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화, 글쓰기의 욕망, 그리고 권력에의 의지
<font color="#006666">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수도사 요르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숨기기 위해 연쇄살인을 저지른다. 그까짓 책 한 권이 뭐길래, 그 책이 세상에 나오면 세상이 바뀐단 말인가? 그러나 그렇게 믿는 사람은 요르게 외에도 많이있다.</font>
이 글은 이인화의 소설 비평도 아니고, 그의 사상을 논의해 보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패러디니 패스티쉬니 하는 야릇한 이름으로 자기변명했던 그의 소설 표절논쟁을 다시 거론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박정희 숭배(필자주 1)로 불거졌던 극우 파시스트라는 비난을 되풀이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단지 이인화라는 개인, 그가 자신의 삶에서 바라고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할 뿐이고 그를 통해서 글을 쓴다는 것, 그 밑 깊숙히 감추어져 있는 내밀한 욕망을 더듬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b>운동권도 고시파도 아닌……</b>
이인화가 자신의 대학시절을 돌아볼 때 자주 하는 말이 자기는 운동권도 고시파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운동권도 고시파도 아닌「공부권」-.도서관에 앉아 법전이 아닌 소설과 평론을 보는 문학도는 누구와도 어울리기 힘들었다."(한국일보, 1999. 6. 15) "하숙집들의 숲에는 밤늦도록 이 방 저 방 다니며 '오가는 화투 속에 싹트는 우정'을 추구하는 퇴폐파와 책상 앞에 '나의 꿈 작을쏘냐, 재학중 고시합격' 같은 쪽지를 써붙여 놓는 것이 취미인 고시파, 새빨간 눈을 하고 최루탄의 대기 속에 진화된 학생운동파 라는 세 종류의 동물이 서식했다…… 나는 동류가 없는 이상한 짐승이었다."(2000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나의 문학적 자서전', 이하 '자서전')
부정한 권력을 뿌리뽑기 위해 최루탄의 매운 눈물과 차가운 감옥바닥도 결코 마다하지 않았던 운동권과 검은 위용을 자랑하는 권력의 열차에 오르는 승차권을 얻기 위해 법전을 파고들던 고시파 사이에서, "너무도 낡고 촌스러운 문학"(조선일보, 2000. 1. 25)을 부여잡고 고독과 초라함에 시달리는 문학청년 이인화. 그가 스스로 그리는 자기 젊은 날의 초상이다.
그래서, 운동도 고시도 아닌 문학은 권력이라는 더러운 흙탕물에서 벗어난 순수한(?) 것이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데에 이인화의 솔직함이라는 미덕이 있다. 백일장에서 입상하여 여학생들의 흠모를 받고싶다는 청소년 시절의 유치한 욕망에서 민족의 교사가 되겠다는 야심까지, 문학은 그에게 출세의 수단이자 권력의 정점으로 보였던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그에게는 기존 권력을 타도하겠다고 껄떡대는 운동권이나 기껏 고관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에 만족하는 고시파 모두 같잖아 보였던 거다. 그의 장래희망은 '초인'이었으니 말이다. 산상에서 두 팔을 벌리고 신의 말씀을 체현한 채 엄숙히 방향을 지시하는 구도자. 그리고 글쓰기는 그 수단이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느니라.'
<b>글쓰기의 권력</b>
이인화의 장래희망이 초인이라는 것, 그리고 글쓰기를 그 수단으로 생각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인화를 개인적으로 모르는 나의 독단적 판단일까?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증거를 몇 가지 살펴보자.
이인화는 자신의 젊은 날의 우상이 춘원 이광수였다고 말한다.(조선일보, 1997. 9. 5) 왜냐하면, 되는 것 없고 인정 못 받던 어린 시절 "나보다도 더 한심한 이런 고아가 <b>글을 잘 써서 최고의 지식인이 되고「민족의 교사」</b>가 되었"기 때문이다.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은 세상에 충격을 주었고 "다수의 세론을 두려워하지 않고 한 사회가 가질 수 있는 극한의 비전을 제시했던 작가 이광수의 용기에 진정한 외경의 마음을 갖게 된"단다.
