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신파시즘 질서
최근 오스트리아에서 성장하는 것에서 보듯이, 유럽의 극우파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스칸디나비아나 영국에서처럼 선거제도에서 배제된 우익운동의 일부는 테러리즘으로 전환하였으며, 다른 부류는 정치적 대표성을 희석시키는 좌우파 구분의 모호함을 적극 이용하고 있다. 그러기에 문제는 '파시즘의 부활'이라기보다는 '정치적·경제적 합의의 민주주의에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1999년 6월 13일 유럽 선거에서 극우정당의 참패와 프랑스 국민전선의 분열은 극우정당이 쇠퇴할 것이라고 예측하게 했다. 그러나 최근 선거결과는 이러한 예측을 빗나가게 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1999년 10월 3일 선거에서 외르크 하이데가 이끄는 자유당이 26.91%의 득표율을 올리며 제2당이 되었고, 크리스토퍼 블로흐의 스위스 인민당은 22.5%의 득표율로 사회주의세력과 함께 1당의 위치에 올랐다.
독일국민연합은 동독의 각 주의회에서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노르웨이의 진보당은 1999년 9월 14일의 시의원선거에서 이전보다 더 나은 성과를 얻었다. 13.4%의 득표율을 기록하였는데 이것은 1.4% 상승한 것이다.
서유럽에서 외국인 혐오정당들이 존속하고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은, 사회경제적 이념에서 자유지상주의가 만연하는 현상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정치지도자와 기업가 사이에서 민족국가를 과거의 일로 사고하는 뚜렷한 경향과도 연결되어 있다. 유럽 극우세력은 이처럼 사회적 기반을 확보하였으며, 이제는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기 위해 전투적 행동보다 투표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극단적 사상이 선거제도로 나아갈 수 없는 나라의 경우, 즉 영국의 지독한 first-past-the-post 제도처럼 소수정당에 우호적이지 않은 선거제도 또는 스웨덴처럼 비헌법적 입장에 대한 사회적 압력 때문에, 전투적 행동주의는 여전히 유효한 수단이 되고 있다. 하지만 조직이 분열되고 강력한 지도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우익운동이 결집하는 데 장애가 되고있다.
최근 몇 년동안 소규모의 폭력적이고 노골적인 신나치주의 집단과 인종차별주의 집단이 주류정당의 주변과 내부에서 등장하고 있다. 정치평론가 제프리 카플란과 레오나르도 와인버거에 따르면, 이 집단들은 '질서와 아리안 민족'(The Order and Aryan Nations)과 같은 미국 테러리스트 집단의 운영방식을 따르고 있다.
이 집단들은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면서 스웨덴에서의 폭력시위처럼 대규모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스킨헤드족과 같이 이렇게 위험한 운동은-동독지역의 청년층에서는 예외이지만-어떠한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도 갖고있지 않다. 이들의 활동이 활발한 국가에서 이들은, 확실히 국가사회주의와 파시스트 이데올기와 유사하며, 심지어 불법적 수단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상징적 장치들을 동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극우집단은 현재로서는 소수집단에 불과하다.
진정으로 극우정당을 지지하는 자들이 있었던 시기는 1945년부터 1980년대 이탈리아와 남유럽 독재정권 시기로 국한되었다. 그러나 빈곤의 증가와 확산, 그리고 다문화주의의 출현으로 현재 대부분의 서구 민주주의국가에서 극우파들의 활동이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이민이 보편화되고 합법화됨에 따라, 많은 국가에서 이민자에게 참정권과 시민권을 부여했고 소수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정책들이 뒤따랐다.
1960∼70년대 산업화 과정에 있었던 국가들이 극우세력의 중심지였다면, 현재는 그 중심이 중부와 북부유럽으로 이동하고 있다. 초기 극우세력의 지표였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운동(the Italian Socialist Movement)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이르러 프랑스 국민전선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었다. 그것은 이제 최소한, 서유럽에서 다양한 수준의 성공을 거둔 국가들의 많은 우익운동들에게 하나의 모델이 되었다. 탄생했지만 짧은 수명을 가졌던 벨기에 국민전선, 상당했지만 선거에서 의석을 확보할 정도는 되지 못했던 스웨덴 민주당, 그리고 대부분 주변에 머물러있던 스페인의 민족민주당, 이탈리아의 국민전선… 그러나 분열과 선거에서의 참패를 통해 르펜의 정당(프랑스 국민전선)은 더 이상 과거처럼 완벽한 모델이 될 수 없다.
