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반전 반세계화 운동은 이후 어디로 가야 하는가.
9.17-19 베이루트 전략회의 참가기;
베이루트 국제회의의 배경
국제적인 수준에서 반전운동은 2003년 2월 15일 전 세계적으로 1천 5백만 명을 거리로 불러내 이라크 침략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성공적으로 조직함으로써 뉴욕타임즈조차 “미국과 다른 또 하나의 수퍼 파워”라고 평할 만큼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어서 2003년 5월에는 자카르타에서 국제회의가 개최되어 ‘자카르타 평화 컨센서스’ 원문은 http://www.focusweb.org/beirut/b-index.htm 참고
를 이끌어냈다. 자카르타 평화 컨센서스는 ‘단결 선언’, ‘이라크에 대한 입장과 행동계획’, ‘세계화와 군사주의에 대한 행동계획’ 등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반전운동의 기본 입장과 운동계획이라고 할 만하다. 이러한 흐름은 2004년 1월 인도 뭄바이 세계사회포럼의 반전운동 총회로 이어진다. 여기에서 이라크 침략 1년이 되는 3월 20일 국제행동을 하자는 호소가 광범위하게 제안되고 합의되었다. 이번 베이루트 회의는 이러한 운동의 연장선에서 이라크와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반전(반세계화)운동 전략회의를 열자는 문제의식 하에 개최되었다. 이번 국제회의의 문제의식은 제안문에서도 말하는 바, “중동 지역의 반전 반세계화 운동과 밀착된 관계를 만들려는 의식적인 노력의 일부로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전쟁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관련된 최근의 상황에 대해 어떻게 운동이 능동적으로 대처할 것인지 전략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이 회의의 주요 조직자인 ‘남반구 포커스’의 월든 벨로 교수는 연설문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중요한 시기에 우리는 여기 베이루트에 모였다. 상황은 복합적이다. 이라크에서 미국은 점점 더 깊숙이 베트남과 같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데, 2003년 3월 20일 침공 이후 미군 병사들의 사망 숫자는 9월 첫째주에 1000명을 넘어섰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아직도 시오니스트 장벽[팔레스타인 분리장벽]이 하루에 1킬로미터 비율로 건설 중이다....오늘, 기업 주도 세계화의 최고 기구인 WTO는 지난 달에 개도국에 대한 경제적 무장해제를 촉진시키도록 고안된 ‘제네바 기본골격’ 합의를 가지고 제 발로 다시 돌아왔다.”
베이루트 국제회의에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조직을 대표하는 참가자들이 모였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MST(브라질의 무토지농민운동), 캐나다자동차노조, 팔레스타인노조, 청년단체 등 풀뿌리 대중조직부터 각국의 반전단체들(영국, 호주, 그리스, 남아공 등의 반전연합, 미국의 정의평화연합), 팔레스타인 관련 단체들, 평화운동 단체들, 반세계화운동 단체들, 이태리공산주의재건당, 그리스녹색당, 레바논공산당, 헤즈볼라 등 정치조직들, 연구단체들 등등 다양한 스펙트럼이었고, 나라별로 보아도 태평양의 피지에서부터 동티모르, 남쪽의 아르헨티나에서 북쪽의 노르웨이까지 참가 범위가 실로 광범위했다. 무엇보다 레바논, 이라크, 팔레스타인, 요르단, 이집트 등 현지 중동지역의 활동가들이 대거 참가하였고 거의 과반수에 이르렀다. 아랍지역의 반전 반세계화 운동이 처음으로 이렇게 국제적인 연대에 함께하는데 그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회의규모는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는데 그만큼 국제적으로 반전 반세계화 운동의 향후 방향을 논의하는 데 관심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전운동과 반세계화 운동은 결합되고 있는가?
