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8 외채탕감 계획의 기만성
영국 스코틀랜드 글렌이글스에서 7월 6일부터 8일까지 열린 G8(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러시아) 정상회담이 막을 내렸다. 런던 테러사건이 발생해 언론의 초점에서 다소 멀어지긴 했지만 이번 정상회담의 주 의제는 아프리카의 빈곤과 기후변화였다. 이에 따라 회담에 참석한 8개국 정상들이 서명한 글렌이글스 공동성명도 '기후변화, 에너지 그리고 지속가능한 발전'과 '아프리카'로 나뉘어 정리되어 있다.1) 이번 회담에서는 기후변화와 관련해서는 별 진전이 없었고, 아프리카 등 가난한 나라들의 외채탕감에 대해서는 일정한 성과가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는 성과가 있었다는 외채탕감의 내용이 무엇이고, 그것이 진정한 성과라 할만한 것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그리고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운동의 일환으로서 외채탕감운동이 어떻게 전개되어야 할지를 알아보기로 하자.
외채탕감운동
외채탕감 요구는 1996년 G7 정상회담 이후 사회운동단체들의 시위의 단골메뉴였다. 이번에도 '빈곤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하자'(Make Poverty History, MPH)) 조직위 주최 에딘버러 시위에 20만 이상이 모여들었는데 일부에서는 2002년 제노아 시위보다 컸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가난한 나라의 외채를 탕감하고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를 늘리라고 정상회담에 압력을 넣기 위해 G8 국가들의 주요 8개 도시와 아프리카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를 이어가면서 진행한 마라톤 공연 '라이브 에잇'(Live 8)2)에도 많은 사람들이 직접적으로(런던 20만, 미국 필라델피아 100만 등 9개 도시 150만) 혹은 간접적으로(전세계 20-30억명 텔레비전 시청) 참여하였다.
외채탕감운동은 국제 채권자들이 1996년 과중채무빈국(HIPC) 외채탕감 방안을 논의하기로 동의하면서 활성화되는데, 1998년 11월 17일 로마에서 38개국 '쥬빌리 2000' 단체들과 12개 국제조직이 모여 최초의 '쥬빌리 2000' 국제회의를 열었다. 쥬빌리는 성서에서 유래하는데 죄수를 풀어주고 빚을 탕감해주는, 50년마다 돌아오는 '기쁜 해', 즉 희년(禧年)이다. 단어에서 보다시피 이 쥬빌리 2000 운동은 선진국 종교계에서 시작한 시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운동이었다. 1998년 회의에서는 상환불가능한 외채, 원금을 실질적으로 이미 상환한 외채, 부적절하게 기획된 정책과 프로젝트로 인한 외채, 부정한 외채와 독재정권에 의해 발생한 외채를 2000년까지 탕감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리고 쥬빌리 2000 운동은 1999년 쾰른 G7 정상회담을 겨냥하여 수만명을 동원하여 시위를 벌였고, 이에 호응하여(?) G7회의에서는 HIPC의 2000억불에 해당하는 외채 중에서 700억불을 탕감한다고 결정하였다.
그런데 이런 운동 과정에서 외채탕감운동이 쥬빌리 2000(J2)과 쥬빌리 사우쓰(JS)로 나뉘어 지는데 그 차이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우선 J2는 북반구 국가들에 압력을 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북반구에서 주도하고 있는 운동인 반면, JS는 남반구 국가의 시민사회에 외채문제를 환기시키고 남쪽 국가들에 대해 압력을 행사하는 운동이다. 둘째, J2는 외채의 규모를 축소시키려는 목적에서 단기간 진행되는 운동인 반면, JS는 외채를 고질적인 문제로 만드는 구조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장기에 걸친 운동이다. 그리고 JS는 G7회의에서 결정되고 IMF/세계은행에 의해 승인된 HIPC 외채탕감방안을 거부하고 모든 개도국의 외채 탕감을 옹호한다.
외채탕감의 규모는?