이인화는 스스로를 젊은 날에는 속된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해 불우하지만(운동권도 고시파도 아니었으니까) 결국 불후의 저술을 통해서 인류의 비전을 제시하는 스승으로 자신을 그린다. 그는 플라톤(국민일보, 1998. 4. 14)과 로렌스(조선일보, 1999. 12. 2)를 이야기한다. 플라톤은 젊은 시절 출세의 정도에서 벗어나 공부만 하는 불우한 대학원 학생이었지만, 결국 국가론을 집필함으로써 '위대한 스승'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로렌스는 "일체의 척도를 거부하고 고독을 선택한,자기만의 강렬한 내면의 빛 속에 놓인 인간으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필적하는 명작"이라는 그의 자서전은 '지혜의 일곱기둥'이다.
그리고 이인화 자신은?<b>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인생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으냐를 가르쳐 주는 문학</b>이어야 한다며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자서전'). 이인화는 스스로 말하기를 자신의 소설이 "천만질이나 1억부 정도 팔려서 모든 가정에 나의 책이 있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문화일보, 2000. 2. 10) 그는 말끝마다 국민과 대중을 들먹이는데, 그것은 단순히 상업적인 성공이나 대중추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제시한 빛을 전국의 백성들이 일사분란하게 발맞추어 따른다는 환상이다. 그는 민족의 교사이자 위대한 스승인 초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글쓰기의 욕망을 밀고 나가는 것은 바로 이러한 권력에의 의지이다.
글쓰기를 이러한 식으로 생각한다면, 역사를 이끌어가는 것은 글이다. 프랑스 대혁명은 루소와 볼테르가 일으킨 것이며, 그 진행과정은 마라와 그 밖의 언론인들이 결정하였다. 파리의 상퀼로트들은 발맞추어 그들의 말씀을 따랐을 뿐이다. 이런 식의 해석은 그렇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유구한 전통을 갖고 있으며 일면 타당해 보이기까지 한다. 어쨌든 남는 것은 글이고 역사를 해석하기 위해서 후세는 글을 읽기 때문이다. 모든 역사책들은 문헌인용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글은 사회를 이끌어 가는 것인가, 사회를 반영하는 것인가? 이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우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상이 말씀을 따라 이루어진다는 신념은 중세 요르게 수도사의 것이었고 수도원이 불타면서 끝장났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중세를 사는 사람들은 이인화 뿐이 아니다. 이인화의 사부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으면서 섬찟했던 대목이 있다. 오히려 민중적이었던 조조가 역사적으로 평가절하되어 왔던 이유를 질문하면서, 조조가 문사들에게 가혹했으므로 글을 쓰는 문사들이 조조에게 복수를 하는 글들을 남김으로써 그것이 민중들의 생각을 결정했다고 해석하는 대목이다.
다시 한번 태초에 말씀이 있었으며 역사는 그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다. 두려운 글쓰기의 권력이여!
<b>'인간의 길'이 아닌 '성숙의 길'로</b>
그러나 나는 권력에의 의지라는 이유만으로 이인화를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글쓰기는 결국은 권력에의 내밀한 욕망이다. 그리고 이는 다른 모든 글쓰는 지식인들에게도 해당된다. 최소한 자신의 글이 세상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누가 글을 쓰겠는가. 문제는, 이인화가 글쓰기를 수단으로 얻으려고 했던 것이 정확히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지식인, 이인화 그 자신의 지식인론을 보자. "당신처럼 생각하는 지식인은 처음 봤다, 주변에서 그런 생각을 하는 지식인을 만난 적이 있느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지식인은 못 만나봤지만, 군인들, 검사들, 기자들, 이런 사람들은 많이 만나봤습니다.
저는 지식인에는 두 부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의 감성과 완전히 고립된 아류 인텔리겐챠와 국가라는 것을 자신의 사상에 중심에 놓는 지식인. 시민사회의 자유라는 것을 가지고 국가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국가이성을 가지고 국가를 비판하거나 국가에 동조하는 지식인." 그리고 전자의 지식인이란 "인간쓰레기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필자주2)
여기서 운동권도 고시파도 아니었던 이인화가 양자의 집단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 분명히 드러난다. 운동권은 "인간쓰레기"이고 그의 생각은 "군인들, 검사들, 기자들"에 가깝다. 이처럼 그는 사실 고시파의 변종이었기 때문에 출세한 동료들을 보며 자존심 상해서 어쩔 줄 모른다.