회의 첫날 각 대륙의 운동 상황 보고를 들었는데 주로 반전과 반세계화 운동의 양상은 각 나라에서 공통적이었다. 독일의 경우 최근 ‘월요일 시위 (Monday Demonstration)’ 라는 이름으로 신자유주의의 복지삭감, 사유화, 탈규제 등에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데 반전이슈와 연결되고 있다고 한다. 남아공에서는 반전연합을 결성해서 전쟁과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있는데 이들은 다국적기업 반대, 미제국주의 반대, 이라크전쟁 반대, 팔레스타인 해방을 주요 이슈로 하고 있다. 또한 반전활동가들이 대부분 반세계화활동가로서 제국주의와 다국적기업의 침략에 저항하는 운동을 조직하고 있다고 하였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플랜 콜롬비아’와 같은 미국의 군사적 개입 문제에 대한 저항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수많은 미군기지에 반대하는 운동이 있는데, 푸에르토리코 같은 곳에서는 미군기지 반대운동이 승리하기도 했다. 또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반대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정부가 국가 안팎에서 전쟁과 세계화를 벌이고 있는데, 민주당의 정체성도 공화당과 비슷하다고 하였다. 즉 사회복지를 삭감하고, 선제공격을 채택하는 것 등이다. 미국 내에는 6000여개 군사기지가 있고 세계적으로는 120개 국가에 1000여개 기지가 있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은 군사주의, 사유화 정책을 강제한다. 한편 대선에서는 부시가 질 것으로 보이지만 전쟁과 세계화가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운동과 시위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각 국의 운동 상황 보고에서 반전 반세계화운동이 서로 결합되어 진행되고 있는지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참가자들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적어도 인식의 측면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문제와 전쟁 문제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밀접히 결합된 것이며 꾸준히 이를 결합시키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일례로 ‘군사주의와 세계화’ 그룹 토론에서 행동과제를 논의할 때 군사주의 부분과 세계화 부분 두 팀으로 나눠서 토론하자는 제안이 있었는데 대다수가 이에 반대하여 행동과제를 합쳐서 논의하기도 했다.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에 맞춰진 초점
둘째 날인 18일에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되었다. 토론주제는 1) 전쟁을 저지하지 못해서 운동이 지금 위기에 빠져 있는가? 2) 우리가 전쟁을 저지할 수 있었나? 3) 우리의 행동, 정치, 조직의 한계는 무엇인가? 4) 각기 다른 운동 간의 관계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힘인가 한계인가? 5) 우리는 이라크나 팔레스타인의 저항에 대해 공통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가? 6) 미 대선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가? 7) 체첸이나 콜롬비아, 다르푸르(수단) 같은 곳의 갈등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이었다. 나온 의견들을 대략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대부분 우리 운동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점령이 실패하고 있다. 2) 반전운동이 사회복지 삭감 항의 등 반신자유주의운동과 연계하고 있다. (독일의 월요일 시위나 미국의 50만 시위) 3)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의 저항운동에 조건 없이 지지 연대해야 한다. 이라크 민중들의 투쟁은 이라크만의 것이 아니라 아랍, 세계 전체의 투쟁이다. 4) 운동의 다양성을 강점으로 확대해야 한다.(인종, 성적차이, 인권, 민주주의 등등) 보편성을 강화해야 한다. 5) 미디어의 역할을 고발하고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6) 부시가 이라크에서 패배해도 운동은 더 강화되어야 한다. 미국의 실패는 미국 자본주의의 실패이므로, 자본주의 전체에 대해 투쟁해야 한다. 7) 여성의 권리에 대한 운동이 확장되어야 한다. 8) 전쟁범죄에 대한 침묵을 폭로하면서 대중을 조직할 수 있도록 국제 이라크전범 법정을 확대하자. 9) 국제 행동의 날에 집중하고 이라크 민중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 10) 아랍국가들 내에서 민주주의 투쟁도 중요하다. 아랍 운동들간의 연대를 실현해야 한다. 11) 미 대선에서 부시가 재선된다면 전쟁이 더 확대될 것이다. 부시를 반드시 떨어뜨리기 위한 국제적 시위가 대선에 즈음해서 필요하다. 12) 전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위기와 연계되어 있다. 20년 동안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고통받는 모든 민중들의 투쟁에 연대하자. 13) 내년 이라크 헌법제정 회의 개최할 때 이에 대응하는 국제회의를 바그다드에서 개최하자.
한편 20-30명의 이라크 참가단과의 토론에서는 팔루자에서 온 셰이크(성직자) 아이만 모하메드가 “현재 이라크는 야만적인 공격을 받고 있고 종교 시설마저 파괴되고 있다. 저항이 미군 등에 의해 테러리즘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미국의 이해에 해가 되면 테러리즘인 것이다. 안전은 그들만의 것이고 이라크인들의 것이 아니다. 이라크 정부는 미국을 쫓아내지 못한다. 이라크 저항은 순수한 저항이다.”라고 하면서 이라크 저항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이라크 참가단의 주요 제안은 저항을 조건없이 지지하고 연대해달라는 것이었고, 내년에 헌법 제정 회의할 때, 바그다드에서 국제회의를 개최하자는 것이었다. 또한 감옥에 갇힌 이라크 여성의 문제도 중요하게 제기되었다.
팔레스타인 참가단과의 토론에서는 주로 분리장벽 철폐운동이 다뤄졌다. 역사적으로 점점 팔레스타인 지역은 축소되어 왔고 현재 가자, 라파, 예루살렘, 나블루스 등에서 장벽이 건설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외부로부터 고립되어 있다. 또한 인접 국가에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의 법적, 사회적, 정치적 상황도 가혹하다. 거의 생존 이하의 조건에서 살고 있고 이들은 미숙련 하층 직업에만 종사해야 하는 상황이다. 수자원을 비롯한 각종 자원도 이스라엘이 장악하고 있다. 이에 분리장벽을 철폐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이스라엘을 보이콧하는 캠페인을 하고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갈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제안되었다. 팔레스타인 관련해서는 회의 시작 전날 베이루트 시내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인 사브라&샤틸라라는 곳에서 22년 전에 이스라엘이 2500여명을 학살한 사건을 추모하는 영화상영이 있었고, 회의 첫째 날에는 그곳에서 추모행사도 개최되었다.
