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6.46호
민의련 사무처장 박주영회원을 만났습니다
다양한 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회진보연대 회원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자 "회원코너-바로 그 한사람"에 민의련 사무처장 박주영 회원을 만났습니다.
일시; 2004년 5월 25일 민의련 사무실
인터뷰; 김정은 편집부장
Q. 우선 민의련에서 하고 있는 중점 활동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A. 요즘에 민의련은 두 팀, 공공의약센터와 노동조합 보건의료 정책센터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공공의약센터는 특허권, 지적재산권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예전에 'WTO와 민중의 건강'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는데 그 토론회를 계기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 팀이 공공의약센터입니다. 주로 이야기하는 것은 의약품에 매겨진 특허가 환자에게 보편적인 약에 대한 접근권을 주는 게 아니라 제약회사 이익만을 대변하는 장치가 되어 오히려 환자가 의약품을 쉽게 싸게 살수 없도록 만든다는 겁니다. 제약회사는 특허권을 무기로 의약품을 더 비싸게 가격 매겨서 환자는 돈이 없으면 의약품을 구할 수 없는 사례들이 생겼습니다. 예를 들면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은 한 알에 26000원에 거래되, 폐암 치료제 이레사는 6만원이 넘는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환자들이 돈이 없으면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죠. 의약품이 좀 더 보편적으로 공공적으로 공급과 생산 체계 등이 민중적 방식으로 통제, 관리될 수 있도록 고민해야합니다. (삭제했습니다.->민의련은 글리벡, 이레사 투쟁에 결합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WTO, FTA 자유무역협정에서 지적재산권, 특허권을 강화하는 방식이 논의되고 있어 여기에 반대하는 입장들을 제출하고 환자들, 보건의료 단체들내에서 이슈화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 보건의료 정책센타는, 전반적으로 보건의료 정책, 의료 정책에 비판하고 노동자 민중 중심의 보건의료 정책에 대한 입장을 현장에서 조직하고 교류할 수 있도록 활동하는 단위입니다. 보건의료 문제가 한 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민의 문제이므로 궁극적으로는 민주노총이나 대중조직 차원에서 보건의료 사안을 자신의 투쟁과제로 인식하고 투쟁을 자임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데 사실 쉽지는 않습니다. 예전에 했던 작업은 지방공사의료원에서 어떻게 공공성을 강화할 것인지 그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었습니다. 2002년엔 "중소병원 노조운동의 현황과 전망"이란 제목으로 위기에 처한 중소병원이 자본의 입장이 아니라 민중의 입장에서 위치를 재설정하고 공공적인 것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인지를 노조들과 논의하였고, 최근에는 의료시장 개방 문제를 화두로 의료 상업화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의료도 교육, 문화와 같이 서비스협상을 통해 사유화 상업화가 추진되고 있습니다. 특히 정부에서 경제자유구역을 통해 외국인 병원을 유치한다는 명분으로 국내 모든 규제들을 완화하려고 하는데 그 기도를 반대하는 투쟁을 조직하고 있습니다. 의료개방저지공대위에 참가하면서. 주되게 정부 시행 의료개방 정책 문제점을 비판하고, 서비스 협상, 개방화 정책 등을 반대하는 의료 상업화 반대 투쟁을 조직할 예정입니다.
Q. 민의련에서 AIDS인권모임을 꾸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
A. AIDS인권모임은 환자운동에 대한 주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민의련은 글리벡 공대위 활동을 통해 의약품에 대한 접근권을 화두로 환자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를 고민해왔습니다. 이런 고민 속에서 환자들의 인권에 대해 가장 모순이 중첩된 부분이 많은 AIDS에 주목하고 이 부분에 대해 연구, 검토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HIV/AIDS는 만성적인 질환일 뿐인데, 사실 이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차별이 너무나 심각한 상황입니다. 병원에서 진료를 거부하거나, 보건의료인들조차 HIV/AIDS에 대해서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런 차별들이 감염인들에게 생계를 꾸려나갈 수 없도록 노동시장에서 소외되고 있는 상황이라서, 이 질환이 장애로 인정되지도 않고(참고로 미국은 HIV감염인을 장애법으로 보호하고 있다) 그렇다고 노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한계적이라서 실질적인 생활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이런 차별의 문제를 알고 치료접근성과 정부의 관리정책에 대해 문제점을 우선 짚어보려고 합니다.
