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위기는 계속된다.-현지에서 본 미국 대선
죽음의 위기는 계속된다.
-현지에서 본 미국 대선-
차주범 (뉴욕청년학교 프로그램코디네이터)
{{{{* 편집자 해설 : 뉴욕청년학교(Young Korean American Service & Education Center, YKASEC www.ykasec.org)는 1984년 설립이래 미국에 이주한 한국인들의 정치·사회적 권익증진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벌여 온 단체이다. 최근에는 미국 내 한국인들을 '이주노동자'로 보고 노동권을 보호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청년학교는 올해 100명 이상의 뉴욕시내 외국 이주민들과 함께 미국 내 반(反)이민자 법안 폐지를 촉구하고 '서류미비자'(불법체류자)에 대한 사면을 위해 보름간 단식농성을 이끌기도 했다. 또 지난해부터 미 연방의회에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선제공격 옵션 중단 등을 내용으로 하는 '한반도 평화정착 결의안'을 상정하도록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여, 미국 시민권자 1만여 명의 서명을 받아내기도 했다. (한겨레 2004. 10. 26일자) 필자는 10년 동안 청년학교와 뉴욕청년연합에서 일해왔으며 평화와 진보를 위해 일하는 활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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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지난 8월 29일,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렸던 메디슨스퀘어 가든을 중심으로 뉴욕시 맨하탄 한복판은 25만 여명의 시위군중으로 넘쳐 났다. World Say No to Bush Agenda라는 주제로 미 전국 각지에서 모인 반전, 평화, 여성단체 등 진보단체의 활동가들과 개인들이 부시의 정책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열었던 것이다. 시위주제가 부시를 직접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정책에 대한 반대였던 이유는 그날 시위의 주체단체 및 다수의 참가단체들이 비영리 법인단체였기 때문이다.(미국에서 세금감면을 받는 비영리 법인단체는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반대를 표명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무더웠던 막바지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었던 사실상의 반 부시 시위였던 그날, 25만 명의 참가자들은 두어달 남은 미 대선이 마치 부시행정부의 대외정책 추진과정처럼 일방적인 부시의 페이스로 종결되지 만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선언했다. 또한 그날 시위를 계기로 부시에 반대하는 평화, 진보주의자 들의 주장은 미디어를 타고 전국적으로 선전되었으며 친 부시와 반 부시의 대립선이 확실하게 설정되는 듯 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선거가 끝난 후 판명되었지만, 이번 미 대선은 그날 모인 시위군중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방향으로 흘러가 버렸다. 민주당의 아성 뉴욕에서 반 부시의 함성이 하늘을 진동시킬 때 땅에서는 접전 주들(Swing States)을 중심으로 공화당 선거전략가들의 치밀한 노력 하에 부시의 승리가 준비되고 있었다. 선거가 끝난 지금 부시가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는지를 되돌아 보는 것은 진보주의자의 입장에선 아주 착잡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 전투에서의 패배를 거울삼아 앞으로의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선 이번 대선을 세밀히 들여다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아울러 코리아반도의 평화정착과 이땅 미국에서 평등한 이민자의 삶을 보장 받길 원하는 우리 코리안아메리칸들은 이번 선거를 계기로 향후 부시행정부가 더 나아가 미국사회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 부시는 왜 이겼을까? 이번 미 대선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부도덕이 도덕을 앞세워 승리한 선거