그 스스로도 고백한 것이고('자서전'), 그의 소설을 통해 등장인물 중에도 그런 캐릭터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시인의 별'의 주인공 안현은 시문은 뛰어나지만 벼슬자리를 얻지 못해 자존심만 예리해진 사람이다.
다만 그의 야심은 고시파보다 더 컸던 것이다. 그는 민족의 미래를 밝혀줄 글쓰기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는 더 큰 위대한 사명이 있기 때문에 현재의 불우함은 그를 위한 시련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해왔다. 그의 망상은 더욱 깊어진다.
"타협하지 못하는 것은 무능한 게 아니라 위대함이다.일본작가 다자이 오사무가 '사향'에서 한 말,'사람은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단 한시간도 살아갈 수 없다'라고 한 말을 항상 떠올린다…… 그것이 나의 금언이다."(문화일보, 2000. 2. 10)
그러나 그가 무엇을 타협하지 못했단 말인가. 고시 대신 좀더 어려운 글쓰기를 택했다는 바로 그 점에서만 타협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에게 글쓰기는 고시합격과 동의어이다. "『영원한 제국』이 104만부 팔렸는데…… 그렇게 해서 내가 입신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그 여파로 저는 꿈에도 그리던 공직(이화여대 교수직)을 갖게 되었죠."(『자유로』)
이인화, 그는 초인주의자인 동시에 세속적 출세주의자이다. 글쓰기는 양자의 수단이다. 민족, 더 나아가 인류의 스승이 될 수 있다면 좋지만, 안되면 적어도 출세는 보장해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보수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결코 초인이 될 수는 없을 텐데, 현실을 초월하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의 출세를 보장해 준 기존 "국가에 항상 고마움을 느끼며 살아"(『자유로』)가야 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인화 개인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 역시 문학청년 시절을 지나왔고 지금도 거기서 벗어난 것은 아니기에, 그 멘탈리티의 일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춘기의 문청들은 속된 현실과 타협하지 않아서 시련을 겪더라도 언젠가는 위대한 글을 쓰고야 말겠다고 다짐한다. 한때 그들은 모두 초인적 영웅을 꿈꾼다. 그것이 반드시 군국주의로 나타날 이유는 없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의 인터뷰 자료들을 모아 읽은 지금 역시 그런 면에서 그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강영희가 말한 그대로 그가 두렵기도 하고 딱하기도 할 따름이다. 두려운 이유는 강영희가 말한 것처럼, 그가 성공하기 위해서 갖은 수단을 다 쓸 사람이고 그의 성공의 목표가 세속적 출세 뿐만 아니라 덧붙여 우매한 백성들을 지도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딱한 이유는 30대 중반의 그가 아직도 10대나 20대의 정신연령에서 더 성숙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춘기는 공상의 시기이다. 그 때는 누구나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성숙해 간다는 것은 더 넓은 맥락과 삶을,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늙은 어린애를 보는 것은 사실 괴로운 일이다.
이인화는 말한다.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단 한시간도 살아갈 수 없다"고. 그렇다. 진심으로 말하건대 이인화 당신은 매우 잘났다. 그러나 나도 당신만큼 잘났으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당신이 '팔을 걷어부치고 가르쳐' 주지 않아도 될만큼 잘났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성숙의 길'이다.
<font color="#006666">필자주1)
이 글을 쓰기 위해 이인화가 신문·잡지 등에 쓰거나 인터뷰한 자료들을 모았는데, 그 글들을 읽어 보고, 그는 박정희 미화가 아니라 박정희 숭배를 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가 말한 대로 대중적 시류에 영합하여 책을 잘 팔아먹기 위해 박정희를 들먹인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박정희를 숭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초인 숭배에 다름 아니다.(그리고 뒤에서 밝히겠지만 그 자신 스스로를 초인과 동일시하고 있다) 이인화의 사상적 지향을 가장 핵심적으로 보여주는 글은 강영희 인터뷰집 『우리는 자유로에서 다시 만났다』(풀빛미디어)에 있다. 거기서 그는 자신의 지향점이 일본식 군국주의임을 아주 명확히 한다.