AIDS 인권에 대해서는 외국사례도 많고 시사점도 많은 상황이기도 하고, 민의련 몇몇 회원과 관심있는 분들, 환자들과 인권 모임을 꾸려서 AIDS 운동에 대해 검토하고 환자들에 대한 차별을 검토하는 중입니다. 이 과정에서 국가인권위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되어 프로젝트 통해서 HIV감염인들이 어떤 차별을 겪는지, 국가가 얼마나 이들을 배제하고 불평등하게 대하는지 차분하게 연구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올해 1년 정도는 AIDS 모임에 대해 검토하고 가능성을 모색하는 단계로 삼고자 합니다. 프로젝트가 잘 진행되면 AIDS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이를 대중적으로 확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민의련 사무처장으로서 보건의료 운동의 의의와 중요성에 대해 한 말씀.
A. 보건의료도 마찬가지로 계급투쟁이 그대로 관철되고 있습니다. 보건의료 부문이 단순히 일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가 아니라 그 속에 관철되는 계급적 역관계를 짚어내며 전선을 만들어야 합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공공부문의 사유화, 보건의료에 대한 산업적 측면이 강조되는 흐름등이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고요. 지금까지는 운동진영 내에서 보건의료를 민중적으로 재편하려는 고민이 역사적으로 있었는데, 최근 개혁의 추진 속에서 전선이 혼미해지는 지점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건의료 운동의 정확한 대적 전선을 그어낼 것인가. 어떻게 급진적이고 보건의료운동을 재조직할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의련은 조직적 전망 논의를 여러 차례 진행한 바 있으나 아직 해답은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보건의료운동 내에서의 역할을 되묻는 상황이고 질문에 해답을 찾아야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죠. 개인적으로는 올해나 내년까지는 정리된 입장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고민입니다.
Q. 과거, 99년부터 01년까지 사회진보연대 편집실에서 활동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사회진보연대의 상황에 대해 들려주세요.
A. 사실 98년 12월에 사회진보연대가 창립되었고, 저도 창립식 준비를 같이 하면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상근자가 많지 않았고 조직 전망에 대해 막 고민을 시작하는 단계라 서로들의 활동에 대해 같이 고민해주는 가족적인 분위기가 많았던 것 같아요.
당시 편집실은 맨 처음 시작 멤버가 3명이었는데, 체계가 아직 잡히지 않아서 1년 정도는 체계를 잡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게다가 편집실 구성원들이 거의 학번상 막내들이어서 편집실 체계, 운영에 대해 고민은 많은데, 답은 나오지 않은 상태였던지라 서로의 활동에 대해 경청하고 공유하는 과정이 대부분이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 후 1년이 지나, 상근자가 재배치되고 홍석만 동지나 지금의 사무국장님이신 박준도 동지가 결합하면서 체계를 많이 정비하려고 했고 기관지를 매월 발간하고 기획회의를 정례화 하게 되었습니다.
Q. 민의련 활동과 사회진보연대 활동을 비교한다면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A. 사회진보연대가 상근자 중심으로 사업이 집행되고 활동이 진행된다면 민의련은 회원 중심으로 운영되는 점이 가장 다른 점 같습니다. 그래도 활동의 대부분을 상근자가 커버하면서 운영되긴 하지만 회원 활동으로 재조직되도록 하니까요. 회원은 서울 35명에 부산 회원과 후원회원들까지 합하면 약 50명 정도입니다. 회원자격 제한은 없지만 아무래도 보건의료 계열 종사자인 약사, 의사들이 많고 회원들 중에는 제약회사에서 일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보건대학이나 학교에서 예방의학, 의료관리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분들도 있구요.
Q. 당시 기관지를 발간하셨던 편집실원으로서 현재 사회진보연대 기관지에 대한 견해를 듣고싶습니다.
A. 개인적으로는 투쟁 사업장에 많이 가고 현장취재를 많이 다니고 싶었어요. 사업장, 현장의 발언을 많이 들으려고 했는데, 사실 별로 많이 하지는 못했어요. 사회진보연대가 벌이는 활동이 많은데 그런 활동들이 활동의 면면 다는 아니더라고. 활동의 풍경을 기관지에 담기고 고민이 묻어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정세분석 만이 아니라 이주나 빈곤 등 일상적인 활동을 충분히 담아내야겠죠. 이런 활동들을 많이 알릴 수 있도록 기관지를 활용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Q. 민의련 사무국장으로서, 사회진보연대 회원으로서 사회진보연대에 바라는 바는 무엇입니까?
A. 예전에 사회진보연대랑 단체들이 사회운동 재조직화에 대해 진영 내에서 새로운 혁신을 위한 논의들이 진행됐었는데, 지금 운동 내 면면을 보면 역동적으로 운동이 진행된다기보다 고립분산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전선 복구 어려운 지점들에 대한 고민들을 주도적으로 제안하고 논의했음 좋겠다.
