는 오직 남자만을 생계부양자로 여겼었다. 그러나 지난 50~60년 동안(그리고 다른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약간 더 긴 기간동안) 러시아 여성들은 가족과 가정 밖에서 유급의 일을 찾도록 강요받았다. “생계부양자”의 임금이 가족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게 되면서, 여성들은 스스로가 임금을 찾아 공장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게 되었음을 발견했다. 일용노동자로, 판매원으로, 혹은 점원으로, 그리고 세탁부, 하녀로 가정 밖에서 일하기 시작하는 노동자 계급 여성들의 수는 매년 증가했다. 통계는 1차 세계대전 발발 전인 1914년에 유럽과 미국에서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는 여성들이 약 6천만 명이었고, 전쟁동안 이 수는 상당히 증가하였음을 보여준다. 이 여성들의 거의 절반은 기혼이었다. 그들의 가족생활이 어떤 형태였을 것인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만약 아내와 어머니가 최소한 8시간을 일하러 나가고, 이동의 시간까지 합쳐서 하루에 10시간 동안 집을 비운다면, 어떤 종류의 “가족생활”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녀의 가정은 고려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거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 이런 환경의 모든 위험에 노출된 채 어머니의 보살핌 없이 자란다. 아내이면서 어머니이고 노동자인 여성은 이런 역할들을 완수하기 위해서 모든 에너지를 짜내야만 한다. 그녀는 공장과 인쇄소 또는 상업적 시설에서 그녀의 남편과 같은 시간을 일해야만 하고, 그것에 더하여 가사노동에 종사하고 아이들을 돌볼 시간을 찾아야만 한다. 자본주의는 여성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있다: 어머니 또는 주부로서 보살핌을 감소시키지 않은 채 그녀를 임금노동자로 만들고 있다. 여성은 3중 부담의 무게 아래에서 비틀거린다. 그녀는 고통을 겪고, 그녀의 얼굴은 항상 눈물로 젖어있다. 여성에게 삶이 쉬웠던 적은 결코 없었다. 하지만 수백만 여성노동자들의 운명이 자본주의의 멍에 아래 놓여있는, 이 공장생산의 절정기만큼이나 여성들의 삶이 어렵고 절망적인 적은 없었다.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일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감에 따라 가족은 부서진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른 시간에 교대로 일할 때 그리고 아내가 그녀의 자식들을 위해 적절한 식사를 준비할 시간조차 없을 때, 어떻게 서로 가족생활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어머니와 아버지가 하루종일 밖에서 일하고 있고 그들의 아이들과 잠시도 시간을 보낼 수 없다면, 누가 부모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옛날과 아주 다르다. 어머니는 집에 남아있었고 가정주부로서의 의무에 종사했다; 그녀의 아이들은 그녀의 곁에, 그녀의 감시망 아래 있었다. 요즘에 여성노동자는 공장의 호각소리를 듣자마자 이른 아침 서둘러 집밖으로 나간다. 저녁이 되어 다시 호각소리가 들리면 그녀는 가사 임무 중에 가장 긴요한 일들을 해치우기 위해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다. 그 일을 마치고 나서야 그녀는 다음 날 아침 다시 일하기 위해 쉴 수 있다. 그녀는 잠이 부족해 지쳐간다. 기혼 여성노동자에게 생활은 노역장(勞役場)처럼 힘들다. 그런 까닭에 가족의 끈이 느슨해지고 가족이 시들어 가는 것은 놀랍지 않다. 가족을 결합시켰던 환경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은 그 구성원들에게 또는 국가 전체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를 그만두고 있다. 이제 과거의 가족구조는 단지 장애물일 뿐이다. 예전의 가족이 그렇게 강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로 남편과 아버지가 가족의 생계를 부양했기 때문이다; 둘째로 가족 경제가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셋째로 아이들이 그들의 부모에 의해 키워졌기 때문이다. 이전의 이런 가족 형태에서 현재 남아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보았던 것처럼, 남편은 유일한 생계부양자가 되는 것을 그만뒀다. 일하러 가는 아내는 임금을 번다. 그녀는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는 것, 아이들을 부양하고 종종 남편까지도 부양하는 것을 배웠다. 이제 가족은 단지 사회의 기초적인 경제단위로서 그리고 어린 아이들의 부양자이며 교육자로서만 기능할 뿐이다. 가족이 이런 임무들로부터 벗어날 것인지 아닌지를 살펴보는 것을 포함하여 좀 더 세세한 문제들을 검토해보자.
가사가 필수적이기를 그만두다.
도시와 시골의 더 빈곤한 계급 여성들이 가정의 네 벽안에서 삶 전체를 보냈던 때가 있었다. 여성들은 자신의 문지방을 넘어선 일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고, 대부분의 경우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집 안에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고, 이 일은 가족들뿐만 아니라 국가에게도 필수적이고 유용했다. 여성은 현대의 여성노동자, 여성농민이 해야하는 모든 것을 했다; 그러나 요리, 빨래, 청소, 수선 외에도 양털과 베를 잣고, 옷을 짜고, 양말을 뜨고, 레이스를 만들고, 겨울을 위해 -그녀에게 허락되는 재료의 한도 내에서- 모든 종류의 피클, 잼을 준비하고, 양초를 만들었다. 그녀의 모든 의무를 완벽한 목록으로 만드는 것은 어렵다. 이것이 우리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살아온 방식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우리들은 시골에서도 더 깊이 들어가고 철로와 큰 강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마을에서 이런 방식의 생활이 여전히 지속되고, 큰 도시와 인구가 많은 산업지역의 여성노동자들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모든 종류의 허드렛일이 집 안의 여주인에게 과중하게 맡겨지고 있는 현실을 만날 수 있다.
우리 할머니들의 시대에, 이런 모든 가사 노동은 필수적이었고 이익을 주었다; 그것은 가족의 안녕을 보장했다. 주부가 가사에 전념하면 할수록 농민과 숙련공의 가족들은 더 잘 살았다. 심지어 국가 경제는 가정주부들의 활동으로부터 이익을 얻었는데, 그것은 여성이 국을 끓이고 감자를 요리하는(즉, 가족의 일차적인 요구들을 충족시키는) 활동에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상품으로서 가치를 가진 옷, 실, 버터 등을 생산했기 때문이다. 농민과 노동자를 불문하고 모든 남자들은 “황금의 손”을 가진 여성을 찾으려 노력했다. 왜냐하면 그는 이 “가사 노동”이 없이는 가족이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가사노동은〕국가 전체의 이익에도 연관이 되었는데, 여성과 가족의 다른 구성원들이 옷, 가죽 그리고 양모(근처의 시장에서 팔리는 것 이상)를 만드는데 더 많은 노동을 투여하면 할수록, 전체적으로 국가의 번영은 더 커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이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이전에 가족 안에서 생산되던 모든 것들이 지금은 작업장과 공장에서 대규모로 제조되고 있다. 기계는 아내의 자리를 대체했다. 지금은 어떤 가정주부가 귀찮게 양초를 만들고, 털실을 잣고, 옷을 뜨는 일을 하는가? 이 모든 생산품들은 문 옆 가게에서 살 수 있다. 이전에 모든 소녀들은 양말 뜨는 것을 배웠다. 오늘날 어떤 여성노동자가 그녀 자신의 물건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는가? 우선 그녀는 시간이 없다. 시간은 돈이고, 아무도 비생산적이고 쓸모 없는 방법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들을 가게에서 살수 있을 때, 오이 피클을 담그거나 다른 저장 식품을 만들려는 여성노동자들은 거의 없다. 심지어 가게에서 파는 생산품이 질이 낮고 집에서 만든 것과 같은 정성으로 준비되지 않더라도, 여성노동자는 이런 가사 노동을 하는데 필요한 시간도 없고, 돈도 없다. 무엇보다 그녀는 고용된 노동자다. 그러므로 가족 경제는 우리 할머니들이 가족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가사 노동을 점차 박탈당하고 있다. 이전에 가족 내에서 생산되던 것들이 지금은 공장에서 일하는 남녀의 집단적인 노동에 의해 생산된다.