제3의 물결(A Third Wave)
최근 알프스주변국(외르크 하이데와 크리스토퍼 블로흐의 당, 움베르토 보시의 북부동맹, 티치노연합)과 스칸디나비아(칼 하겐의 노르웨이 진보당, 피아 크야이스가르드의 덴마크 인민당)에서 민중주의운동으로 대표되는 제3의 흐름이 주목을 받고있다. 이들 정당은 하이데 개인을 제외하면, 파시즘이나 나치즘과 무관하다.
이들의 신념은 국가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외국인에 대해 혐오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인종차별주의나 반유태주의를 거부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그들 자신들이 극단주의자라고 규정하는 프랑스 국민전선이나 벨기에의 플란더스 블럭(the Flemish Bloc)과 협력하지는 않지만, 우익 정당들과 연정을 구성하려는 의지는 갖고있다.
이들 정당은 전통적 의미의 파시스트도 아니다. 또 이들의 선거 승리가 갖는 실제적인 의미를, '오스트리아에서 非나치화의 실패'라거나 '스위스의 뿌리깊은 외국인 혐오증'과 같은 본질적 규정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 이런 요인들은 유권자의 반발표(protest vote)를 획득하는 프랑스 국민전선이나 벨기에 플란더스 블럭과 같은 잡탕(hybrid)의 승리를 설명하지 못한다.
벨기에 플란더스 블럭은 전쟁 전 플란더스운동의 친나치주의를 계승하는 집단으로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정치평론가 Marc Swyngedouw는 지지자의 4∼5%만이 플란더즈 민족주의자이며, 이에 비해 17%의 지지자들은 인민연합을 지지한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국민전선의 경우처럼, 정치적 신념과 전투적 행동방식에서는 여전히 전통적 극우파를 계승하는 당 지도부와 이들과는 정치적 연계도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좌익적 경향을 보일 수 있는 기층 당원 사이에 원초적인 분열이 나타나고 있다. 플란더스의 경우 1991년 선거에서 사회주의 세력에게 투표했던 청년들의 21%가, 이후 선거에서는 플란더스 블럭으로 돌아섰다. 오스트리아에서는 1999년 총선에서 자유당이 사민당의 표에서 213,000표를 빼앗았다. 또 1998년 덴마크 선거에서 인민당을 지지한 유권자의 10%는, 이전 선거에서 사민당에 투표한 사람들이었다.
한편 이들 정당의 지도자들이, 과거에 극단주의적이었던 경향을 보여준 적이 없다는 사실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덴마크 인민당의 Mogens Comre는 사민당 의원이었으며, 블로흐처럼 오스트리아 자유당의 떠오르는 샛별 토마스 프린츠혼은, 극단주의와 전혀 관련이 없는 평범한 기업가였다. 이것이 이 두 사람과 브루노 메그레와 그의 공화주의정당 '국민전선-국민운동'(Front National- Mouvement National)과 상당히 다른 점이다. 또한 이 점이 브루노 메그레가 전통적 우익으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얻지 못하는 이유의 한 측면이기도 하다.
정치적 투쟁에서도 두 가지 개념이 복합되어있다. 하나는 과거지향적인 것이면서 일반적으로 반혁명적이거나 근본주의자 또는 과거회귀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것으로는 권력획득을 위한 현대화 노선을 수용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노선을 스스로 재정립하지 못한 정당들은 도태되거나 주변화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Tricolour Flame의 사회운동(the Social Movement)은 1995년 지안프랑코 피니(Gianfranco Fini)가 제안한 개혁안을 거부하였는데 현재는 고작 1.6%의 지지밖에 얻지 못하고 있다. 또 당 정책이 권위주의정부를 대변하고 옹호하는 것으로 일관했던 정당들(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은 대체로 사라져갔다.
외국인 혐오적 인민주의운동은, 특히 사회적 지위와 일자리가 불안정해진 계층으로부터 높은 지지를 얻고있다. 프랑스도 예외가 아니다. 1997년 선거에서 국민전선은 일부 선거구에서 30%에 이르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또한 청년층(30세 이하 오스트리아인의 35%)과 무종교계층 그리고 투표불참자 사이에서, 이러한 우익운동에 대한 지지가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하게 설명해볼 수 있다. 일부 이론에 의하면, 경제적이거나 상징적인 이해관계가 핵심지점이라고 한다. 경제위기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계층은 외국인 노동자를 위협적 존재로 인식하면서, 외국인 혐오적 정당에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벨기에의 플란더스 블럭은 비숙련 노동자층에게서 대부분의 지지를 얻고있다. 그리고 1999년 오스트리아 선거에서는 생산직 노동자의 48%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정당으로서 자유당에 투표했다.