마지막 회원으로서 하고싶은 말을 물었을 때, 박주영 회원은 상근비 현실화를 시급히 해결해야할 문제라고 말씀해 주었다. 사회진보연대가 이제 5년을 넘어서고 있는데, 어떤 식으로든 활동을 유지하고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이를 담보해야한다고. 이는 물론 단체 활동가인 박주영 회원에게도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PSSP
일시; 2004년 5월 25일 민의련 사무실
인터뷰; 김정은 편집부장
Q. 우선 민의련에서 하고 있는 중점 활동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A. 요즘에 민의련은 두 팀, 공공의약센터와 노동조합 보건의료 정책센터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공공의약센터는 특허권, 지적재산권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예전에 'WTO와 민중의 건강'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는데 그 토론회를 계기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 팀이 공공의약센터입니다. 주로 이야기하는 것은 의약품에 매겨진 특허가 환자에게 보편적인 약에 대한 접근권을 주는 게 아니라 제약회사 이익만을 대변하는 장치가 되어 오히려 환자가 의약품을 쉽게 싸게 살수 없도록 만든다는 겁니다. 제약회사는 특허권을 무기로 의약품을 더 비싸게 가격 매겨서 환자는 돈이 없으면 의약품을 구할 수 없는 사례들이 생겼습니다. 예를 들면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은 한 알에 26000원에 거래되, 폐암 치료제 이레사는 6만원이 넘는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환자들이 돈이 없으면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죠. 의약품이 좀 더 보편적으로 공공적으로 공급과 생산 체계 등이 민중적 방식으로 통제, 관리될 수 있도록 고민해야합니다. (삭제했습니다.->민의련은 글리벡, 이레사 투쟁에 결합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WTO, FTA 자유무역협정에서 지적재산권, 특허권을 강화하는 방식이 논의되고 있어 여기에 반대하는 입장들을 제출하고 환자들, 보건의료 단체들내에서 이슈화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 보건의료 정책센타는, 전반적으로 보건의료 정책, 의료 정책에 비판하고 노동자 민중 중심의 보건의료 정책에 대한 입장을 현장에서 조직하고 교류할 수 있도록 활동하는 단위입니다. 보건의료 문제가 한 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민의 문제이므로 궁극적으로는 민주노총이나 대중조직 차원에서 보건의료 사안을 자신의 투쟁과제로 인식하고 투쟁을 자임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데 사실 쉽지는 않습니다. 예전에 했던 작업은 지방공사의료원에서 어떻게 공공성을 강화할 것인지 그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었습니다. 2002년엔 "중소병원 노조운동의 현황과 전망"이란 제목으로 위기에 처한 중소병원이 자본의 입장이 아니라 민중의 입장에서 위치를 재설정하고 공공적인 것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인지를 노조들과 논의하였고, 최근에는 의료시장 개방 문제를 화두로 의료 상업화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의료도 교육, 문화와 같이 서비스협상을 통해 사유화 상업화가 추진되고 있습니다. 특히 정부에서 경제자유구역을 통해 외국인 병원을 유치한다는 명분으로 국내 모든 규제들을 완화하려고 하는데 그 기도를 반대하는 투쟁을 조직하고 있습니다. 의료개방저지공대위에 참가하면서. 주되게 정부 시행 의료개방 정책 문제점을 비판하고, 서비스 협상, 개방화 정책 등을 반대하는 의료 상업화 반대 투쟁을 조직할 예정입니다.
Q. 민의련에서 AIDS인권모임을 꾸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
A. AIDS인권모임은 환자운동에 대한 주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민의련은 글리벡 공대위 활동을 통해 의약품에 대한 접근권을 화두로 환자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를 고민해왔습니다. 이런 고민 속에서 환자들의 인권에 대해 가장 모순이 중첩된 부분이 많은 AIDS에 주목하고 이 부분에 대해 연구, 검토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HIV/AIDS는 만성적인 질환일 뿐인데, 사실 이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차별이 너무나 심각한 상황입니다. 병원에서 진료를 거부하거나, 보건의료인들조차 HIV/AIDS에 대해서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런 차별들이 감염인들에게 생계를 꾸려나갈 수 없도록 노동시장에서 소외되고 있는 상황이라서, 이 질환이 장애로 인정되지도 않고(참고로 미국은 HIV감염인을 장애법으로 보호하고 있다) 그렇다고 노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한계적이라서 실질적인 생활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이런 차별의 문제를 알고 치료접근성과 정부의 관리정책에 대해 문제점을 우선 짚어보려고 합니다.
AIDS 인권에 대해서는 외국사례도 많고 시사점도 많은 상황이기도 하고, 민의련 몇몇 회원과 관심있는 분들, 환자들과 인권 모임을 꾸려서 AIDS 운동에 대해 검토하고 환자들에 대한 차별을 검토하는 중입니다. 이 과정에서 국가인권위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되어 프로젝트 통해서 HIV감염인들이 어떤 차별을 겪는지, 국가가 얼마나 이들을 배제하고 불평등하게 대하는지 차분하게 연구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올해 1년 정도는 AIDS 모임에 대해 검토하고 가능성을 모색하는 단계로 삼고자 합니다. 프로젝트가 잘 진행되면 AIDS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이를 대중적으로 확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민의련 사무처장으로서 보건의료 운동의 의의와 중요성에 대해 한 말씀.
