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성폭력 사건, 네티즌들의 분노와 행동 그리고 우리들의 ( )
성폭력 사건, 네티즌들의 분노와 행동, 그리고 우리들의 ( )
한 아 름 | 학생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일은 아니다.
올해의 마지막 달에 들려온 밀양 성폭력 사건 소식은 또 한 차례의-어쩌면 지긋지긋한!-분노를 안겨다주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는 종잡을 수 없이 이곳저곳으로 뻗쳤다. 가해 남학생들은 물론이고 그들을 ‘옹호’하기에 급급한 가족과 주변 사람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고려 없이 대수롭지 않게 ‘일’을 처리하는 경찰들. ‘먹잇감’을 찾았다는 듯이 달려드는 언론들.(밀양성폭력 사건과 관련한 한 인터넷 기사는 내가 알고 있는 ‘해결되지 못한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가 쓴 것이었다. 이러한 기사들을 접할 때의 오묘한 기분이란!) 그네들이 토해내는 선정적인 기사들. 그러한 기사들을 보면서 ‘마음대로’ 떠들어대는 사람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성을 상품화하는 결국 ‘여성=성상품’이 되고 마는 이 세상... 마구잡이로 뻗어나가던 분노는 세상에 대한 혐오로 이어졌다. 이 놈의 세상이란.
염세주의자가 되어 세상 한참 한탄했다는 부끄러운 고백을 이렇듯 길게 늘어놓는 이유는, 분노를 모아 행동으로 취하는 대중들의 움직임 덕에 정신 차릴 수 있었다는 말- 이 역시 다소 부끄러운 고백이지만-을 하고 싶어서다.
‘성폭력’이라고 하면 ‘정신병자 혹은 치한에 의해 어쩌다 재수 없게 발생하는 강간’ 정도로 여겨져 오던 우리 사회에서 중고등학생에 의한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성폭력이 발생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일이 경찰과 학부모들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에 의해 봉합되려 한다는 사실은 큰 충격을 가져왔다. 이에 네티즌들은 온라인에서의 행동을 넘어 오프라인의 행동을 조직했다.
12월11일 토요일 광화문 앞에는 밀양성폭력 사건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촛불을 들었다. [디씨 인싸이드]에서 활동하는 네티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남자아이는, 밀양에서 일어난 이번 성폭행 사건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임에 분명하지만 보다 안타까운 일은 이런 일이 그동안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도 많이 발생해왔다는 사실이며 그것을 알아가도록 하자고 말했다. [엽기혹은진실]에서 활동하는 네티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여자아이는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부탁한다고, 이곳에 모여서 이렇게 함께 분노한 사람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이번 일에 대해 잊지 말자고 간절히 호소하기도 하는 등 투박하고 거칠지만 감동적인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소위 ‘인터넷 폐인’, ‘햏자’ 등으로 통칭되어 날밤을 새며 그 닥 쓸데없는 일을 하는 이들로 여겨지던 이들이 오프라인 상의 집단행동을 조직하고 사건해결을 위한 진심을 보이는 모습은 진정 감동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밀양 성폭력 사건을 둘러싸고 그네들이 보인 폭발적인 반응(가해자들의 미니홈피 테러, 신상정보 인터넷에 유포 등)은 사건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 바람직한 모습이라 할 수 없었고, 이에 대해 네티즌에 대한 그간의 인식의 연장선상에 있는 ‘우려’가 존재했던 것이었다.
naver, daum, 싸이월드, 디씨인사이드등에 밀양성폭력 사건의 올바른 해결 촉구와 피해자들을 지지하기 위한 공간을 마련한 네티즌들은 인터넷 선전 및 서명운동과 촛불집회등을 지속하고 있다. 인터넷 선전의 한 예로 ‘나무 키우기’ 운동을 진행하는 모습을 들 수 있겠다. daum 이벤트의 일종인 ‘나무 키우기’는 까페회원들의 단합된 행동으로 순위 안에 들면 지원금을 탈 수 있는 것인데, 밀양성폭력 사건과 관련하여 daum에 까페를 차린 이들은 활동비 마련과 피해학생들에게 지지금 전달을 목표로 하여 ‘나무 키우기’를 하나의 운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인 25일에도 촛불집회를 제안하고 진행했던 이들은 돌아오는 토요일인 신년 첫날 저녁의 집회도 의미있는 모습으로 만들어나가기 위해 고민 중이다.