독일의 경우 정치평론가 패트릭 모로우(Patrick Moreau)는 1996년 지방선거에서 공화당에 대한 노동계급의 지지율이 17%에 달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극단주의 운동에 대한 지지율과 낮은 노동조합 조직률, 실업의 경험, 대가족,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의존성, 열악한 교육수준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설명하였다.
하지만 극우정당이 각각 9.8%와 15.3%의 지지를 얻고있는 덴마크와 노르웨이에서는, 극우정당에 대한 지지와 실업의 연관성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들 국가에서 극우정당의 지지층은 자영업자들과 노동자들이며, 노동자의 지지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양국 모두에서 사민당이 아니라 진보당이 주도적인 노동자의 정당이다. 부르주아 정권이나 사민당 정권에 의해 복지국가가 잘 이루어진 국가에서는, 좌파에 대한 노동계급의 지지가 변질되고 손상되는 경향이 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노동자(운동) 전통의 일부였던 권위주의적 요소가 유일하게 현실로 드러나는 바가, 신우익(new right)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에 우리는 하나의 역설에 직면한다. 한 선거구가 탈산업사회적 극우정당에 투표하는데, 이 정당들은 모두 민족주의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정책들을 채택하고 있다. 즉 이들은 자유무역주의자들인 것이다.
따라서 오스트리아 자유당의 경제정책은 경쟁력 우위확보와 고용창출을 위해, 오스트리아 경제의 완전 탈규제화를 요구한다. 스위스 인민당은 사회보장제도를 기만이라고 비난하고, 임금과 노동시간의 유연화와 다양한 국가보조금(state benefits)의 폐지를 요구하면서, 결국은 사업가에게 유리한 조세협약(tax arrangement)을 주장한다. 스칸디나비아 정당의 정책은 조세에 대한 저항과 복지국가의 권한을 억제하려는 열망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Alexandra Colenf의원이 이끄는 벨기에 플란더스 블럭의 비주류 자유주의분파의 정책에서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탈리아 북부동맹은 더 복잡한 경우이다. 이 경우 자본주의의 현대화 속도가 빨라지고 극소산업이 급증하는 것이, 제도와 정치체제의 현대화 속도가 미처 따라오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탈리아 북부 중소사업가와 신흥중산층이 반응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상황은 (기민당의 몰락으로 인한 우파와의 괴리와 함께) 북부동맹이 외국인과 남부인에 대한 증오, 조세제도에 대한 저항, 허구적인 정체성과 역사에 기반한 독립을 주장하면서 성장하게 했다. (파다니아 독립공화국이나 파다니아 국민은 존재한 적이 없다)
Herbert Kitschelt의 견해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같은 대중적 지지의 원인은 바로 세계화에 존재한다. 그의 시각에서, 세계화는 국가개입에 기반하여 평등주의적 정책을 도입하는 것을 저해한다. 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시장을 통해서 또는 민중주의자나 자유지상주의자의 주장처럼 창의력의 발산과 개인적 능력의 계발을 통해, 개인의 사회적 지위상승을 돕는 방법으로 그리고 국가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방법으로 사회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믿음을 유권자들에게 주입시킨다.
지역적 자유주의(Prochial Liberalism)
이것은 민중주의적 투표에서 나타나는 외국인 혐오적 요소에 대해 부분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다. 노동시장에서 외국인과의 경쟁으로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은, 민중주의 정당의 자유주의정책을 선택하는데 이는 단지, 이 정책들이 사회보장제도나 고용에서 이민자를 배제하기 때문이다.
자민족 선호도가 전제된다면, 자유지상주의도 그들은 인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경우, 국민전선은 1995년 가을 사회적 전환기 이후 다른 극우정당들보다 훨씬 더한 강도로 자유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이제 국민전선은 프랑스 시민권자들만을 위한 것이긴 하지만, 공공서비스와 사회복지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점차 인정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정치가와 공무원들은 부패하고 비효율적이고 국가분배시스템 실패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또또한 이들은 정치가와 공무원의 의미가 부를 창출하는 이들(중소사업가, 전문가, 건축가, 농부, 노동자까지)에 비해, 쓸모없고 비생산적인 사람들 때문에 발생한 과도한 조세부담에 다름아니라고 주장한다.
