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여성과 노동에 대한 단상

김정은 | 편집부장
멕시코에서 이주해온 한 여성은 이미 미국에 살고 있는 언니와 함께 한 고층 빌딩 청소 일을 하게 된다. 젊은 그녀 앞에 한 남성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는 노동자 조직화를 위해 활동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한 나이 많은 노동자가 근무시간에 지각을 하게 되자, 관리자는 근무 태만과 안경을 가져오지 않아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녀를 잘라버리려 한다. 마침 노조 설립에 관심을 갖게 된 주인공과 주위 노동자들은 합심하여 단결권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관리자의 방해공작과 해고 협박이 이어지지만, 노동자들은 다른 청소 노조원들과 연대하며 스스로를 조직화한다. 턱없이 낮은 임금에 항의하며 임금 상승과 의료보험 혜택 등을 내걸고 사측과 투쟁하여 마침내 승리를 쟁취한다. 결말에선 두 자매의 갈등도 서로를 이해하며 해소된다. 언니는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이주해 성매매에 종사했었고 그 기반으로 이제야 그나마 직장을 얻어 가정을 꾸려가고 있는데, 동생이 노조 활동을 열심히 하게 되면서 안정된 생활을 잃게 될까 염려하며 동생과 갈등을 빚게 되었던 것이다. 자신의 노동권을 지키기 위한 활동들이 좌초되고 타협으로 마무리될 수도 있는 현실적인 갈등들 또한 이 영화는 놓치지 않고 있다. 계속 봐야지 벼르다가 간만에 비디오방을 찾아 본 “빵과 장미”라는 영화의 내용이다.

오랜만에 보는 정치적으로 건전한(^^) 영화였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고 그것을 쟁취하는 과정은 스스로 단결하여 조직화하는 것과 동시적인 일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나 현실적으로 노동하는 여성들이 조직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사업장에 모여 함께 노동한다는 것은 노동자 조직화에 있어 큰 장점일 것이다. 실제 많은 여성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다. 재택 근무의 형태로, 가내 하청의 형태로 일하는 노동자들, 노동자임을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비공식 노동자들이 주로 여성이다. 그녀들은 노동하면서도 노동자로 인정받지도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지도 못한다. 성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만 하더라도 150만 여명으로 추산되는데, 그녀들은 윤리적인 이유 때문에라도 감히 자신의 직업조차 말하지 못한다.
이렇게 흩어져있고, 지속적으로 노동할 수 없다는 것도 여성 노동자 조직화에 어려운 점으로 작용한다. 여성 취업곡선은 M자형을 그린다. 결혼 전까지 높았던 취업률은 여성들이 출산과 양육을 담당하는 시기에 급격히 감소했다가 이후 다시 상승하게 된다. 양육이나 가사 노동 때문에 여성들은 지속적으로 취업상태에 있지 못하고 실업을 반복하게 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여성들을 조직화하려면 다른 방식의 조직화 계획이 필요하다.
비정규직, 비공식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사업장에 앉아 노조원들이 가입할 것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있는 영세 사업장, 그녀들의 가정과 같은 곳으로 가서 직접 그/녀들을 조직해야 한다. 사업장별 노동조합을 고수하는 형태로는 더 이상 여성노동자들을 폭넓게 조직할 수 없다. 지역일반노조나 실업자를 포함하는 노조 형태가 이러한 점에서 긍정성이 있는 것 같다. 좀 더 조사,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최근에 서울대병원 간병인 노조 집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엄마 간병을 하느라 병원에 자주 드나든 나는 간병하는 직업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다. 아픈 사람 마음까지 헤아려야 하는 보살핌 노동에, 환자 볼일까지 치워야하는 허드렛일, 환자 옆에서 꼬박 새우잠을 자야하는 장시간 야간 노동까지... 그러나 이렇게 힘들게 노동해온 그녀들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할 기회마저 박탈당했다. 그녀들은 이제 비공식 부문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며 스스로를 조직화하며 투쟁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에서 비공식 부문 여성 노동자 조직화는 우리에게 여성 노동자 조직화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 하다. 여성 노동자 조직화를 위해 좀 더 정세적이고 목적의식적인 연대투쟁이 진행되어야 한다. 나는 ‘노동의 불안정화’라는 인식이 무조건 비정규직과 연대하는 문제로 환원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안정적으로 노동하던 남성 노동자들이 비정규직화되고 사내하청화된다는 것에 대항해서 정규직화를 외치고 있는데, 이런 현실 이면에는 애초에 비정규직이었고 노동의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 노동자들의 상황은 간과되어 있다. 나는 이제껏 여성이 처한 불안정한 노동 상황이 전반적으로 확산, 심화되고 있다는 의미에서 노동을 분석하는 개념들이 더욱 예각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노동운동, 단위 사업장 중심의 투쟁이 이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주체 형성에 기여하지 못하고 수세적인 투쟁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신자유주의 시대 가장 억압받고 고통받는 이들을 새로운 주체로 세워낼 수 있는 운동이 전개되어야 하며 이들과의 연대를 위한 각각의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럴 때만이 침체되어 있는 노동운동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여성위 토론회에 참석했던 ‘장애여성공감’ 양영희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성이 처한 노동 현실의 열악함에 대해, 또한 장애 여성이 겪는 또 다른 차별과 불평등에 대해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장애 여성의 노동 실태에 대한 조사는 따로 존재하지 않고 다만 장애인 실태조사에서 몇 퍼센트를 차지하는 정도로만 조사가 이뤄지는 방식은 장애 여성이 무성적인 존재로 취급되는 것을 드러내는 한 단면이다. 그러나 이러한 여성들도 노동 현장에서는 철저한 성별분업 하에 여성적인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이러한 일을 한다고 장애 여성들이 여성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취급받는다는 말은 아니다. 여성에 대한 인식과 지위가 여성이 노동하는 곳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말이다. 장애 여성들의 경우, 온전히 학교 교육을 이수하지 못하고 어렸을 때부터 영세 수공업 등의 노동현장에 투입되어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극악한 노동 착취에 시달린다. 이러한 현실은 장애 여성의 교육권 박탈과 노동 상황의 열악함을 말해준다. ‘여성’이 ‘노동’한다는 것, 많은 숙제를 남긴다. PSSP
주제어
노동 여성 민중생존권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