비록 네티즌들의 반응과 행동을 곧바로 대중들의 그것으로 치환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들의 분노를 정치적인 행동으로 만들어나가고 있는 그네들의 모습은 주목할 만한 것임이 분명하다. 딸가진 부모로서 세상살기 무섭다는 이야기, 딸없는 부모들은 이 사건에 관심을 안두는 세태가 속상하다는 이야기, 가해자들에게 너무나도 경미한 처벌이 가해지는 현행법이 어떻게든 바뀌어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 청소년들의 성의식을 바로잡아야하겠다는 이야기, 결국 이 사회에서 성과 관련하여 큰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 피해학생들의 상처가 모쪼록 치유되길 바란다는 이야기, 그런데 왜 대학가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토록 조용한지 왜 국보법과 호주제 폐지와 관련한 이야기만 있는지 불만이라는 이야기...대중들이 스스로의 입으로 고민을 이야기하고 그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올곧은 방향을 마련해나가는 모습들 말이다. 실지로 네이버의 한 까페에서는 ‘서울경기지역/부산대구경상지역/광주전라지역/대전충청지역/강원제주지역’오프라인 모임을 꾸려내어 지역별 촛불집회를 조직하고 있고, 또한 비단 밀양 성폭력 사건 뿐만 아니라 여타의 청소년 성폭력 사건에 대한 고민들을 심화시키고 성범죄/성폭력에 대한 확장된 합의들을 정립해나가는 등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네티즌들의 움직임을 접하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나만의 모습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여성에 대한 억압의 기원을 인식하고 있는 운동주체라 할지라도, 여성이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준 이러한 충격을 현실 자체를 변화시켜낼 계기로 삼지 못하고 오히려 네티즌들의 역동적인 분노와 행동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밀양 성폭력 사건을 통해 대중들은 솔직하게 분노하고 기민하게 행동하는데, 과연 운동주체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들의 ( )"라는 괄호 안에는 과연 어떠한 말이 들어가야 적절하겠는가? 실질적인 피해자 지원과 사건의 올바른 수사 촉구를 넘어, 분노하는 대중들에게 정치적으로 올곧은 행동양식을 제시하는 것, 정세적으로 창출된 국면을 대중이데올로기 지형을 변화시키는 계기로 삼는 운동은 어떻게 사고되어야 하는가?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순결이데올로기등 기존의 보수적인 이데올로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분노에 대한 비판도, 피해자들의 상처치유를 고려하고 있지 않은 분노표출방식에 대한 비판도, 모두 분노한 대중들과 함께 행동을 취해가는 과정에서 제기되어야 유효할 비판들이라는 사실이다. 입장의 올곧음은 행동의 기민함과 만날 때에야 비로소 쓸모 있어지는 법이다.
물론 운동주체들의 기민하지 못함만이 현재 밀양 성폭력 사건과 관련하여 ‘정작’ 운동주체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원인은 아닐 것이다.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서, 어떠한 운동‘들’이 필요하며 그러한 운동들이 어떻게 서로서로를 견인해 나갈 것인지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내지 못한다면, 돌발적인 상황에 대해 기민하게 대응하는 것, 기존의 운동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운동을 포용함으로써 보다 위력적인 운동을 벌여내는 것 등은 버거운 일일 테다. 한 네티즌이 올린 이야기 -왜 동아리 방에서는 지금 모든 사람이 관심 있는 밀양성폭력 사건과 관련해서는 이야기되지 않고 늘 국가보안법 철폐만 이야기 되는가 -가 담고 있는 일말의 진실에 대해 고민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밀양 성폭력 사건, 그리고 그에 대한 네티즌의 분노와 행동은 우리에게 현명하고 민첩해 질 것을 촉구할 뿐 아니라 운동의 근본적인 부분까지 심사숙고하도록 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을 반대하는 의미에서의 반성폭력 운동은 어떻게 계속될 것인가. 성(性)의 상품화,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 대한 반대는 궁극적으로 자유로운 성(性)적 교통, 여성의 섹슈얼리티(sexuality)의 발현의 문제와 어떻게 조우할 것인가. 그리하여 여남 간의 관계의 전화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그것들은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운동과 어떻게 근본적으로 관계 맺을 것인가.