외국인의 존재와 극우정당의 득표 사이에 직접적 연관성은 없지만, 이민에 대한 반감은 당연히 중요한 요소이다. 1997년 Eurobaromre의 조사를 통해, 프랑스 국민전선, 벨기에 플란더스 블럭, 독일 공화당 지지자들이 이민을 반대하고 어떤 형태의 다문화주의도 거부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이들 정당의 인종차별주의는 다양한 이질적 요인들이 혼합되면서 형성된 망령과 같은 것이다.(spectre of interbreeding)
하지만 스칸디나비아의 민중주의집단이나 이탈리아의 국민연맹과 북부동맹, 오스트리아 자유당 등의 다른 운동지지자들은 그런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다. 그들이 이민에 반대하는 것은 하이데의 정책에서 선명히 드러나듯이, 문화적 이질감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 사실은 한 민족이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는 것은, 타민족의 정체성을 존중하는 것과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며 이는 신우익의 인종차별주의에서 대부분 내용을 빌어온 것이다.
자유지상주의적 세계화와 극우세력의 성장 사이에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증거가 또 있다. 위 연구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의 87.5%, 국민전선 지지자의 68.4%, 오스트리아 자유당 지지자의 45.7%가 유럽연합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플란더스 블럭은 이보다 다소 낮은 40.8%가 그러한 입장을 지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회주의자의 38.9%에 비해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플란더스 운동에서는 다인종적 유럽이라는 사고가 일반적인데, 이것은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민중주의자들이 민족국가를 선호하는 경향에 대한 최선의 대응책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같은 반유럽적 흐름은 스칸디나비아나 스위스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극우정당들은 사실 지역적 자유주의를 선호하는데, 이는 자유무역에 반대하고, 국경 내로 한정되며, 사회보장제도와 국가의 개입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미의 자유주의이다. 그럼에도 일정한 운동적 흐름들은 존재하였다. 비록 크리스토퍼 블로흐가 WTO에 반대하는 어떤 주장도 하지않고 있으며, 하이데는 NATO에 가입하자는 오스트리아의 제안을 수락하였지만 프랑스 국민전선과 유사한 정당들은 WTO에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결국 시들어버린 낡은 정당제도가, 유럽 극우파의 등장과 성장에 결정적 역할을 해온 것이다. 1999년 선거 이전 스칸디나비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그리고 벨기에의 정치적 상황은, 영속적인 제휴(오스트리아에서의 사민당과 인민당, 스위스 사민당과 보수당의 공조는 이들 주요정당들이 연방의회에서 의석을 안정적으로 분배할 수 있게 했던 대응양식이었다) 또는 시장에 대한 규제와 탈규제 여부에 의해서만 구분되는 사민당과 우익 자유주의 정권들의 정기적인 정권교체에 의해서 특징지워졌다.
주요정당들의 편파주의(cronyism)와 국가와의 근친상간적(incestuous) 관계는 국가기구의 근본적 개혁을 가로막고 선거제도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따라서 하나의 계층으로서의 정치인을 도매급으로 거부하고 비난하는 것은 프랑스 국민전선, 벨기에 플란더스 블럭, 오스트리아 자유당, 이탈리아 북부동맹이 부동표를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문제였다. 이탈리아의 국민연맹 지지자들은, 그들이 참여하고 있는 권력구조와 민주적 게임의 규칙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예외적인 경우이다.
하지만 진짜 예외적인 경우는 룩셈부르크와 네덜란드인데, 이 두나라에서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상당하였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국민운동(the National Movement)과 중도민주당(the Centre Democrat)은 참패하고 말았다.
부정할 수 없는 권위주의적 경향 및 외국인 혐오성향과 별개로, 급진적 우익정당(radical parties of the right)은 좌우파 구분의 모호성으로 커다란 이익을 얻었으며, 사회민주주의를 새로운 중도주의로 전환시키는 것을 선호하는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로부터도 큰 이익을 얻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이들이 주요한 반대주장을 대변한다는 사실은-이념적 충돌이 자유주의모델을 운영하는 방식과 수단에 대한 논쟁으로 제한되는 사회에서-좌파를 무능하고 배신하는 집단으로, 보수적 우파를 맹인이자 겁쟁이 집단으로 바꾸어 버린다.
이들 정당이 권력을 장악한다면 과연 무엇을 하거나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선뜻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이탈리아의 예에서처럼, 극우정당이 어느 정도는 다른 세력에 대해 개방적일 수도 있다. 하이데와 같은 일부 지도자의 기회주의적 성향은 이러한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들이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때, 그들은 곧 자유민주주의의 유동적인 한 모습으로 전락할 것이다. 어떤 수준이든 지속적으로 우리는 공공의 권위를 억압하려 하고, 외국인을 혐오하는 폭력을 정당화하며, 민주주의에 반하는 가치로 회귀하려는 이들 정당과의 관계를 청산해야만 한다.