언론을 비롯한 다수의 정치평론가 들은 이번 대선을 앞두고 아들 부시가 처한 선거환경과 아버지 부시가 직면했던 상황을 곧잘 비교하곤 했다. 즉 전쟁까지 일으키면서 미국의 외교정책을 주요 선거이슈로 부각시키고 있는 부시에 대항해 케리가 얼마나 경제, 복지 등 당면한 민생문제를 잘 부각시켜 낼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1992년 선거에서 당시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It's Economy Stupid! 라는 확실한 구호를 앞세우면서 경기침체로 인해 괴로워하던 유권자들의 표심을 움직일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기대했지만 결과는 전혀 엉뚱한 것이었다. 선거 직후 실시한 CNN, ABC 등 주요 메이저 방송국의 합동 출구조사결과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 어떤 이슈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냐는 질문에 이라크전쟁도 아니고 경제도 아닌 도덕성(Moral Values)이라고 투표에 참가한 전체 유권자 중 22%가 답을 해 경제(20%), 테러리즘(19%)을 근소한 차이로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물론 그렇게 대답한 유권자 중 80%가 압도적으로 부시를 지지했다. 여기서 말하는 도덕성이란 주요 선거 이슈의 하나 였던 낙태, 동성결혼문제에 대한 태도를 지칭하는 것이다. 낙태, 동성결혼이 도덕성의 기준이 된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상당수의 미국인들이 이 문제를 도덕적인 문제로 바라본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엔 속사정이 있다. 이번 선거의 전체 유권자 중 1/4가량(23%)이 백인 기독교 복음주의자 들이었는데 그들이 부시에게 몰표를 던진(78%)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정치를 세속적인 행위로 치부하면서 투표참가를 꺼리고 부시의 과거전력(알코올중독 등)때문에 지난 선거에서 적극적으로 부시를 지지하지 않았던 그들이 이번엔 부시에게 투표하기 위해 대거 투표장으로 나온 것이다. 선거 전후에 부시의 실질적인 브레인으로 주목 받은 칼 로브 백악관 정치고문을 비롯한 공화당 선거전략가들이 수년 동안 이들을 대상으로 '도덕적'이슈를 부각시키고 투표장으로 유도한 결과가 빛을 발한 것이다. 사실 지난 4년 동안 부시행정부의 행적을 살펴보면 부도덕으로 점철되었음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간단한 예를 들면 이라크 전쟁이야말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거대한 사기극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러한 부도덕한 부시정권이 다른 도덕(?)적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는 것이 오늘 미국의 현실이다.
애국주의(사실은 인종주의)의 정점을 보여준 선거
9.11을 기점으로 해서 부시행정부(네오콘)는 그들의 패권주의적 자세를 노골적으로 견지하면서 두 번의 전쟁을 연달아 일으켰다. 부시행정부는 현재 미국 안에서도 전쟁을 진행중이다. 테러리스트를 근절한다며 중동을 초토화하는 한편 같은 명분을 국내에서도 발현하기 위해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공세를 퍼붓고 있다. 부시의 전폭적인 후원 하에 날림으로 의회를 통과한 애국법(Patriot Act)을 필두로 행정부와 의회는 각 정부기관 간의 유기적인 정보교환 체계를 만들어 이민자를 단속하고 감시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 이 모든 정책추진의 근거는 이른바 '국가안전'을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9.11은 미 정치권과 일반국민에게 국가안전에 대한 자각을 하게 해 주면서 다양한 정책을 만들게끔 했는데 그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상당히 염려스러운 현상을 볼 수 있다. 현재 미국을 휩쓸고 있는 애국주의는 이민자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미 정치권과 백인들의 '그들만의 애국주의'이다. 이민자 그룹을 테러리스트와 동일한 집단으로 치부하면서 필요이상의 규제와 단속으로 이민자들의 일상생활을 억압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미 미국사회의 가장 큰 사회문제 중 하나였던 인종주의에 기반한 차별과 탄압이 테러리스트 근절이라는 명분 하에 합법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현실이 닥친 것이다. 요즘의 미 정치권의 움직임을 보면 마치 90년대 중반의 상황을 보는 듯 하다. 94년 중간선거에서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은 당시 미국경제의 침체의 원인을 미국사회를 좀먹는-경제적 기여는 없으면서 정부수혜만 받는-이민자들에게 책임이 있다면서 사회보장혜택 축소 등의 정책을 저돌적으로 추진하였던 적이 있었다. 근래에는 국가안전을 위협하는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이민자를 지목하면서 다시금 세찬 공격이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미 정치권의 잘못을 공공의 적(이민자)에게 대신 떠 넘기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한국에서 5.18 민중항쟁의 피냄새가 다 가시고 역사의 한 장으로 넘어가는데 대략 20여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마찬가지로 9.11의 피냄새가 사라지기 위해선 향후 최소한 십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이번 미 대선은 이러한 사실을 명징하게 보여준 선거였다.
