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5.1-2.52호
첨부파일
20051책과나_윤태곤.hwp

'71년생 다인이', 그리고 사라진 누나들

-김종광 지음, 작가정신

윤태곤 |
‘71년생 다인이’, 그리고 사라진 누나들
71년생 다인이, 김종광



윤 태 곤 | 회원 미디어참세상기자


신세대 소설가로 불리는 일군의 사람들 중에, 특히 리얼리즘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사람 중에 김종광이라는 작가가 있다. 김종광은 70년대 생으로 1998년 단편 '경찰서여, 안녕'으로 등단했는데 이문구틱한 의뭉스러움이나 이 시대를 나름대로 눈 돌리지 않고 바라보려는 모습이 참 좋더라. 게다가 이른바 메이저 캠 운동 이야기들이 주름 잡는 한국 문학에서 그간 한 번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제2캠퍼스를 무대로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도 참 맘에 든다. 뭐 김종광이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도 많겠지만 신동엽 창작기금을 수여받기도 한, 나름대로 유명하다면 유명한 작가 축에 끼는 사람이다.

김종광이라는 작가의 장점을 몇 개 늘어놓았지만 맘에 안드는 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세상 운동 혼자 다 한듯 비장하게 후일담을 풀어놓던 소위 386들이랑은 다르지만 역시 후일담 스런 냄새를 팍팍 풍기는 거랑, 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운동의 시대는 지났다며 힘 빼는 소리 반복하는 건 눈꼴 사납기 짝이 없다. (가만 보면 다들 지가 운동 그만 둔 때를 기점으로 ‘운동의 시대는 끝났노라’고 선언하는 경향이 있다. 이건 419세대들부터 김종광 같은 90년대 초반 학번 세대까지 멈추지 않는 전통이다. 아마 앞으로도 이런 선언은 주구장창 계속되겠지?)
여하튼 김종광의 소설 중에 2002년 월드컵이 한참일 때 발표된 '71년생 다인이' 라는 장편소설이 있다. 제목 그대로 71년생이고 90학번인 양다인이라는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이다. 주인공 양다인이는 고딩 때는 전교조의 세례를 받고 대학와서는 전대협에서 한총련을 건너는 바로 그 시기에 어느 수도권 대학에서 운동의 끝자락을 부여잡고(아마도 엔엘) 빡시게 활동하다가 빵살이도 한 번 하고 나와 이런저런 청년단체에서 일하다가 정신차렸답시고 벤처 창업하겠다고 설레발을 떨다 또 말아먹고 하여튼 삶을 팍팍해 하는 그런 여성이다.

이 소설은 6명의 관찰자를 통해 양다인을 조명하고 있는데 어려서부터 양다인은 남달리 저항의식이 강력한 그야 말로 싹수가 정말 빨간 타고난 운동권이었댄다. 대략 양다인의 성장과정을 훑어보자면 부모는 70년대 운동권 이었는데다가 전교조 세대로서 고등학교 때부터 독서회를 조직해 학교와 충돌을 일으키고 전교조 지지시위를 주동했고 대학 입학해서는 ‘술자리 최후의 용사’로서 이름을 날렸단다. 게다가 말빨은 또 얼마나 센지 작가의 표현을 잠깐 빌려 오자면 “다인이는 청산유수라는 말을 증명하기 위해서 나타난 애 같았다”니 원 참.

이 것 뿐이 아니다. 말로 안 되니까 권위, 나이, 감정을 앞세우며 폭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선배(물론 남자 선배지)는 태권도 공인 3단인 다인이에 의해 즉시 술집 바닥에 뭉개지곤 했으니 작중 다인이의 별명은 ‘원더우먼’이란다.
각설하고 이런 타고난 운동권이자 원더우먼인 양다인이는 학생운동 접고, 사회운동 하다가, 벤처창업했다가 망하고 나선 “나는 신념이고 뭐고 다 잃어버렸어”라고 찌질하게 털어놓는다. 뭐 그럴 수도 있지만 원더우먼의 몰락사치고는 너무 싱겁고 희화화된 느낌이 든다.

