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이주의 현황과 쟁점
국제결혼을 통한 이주를 중심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국경을 넘어선 이주의 흐름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주의 여성화’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여성의 이주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 내에서 이주 여성의 숫자는 이주 인구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으며, 한국의 경우 전체 80여만 명의 이주 인구 중 대략 35% 정도가 여성이다. 물론 이주 여성의 숫자가 많아진다는 것은 여성의 이주를 촉진하는 다양한 사회·경제적 요인이 강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1990년대 이후에 나타나는 여성 이주의 확대 양상은 신자유주의 금융화의 맥락 속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각 국가별로 차이는 있지만, 이주 노동의 주요 수입국인 중심부 국가들의 경우 중산층 이상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출이 활성화되고 첨단 금융산업과 하인노동으로 노동의 양극화가 이루어지면서, 가정부, 보모와 같은 재생산노동, 시설관리, 청소 등의 하층 노동에 이주 여성들의 진출이 확대되고 있다. 서비스산업의 확대, 성산업의 유례없는 팽창 역시 여성 이주를 확대하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다. 또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강제하는 급격한 농업개방은 송출국과 유입국 모두에서 국제결혼을 통한 여성 이주를 발생시키는 직접적인 요인이다. 이주 여성의 문제는 금융세계화 질서 속으로 민족국가가 위계화된 형태로 통합되고, 신자유주의 정책이 노동의 불안정화, 성산업, 가족제도 등을 통해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이 상호 결합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인식을 더욱 구체화하기 위해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는 지난 5월 말 ‘이주여성의 현실과 문제’를 주제로 월례포럼을 진행했다. 안양 이주노동자의 집과 이주여성인권연대에서 활동하는 김민정 씨가 ‘인신매매와 성착취-아시아 이주와 한국의 이주 여성’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해주셨다. 한국에서 이주 여성의 유입경로와 형태, 현황과 문제점, 이주 여성들의 권리확보를 위한 대안과 현재 진행 중인 활동 등을 중심내용으로 많은 이야기를 전해 주셨다. 특히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유입된 이주 여성에 대한 논의가 중심이었는데, 여성위원회 차원에서는 이주 여성노동자들의 문제에 비해 평소 접근이 부족했던 주제였던 만큼 여러모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 자리였다. 정리가 매우 늦었지만 이주 여성 문제에 대한 고민을 더욱 깊이 있게 가져가기 위한 계기로 삼기 위해 글을 싣는다. 김민정 씨의 발제와 토론되었던 내용을 재구성하고 이주 여성에 대한 여성위원회의 고민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글이 작성되었다. 셋째 아이 출산을 얼마 안 남겨 두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안양에서 먼 걸음 해주셨던 김민정씨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아시아에서 여성이주의 특성
아시아 내에서 이주 노동 송출국은 대부분 동남아시아 국가들이고, 수입국은 대부분 중동지방 국가들인데 2003년 당시 기준으로 약 1,000만 명 수준에 이른다. 이에 비해 한국과 일본, 홍콩, 대만 등의 동아시아 지역은 상대적으로 유입숫자가 적은 편이다. 통상 이주 노동을 선택할 때 고려하는 주요 요인이 노동시장 내의 수요 및 자본력(기술력), 임금수준, 송출 비용 정도인데, 한국과 일본, 대만의 경우 임금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아 선호가 있기는 하지만, 송출비용이 워낙 막대하고 일정한 기술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와는 반대되는 조건을 가진 중동지방으로 이동이 집중된다.
한국을 포함하여 아시아 내에서의 여성 이주는 앞서 언급한 여성 이주의 국제적 추세와 기반을 공유하면서도 다소 다른 양상도 함께 보인다. 아시아 내에서 여성 이주는 주로 제조업 부문의 노동과 국제결혼을 통한 이주가 주를 이룬다.1) 아시아에서 이주 노동과 국제결혼을 촉진하는데 있어 대만의 역할은 매우 컸다. 대만은 1980년대 중반부터 미국, 중국, 동남아시아 지역에 대한 해외직접투자를 활성화했는데, 그에 따라 제조업의 상당수가 동남아시아로 이전하고 동시에 높은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값싼 이주 노동이 대거 수입되었다. 이 과정에서 대만과 동남아시아 국가 간 국제결혼중개업이 형성되었고, 대만의 하층 노동자계급과 몰락한 농촌의 남성들이 그 수요층으로 부상하였다. 현재 대만에서 국제결혼을 통한 이주 여성은 약 40만 명에 달한다. 한편 국제결혼을 위한 이주 여성의 주요 송출국인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경우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대만의 해외투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자국으로 진출한 대만남성들과의 거래를 통해 국제결혼을 산업화했다. 그 후 1990년대 이후 급격한 개방정책과 1990년대 말 경제위기 상황에서 국제결혼은 국가 차원의 외화벌이의 주요 수단으로 확대된다.