가족은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다; 단지 소비할 뿐이다. 남겨진 집안 일은 청소(바닥을 닦고, 먼지를 치우고, 물을 데우고, 전기를 살피는 등), 요리(오찬과 저녁식사 준비), 세탁 그리고 가족의 옷을 살피는 것(수선과 꿰메기)으로 구성된다. 이것들은 어렵고 지치는 일들이다. 게다가 그것들은 공장에서 시간을 보내야하는 여성노동자의 남는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아 간다. 그러나 이 일은 우리의 할머니들이 했던 일과 한 가지 중요한 점이 다르다; 가족이 함께 유지되기 위해 제공되어야 하는 위의 네 가지 일은 국가와 국가 경제에 가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나라의 번영에 어떤 기여를 하거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부는 집을 청소를 하느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을 보낼 것이다. 그녀는 매일 설거지를 하고 천을 다릴 것이다. 옷을 잘 정돈된 상태로 유지하고, 그녀가 원하고 재료가 허락하는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여전히 어떤 가치를 창조하지 못한 채 하루를 끝낼 것이다. 그녀의 성실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상품이라고 여겨지는 어떤 것을 만들지 못한다. 심지어 여성노동자가 천년을 산다할지라도, 그녀는 매일 처음부터 시작해야만 할 것이다. 벽난로에는 항상 제거해야할 먼지가 새롭게 쌓여있을 것이고, 남편은 항상 배가 고프다며 집에 들어올 것이며, 아이들은 신발에 진흙을 묻혀올 것이다.
여성들의 일은 공동체 전체에 점점 덜 유용한 것이 되어 가고 있다. 그것은 비생산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개개의 가족은 죽어가고 있다. 여성들의 일은 우리 사회에서 집단적인 가사노동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여성노동자가 바닥을 청소하는 대신에 공산주의 사회는 아침에 방을 청소하는 일에 남자와 여자들을 배치할 수 있다. 부자의 아내들은 오래 전부터 이 짜증나고 피곤한 가사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웠다. 왜 여성노동자들은 그 부담을 계속 짊어져야 하는가?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여성노동자들은 이전에는 매우 부유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안락함과 밝음, 청결함과 아름다움에 둘러싸여야만 한다. 여성노동자들이 요리를 하느라 애를 쓰고, 저녁과 식사를 준비하느라 마지막 자유시간을 부엌에서 쓰는 대신에, 공산주의 사회는 공공식당과 공동부엌을 조직할 것이다.
심지어 자본주의 하에서도 이런 시설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실 지난 반세기 동안 유럽의 모든 대도시들에서 식당과 카페의 수는 매일 증가하고 있다; 그들은 가을비가 내린 후에 자라는 버섯처럼 솟아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하에서는 두둑한 지갑을 가진 사람들만이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 반면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모두가 공동부엌과 공공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 여성노동자는 더 이상 빨래통의 노예가 되거나 양말을 꿰매고 옷을 수선하느라 눈을 버릴 필요가 없게될 것이다; 그녀는 매주 중앙 세탁실에 이것들을 가져다주고, 나중에 세탁되고 다려진 옷을 모아오기만 하면 될 것이다. 그것은 덜 중요한 다른 일이 될 것이다. 특별한 수선센터가 여성노동자들을 수선에 사용하는 시간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것이고, 그녀에게 책을 읽거나 회합과 콘서트에 참석하는데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그러므로 집안 일의 네 가지 범주는 공산주의의 승리와 함께 소멸의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여성노동자들은 이것을 서운해할 이유가 전혀 없다. 공산주의는 여성을 가정의 노예에서 해방시켜주고 그녀의 삶을 더 부유하고 행복하게 만든다.
국가는 아이들을 양육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당신은 주장할 수도 있다. 비록 집안 일이 사라질지라도 여전히 아이를 돌보는 일이 있다고. 하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도 노동자들의 국가는 가족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혁명이 개별 부모들을 없애기 전에 이미 사회는 점차 이 모든 일들을 책임질 것이다. 심지어 혁명 이전에 아이의 교육은 부모의 의무가 되기를 멈추었다. 일단 아이가 학교에 가야할 나이가 되면, 부모들은 좀 더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더 이상 아이들의 지적인 계발을 책임지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수행해야 할 많은 의무가 있었다. 여전히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는 문제가 있었다. 여전히 아이들이 자라서 때가 되면 스스로의 생계를 벌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정직한 노동자가 될 수 있는지 그래서 나이든 부모를 부양할 수 있는지를 살펴야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이 의무를 만족시킬 수 있는 노동자 가족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낮은 임금 때문에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충분히 줄 수 없었고, 여가 시간이 부족해서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에 꼭 필요한 관심을 쏟을 수가 없었다. 가족이 아이들을 양육할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프롤레타리아의 아이들은 거리에서 자란다. 우리의 조상들은 일정한 가족 생활을 알았지만, 프롤레타리아의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게다가 부모의 적은 수입과 가족이 놓여있는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지위 때문에 종종 아이들은 겨우 열 살의 나이에 독립적인 노동자가 되도록 강요받는다. 아이들이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스스로를 가장이라고 여기며, 부모의 말과 조언은 더 이상 법이 아니다; 부모의 권위는 약해지고 복종은 끝이 난다.