반 공화당 진영에 경고카드를 보여준 선거
미국 선거도 한국 선거와 다름없는 승리공식이 있다. 자신의 지지층을 잘 결집시켜 동원하고 거기에 부동층을 조금 보태면 승리하는 것이다. 부시는 이점에 있어서 확실히 성공했고 케리는 철저히 실패했다. 앞서 얘기한 기독교 복음주의자를 비롯해 소득 5만 달러 이상 계층, 백인, 총기소지자 등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자들은 평소 선거 때 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이번 선거에 참여했다. 부시의 재선을 자축하고 있는 부시 지지그룹 들은 아마도 이번에 그들이 미국을 구원했다는 자긍심으로 충만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이번 선거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이유는 테러의 위협과 동성결혼, 낙태로 어지러운 미국사회를 구해야 한다는 나름의 소명의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미국이 테러씩이나 당해야 했는지 사려 깊게 따져 보는 노력 대신 적(?)들을 향한 증오심과 테러에 대한 공포심에 휩싸인 그들은 부시에 대한 묻지마 지지로 그들의 절박한 심정을 표현했다. 부시는 이들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는 발언과 행동으로 확실한 지지기반을 구축했다. 텔레비전 토론에 나온 부시가 미국이 너무 일방주의 정책을 펼쳐 다른 국가의 신망을 잃고 있다는 케리의 공격에 왜 우리가 우리의 안전을 지키는데 다른 나라의 허락을 얻어야 하냐?며 의기양양하게 대답하는 장면은 부시와 그 지지그룹이 갖고 있는 기본인식을 선명하게 나타내 주었다. 이렇게 부시와 그 지지그룹은 기만적이지만 동시에 선명한 정치구호로 무장되어 있었던 반면에 케리와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그룹은 이번 선거에서 약간 무능력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부시진영의 테러근절, 도덕성 회복을 기치로 하는 저돌적인 공격에 맞서는 논리개발과 민주당 지지그룹을 매혹시킬 만한 정책개발에 미흡했다. 앞서 인용한 출구조사에서 케리를 지지한 유권자 중 무려 70%가 케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부시가 싫어서 투표했다는 대답을 하였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케리진영의 선거전략이 갖는 무능함을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에서 민주당의 가장 강력한 지지그룹은 노조였다. 이번 선거를 맞이하면서 미국노동조합총연맹(AFL-CIO)은 조직내부의 논란 속에 지난 수 년간 자신들의 1년 예산에 맞먹는 수천만 달러의 돈을 쓰면서 케리에 올인 하였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보수화로 치닫고 있는 미국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결과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번 미 대선은 공화당에게 있어서 한가지 이유로 기념비적인 선거로 남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그간의 선거역사상 최초로 투표에 참여한 공화당원과 민주당원이 동수를 기록한 것이다. 유권자등록을 할 때 정당에 등록할 수 있는 현 미국의 선거제도에 따라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정당에 가입해 있는 상태인데 항상 민주당원의 투표참가율이 공화당원의 그것을 많게는 2백만 표 정도의 차이로 압도해 왔었다. 이번에 그 현상이 깨진 것이다. 이것은 민주당에게 선거시 조직동원에 있어서 공화당에 비해 유리하다는 안일한 관념을 앞으로는 깨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심어 주는 것이다. 이번 미 대선은 애국주의의 흐름을 탄 공화당 지지그룹의 대동단결에 맞서는 민주당과 지지그룹의 분발을 촉구하는 선거였다.