이번 회담에서 탕감하기로 한 외채는 18개국(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 베냉 등 14개국, 중남미 볼리비아, 니카라과 등 4개국)이 국제화폐기금(IMF), 세계은행, 아프리카개발기금에 진 빚 400억불이다. 이들 국가는 1996년에 시작되고 1999년에 수정된 '과중채무빈국 방안'3)에 의해 '종결시점'에 도달한 과중채무빈국이다. 이외에도 '결정시점'에 도달한 카메룬 차드 등 9개국과 라오스 미얀마 수단 등 '결정시점'에 도달하지 않은 11개국도 '종결시점'에 이르면 외채탕감을 받게 되는데 그 규모가 각각 110억 달러와 40억 달러로 합해서 150억 달러가 된다. 이 금액과 400억 달러를 합하면 총 550억 달러에 이른다. 이 정도 규모가 얼마나 미미한 규모인지 각종 통계치와 비교를 해 보기로 하자.4)
첫째, HIPC 38개국 총 외채는 현재 1,670억불이고, 이 중 1,370억불이 공적 기관에 대한 채무다 (550억 달러 이외의 공적 외채는 다른 기관, 예를 들어 아메리카개발은행이나 쌍무적 채권기관에 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는 이들 나라가 550억 달러를 다 탕감 받는다 해도 여전히 1,000억 달러 이상의 외채를 지고 있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쥬빌리 법5)이 다자기구 외채 100% 탕감이 필요하다고 꼽은 50개국이 지고 있는 외채는 3,830억 달러이다. 이 중 2950억불이 공적 채권기관에 대한 외채이고, IMF와 세계은행에만 진 외채가 820억불이다.
셋째, 영국 원조기관들이 '새천년 발전 목표'(MDGs)를 달성하는 첫 단계로서 외채탕감이 필요하다고 꼽은 62개 저소득 국가들이 지고 있는 외채는 5000억불 이상이고 이들 중 4,460억 달러를 공적 채무기관에 지고 있고, 아이엠에프와 세계은행에게만 지고 있는 빚이 1,400억불이다.
넷째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국가들의 총외채는 2080억불이다.
다섯째, 모든 개도국의 총외채는 2조 4천억달러이다.6)
여섯째, G8 국가들이 매년 군사예산으로 사용하는 규모에 비춰보자. 예를 들어 2004년 미국의 군사예산은 4,000억 달러이고, 러시아를 제외한 다른 6개국의 군사예산은 1,914억 달러였다. 그런데 외채 탕감은 향후 몇 십 년에 걸쳐 진행되는 것이고 따라서 매년 탕감되는 액수는 불과 10-20억불뿐이다. 그 규모가 얼마나 작은지 확연히 드러난다. 참고로 G8 국가들은 남반구 국가들의 쌍무적 다자적 외채에 대한 이자로만 매년 미화 230억달러를 거둬들인다.
결정적으로는 벨기에의 '제3세계 외채탕감위원회'의 다미엔 밀레와 에릭 뚜상에 의하면 이번에 탕감하기로 한 18개국의 400억달러 외채는 이미 악성외채여서 시장에서는 대폭 할인되어 평가되는데 미국의 방식(92% 할인율 적용)에 의하면 32억 달러에 불과하다고 한다.
다른 문제점들
이번 G8 외채탕감방안은 그 규모가 매우 적다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가장 먼저 지적되어야 할 것은 외채탕감 조건이다. 앞에서 거론한 것처럼 HIPC 방안은 외채탕감을 받기 위해서 '결정시점'과 '종결시점'에 도달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각국은 IMF와 세계은행이 승인하는 '빈곤경감 전략문서'(PRSP)를 마련해야하고, IMF의 '빈곤경감 및 성장촉진책(PRGF)과 같은 대출협약을 포함해서 여타 IMF와 세계은행의 대출협약에 있는 조건들에 순응해야 한다. 이런 PRSP와 PRGF에 담겨있는 조건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교육, 보건 같은 사회적 비용을 줄여 재정적자를 감축할 것, 전력, 전기 전화, 물, 의료 등을 민영화할 것, 인플레이션을 낮게 유지할 것, 외국인 투자에 대한 장벽을 제거할 것, 공공부문 규모를 줄이고 노조조직을 어렵게 만들 것, 외화획득을 위해 수출(자연자원 수출을 포함하여)을 늘릴 것, 무역과 투자를 차별 없이 자유화할 것, 생활필수품에 대한 보조금을 제거할 것 등이다.