집안 일이 사라지는 것처럼 그렇게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의무도 사회가 마침내 완전한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해질 때까지 점차 사라져간다. 자본주의 하에서 아이들은 프롤레타리아 가족에게 자주, 너무 자주 무거워서 견디기 힘든 짐이었다. 공산주의 사회는 부모의 조력자가 될 것이다.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공교육위원회와 사회복지위원회는 이미 가족들에 대한 많은 보조를 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영아들을 위한 시설과 탁아소, 유치원, 아이들의 집단 시설, 아픈 아이들을 위한 병원과 요양원, 식당, 학교의 무료 급식과 무료로 제공된 교과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위한 따뜻한 옷과 신발을 가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아이들에 대한 책임이 가족에서 집단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가족에서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보살핌은 세 부분으로 나눠질 수 있다: (a) 영아에 대한 보살핌, (b) 아이의 양육, (c) 아이의 교육. 심지어 자본주의 사회에서조차 초등학교에서, 그리고 그 이후에 중등과 고등의 교육기관에서 아이를 교육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 되었다. 심지어 자본주의 사회에서조차 노동자들의 요구는 운동장, 유치원, 놀이 집단 등을 제공하는 것을 통해 어느 정도까지 충족되었다. 노동자들이 그들의 권리를 자각하면 할수록 그리고 그들이 더 잘 조직화되면 될수록 사회는 가족에게서 아이를 돌보는 일을 덜어주어야만 했다. 그러나 부르주아 사회는 노동자들의 이익을 너무 많이 충족시켜주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것이 계속되면 가족이 파괴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왜냐하면 여자는 노예였고 남편이 아내와 아이들의 행복을 책임져야 했던 가족의 옛 형태가 투쟁에 있어서 자유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욕구를 억누르고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의 혁명정신을 약하게 하는 최고의 무기임을 자본가들은 잘 알고있기 때문이다. 가족을 보살펴야하는 것은 노동자를 압박하고, 따라서 어쩔 수 없이 노동자는 자본과 타협을 하게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들의 아이들이 배고플 때면 어떤 조건에도 동의할 준비가 되어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교육을 사회와 국가의 문제로 바꿀 수 없다. 왜냐하면 자산가, 즉 부르주아들이 이것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사회는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사회적 교육을 새로운 생활의 근본적인 측면들 중 하나로 간주한다. 부모들이 말다툼을 하고 자신의 후손에게만 관심이 있는 협소한 구래의 가족은 “새로운 사람”을 교육할 수 없다. 반면에 아이들이 자격을 갖춘 교육자의 지도 하에 하루의 대부분을 보낼 수 있는 운동장, 정원, 시설과 다른 오락시설들은 아이들이 연대, 동지애, 상호간의 도움, 공동체에 대한 충성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사려 깊은 공산주의자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것이다. 부모가 더 이상 교육과 양육을 책임지지 않아도 될 때, 그들에게 남겨진 책임은 무엇인가? 당신은 대답할지도 모른다. 아주 작은 아기가 걷는 것을 배우려 어머니의 치맛자락에 매달리는 동안에는 여전히 어머니의 관심을 필요로 한다고. 여기에서도 공산주의 국가는 일하는 어머니를 돕는데 주저함이 없다. 더 이상 홀로 남겨진 여성들은 없다. 노동자의 국가는 아이에게 젓을 먹여야하는 시기동안 결혼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어머니를 지원하는 것과 여성들에게 사회적인 노동을 모성에 결합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모든 도시와 마을에 산부인과와 탁아소를 비롯한 여타의 시설들을 설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일하는 어머니들은 경계할 필요가 없다; 공산주의 사회는 그들의 부모로부터 아이들을 가져가거나 어머니의 품에서 아이를 뺏어가려는 것이 아니며 폭력적인 조치들로 가족을 파괴하려는 것도 아니다.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니다! 공산주의 사회의 목적은 아주 다르다. 공산주의 사회는 가족의 옛 형태가 파괴되고 있음을 그리고 사회적 단위로서 가족을 지탱하고 있던 오랜 기둥들이 제거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가족경제는 죽어가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돌볼 수 없거나 아이들에게 양식(糧食)과 교육을 제공할 수 없다. 부모와 아이들은 이런 상황 때문에 똑같이 고통받고 있다. 공산주의 사회는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은 젊고, 서로 사랑하고 있다. 모두가 행복해질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당신의 삶을 살아라. 행복을 놓치지 말아라. 비록 자본주의 하에서 결혼이 슬픔의 사슬이었을지라도 결혼을 두려워하지 마라. 아이를 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사회는 더 많은 노동자를 필요로 하며 모든 아이의 출생을 기뻐한다. 당신은 아이의 미래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당신의 아이는 굶주림도 추위도 알지 못할 것이다.” 공산주의 사회는 모든 아이들을 돌보고, 아이와 어머니 둘 다에게 물질적, 정신적 지원을 보장할 것이다. 사회가 아이들을 먹이고, 양육하고, 교육할 것이다. 동시에 아이들의 교육에 참여하고 싶은 부모들이 교육에 참여하는 것은 결코 금지되지 않을 것이다. 공산주의 사회는 아이들의 교육과 관련된 모든 의무를 사회가 질 것이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의 교육으로부터 오는〕부모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그 기쁨을 빼앗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공산주의 사회의 계획이며, 이것은 가족을 강제적으로 파괴하고 어머니로부터 아이를 강제적으로 떼어놓는 것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
진실을 회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족의 옛 형태는 전성기를 누렸었다. 그런 가족은 사라지고 있는데, 국가가 강제적으로 가족을 파괴하기 때문이 아니라 가족이 필수 불가결한 것이기를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국가는 가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족경제가 더 이상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은 노동자가 더 유용하고 생산적인 노동에 집중할 수 없게 한다. 가족의 구성원도 가족이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가족의 일이었던 아이를 양육하는 일이 점점 더 공동체의 손으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남녀 사이의 예전 관계 대신에 새로운 관계가 발전하고 있다; 애정과 동지애의 결합, 즉 남녀 둘 다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노동자인, 공산주의 사회의 동등한 두 구성원의 결합. 더 이상 여성에게 가사의 굴레는 없다. 더 이상 가족 안에서의 불평등은 없다. 더 이상 여성이 아무런 지원 없이 남아서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더 이상 남편에게 의존하지 않고 그녀의 일에 의존한다. 그녀가 지원을 찾는 곳은 남편이 아니라 노동에서의 그녀의 재능이다. 그녀는 아이들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당연히 노동자의 국가가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맡을 것이다. 결혼에서 가족생활을 불구로 만들었던 모든 물질적 타산의 요소는 없어질 것이다. 결혼은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두 사람의 결합이 될 것이다. 그런 결합은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는 남성노동자들과 여성노동자들에게 가장 완벽한 행복과 최고의 만족을 약속한다. 과거의 혼인 노예제 대신에 공산주의 사회는 여성과 남성에게 동지애 속에서 굳건한 자유결합을 제공한다. 그리고 동지애는 그런 자유결합을 고무한다. 일단 노동의 조건이 변화하고, 여성노동자의 물질적인 안정이 증가하면 그리고 일단 교회에서 행해졌던 그런 결혼―근본적으로는 사기에 불과하지만 흔히 깨질 수 없다고 말하는 결혼―이 연인이자 동지인 남녀의 자유롭고 정직한 결합으로 대체된다면, 매춘은 사라질 것이다. 인류의 오점이자 굶주린 여성노동자의 재앙인 이 해악은 상품생산과 사적소유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일단 이런 경제적인 형태가 폐기되면, 여성들을 거래하는 것도 자동적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자 계급의 여성들은 가족이 사라질 운명이라는 사실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반대로 그들은 여성들이 가사 노역으로부터 해방되고 어머니의 부담을 가볍게 하며 매춘이라는 끔찍한 저주를 끝장낼 새로운 사회가 밝아오는 것을 환영해야만 한다.