이라크 국제회의에 대한 논란
회의 3일째인 19일은 원래 오전에 선언문 초안을 논의하고 오후에 최종 선언문을 논의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런데 일정이 변경되어 오전에는 브라질노총의 활동가가 2005년 포르투 알레그레 세계사회포럼에 대해 설명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회포럼 순서가 끝난 이후에는 1)이라크 점령 반대 2)팔레스타인 저항 3)경제적 군사적 세계화 등 세 그룹으로 나눠서 행동계획을 논의했다. 이라크 관련 행동제안은 점령감시센터(Iraq Occupation Watch Center) 재개(이는 여러 문제로 인해 4월에 중단되었음), 10월 13-14일 일본에서 열리는 재건기금 마련 회의를 반대하는 성명서 조직, 전쟁기업 반대 캠페인, 저항세력에게 식량과 의약품 지원, 이라크 전범 국제 민중법정, 외국용병 철수 캠페인, 10월 17일 국제행동, 국제적 이라크법률가위원회 구성, 2005년 이라크 헌법제정회의 개최시 이에 대응하는 국제회의를 바그다드에서 개최하는 것 등이 발표되었다.
팔레스타인 문제 관련해서는 분리장벽 반대 캠페인, 이스라엘 보이콧 캠페인, 국제방문단 조직, 11월 9-16일 국제행동, 12월 10일 세계인권의 날에 맞춘 국제행동, 내년 5월 15일 국제행동 등이 제안되었다. 경제적 군사적 세계화에 대해서는 (미국)군사기지 반대 캠페인, 2005년 12월 홍콩에서 열리는 WTO 6차 각료회의 저지투쟁, 이를 위한 대중교육과 캠페인, 국제금융기구(IMF, IBRD)에 대한 반대운동 등이 제안되었다.
이후 선언문 초안과 행동계획을 논의하게 되었는데 이때 이라크 대표단과 제안된 바그다드 국제회의에 대해 논란이 벌어졌다. 애초 이번 회의에 참가한 이라크 대표단에서는 '이라크 내에서 정치적 공간을 창출하기 위해 내년 이라크 헌법제정 회의시 반전운동의 국제회의를 바그다드에서 열자'고 제안했고 월든 벨로 등등이 이를 지지했는데, 영국 등의 참가자들이 이를 반대했다. 조지 갤로웨이 의원(영국 하원의원인데 반전 운동 때문에 노동당에서 제명당했다고 함) 등이 제기한 내용인즉슨 지금 참가한 이라크 대표단이 대표성이 없는 작은 집단이라는 것이고, 이라크 내에서 모종의 정치적 기획을 하여 정치적 입지를 넓히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해 이라크 대표단을 조직한 것으로 보이는 활동가는 "물론 이라크 저항세력 모두를 대표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은 팔루자, 사마라, 쿠파, 바그다드 등에서 왔고 저항을 하고 있다.“면서 문제제기를 일축했다. 또한 여러 활동가들이 ”이라크 대표단에게 조건을 부과할 수는 없다“, ”대표단의 정당성을 의심해서는 안된다. 그들도 저항의 일부이다.“, ”운동은 단결해야 한다. 이 타입의 저항은 지지하지 않고 저 타입의 저항은 지지하는가? 이라크 안팎에서 정치세력을 단결시키고자 하는 행동을 지지해야 한다.“ 등의 발언을 하였고 월든 벨로는 ”이라크 대표단들은 점령에 반대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정치적 동물 아닌가? 그들도 이 회의에서 지지받아야 한다. 다른 이들이 오더라도 지지할 것이다. 그것이 첫걸음이다. 두번째는 우리가 이라크에 가서 이라크의 민주주의를 위해 점령에 반대하는 컨퍼런스를 여는 것이다.“라고 발언하였다. 몇 번의 인신공격성 발언들(누가 더 사담 후세인과 친했냐는)도 오갔고 ”이라크 저항세력의 광범위한 부분이 추진하여 요청하면 바그다드에서 국제회의를 할 수도 있지만 지금과 같이 작은 부분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추진하는 것은 지지할 수 없다“는 제기도 이어졌다. 급기야 이라크 대표단들이 회의장에서 철수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라크에서 국제회의를 열자는 제안과 관련해서 문구가 세 가지 제안되었는데 이것도 논란을 거듭하다가 '통과시키지 말고 선언문과 따로 분리하되 서명할 곳은 서명하자'는 의견이 제기되어 이에 동의하면서 논의를 마무리 지었다. 이에 따라 선언문만이 합의된 것으로 되었고 앞서 많이 제안된 행동계획은 합의되지 못한 채 남게 되어 향후 메일링리스트를 통해 지지 연명을 받기로 하였다.