이민자 커뮤니티의 조직화 필요성을 일깨운 선거
4년 전 선거에서 부시는 각 주별로 집계되는 선거인단 수에선 이겼지만 전체 투표수에선 고어보다 50만 표 가량 뒤짐으로서 반쪽승리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그런데 이번엔 전체 투표수에서도 약 350만 표 차이로 깨끗한 승리를 거두었다. 이 350만 표는 어디로부터 나온 것일까? 앞서 얘기한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이 대략 200만 표 정도를 더 부시에게 얻어준 것으로 집계되었다. 그리고 약 100만 표는 민주당원이면서도 공화당을 지지했거나 하는 경우를 빼고 대부분 히스패닉(Hispanic) 이민자 그룹에서 나온 표이다. 이번 선거에서 부시는 히스패닉 유권자 중 44%의 지지를 얻어냈다. 이것은 지난 선거 대비 약 10%가 성장한 것으로 히스패닉 계열 이민자 단체들도 깜짝 놀란 결과이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우선 부시 본인의 엄청난 노력이다. 멕시코 접경 지역인 텍사스에서 주지사로 재직할 당시부터 부시는 히스패닉에 대한 남다른 친분을 표시해 왔다. 이번 선거에서도 부시는 스페인어로 된 광고제작에 막대한 돈을 쓰는 한편 우리가 남이가? 우린 예전부터 무지 친했지?라는 메시지를 날리며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정서를 자극하였다. 아울러 정책적인 측면에서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환심을 살 만한 행위도 곁들였다. 현재 미국은 전국적으로 약 천만 명이 넘는 서류미비자(불법체류자)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큰 논란의 불씨로 존재하는 상태이다. 부시는 금년 초에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임시노동허가 프로그램(Temporary Workers Program)을 발표했다. 이 프로그램은 서류미비자 들에게 한 번의 연장이 가능한 3년간의 임시 취업허가를 내주고 체류기간이 끝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우선 추방 대상자가 되어)는 것이 주 내용을 이루고 있다. 대부분의 이민자 단체들은 부시의 프로그램은 미국에서 항구적으로 정착하며 살아야 하는 서류미비자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정책이기 때문에 당연히 반대를 표명하였다. 사실 부시의 정책은 선거를 앞두고 히스패닉들(미국에서 수 년간 합법적으로 일하고 돌아가길 원하는)의 환심을 사기위한 일종의 정치적 액션이었다. 이 액션이 히스패닉 커뮤니티의 호감을 얻은 것이다. 특히 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이민자 그룹은 민주당에 대한 확실한 지지성향을 보여주곤 하였다. 그것은 전국의 이민자 단체들이 선거 때 마다 커뮤니티를 조직화하고 교육해 온 노력에다 공화당이 주도하는 의회의 반 이민자정책에 대한 반발이 결합하여 나타난 결과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를 통해서 이민자 커뮤니티가 무조건적인 민주당의 지지그룹이 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히스패닉 유권자들이 증명해 주었다. 사실 아시안아메리칸 커뮤니티의 경우에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공화당을 더 많이 지지하는 성향을 보였었다. 오는 2050년을 기점으로 드디어 미국은 유색인종의 인구가 백인을 추월하게 된다. 그전까지 이 미국사회는 기득권자인 백인 지배세력과 유색인종 간의 치열한 정치적, 사회적 공방이 벌어질 것이다. 이번 미 대선은 앞으로 이민자 단체들이 일상 생활정치 차원에서 그리고 선거공간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다시금 일깨운 선거였다.