노동자 계급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여성은 예전의 사적소유권에 입각한 사고방식은 더 이상 있을 자리가 없음을 이해하는 것을 배워야한다. 예전의 사고방식은 이렇게 말한다; “이들은 나의 아이들이고, 나는 그들에게 어머니로서의 염려와 애정을 전부 쏟는다; 저들은 너의 아이들이고, 그들은 내 관심사가 아니며, 그들이 굶주리고 추위에 떨어도 나는 상관없다. - 나는 다른 아이들을 위한 시간이 없다.” 노동자-어머니는 남의 아이와 나의 아이를 차별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한다; 그녀는 오직 우리의 아이들, 러시아의 공산주의 노동자들의 아이들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노동자의 국가는 남녀간의 새로운 관계를 필요로 한다.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협소하고 배타적인 사랑이 위대한 프롤레타리아 가족의 모든 아이들에게 베풀어질 때까지 확장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종속에 기초한 깨질 수 없는 가족도 사랑과 상호 존중으로 결합된 노동자 국가의 동등한 두 성의 자유로운 결합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개별적이고 이기적인 가족 대신에 노동자들의 위대한 보편 가족이 발전할 것이며, 그 속에서 모든 노동자들, 남성들과 여성들은 무엇보다도 동지가 될 것이다. 이것이 공산주의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가 보여줄 모습이다. 이런 새로운 관계는 인류에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사랑, 즉 자신의 감정과 애정으로부터 자유롭고 행복한 젊은이들의 진정한 사회적 평등에 기초한 자유로운 사랑이 주는 온갖 기쁨을 보증할 것이다.
평등, 자유 그리고 새로운 결혼의 동지적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노동자와 농민 남녀에게 용감하게 그리고 신념을 가지고 인간 사회를 좀 더 완벽하고, 좀 더 정의롭고, 개개인에게 그 또는 그녀가 마땅히 가져야할 행복을 보장해줄 수 있는 사회로 만들기 위해 인간 사회를 재건하는 과업에 스스로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 러시아에서 펄럭이고 있는 그리고 전 세계의 다른 나라에서 높이 올라가고 있는 사회혁명의 붉은 깃발은 인류가 수세기 동안 열망해왔던 지상 위의 천국을 선언하고 있다.PSSP
가족의 변화에 대한 콜론타이의 생각을 담은 이 팜플렛은 1918년에 쓰여졌다. 전쟁과 혁명의 혼란을 맞이한 소비에트의 당시 상황은 가족을 비롯한 사회 전반의 토대를 새롭게 구성해야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러시아에서 지배적인 결혼 형태는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종교에 기초한 결혼이었다. 이 결혼은 죽을 때까지 깨질 수 없는 것이었고, 글에 나타난 것처럼 여성들에게 가혹한 것이었다. 콜론타이는 러시아 혁명의 과정에서 이러한 전통적인 결혼이 유지될 수 없는 조건들이 출현하고, 실제 전통적인 결혼이 해체되고 있는 상황에 주목했다. 콜론타이는 이러한 상황을 공산주의 사회에서 새롭게 구성될 남녀의 관계와 그에 부합하는 가족의 형태를 발전시켜야하는 상황으로 보았다. 콜론타이는 새로운 남녀 관계는 소비에트의 동등한 두 구성원이 자유로운 사랑과 상호존중으로 결합하는 것이어야 함을 주장했다. 이러한 결합은 여성의 억압과 종속을 기초로 한 전통적인 가족을 전화시켜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여성이 가사와 양육의 부담에서 벗어나 자신의 일을 통해 경제적 독립을 달성해야하고,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언제든 그것이 자신에게 종속과 속박을 요구할 때 철수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가족은 이러한 방향에 부합할 수 있도록 전화되어야 했다. 이 글은 콜론타이의 이러한 생각을 담은 글이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전통적인 가족이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그것이 여성의 해방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주로 다루고 있다.
그 당시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1918년 소비에트의 가족법이 개정되었다. 이 가족법이 교회와 종교에 의한 결혼을 시민법에 의한 결혼으로 대체하는 등 그 시대의 상황을 반영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아버지가 자녀를 부양하고, 가족이 미성년자들의 교육과 양육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강조되었다. 뿐만 아니라 여전히 종교와 관습에 의존한 결혼이 다수였던 농민들의 결혼은 단지 사실혼으로 남게 되었다. 결국 새로운 노동자들의 국가 속에서 가족의 ‘전화’를 역설했던 콜론타이의 생각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사회 속에서 최소한의 생계단위, 상호의존적인 집단으로서 가족을 ‘강화’하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콜론타이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국가라는 공동체가 가사와 양육의 책임져야 함을 주장하면서, 전시 공산주의에서의 의무노동법안이나 그 후 신경제정책(NEP), 그리고 1926년 또 한번의 가족법 개정과 같은 계기 속에서 여성들의 조건과 권리에 입각한 주장을 펼쳤다. 이와 동시에 남녀 노동자의 새로운 관계에 대한 대답도 계속해서 발전시켜갔으며, ‘자유결합’이라고 일컬어지는 새로운 관계를 모색했다. 새로운 남녀관계에 대한 콜론타이의 더욱 자세한 생각은 월간사회진보연대 2003년 7․8월호에 실린 ⌈날개 달린 에로스의 길을 열자: 젊은 노동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참조할 수 있다.