이 문제는 사실 복잡한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우선, 내년 1월로 예정된 총선을 어떻게 볼 것이냐다. 현재 저항의 확대로 인해 미군과 이라크 임시정부가 통제력을 상실하면서 이라크 내에서는 대다수가 총선이 예정대로 치러질 수는 없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에 미국과 임시정부는 부분적인 총선도 가능할 수 있다는 얘기를 흘리고 있지만 일부지역만의 총선은 그야말로 이라크를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애가 탄 미국과 임시정부가 총선 이전에 전국적인 통제력을 장악하기 위해 저항세력에 대한 ‘10월 대공세’를 시작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총선일정 자체가 극히 불투명하고, 또한 미군과 임시정부 치하에서의 총선을 소위 민주주의 과정으로 볼 수도 없고 총선이 치러지는 것을 인정할수 없게 될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과거 미군정하 해방공간 상황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라크 저항세력 자체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어떤 조직적 연계가 있는지, 전국적으로 단결을 모색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어서 국제 반전운동이 이들과 어떻게 연대를 맺을 수 있는지 불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정치세력과 파트너쉽을 형성하는 것은 섣부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이번 회의에서 이라크 저항에 대한 ‘조건없는 지지’가 대부분 동의되기는 했지만 일부 반대도 있었다. 즉 납치, 자살폭탄 등과 같은 극단적 방법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이에 대해 월든 벨로는 연설문에서 “2003년 2월 15일 국제시위에 비해 2004년 3월 20일 시위의 규모가 훨씬 줄어든 것은 국제 평화운동의 중요 세력들이 이라크 저항을 정당화하는데 주저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면서 “민족해방이나 독립을 위해 ‘깨끗한’ 운동은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하여 이를 옹호하였다.
베이루트 회의가 남긴 것들
전체적으로 회의를 대략 평가해 보자면
첫째, 아랍지역 조직들이 대거 참석함으로써 국제적인 반전 반세계화 운동과 아랍 운동이 연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레바논, 팔레스타인, 이라크, 요르단, 이집트, 모로코, 튀니지, 시리아 등에서 참여하여 운동의 관심사를 논의하고 인적 교류를 맺은 것이 이번 회의의 가장 큰 성과가 아닌가 한다. 특히 이슬람 자체를 ‘테러리스트’로 묘사하는 미국과 지배 언론의 영향력이 ‘이슬라모포비아(이슬람혐오증)’의 형태로 대중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문제의식을 듣고 아랍지역의 운동이 반전 반세계화 운동의 일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헤즈볼라 중앙위원인 알리 파야드는 레바논 남부지역을 방문하고 돌아오면서 필자에게 “내년 1월 브라질 세계사회포럼에서 만나자”라고 하였다.
둘째, 이 연장선상에서 이라크,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조건 없이 지지하는 것에 동의했고, 그들과 직접 토론함으로써 구체적인 과제들을 활발하게 제안할 수 있었다. 특히 팔레스타인 문제는 과제와 행동계획이 잘 조직되어 제출되었고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리하여 국제적 지역적 수준에서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점령에 반대하는 투쟁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것의 중요성을 각인할 수 있었다.
셋째, 회의 공간의 지리적 특성상 때문인지 다소 팔레스타인, 이라크 문제만 부각되어 전체적인 군사주의의 다양한 문제, WTO-세계화 문제는 미흡하게 다뤄진 측면이 아쉬운 점이다. ‘전략회의’라는 명칭에 걸맞게 현 상황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과 토론, 전망 제시가 이뤄지져야 할 것이다.
넷째, 이라크에서의 국제회의 개최여부에 대한 논란 때문에 선언문만 합의되고 행동계획이 합의되지 못하였다. 물론 이라크 저항세력이 어떻게 대표될 수 있는지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지나치게 대표성 문제와 국제회의 개최여부만 논쟁됨으로써 다른 행동계획이 충분히 토론되지 못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 한 활동가는 쟁점을 드러내놓고 토론한 것도 유의미하다고 평가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아쉬움은 크다.