"밀양 성폭력 사건, 네티즌의 분노와 행동, 그리고 우리들의 ( )"의 괄호 안에 들어갈 적절한 말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진지한 모색과 때를 놓치지 않는 행동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 같다.
<참고>
**** 밀양 집단성폭행 사건에 관련한 네티즌 요구문
이번의 밀양집단성폭행 사건은 불과 14살 남짓 밖에 안 된 어린 여중생들을 상대로, 현재 밝혀진 것만으로도 무려 41명에 달하는(직접가담의 혐의가 확인된 범인은 현재 12명) 용의자들이 일 년 간에 걸쳐 집단적-조직적으로 행했다는 점에서, 성범죄의 간악한 수법이 청소년에게까지 퍼져있을 정도로 성범죄의 수위가 현재 극도로 위험한 상태에 달해있음을 알려준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또한 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피해자에 대한 비인권적 수사관행과 허술한 신상보호, 그리고 가해자 측의 죄의식 없는 시대착오적인 남성절대우월주의의 사고방식과 언론의 선정적이고 왜곡된 보도 등은, 이 사건 자체의 충격과 함께 대한민국 성범죄가 가지고 있는 총체적인 심각한 문제까지 모두 보여주는 것이기에, 밀양집단성폭행 사건은 그저 일례의 사건으로 간과할 수 없는, 이제는 성범죄에 대해서 전면적으로 달라져야할 때임을, 행동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때임을 통감하게도 하는 사건입니다.
나아가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성범죄 발생률은 세계 선두권이나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에게 협박을 받고 경찰에게 폭언을 들어야 하며 미미한 처벌로 인해 동일 범인에 의한 중복피해자가 발생하는 일이 대한민국의 흔한 상황임을 네티즌들은 절실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땅의 수많은 성범죄 피해자들의 무너진 인권이 곧 우리 모두의 보호받지 못하는 인권 상황이란 깨달음과, 또한 누구나 언제고 성범죄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될 수 있는 대한민국 내 만연하는 성범죄에 대한 절박한 현실 인식에서 발로하여 우리 대한민국의 네티즌들은 다음과 같은 대책을 요구합니다.
첫째, 밀양 집단강간 사건의 철저한 조사와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
(-- 밀양사건의 경우 직접 강간에 참여한 가해자 뿐 아니라 사건을 방조하거나 묵인한 간접가담자까지 처벌하라. 또한 범행의 악랄함을 보아 일반 소년범으로 가볍게 처벌해서는 안된다. 또한 가만두지 않겠다며 피해자를 협박한 가해자의 가족 등에 대해서도 엄중 처벌할 것.)
둘째, 경찰의 강압적이고 원시적인 수사방식 탈피와 피해자의 인권 존중.
(-- 피해자에게 폭언을 한 경관에게 실질적인 중징계를 하고 자체감사로 폭언 뿐 아니라 비공개원칙과 피해자권리 원칙을 어긴 여타의 인권침해 여부를 철저히 가려내 징계, 보도하라. 성폭력 전담 여경기동대를 설치하고 요청 시 부족한 인원을 충당할 수 있도록 태세를 보완.)
셋째, 성폭력 범죄 가해자의 처벌에 관한 특별볍[가칭] 제정과 현행법 개정.
(-- 성폭력범의 신상공개 등 미국 메건법에 준하는 재발방지와 중복범행에 대한 예방법을 마련하라. 집단강간, 강도강간, 어린이나 지체부자유 여성에 대한 범행의 경우 범인 신원에 대한 보도 자유와 종신형 이상의 법제 마련. 형량의 상한선이 아닌 형량의 하한선 지정.)
넷째, 언론매체의 정확하고 옳바른 보도.
