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920년대의 후반과 30년대의 초반 몇 해 동안 우리 소설사의 영역에서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던 계급문학이 퇴조하면서 나타난 문학적 현상은 바로 관심의 다원화이다. 계급주의 문학은 작가의 이데올로기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서 순차적인 시간의 변화와 그 계기를 관습적으로 사용해왔다. 이에 비해 박태원과 이상으로 대표되는 1930년대 모더니즘 작가들은 “식민지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파행적인 구조 속에서 주관적인 관심의 다원화, 주관의 객관화, 현실과 이상의 괴리, 전통과의 단절”에서 오는 의식의 분열, 그 자체를 서사화한다. 또 박태원은 “예술의 자율성과 인공성”을 탐구하기 위해서 다양한 서술을 실험한다.
그 동안 박태원 역시 월북을 했다는 이유로 출판이 금지되었던 작가였다.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그 작품들이 의미 있는 작품인데, 특히 그의 특유한 문체가 문학적인 의의를 획득하고 있다. ‘구인회’의 멤버였던 박태원을 그의 대표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서사적 사건은 내면세계를 드러내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일 뿐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의 계층에 상관없이 사회에서 소외된 불행한 인물들이며, 동시에 그 세계와 융화될 수 없는 현대인의 비극적인 내면세계를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박태원은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산책하는 사람의 모티브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시간의 흐름이 내면의 변화에 따라 이동하면서 기계적인 시간(시계의 시간)이 사라지고 주관적 시간(자신이 느끼는 시간)만이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현실의 시간이 의미를 잃은 상황에서 공간이 의미화 된다. 그는 계급이념이나 사회적 집단의식을 대변한 개인이 아니라 개인의 삶, 개별화된 인물을 통해 심리소설로의 실험을 단행한다. 이 소설 속에 공간의 변화에 따른 주인공 심리의 변화를 따라가 보자.
우선,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서술방식은 의식의 주체인 구보를 ‘그’, ‘자기’, ‘구보’, ‘나’ 등으로 지칭한다. 스스로를 3인칭으로 표현하면서 자신의 내면과 외부의 상황을 묘사하는 것이다. 이를 3인칭 내적 초점 화자의 서술 양식이라고 하는데 이를 통해 박태원은 소설 속에서 일인칭 서술 양식에서의 진실성과 3인칭 서술양식의 다양한 외부 세계 반영을 동시에 추구한다. 즉, 주인공 구보와 서술자는 실제로 동일인이라고 보여지지만 이 작품에서 서술자는 구보와 구별되는 3자로 가장하여 주인공의 행동과 내면의식에 대해 객관화를 견지하고, 다양한 현실 세계를 수렴하려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 작품은 회귀형 구조다. ‘집-거리-집’은 ‘집나감-거리방황-귀가’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현재의 도시관찰과 과거에 대한 회상과 상념, 미래에 대한 예상은 거의 동일 선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구보의 도시 체험은 도시를 대표하는 군중, 교통기관, 건물 등으로 이루어진다. 현재의 구체적인 대상물에 자극을 받아 자신의 과거에 겪었던 일을 회상한다. 도시 문명의 가시적 대상물인 군중, 교통기관, 새로운 건물 등은 가난한 소설가 구보가 감당할 수 없는 방대하고 위압적인 것들이다. 구보는 이러한 도시적인 현상들을 결코 수용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구보는 그러한 도시적인 생활을 확보하지 못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구보의 중요한 관심사는 생활에 대한 생각으로 이루어진다.
도시 관찰에서 구보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질병이다. 구보는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인물이고 정규 직업이 없는 가난한 독신자로서, 경제적, 사회적 건강함을 갖지 못한 인물이다. 그리고 건강하지 못한 구보의 관찰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나 관념의 유희는 소재의 의미를 넘어서 당대 현실에 대한 상징, 한 시대와 사회의 건강하지 못함과 비정상성에 대한 진단을 보여준다. 박태원은 시인조차 황금광으로 나서는 세태, 황금에서 행복을 찾는 여자들, 자신의 경제력을 과시하는 것으로 만족을 얻는 열등생이었던 중학교 동창생, 카페 여급이 되고자 거리로 나온 소복한 여인 등 온갖 병리적인 사회상을 소설에 반영하는 것으로 구체화한다. 이렇듯 구보가 온종일 서울 구석구석을 배회하면서 확인하는 것은 당대 사회가 안고 있던 불행과 ‘건강하지 못함’에 대한 확인이며 동시에 그런 사회가 가져오는 불안함이다.