이번 회의를 놓고 평가는 다양하게 표출될 수 있다. 그러나 강조되어야 할 것은 세계의 반전 반세계화 운동이 서로 긴밀한 연관을 맺으면서 신자유주의의 무장한 세계화에 맞서도록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지금이 미국 자본주의 헤게모니가 몰락하고 또 다른 체제로 변화하고 있는 장기적인 이행기라고 한다면 아래로부터 민중들의 행동, 연대, 조직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행위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PSSP
국제적인 수준에서 반전운동은 2003년 2월 15일 전 세계적으로 1천 5백만 명을 거리로 불러내 이라크 침략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성공적으로 조직함으로써 뉴욕타임즈조차 “미국과 다른 또 하나의 수퍼 파워”라고 평할 만큼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어서 2003년 5월에는 자카르타에서 국제회의가 개최되어 ‘자카르타 평화 컨센서스’ 원문은 http://www.focusweb.org/beirut/b-index.htm 참고
를 이끌어냈다. 자카르타 평화 컨센서스는 ‘단결 선언’, ‘이라크에 대한 입장과 행동계획’, ‘세계화와 군사주의에 대한 행동계획’ 등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반전운동의 기본 입장과 운동계획이라고 할 만하다. 이러한 흐름은 2004년 1월 인도 뭄바이 세계사회포럼의 반전운동 총회로 이어진다. 여기에서 이라크 침략 1년이 되는 3월 20일 국제행동을 하자는 호소가 광범위하게 제안되고 합의되었다. 이번 베이루트 회의는 이러한 운동의 연장선에서 이라크와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반전(반세계화)운동 전략회의를 열자는 문제의식 하에 개최되었다. 이번 국제회의의 문제의식은 제안문에서도 말하는 바, “중동 지역의 반전 반세계화 운동과 밀착된 관계를 만들려는 의식적인 노력의 일부로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전쟁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관련된 최근의 상황에 대해 어떻게 운동이 능동적으로 대처할 것인지 전략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이 회의의 주요 조직자인 ‘남반구 포커스’의 월든 벨로 교수는 연설문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중요한 시기에 우리는 여기 베이루트에 모였다. 상황은 복합적이다. 이라크에서 미국은 점점 더 깊숙이 베트남과 같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데, 2003년 3월 20일 침공 이후 미군 병사들의 사망 숫자는 9월 첫째주에 1000명을 넘어섰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아직도 시오니스트 장벽[팔레스타인 분리장벽]이 하루에 1킬로미터 비율로 건설 중이다....오늘, 기업 주도 세계화의 최고 기구인 WTO는 지난 달에 개도국에 대한 경제적 무장해제를 촉진시키도록 고안된 ‘제네바 기본골격’ 합의를 가지고 제 발로 다시 돌아왔다.”
베이루트 국제회의에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조직을 대표하는 참가자들이 모였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MST(브라질의 무토지농민운동), 캐나다자동차노조, 팔레스타인노조, 청년단체 등 풀뿌리 대중조직부터 각국의 반전단체들(영국, 호주, 그리스, 남아공 등의 반전연합, 미국의 정의평화연합), 팔레스타인 관련 단체들, 평화운동 단체들, 반세계화운동 단체들, 이태리공산주의재건당, 그리스녹색당, 레바논공산당, 헤즈볼라 등 정치조직들, 연구단체들 등등 다양한 스펙트럼이었고, 나라별로 보아도 태평양의 피지에서부터 동티모르, 남쪽의 아르헨티나에서 북쪽의 노르웨이까지 참가 범위가 실로 광범위했다. 무엇보다 레바논, 이라크, 팔레스타인, 요르단, 이집트 등 현지 중동지역의 활동가들이 대거 참가하였고 거의 과반수에 이르렀다. 아랍지역의 반전 반세계화 운동이 처음으로 이렇게 국제적인 연대에 함께하는데 그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회의규모는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는데 그만큼 국제적으로 반전 반세계화 운동의 향후 방향을 논의하는 데 관심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전운동과 반세계화 운동은 결합되고 있는가?
