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0.39호
폴러첸과 보이는 손
2003년 한반도의 가장 문제적 이방인, 노르베르트 폴러첸
2002년에 한반도를 가장 떠들썩하게 했던 이방인으로 히딩크가 있었다면 2003년에 가장 인구에 회자되는 이는 두말 할 것 없이 노르베르트 폴러첸(Norbert Vollertsen)이다.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58년에 태어난 이 벽안의 의사는 몇 년 전에는 북한에서의 헌신적인 의료 활동으로 ‘공화국 친선메달’을 수여 받은 이채로운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북한 탈북자들의 기획망명을 주도했으며 올 여름 대구 U대회에서는 북한 기자단과 몸싸움을 벌였고 이제는 국회 증인으로까지 출석하는 개가를 올리고 있다. 이렇듯 세간의 시선을 끌고 있는 폴러첸에 대해서는 엇갈린 평가들을 하고 있는데 일각에서는 그를 ‘돈키호테’로 취급하고 어떤 이는 그를 醫師를 넘어 義士로 칭송하기도 한다. (물론 ‘돈키호테와 같다’라는 ‘관용’적인 표현은 돈키호테에 대한 지독한 몰이해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북한 인민을 위해 노무현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고 하며 정부의 분노까지 산 이 문제적 인물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미디어 전략에 유능한 폴러첸의 행적
마흔 다섯의 이 독일인 의사가 자신의 조국에서 행한 의료개혁운동에서부터 시작해 지금 북한의 인권을 위한다고 하며 일으키는 사단까지 배경을 이루고 있는 공통분모는 바로 미디어에 대한 강한 집착이다. 폴러첸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생각과 활동을 알리고 실천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바로 TV를 비롯한 미디어 매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는 어쩌면 대단히 평범한 사고일지는 몰라도 그가 일으킨 Show들은 범상한 것만은 아니었다. 폴러첸이 일으킨 최초의 사단은 99년에 독일의료제도 개혁을 위한 퍼포먼스에서 시작되었다. ‘응급의사단’(Komittee Cap Anamur)의 일원이었던 그는 독일의료제도 개혁을 위해서 TV를 동원한 가운데 권총 자살극을 일으켰다. 물론 권총에 장전된 것은 공포탄이었고 그는 다음날 정상 출근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예사롭지 않은 출발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 노르베르트 폴러첸은 이후 북한으로 건너간다. 그가 북한에서 출국조치 되었던 사유도 2000년 10월 울브라이트 당시 米국무장관이 방북할 당시에 서방기자들을 무단으로 끌고 다닌 이유였다. 이렇듯 줄곧 언론 플레이에 익숙하고 능숙했던 폴러첸은 그 후 북한 인권을 위한다는 명목으로서 자신의 활동 방향을 맞춘 이후에도 각종 퍼포먼스와 과장된 인터뷰로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껏 받고자 노력했다. 올 8월에 집중적으로 일어났던 그의 쇼들인 서울시청 앞 인공기 훼손 사건이나 소형 라디오와 현금을 풍선에 띄어 북한에 보내겠다는 시도 그리고 대구U대회에서의 북한 기자단과의 충돌은 그동안 그의 수미 일관된 행보를 살펴보면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는 이미 북한에서 출국 당한 직후였던 2001년 1월에는 판문점을 통해 월북하려는 퍼포먼스를 취해 JSA에서 붙잡히기도 했으며 작년에는 한-일 월드컵 기간동안에 보트를 이용한 대규모 탈북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언론이 집중될 것이라는 이유로 월드컵 개-폐막식을 무산시킬 것이라는 허언을 한 바 있다. 올 봄에는 중국에 해외공관에 북한난민들을 기획 망명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몰래 카메라를 설치하는 용의주도함을 보이기도 했었던 것을 기억하면 그의 미디어 전략은 과히 훌륭한 것(?)이라 할만하다. 그는 2002년 6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디어가 없었더라면 북한이나 남한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나는 미디어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극적인 텔레비전 영상이 나올 수 있는 사건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CNN이나 ABC, CBS 쪽에서도 내 의도를 알고 있기 때문에 협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남들이 보면 미친 짓 같은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각종 이벤트와 퍼포먼스 그리고 놀랍도록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며 동시에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을 폴러첸 존재 자체의 이채로움만으로 해석하기에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폴러첸과 ‘보이는 손들’
폴러첸이 일으킨 사건 사고들과 그를 다룬 언론보도들 그리고 그의 인터뷰만을 살펴보더라도 그가 결코 ‘필마단기’가 아니라 그가 잡고 있는 손들이 있으며 이 손들은 대단히 ‘강력한 손’임을 알 수가 있다.