외부의 자극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으로서의 연상작용과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하여, 구보는 타인의 삶에서 관찰되는 행복의 의미와 이를 소재로 삼아 소설을 쓴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하여 숙고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데로도 갈 수 없고, 아무데로나 갈 수 있는 갈등과 방황의 과정-냉혹한 현실의 확인과정- 끝에 주인공 구보는 궁극적인 현실 긍정을 이루어낸다. 구보는 이제 “고독에 몸을 떠맡겨 버리고, 스스로 고독을 사랑하고 있는 것으로 꾸며온” 자신의 고독이 사실은 위장이었음을 고백하고, 백화점으로 나들이 나온 가족에 대한 부러움, ‘한 개의 생활을 가질 것’을 소망하며 창작에만 전념하여 그것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귀가한다.
구보의 외출은 부단한 현실 탐색과 확인 과정을 통한 식민지 지식인/문학인으로서의 자세를 성찰하게 한다. 그리고 세속적 삶 속에서만 구현되어진다고 여겼던 행복을 다시 소설가로서의 삶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과 자기 반성으로 나아간다. 이는 다만 어떤 하나의 승리를 외친다기 보다는 소시민적 행복을 바라는 어머니의 소망과 소시민적 행복에 대한 유혹을 느끼면서도 이를 꾸며낸 고독으로 멀리하려 하는 소설가로서의 자의식 사이에 방황하던 소설가가 어떤 분기점을 넘어선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그 자체로 문제의 해결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생활의 소망과 더불어 소설가로서 창작을 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구보의 모습을 통해 미래에 대한 새로운 전망(거창한 무엇이 아니다. 이는 개인적인 삶의 전망이다)으로 나간다. 하지만 이런 의미는 아주 개인적인 차원에서 머문다. 작가의 반성과 전망이 개인적 삶의 차원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그가 구사하는 기교가 단순한 기교가 아닌 작품 전반적인 스타일이면서 내용인데 반해 박태원 특유의 개성으로 남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다. 작가 자신의 사상과 현실에 대한 성찰이 이 안에 충분히 융화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PSSP
그 동안 박태원 역시 월북을 했다는 이유로 출판이 금지되었던 작가였다.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그 작품들이 의미 있는 작품인데, 특히 그의 특유한 문체가 문학적인 의의를 획득하고 있다. ‘구인회’의 멤버였던 박태원을 그의 대표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서사적 사건은 내면세계를 드러내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일 뿐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의 계층에 상관없이 사회에서 소외된 불행한 인물들이며, 동시에 그 세계와 융화될 수 없는 현대인의 비극적인 내면세계를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박태원은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산책하는 사람의 모티브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시간의 흐름이 내면의 변화에 따라 이동하면서 기계적인 시간(시계의 시간)이 사라지고 주관적 시간(자신이 느끼는 시간)만이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현실의 시간이 의미를 잃은 상황에서 공간이 의미화 된다. 그는 계급이념이나 사회적 집단의식을 대변한 개인이 아니라 개인의 삶, 개별화된 인물을 통해 심리소설로의 실험을 단행한다. 이 소설 속에 공간의 변화에 따른 주인공 심리의 변화를 따라가 보자.