1999년 6월 13일 유럽 선거에서 극우정당의 참패와 프랑스 국민전선의 분열은 극우정당이 쇠퇴할 것이라고 예측하게 했다. 그러나 최근 선거결과는 이러한 예측을 빗나가게 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1999년 10월 3일 선거에서 외르크 하이데가 이끄는 자유당이 26.91%의 득표율을 올리며 제2당이 되었고, 크리스토퍼 블로흐의 스위스 인민당은 22.5%의 득표율로 사회주의세력과 함께 1당의 위치에 올랐다.
독일국민연합은 동독의 각 주의회에서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노르웨이의 진보당은 1999년 9월 14일의 시의원선거에서 이전보다 더 나은 성과를 얻었다. 13.4%의 득표율을 기록하였는데 이것은 1.4% 상승한 것이다.
서유럽에서 외국인 혐오정당들이 존속하고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은, 사회경제적 이념에서 자유지상주의가 만연하는 현상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정치지도자와 기업가 사이에서 민족국가를 과거의 일로 사고하는 뚜렷한 경향과도 연결되어 있다. 유럽 극우세력은 이처럼 사회적 기반을 확보하였으며, 이제는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기 위해 전투적 행동보다 투표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극단적 사상이 선거제도로 나아갈 수 없는 나라의 경우, 즉 영국의 지독한 first-past-the-post 제도처럼 소수정당에 우호적이지 않은 선거제도 또는 스웨덴처럼 비헌법적 입장에 대한 사회적 압력 때문에, 전투적 행동주의는 여전히 유효한 수단이 되고 있다. 하지만 조직이 분열되고 강력한 지도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우익운동이 결집하는 데 장애가 되고있다.
최근 몇 년동안 소규모의 폭력적이고 노골적인 신나치주의 집단과 인종차별주의 집단이 주류정당의 주변과 내부에서 등장하고 있다. 정치평론가 제프리 카플란과 레오나르도 와인버거에 따르면, 이 집단들은 '질서와 아리안 민족'(The Order and Aryan Nations)과 같은 미국 테러리스트 집단의 운영방식을 따르고 있다.
이 집단들은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면서 스웨덴에서의 폭력시위처럼 대규모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스킨헤드족과 같이 이렇게 위험한 운동은-동독지역의 청년층에서는 예외이지만-어떠한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도 갖고있지 않다. 이들의 활동이 활발한 국가에서 이들은, 확실히 국가사회주의와 파시스트 이데올기와 유사하며, 심지어 불법적 수단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상징적 장치들을 동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극우집단은 현재로서는 소수집단에 불과하다.
진정으로 극우정당을 지지하는 자들이 있었던 시기는 1945년부터 1980년대 이탈리아와 남유럽 독재정권 시기로 국한되었다. 그러나 빈곤의 증가와 확산, 그리고 다문화주의의 출현으로 현재 대부분의 서구 민주주의국가에서 극우파들의 활동이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이민이 보편화되고 합법화됨에 따라, 많은 국가에서 이민자에게 참정권과 시민권을 부여했고 소수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정책들이 뒤따랐다.
1960∼70년대 산업화 과정에 있었던 국가들이 극우세력의 중심지였다면, 현재는 그 중심이 중부와 북부유럽으로 이동하고 있다. 초기 극우세력의 지표였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운동(the Italian Socialist Movement)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이르러 프랑스 국민전선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었다. 그것은 이제 최소한, 서유럽에서 다양한 수준의 성공을 거둔 국가들의 많은 우익운동들에게 하나의 모델이 되었다. 탄생했지만 짧은 수명을 가졌던 벨기에 국민전선, 상당했지만 선거에서 의석을 확보할 정도는 되지 못했던 스웨덴 민주당, 그리고 대부분 주변에 머물러있던 스페인의 민족민주당, 이탈리아의 국민전선… 그러나 분열과 선거에서의 참패를 통해 르펜의 정당(프랑스 국민전선)은 더 이상 과거처럼 완벽한 모델이 될 수 없다.
제3의 물결(A Third Wave)
최근 알프스주변국(외르크 하이데와 크리스토퍼 블로흐의 당, 움베르토 보시의 북부동맹, 티치노연합)과 스칸디나비아(칼 하겐의 노르웨이 진보당, 피아 크야이스가르드의 덴마크 인민당)에서 민중주의운동으로 대표되는 제3의 흐름이 주목을 받고있다. 이들 정당은 하이데 개인을 제외하면, 파시즘이나 나치즘과 무관하다.