다음으로는 이번에 탕감조치를 받았고 앞으로 받을 예정이 38개국은 외채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남반부 국가들 160개국 중에서 극히 일부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백 번 양보해서 매우 긴급한 나라들 외채를 탕감한다 하더라도 쓰나미 피해국이나 아이티 같은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의 외채가 탕감이 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다른 중요한 채권기관들이 포함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아메리카 개발은행과 아시아 개발은행이 그것들이다. 외채를 탕감 받게 되는 4개 중남미 국가들(볼리비아 가이아나 온두라스 니카라과)은 아메리카 개발은행에 이후 5개년에 걸쳐 약 14억불의 외채원리금 상환을 해야 할 것이다. 라오스는 HIPC에 있는 유일한 아시아 국가인데, 부탄, 베트남,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필리핀 등 다른 아시아 국가도 심각하게 외채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주로 아시아 개발은행에 외채를 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쥬빌리 사우쓰 등 거의 모든 외채탕감운동단체들이 요구해 온 증오스럽고 불법적인 성격의 외채는 무시되었다. 예를 들면 남미 독재국가, 남아공의 인종차별국가, 필리핀의 마르코스 치하의 외채 등이 그것들이다.
글을 맺으며
앞에서 보았다시피 이번 G8 회담에서의 외채탕감은 그 규모가 미미할 뿐만 아니라 이미 기진맥진하여 외채를 갚을 수 없는 나라들에게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세계화로의 편입을 조건으로 탕감한 것이다. 또한 지난 멕시코 칸쿤에서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이 실패할 때 베넹, 부르키나파소 등 서아프리카 4개국이 문제삼은 면화보조금도 한 원인이 되었는데 이번 외채탕감이 12월 홍콩 WTO 협상을 앞두고 아프리카 빈국들을 입막음하자는 차원에서 이루어지지는 않았을까? 아무튼 이번 외채탕감은 중심부 국가의 이익과 초민족적 자본의 이익을 조금도 침해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한편 '라이브 8' 공연 주최측과 거대 비정부기구들이 청원식 운동을 펼치면서 전쟁과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통한 제국주의적 지배의 당사자인 미국, 영국 등 G8 지배세력에 단호히 맞서지 않은 것은 이들의 한계라 할지라도, 이에 부지불식간에 끌려 들어간 신자유주의 반대운동세력 또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안세계화 운동단체 AIDC의 말을 들어보자.
"G8 정상회담의 결과는 세계화의 이면인 전쟁과 군사주의에서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면서 세계화에 인간적인 면모로 채색하려고 하는 자들에게, 사회정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우리들이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포섭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전략을 다시 검토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우리는 G8과 함께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제하는 우리 정부들에 대항해 싸우는 동시에 G8과 그들이 지도하는 WTO, 아이엠에프, 세계은행 등의 정당성을 허무는 우리의 노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불행하게도 MPH의 지배적인 추진주체는 반세계화 운동, 세계사회포럼, 세계 곳곳의 대중적인 사회운동들의 어마어마한 성장을 가져다준 이런 전략에 등을 돌렸다. 유명인사들, 업계거물 및 조언자들은 실천, 조직화 및 저항을 대체할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이 이런 교훈을 얻기를 바란다."7)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이를 극복하겠다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개도국 발전, 성장, 빈곤퇴치 등 어느 것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이제는 전쟁을 병행하고 있다. 제3세계 외채탕감운동이 애초에 외채를 구조적인 문제로 본 바에야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을 통해 남반구 민중에 대한 지배와 공격을 강화하는 세계의 지배세력들에게 청원하는 방식의 운동에 이끌리지 말고8) 일국적 세계적 차원의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을 통한 변혁운동과 결합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이번 G8 회담 및 이에 대한 대응의 교훈이 아닐까 한다.