(-- 피해자의 신상을 거론하는 일체의 선정적인 보도를 중단하고 사건관련의 유사범죄나 선진국 처벌관례 등을 추가 보도하는 심층적인 보도를 하라. )
한 아 름 | 학생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일은 아니다.
올해의 마지막 달에 들려온 밀양 성폭력 사건 소식은 또 한 차례의-어쩌면 지긋지긋한!-분노를 안겨다주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는 종잡을 수 없이 이곳저곳으로 뻗쳤다. 가해 남학생들은 물론이고 그들을 ‘옹호’하기에 급급한 가족과 주변 사람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고려 없이 대수롭지 않게 ‘일’을 처리하는 경찰들. ‘먹잇감’을 찾았다는 듯이 달려드는 언론들.(밀양성폭력 사건과 관련한 한 인터넷 기사는 내가 알고 있는 ‘해결되지 못한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가 쓴 것이었다. 이러한 기사들을 접할 때의 오묘한 기분이란!) 그네들이 토해내는 선정적인 기사들. 그러한 기사들을 보면서 ‘마음대로’ 떠들어대는 사람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성을 상품화하는 결국 ‘여성=성상품’이 되고 마는 이 세상... 마구잡이로 뻗어나가던 분노는 세상에 대한 혐오로 이어졌다. 이 놈의 세상이란.
염세주의자가 되어 세상 한참 한탄했다는 부끄러운 고백을 이렇듯 길게 늘어놓는 이유는, 분노를 모아 행동으로 취하는 대중들의 움직임 덕에 정신 차릴 수 있었다는 말- 이 역시 다소 부끄러운 고백이지만-을 하고 싶어서다.
‘성폭력’이라고 하면 ‘정신병자 혹은 치한에 의해 어쩌다 재수 없게 발생하는 강간’ 정도로 여겨져 오던 우리 사회에서 중고등학생에 의한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성폭력이 발생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일이 경찰과 학부모들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에 의해 봉합되려 한다는 사실은 큰 충격을 가져왔다. 이에 네티즌들은 온라인에서의 행동을 넘어 오프라인의 행동을 조직했다.
12월11일 토요일 광화문 앞에는 밀양성폭력 사건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촛불을 들었다. [디씨 인싸이드]에서 활동하는 네티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남자아이는, 밀양에서 일어난 이번 성폭행 사건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임에 분명하지만 보다 안타까운 일은 이런 일이 그동안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도 많이 발생해왔다는 사실이며 그것을 알아가도록 하자고 말했다. [엽기혹은진실]에서 활동하는 네티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여자아이는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부탁한다고, 이곳에 모여서 이렇게 함께 분노한 사람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이번 일에 대해 잊지 말자고 간절히 호소하기도 하는 등 투박하고 거칠지만 감동적인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소위 ‘인터넷 폐인’, ‘햏자’ 등으로 통칭되어 날밤을 새며 그 닥 쓸데없는 일을 하는 이들로 여겨지던 이들이 오프라인 상의 집단행동을 조직하고 사건해결을 위한 진심을 보이는 모습은 진정 감동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밀양 성폭력 사건을 둘러싸고 그네들이 보인 폭발적인 반응(가해자들의 미니홈피 테러, 신상정보 인터넷에 유포 등)은 사건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 바람직한 모습이라 할 수 없었고, 이에 대해 네티즌에 대한 그간의 인식의 연장선상에 있는 ‘우려’가 존재했던 것이었다.
naver, daum, 싸이월드, 디씨인사이드등에 밀양성폭력 사건의 올바른 해결 촉구와 피해자들을 지지하기 위한 공간을 마련한 네티즌들은 인터넷 선전 및 서명운동과 촛불집회등을 지속하고 있다. 인터넷 선전의 한 예로 ‘나무 키우기’ 운동을 진행하는 모습을 들 수 있겠다. daum 이벤트의 일종인 ‘나무 키우기’는 까페회원들의 단합된 행동으로 순위 안에 들면 지원금을 탈 수 있는 것인데, 밀양성폭력 사건과 관련하여 daum에 까페를 차린 이들은 활동비 마련과 피해학생들에게 지지금 전달을 목표로 하여 ‘나무 키우기’를 하나의 운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인 25일에도 촛불집회를 제안하고 진행했던 이들은 돌아오는 토요일인 신년 첫날 저녁의 집회도 의미있는 모습으로 만들어나가기 위해 고민 중이다.