생산에서 여성의 역할; 그것이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
공산주의 하에서도 가족은 계속 존재할 것인가? 가족은 같은 형태로 유지될 것인가? 이런 질문들은 많은 노동자 계급의 여성들을 곤란하게 하고 남자들 또한 걱정하게 만들고 있다. 삶은 바로 눈앞에서 변화하고 있다; 오랜 습관과 관행들은 사라져가고 있으며, 프롤레타리아 가족의 삶은 새롭고 친숙하지 않은, 또 어떤 이들의 눈에는 "괴기한"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여성노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주의를 끄는 또 다른 사실은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이혼이 더 쉬워진 것이다. 1917년 12월 18일 발포된 인민위원의회의 법령은 이혼이 더 이상 부자들만 할 수 있는 사치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여성노동자는 그녀를 때리고 술주정과 거친 행동으로 그녀의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 남편과 떨어져 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몇 달 심지어 몇 년 동안 청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제 상호 동의에 의한 이혼은 1~2주 이상 걸리지 않는다. 결혼한 삶이 행복하지 않았던 여성들은 이 쉬운 이혼을 환영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 특히 남편을 “생계수단”으로 여기는데 익숙해진 사람들은 두려워했다. 그들은 여성이 개별적인 남성이 아니라 공동체와 사회 안에서 지원을 요구하고 찾는 것에 스스로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진실을 회피하려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남자가 모든 것이고 여자는 아무것도 아닌 오래된 가족, 여성의 의지, 그녀를 위한 돈과 시간은 어디에도 없는 전통적인 가족은 바로 눈앞에서 변하고 있다. 그러나 놀랄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결코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단지 우리의 무지일 뿐이다. “늘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는 속담만큼 진실이 아닌 것도 없다. 모든 것은 바뀔 수 있고, 어떤 관습이나 정치적인 조직들, 도덕적인 원칙들도 고정되거나 신성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단지 과거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살펴보기만 하면 된다. 역사의 과정에서 가족의 구조는 여러 번 변했다; 한때 가족은 오늘날의 가족과 상당히 달랐다. 친족가족이 표준으로 사고되던 때도 있었다: 어머니가 그녀의 자녀들과 손자․손녀, 증손자․증손녀로 구성된 가족을 이끌었고, 그들은 함께 살고, 함께 일했다. 다른 시기에는 가부장적인 가족이 규칙이었다. 이 경우에 아버지의 의지는 가족의 다른 구성원 모두에게 법이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러시아 시골의 소농계급 사이에서 이런 가족들이 발견될 수 있다. 여기서 가족생활의 도덕과 관습은 도시지역 프롤레타리아의 그것과는 다르다. 시골에서 그들은 노동자들이 이미 오래 전에 잊어버린 규범을 지키고 있다. 게다가 가족의 구조와 가족생활의 관습은 나라마다 다르다. 터키나 아랍 또는 페르시아 같은 나라들에서는 한 남자가 여러 명의 아내들을 가지는 일이 허용된다. 우리는 어린 소녀가 결혼할 때까지는 처녀로 남아있을 거라는 기대를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많은 연인을 가졌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여자들이 그 수만큼의 팔찌를 팔과 다리에 장식하는 종족들도 있다. 우리를 깜짝 놀라게 만들고 심지어 비도덕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 많은 관습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상적인 것으로 사고되며, 그들의 입장에서는 우리의 법과 관습들이 ‘죄스러운’ 것으로 사고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가족이 변화의 과정에 있다는 사실에, 낡고 필요 없는 것들은 사라지고 새로운 남녀 관계가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에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우리의 일은 가족 체계의 어떤 측면이 시효가 만료된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고, 노동자․농민 계급 남녀 사이의 어떤 관계가 그리고 어떤 권리와 의무가 새롭게 형성된 노동자들의 러시아의 생활조건들과 가장 잘 조화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새로운 삶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들은 유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오래되고 낡은 모든 것, 지배와 예속의 저주받은 시대, 지주와 자본가들의 시대로부터 유래한 모든 것들은 착취하는 계급 그 자체와 프롤레타리아와 빈민의 다른 적들과 함께 사라져야만 한다.
도시와 시골의 프롤레타리아에게 익숙했던 가족 형태는 이러한 과거의 유산들 중 하나이다. 교회 결혼에 기초한 고립되고 견고하게 짜여진 가족이 가족구성원들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했던 시절이 있었다. 만약 가족이 없었다면 누가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길렀겠는가? 누가 아이들에게 충고를 해주었겠는가? 지난날, 고아가 되는 것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운명이었다. 예전의 가족에서 남편은 돈을 벌고 아내와 아이들을 부양했다. 아내로서 그녀의 역할은 그녀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집안을 돌보고 아이를 양육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백년동안 이런 관습적인 가족 구조는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모든 나라에서, 고용주가 노동자를 고용하는 공장과 다른 기업들의 수가 증가하는 모든 나라에서 점차 쇠약해졌다. 삶의 일반적인 조건들이 변화함에 따라 가족생활의 관습들과 도덕적 원칙들도 변화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족 생활의 급진적인 변화에 기여했던 것은 보편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여성 노동이다. 이전에는 오직 남자만을 생계부양자로 여겼었다. 그러나 지난 50~60년 동안(그리고 다른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약간 더 긴 기간동안) 러시아 여성들은 가족과 가정 밖에서 유급의 일을 찾도록 강요받았다. “생계부양자”의 임금이 가족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게 되면서, 여성들은 스스로가 임금을 찾아 공장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게 되었음을 발견했다. 일용노동자로, 판매원으로, 혹은 점원으로, 그리고 세탁부, 하녀로 가정 밖에서 일하기 시작하는 노동자 계급 여성들의 수는 매년 증가했다. 통계는 1차 세계대전 발발 전인 1914년에 유럽과 미국에서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는 여성들이 약 6천만 명이었고, 전쟁동안 이 수는 상당히 증가하였음을 보여준다. 이 여성들의 거의 절반은 기혼이었다. 그들의 가족생활이 어떤 형태였을 것인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만약 아내와 어머니가 최소한 8시간을 일하러 나가고, 이동의 시간까지 합쳐서 하루에 10시간 동안 집을 비운다면, 어떤 종류의 “가족생활”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녀의 가정은 고려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거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 이런 환경의 모든 위험에 노출된 채 어머니의 보살핌 없이 자란다. 아내이면서 어머니이고 노동자인 여성은 이런 역할들을 완수하기 위해서 모든 에너지를 짜내야만 한다. 그녀는 공장과 인쇄소 또는 상업적 시설에서 그녀의 남편과 같은 시간을 일해야만 하고, 그것에 더하여 가사노동에 종사하고 아이들을 돌볼 시간을 찾아야만 한다. 자본주의는 여성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있다: 어머니 또는 주부로서 보살핌을 감소시키지 않은 채 그녀를 임금노동자로 만들고 있다. 여성은 3중 부담의 무게 아래에서 비틀거린다. 그녀는 고통을 겪고, 그녀의 얼굴은 항상 눈물로 젖어있다. 여성에게 삶이 쉬웠던 적은 결코 없었다. 하지만 수백만 여성노동자들의 운명이 자본주의의 멍에 아래 놓여있는, 이 공장생산의 절정기만큼이나 여성들의 삶이 어렵고 절망적인 적은 없었다.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일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감에 따라 가족은 부서진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른 시간에 교대로 일할 때 그리고 아내가 그녀의 자식들을 위해 적절한 식사를 준비할 시간조차 없을 때, 어떻게 서로 가족생활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어머니와 아버지가 하루종일 밖에서 일하고 있고 그들의 아이들과 잠시도 시간을 보낼 수 없다면, 누가 부모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옛날과 아주 다르다. 어머니는 집에 남아있었고 가정주부로서의 의무에 종사했다; 그녀의 아이들은 그녀의 곁에, 그녀의 감시망 아래 있었다. 요즘에 여성노동자는 공장의 호각소리를 듣자마자 이른 아침 서둘러 집밖으로 나간다. 저녁이 되어 다시 호각소리가 들리면 그녀는 가사 임무 중에 가장 긴요한 일들을 해치우기 위해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다. 그 일을 마치고 나서야 그녀는 다음 날 아침 다시 일하기 위해 쉴 수 있다. 그녀는 잠이 부족해 지쳐간다. 기혼 여성노동자에게 생활은 노역장(勞役場)처럼 힘들다. 그런 까닭에 가족의 끈이 느슨해지고 가족이 시들어 가는 것은 놀랍지 않다. 가족을 결합시켰던 환경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은 그 구성원들에게 또는 국가 전체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를 그만두고 있다. 이제 과거의 가족구조는 단지 장애물일 뿐이다. 예전의 가족이 그렇게 강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로 남편과 아버지가 가족의 생계를 부양했기 때문이다; 둘째로 가족 경제가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셋째로 아이들이 그들의 부모에 의해 키워졌기 때문이다. 이전의 이런 가족 형태에서 현재 남아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보았던 것처럼, 남편은 유일한 생계부양자가 되는 것을 그만뒀다. 일하러 가는 아내는 임금을 번다. 그녀는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는 것, 아이들을 부양하고 종종 남편까지도 부양하는 것을 배웠다. 이제 가족은 단지 사회의 기초적인 경제단위로서 그리고 어린 아이들의 부양자이며 교육자로서만 기능할 뿐이다. 가족이 이런 임무들로부터 벗어날 것인지 아닌지를 살펴보는 것을 포함하여 좀 더 세세한 문제들을 검토해보자.