이들의 신념은 국가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외국인에 대해 혐오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인종차별주의나 반유태주의를 거부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그들 자신들이 극단주의자라고 규정하는 프랑스 국민전선이나 벨기에의 플란더스 블럭(the Flemish Bloc)과 협력하지는 않지만, 우익 정당들과 연정을 구성하려는 의지는 갖고있다.
이들 정당은 전통적 의미의 파시스트도 아니다. 또 이들의 선거 승리가 갖는 실제적인 의미를, '오스트리아에서 非나치화의 실패'라거나 '스위스의 뿌리깊은 외국인 혐오증'과 같은 본질적 규정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 이런 요인들은 유권자의 반발표(protest vote)를 획득하는 프랑스 국민전선이나 벨기에 플란더스 블럭과 같은 잡탕(hybrid)의 승리를 설명하지 못한다.
벨기에 플란더스 블럭은 전쟁 전 플란더스운동의 친나치주의를 계승하는 집단으로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정치평론가 Marc Swyngedouw는 지지자의 4∼5%만이 플란더즈 민족주의자이며, 이에 비해 17%의 지지자들은 인민연합을 지지한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국민전선의 경우처럼, 정치적 신념과 전투적 행동방식에서는 여전히 전통적 극우파를 계승하는 당 지도부와 이들과는 정치적 연계도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좌익적 경향을 보일 수 있는 기층 당원 사이에 원초적인 분열이 나타나고 있다. 플란더스의 경우 1991년 선거에서 사회주의 세력에게 투표했던 청년들의 21%가, 이후 선거에서는 플란더스 블럭으로 돌아섰다. 오스트리아에서는 1999년 총선에서 자유당이 사민당의 표에서 213,000표를 빼앗았다. 또 1998년 덴마크 선거에서 인민당을 지지한 유권자의 10%는, 이전 선거에서 사민당에 투표한 사람들이었다.
한편 이들 정당의 지도자들이, 과거에 극단주의적이었던 경향을 보여준 적이 없다는 사실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덴마크 인민당의 Mogens Comre는 사민당 의원이었으며, 블로흐처럼 오스트리아 자유당의 떠오르는 샛별 토마스 프린츠혼은, 극단주의와 전혀 관련이 없는 평범한 기업가였다. 이것이 이 두 사람과 브루노 메그레와 그의 공화주의정당 '국민전선-국민운동'(Front National- Mouvement National)과 상당히 다른 점이다. 또한 이 점이 브루노 메그레가 전통적 우익으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얻지 못하는 이유의 한 측면이기도 하다.
정치적 투쟁에서도 두 가지 개념이 복합되어있다. 하나는 과거지향적인 것이면서 일반적으로 반혁명적이거나 근본주의자 또는 과거회귀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것으로는 권력획득을 위한 현대화 노선을 수용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노선을 스스로 재정립하지 못한 정당들은 도태되거나 주변화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Tricolour Flame의 사회운동(the Social Movement)은 1995년 지안프랑코 피니(Gianfranco Fini)가 제안한 개혁안을 거부하였는데 현재는 고작 1.6%의 지지밖에 얻지 못하고 있다. 또 당 정책이 권위주의정부를 대변하고 옹호하는 것으로 일관했던 정당들(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은 대체로 사라져갔다.
외국인 혐오적 인민주의운동은, 특히 사회적 지위와 일자리가 불안정해진 계층으로부터 높은 지지를 얻고있다. 프랑스도 예외가 아니다. 1997년 선거에서 국민전선은 일부 선거구에서 30%에 이르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또한 청년층(30세 이하 오스트리아인의 35%)과 무종교계층 그리고 투표불참자 사이에서, 이러한 우익운동에 대한 지지가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하게 설명해볼 수 있다. 일부 이론에 의하면, 경제적이거나 상징적인 이해관계가 핵심지점이라고 한다. 경제위기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계층은 외국인 노동자를 위협적 존재로 인식하면서, 외국인 혐오적 정당에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벨기에의 플란더스 블럭은 비숙련 노동자층에게서 대부분의 지지를 얻고있다. 그리고 1999년 오스트리아 선거에서는 생산직 노동자의 48%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정당으로서 자유당에 투표했다.