필자주2)
강영희 인터뷰집, 『우리는 자유로에서 다시 만났다』, 이하 『자유로』</font>
이 글은 이인화의 소설 비평도 아니고, 그의 사상을 논의해 보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패러디니 패스티쉬니 하는 야릇한 이름으로 자기변명했던 그의 소설 표절논쟁을 다시 거론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박정희 숭배(필자주 1)로 불거졌던 극우 파시스트라는 비난을 되풀이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단지 이인화라는 개인, 그가 자신의 삶에서 바라고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할 뿐이고 그를 통해서 글을 쓴다는 것, 그 밑 깊숙히 감추어져 있는 내밀한 욕망을 더듬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b>운동권도 고시파도 아닌……</b>
이인화가 자신의 대학시절을 돌아볼 때 자주 하는 말이 자기는 운동권도 고시파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운동권도 고시파도 아닌「공부권」-.도서관에 앉아 법전이 아닌 소설과 평론을 보는 문학도는 누구와도 어울리기 힘들었다."(한국일보, 1999. 6. 15) "하숙집들의 숲에는 밤늦도록 이 방 저 방 다니며 '오가는 화투 속에 싹트는 우정'을 추구하는 퇴폐파와 책상 앞에 '나의 꿈 작을쏘냐, 재학중 고시합격' 같은 쪽지를 써붙여 놓는 것이 취미인 고시파, 새빨간 눈을 하고 최루탄의 대기 속에 진화된 학생운동파 라는 세 종류의 동물이 서식했다…… 나는 동류가 없는 이상한 짐승이었다."(2000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나의 문학적 자서전', 이하 '자서전')
부정한 권력을 뿌리뽑기 위해 최루탄의 매운 눈물과 차가운 감옥바닥도 결코 마다하지 않았던 운동권과 검은 위용을 자랑하는 권력의 열차에 오르는 승차권을 얻기 위해 법전을 파고들던 고시파 사이에서, "너무도 낡고 촌스러운 문학"(조선일보, 2000. 1. 25)을 부여잡고 고독과 초라함에 시달리는 문학청년 이인화. 그가 스스로 그리는 자기 젊은 날의 초상이다.
그래서, 운동도 고시도 아닌 문학은 권력이라는 더러운 흙탕물에서 벗어난 순수한(?) 것이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데에 이인화의 솔직함이라는 미덕이 있다. 백일장에서 입상하여 여학생들의 흠모를 받고싶다는 청소년 시절의 유치한 욕망에서 민족의 교사가 되겠다는 야심까지, 문학은 그에게 출세의 수단이자 권력의 정점으로 보였던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그에게는 기존 권력을 타도하겠다고 껄떡대는 운동권이나 기껏 고관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에 만족하는 고시파 모두 같잖아 보였던 거다. 그의 장래희망은 '초인'이었으니 말이다. 산상에서 두 팔을 벌리고 신의 말씀을 체현한 채 엄숙히 방향을 지시하는 구도자. 그리고 글쓰기는 그 수단이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느니라.'
<b>글쓰기의 권력</b>
이인화의 장래희망이 초인이라는 것, 그리고 글쓰기를 그 수단으로 생각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인화를 개인적으로 모르는 나의 독단적 판단일까?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증거를 몇 가지 살펴보자.
이인화는 자신의 젊은 날의 우상이 춘원 이광수였다고 말한다.(조선일보, 1997. 9. 5) 왜냐하면, 되는 것 없고 인정 못 받던 어린 시절 "나보다도 더 한심한 이런 고아가 <b>글을 잘 써서 최고의 지식인이 되고「민족의 교사」</b>가 되었"기 때문이다.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은 세상에 충격을 주었고 "다수의 세론을 두려워하지 않고 한 사회가 가질 수 있는 극한의 비전을 제시했던 작가 이광수의 용기에 진정한 외경의 마음을 갖게 된"단다.