나오는 말
연대의 정신으로 '생명운동'에 나서자
케리가 당선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미국사회와 세계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진 않겠지만, 전세계 민중들의 끔찍한 재앙, '악의 중심' 부시가 재선된 이번 미 대선을 통해 드러난 사실들은 향후 4년간 아니 그보다 더 오랜 기간 동안 우리에게 '고난의 행군'을 요구한다. 신자유주의와 패권주의로 요약되는 미국의 세계지배 정책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과제를 안겨줄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을 텐데 나는 그것을 '생명운동' 이라고 정리하고 싶다. 현재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정치, 군사, 경제적 현상을 건조한 사회과학적 용어를 동원해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하게 말해 '죽음의 행렬'이라 할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라크에서 미국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죽고, 죽어가고 있으며 생존권의 보장을 위해 전세계 노동자들은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가공할 군사력을 무기로 전 세계를 지배하는 부시행정부에 맞서서 이제 우리는 본격적인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싸움은 일국의 차원을 넘어 전세계적인 민중연대를 통해 이루어질 때 더욱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뉴욕의 단체 사무실에 앉아 나는 한국 국회앞 타워크레인에서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마음으로 함께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PSSP
-현지에서 본 미국 대선-
차주범 (뉴욕청년학교 프로그램코디네이터)
{{{{* 편집자 해설 : 뉴욕청년학교(Young Korean American Service & Education Center, YKASEC www.ykasec.org)는 1984년 설립이래 미국에 이주한 한국인들의 정치·사회적 권익증진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벌여 온 단체이다. 최근에는 미국 내 한국인들을 '이주노동자'로 보고 노동권을 보호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청년학교는 올해 100명 이상의 뉴욕시내 외국 이주민들과 함께 미국 내 반(反)이민자 법안 폐지를 촉구하고 '서류미비자'(불법체류자)에 대한 사면을 위해 보름간 단식농성을 이끌기도 했다. 또 지난해부터 미 연방의회에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선제공격 옵션 중단 등을 내용으로 하는 '한반도 평화정착 결의안'을 상정하도록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여, 미국 시민권자 1만여 명의 서명을 받아내기도 했다. (한겨레 2004. 10. 26일자) 필자는 10년 동안 청년학교와 뉴욕청년연합에서 일해왔으며 평화와 진보를 위해 일하는 활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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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지난 8월 29일,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렸던 메디슨스퀘어 가든을 중심으로 뉴욕시 맨하탄 한복판은 25만 여명의 시위군중으로 넘쳐 났다. World Say No to Bush Agenda라는 주제로 미 전국 각지에서 모인 반전, 평화, 여성단체 등 진보단체의 활동가들과 개인들이 부시의 정책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열었던 것이다. 시위주제가 부시를 직접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정책에 대한 반대였던 이유는 그날 시위의 주체단체 및 다수의 참가단체들이 비영리 법인단체였기 때문이다.(미국에서 세금감면을 받는 비영리 법인단체는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반대를 표명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무더웠던 막바지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었던 사실상의 반 부시 시위였던 그날, 25만 명의 참가자들은 두어달 남은 미 대선이 마치 부시행정부의 대외정책 추진과정처럼 일방적인 부시의 페이스로 종결되지 만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선언했다. 또한 그날 시위를 계기로 부시에 반대하는 평화, 진보주의자 들의 주장은 미디어를 타고 전국적으로 선전되었으며 친 부시와 반 부시의 대립선이 확실하게 설정되는 듯 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선거가 끝난 후 판명되었지만, 이번 미 대선은 그날 모인 시위군중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방향으로 흘러가 버렸다. 민주당의 아성 뉴욕에서 반 부시의 함성이 하늘을 진동시킬 때 땅에서는 접전 주들(Swing States)을 중심으로 공화당 선거전략가들의 치밀한 노력 하에 부시의 승리가 준비되고 있었다. 선거가 끝난 지금 부시가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는지를 되돌아 보는 것은 진보주의자의 입장에선 아주 착잡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 전투에서의 패배를 거울삼아 앞으로의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선 이번 대선을 세밀히 들여다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아울러 코리아반도의 평화정착과 이땅 미국에서 평등한 이민자의 삶을 보장 받길 원하는 우리 코리안아메리칸들은 이번 선거를 계기로 향후 부시행정부가 더 나아가 미국사회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 부시는 왜 이겼을까? 이번 미 대선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부도덕이 도덕을 앞세워 승리한 선거