1) 원문은 http://www.fco.gov.uk/files/kfile/postg8_gleneagles_communique.pdf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2) 약 20년 전에도 '라이브 에이드'(Live Aid)를 기획했던 아일랜드 출신 록가수 밥 겔도프가 기획한 이 공연에는 엘튼 존, 폴 매카트니, 마돈나, U2 등 유명한 대중가수들과 넬슨 만델라 등이 출연했다. 영어로 '8'은 '에잇'인데 '원조'를 뜻하는 'aid(에이드)'와 발음이 유사하다. '라이브 8'은 '라이브 에이드'(원조를 위한 라이브 공연)이기도 한 것이다. 본문으로
본문으로
4) http://www.jubilieeusa.org/press_room/firststep.pdf와 http://www.jubileesouth.org/upload1/jsstatementforg8.pdf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5) 2005년 3월 미국 하원에 제출된 법안으로 정식 명칭은 ''2005년 정의, 외채탕감 이해, 그리고 형평에 관한 법률'(Justice and Understanding By International Loan Elimination and Equity Act of 2005')이다. 6월 현재 75명의 양당 의원이 발기인으로 되어 있다. 본문으로
6) 80년대 후반 남미 외채위기 이후 외채조정방안으로 등장한 베이커플랜은 외채를 주식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외채문제 폭발을 지연시켰는데 이로 인해 반주변-주변부의 외채는 주식형태로 많이 바뀐 상태이다(외채-주식 전환). 즉 외채규모는 현재 초민족적 자본의 지배로 인해 반주변-주변부가 처한 문제의 실상을 다 보여주지는 못한다. 특히 이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한국 등 반주변부에서 그렇다. 이런 나라에서는 초민족적 자본의 이탈(capital flight)로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이 붕괴하면서 위기가 도래하기도 한다. 본문으로 본문으로
7) http://www.aidc.org.za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8) 이를 위해서는 청원방식의 외채탕감운동을 재고해 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HIPC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위기와 비극의 주된 요인을 구조적 요인, 즉 식민지이전 및 식민지 유산, 미국 주도 세계자본주의의 수익성 및 정당성 위기와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실질금리 인상을 통한 개도국과의 국제 화폐자본 유치 경쟁, 제조업 제품 수입증대를 통한 경상수지 적자 누적, 동아시아 원조 및 역개방정책)으로 보는 세계체계론자 아리기는 아프리카 각국 정부가 70년대 중반 이후 위기를 근본적으로 회피할 수는 없었다 하더라도 위기의 영향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중 하나가 세계은행이 지시한 조건으로 채무재조정을 하기 보다는 디폴트(지불정지)를 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디폴트는 단기적으로는 위기를 낳았을지 모르겠으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한 파괴적인 영향은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지오반니 아리기, 〈아프리카의 위기 : 세계체계적인 그리고 지역적인 양상들〉, 《사회진보연대》, 2002년 11월호, 2003년 1-2월호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외채탕감운동
외채탕감 요구는 1996년 G7 정상회담 이후 사회운동단체들의 시위의 단골메뉴였다. 이번에도 '빈곤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하자'(Make Poverty History, MPH)) 조직위 주최 에딘버러 시위에 20만 이상이 모여들었는데 일부에서는 2002년 제노아 시위보다 컸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가난한 나라의 외채를 탕감하고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를 늘리라고 정상회담에 압력을 넣기 위해 G8 국가들의 주요 8개 도시와 아프리카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를 이어가면서 진행한 마라톤 공연 '라이브 에잇'(Live 8)2)에도 많은 사람들이 직접적으로(런던 20만, 미국 필라델피아 100만 등 9개 도시 150만) 혹은 간접적으로(전세계 20-30억명 텔레비전 시청) 참여하였다.
외채탕감운동은 국제 채권자들이 1996년 과중채무빈국(HIPC) 외채탕감 방안을 논의하기로 동의하면서 활성화되는데, 1998년 11월 17일 로마에서 38개국 '쥬빌리 2000' 단체들과 12개 국제조직이 모여 최초의 '쥬빌리 2000' 국제회의를 열었다. 쥬빌리는 성서에서 유래하는데 죄수를 풀어주고 빚을 탕감해주는, 50년마다 돌아오는 '기쁜 해', 즉 희년(禧年)이다. 단어에서 보다시피 이 쥬빌리 2000 운동은 선진국 종교계에서 시작한 시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운동이었다. 1998년 회의에서는 상환불가능한 외채, 원금을 실질적으로 이미 상환한 외채, 부적절하게 기획된 정책과 프로젝트로 인한 외채, 부정한 외채와 독재정권에 의해 발생한 외채를 2000년까지 탕감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리고 쥬빌리 2000 운동은 1999년 쾰른 G7 정상회담을 겨냥하여 수만명을 동원하여 시위를 벌였고, 이에 호응하여(?) G7회의에서는 HIPC의 2000억불에 해당하는 외채 중에서 700억불을 탕감한다고 결정하였다.