우선 가깝게는 폴러첸이 소형 라디오를 北에 풍선으로 날려보내려고 시도했을 때 동행했던 더글라스 신(신동철.48)을 발견할 수 있다. 미영주권자인 더글라스 신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본부를 둔 탈북자 지원단체 한반도 평화프로젝트 ‘엑서더스21’의 총책임자다. 신동철은 최근 중국에 탈북자들을 위한 난민촌을 건설할 계획이 있다고 밝힌 인물이다. 실제 그는 중국 내 탈북자들을 몽골 피난처로 이주시켜 생활 터전을 마련해 주는 ■몽골 루트■를 개척하다 2000년 말 몽골 국경에서 몽골 국경수비대에 체포 감금당하기도 했으나 몽골주재 미영사관의 도움으로 풀려난 적이 있는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미국에서 북한을 겨냥한 활동을 펼치는 NGO는 ‘엑소더스21’만이 아니며 최근 이들의 활발한 움직임이 언론을 통해서도 포착된다. 지난 7월 미국에서는 20여 개 단체들이 모인 북한자유연합(NKFC)이 결성되었다. 북한자유연합(NKFC)의 핵심 구성단체는 신동철의 말에 따르면■워싱턴 D.C. 허드슨연구소 마이클 호로위츠 수석연구원을 중심으로 미국내 기독교와 유대교단체, 미국을 생각하는 여성들(CWA) 등의 종교인권단체들과 최근 북한 핵위기의 평화적해결과 김정일 정권 붕괴를 촉진하기 위해 이 같은 계획을 구상하고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고 한다.
미국의 유명한 우파 싱크탱크인 허드슨 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자 NKFC의 핵심 인사인 마이클 호로위츠(Horowitz)의 경우 언론에 따르면 독일의사 노베르트 폴러첸 얘기를 우연히(!) TV에서 본 후에 북한문제에 뛰어들었다고 한다.(문화일보2003.5.16) 호러위츠는 그러나 그가 레이건 정부 당시 기획담당 보좌관을 지낸 유대계 중진이라는 점 그리고 허드슨 연구소에서 가지고 있는 명함이 인권 및 국제종교자유프로젝트 국장이라는 점에서 그의 위치와 활동이 가지고 있는 필연적인 인과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실제 호러위츠는 미 국제종교자유위원회의 설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호러위츠를 비롯하여 NKFC멤버들은 폴러첸에 대한 직-간접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세력으로써 폴러첸 역시■호러위츠가 감독이라면 나는 주연 배우■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 2003.8.28 한국일보 기사에 따르면 폴러첸의 재정적 후원자는 호러위츠와 미국의 유명한 네오콘 핵심인사인 제임스 울시 전 CIA국장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폴러첸이 가지고 있는 국제적 연결망은 결코 만만치 않으며 최근 폴러첸의 왕성한 움직임이 미국의 대북강경세력의 준동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북한 인권문제를 화두로 하는 대북강경정책을 주장하는 미국의 매파들
7월 NKFC의 출범에서 알 수 있듯이 올 해 들어 북한 내에 대북강경세력의 움직임은 보다 가시화되고 있다.
호러위츠의 경우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03.5.30) 국무부 내부에 있는 클린턴 정부와 같은 협상정책을 원하는 의견과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반대하는 국방부와 달리 자신들은 북한과의 협상을 진행하되 인권문제. 이산가족 상봉. 식량배분에 관한 감사활동등 다양한 현안을 포함시키면서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는 방법으로 남한과 미국이 북한 정권을 붕괴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이 동구에서 그리고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종종 중국에 대해서도 제기해왔던 인권과 종교의 자유라는 허울좋은 명분을 거론하며 국내/외 여론을 조성해온 방식을 북한에서도 본격적으로 답습할 것임을 예상케 하는 것이다.
