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 활력과 보편성을 회복하자
매일노동뉴스 2003년 9월 25일자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민주노총, 조합원 총투표 재논의
하반기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벌이기로 한 민주노총이 산하연맹들에서 조합원 총투표 실시에 난색을 표시함에 따라 26일 비상중앙집행위원회를 소집, 총투표 실시여부를 재논의하기로 했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27일 대의원대회에서 "올 하반기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벌이고, 이를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결정하며 가결될 경우 투쟁 시기와 수위는 중앙위원회에서 결정한다"는 하반기 사업계획을 세운 것과 관련, 지난 18일 중집위에선 다음달 28일부터 총투표를 실시하기로 세부계획을 정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20일 세부 집행계획 점검을 위해 열린 연맹 사무처장단 회의에서 대부분 연맹의 사무처장들이 조합원 총투표 실시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다시 중앙집행위원회가 소집된 것.
위 기사는 현재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남한 노동운동이 처해 있는 상태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과연 노동운동은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우선 노동운동이 처한 상황을 몇 가지 정리해보도록 하자.
노무현 정권과 자본의 대공세
우리는 올해 초에 노무현 정권의 노동정책을 전망하면서 노무현 정권이 ‘글로벌 스탠다드, 사회적 합의주의, 외자유치’를 위해 노동에 대한 공격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것은 소위 정규직 과보호 해제와 비정규직 보호라는 미명 하에 노동권에 한층 거세게 신자유주의 공격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틈날 때마다 노동운동을 집단 이기주의로 매도하고 공권력을 동원하여 탄압하는 것을 서슴치 않는 노무현 정권이 강요하는 것은 결국 “신자유주의에 순응하는 착한 노동운동이 되든지 초토화되든지 양자택일하라는 것”이다. 배달호 열사투쟁에서 시작하여 최근의 화물연대 2차 파업투쟁에 이르기까지 사안에 따라 조금씩 양상이 다르긴 했지만 본질은 역시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경쟁 시대에 걸맞는 ‘건전하고 합리적인’ 신자유주의 노동운동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난 9월 30일 청와대와 민주노총의 만남에서도 노무현은 지난 80년대와는 노동운동 여건이 달라진 점을 들어 민주노총의 투쟁 일변도 전략의 변화를 거듭 요구했고 (불안정한) 일자리 창출에 협력하라고 위협 아닌 위협을 하였다.
이는 세계적인 경제불황과 경쟁격화의 상황에서 한국자본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권이 살아남으려는 절박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경제성장과 한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이들의 공포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따라서 금융세계화 된 세계경제 속에서 생존하고자 하는 자본은 한편으로는 동북아경제중심 계획을 추진하여 동북아 권역 내에서 금융 및 비즈니스 주도권을 잡으려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경쟁에 걸림돌이 되는 각종 규제 완화, 노동비용 절감, 노동운동 약화를 꾀하려 한다.
경제자유구역 시행 - 주5일제 근기법 개악 - 노사관계선진화 로드맵 발표 등을 보면 자본과 정권이 이러한 수순을 차근차근 관철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히 지배계급의 선차적 계급투쟁이 노동운동을 압도하는 상황이다. 이는 노무현 정권 내내 지속되는 기조일 것이다. 당장만 해도 비정규직을 제도화하고 양산하기 위해 정부는 비정규직 보호방안, 노동자 민중의 노후 소득을 금융적으로 착취할 국민연금과 기업연금(퇴직연금) 개악안 도입 등을 시도하고 있다.
한편 이와 같은 지배계급의 공격에 노동운동은 사안별로 대응해왔다. 올해 투쟁에 있어서도 대개 사안이 발생한 부분을 중심으로 투쟁을 진행하긴 했지만 공동 연대투쟁을 조직하지는 못하였다. 그 결과 2차 철도파업에 공권력 투입 - 주5일제 근기법 개악 일방적 통과 - 2차 화물파업 패배가 이어지면서 노동운동은 일종의 무기력증에 빠진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노동계급은 패배에 직면해 있다.