소설 소개는 이 쯤에서 그치고, 내가 이 소설을 참 재밌게 읽은 이유는 또 따로 있는 듯 싶다. 나 역시 70년대 전반부에 이 땅에 태어난데다가 90학번 또래의 세례를 직접적으로 받은 세대라 그렇지 싶다. 게다가 양다인을 보면서 내가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선배, 그 중에서도 특히 누나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2남 중에 장남이고 친가 쪽 사촌형제들은 열셋인데 전부다 남자다--;; 십삼남 무녀란 말이다. 그리고 남자 중학교, 남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런 전차로 어릴 때부터 누나 있는 친구들이 참으로 부러웠더랬다. 어찌하다 평균 여성이 많은 단과대, 학과로 진학을 했는데 동기들 중에 여자애들 많은 것 보다 때 늦은 누나 풍년이 든 게 더 좋더라.

그 때만 해도 과방 한구석에서 통기타 줄을 튕기면서 노래 부르는 고운 누나들이 좀 있었다. 돌이켜 보면 기타 연주 실력이야 초보를 겨우 벗어난 수준이고 레퍼토리야 서정적 멜로디를 지닌 민중가요가 대종이었지만 맑은 목소리로 노래 부르는 모습은 무구한 자태 바로 그것이었다. 노래 한 곡조 뽑고 담배 연기 코로 내 뿜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안 시켜도 자진 해서 커피 뽑아다 바칠 정도였다.

그 뿐인가? 강경대 열사가 죽은 지 삼년이 되는 그날 내 손목을 붙잡고 맛있는 것 사준다며 명지대로 데려간 누나도 있었고(생각해보면 그 때 따라간 후배가 나 하나였다. 그 누나는 속으로 참 열불 났었겠지) 최루탄 향이 알싸하게 날릴 때면 손으로 눈 비비지 마라며 내 눈에 자기 담배 연기를 불어넣어 주던, 마음 싱숭생숭하게 만들던 누나도 있었다. 깡마른 체구에 목소리는 쇳소리인데다가 재미도 없는 커리로 세미나 시키던, 그러나 욕하는 모습은 묘하게 섹시했던 누나도 있었고 학생회 선거 지고 나서 구슬피 통곡하던 누나들도 있었다.

일단 ‘71년생, 다인이’라는 소설 자체가 재밌게 술술 잘 읽히는 책이기도 하지만 완독하고 딱 책 뚜껑을 덮고 나니, 그 누나들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더라. 다들 어디서 뭐하고 있는지...바람이 전해주는 소식을 들으면 선전 업무에 치여 뼛골 빠지다가 결국 운동 접고 뒤늦게 향학열에 불타 잘 나가는 동시통역사가 됐다더라는 둥, 운동판에서 눈 맞아 결혼 했다가 남편 뒷바라지에 허덕인다는 둥, 평등가정의 대장정을 열어젖히겠노라는 야심찬 선언과 함께 결혼했는데 그 이후 소식은 아무도 모른다던 둥 여튼 둥둥둥이다.

게다가 뭔 이유 탓인진 모르겠지만 평범한 직장인으로 사는 형들이랑은 가끔 생사확인도 하고 울적할 때면 전화해서 맛난거 사달라고 조르기도 하는데 ‘평범한 직장인’으로 사는 누나들은 연락처도 거의 모른다. 아 물론 너무 씩씩해서 탈일 정도인 누나 한 분도 낙락장송처럼(낙락장송이란 표현이 좀 어색한가? 그렇다고 한송이 국화꽃 처럼 운운은 더 말이 안되지) 떡하니 버티고 계시긴 하다.

에구 글을 마무리 지으려는데 분량이 좀 모자란 듯 싶다. 저자의 말을 약간 인용하며 횡설수설을 마치련다.

“전태일 열사가 분실했을 즈음에, 유신헌법이 등장했을 즈음에, 그때 태어난 아이들, 그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초등학교 때 박정희가 죽었고, 광주가 있었고, 전두환이 새로이 대통령이 되었다.- 중략-대학교 1학년 때 최소한 한 번은 데모에 참여했을 것이다. 그리고 91년에는 괴로웠을 것이다. 4월과 5월, 많은 친구들을 잃었을 때 말이다. 졸업 무렵에 혹은 복학해서 전대협이 한총련으로 변모한 것을 보았고 좀 더 뒤에는 연세대에 갇힌 후배들을 보았고, 서른 살이 내일 모레일 때 아이엠에프를 겪었고, 80년대 학생운동권이 제도적 정치무대에 폼나는 모습으로 입성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중략- 71년생이며 90학번이었던 다인이는 그들 중 하나이다.”
주제어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