가사가 필수적이기를 그만두다.
도시와 시골의 더 빈곤한 계급 여성들이 가정의 네 벽안에서 삶 전체를 보냈던 때가 있었다. 여성들은 자신의 문지방을 넘어선 일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고, 대부분의 경우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집 안에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고, 이 일은 가족들뿐만 아니라 국가에게도 필수적이고 유용했다. 여성은 현대의 여성노동자, 여성농민이 해야하는 모든 것을 했다; 그러나 요리, 빨래, 청소, 수선 외에도 양털과 베를 잣고, 옷을 짜고, 양말을 뜨고, 레이스를 만들고, 겨울을 위해 -그녀에게 허락되는 재료의 한도 내에서- 모든 종류의 피클, 잼을 준비하고, 양초를 만들었다. 그녀의 모든 의무를 완벽한 목록으로 만드는 것은 어렵다. 이것이 우리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살아온 방식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우리들은 시골에서도 더 깊이 들어가고 철로와 큰 강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마을에서 이런 방식의 생활이 여전히 지속되고, 큰 도시와 인구가 많은 산업지역의 여성노동자들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모든 종류의 허드렛일이 집 안의 여주인에게 과중하게 맡겨지고 있는 현실을 만날 수 있다.
우리 할머니들의 시대에, 이런 모든 가사 노동은 필수적이었고 이익을 주었다; 그것은 가족의 안녕을 보장했다. 주부가 가사에 전념하면 할수록 농민과 숙련공의 가족들은 더 잘 살았다. 심지어 국가 경제는 가정주부들의 활동으로부터 이익을 얻었는데, 그것은 여성이 국을 끓이고 감자를 요리하는(즉, 가족의 일차적인 요구들을 충족시키는) 활동에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상품으로서 가치를 가진 옷, 실, 버터 등을 생산했기 때문이다. 농민과 노동자를 불문하고 모든 남자들은 “황금의 손”을 가진 여성을 찾으려 노력했다. 왜냐하면 그는 이 “가사 노동”이 없이는 가족이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가사노동은〕국가 전체의 이익에도 연관이 되었는데, 여성과 가족의 다른 구성원들이 옷, 가죽 그리고 양모(근처의 시장에서 팔리는 것 이상)를 만드는데 더 많은 노동을 투여하면 할수록, 전체적으로 국가의 번영은 더 커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이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이전에 가족 안에서 생산되던 모든 것들이 지금은 작업장과 공장에서 대규모로 제조되고 있다. 기계는 아내의 자리를 대체했다. 지금은 어떤 가정주부가 귀찮게 양초를 만들고, 털실을 잣고, 옷을 뜨는 일을 하는가? 이 모든 생산품들은 문 옆 가게에서 살 수 있다. 이전에 모든 소녀들은 양말 뜨는 것을 배웠다. 오늘날 어떤 여성노동자가 그녀 자신의 물건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는가? 우선 그녀는 시간이 없다. 시간은 돈이고, 아무도 비생산적이고 쓸모 없는 방법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들을 가게에서 살수 있을 때, 오이 피클을 담그거나 다른 저장 식품을 만들려는 여성노동자들은 거의 없다. 심지어 가게에서 파는 생산품이 질이 낮고 집에서 만든 것과 같은 정성으로 준비되지 않더라도, 여성노동자는 이런 가사 노동을 하는데 필요한 시간도 없고, 돈도 없다. 무엇보다 그녀는 고용된 노동자다. 그러므로 가족 경제는 우리 할머니들이 가족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가사 노동을 점차 박탈당하고 있다. 이전에 가족 내에서 생산되던 것들이 지금은 공장에서 일하는 남녀의 집단적인 노동에 의해 생산된다.
가족은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다; 단지 소비할 뿐이다. 남겨진 집안 일은 청소(바닥을 닦고, 먼지를 치우고, 물을 데우고, 전기를 살피는 등), 요리(오찬과 저녁식사 준비), 세탁 그리고 가족의 옷을 살피는 것(수선과 꿰메기)으로 구성된다. 이것들은 어렵고 지치는 일들이다. 게다가 그것들은 공장에서 시간을 보내야하는 여성노동자의 남는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아 간다. 그러나 이 일은 우리의 할머니들이 했던 일과 한 가지 중요한 점이 다르다; 가족이 함께 유지되기 위해 제공되어야 하는 위의 네 가지 일은 국가와 국가 경제에 가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나라의 번영에 어떤 기여를 하거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부는 집을 청소를 하느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을 보낼 것이다. 그녀는 매일 설거지를 하고 천을 다릴 것이다. 옷을 잘 정돈된 상태로 유지하고, 그녀가 원하고 재료가 허락하는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여전히 어떤 가치를 창조하지 못한 채 하루를 끝낼 것이다. 그녀의 성실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상품이라고 여겨지는 어떤 것을 만들지 못한다. 심지어 여성노동자가 천년을 산다할지라도, 그녀는 매일 처음부터 시작해야만 할 것이다. 벽난로에는 항상 제거해야할 먼지가 새롭게 쌓여있을 것이고, 남편은 항상 배가 고프다며 집에 들어올 것이며, 아이들은 신발에 진흙을 묻혀올 것이다.