그런데 이런 운동 과정에서 외채탕감운동이 쥬빌리 2000(J2)과 쥬빌리 사우쓰(JS)로 나뉘어 지는데 그 차이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우선 J2는 북반구 국가들에 압력을 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북반구에서 주도하고 있는 운동인 반면, JS는 남반구 국가의 시민사회에 외채문제를 환기시키고 남쪽 국가들에 대해 압력을 행사하는 운동이다. 둘째, J2는 외채의 규모를 축소시키려는 목적에서 단기간 진행되는 운동인 반면, JS는 외채를 고질적인 문제로 만드는 구조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장기에 걸친 운동이다. 그리고 JS는 G7회의에서 결정되고 IMF/세계은행에 의해 승인된 HIPC 외채탕감방안을 거부하고 모든 개도국의 외채 탕감을 옹호한다.
외채탕감의 규모는?
이번 회담에서 탕감하기로 한 외채는 18개국(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 베냉 등 14개국, 중남미 볼리비아, 니카라과 등 4개국)이 국제화폐기금(IMF), 세계은행, 아프리카개발기금에 진 빚 400억불이다. 이들 국가는 1996년에 시작되고 1999년에 수정된 '과중채무빈국 방안'3)에 의해 '종결시점'에 도달한 과중채무빈국이다. 이외에도 '결정시점'에 도달한 카메룬 차드 등 9개국과 라오스 미얀마 수단 등 '결정시점'에 도달하지 않은 11개국도 '종결시점'에 이르면 외채탕감을 받게 되는데 그 규모가 각각 110억 달러와 40억 달러로 합해서 150억 달러가 된다. 이 금액과 400억 달러를 합하면 총 550억 달러에 이른다. 이 정도 규모가 얼마나 미미한 규모인지 각종 통계치와 비교를 해 보기로 하자.4)
첫째, HIPC 38개국 총 외채는 현재 1,670억불이고, 이 중 1,370억불이 공적 기관에 대한 채무다 (550억 달러 이외의 공적 외채는 다른 기관, 예를 들어 아메리카개발은행이나 쌍무적 채권기관에 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는 이들 나라가 550억 달러를 다 탕감 받는다 해도 여전히 1,000억 달러 이상의 외채를 지고 있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쥬빌리 법5)이 다자기구 외채 100% 탕감이 필요하다고 꼽은 50개국이 지고 있는 외채는 3,830억 달러이다. 이 중 2950억불이 공적 채권기관에 대한 외채이고, IMF와 세계은행에만 진 외채가 820억불이다.
셋째, 영국 원조기관들이 '새천년 발전 목표'(MDGs)를 달성하는 첫 단계로서 외채탕감이 필요하다고 꼽은 62개 저소득 국가들이 지고 있는 외채는 5000억불 이상이고 이들 중 4,460억 달러를 공적 채무기관에 지고 있고, 아이엠에프와 세계은행에게만 지고 있는 빚이 1,400억불이다.
넷째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국가들의 총외채는 2080억불이다.
다섯째, 모든 개도국의 총외채는 2조 4천억달러이다.6)
여섯째, G8 국가들이 매년 군사예산으로 사용하는 규모에 비춰보자. 예를 들어 2004년 미국의 군사예산은 4,000억 달러이고, 러시아를 제외한 다른 6개국의 군사예산은 1,914억 달러였다. 그런데 외채 탕감은 향후 몇 십 년에 걸쳐 진행되는 것이고 따라서 매년 탕감되는 액수는 불과 10-20억불뿐이다. 그 규모가 얼마나 작은지 확연히 드러난다. 참고로 G8 국가들은 남반구 국가들의 쌍무적 다자적 외채에 대한 이자로만 매년 미화 230억달러를 거둬들인다.