언론을 비롯한 다수의 정치평론가 들은 이번 대선을 앞두고 아들 부시가 처한 선거환경과 아버지 부시가 직면했던 상황을 곧잘 비교하곤 했다. 즉 전쟁까지 일으키면서 미국의 외교정책을 주요 선거이슈로 부각시키고 있는 부시에 대항해 케리가 얼마나 경제, 복지 등 당면한 민생문제를 잘 부각시켜 낼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1992년 선거에서 당시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It's Economy Stupid! 라는 확실한 구호를 앞세우면서 경기침체로 인해 괴로워하던 유권자들의 표심을 움직일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기대했지만 결과는 전혀 엉뚱한 것이었다. 선거 직후 실시한 CNN, ABC 등 주요 메이저 방송국의 합동 출구조사결과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 어떤 이슈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냐는 질문에 이라크전쟁도 아니고 경제도 아닌 도덕성(Moral Values)이라고 투표에 참가한 전체 유권자 중 22%가 답을 해 경제(20%), 테러리즘(19%)을 근소한 차이로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물론 그렇게 대답한 유권자 중 80%가 압도적으로 부시를 지지했다. 여기서 말하는 도덕성이란 주요 선거 이슈의 하나 였던 낙태, 동성결혼문제에 대한 태도를 지칭하는 것이다. 낙태, 동성결혼이 도덕성의 기준이 된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상당수의 미국인들이 이 문제를 도덕적인 문제로 바라본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엔 속사정이 있다. 이번 선거의 전체 유권자 중 1/4가량(23%)이 백인 기독교 복음주의자 들이었는데 그들이 부시에게 몰표를 던진(78%)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정치를 세속적인 행위로 치부하면서 투표참가를 꺼리고 부시의 과거전력(알코올중독 등)때문에 지난 선거에서 적극적으로 부시를 지지하지 않았던 그들이 이번엔 부시에게 투표하기 위해 대거 투표장으로 나온 것이다. 선거 전후에 부시의 실질적인 브레인으로 주목 받은 칼 로브 백악관 정치고문을 비롯한 공화당 선거전략가들이 수년 동안 이들을 대상으로 '도덕적'이슈를 부각시키고 투표장으로 유도한 결과가 빛을 발한 것이다. 사실 지난 4년 동안 부시행정부의 행적을 살펴보면 부도덕으로 점철되었음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간단한 예를 들면 이라크 전쟁이야말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거대한 사기극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러한 부도덕한 부시정권이 다른 도덕(?)적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는 것이 오늘 미국의 현실이다.
애국주의(사실은 인종주의)의 정점을 보여준 선거
9.11을 기점으로 해서 부시행정부(네오콘)는 그들의 패권주의적 자세를 노골적으로 견지하면서 두 번의 전쟁을 연달아 일으켰다. 부시행정부는 현재 미국 안에서도 전쟁을 진행중이다. 테러리스트를 근절한다며 중동을 초토화하는 한편 같은 명분을 국내에서도 발현하기 위해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공세를 퍼붓고 있다. 부시의 전폭적인 후원 하에 날림으로 의회를 통과한 애국법(Patriot Act)을 필두로 행정부와 의회는 각 정부기관 간의 유기적인 정보교환 체계를 만들어 이민자를 단속하고 감시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 이 모든 정책추진의 근거는 이른바 '국가안전'을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9.11은 미 정치권과 일반국민에게 국가안전에 대한 자각을 하게 해 주면서 다양한 정책을 만들게끔 했는데 그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상당히 염려스러운 현상을 볼 수 있다. 현재 미국을 휩쓸고 있는 애국주의는 이민자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미 정치권과 백인들의 '그들만의 애국주의'이다. 이민자 그룹을 테러리스트와 동일한 집단으로 치부하면서 필요이상의 규제와 단속으로 이민자들의 일상생활을 억압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미 미국사회의 가장 큰 사회문제 중 하나였던 인종주의에 기반한 차별과 탄압이 테러리스트 근절이라는 명분 하에 합법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현실이 닥친 것이다. 요즘의 미 정치권의 움직임을 보면 마치 90년대 중반의 상황을 보는 듯 하다. 94년 중간선거에서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은 당시 미국경제의 침체의 원인을 미국사회를 좀먹는-경제적 기여는 없으면서 정부수혜만 받는-이민자들에게 책임이 있다면서 사회보장혜택 축소 등의 정책을 저돌적으로 추진하였던 적이 있었다. 근래에는 국가안전을 위협하는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이민자를 지목하면서 다시금 세찬 공격이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미 정치권의 잘못을 공공의 적(이민자)에게 대신 떠 넘기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한국에서 5.18 민중항쟁의 피냄새가 다 가시고 역사의 한 장으로 넘어가는데 대략 20여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마찬가지로 9.11의 피냄새가 사라지기 위해선 향후 최소한 십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이번 미 대선은 이러한 사실을 명징하게 보여준 선거였다.