여성들의 일은 공동체 전체에 점점 덜 유용한 것이 되어 가고 있다. 그것은 비생산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개개의 가족은 죽어가고 있다. 여성들의 일은 우리 사회에서 집단적인 가사노동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여성노동자가 바닥을 청소하는 대신에 공산주의 사회는 아침에 방을 청소하는 일에 남자와 여자들을 배치할 수 있다. 부자의 아내들은 오래 전부터 이 짜증나고 피곤한 가사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웠다. 왜 여성노동자들은 그 부담을 계속 짊어져야 하는가?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여성노동자들은 이전에는 매우 부유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안락함과 밝음, 청결함과 아름다움에 둘러싸여야만 한다. 여성노동자들이 요리를 하느라 애를 쓰고, 저녁과 식사를 준비하느라 마지막 자유시간을 부엌에서 쓰는 대신에, 공산주의 사회는 공공식당과 공동부엌을 조직할 것이다.
심지어 자본주의 하에서도 이런 시설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실 지난 반세기 동안 유럽의 모든 대도시들에서 식당과 카페의 수는 매일 증가하고 있다; 그들은 가을비가 내린 후에 자라는 버섯처럼 솟아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하에서는 두둑한 지갑을 가진 사람들만이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 반면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모두가 공동부엌과 공공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 여성노동자는 더 이상 빨래통의 노예가 되거나 양말을 꿰매고 옷을 수선하느라 눈을 버릴 필요가 없게될 것이다; 그녀는 매주 중앙 세탁실에 이것들을 가져다주고, 나중에 세탁되고 다려진 옷을 모아오기만 하면 될 것이다. 그것은 덜 중요한 다른 일이 될 것이다. 특별한 수선센터가 여성노동자들을 수선에 사용하는 시간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것이고, 그녀에게 책을 읽거나 회합과 콘서트에 참석하는데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그러므로 집안 일의 네 가지 범주는 공산주의의 승리와 함께 소멸의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여성노동자들은 이것을 서운해할 이유가 전혀 없다. 공산주의는 여성을 가정의 노예에서 해방시켜주고 그녀의 삶을 더 부유하고 행복하게 만든다.
국가는 아이들을 양육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당신은 주장할 수도 있다. 비록 집안 일이 사라질지라도 여전히 아이를 돌보는 일이 있다고. 하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도 노동자들의 국가는 가족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혁명이 개별 부모들을 없애기 전에 이미 사회는 점차 이 모든 일들을 책임질 것이다. 심지어 혁명 이전에 아이의 교육은 부모의 의무가 되기를 멈추었다. 일단 아이가 학교에 가야할 나이가 되면, 부모들은 좀 더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더 이상 아이들의 지적인 계발을 책임지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수행해야 할 많은 의무가 있었다. 여전히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는 문제가 있었다. 여전히 아이들이 자라서 때가 되면 스스로의 생계를 벌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정직한 노동자가 될 수 있는지 그래서 나이든 부모를 부양할 수 있는지를 살펴야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이 의무를 만족시킬 수 있는 노동자 가족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낮은 임금 때문에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충분히 줄 수 없었고, 여가 시간이 부족해서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에 꼭 필요한 관심을 쏟을 수가 없었다. 가족이 아이들을 양육할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프롤레타리아의 아이들은 거리에서 자란다. 우리의 조상들은 일정한 가족 생활을 알았지만, 프롤레타리아의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게다가 부모의 적은 수입과 가족이 놓여있는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지위 때문에 종종 아이들은 겨우 열 살의 나이에 독립적인 노동자가 되도록 강요받는다. 아이들이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스스로를 가장이라고 여기며, 부모의 말과 조언은 더 이상 법이 아니다; 부모의 권위는 약해지고 복종은 끝이 난다.
집안 일이 사라지는 것처럼 그렇게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의무도 사회가 마침내 완전한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해질 때까지 점차 사라져간다. 자본주의 하에서 아이들은 프롤레타리아 가족에게 자주, 너무 자주 무거워서 견디기 힘든 짐이었다. 공산주의 사회는 부모의 조력자가 될 것이다.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공교육위원회와 사회복지위원회는 이미 가족들에 대한 많은 보조를 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영아들을 위한 시설과 탁아소, 유치원, 아이들의 집단 시설, 아픈 아이들을 위한 병원과 요양원, 식당, 학교의 무료 급식과 무료로 제공된 교과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위한 따뜻한 옷과 신발을 가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아이들에 대한 책임이 가족에서 집단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가족에서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보살핌은 세 부분으로 나눠질 수 있다: (a) 영아에 대한 보살핌, (b) 아이의 양육, (c) 아이의 교육. 심지어 자본주의 사회에서조차 초등학교에서, 그리고 그 이후에 중등과 고등의 교육기관에서 아이를 교육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 되었다. 심지어 자본주의 사회에서조차 노동자들의 요구는 운동장, 유치원, 놀이 집단 등을 제공하는 것을 통해 어느 정도까지 충족되었다. 노동자들이 그들의 권리를 자각하면 할수록 그리고 그들이 더 잘 조직화되면 될수록 사회는 가족에게서 아이를 돌보는 일을 덜어주어야만 했다. 그러나 부르주아 사회는 노동자들의 이익을 너무 많이 충족시켜주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것이 계속되면 가족이 파괴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왜냐하면 여자는 노예였고 남편이 아내와 아이들의 행복을 책임져야 했던 가족의 옛 형태가 투쟁에 있어서 자유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욕구를 억누르고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의 혁명정신을 약하게 하는 최고의 무기임을 자본가들은 잘 알고있기 때문이다. 가족을 보살펴야하는 것은 노동자를 압박하고, 따라서 어쩔 수 없이 노동자는 자본과 타협을 하게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들의 아이들이 배고플 때면 어떤 조건에도 동의할 준비가 되어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교육을 사회와 국가의 문제로 바꿀 수 없다. 왜냐하면 자산가, 즉 부르주아들이 이것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사회는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사회적 교육을 새로운 생활의 근본적인 측면들 중 하나로 간주한다. 부모들이 말다툼을 하고 자신의 후손에게만 관심이 있는 협소한 구래의 가족은 “새로운 사람”을 교육할 수 없다. 반면에 아이들이 자격을 갖춘 교육자의 지도 하에 하루의 대부분을 보낼 수 있는 운동장, 정원, 시설과 다른 오락시설들은 아이들이 연대, 동지애, 상호간의 도움, 공동체에 대한 충성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사려 깊은 공산주의자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것이다. 