이인화는 스스로를 젊은 날에는 속된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해 불우하지만(운동권도 고시파도 아니었으니까) 결국 불후의 저술을 통해서 인류의 비전을 제시하는 스승으로 자신을 그린다. 그는 플라톤(국민일보, 1998. 4. 14)과 로렌스(조선일보, 1999. 12. 2)를 이야기한다. 플라톤은 젊은 시절 출세의 정도에서 벗어나 공부만 하는 불우한 대학원 학생이었지만, 결국 국가론을 집필함으로써 '위대한 스승'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로렌스는 "일체의 척도를 거부하고 고독을 선택한,자기만의 강렬한 내면의 빛 속에 놓인 인간으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필적하는 명작"이라는 그의 자서전은 '지혜의 일곱기둥'이다.
그리고 이인화 자신은?<b>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인생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으냐를 가르쳐 주는 문학</b>이어야 한다며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자서전'). 이인화는 스스로 말하기를 자신의 소설이 "천만질이나 1억부 정도 팔려서 모든 가정에 나의 책이 있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문화일보, 2000. 2. 10) 그는 말끝마다 국민과 대중을 들먹이는데, 그것은 단순히 상업적인 성공이나 대중추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제시한 빛을 전국의 백성들이 일사분란하게 발맞추어 따른다는 환상이다. 그는 민족의 교사이자 위대한 스승인 초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글쓰기의 욕망을 밀고 나가는 것은 바로 이러한 권력에의 의지이다.
글쓰기를 이러한 식으로 생각한다면, 역사를 이끌어가는 것은 글이다. 프랑스 대혁명은 루소와 볼테르가 일으킨 것이며, 그 진행과정은 마라와 그 밖의 언론인들이 결정하였다. 파리의 상퀼로트들은 발맞추어 그들의 말씀을 따랐을 뿐이다. 이런 식의 해석은 그렇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유구한 전통을 갖고 있으며 일면 타당해 보이기까지 한다. 어쨌든 남는 것은 글이고 역사를 해석하기 위해서 후세는 글을 읽기 때문이다. 모든 역사책들은 문헌인용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글은 사회를 이끌어 가는 것인가, 사회를 반영하는 것인가? 이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우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상이 말씀을 따라 이루어진다는 신념은 중세 요르게 수도사의 것이었고 수도원이 불타면서 끝장났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중세를 사는 사람들은 이인화 뿐이 아니다. 이인화의 사부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으면서 섬찟했던 대목이 있다. 오히려 민중적이었던 조조가 역사적으로 평가절하되어 왔던 이유를 질문하면서, 조조가 문사들에게 가혹했으므로 글을 쓰는 문사들이 조조에게 복수를 하는 글들을 남김으로써 그것이 민중들의 생각을 결정했다고 해석하는 대목이다.
다시 한번 태초에 말씀이 있었으며 역사는 그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다. 두려운 글쓰기의 권력이여!
<b>'인간의 길'이 아닌 '성숙의 길'로</b>
그러나 나는 권력에의 의지라는 이유만으로 이인화를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글쓰기는 결국은 권력에의 내밀한 욕망이다. 그리고 이는 다른 모든 글쓰는 지식인들에게도 해당된다. 최소한 자신의 글이 세상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누가 글을 쓰겠는가. 문제는, 이인화가 글쓰기를 수단으로 얻으려고 했던 것이 정확히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지식인, 이인화 그 자신의 지식인론을 보자. "당신처럼 생각하는 지식인은 처음 봤다, 주변에서 그런 생각을 하는 지식인을 만난 적이 있느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지식인은 못 만나봤지만, 군인들, 검사들, 기자들, 이런 사람들은 많이 만나봤습니다.
저는 지식인에는 두 부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의 감성과 완전히 고립된 아류 인텔리겐챠와 국가라는 것을 자신의 사상에 중심에 놓는 지식인. 시민사회의 자유라는 것을 가지고 국가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국가이성을 가지고 국가를 비판하거나 국가에 동조하는 지식인." 그리고 전자의 지식인이란 "인간쓰레기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필자주2)
여기서 운동권도 고시파도 아니었던 이인화가 양자의 집단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 분명히 드러난다. 운동권은 "인간쓰레기"이고 그의 생각은 "군인들, 검사들, 기자들"에 가깝다. 이처럼 그는 사실 고시파의 변종이었기 때문에 출세한 동료들을 보며 자존심 상해서 어쩔 줄 모른다.