미 국무부가 올해 발표한 ‘인권과 민주주의 지원 2002-2003년 미국기록‘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미국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비중 있게 다루었으며 한국의 2개 시민단체에 25만 달러를 지원했다는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 또 미국민주주의기금(NED) www.wmd.org에서는 올해의 민주주의 수상자로 이순옥씨 등 탈북자 3명과 탈북자 지원활동가 윤현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씨를 선정했는데 이 재단이 그동안 수여한 수상자들이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대통령과 같이 세계 각 지역의 체제 변화에 기여한 인물들이었다는 점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더불어 NKFC에 참가하고 있는 단체 중에는 럼즈펠드가 후원하고 있으며 황장엽을 비롯한 탈북자들을 적극 초청하고 있는 ‘디펜스 포럼’(Defense Forum Foundation)이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디펜스 포럼이 제3회 북한인권·난민문제 국제회의(2002년)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노베르트 폴러첸씨를 2001년 3월과 5월 미국으로 방문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그와 함께 의회 포럼을 후원하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방위포럼재단은 CNN을 포함한 방송 출연과 연합통신 및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를 마련하였고, 폴러첸씨가 상원국제관계위원회와 미국언론클럽 그리고 수많은 비정부단체가 참석한 자리에서 증언할 수 있게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폴러첸씨가 지옥 혹은 미친 곳이라 묘사한 북한에 대해 "감옥국가"이란 제목의 Op-Ed를 발간하였다. 현재 방위포럼재단의 프레드 이클 이사와 수잔 숄트 회장은 새로이 발족된 북한인권위원회에()서 선출된 의장과 회계로 각각 역임하고 있다.
또 올 해 5월에 미하원 빌딩에서 전경련 주최로 열린 한-미 정상회담 기념 리셉션에서 북한 홀러코스트 박물관 건립운동을 추진하겠다고 호언한 돈 리터 前 펜실베니아 하원의원이 80년대에는 아프카니스탄 인권운동을 지원한 경력을 자랑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최근 미국의 움직임을 잘 보여주는 일들이다.
더불어 이러한 인권과 민주화를 제기하는데 있어서 종교의 자유를 주창하는 움직임 역시 눈여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각종 북한 선교단체 뿐 아니라 심지어 황장엽이 명예회장으로 있는 탈북동지회(http://www.nkd.or.kr)에도 북한선교가 주요한 사업으로 상정되어 있음은 이를 뒷받침한다. 폴러첸 역시 이러한 움직임에 발을 맞추고 있는데 가장 좋은 실례로써 순복음 교회에서 행한 특별간증강연 동영상을 잠시 시청하면 충분할 것이다.(http://www.fgtv.com/fgtv/B_5/WB_54_L.htm)비록 우리가 월간조선에서 출간한 그의 책 [미친곳에서의 日記]를 읽을 시간이 없더라도 말이다.
21c 스티븐스 노르베르트 폴러첸
노베르트 폴러첸은 이렇듯 미국 매파들이 추진하는 북한 인권 프로젝트의 주연 배우를 하고 있는 선봉장인 셈이다. 다만 그에 대한 혼란스러운 시선은 그가 북한을 위해서 의료활동을 했었다는 것과 그가 미국인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없는 독일인이라는 독특한 이력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독특한 위치에서의 활동으로 인해 그 활동에 대한 당대의 평가에서 혼돈스런 시선을 낳았던 또 다른 이를 떠올린다면 우리는 보다 선명하게 그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폴러첸과 가장 유사한 인물을 떠올린다면 대한제국의 외교고문을 지냈었던 미국인 스티븐스를 꼽을 수 있다. 전명운, 장인환 義士에 의해 190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저격되기 전까지 이 미국인의 활동은 누구보다도 가장 친일적인 것이었다. 당시 일본제국을 등에 업고서 대한제국의 외교고문까지 지냈던 스티븐스는 가장 친일적인 행각을 벌였지만 미국인이라는 그의 신분 때문에 역설적으로 고종이 가장 신임하는 이였다. 그는 심지어 모든 외교문서를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이러한 권한을 악 이용하여 모든 외교정보를 입수하여 일본을 위해서 제공하는데 전심전력했기 때문에 일본의 일대친우(great friend of Japan)로 불렸던 것이다. 스티븐스와 같이 자국의 이해관계와 거리를 두고 있는 국적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한 인간의 사상과 활동이 왜곡되어 높이 평가받았던 기억을 지니고 있기에 그 후 한 세기가 지나 나타난 폴러첸의 존재에 대해서 우리는 혼란해 하지 않을 것이다.
각종 언론매체에 게재되어 있는 폴러첸의 인터뷰는 종잡을 수 없는 갈지자를 그려 혼란함을 줄 가능성도 많다. 심지어 그는 때때로 자신이 좌파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거나 젊은 시절에 체게바라와 호치민을 동경했었다고 말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년 대선 직전에 이루어진 폴러첸의 신념을 확인할 수 있는 인터뷰를 인용하는 것으로서 이 문제적 인간의 실체에 대한 규명작업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겠다.
“나는 이번 대선에서 햇볕정책이 바뀌었으면 합니다. 김정일에게 너무 당근을 많이 주었습니다. 이제 몽둥이를 들 때입니다. 햇볕만 주면 그곳은 사막이 됩니다. 비도 종종 내려야지요. 나는 비를 만드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