우선,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서술방식은 의식의 주체인 구보를 ‘그’, ‘자기’, ‘구보’, ‘나’ 등으로 지칭한다. 스스로를 3인칭으로 표현하면서 자신의 내면과 외부의 상황을 묘사하는 것이다. 이를 3인칭 내적 초점 화자의 서술 양식이라고 하는데 이를 통해 박태원은 소설 속에서 일인칭 서술 양식에서의 진실성과 3인칭 서술양식의 다양한 외부 세계 반영을 동시에 추구한다. 즉, 주인공 구보와 서술자는 실제로 동일인이라고 보여지지만 이 작품에서 서술자는 구보와 구별되는 3자로 가장하여 주인공의 행동과 내면의식에 대해 객관화를 견지하고, 다양한 현실 세계를 수렴하려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 작품은 회귀형 구조다. ‘집-거리-집’은 ‘집나감-거리방황-귀가’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현재의 도시관찰과 과거에 대한 회상과 상념, 미래에 대한 예상은 거의 동일 선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구보의 도시 체험은 도시를 대표하는 군중, 교통기관, 건물 등으로 이루어진다. 현재의 구체적인 대상물에 자극을 받아 자신의 과거에 겪었던 일을 회상한다. 도시 문명의 가시적 대상물인 군중, 교통기관, 새로운 건물 등은 가난한 소설가 구보가 감당할 수 없는 방대하고 위압적인 것들이다. 구보는 이러한 도시적인 현상들을 결코 수용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구보는 그러한 도시적인 생활을 확보하지 못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구보의 중요한 관심사는 생활에 대한 생각으로 이루어진다.
도시 관찰에서 구보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질병이다. 구보는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인물이고 정규 직업이 없는 가난한 독신자로서, 경제적, 사회적 건강함을 갖지 못한 인물이다. 그리고 건강하지 못한 구보의 관찰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나 관념의 유희는 소재의 의미를 넘어서 당대 현실에 대한 상징, 한 시대와 사회의 건강하지 못함과 비정상성에 대한 진단을 보여준다. 박태원은 시인조차 황금광으로 나서는 세태, 황금에서 행복을 찾는 여자들, 자신의 경제력을 과시하는 것으로 만족을 얻는 열등생이었던 중학교 동창생, 카페 여급이 되고자 거리로 나온 소복한 여인 등 온갖 병리적인 사회상을 소설에 반영하는 것으로 구체화한다. 이렇듯 구보가 온종일 서울 구석구석을 배회하면서 확인하는 것은 당대 사회가 안고 있던 불행과 ‘건강하지 못함’에 대한 확인이며 동시에 그런 사회가 가져오는 불안함이다.
외부의 자극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으로서의 연상작용과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하여, 구보는 타인의 삶에서 관찰되는 행복의 의미와 이를 소재로 삼아 소설을 쓴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하여 숙고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데로도 갈 수 없고, 아무데로나 갈 수 있는 갈등과 방황의 과정-냉혹한 현실의 확인과정- 끝에 주인공 구보는 궁극적인 현실 긍정을 이루어낸다. 구보는 이제 “고독에 몸을 떠맡겨 버리고, 스스로 고독을 사랑하고 있는 것으로 꾸며온” 자신의 고독이 사실은 위장이었음을 고백하고, 백화점으로 나들이 나온 가족에 대한 부러움, ‘한 개의 생활을 가질 것’을 소망하며 창작에만 전념하여 그것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귀가한다.
구보의 외출은 부단한 현실 탐색과 확인 과정을 통한 식민지 지식인/문학인으로서의 자세를 성찰하게 한다. 그리고 세속적 삶 속에서만 구현되어진다고 여겼던 행복을 다시 소설가로서의 삶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과 자기 반성으로 나아간다. 이는 다만 어떤 하나의 승리를 외친다기 보다는 소시민적 행복을 바라는 어머니의 소망과 소시민적 행복에 대한 유혹을 느끼면서도 이를 꾸며낸 고독으로 멀리하려 하는 소설가로서의 자의식 사이에 방황하던 소설가가 어떤 분기점을 넘어선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그 자체로 문제의 해결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생활의 소망과 더불어 소설가로서 창작을 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구보의 모습을 통해 미래에 대한 새로운 전망(거창한 무엇이 아니다. 이는 개인적인 삶의 전망이다)으로 나간다. 하지만 이런 의미는 아주 개인적인 차원에서 머문다. 작가의 반성과 전망이 개인적 삶의 차원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그가 구사하는 기교가 단순한 기교가 아닌 작품 전반적인 스타일이면서 내용인데 반해 박태원 특유의 개성으로 남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다. 작가 자신의 사상과 현실에 대한 성찰이 이 안에 충분히 융화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