그동안 노무현 정권과 자본의 총공세에 노동운동은 부분적 산발적인 저항으로 대응이었기에 이러한 상황이 초래되었다고 했을 때, 이러한 투쟁 아닌 투쟁을 지속하는 것은 부분적 저항마저 격퇴되어 노동운동 자체가 무력화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바, 단위노조에서 상급단체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노동운동 모든 세력이 상황의 심각함을 인식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계급 내 양극화 심화
노동 계급 내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2002년 8월 현재 남녀, 고용형태별 월임금 총액은 남자를 100으로 할 때 여자는 58이고, 정규직을 100으로 할 때 비정규직은 53이며, 남자 정규직을 100으로 할 때 여자 비정규직은 38밖에 안된다. 시간당 임금 기준으로는 남자를 100으로 할 때 여자는 61이고, 정규직을 100으로 할 때 비정규직은 51이며, 남자 정규직을 100으로 할 때 여자 비정규직은 단지 39에 머무른다. 상위 10% 계층과 하위 10% 계층 사이에 임금격차(90/10)를 각 집단별로 살펴보면, 월임금 총액 기준으로는 3~4배, 시간당 임금 기준으로는 3.6~5.1배이다.” 특히 서비스 산업의 비대화 속에서 용역화, 여성화, 빈곤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70년대를 방불케 하는 노동조건과 노조탄압, 열악한 투쟁이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대규모 조직력에 기반을 둔 교섭력을 바탕으로 대부분의 요구를 보장받기도 한다. 임금과 복지, 고용 등에 있어서의 이러한 차이는 현실적으로는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노동자도 드러나게 되어 노동계급 통합을 저해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권과 자본측에서는 ‘정규직 과보호’, ‘대기업노조 책임론’ 등을 거론하며 이데올로기 공세를 펼침으로써, 과도한 것을 요구하는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 때문에 비정규직 문제 개선이 지연되고 있다고 호도한다. 정작 그들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과 노동운동 거세정책이라는 의도는 숨긴 채, 노동운동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면서 개선책은 내놓지 않는 기만적인 작태를 보이고 있다. 물론 그들의 그러한 공세가 전적으로 부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노동운동이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 중심으로 전개될 때 정권과 자본의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음을, 노동자 내부의 불평등을 극복하고 연대지향적이고 계급통합적인 노동운동을 제 1의 과제로 추구할 때만 노동자 계급 전체의 권리 쟁취가 가능하다는 중요한 시사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할 것이다. 자본과 정권의 목표는 10%대의 조직률에 지나지 않는 한국 노동운동을 더욱 축소시켜 노조를 극히 일부 핵심 정규직 노동자들만의 이익단체로 전락시키고 대다수 노동자들은 비정규 불안정노동자로 만들어 자본의 입맛에 따라 좌지우지하는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
물론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은 800만 비정규직을 조직하고 비정규직 투쟁을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몇 년간 비정규직의 자발적이고 자기 희생적인 투쟁을 거쳐 이제는 노조운동 내에서 공식적으로 비정규직 관련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작년과 올해 화물연대 투쟁, 자동차 사내하청노조 결성 등과 같은 소중한 성과들을 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누구나 지적하듯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성, 일체감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기존 노동운동의 투쟁은 무엇을 하든 정규직의 투쟁으로 비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정규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 관련 활동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여타의 모든 노동운동의 활동에 있어서 비정규직 투쟁의 관점에 서서 계급 내 차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기본적인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운동 의제와의 불일치
노동운동이 보편적 해방운동으로서의 스스로의 과제를 정립하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이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제기되는 운동이슈는 당연히 노동운동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올해 대중적으로 광범위하게 진행된 반전운동의 경우 무장한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는 미국에 반대하는 대중 의식의 고양, 군사주의에 대한 문제제기, 국제연대 등 중대한 계기들을 포함하며 대중 동원에 있어서도 명분이 있는 보편적 이슈이다. 노동운동은 더 이상 임단투 중심으로만 투쟁하는 조합적 한계를 벗어 던지고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운동을 할 수 있는 유력한 계기였다는 것이다. 중점적으로 WTO 개방 문제를 통해 드러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항하는 운동 역시 갈수록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미국 중심의 초국적 자본과 그 대리기구인 WTO, IMF 등이 개방정책, 구조조정, 다자(양자)간자유무역협정 등을 추진을 통한 그들만의 금융세계화는 각 국의 노동자 민중들의 생존을 더욱 위협하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투쟁은 전략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올해에는 WTO 각료회의 투쟁이 있었고 이경해 농민열사의 죽음을 계기로 대중적으로 WTO와 세계화의 문제가 열리고 있는 만큼 대안세계화 운동을 확장할 수 있는 분위기도 조성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대안세계화 운동과 반전운동에 있어 노동운동은 아직 전면적으로 결합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3-4월 파병반대 투쟁, WTO 반대투쟁 등에 있어서 노동운동은 실질적인 대중투쟁에 나서지 못하였다. 이제라도 노동운동은 이 운동들에 대해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다행히 현재 이라크 전투병 파병 반대투쟁에 있어 민주노총이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고 ‘파병반대 국민행동’에 각 산별 연맹도 결합되어 있는 만큼 희망적이라 할 것이다.