여성 이주는 1990년대 이후 급격히 확대되긴 했지만, 여전히 남성 이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약조건이 많다. 이는 국제결혼이 두드러지게 증가하는 하나의 요인이 된다. 여성 이주의 제약 조건은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가부장적 통념, 현실과 결합되는 것들이 대부분인데, 이주노동의 형태, 결혼 여부에 따른 제약, 교육수준으로 인한 제약, 성산업으로의 유입 가능성 등이 여성 이주의 조건을 형성한다. 예를 들어 방글라데시, 파키스탄의 경우 국가가 정책적으로 미혼 여성의 국제이주를 금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 국가들의 이주여성은 대부분 3·40대 기혼여성들이다. 최근 국제결혼의 주요 대상국으로 떠오른 베트남의 경우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여성들의 경우 2차 산업에 유입되는 경우가 많으며, 저학력에 특별한 기술력이 없는 경우 국제결혼을 통한 이주가 매우 많다(명목상 기술력이 이유가 되지만 실제로는 현재 한국의 2차 산업 구조가 남성중심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는 이유가 크다). 이와 같은 조건 속에서 여성 이주의 형태는 저임금 2차 산업과 서비스산업, 국제결혼 등으로 집중된다. 남성 이주에 비해서도 매우 취약한 여성 이주의 조건은 여성의 비공식 이주를 증가시키는데, 이로써 성산업으로의 유입이나 인신매매의 위험이 생겨난다. 실제 전 세계 여성 인신매매의 1/3이 동남아시아 여성들을 대상으로 벌어지고 있으며, 비공식 경로를 통해 이주에 나섰던 태국여성이 서아프리카의 성산업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사례들이 존재한다.
한국에서 이주 여성의 현황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이주여성은 전체 이주자 중 약 37%에 이른다. 13만 명 정도가 2차 산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국제결혼을 통한 이주가 13만 명, E6 비자(공연예술비자)를 통해 들어온 경우가 대략 1,200~1,300명 수준이다. 한국남성들의 국제결혼은 1990년대 이래 꾸준히 증가하여, 1990년 600여명 수준에서 2004년에는 연간 25,500여명으로 확대된다(아래 계속해서 제시될 통계수치는 통계청과 법무부 자료를 따른 것이다). 국적별 분포를 보면, 2004년을 기준으로 중국이 70%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은데, 대부분 조선족들로 언어와 문화적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가장 선호되고 있다. 그 다음으로 베트남(9.6%), 일본(4.8%), 필리핀(3.8%)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길거리 광고가 등장할 만큼 급증하고 있는 베트남 여성과의 국제결혼은 수치상으로 그리 큰 비중은 아니지만, 여타 국가 여성과의 국제결혼이 1년 사이(2003년~2004년) 감소한 것에 비해 거의 유일하게 증가세(2003년의 경우 7.3%)에 있는 것으로 보아 현실의 체감도가 어느 정도 반영되고 있다. 미디어에서 다루는 한국 남성과 이주 여성의 국제결혼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농촌 거주하는 사람들의 사례에 집중되는데, 실제 현실은 많이 다르다. 국제결혼을 통한 이주여성의 거주지 분포를 보면, 2004년 기준으로 서울이 25%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경기(23%), 부산(7%), 인천(6%) 등 대도시가 주를 이룬다. 반면 농촌지역이 많이 포함되는 전라도, 경상도 지역의 경우 3~4% 수준이다. 초혼과 재혼 등을 기준으로 한 결혼 종류에 따른 구분을 보면, 2001년 당시 초혼이 6,700여명, 재혼이 3,200여명이었는데 그 후 재혼의 사례가 단기간에 꾸준히 상승하여 2004년이 되면 각각 13,700여명과 11,600여명으로 비슷한 비율에 이르게 된다.