독일의 경우 정치평론가 패트릭 모로우(Patrick Moreau)는 1996년 지방선거에서 공화당에 대한 노동계급의 지지율이 17%에 달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극단주의 운동에 대한 지지율과 낮은 노동조합 조직률, 실업의 경험, 대가족,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의존성, 열악한 교육수준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설명하였다.
하지만 극우정당이 각각 9.8%와 15.3%의 지지를 얻고있는 덴마크와 노르웨이에서는, 극우정당에 대한 지지와 실업의 연관성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들 국가에서 극우정당의 지지층은 자영업자들과 노동자들이며, 노동자의 지지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양국 모두에서 사민당이 아니라 진보당이 주도적인 노동자의 정당이다. 부르주아 정권이나 사민당 정권에 의해 복지국가가 잘 이루어진 국가에서는, 좌파에 대한 노동계급의 지지가 변질되고 손상되는 경향이 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노동자(운동) 전통의 일부였던 권위주의적 요소가 유일하게 현실로 드러나는 바가, 신우익(new right)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에 우리는 하나의 역설에 직면한다. 한 선거구가 탈산업사회적 극우정당에 투표하는데, 이 정당들은 모두 민족주의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정책들을 채택하고 있다. 즉 이들은 자유무역주의자들인 것이다.
따라서 오스트리아 자유당의 경제정책은 경쟁력 우위확보와 고용창출을 위해, 오스트리아 경제의 완전 탈규제화를 요구한다. 스위스 인민당은 사회보장제도를 기만이라고 비난하고, 임금과 노동시간의 유연화와 다양한 국가보조금(state benefits)의 폐지를 요구하면서, 결국은 사업가에게 유리한 조세협약(tax arrangement)을 주장한다. 스칸디나비아 정당의 정책은 조세에 대한 저항과 복지국가의 권한을 억제하려는 열망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Alexandra Colenf의원이 이끄는 벨기에 플란더스 블럭의 비주류 자유주의분파의 정책에서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탈리아 북부동맹은 더 복잡한 경우이다. 이 경우 자본주의의 현대화 속도가 빨라지고 극소산업이 급증하는 것이, 제도와 정치체제의 현대화 속도가 미처 따라오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탈리아 북부 중소사업가와 신흥중산층이 반응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상황은 (기민당의 몰락으로 인한 우파와의 괴리와 함께) 북부동맹이 외국인과 남부인에 대한 증오, 조세제도에 대한 저항, 허구적인 정체성과 역사에 기반한 독립을 주장하면서 성장하게 했다. (파다니아 독립공화국이나 파다니아 국민은 존재한 적이 없다)
Herbert Kitschelt의 견해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같은 대중적 지지의 원인은 바로 세계화에 존재한다. 그의 시각에서, 세계화는 국가개입에 기반하여 평등주의적 정책을 도입하는 것을 저해한다. 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시장을 통해서 또는 민중주의자나 자유지상주의자의 주장처럼 창의력의 발산과 개인적 능력의 계발을 통해, 개인의 사회적 지위상승을 돕는 방법으로 그리고 국가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방법으로 사회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믿음을 유권자들에게 주입시킨다.
지역적 자유주의(Prochial Liberalism)
이것은 민중주의적 투표에서 나타나는 외국인 혐오적 요소에 대해 부분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다. 노동시장에서 외국인과의 경쟁으로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은, 민중주의 정당의 자유주의정책을 선택하는데 이는 단지, 이 정책들이 사회보장제도나 고용에서 이민자를 배제하기 때문이다.
자민족 선호도가 전제된다면, 자유지상주의도 그들은 인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경우, 국민전선은 1995년 가을 사회적 전환기 이후 다른 극우정당들보다 훨씬 더한 강도로 자유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이제 국민전선은 프랑스 시민권자들만을 위한 것이긴 하지만, 공공서비스와 사회복지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점차 인정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정치가와 공무원들은 부패하고 비효율적이고 국가분배시스템 실패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또또한 이들은 정치가와 공무원의 의미가 부를 창출하는 이들(중소사업가, 전문가, 건축가, 농부, 노동자까지)에 비해, 쓸모없고 비생산적인 사람들 때문에 발생한 과도한 조세부담에 다름아니라고 주장한다.