결정적으로는 벨기에의 '제3세계 외채탕감위원회'의 다미엔 밀레와 에릭 뚜상에 의하면 이번에 탕감하기로 한 18개국의 400억달러 외채는 이미 악성외채여서 시장에서는 대폭 할인되어 평가되는데 미국의 방식(92% 할인율 적용)에 의하면 32억 달러에 불과하다고 한다.
다른 문제점들
이번 G8 외채탕감방안은 그 규모가 매우 적다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가장 먼저 지적되어야 할 것은 외채탕감 조건이다. 앞에서 거론한 것처럼 HIPC 방안은 외채탕감을 받기 위해서 '결정시점'과 '종결시점'에 도달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각국은 IMF와 세계은행이 승인하는 '빈곤경감 전략문서'(PRSP)를 마련해야하고, IMF의 '빈곤경감 및 성장촉진책(PRGF)과 같은 대출협약을 포함해서 여타 IMF와 세계은행의 대출협약에 있는 조건들에 순응해야 한다. 이런 PRSP와 PRGF에 담겨있는 조건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교육, 보건 같은 사회적 비용을 줄여 재정적자를 감축할 것, 전력, 전기 전화, 물, 의료 등을 민영화할 것, 인플레이션을 낮게 유지할 것, 외국인 투자에 대한 장벽을 제거할 것, 공공부문 규모를 줄이고 노조조직을 어렵게 만들 것, 외화획득을 위해 수출(자연자원 수출을 포함하여)을 늘릴 것, 무역과 투자를 차별 없이 자유화할 것, 생활필수품에 대한 보조금을 제거할 것 등이다.
다음으로는 이번에 탕감조치를 받았고 앞으로 받을 예정이 38개국은 외채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남반부 국가들 160개국 중에서 극히 일부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백 번 양보해서 매우 긴급한 나라들 외채를 탕감한다 하더라도 쓰나미 피해국이나 아이티 같은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의 외채가 탕감이 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다른 중요한 채권기관들이 포함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아메리카 개발은행과 아시아 개발은행이 그것들이다. 외채를 탕감 받게 되는 4개 중남미 국가들(볼리비아 가이아나 온두라스 니카라과)은 아메리카 개발은행에 이후 5개년에 걸쳐 약 14억불의 외채원리금 상환을 해야 할 것이다. 라오스는 HIPC에 있는 유일한 아시아 국가인데, 부탄, 베트남,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필리핀 등 다른 아시아 국가도 심각하게 외채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주로 아시아 개발은행에 외채를 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쥬빌리 사우쓰 등 거의 모든 외채탕감운동단체들이 요구해 온 증오스럽고 불법적인 성격의 외채는 무시되었다. 예를 들면 남미 독재국가, 남아공의 인종차별국가, 필리핀의 마르코스 치하의 외채 등이 그것들이다.
글을 맺으며
앞에서 보았다시피 이번 G8 회담에서의 외채탕감은 그 규모가 미미할 뿐만 아니라 이미 기진맥진하여 외채를 갚을 수 없는 나라들에게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세계화로의 편입을 조건으로 탕감한 것이다. 또한 지난 멕시코 칸쿤에서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이 실패할 때 베넹, 부르키나파소 등 서아프리카 4개국이 문제삼은 면화보조금도 한 원인이 되었는데 이번 외채탕감이 12월 홍콩 WTO 협상을 앞두고 아프리카 빈국들을 입막음하자는 차원에서 이루어지지는 않았을까? 아무튼 이번 외채탕감은 중심부 국가의 이익과 초민족적 자본의 이익을 조금도 침해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한편 '라이브 8' 공연 주최측과 거대 비정부기구들이 청원식 운동을 펼치면서 전쟁과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통한 제국주의적 지배의 당사자인 미국, 영국 등 G8 지배세력에 단호히 맞서지 않은 것은 이들의 한계라 할지라도, 이에 부지불식간에 끌려 들어간 신자유주의 반대운동세력 또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안세계화 운동단체 AIDC의 말을 들어보자.