비록 네티즌들의 반응과 행동을 곧바로 대중들의 그것으로 치환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들의 분노를 정치적인 행동으로 만들어나가고 있는 그네들의 모습은 주목할 만한 것임이 분명하다. 딸가진 부모로서 세상살기 무섭다는 이야기, 딸없는 부모들은 이 사건에 관심을 안두는 세태가 속상하다는 이야기, 가해자들에게 너무나도 경미한 처벌이 가해지는 현행법이 어떻게든 바뀌어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 청소년들의 성의식을 바로잡아야하겠다는 이야기, 결국 이 사회에서 성과 관련하여 큰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 피해학생들의 상처가 모쪼록 치유되길 바란다는 이야기, 그런데 왜 대학가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토록 조용한지 왜 국보법과 호주제 폐지와 관련한 이야기만 있는지 불만이라는 이야기...대중들이 스스로의 입으로 고민을 이야기하고 그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올곧은 방향을 마련해나가는 모습들 말이다. 실지로 네이버의 한 까페에서는 ‘서울경기지역/부산대구경상지역/광주전라지역/대전충청지역/강원제주지역’오프라인 모임을 꾸려내어 지역별 촛불집회를 조직하고 있고, 또한 비단 밀양 성폭력 사건 뿐만 아니라 여타의 청소년 성폭력 사건에 대한 고민들을 심화시키고 성범죄/성폭력에 대한 확장된 합의들을 정립해나가는 등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네티즌들의 움직임을 접하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나만의 모습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여성에 대한 억압의 기원을 인식하고 있는 운동주체라 할지라도, 여성이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준 이러한 충격을 현실 자체를 변화시켜낼 계기로 삼지 못하고 오히려 네티즌들의 역동적인 분노와 행동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밀양 성폭력 사건을 통해 대중들은 솔직하게 분노하고 기민하게 행동하는데, 과연 운동주체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들의 ( )"라는 괄호 안에는 과연 어떠한 말이 들어가야 적절하겠는가? 실질적인 피해자 지원과 사건의 올바른 수사 촉구를 넘어, 분노하는 대중들에게 정치적으로 올곧은 행동양식을 제시하는 것, 정세적으로 창출된 국면을 대중이데올로기 지형을 변화시키는 계기로 삼는 운동은 어떻게 사고되어야 하는가?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순결이데올로기등 기존의 보수적인 이데올로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분노에 대한 비판도, 피해자들의 상처치유를 고려하고 있지 않은 분노표출방식에 대한 비판도, 모두 분노한 대중들과 함께 행동을 취해가는 과정에서 제기되어야 유효할 비판들이라는 사실이다. 입장의 올곧음은 행동의 기민함과 만날 때에야 비로소 쓸모 있어지는 법이다.
물론 운동주체들의 기민하지 못함만이 현재 밀양 성폭력 사건과 관련하여 ‘정작’ 운동주체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원인은 아닐 것이다.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서, 어떠한 운동‘들’이 필요하며 그러한 운동들이 어떻게 서로서로를 견인해 나갈 것인지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내지 못한다면, 돌발적인 상황에 대해 기민하게 대응하는 것, 기존의 운동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운동을 포용함으로써 보다 위력적인 운동을 벌여내는 것 등은 버거운 일일 테다. 한 네티즌이 올린 이야기 -왜 동아리 방에서는 지금 모든 사람이 관심 있는 밀양성폭력 사건과 관련해서는 이야기되지 않고 늘 국가보안법 철폐만 이야기 되는가 -가 담고 있는 일말의 진실에 대해 고민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밀양 성폭력 사건, 그리고 그에 대한 네티즌의 분노와 행동은 우리에게 현명하고 민첩해 질 것을 촉구할 뿐 아니라 운동의 근본적인 부분까지 심사숙고하도록 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을 반대하는 의미에서의 반성폭력 운동은 어떻게 계속될 것인가. 성(性)의 상품화,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 대한 반대는 궁극적으로 자유로운 성(性)적 교통, 여성의 섹슈얼리티(sexuality)의 발현의 문제와 어떻게 조우할 것인가. 그리하여 여남 간의 관계의 전화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그것들은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운동과 어떻게 근본적으로 관계 맺을 것인가.