결국 현재 노동운동은 정권과 자본의 공세 속에서 계급이 양극화되고 있고 무기력을 경험하고 있는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본적인 처방, 계기가 없으면 향후 노동운동의 기반과 정당성 자체가 심각하게 침식당할 수도 있다. 달리 말하면 한국 노동운동은 새로운 기로에 놓여 있다.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지금 건설적인 미래상을 제시하면서 성숙한 노동계급으로 성장하느냐, 아니면 협소한 노동조합주의에 몰두해 내부적으로는 분열되고 외부적으로는 고립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하반기 투쟁의 성격과 전망
이와 같이 노동운동이 처한 상황과 조건에서 민주노총은 하반기 총력투쟁의 과제로 3대 요구 쟁취를 설정하고 있다. 그것은 1)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화와 차별철폐를 위한 제도개혁 실시 - 특수고용노동자 노동자성 및 노동3권 보장, 파견제 철폐, 기간제 사용제한 2) 국민연금개악 중단 국민연금개악중단 및 올바른 재정추계에 의한 국민연금제도 개혁(보험료 11.66%, 수급률 60% 보장), 군비축소, 부유세(금융소득 종합과세)로 국민연금 국고보조 3) ‘사용자대항권’ 등 노동탄압중단과 손배■가압류철폐, 직권중재 철폐 등 노동3권 강화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노동자대회에 10만인을 조직한다는 방침이다. 투쟁과제와 요구 자체는 정세적으로 타당하고 노동운동이 투쟁해야할 내용이다. 이와 관련하여 16차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에서는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다.
... 총연맹은 이러한 연맹의 상황을 고려하여 첫째 ‘10만 노동자 대회’ 준비에 총력을 기울인다. 둘째 조합원 총투표는 ‘10만 노동자 대회’ 이후 예상되는 긴박한 정세요구와 조직 내 준비 정도를 고려하여 그 시행 시기를 결정한다.
어찌 보면 대의원대회 결정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각급 연맹의 어려움을 감안한 타개책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을 반영한 결정이라면 이에 걸맞는 실천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물론 외부자 혹은 논평자의 입장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투쟁을 함께 해나가는 노동운동단위의 일부인 우리는 조심스럽게 이러한 말을 하고자 한다. 우선 노동운동 내적인 통합력을 형성하는데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노동운동 제 세력간의 통합력 형성, 정규직 비정규직간의 연대성 획득 등을 포함하여 그야말로 노동자 내부에서 단결을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10만 노동자대회 조직화는 이를 위한 유력한 방안이 될 수 있다. 10만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조합의 공식 비공식 체계와 현장의 모든 세력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작년에 농민들이 1년 내내 교육하고 선전하고 조직해서 10만의 농민대회 투쟁을 만들어 낸 것처럼 민주노조 운동이 총단결할 것을 결의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는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활동가들이 자신감을 회복하고 정권과 자본에 대해 노동운동의 힘을 과시하여 노동운동 전체가 다시금 활력을 되찾는 문제이다. 따라서 노조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운동은 어떤 형태로든 이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보편적인 의제와 이슈를 바탕으로 한 투쟁을 통해 노동운동의 정당성과 사회운동적 변혁성을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파병반대 반전운동은 그 중요한 매개이다. 조합주의적 현안 대응을 넘어 정치적 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노동운동에 있어 하나의 새로운 시도이고 그 과정에서 이전과는 다른 힘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운동과 더욱 강력하게 연대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노동운동은 파병반대 투쟁에 있어 새롭고도 비상한 결의로 노동자를 조직하고 행동에 나설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하반기 노동운동의 투쟁은 침체된 노동운동이 새로운 활력을 형성하여 자신감을 회복하고 보편적인 정당성을 갖는 운동으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힘과 새로운 보편성은 어느 순간 어딘가에서 주어지지는 않는다. 정세적 조건과 운동주체의 준비가 맞아떨어질 때 예기치 않게 생겨날 뿐이다. PSSP
민주노총, 조합원 총투표 재논의
하반기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벌이기로 한 민주노총이 산하연맹들에서 조합원 총투표 실시에 난색을 표시함에 따라 26일 비상중앙집행위원회를 소집, 총투표 실시여부를 재논의하기로 했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27일 대의원대회에서 "올 하반기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벌이고, 이를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결정하며 가결될 경우 투쟁 시기와 수위는 중앙위원회에서 결정한다"는 하반기 사업계획을 세운 것과 관련, 지난 18일 중집위에선 다음달 28일부터 총투표를 실시하기로 세부계획을 정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20일 세부 집행계획 점검을 위해 열린 연맹 사무처장단 회의에서 대부분 연맹의 사무처장들이 조합원 총투표 실시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다시 중앙집행위원회가 소집된 것.