회의 첫날 각 대륙의 운동 상황 보고를 들었는데 주로 반전과 반세계화 운동의 양상은 각 나라에서 공통적이었다. 독일의 경우 최근 ‘월요일 시위 (Monday Demonstration)’ 라는 이름으로 신자유주의의 복지삭감, 사유화, 탈규제 등에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데 반전이슈와 연결되고 있다고 한다. 남아공에서는 반전연합을 결성해서 전쟁과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있는데 이들은 다국적기업 반대, 미제국주의 반대, 이라크전쟁 반대, 팔레스타인 해방을 주요 이슈로 하고 있다. 또한 반전활동가들이 대부분 반세계화활동가로서 제국주의와 다국적기업의 침략에 저항하는 운동을 조직하고 있다고 하였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플랜 콜롬비아’와 같은 미국의 군사적 개입 문제에 대한 저항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수많은 미군기지에 반대하는 운동이 있는데, 푸에르토리코 같은 곳에서는 미군기지 반대운동이 승리하기도 했다. 또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반대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정부가 국가 안팎에서 전쟁과 세계화를 벌이고 있는데, 민주당의 정체성도 공화당과 비슷하다고 하였다. 즉 사회복지를 삭감하고, 선제공격을 채택하는 것 등이다. 미국 내에는 6000여개 군사기지가 있고 세계적으로는 120개 국가에 1000여개 기지가 있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은 군사주의, 사유화 정책을 강제한다. 한편 대선에서는 부시가 질 것으로 보이지만 전쟁과 세계화가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운동과 시위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각 국의 운동 상황 보고에서 반전 반세계화운동이 서로 결합되어 진행되고 있는지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참가자들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적어도 인식의 측면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문제와 전쟁 문제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밀접히 결합된 것이며 꾸준히 이를 결합시키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일례로 ‘군사주의와 세계화’ 그룹 토론에서 행동과제를 논의할 때 군사주의 부분과 세계화 부분 두 팀으로 나눠서 토론하자는 제안이 있었는데 대다수가 이에 반대하여 행동과제를 합쳐서 논의하기도 했다.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에 맞춰진 초점
둘째 날인 18일에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되었다. 토론주제는 1) 전쟁을 저지하지 못해서 운동이 지금 위기에 빠져 있는가? 2) 우리가 전쟁을 저지할 수 있었나? 3) 우리의 행동, 정치, 조직의 한계는 무엇인가? 4) 각기 다른 운동 간의 관계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힘인가 한계인가? 5) 우리는 이라크나 팔레스타인의 저항에 대해 공통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가? 6) 미 대선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가? 7) 체첸이나 콜롬비아, 다르푸르(수단) 같은 곳의 갈등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이었다. 나온 의견들을 대략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대부분 우리 운동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점령이 실패하고 있다. 2) 반전운동이 사회복지 삭감 항의 등 반신자유주의운동과 연계하고 있다. (독일의 월요일 시위나 미국의 50만 시위) 3)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의 저항운동에 조건 없이 지지 연대해야 한다. 이라크 민중들의 투쟁은 이라크만의 것이 아니라 아랍, 세계 전체의 투쟁이다. 4) 운동의 다양성을 강점으로 확대해야 한다.(인종, 성적차이, 인권, 민주주의 등등) 보편성을 강화해야 한다. 5) 미디어의 역할을 고발하고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6) 부시가 이라크에서 패배해도 운동은 더 강화되어야 한다. 미국의 실패는 미국 자본주의의 실패이므로, 자본주의 전체에 대해 투쟁해야 한다. 7) 여성의 권리에 대한 운동이 확장되어야 한다. 8) 전쟁범죄에 대한 침묵을 폭로하면서 대중을 조직할 수 있도록 국제 이라크전범 법정을 확대하자. 9) 국제 행동의 날에 집중하고 이라크 민중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 10) 아랍국가들 내에서 민주주의 투쟁도 중요하다. 아랍 운동들간의 연대를 실현해야 한다. 11) 미 대선에서 부시가 재선된다면 전쟁이 더 확대될 것이다. 부시를 반드시 떨어뜨리기 위한 국제적 시위가 대선에 즈음해서 필요하다. 12) 전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위기와 연계되어 있다. 20년 동안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고통받는 모든 민중들의 투쟁에 연대하자. 13) 내년 이라크 헌법제정 회의 개최할 때 이에 대응하는 국제회의를 바그다드에서 개최하자.
한편 20-30명의 이라크 참가단과의 토론에서는 팔루자에서 온 셰이크(성직자) 아이만 모하메드가 “현재 이라크는 야만적인 공격을 받고 있고 종교 시설마저 파괴되고 있다. 저항이 미군 등에 의해 테러리즘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미국의 이해에 해가 되면 테러리즘인 것이다. 안전은 그들만의 것이고 이라크인들의 것이 아니다. 이라크 정부는 미국을 쫓아내지 못한다. 이라크 저항은 순수한 저항이다.”라고 하면서 이라크 저항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이라크 참가단의 주요 제안은 저항을 조건없이 지지하고 연대해달라는 것이었고, 내년에 헌법 제정 회의할 때, 바그다드에서 국제회의를 개최하자는 것이었다. 또한 감옥에 갇힌 이라크 여성의 문제도 중요하게 제기되었다.
팔레스타인 참가단과의 토론에서는 주로 분리장벽 철폐운동이 다뤄졌다. 역사적으로 점점 팔레스타인 지역은 축소되어 왔고 현재 가자, 라파, 예루살렘, 나블루스 등에서 장벽이 건설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외부로부터 고립되어 있다. 또한 인접 국가에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의 법적, 사회적, 정치적 상황도 가혹하다. 거의 생존 이하의 조건에서 살고 있고 이들은 미숙련 하층 직업에만 종사해야 하는 상황이다. 수자원을 비롯한 각종 자원도 이스라엘이 장악하고 있다. 이에 분리장벽을 철폐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이스라엘을 보이콧하는 캠페인을 하고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갈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제안되었다. 팔레스타인 관련해서는 회의 시작 전날 베이루트 시내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인 사브라&샤틸라라는 곳에서 22년 전에 이스라엘이 2500여명을 학살한 사건을 추모하는 영화상영이 있었고, 회의 첫째 날에는 그곳에서 추모행사도 개최되었다.