외국인의 존재와 극우정당의 득표 사이에 직접적 연관성은 없지만, 이민에 대한 반감은 당연히 중요한 요소이다. 1997년 Eurobaromre의 조사를 통해, 프랑스 국민전선, 벨기에 플란더스 블럭, 독일 공화당 지지자들이 이민을 반대하고 어떤 형태의 다문화주의도 거부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이들 정당의 인종차별주의는 다양한 이질적 요인들이 혼합되면서 형성된 망령과 같은 것이다.(spectre of interbreeding)
하지만 스칸디나비아의 민중주의집단이나 이탈리아의 국민연맹과 북부동맹, 오스트리아 자유당 등의 다른 운동지지자들은 그런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다. 그들이 이민에 반대하는 것은 하이데의 정책에서 선명히 드러나듯이, 문화적 이질감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 사실은 한 민족이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는 것은, 타민족의 정체성을 존중하는 것과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며 이는 신우익의 인종차별주의에서 대부분 내용을 빌어온 것이다.
자유지상주의적 세계화와 극우세력의 성장 사이에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증거가 또 있다. 위 연구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의 87.5%, 국민전선 지지자의 68.4%, 오스트리아 자유당 지지자의 45.7%가 유럽연합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플란더스 블럭은 이보다 다소 낮은 40.8%가 그러한 입장을 지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회주의자의 38.9%에 비해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플란더스 운동에서는 다인종적 유럽이라는 사고가 일반적인데, 이것은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민중주의자들이 민족국가를 선호하는 경향에 대한 최선의 대응책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같은 반유럽적 흐름은 스칸디나비아나 스위스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극우정당들은 사실 지역적 자유주의를 선호하는데, 이는 자유무역에 반대하고, 국경 내로 한정되며, 사회보장제도와 국가의 개입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미의 자유주의이다. 그럼에도 일정한 운동적 흐름들은 존재하였다. 비록 크리스토퍼 블로흐가 WTO에 반대하는 어떤 주장도 하지않고 있으며, 하이데는 NATO에 가입하자는 오스트리아의 제안을 수락하였지만 프랑스 국민전선과 유사한 정당들은 WTO에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결국 시들어버린 낡은 정당제도가, 유럽 극우파의 등장과 성장에 결정적 역할을 해온 것이다. 1999년 선거 이전 스칸디나비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그리고 벨기에의 정치적 상황은, 영속적인 제휴(오스트리아에서의 사민당과 인민당, 스위스 사민당과 보수당의 공조는 이들 주요정당들이 연방의회에서 의석을 안정적으로 분배할 수 있게 했던 대응양식이었다) 또는 시장에 대한 규제와 탈규제 여부에 의해서만 구분되는 사민당과 우익 자유주의 정권들의 정기적인 정권교체에 의해서 특징지워졌다.
주요정당들의 편파주의(cronyism)와 국가와의 근친상간적(incestuous) 관계는 국가기구의 근본적 개혁을 가로막고 선거제도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따라서 하나의 계층으로서의 정치인을 도매급으로 거부하고 비난하는 것은 프랑스 국민전선, 벨기에 플란더스 블럭, 오스트리아 자유당, 이탈리아 북부동맹이 부동표를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문제였다. 이탈리아의 국민연맹 지지자들은, 그들이 참여하고 있는 권력구조와 민주적 게임의 규칙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예외적인 경우이다.
하지만 진짜 예외적인 경우는 룩셈부르크와 네덜란드인데, 이 두나라에서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상당하였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국민운동(the National Movement)과 중도민주당(the Centre Democrat)은 참패하고 말았다.
부정할 수 없는 권위주의적 경향 및 외국인 혐오성향과 별개로, 급진적 우익정당(radical parties of the right)은 좌우파 구분의 모호성으로 커다란 이익을 얻었으며, 사회민주주의를 새로운 중도주의로 전환시키는 것을 선호하는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로부터도 큰 이익을 얻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이들이 주요한 반대주장을 대변한다는 사실은-이념적 충돌이 자유주의모델을 운영하는 방식과 수단에 대한 논쟁으로 제한되는 사회에서-좌파를 무능하고 배신하는 집단으로, 보수적 우파를 맹인이자 겁쟁이 집단으로 바꾸어 버린다.
이들 정당이 권력을 장악한다면 과연 무엇을 하거나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선뜻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이탈리아의 예에서처럼, 극우정당이 어느 정도는 다른 세력에 대해 개방적일 수도 있다. 하이데와 같은 일부 지도자의 기회주의적 성향은 이러한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들이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때, 그들은 곧 자유민주주의의 유동적인 한 모습으로 전락할 것이다. 어떤 수준이든 지속적으로 우리는 공공의 권위를 억압하려 하고, 외국인을 혐오하는 폭력을 정당화하며, 민주주의에 반하는 가치로 회귀하려는 이들 정당과의 관계를 청산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