위 기사는 현재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남한 노동운동이 처해 있는 상태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과연 노동운동은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우선 노동운동이 처한 상황을 몇 가지 정리해보도록 하자.
노무현 정권과 자본의 대공세
우리는 올해 초에 노무현 정권의 노동정책을 전망하면서 노무현 정권이 ‘글로벌 스탠다드, 사회적 합의주의, 외자유치’를 위해 노동에 대한 공격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것은 소위 정규직 과보호 해제와 비정규직 보호라는 미명 하에 노동권에 한층 거세게 신자유주의 공격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틈날 때마다 노동운동을 집단 이기주의로 매도하고 공권력을 동원하여 탄압하는 것을 서슴치 않는 노무현 정권이 강요하는 것은 결국 “신자유주의에 순응하는 착한 노동운동이 되든지 초토화되든지 양자택일하라는 것”이다. 배달호 열사투쟁에서 시작하여 최근의 화물연대 2차 파업투쟁에 이르기까지 사안에 따라 조금씩 양상이 다르긴 했지만 본질은 역시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경쟁 시대에 걸맞는 ‘건전하고 합리적인’ 신자유주의 노동운동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난 9월 30일 청와대와 민주노총의 만남에서도 노무현은 지난 80년대와는 노동운동 여건이 달라진 점을 들어 민주노총의 투쟁 일변도 전략의 변화를 거듭 요구했고 (불안정한) 일자리 창출에 협력하라고 위협 아닌 위협을 하였다.
이는 세계적인 경제불황과 경쟁격화의 상황에서 한국자본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권이 살아남으려는 절박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경제성장과 한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이들의 공포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따라서 금융세계화 된 세계경제 속에서 생존하고자 하는 자본은 한편으로는 동북아경제중심 계획을 추진하여 동북아 권역 내에서 금융 및 비즈니스 주도권을 잡으려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경쟁에 걸림돌이 되는 각종 규제 완화, 노동비용 절감, 노동운동 약화를 꾀하려 한다.
경제자유구역 시행 - 주5일제 근기법 개악 - 노사관계선진화 로드맵 발표 등을 보면 자본과 정권이 이러한 수순을 차근차근 관철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히 지배계급의 선차적 계급투쟁이 노동운동을 압도하는 상황이다. 이는 노무현 정권 내내 지속되는 기조일 것이다. 당장만 해도 비정규직을 제도화하고 양산하기 위해 정부는 비정규직 보호방안, 노동자 민중의 노후 소득을 금융적으로 착취할 국민연금과 기업연금(퇴직연금) 개악안 도입 등을 시도하고 있다.
한편 이와 같은 지배계급의 공격에 노동운동은 사안별로 대응해왔다. 올해 투쟁에 있어서도 대개 사안이 발생한 부분을 중심으로 투쟁을 진행하긴 했지만 공동 연대투쟁을 조직하지는 못하였다. 그 결과 2차 철도파업에 공권력 투입 - 주5일제 근기법 개악 일방적 통과 - 2차 화물파업 패배가 이어지면서 노동운동은 일종의 무기력증에 빠진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노동계급은 패배에 직면해 있다.