"G8 정상회담의 결과는 세계화의 이면인 전쟁과 군사주의에서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면서 세계화에 인간적인 면모로 채색하려고 하는 자들에게, 사회정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우리들이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포섭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전략을 다시 검토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우리는 G8과 함께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제하는 우리 정부들에 대항해 싸우는 동시에 G8과 그들이 지도하는 WTO, 아이엠에프, 세계은행 등의 정당성을 허무는 우리의 노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불행하게도 MPH의 지배적인 추진주체는 반세계화 운동, 세계사회포럼, 세계 곳곳의 대중적인 사회운동들의 어마어마한 성장을 가져다준 이런 전략에 등을 돌렸다. 유명인사들, 업계거물 및 조언자들은 실천, 조직화 및 저항을 대체할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이 이런 교훈을 얻기를 바란다."7)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이를 극복하겠다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개도국 발전, 성장, 빈곤퇴치 등 어느 것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이제는 전쟁을 병행하고 있다. 제3세계 외채탕감운동이 애초에 외채를 구조적인 문제로 본 바에야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을 통해 남반구 민중에 대한 지배와 공격을 강화하는 세계의 지배세력들에게 청원하는 방식의 운동에 이끌리지 말고8) 일국적 세계적 차원의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을 통한 변혁운동과 결합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이번 G8 회담 및 이에 대한 대응의 교훈이 아닐까 한다.
1) 원문은 http://www.fco.gov.uk/files/kfile/postg8_gleneagles_communique.pdf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2) 약 20년 전에도 '라이브 에이드'(Live Aid)를 기획했던 아일랜드 출신 록가수 밥 겔도프가 기획한 이 공연에는 엘튼 존, 폴 매카트니, 마돈나, U2 등 유명한 대중가수들과 넬슨 만델라 등이 출연했다. 영어로 '8'은 '에잇'인데 '원조'를 뜻하는 'aid(에이드)'와 발음이 유사하다. '라이브 8'은 '라이브 에이드'(원조를 위한 라이브 공연)이기도 한 것이다. 본문으로
본문으로
4) http://www.jubilieeusa.org/press_room/firststep.pdf와 http://www.jubileesouth.org/upload1/jsstatementforg8.pdf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5) 2005년 3월 미국 하원에 제출된 법안으로 정식 명칭은 ''2005년 정의, 외채탕감 이해, 그리고 형평에 관한 법률'(Justice and Understanding By International Loan Elimination and Equity Act of 2005')이다. 6월 현재 75명의 양당 의원이 발기인으로 되어 있다. 본문으로
6) 80년대 후반 남미 외채위기 이후 외채조정방안으로 등장한 베이커플랜은 외채를 주식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외채문제 폭발을 지연시켰는데 이로 인해 반주변-주변부의 외채는 주식형태로 많이 바뀐 상태이다(외채-주식 전환). 즉 외채규모는 현재 초민족적 자본의 지배로 인해 반주변-주변부가 처한 문제의 실상을 다 보여주지는 못한다. 특히 이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한국 등 반주변부에서 그렇다. 이런 나라에서는 초민족적 자본의 이탈(capital flight)로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이 붕괴하면서 위기가 도래하기도 한다. 본문으로 본문으로
7) http://www.aidc.org.za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8) 이를 위해서는 청원방식의 외채탕감운동을 재고해 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HIPC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위기와 비극의 주된 요인을 구조적 요인, 즉 식민지이전 및 식민지 유산, 미국 주도 세계자본주의의 수익성 및 정당성 위기와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실질금리 인상을 통한 개도국과의 국제 화폐자본 유치 경쟁, 제조업 제품 수입증대를 통한 경상수지 적자 누적, 동아시아 원조 및 역개방정책)으로 보는 세계체계론자 아리기는 아프리카 각국 정부가 70년대 중반 이후 위기를 근본적으로 회피할 수는 없었다 하더라도 위기의 영향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중 하나가 세계은행이 지시한 조건으로 채무재조정을 하기 보다는 디폴트(지불정지)를 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디폴트는 단기적으로는 위기를 낳았을지 모르겠으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한 파괴적인 영향은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지오반니 아리기, 〈아프리카의 위기 : 세계체계적인 그리고 지역적인 양상들〉, 《사회진보연대》, 2002년 11월호, 2003년 1-2월호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APEC 반대투쟁, 어디까지 왔나?