반 공화당 진영에 경고카드를 보여준 선거
미국 선거도 한국 선거와 다름없는 승리공식이 있다. 자신의 지지층을 잘 결집시켜 동원하고 거기에 부동층을 조금 보태면 승리하는 것이다. 부시는 이점에 있어서 확실히 성공했고 케리는 철저히 실패했다. 앞서 얘기한 기독교 복음주의자를 비롯해 소득 5만 달러 이상 계층, 백인, 총기소지자 등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자들은 평소 선거 때 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이번 선거에 참여했다. 부시의 재선을 자축하고 있는 부시 지지그룹 들은 아마도 이번에 그들이 미국을 구원했다는 자긍심으로 충만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이번 선거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이유는 테러의 위협과 동성결혼, 낙태로 어지러운 미국사회를 구해야 한다는 나름의 소명의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미국이 테러씩이나 당해야 했는지 사려 깊게 따져 보는 노력 대신 적(?)들을 향한 증오심과 테러에 대한 공포심에 휩싸인 그들은 부시에 대한 묻지마 지지로 그들의 절박한 심정을 표현했다. 부시는 이들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는 발언과 행동으로 확실한 지지기반을 구축했다. 텔레비전 토론에 나온 부시가 미국이 너무 일방주의 정책을 펼쳐 다른 국가의 신망을 잃고 있다는 케리의 공격에 왜 우리가 우리의 안전을 지키는데 다른 나라의 허락을 얻어야 하냐?며 의기양양하게 대답하는 장면은 부시와 그 지지그룹이 갖고 있는 기본인식을 선명하게 나타내 주었다. 이렇게 부시와 그 지지그룹은 기만적이지만 동시에 선명한 정치구호로 무장되어 있었던 반면에 케리와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그룹은 이번 선거에서 약간 무능력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부시진영의 테러근절, 도덕성 회복을 기치로 하는 저돌적인 공격에 맞서는 논리개발과 민주당 지지그룹을 매혹시킬 만한 정책개발에 미흡했다. 앞서 인용한 출구조사에서 케리를 지지한 유권자 중 무려 70%가 케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부시가 싫어서 투표했다는 대답을 하였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케리진영의 선거전략이 갖는 무능함을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에서 민주당의 가장 강력한 지지그룹은 노조였다. 이번 선거를 맞이하면서 미국노동조합총연맹(AFL-CIO)은 조직내부의 논란 속에 지난 수 년간 자신들의 1년 예산에 맞먹는 수천만 달러의 돈을 쓰면서 케리에 올인 하였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보수화로 치닫고 있는 미국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결과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번 미 대선은 공화당에게 있어서 한가지 이유로 기념비적인 선거로 남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그간의 선거역사상 최초로 투표에 참여한 공화당원과 민주당원이 동수를 기록한 것이다. 유권자등록을 할 때 정당에 등록할 수 있는 현 미국의 선거제도에 따라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정당에 가입해 있는 상태인데 항상 민주당원의 투표참가율이 공화당원의 그것을 많게는 2백만 표 정도의 차이로 압도해 왔었다. 이번에 그 현상이 깨진 것이다. 이것은 민주당에게 선거시 조직동원에 있어서 공화당에 비해 유리하다는 안일한 관념을 앞으로는 깨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심어 주는 것이다. 이번 미 대선은 애국주의의 흐름을 탄 공화당 지지그룹의 대동단결에 맞서는 민주당과 지지그룹의 분발을 촉구하는 선거였다.