부모가 더 이상 교육과 양육을 책임지지 않아도 될 때, 그들에게 남겨진 책임은 무엇인가? 당신은 대답할지도 모른다. 아주 작은 아기가 걷는 것을 배우려 어머니의 치맛자락에 매달리는 동안에는 여전히 어머니의 관심을 필요로 한다고. 여기에서도 공산주의 국가는 일하는 어머니를 돕는데 주저함이 없다. 더 이상 홀로 남겨진 여성들은 없다. 노동자의 국가는 아이에게 젓을 먹여야하는 시기동안 결혼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어머니를 지원하는 것과 여성들에게 사회적인 노동을 모성에 결합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모든 도시와 마을에 산부인과와 탁아소를 비롯한 여타의 시설들을 설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일하는 어머니들은 경계할 필요가 없다; 공산주의 사회는 그들의 부모로부터 아이들을 가져가거나 어머니의 품에서 아이를 뺏어가려는 것이 아니며 폭력적인 조치들로 가족을 파괴하려는 것도 아니다.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니다! 공산주의 사회의 목적은 아주 다르다. 공산주의 사회는 가족의 옛 형태가 파괴되고 있음을 그리고 사회적 단위로서 가족을 지탱하고 있던 오랜 기둥들이 제거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가족경제는 죽어가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돌볼 수 없거나 아이들에게 양식(糧食)과 교육을 제공할 수 없다. 부모와 아이들은 이런 상황 때문에 똑같이 고통받고 있다. 공산주의 사회는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은 젊고, 서로 사랑하고 있다. 모두가 행복해질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당신의 삶을 살아라. 행복을 놓치지 말아라. 비록 자본주의 하에서 결혼이 슬픔의 사슬이었을지라도 결혼을 두려워하지 마라. 아이를 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사회는 더 많은 노동자를 필요로 하며 모든 아이의 출생을 기뻐한다. 당신은 아이의 미래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당신의 아이는 굶주림도 추위도 알지 못할 것이다.” 공산주의 사회는 모든 아이들을 돌보고, 아이와 어머니 둘 다에게 물질적, 정신적 지원을 보장할 것이다. 사회가 아이들을 먹이고, 양육하고, 교육할 것이다. 동시에 아이들의 교육에 참여하고 싶은 부모들이 교육에 참여하는 것은 결코 금지되지 않을 것이다. 공산주의 사회는 아이들의 교육과 관련된 모든 의무를 사회가 질 것이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의 교육으로부터 오는〕부모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그 기쁨을 빼앗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공산주의 사회의 계획이며, 이것은 가족을 강제적으로 파괴하고 어머니로부터 아이를 강제적으로 떼어놓는 것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
진실을 회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족의 옛 형태는 전성기를 누렸었다. 그런 가족은 사라지고 있는데, 국가가 강제적으로 가족을 파괴하기 때문이 아니라 가족이 필수 불가결한 것이기를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국가는 가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족경제가 더 이상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은 노동자가 더 유용하고 생산적인 노동에 집중할 수 없게 한다. 가족의 구성원도 가족이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가족의 일이었던 아이를 양육하는 일이 점점 더 공동체의 손으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남녀 사이의 예전 관계 대신에 새로운 관계가 발전하고 있다; 애정과 동지애의 결합, 즉 남녀 둘 다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노동자인, 공산주의 사회의 동등한 두 구성원의 결합. 더 이상 여성에게 가사의 굴레는 없다. 더 이상 가족 안에서의 불평등은 없다. 더 이상 여성이 아무런 지원 없이 남아서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더 이상 남편에게 의존하지 않고 그녀의 일에 의존한다. 그녀가 지원을 찾는 곳은 남편이 아니라 노동에서의 그녀의 재능이다. 그녀는 아이들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당연히 노동자의 국가가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맡을 것이다. 결혼에서 가족생활을 불구로 만들었던 모든 물질적 타산의 요소는 없어질 것이다. 결혼은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두 사람의 결합이 될 것이다. 그런 결합은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는 남성노동자들과 여성노동자들에게 가장 완벽한 행복과 최고의 만족을 약속한다. 과거의 혼인 노예제 대신에 공산주의 사회는 여성과 남성에게 동지애 속에서 굳건한 자유결합을 제공한다. 그리고 동지애는 그런 자유결합을 고무한다. 일단 노동의 조건이 변화하고, 여성노동자의 물질적인 안정이 증가하면 그리고 일단 교회에서 행해졌던 그런 결혼―근본적으로는 사기에 불과하지만 흔히 깨질 수 없다고 말하는 결혼―이 연인이자 동지인 남녀의 자유롭고 정직한 결합으로 대체된다면, 매춘은 사라질 것이다. 인류의 오점이자 굶주린 여성노동자의 재앙인 이 해악은 상품생산과 사적소유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일단 이런 경제적인 형태가 폐기되면, 여성들을 거래하는 것도 자동적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자 계급의 여성들은 가족이 사라질 운명이라는 사실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반대로 그들은 여성들이 가사 노역으로부터 해방되고 어머니의 부담을 가볍게 하며 매춘이라는 끔찍한 저주를 끝장낼 새로운 사회가 밝아오는 것을 환영해야만 한다.
노동자 계급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여성은 예전의 사적소유권에 입각한 사고방식은 더 이상 있을 자리가 없음을 이해하는 것을 배워야한다. 예전의 사고방식은 이렇게 말한다; “이들은 나의 아이들이고, 나는 그들에게 어머니로서의 염려와 애정을 전부 쏟는다; 저들은 너의 아이들이고, 그들은 내 관심사가 아니며, 그들이 굶주리고 추위에 떨어도 나는 상관없다. - 나는 다른 아이들을 위한 시간이 없다.” 노동자-어머니는 남의 아이와 나의 아이를 차별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한다; 그녀는 오직 우리의 아이들, 러시아의 공산주의 노동자들의 아이들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노동자의 국가는 남녀간의 새로운 관계를 필요로 한다.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협소하고 배타적인 사랑이 위대한 프롤레타리아 가족의 모든 아이들에게 베풀어질 때까지 확장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종속에 기초한 깨질 수 없는 가족도 사랑과 상호 존중으로 결합된 노동자 국가의 동등한 두 성의 자유로운 결합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개별적이고 이기적인 가족 대신에 노동자들의 위대한 보편 가족이 발전할 것이며, 그 속에서 모든 노동자들, 남성들과 여성들은 무엇보다도 동지가 될 것이다. 이것이 공산주의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가 보여줄 모습이다. 이런 새로운 관계는 인류에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사랑, 즉 자신의 감정과 애정으로부터 자유롭고 행복한 젊은이들의 진정한 사회적 평등에 기초한 자유로운 사랑이 주는 온갖 기쁨을 보증할 것이다.
평등, 자유 그리고 새로운 결혼의 동지적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노동자와 농민 남녀에게 용감하게 그리고 신념을 가지고 인간 사회를 좀 더 완벽하고, 좀 더 정의롭고, 개개인에게 그 또는 그녀가 마땅히 가져야할 행복을 보장해줄 수 있는 사회로 만들기 위해 인간 사회를 재건하는 과업에 스스로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 러시아에서 펄럭이고 있는 그리고 전 세계의 다른 나라에서 높이 올라가고 있는 사회혁명의 붉은 깃발은 인류가 수세기 동안 열망해왔던 지상 위의 천국을 선언하고 있다.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