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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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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사태, 정부와 채권단은 못 믿는다

홍석만 | 편집실
8월 대우그룹 워크아웃 결정 후 현재까지 대우사태의 처리방향이 숨가쁘게 논의되어 왔다. 정부와 채권단은 워크아웃이다, 법정관리다, 손실부담비율이 얼마다, 연일 줄다리기를 계속했다. 여기다 해외채권단까지 가세해서 법정관리는 못한다고 협박하더니 결국 대우 워크아웃에 상당한 권리를 확보하는 것으로 협상을 맺게 되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고나면 늘어나는 대우 부채를 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10조에서 20조로 다시 40조, 60조 하면서 부채 규모는 나날이 늘어나더니 결국 정부관계자의 입에서 정확히 실사하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고백까지 튀어나왔다.

재벌그룹 대우의 몰락은 한국경제에 끼치는 여파만큼이나 국민들의 관심도 높다. 대우사태의 해결과정에서 나타나는 정부와 채권단, 노동자의 첨예한 대립, 이는 공적자금 투입의 대상, 해외매각이냐 공기업화냐에 대한 회생기업의 처리 방식 그리고, 노동자 생존권 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것이다.


<b>투기자의 이익만 옹호하는 대우처리</b>

정부와 채권단의 대우사태 해결의 기본방침은 워크아웃을 통해 기업가치를 회복한 다음, 계열기업들 특히 핵심기업들을 분리, 해외매각해서 채권단의 채권을 다시 회수하고 기업을 정상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언뜻 보아 합리적일 것 같은 대우사태의 처리방식은 손실부담과 공적자금 투입규모 등에 있어서 투기자와 자본가들을 비호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60조원이나 되는 대우 부채를 처리하기 위해 20조가 넘는 공적자금이 투입될 전망이다.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대우채권의 평균 손실부담률 38%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정부의 공적자금에 의해서 메워진다. 또한, 투신권이 보유하고 있는 18조에 달하는 무보증채권까지 대부분 공적자금에 의해 메워진다. 그러나, 대우처리과정에 투입될 공적자금 규모는 아직도 정확하지가 않다. 한국투신과 대한투신이 애초 지원규모에서 1조원씩 추가 지원하기로 했고, 서울보증보험도 4조원에서 2조원이 증가한 6조원을 지원해 주는 등 지원 규모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우의 부실을 떠안은 은행권의 자산건전성 유지에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것은 그래도 이해가 갈만하다. 그러나 투기를 목적으로 투신권에서 투자한 대우채까지도 정부의 공적자금으로 지불할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부채비율이 500%가 넘는 부실기업에 잘못 투자해서 손해가 난 투기자들의 이익까지 공적자금으로 충당되는 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공적자금의 기능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다. 만약 대우가 파산절차를 걷게 되었으면, 어차피 이들은 투자금의 5분의 일도 회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채권단은 여전히 한푼도 손해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우사태 발생 초기에, 채권단은 정부와 협의 과정에서 대우에 1조원을 추가 지원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러나 대우사태가 발생한지 6개월이 다 가도록 한푼도 지원되지 않았다. 결국 대우는 이런 상태로 방치돼 부채가 1조 2천억 원이나 더 늘어나고 말았다.


<b>특혜에 가까운 해외매각</b>

대우가 법정관리 후 파산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상 정부가 그 동안 그렇게 강조하던 시장규율과 시장질서에 의해 사태를 해결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장메카니즘에 충실하다면 부실로 더 이상의 정상경영이 어려운 기업은 대부분 파산절차를 거치게 된다. 부실에 의해 발생한 부채를 그대로 떠 안고 기업을 인수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우라는 거대 재벌의 파산은 그대로 시장의 파산을 몰고 올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시장을 통한 대우처리 방식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적자금 투입은 필연적일 수 있다. 그러나 공적자금의 투입 대상과 손실부담비율도 문제지만, 공적자금 투입 후 회생된 기업의 처리방식(소유방식)이 더 큰 문제가 된다.

정부와 채권단은 대우그룹 산하 기업들을 매각 또는 해외매각할 계획이다. 그 이유가 공적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라지만, 이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매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실제 기업가치가 얼마가 되건 간에 부채탕감은 절대적 조치이며, 그리고나서도 아주 헐값에 매각시키기 때문이다.
제일은행은 7조원이나 되는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나서, 불과 5천억원에 해외매각되었다. 기아차의 현대 인수도 다르지 않았다. 애초에 10조원이나 되는 부채를 탕감해주기로 했으나 그것도 모자라 현대의 요구에 의해 다시 3조원을 더 탕감해주었다. 이 상태에서의 매각은 특혜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13조나 20조씩 투입해 부채가 정리된 대기업은 세 살배기 어린아이도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b>노동자와 민중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대우 워크아웃</b>

무엇보다도 대우사태의 처리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사태의 해결이 정부와 채권단에 의해서만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대우 워크아웃은 수십조에 달하는 공적자금이 투입되어 채권단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는 반면, 노동자들에게는 고용불안과 임금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대우의 경영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경영에 아무런 책임도 없는 노동자들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하루아침에 직장이 없어지게 될 불안한 나날들을 보내야 하는가? 주주들의 책임을 묻는 것과 경영에 책임이 없는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똑같이 놓고 다룰 성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노동자들의 책임있는(!)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더구나 채권단은 노조와 회사가 합의한 워크아웃 동의서조차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우에 투자된 돈을 회수하면 그뿐, 대우그룹과 하청 기업의 노동자, 그 가족 수십만의 생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결국, 정부와 채권단의 대우사태 해결방향은 노동자 민중의 희생을 강요하는 구조조정에 지나지 않는다. 김대중 정부는 워크아웃 과정에서 금융시장 불안요소를 최대한 없애야 한다는 미명 아래, 대우의 부실 회사채나 기업어음에 투자한 투자자들을 보호하고 부실투자나 부실대출에 책임있는 금융기관들의 손실을 공적자금 투여 형태로 국민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다. 또한 정리해고와 임금삭감을 통해 노동자들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기업가치를 높여 제3자나 외국자본에게 정상화된 기업을 매각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철저하게 반노동자적이며, 친재벌적인 워크아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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