이라크 국제회의에 대한 논란
회의 3일째인 19일은 원래 오전에 선언문 초안을 논의하고 오후에 최종 선언문을 논의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런데 일정이 변경되어 오전에는 브라질노총의 활동가가 2005년 포르투 알레그레 세계사회포럼에 대해 설명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회포럼 순서가 끝난 이후에는 1)이라크 점령 반대 2)팔레스타인 저항 3)경제적 군사적 세계화 등 세 그룹으로 나눠서 행동계획을 논의했다. 이라크 관련 행동제안은 점령감시센터(Iraq Occupation Watch Center) 재개(이는 여러 문제로 인해 4월에 중단되었음), 10월 13-14일 일본에서 열리는 재건기금 마련 회의를 반대하는 성명서 조직, 전쟁기업 반대 캠페인, 저항세력에게 식량과 의약품 지원, 이라크 전범 국제 민중법정, 외국용병 철수 캠페인, 10월 17일 국제행동, 국제적 이라크법률가위원회 구성, 2005년 이라크 헌법제정회의 개최시 이에 대응하는 국제회의를 바그다드에서 개최하는 것 등이 발표되었다.
팔레스타인 문제 관련해서는 분리장벽 반대 캠페인, 이스라엘 보이콧 캠페인, 국제방문단 조직, 11월 9-16일 국제행동, 12월 10일 세계인권의 날에 맞춘 국제행동, 내년 5월 15일 국제행동 등이 제안되었다. 경제적 군사적 세계화에 대해서는 (미국)군사기지 반대 캠페인, 2005년 12월 홍콩에서 열리는 WTO 6차 각료회의 저지투쟁, 이를 위한 대중교육과 캠페인, 국제금융기구(IMF, IBRD)에 대한 반대운동 등이 제안되었다.
이후 선언문 초안과 행동계획을 논의하게 되었는데 이때 이라크 대표단과 제안된 바그다드 국제회의에 대해 논란이 벌어졌다. 애초 이번 회의에 참가한 이라크 대표단에서는 '이라크 내에서 정치적 공간을 창출하기 위해 내년 이라크 헌법제정 회의시 반전운동의 국제회의를 바그다드에서 열자'고 제안했고 월든 벨로 등등이 이를 지지했는데, 영국 등의 참가자들이 이를 반대했다. 조지 갤로웨이 의원(영국 하원의원인데 반전 운동 때문에 노동당에서 제명당했다고 함) 등이 제기한 내용인즉슨 지금 참가한 이라크 대표단이 대표성이 없는 작은 집단이라는 것이고, 이라크 내에서 모종의 정치적 기획을 하여 정치적 입지를 넓히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해 이라크 대표단을 조직한 것으로 보이는 활동가는 "물론 이라크 저항세력 모두를 대표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은 팔루자, 사마라, 쿠파, 바그다드 등에서 왔고 저항을 하고 있다.“면서 문제제기를 일축했다. 또한 여러 활동가들이 ”이라크 대표단에게 조건을 부과할 수는 없다“, ”대표단의 정당성을 의심해서는 안된다. 그들도 저항의 일부이다.“, ”운동은 단결해야 한다. 이 타입의 저항은 지지하지 않고 저 타입의 저항은 지지하는가? 이라크 안팎에서 정치세력을 단결시키고자 하는 행동을 지지해야 한다.“ 등의 발언을 하였고 월든 벨로는 ”이라크 대표단들은 점령에 반대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정치적 동물 아닌가? 그들도 이 회의에서 지지받아야 한다. 다른 이들이 오더라도 지지할 것이다. 그것이 첫걸음이다. 두번째는 우리가 이라크에 가서 이라크의 민주주의를 위해 점령에 반대하는 컨퍼런스를 여는 것이다.“라고 발언하였다. 몇 번의 인신공격성 발언들(누가 더 사담 후세인과 친했냐는)도 오갔고 ”이라크 저항세력의 광범위한 부분이 추진하여 요청하면 바그다드에서 국제회의를 할 수도 있지만 지금과 같이 작은 부분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추진하는 것은 지지할 수 없다“는 제기도 이어졌다. 급기야 이라크 대표단들이 회의장에서 철수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라크에서 국제회의를 열자는 제안과 관련해서 문구가 세 가지 제안되었는데 이것도 논란을 거듭하다가 '통과시키지 말고 선언문과 따로 분리하되 서명할 곳은 서명하자'는 의견이 제기되어 이에 동의하면서 논의를 마무리 지었다. 이에 따라 선언문만이 합의된 것으로 되었고 앞서 많이 제안된 행동계획은 합의되지 못한 채 남게 되어 향후 메일링리스트를 통해 지지 연명을 받기로 하였다.