A. 보건의료도 마찬가지로 계급투쟁이 그대로 관철되고 있습니다. 보건의료 부문이 단순히 일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가 아니라 그 속에 관철되는 계급적 역관계를 짚어내며 전선을 만들어야 합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공공부문의 사유화, 보건의료에 대한 산업적 측면이 강조되는 흐름등이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고요. 지금까지는 운동진영 내에서 보건의료를 민중적으로 재편하려는 고민이 역사적으로 있었는데, 최근 개혁의 추진 속에서 전선이 혼미해지는 지점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건의료 운동의 정확한 대적 전선을 그어낼 것인가. 어떻게 급진적이고 보건의료운동을 재조직할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의련은 조직적 전망 논의를 여러 차례 진행한 바 있으나 아직 해답은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보건의료운동 내에서의 역할을 되묻는 상황이고 질문에 해답을 찾아야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죠. 개인적으로는 올해나 내년까지는 정리된 입장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고민입니다.
Q. 과거, 99년부터 01년까지 사회진보연대 편집실에서 활동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사회진보연대의 상황에 대해 들려주세요.
A. 사실 98년 12월에 사회진보연대가 창립되었고, 저도 창립식 준비를 같이 하면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상근자가 많지 않았고 조직 전망에 대해 막 고민을 시작하는 단계라 서로들의 활동에 대해 같이 고민해주는 가족적인 분위기가 많았던 것 같아요.
당시 편집실은 맨 처음 시작 멤버가 3명이었는데, 체계가 아직 잡히지 않아서 1년 정도는 체계를 잡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게다가 편집실 구성원들이 거의 학번상 막내들이어서 편집실 체계, 운영에 대해 고민은 많은데, 답은 나오지 않은 상태였던지라 서로의 활동에 대해 경청하고 공유하는 과정이 대부분이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 후 1년이 지나, 상근자가 재배치되고 홍석만 동지나 지금의 사무국장님이신 박준도 동지가 결합하면서 체계를 많이 정비하려고 했고 기관지를 매월 발간하고 기획회의를 정례화 하게 되었습니다.
Q. 민의련 활동과 사회진보연대 활동을 비교한다면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A. 사회진보연대가 상근자 중심으로 사업이 집행되고 활동이 진행된다면 민의련은 회원 중심으로 운영되는 점이 가장 다른 점 같습니다. 그래도 활동의 대부분을 상근자가 커버하면서 운영되긴 하지만 회원 활동으로 재조직되도록 하니까요. 회원은 서울 35명에 부산 회원과 후원회원들까지 합하면 약 50명 정도입니다. 회원자격 제한은 없지만 아무래도 보건의료 계열 종사자인 약사, 의사들이 많고 회원들 중에는 제약회사에서 일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보건대학이나 학교에서 예방의학, 의료관리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분들도 있구요.
Q. 당시 기관지를 발간하셨던 편집실원으로서 현재 사회진보연대 기관지에 대한 견해를 듣고싶습니다.
A. 개인적으로는 투쟁 사업장에 많이 가고 현장취재를 많이 다니고 싶었어요. 사업장, 현장의 발언을 많이 들으려고 했는데, 사실 별로 많이 하지는 못했어요. 사회진보연대가 벌이는 활동이 많은데 그런 활동들이 활동의 면면 다는 아니더라고. 활동의 풍경을 기관지에 담기고 고민이 묻어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정세분석 만이 아니라 이주나 빈곤 등 일상적인 활동을 충분히 담아내야겠죠. 이런 활동들을 많이 알릴 수 있도록 기관지를 활용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Q. 민의련 사무국장으로서, 사회진보연대 회원으로서 사회진보연대에 바라는 바는 무엇입니까?
A. 예전에 사회진보연대랑 단체들이 사회운동 재조직화에 대해 진영 내에서 새로운 혁신을 위한 논의들이 진행됐었는데, 지금 운동 내 면면을 보면 역동적으로 운동이 진행된다기보다 고립분산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전선 복구 어려운 지점들에 대한 고민들을 주도적으로 제안하고 논의했음 좋겠다.
마지막 회원으로서 하고싶은 말을 물었을 때, 박주영 회원은 상근비 현실화를 시급히 해결해야할 문제라고 말씀해 주었다. 사회진보연대가 이제 5년을 넘어서고 있는데, 어떤 식으로든 활동을 유지하고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이를 담보해야한다고. 이는 물론 단체 활동가인 박주영 회원에게도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