- 전쟁과 빈곤을 확대하는 아펙반대 부시반대 국민행동 9월 7일 출범
2005 APEC(Asia 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회의가 오는 11월 13일부터 19일까지 부산에서 개최된다. 특히 21개 APEC회원국 정상들이 참가하는 정상회의가 18일~19일 양일간 열린다. 이 때, 미국의 부시, 일본의 고이즈미, 호주의 하워드, 한국의 노무현 등이 참여하여 자유무역과 대테러전쟁 등에 대해 논의할 전망이다. 그러나 APEC이 열릴 때마다 대규모 반대시위가 개최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회운동 진영에서는 APEC이 미국 중심의 선진국들과 초국적자본의 이익만을 위한 자유무역을 촉진하고, 대테러전쟁이나 인간안보라는 미명으로 군사주의를 강화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요컨대 APEC은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 민중들의 입장에서는 '빈곤과 전쟁을 확대하는' 그들만의 기구인 것이다.
정부나 부산시에서는 APEC의 경제적 효과나 국제도시로서 부산의 위상 부각 등을 강조하면서 대대적인 여론몰이와 준비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6월 8일 'APEC반대 부산시민행동' 주최로 개최된 아펙 대응 토론회에서 "부산지역 연간 총생산이 45조원에 달하며 취업자가 159만 명인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약 2598억 원이 투입되는 이번 아펙정상회의의 생산유발효과에 대한 부산시 논리는 너무 왜소하다"고 꼬집었을 정도로 정부측의 선전은 포장만 화려할 뿐이다. 결국 APEC 회의는 또 한번의 '그들만의 잔치'로 전락할 것이고 민중들에게 돌아올 것은 빈곤과 불평등, 군사주의의 강화일 뿐이다.
한편 정부는 부산 APEC회의에 각국 정상들이 대거 몰려오는 만큼 테러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대책마련에 부산을 떨고 있다. 국정원, 군, 경찰, 대통령경호실 등 12개기관이 'APEC 경호안전통제단'을 꾸렸는데, 언론보도를 보면 부산시내 경비는 경찰 3만 명이, 외곽과 공항 등 주요시설은 군 병력 5000명이 맡기로 했고 정상들이 도착하는 공항과 숙소는 수천 명의 경찰이 삼중사중으로 에워싸며, 시내 주요지점에는 2700여 개의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검문검색을 강화한다고 한다. 이는 소위 대테러대책이기도 하지만 APEC회의를 규탄하기 위해 집결할 시위대에 대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민중에게 해로운 것들만 논의하는 세계 지배계급들끼리의 회의를 그렇게 숨어서 한다는 사실 자체도 APEC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인데, 이것을 규탄하는 시위대를 어마어마한 병력으로 가로막는 것은 더더욱 그러하다.
지난 6월 1일 발족한 '전쟁과 빈곤을 확대하는 아펙반대 국민행동(준)'은 7월 12일 사무국전원회의를 통해 제반의 사업계획을 정리하고 체계를 정비하여 9월 7일 힘차게 본조직을 출범하기로 하였다. 우선 명칭을 '전쟁과 빈곤을 확대하는 아펙반대 부시반대 국민행동(약칭 '아펙반대 국민행동')으로 하고, 주요 슬로건을 '부시반대! 전쟁반대!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아펙반대! (Stop Bush! No War! No Neoliberal Globalization! No Apec!)'으로 정하였다. 또한 주요 기조를 1)전쟁반대·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2)전쟁과 빈곤을 확대하는 아펙반대 3)전쟁과 민중수탈의 주범 부시반대 4)민중의 국제연대투쟁 강화 등으로 하고, 주요 사업으로 9월 7일 본조직 출범 및 대토론회, 5,000명의 조직위원 모집, 9월 10일 故이경해열사 추모 쌀개방 반대투쟁, APEC과 부시 고발대회, 10월 APEC반대 전국순례, Anti-Apec영화제, 11월 APEC 기간 중 투쟁선포식, 국제민중포럼, 부시방한 저지투쟁, 전야제, APEC반대 부시반대 범국민대회 등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에 반대하는 민중들의 단결과 연대투쟁으로 11월, APEC과 부시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부산과 전 세계에 울려 퍼지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