그 스스로도 고백한 것이고('자서전'), 그의 소설을 통해 등장인물 중에도 그런 캐릭터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시인의 별'의 주인공 안현은 시문은 뛰어나지만 벼슬자리를 얻지 못해 자존심만 예리해진 사람이다.
다만 그의 야심은 고시파보다 더 컸던 것이다. 그는 민족의 미래를 밝혀줄 글쓰기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는 더 큰 위대한 사명이 있기 때문에 현재의 불우함은 그를 위한 시련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해왔다. 그의 망상은 더욱 깊어진다.
"타협하지 못하는 것은 무능한 게 아니라 위대함이다.일본작가 다자이 오사무가 '사향'에서 한 말,'사람은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단 한시간도 살아갈 수 없다'라고 한 말을 항상 떠올린다…… 그것이 나의 금언이다."(문화일보, 2000. 2. 10)
그러나 그가 무엇을 타협하지 못했단 말인가. 고시 대신 좀더 어려운 글쓰기를 택했다는 바로 그 점에서만 타협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에게 글쓰기는 고시합격과 동의어이다. "『영원한 제국』이 104만부 팔렸는데…… 그렇게 해서 내가 입신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그 여파로 저는 꿈에도 그리던 공직(이화여대 교수직)을 갖게 되었죠."(『자유로』)
이인화, 그는 초인주의자인 동시에 세속적 출세주의자이다. 글쓰기는 양자의 수단이다. 민족, 더 나아가 인류의 스승이 될 수 있다면 좋지만, 안되면 적어도 출세는 보장해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보수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결코 초인이 될 수는 없을 텐데, 현실을 초월하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의 출세를 보장해 준 기존 "국가에 항상 고마움을 느끼며 살아"(『자유로』)가야 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인화 개인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 역시 문학청년 시절을 지나왔고 지금도 거기서 벗어난 것은 아니기에, 그 멘탈리티의 일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춘기의 문청들은 속된 현실과 타협하지 않아서 시련을 겪더라도 언젠가는 위대한 글을 쓰고야 말겠다고 다짐한다. 한때 그들은 모두 초인적 영웅을 꿈꾼다. 그것이 반드시 군국주의로 나타날 이유는 없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의 인터뷰 자료들을 모아 읽은 지금 역시 그런 면에서 그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강영희가 말한 그대로 그가 두렵기도 하고 딱하기도 할 따름이다. 두려운 이유는 강영희가 말한 것처럼, 그가 성공하기 위해서 갖은 수단을 다 쓸 사람이고 그의 성공의 목표가 세속적 출세 뿐만 아니라 덧붙여 우매한 백성들을 지도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딱한 이유는 30대 중반의 그가 아직도 10대나 20대의 정신연령에서 더 성숙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춘기는 공상의 시기이다. 그 때는 누구나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성숙해 간다는 것은 더 넓은 맥락과 삶을,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늙은 어린애를 보는 것은 사실 괴로운 일이다.
이인화는 말한다.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단 한시간도 살아갈 수 없다"고. 그렇다. 진심으로 말하건대 이인화 당신은 매우 잘났다. 그러나 나도 당신만큼 잘났으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당신이 '팔을 걷어부치고 가르쳐' 주지 않아도 될만큼 잘났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성숙의 길'이다.
<font color="#006666">필자주1)
이 글을 쓰기 위해 이인화가 신문·잡지 등에 쓰거나 인터뷰한 자료들을 모았는데, 그 글들을 읽어 보고, 그는 박정희 미화가 아니라 박정희 숭배를 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가 말한 대로 대중적 시류에 영합하여 책을 잘 팔아먹기 위해 박정희를 들먹인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박정희를 숭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초인 숭배에 다름 아니다.(그리고 뒤에서 밝히겠지만 그 자신 스스로를 초인과 동일시하고 있다) 이인화의 사상적 지향을 가장 핵심적으로 보여주는 글은 강영희 인터뷰집 『우리는 자유로에서 다시 만났다』(풀빛미디어)에 있다. 거기서 그는 자신의 지향점이 일본식 군국주의임을 아주 명확히 한다.
필자주2)
강영희 인터뷰집, 『우리는 자유로에서 다시 만났다』, 이하 『자유로』</fo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