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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0.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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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어드벤처, 노동의 길찾기

벤처기업노동조합원 |
기대와 설렘, 갈등과 두려움

2000년 2월 9일, 우리 회사에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최초의 노동조합 설립당시, 사측은 몹시 당황하고 불안해했으나, 지금은 노동조합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고 하지 않으면서도 단체협상을 진행하고, 옥신각신 밀고당기는 과정에 차츰 적응을 해가고 있다. 우리노조는 아직 신생노조이고 단체협상 및 투쟁의 쟁점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외부적으로 노조의 이름과 글쓴이를 밝힐 수는 없는 상황이다. 하기에 아래의 글에서 편의상 우리 회사의 노동조합을 '우리노조'라고 칭하도록 하겠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첫째, 소위 말하는 '정보통신업계' '인터넷벤처기업'이 계급갈등 없는 노동의 낙원이 아니며 왜곡되고 있는 지점이 너무 많다는 것, 둘째, '인터넷벤처기업'을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광적인 주식투자에 문제가 매우 많다는 것이다.

우리노조가 세워지는 과정에서의 경험에 대한 서술과 전반적인 인터넷벤처기업의 상황에 대한 기술은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고 예상된다. 일단 글쓴이의 경험이 한 회사에 국한된 것이고, 시각 역시 우리노조가 세워지는 경험을 지반으로 한 협소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글이 남한 자본(기업)의 신화, 인터넷벤처기업의 신화를 벗기는데 작은 사례로의 역할을 했으면 한다.

우리노조는 투쟁 과정에 서 있고, 조합원들 사이에는 기대와 설레임, 갈등과 두려움이 늘 교차하고 있다. 우리의 투쟁이 단기적으로 어떤 결실을 맺을 수 있는가와 장기적으로 남한사회 노동자의 이익에 복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앞으로 어떻게 논의하고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 무엇을 쟁점으로 삼을 것인가에 달려있다.


'벤처'의 이름으로 왜곡되는 것들

최근 TV프로그램에서는, 작은 규모의 사무실에서 사발면을 먹으며, 몇 달째 합숙(?)하고 있는 인터넷벤처기업 노동자들의 모습이 자주 방영되곤 한다. 늘 그 초점은 아이디어와 기술력에 모든 것을 걸고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 벤처기업의 모습에 대한 예찬이며, 21세기 한국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아이디어, 패기, 노력만 있으면 된다는 우리 사회에 대한 미화이다. 이 과정에서 초기의 고생은 정보통신업계에서 성공하기 위한 당연한 통과의례로 묘사되며, 인터넷벤처기업의 노동현실, 계급갈등에 대해선 일체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무모순의 묘사는 얼마나 모순과 왜곡이 많은가.


첫째, 아이디어와 기술력의 신화

기술력 혹은 아이디어를 갖고 성공을 거두고 있는 벤처기업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우선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며, 관련분야에서 상당한 경험과 축적된 기술력이 있어야만 아이디어가 발굴될 수 있다. 이것은 산을 많이 타 본 사람이 등산의 요령과 필요한 것들, 유의할 점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기에 인터넷벤처기업들이 성공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아이디어와 기술력에 대한 투자를 작은 양의 수월한 작업인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커다란 왜곡이다.

예를 들어, 이 분야에서 가장 쉽게 기술력을 축적할 수 있는 방식으로 손꼽히는 것이 '산학협동'인데, 이 산학협동이 야기하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단순히 규모의 문제만 보더라도 작게는 우수인력을 우선적으로 자회사로 수급하는 소규모로부터, 학교에 대한 투자의 대가로 연구프로젝트와 기업의 연구실 자체를 대학에 세우는 엄청난 대규모까지 다양하며, 이 방식들 각각에서 그만큼의 모순과 문제점들이 존재한다.