그동안 노무현 정권과 자본의 총공세에 노동운동은 부분적 산발적인 저항으로 대응이었기에 이러한 상황이 초래되었다고 했을 때, 이러한 투쟁 아닌 투쟁을 지속하는 것은 부분적 저항마저 격퇴되어 노동운동 자체가 무력화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바, 단위노조에서 상급단체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노동운동 모든 세력이 상황의 심각함을 인식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계급 내 양극화 심화
노동 계급 내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2002년 8월 현재 남녀, 고용형태별 월임금 총액은 남자를 100으로 할 때 여자는 58이고, 정규직을 100으로 할 때 비정규직은 53이며, 남자 정규직을 100으로 할 때 여자 비정규직은 38밖에 안된다. 시간당 임금 기준으로는 남자를 100으로 할 때 여자는 61이고, 정규직을 100으로 할 때 비정규직은 51이며, 남자 정규직을 100으로 할 때 여자 비정규직은 단지 39에 머무른다. 상위 10% 계층과 하위 10% 계층 사이에 임금격차(90/10)를 각 집단별로 살펴보면, 월임금 총액 기준으로는 3~4배, 시간당 임금 기준으로는 3.6~5.1배이다.” 특히 서비스 산업의 비대화 속에서 용역화, 여성화, 빈곤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70년대를 방불케 하는 노동조건과 노조탄압, 열악한 투쟁이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대규모 조직력에 기반을 둔 교섭력을 바탕으로 대부분의 요구를 보장받기도 한다. 임금과 복지, 고용 등에 있어서의 이러한 차이는 현실적으로는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노동자도 드러나게 되어 노동계급 통합을 저해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권과 자본측에서는 ‘정규직 과보호’, ‘대기업노조 책임론’ 등을 거론하며 이데올로기 공세를 펼침으로써, 과도한 것을 요구하는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 때문에 비정규직 문제 개선이 지연되고 있다고 호도한다. 정작 그들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과 노동운동 거세정책이라는 의도는 숨긴 채, 노동운동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면서 개선책은 내놓지 않는 기만적인 작태를 보이고 있다. 물론 그들의 그러한 공세가 전적으로 부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노동운동이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 중심으로 전개될 때 정권과 자본의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음을, 노동자 내부의 불평등을 극복하고 연대지향적이고 계급통합적인 노동운동을 제 1의 과제로 추구할 때만 노동자 계급 전체의 권리 쟁취가 가능하다는 중요한 시사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할 것이다. 자본과 정권의 목표는 10%대의 조직률에 지나지 않는 한국 노동운동을 더욱 축소시켜 노조를 극히 일부 핵심 정규직 노동자들만의 이익단체로 전락시키고 대다수 노동자들은 비정규 불안정노동자로 만들어 자본의 입맛에 따라 좌지우지하는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
물론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은 800만 비정규직을 조직하고 비정규직 투쟁을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몇 년간 비정규직의 자발적이고 자기 희생적인 투쟁을 거쳐 이제는 노조운동 내에서 공식적으로 비정규직 관련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작년과 올해 화물연대 투쟁, 자동차 사내하청노조 결성 등과 같은 소중한 성과들을 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누구나 지적하듯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성, 일체감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기존 노동운동의 투쟁은 무엇을 하든 정규직의 투쟁으로 비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정규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 관련 활동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여타의 모든 노동운동의 활동에 있어서 비정규직 투쟁의 관점에 서서 계급 내 차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기본적인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운동 의제와의 불일치
노동운동이 보편적 해방운동으로서의 스스로의 과제를 정립하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이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제기되는 운동이슈는 당연히 노동운동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올해 대중적으로 광범위하게 진행된 반전운동의 경우 무장한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는 미국에 반대하는 대중 의식의 고양, 군사주의에 대한 문제제기, 국제연대 등 중대한 계기들을 포함하며 대중 동원에 있어서도 명분이 있는 보편적 이슈이다. 노동운동은 더 이상 임단투 중심으로만 투쟁하는 조합적 한계를 벗어 던지고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운동을 할 수 있는 유력한 계기였다는 것이다. 중점적으로 WTO 개방 문제를 통해 드러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항하는 운동 역시 갈수록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미국 중심의 초국적 자본과 그 대리기구인 WTO, IMF 등이 개방정책, 구조조정, 다자(양자)간자유무역협정 등을 추진을 통한 그들만의 금융세계화는 각 국의 노동자 민중들의 생존을 더욱 위협하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투쟁은 전략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올해에는 WTO 각료회의 투쟁이 있었고 이경해 농민열사의 죽음을 계기로 대중적으로 WTO와 세계화의 문제가 열리고 있는 만큼 대안세계화 운동을 확장할 수 있는 분위기도 조성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대안세계화 운동과 반전운동에 있어 노동운동은 아직 전면적으로 결합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3-4월 파병반대 투쟁, WTO 반대투쟁 등에 있어서 노동운동은 실질적인 대중투쟁에 나서지 못하였다. 이제라도 노동운동은 이 운동들에 대해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다행히 현재 이라크 전투병 파병 반대투쟁에 있어 민주노총이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고 ‘파병반대 국민행동’에 각 산별 연맹도 결합되어 있는 만큼 희망적이라 할 것이다.