이민자 커뮤니티의 조직화 필요성을 일깨운 선거
4년 전 선거에서 부시는 각 주별로 집계되는 선거인단 수에선 이겼지만 전체 투표수에선 고어보다 50만 표 가량 뒤짐으로서 반쪽승리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그런데 이번엔 전체 투표수에서도 약 350만 표 차이로 깨끗한 승리를 거두었다. 이 350만 표는 어디로부터 나온 것일까? 앞서 얘기한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이 대략 200만 표 정도를 더 부시에게 얻어준 것으로 집계되었다. 그리고 약 100만 표는 민주당원이면서도 공화당을 지지했거나 하는 경우를 빼고 대부분 히스패닉(Hispanic) 이민자 그룹에서 나온 표이다. 이번 선거에서 부시는 히스패닉 유권자 중 44%의 지지를 얻어냈다. 이것은 지난 선거 대비 약 10%가 성장한 것으로 히스패닉 계열 이민자 단체들도 깜짝 놀란 결과이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우선 부시 본인의 엄청난 노력이다. 멕시코 접경 지역인 텍사스에서 주지사로 재직할 당시부터 부시는 히스패닉에 대한 남다른 친분을 표시해 왔다. 이번 선거에서도 부시는 스페인어로 된 광고제작에 막대한 돈을 쓰는 한편 우리가 남이가? 우린 예전부터 무지 친했지?라는 메시지를 날리며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정서를 자극하였다. 아울러 정책적인 측면에서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환심을 살 만한 행위도 곁들였다. 현재 미국은 전국적으로 약 천만 명이 넘는 서류미비자(불법체류자)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큰 논란의 불씨로 존재하는 상태이다. 부시는 금년 초에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임시노동허가 프로그램(Temporary Workers Program)을 발표했다. 이 프로그램은 서류미비자 들에게 한 번의 연장이 가능한 3년간의 임시 취업허가를 내주고 체류기간이 끝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우선 추방 대상자가 되어)는 것이 주 내용을 이루고 있다. 대부분의 이민자 단체들은 부시의 프로그램은 미국에서 항구적으로 정착하며 살아야 하는 서류미비자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정책이기 때문에 당연히 반대를 표명하였다. 사실 부시의 정책은 선거를 앞두고 히스패닉들(미국에서 수 년간 합법적으로 일하고 돌아가길 원하는)의 환심을 사기위한 일종의 정치적 액션이었다. 이 액션이 히스패닉 커뮤니티의 호감을 얻은 것이다. 특히 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이민자 그룹은 민주당에 대한 확실한 지지성향을 보여주곤 하였다. 그것은 전국의 이민자 단체들이 선거 때 마다 커뮤니티를 조직화하고 교육해 온 노력에다 공화당이 주도하는 의회의 반 이민자정책에 대한 반발이 결합하여 나타난 결과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를 통해서 이민자 커뮤니티가 무조건적인 민주당의 지지그룹이 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히스패닉 유권자들이 증명해 주었다. 사실 아시안아메리칸 커뮤니티의 경우에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공화당을 더 많이 지지하는 성향을 보였었다. 오는 2050년을 기점으로 드디어 미국은 유색인종의 인구가 백인을 추월하게 된다. 그전까지 이 미국사회는 기득권자인 백인 지배세력과 유색인종 간의 치열한 정치적, 사회적 공방이 벌어질 것이다. 이번 미 대선은 앞으로 이민자 단체들이 일상 생활정치 차원에서 그리고 선거공간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다시금 일깨운 선거였다.
나오는 말
연대의 정신으로 '생명운동'에 나서자
케리가 당선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미국사회와 세계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진 않겠지만, 전세계 민중들의 끔찍한 재앙, '악의 중심' 부시가 재선된 이번 미 대선을 통해 드러난 사실들은 향후 4년간 아니 그보다 더 오랜 기간 동안 우리에게 '고난의 행군'을 요구한다. 신자유주의와 패권주의로 요약되는 미국의 세계지배 정책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과제를 안겨줄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을 텐데 나는 그것을 '생명운동' 이라고 정리하고 싶다. 현재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정치, 군사, 경제적 현상을 건조한 사회과학적 용어를 동원해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하게 말해 '죽음의 행렬'이라 할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라크에서 미국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죽고, 죽어가고 있으며 생존권의 보장을 위해 전세계 노동자들은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가공할 군사력을 무기로 전 세계를 지배하는 부시행정부에 맞서서 이제 우리는 본격적인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싸움은 일국의 차원을 넘어 전세계적인 민중연대를 통해 이루어질 때 더욱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뉴욕의 단체 사무실에 앉아 나는 한국 국회앞 타워크레인에서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마음으로 함께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