둘째, 정보통신업계 노동자들의 노동현실

많은 벤처기업들은 아이디어·기술력이 아닌 정보통신 노동자들에 대한 초과착취로 회사를 유지하고, 이윤을 창출하고 있다. 대부분의 회사가 갖추고 있는 아이템과 기술력은 이미 동종분야 타회사들에서도 갖고있는 것이며, 동일한 내용으로 경쟁을 할 때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는 근거는 당연히 노동자들에 대한 초과착취 밖에 없다.
이 분야에서는 초과근무와 그것을 넘어서는 야근·철야가 일상화되어 있으며, 흔히 '열시불퇴(10시 전에는 퇴근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언급되곤 한다. 야근과 철야는 노동자 개인이 갖춘 기술력의 부족분에 대한 연구와 자기투자로 돌려지게 되어, 초과근무에 대한 법정수당이나 제반 권리들을 전혀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즉 기존의 영업업무나 서비스업무와는 달리, 정보통신분야의 관련기술에 대한 업무는, 어차피 작업을 하면 할수록 노동자 개인에게 노하우와 기술력이 축적되기 때문에 추가 노동을 하더라도 사측이 그에 대한 보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양한 양태의 이데올로기로 드러난다.
직원들의 기술력이 부족하여 우리 회사에서는 할 수 있는게 없으며, 이윤이 창출되지 않는 것도 기술력의 문제이니 직원들이 열심히(!)라도 해야 한다는 사측의 이데올로기부터, 어차피 나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니 상관없다, 이 분야에서는 조금만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으니 회사를 위해서라면 조금의 고생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는 이미 노동자들에게 체화되어 버린 이데올로기까지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벤처열풍, 소자본/대학생 창업열풍 속에서 철저히 감추어지고 있다. 즉, 정보통신업계의 신화는 산뜻한 아이디어와 기술력 하나로 자본과 노동자 모두 성공하는 21세기 자본주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며 그 현실은 여느 산업분야와 다를 바 없이 저임금·초과착취로 이윤이 창출되고, 노동자들에게는 계급적 갈등마저 봉합되어 버린 칠흑같은 암흑이다.


셋째, 각종 혼란한 개념들

'정보통신업계'의 범주는 어디까지이며, '인터넷벤처기업'의 범주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흔히 정보통신업계, 인터넷벤처기업이라고 하지만 그 실체가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보통신업계라고 하더라도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기술에 대한 개발을 중점으로 하는 기업과 인터넷서비스를 중점으로 하는 기업이 다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각각에 대한 기술분야 역시 언급을 불허할만큼 폭넓고 다양하며, 인터넷서비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일반 기업체들 역시 무언가 변하고 있는 현실을 언급하며, 웹기반 업체로 전문분야를 수정하거나 혹은 이미지변신을 꾀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실정이고 보면, 이미 '정보통신 업계'라는 '산업분야' 그리고 '인터넷기업' '벤처기업'이라는 기업의 형태를 딱 잘라 구분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벤처기업이 갖는 노동현실 및 기술력의 환상에 대해 정당화시키며,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하는 통로로서 '주식투자'라는 현상이 있다. 정보통신업계 인터넷벤처기업에게 수입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인터넷 광고수입이고, 다른 하나는 가능성있는 회사로 낙점되어 주식을 매개로 한 투자를 받는 것이다. 이처럼 '벤처'라는 말과 '주식'은 결코 떼어놀 수 없는 개념으로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현실과 주식투자라는 현상이 맞물리면서 빚어내는 효과 또한 막대하다. 이미 거대한 사회적 신드롬으로 자리잡은 '주식투자'는 소위 인터넷벤처기업이라는 말과 합성되면서 기묘한 현상들을 야기한다.
사업자들에게는 작은 자본과 노력으로 사업을 진행시키고 주식을 투자받아 엄청난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 투자자들(큰손 뿐 아니라 소위 개미군단이라는 일반 서민들까지도)에게는 싹수가 보이는 회사에 대한 투자를 통해 단기간에 엄청난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 증권회사 등 펀드자본들에게는 주식시장을 지속적으로 확장시킴으로 엄청난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인터넷벤처기업이라는 개념은 사업자들에게는 더 작은 자본과 노력을 들여도 된다는 보증수표이며, 투자자들에게는 가능성있는 주식을 싸게 사서 회사가 커주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화끈한 한 몫을 기대할만한 히든카드이며, 펀드자본들에게는 높게만 보이던 주식시장을 대폭 낮추고 모든 대중을 주식시장으로 끌어당길 수 있는 매력적인 카드인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 모든 상황에 대한 분석과 벤처기업, 벤처투자, 코스닥·나스닥·비상장·제3시장 등 주식시장을 둘러싼 거품의 이면을 해부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즉, 거품의 효과와 목적, 희생자와 수혜자는 누구인지를 사회적으로 명확히 읽어내야 한다.