결국 현재 노동운동은 정권과 자본의 공세 속에서 계급이 양극화되고 있고 무기력을 경험하고 있는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본적인 처방, 계기가 없으면 향후 노동운동의 기반과 정당성 자체가 심각하게 침식당할 수도 있다. 달리 말하면 한국 노동운동은 새로운 기로에 놓여 있다.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지금 건설적인 미래상을 제시하면서 성숙한 노동계급으로 성장하느냐, 아니면 협소한 노동조합주의에 몰두해 내부적으로는 분열되고 외부적으로는 고립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하반기 투쟁의 성격과 전망
이와 같이 노동운동이 처한 상황과 조건에서 민주노총은 하반기 총력투쟁의 과제로 3대 요구 쟁취를 설정하고 있다. 그것은 1)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화와 차별철폐를 위한 제도개혁 실시 - 특수고용노동자 노동자성 및 노동3권 보장, 파견제 철폐, 기간제 사용제한 2) 국민연금개악 중단 국민연금개악중단 및 올바른 재정추계에 의한 국민연금제도 개혁(보험료 11.66%, 수급률 60% 보장), 군비축소, 부유세(금융소득 종합과세)로 국민연금 국고보조 3) ‘사용자대항권’ 등 노동탄압중단과 손배■가압류철폐, 직권중재 철폐 등 노동3권 강화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노동자대회에 10만인을 조직한다는 방침이다. 투쟁과제와 요구 자체는 정세적으로 타당하고 노동운동이 투쟁해야할 내용이다. 이와 관련하여 16차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에서는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다.
... 총연맹은 이러한 연맹의 상황을 고려하여 첫째 ‘10만 노동자 대회’ 준비에 총력을 기울인다. 둘째 조합원 총투표는 ‘10만 노동자 대회’ 이후 예상되는 긴박한 정세요구와 조직 내 준비 정도를 고려하여 그 시행 시기를 결정한다.
어찌 보면 대의원대회 결정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각급 연맹의 어려움을 감안한 타개책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을 반영한 결정이라면 이에 걸맞는 실천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물론 외부자 혹은 논평자의 입장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투쟁을 함께 해나가는 노동운동단위의 일부인 우리는 조심스럽게 이러한 말을 하고자 한다. 우선 노동운동 내적인 통합력을 형성하는데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노동운동 제 세력간의 통합력 형성, 정규직 비정규직간의 연대성 획득 등을 포함하여 그야말로 노동자 내부에서 단결을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10만 노동자대회 조직화는 이를 위한 유력한 방안이 될 수 있다. 10만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조합의 공식 비공식 체계와 현장의 모든 세력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작년에 농민들이 1년 내내 교육하고 선전하고 조직해서 10만의 농민대회 투쟁을 만들어 낸 것처럼 민주노조 운동이 총단결할 것을 결의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는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활동가들이 자신감을 회복하고 정권과 자본에 대해 노동운동의 힘을 과시하여 노동운동 전체가 다시금 활력을 되찾는 문제이다. 따라서 노조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운동은 어떤 형태로든 이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보편적인 의제와 이슈를 바탕으로 한 투쟁을 통해 노동운동의 정당성과 사회운동적 변혁성을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파병반대 반전운동은 그 중요한 매개이다. 조합주의적 현안 대응을 넘어 정치적 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노동운동에 있어 하나의 새로운 시도이고 그 과정에서 이전과는 다른 힘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운동과 더욱 강력하게 연대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노동운동은 파병반대 투쟁에 있어 새롭고도 비상한 결의로 노동자를 조직하고 행동에 나설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하반기 노동운동의 투쟁은 침체된 노동운동이 새로운 활력을 형성하여 자신감을 회복하고 보편적인 정당성을 갖는 운동으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힘과 새로운 보편성은 어느 순간 어딘가에서 주어지지는 않는다. 정세적 조건과 운동주체의 준비가 맞아떨어질 때 예기치 않게 생겨날 뿐이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