"밀양 성폭력 사건, 네티즌의 분노와 행동, 그리고 우리들의 ( )"의 괄호 안에 들어갈 적절한 말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진지한 모색과 때를 놓치지 않는 행동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 같다.
<참고>
**** 밀양 집단성폭행 사건에 관련한 네티즌 요구문
이번의 밀양집단성폭행 사건은 불과 14살 남짓 밖에 안 된 어린 여중생들을 상대로, 현재 밝혀진 것만으로도 무려 41명에 달하는(직접가담의 혐의가 확인된 범인은 현재 12명) 용의자들이 일 년 간에 걸쳐 집단적-조직적으로 행했다는 점에서, 성범죄의 간악한 수법이 청소년에게까지 퍼져있을 정도로 성범죄의 수위가 현재 극도로 위험한 상태에 달해있음을 알려준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또한 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피해자에 대한 비인권적 수사관행과 허술한 신상보호, 그리고 가해자 측의 죄의식 없는 시대착오적인 남성절대우월주의의 사고방식과 언론의 선정적이고 왜곡된 보도 등은, 이 사건 자체의 충격과 함께 대한민국 성범죄가 가지고 있는 총체적인 심각한 문제까지 모두 보여주는 것이기에, 밀양집단성폭행 사건은 그저 일례의 사건으로 간과할 수 없는, 이제는 성범죄에 대해서 전면적으로 달라져야할 때임을, 행동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때임을 통감하게도 하는 사건입니다.
나아가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성범죄 발생률은 세계 선두권이나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에게 협박을 받고 경찰에게 폭언을 들어야 하며 미미한 처벌로 인해 동일 범인에 의한 중복피해자가 발생하는 일이 대한민국의 흔한 상황임을 네티즌들은 절실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땅의 수많은 성범죄 피해자들의 무너진 인권이 곧 우리 모두의 보호받지 못하는 인권 상황이란 깨달음과, 또한 누구나 언제고 성범죄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될 수 있는 대한민국 내 만연하는 성범죄에 대한 절박한 현실 인식에서 발로하여 우리 대한민국의 네티즌들은 다음과 같은 대책을 요구합니다.
첫째, 밀양 집단강간 사건의 철저한 조사와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
(-- 밀양사건의 경우 직접 강간에 참여한 가해자 뿐 아니라 사건을 방조하거나 묵인한 간접가담자까지 처벌하라. 또한 범행의 악랄함을 보아 일반 소년범으로 가볍게 처벌해서는 안된다. 또한 가만두지 않겠다며 피해자를 협박한 가해자의 가족 등에 대해서도 엄중 처벌할 것.)
둘째, 경찰의 강압적이고 원시적인 수사방식 탈피와 피해자의 인권 존중.
(-- 피해자에게 폭언을 한 경관에게 실질적인 중징계를 하고 자체감사로 폭언 뿐 아니라 비공개원칙과 피해자권리 원칙을 어긴 여타의 인권침해 여부를 철저히 가려내 징계, 보도하라. 성폭력 전담 여경기동대를 설치하고 요청 시 부족한 인원을 충당할 수 있도록 태세를 보완.)
셋째, 성폭력 범죄 가해자의 처벌에 관한 특별볍[가칭] 제정과 현행법 개정.
(-- 성폭력범의 신상공개 등 미국 메건법에 준하는 재발방지와 중복범행에 대한 예방법을 마련하라. 집단강간, 강도강간, 어린이나 지체부자유 여성에 대한 범행의 경우 범인 신원에 대한 보도 자유와 종신형 이상의 법제 마련. 형량의 상한선이 아닌 형량의 하한선 지정.)
넷째, 언론매체의 정확하고 옳바른 보도.
(-- 피해자의 신상을 거론하는 일체의 선정적인 보도를 중단하고 사건관련의 유사범죄나 선진국 처벌관례 등을 추가 보도하는 심층적인 보도를 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