'우리노조'의 경험을 통해서

일상적으로 만연한 불만들

우리 회사는 1993년에 세워졌고, 1994년에 벤처기업으로 인가를 받으면서 병역특례업체로 선정되었다. 회사의 주요업무내역은 웹호스팅(홈페이지 제작대행에서 IP를 빌려주는 수준까지)과 수익을 위한 몇 개의 홈페이지 운영, 작은 규모의 전자상거래(인터넷 경매), 게임 개발 등이다. 이런 회사들에서 당연히 빼놓을 수 없는 관심사는 주식시장에 상장되느냐 마느냐의 문제인데, 우리 회사는 올해(2000년) 안에 코스닥 상장을 계획으로 삼고 있고 이미 제3시장에서는 상당한 가격으로 주식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회사의 연혁과 업무내역, 그리고 주식시장과의 관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 회사는 소위 말하는 정보통신분야의 인터넷 벤처기업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회사로서, 얼마 전에는 한 투자회사로부터 몇 십억의 돈을 투자받고 주식을 팔기도 했다. 회사의 규모로 보면, 사측은 사장을 포함해서 임직원 3명, 그 외 조합원들인 직원들이 대리 이하 20명 정도이다. 임금은 이 분야의 업계에 있어서는 경쟁상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낮다. 수습기간 3개월 동안 40만원, 수습을 마치면 55만원, 입사 2년이 된 대리가 65만원의 임금을 받는다. 저임금과 더불어 매일 거듭되는 초과근무, 야근, 휴일근무 등의 열악한 근무조건이 '우리노조'를 결성하게 된 가장 커다란 요인이다.

그러나 수준은 다를 지라도 낮은 임금과 일상적인 초과근무는 우리 회사만의 특징이 아니라, 정보통신업계의 많은 벤처기업들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기에 다른 많은 회사들에서도 우리와 같은 논의가 오가고 있으리라 예상이 된다.


급속도로 추진된 노조결성

우리노조의 결성이 얘기된 것은 지난 해 12월 초. 낮은 임금에 대한 불만들은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최근이다. 노조를 만들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어느 대리의 말에, 의외로 주위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일단 기본적인 생활조차 불가능한 낮은 임금이 모두의 불만이었고, 노조를 만들면 그런 것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렴풋한 생각들이 있었던 것이다.
노조를 현실화시키는 데에는 병역특례사원들이 많다는 회사의 특징도 큰 몫을 차지했다. 정보통신업계는 전직·이직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다른 회사에서는 노조결성을 시도하다가도, 좋은 조건의 자리가 생기면 직장을 옮기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불가능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심지어는 노조결성을 주도하던 사람이 이직해버리는 경우도.

우리 회사의 경우 20명 조금 넘는 직원들 중 ⅔ 이상이 의무적으로 3년을 근무해야 하는 산업기능요원 혹은 전문연구요원들이다. 매년 2~ 3명씩 뽑아온 병역특례직원들이 3년 동안 그렇게 누적된 것이고, 그 사이 일반사원들은 저임금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씩 회사를 옮겼던 것이다.
따라서 가장 큰 걸림돌도 병역특례직원들이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였지만, 병역법과 근로기준법에 준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 우리노조 결성은 급속도로 추진될 수 있었다.


창립총회를 준비하기까지

노동조합을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해 알고있는 사람이 전무했기 때문에 우선 외부에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민주노총·한국노총에 연락해보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아직 우리의 준비가 전무한 상황에서 외부단체를 만나기가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일단 노동법, 근로기준법, 병역법을 스터디하기로 하고, 직원들의 인맥으로 노무사를 만나 1차적인 상담을 가졌다.
노무사와의 간담회를 통해, 주도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 6~ 7명은 노동조합 결성이 임금문제 및 열악한 노동조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라는 데 합의하게 되었다. 그 후 전직원들과의 간담회 보고 자리에서, 노동조합 결성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직원들 전부가 현재의 임금 및 노동조건에 불만이었고, 그 해결책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이라면 한 번 해보자는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하였다. 그 동안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하는가 아니면 집단적으로 사장에게 임금인상을 요구해 볼 것인가를 놓고 고민을 했으나, 간담회와 전직원 모임을 기점으로 노동조합 결성이 기정사실화되게 된 것이다.

이때까지의 기간이 12월 중순부터 1월 초까지였다.
이맘 때쯤, 노동법 등 자료를 요청하기 위해 통화를 했었던 민주노총에서 연락이 왔고,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지속적인 상담을 갖게 된다. 3~ 4차례에 걸친 서울본부와의 만남을 통해서 우리노조는 본격적으로 윤곽을 갖추고, 활동을 주도하던 직원들도 자신감과 힘을 얻게 되었다.
노조를 결성하는데 또 하나의 난관은 위원장 및 임원을 누가 맡을 것인가였다. 해고나 불이익을 염려한 망설임 등이 있었지만, 결국 2명이 위원장을 결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그 중 한 명이 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과의 만남은 다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는 도움이 되었다. 노동조합이 조직화되는데 있어서, 상급단위의 역할이 매우 중대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과정이었다.