이 문제는 사실 복잡한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우선, 내년 1월로 예정된 총선을 어떻게 볼 것이냐다. 현재 저항의 확대로 인해 미군과 이라크 임시정부가 통제력을 상실하면서 이라크 내에서는 대다수가 총선이 예정대로 치러질 수는 없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에 미국과 임시정부는 부분적인 총선도 가능할 수 있다는 얘기를 흘리고 있지만 일부지역만의 총선은 그야말로 이라크를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애가 탄 미국과 임시정부가 총선 이전에 전국적인 통제력을 장악하기 위해 저항세력에 대한 ‘10월 대공세’를 시작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총선일정 자체가 극히 불투명하고, 또한 미군과 임시정부 치하에서의 총선을 소위 민주주의 과정으로 볼 수도 없고 총선이 치러지는 것을 인정할수 없게 될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과거 미군정하 해방공간 상황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라크 저항세력 자체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어떤 조직적 연계가 있는지, 전국적으로 단결을 모색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어서 국제 반전운동이 이들과 어떻게 연대를 맺을 수 있는지 불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정치세력과 파트너쉽을 형성하는 것은 섣부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이번 회의에서 이라크 저항에 대한 ‘조건없는 지지’가 대부분 동의되기는 했지만 일부 반대도 있었다. 즉 납치, 자살폭탄 등과 같은 극단적 방법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이에 대해 월든 벨로는 연설문에서 “2003년 2월 15일 국제시위에 비해 2004년 3월 20일 시위의 규모가 훨씬 줄어든 것은 국제 평화운동의 중요 세력들이 이라크 저항을 정당화하는데 주저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면서 “민족해방이나 독립을 위해 ‘깨끗한’ 운동은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하여 이를 옹호하였다.
베이루트 회의가 남긴 것들
전체적으로 회의를 대략 평가해 보자면
첫째, 아랍지역 조직들이 대거 참석함으로써 국제적인 반전 반세계화 운동과 아랍 운동이 연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레바논, 팔레스타인, 이라크, 요르단, 이집트, 모로코, 튀니지, 시리아 등에서 참여하여 운동의 관심사를 논의하고 인적 교류를 맺은 것이 이번 회의의 가장 큰 성과가 아닌가 한다. 특히 이슬람 자체를 ‘테러리스트’로 묘사하는 미국과 지배 언론의 영향력이 ‘이슬라모포비아(이슬람혐오증)’의 형태로 대중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문제의식을 듣고 아랍지역의 운동이 반전 반세계화 운동의 일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헤즈볼라 중앙위원인 알리 파야드는 레바논 남부지역을 방문하고 돌아오면서 필자에게 “내년 1월 브라질 세계사회포럼에서 만나자”라고 하였다.
둘째, 이 연장선상에서 이라크,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조건 없이 지지하는 것에 동의했고, 그들과 직접 토론함으로써 구체적인 과제들을 활발하게 제안할 수 있었다. 특히 팔레스타인 문제는 과제와 행동계획이 잘 조직되어 제출되었고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리하여 국제적 지역적 수준에서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점령에 반대하는 투쟁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것의 중요성을 각인할 수 있었다.
셋째, 회의 공간의 지리적 특성상 때문인지 다소 팔레스타인, 이라크 문제만 부각되어 전체적인 군사주의의 다양한 문제, WTO-세계화 문제는 미흡하게 다뤄진 측면이 아쉬운 점이다. ‘전략회의’라는 명칭에 걸맞게 현 상황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과 토론, 전망 제시가 이뤄지져야 할 것이다.
넷째, 이라크에서의 국제회의 개최여부에 대한 논란 때문에 선언문만 합의되고 행동계획이 합의되지 못하였다. 물론 이라크 저항세력이 어떻게 대표될 수 있는지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지나치게 대표성 문제와 국제회의 개최여부만 논쟁됨으로써 다른 행동계획이 충분히 토론되지 못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 한 활동가는 쟁점을 드러내놓고 토론한 것도 유의미하다고 평가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아쉬움은 크다.
이번 회의를 놓고 평가는 다양하게 표출될 수 있다. 그러나 강조되어야 할 것은 세계의 반전 반세계화 운동이 서로 긴밀한 연관을 맺으면서 신자유주의의 무장한 세계화에 맞서도록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지금이 미국 자본주의 헤게모니가 몰락하고 또 다른 체제로 변화하고 있는 장기적인 이행기라고 한다면 아래로부터 민중들의 행동, 연대, 조직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행위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