위원장이 결정된 후 임원 및 집행부를 결정하는 문제는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세번째 직원 전체모임에서 내부적으로 위원장을 포함한 임원진과 집행부가 결정되었다.
내부적으로 결성된 임원진과 집행부를 중심으로 창립총회 준비를 시작했다. 근무시간에는 일하고, 그 이후에 모여서 밤을 새워가며 노동조합규약안과 요구안, 단체협약안을 만들었다. 어설프고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사장을 혼내주자' '우리의 권리를 찾자'는 의견들 속에서 고생을 기꺼이 감수하고 함께 노력했던 날들이 지나갔다.

창립총회 장소를 물색하던 중에는, 그 동안 내부 임원진의 회의장소를 제공해 주셨던 한 노동조합의 점거농성장에서 창립총회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2000년 2월 9일,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던 직원 2명을 제외하고 전 직원이 모여서 창립총회를 치뤘다. 창립총회 이후로, 구청 사회복지과에 신고를 하고, 노동조합 인증을 받아서 지금은 1차 단체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이다. 일단 워낙 저임금과 열악한 근로조건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임금상승과 근로조건의 개선에 대해서는 노동조합이 압도적인 정당성의 우위를 점하고 협상이 진행중이다.

하지만, 당연히 모자라는 점이 많고 직원들 사이에서 논의해야 할 것들이 아주 많다. 어떻게 투쟁할 것인지, 쟁의행위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싸울 것인지 뿐만 아니라 사측과의 쟁점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조합원들 사이에도 논점이 형성된다. 사회적인 현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의 차이와 사측과의 갈등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힘으로 노조를 만들었다는 성취감이 크고 앞으로도 우리노조를 중심으로 끝까지 싸우는 것만이, 우리의 권리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만은 모두 잘 알고 있다.


투쟁의 실마리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

정보통신업계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은 뛰어난 기술력을 갖추어 높은 임금과 사회적인 인정을 받겠다는 생각을 갖고있다. 또한 좋아보이기만 하는 프로그래머, 웹디자이너, 웹서퍼 등의 이름들은 그것 자체가 고소득과 자유분방한 삶을 표상하는 것처럼 사회화되고 있고, 여기에 프리랜서라는 단어까지 붙어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이다.
그러나, 정보통신업계의 평범한 노동자가 겪어야 하는 현실적 갈등은 이것들과 거리가 멀다. 우리 회사에서도 많은 직원들이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면서도 내가 기술력이 안되기 때문에, 아는 것이 얼마 없기 때문에 낮은 임금을 받는 것을 당연히 여겼다. 그 생각은 개인적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배워서 비싼 사람이 되겠다는 것으로, 회사에서는 경쟁이데올로기를 가속화시키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정보통신업계의 왜곡된 현실과 더불어 노동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개인주의와 경쟁이데올로기는 열악한 노동현실에 처해 있으면서도 그것을 인식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정보통신업계의 많은 노동자들이 자기 스스로 노동자라는 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 회사의 직원 중에도, 우리는 힘든 생산직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조직화하는 것보다는 열심히 공부해서 경쟁력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문제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여전히 있다. 인정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가 일하는 댓가만큼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우리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 방법 중에 가장 현실적인 것이 노동조합 결성임을 설득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우선 우리의 노동현실이 매우 열악하고 노동법,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것이라도 쟁취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후부터는, 노동조합은 당연히 만들어야 하는 것으로 인정되었다.

미래에 훌륭한 기술자가 되는 것과 현재의 열악한 조건을 감수하는 것이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동의받아야 한다. 우리가 노동한 댓가를 받아내자는 의견이 모아지면서, 조금씩 우리 모두 노동자라는 의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투쟁의 실마리는 언제나 가장 문제가 있는 그 지점에서부터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정보통신업계 종사자들에게 그들이 잃어버린 '노동자'라는 이름을 되찾아주어야 한다. 이것은 기술력에 대한 신화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해체시킬 것인가의 문제가 될 것이다. 또한 노동조합을 세워야 한다는 초기의 동의를 획득하는 과정에서부터,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사측과 싸워나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
노동자들은 기술자·엔지니어이기 전에 노동자이며,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이전에 단결해서 싸워야 모두의 권리를 지킬 수 있다는 원리를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한국자본주의가 IMF이후, 새로이 자태변화를 꾀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실양태에 대해 치밀하게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응방식을 창출해야 할 것이다. 대표적인 현실양태는 노동유연화, 주식시장의 거대거품 등일 것이며,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노동자 계급의 입장을 시급히 만들어져야 한다.
주제어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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