증가하고 있는 국제결혼의 경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흔한 경우가 국제결혼중개업체를 통한 유입이다. 중개업체를 통한 국제결혼에서 남성은 상대 여성의 가족에게 전달되는 지참금과 방문절차 비용, 중개수수료 등을 포함하여 대략 1,400만 원 정도를 소요한다. 이 외에 통일교 등 종교단체의 알선을 통한 결혼이나 국제결혼을 한 당사자의 개인적 소개를 통한 결혼, 아주노동자 생활 과정에서 만난 사람끼리의 연애결혼 등이 있다. 국제결혼의 일부는 안정적인 거주기간을 확보하기 위한 위장결혼이다. 이 경우 한국에서 취업 이후 벌어들일 소득을 고려하여 선불-후불 분납제도를 적용하기도 하는데, 이 때 상호 얼굴 한번 대면한 적 없는 서류상의 ‘종이남편’은 이 비용의 일부를 할당받는다. 성산업으로 유입되는 경우는 가장 많은 경로가 E6 비자를 통한 입국2) 이고, 그밖에 단기비자로 입국하여 미등록 상태로 장기체류 하는 경우, 이주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신매매를 통한 유입 등의 경로가 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상업화된 형태의 국제결혼은 결혼이 성사되고 실제 이주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도 많은 문제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배우자에 대한 왜곡된 정보, 인신매매적 요소, 결혼 중개업체의 횡포 등이 대표적인 위험들이다. 많은 상담사례에서 여성에게 ‘한국에서는 농부가 부자이고 존경받는 직업이다’, ‘한 달에 300달러씩 친정에 송금해주겠다’,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얘기나 가족관계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사례가 드러났다. 남성의 한 두 차례 방문으로 성혼이 이루어지고 대부분 그 방문에서 중개업체들이 성관계를 갖도록 유도하기 때문에 여성은 원치 않는 성관계, 임신 같은 성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게다가 여성이 결혼을 거부할 경우 소요된 모든 비용을 여성에게 물어내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폭력적 조건 속에서 여성들은 결혼여부와 배우자를 결정할 수 있을 만한 최소한의 기회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밖에 최근 베트남처럼 국제결혼이 왕성하게 이루어지는 국가에서는 결혼중개업체가 송출국 차원에서 집단적으로 여성들을 모집하고 합숙생활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 합숙생활 자체가 감금과 같은 방식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는 여성들의 이탈을 방지하려는 의도에서 행해지는 강제적 조치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인신매매적 요소가 다분하며, 실제 합숙 이후 성산업으로의 인신매매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갈취는 이 밖에도 매우 다양하다. 성관계 경험여부에 따라서 여성의 가족에게 차등적으로 지참금을 지불하는 사례도 있고, 처녀막 재생 수술을 종용하기도 하며, 금품을 갈취하기도 하는 등 여성 이주의 과정에는 매우 다양한 폭력이 존재한다.
이주한 여성의 생활조건과 지위
이주여성에 대한 폭력은 그 과정에서의 문제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주 이후 한국에서의 삶 또한 결코 순탄치 않다. 국제결혼을 하는 한국남성은 대부분 불안정한 직업, 빈곤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거나 농촌지역에 거주하는 소농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주여성들이 처하는 일차적인 어려움은 경제적 빈곤에서 기인한다(최근 보건복지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제결혼 부부 중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을 벌고 있는 가구가 52%, 끼니를 굶어본 경험이 있는 여성이 16%에 이르고 있다). 극도의 내핍생활을 감당하거나 한국 여성에 비해 열등한 조건으로 취업에 뛰어들어야 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여성들의 이탈을 우려하여 취업은 남편의 동의 하에서만 가능하며, 조선족들의 경우 서비스업으로 취업이 용이하다는 이점 때문에 오히려 ‘돈 벌어올 것’을 강요받거나 그를 목적으로 국제결혼을 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물론 어느 경우나 재생산노동에 대한 책임은 기본적으로 여성에게 부과된다.
앞서 남성의 초혼과 재혼 등의 결혼 형태에 따른 분포를 살펴보았는데, 재혼이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제결혼을 통한 이주 여성의 지위를 가늠하는데 있어서 매우 상징적으로 읽어야 하는 대목이다. 국제결혼을 하는 이주여성들의 연령이 대부분 20대 초·중반이고 종종 10대 후반도 있는데, 재혼을 하는 한국 남성의 경우 4~50대 어떤 경우 60대에 이른다. 이 경우 이주 여성들은 무급가정부, 간병인, 성적 서비스의 제공자나 다름없는데, 실제로 연로하고 병든 부모나 자식들을 돌보기 위해 국제결혼을 하는 한국 남성이 적지 않다. 단기 가정부, 간병인을 고용하느니 비용 면에서도 오히려 저렴하고 기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장기 고용인을 고용하는 셈인 것이다.
이와 같은 양상이 연령대가 높은 남성들의 사례 또는 몇몇 예외적인 사례에만 한정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 많은 이주여성들이 성적학대, 구타와 같은 신체적 학대, 재생산노동과 유급 노동의 이·삼중 부담, 문화·언어·민족적 차이 등을 악용한 언어·정서적 학대를 경험하고 있다. 이렇게 폭력적 상황으로부터 이탈하고 싶어도 이주 여성들에게 그것은 곧 불법체류를 의미하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설령 이탈을 한다고 해도 아주 극소수의 쉼터 체류자들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는 여성들은 대부분 다시 남편에게로 돌아간다. 직·간접적인 폭력이 아니더라도 언어생활의 문제, 문화적 차이, 외국인 혐오증, 국제결혼을 한 이주 여성들에게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사회적 인식은 이주 여성들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수용되고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는 데 있어 한계로 작용한다.
대부분 동남아 국가 출신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국제결혼은 그 형태와 절차가 ‘노골적으로’ 상업화되었다는 점에서 이주여성들의 선택과 결정의 폭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서 한국의 법·제도 또한 이주 여성들을 취약한 지위로 내몰고 있다. 이주 여성의 신분보장과 거주, 기본적 권리와 관련되는 법·제도로는 국적법, 출입국관리법, 그밖에 공공서비스 차원의 기본권의 문제가 있는데, 신분보장 및 거주의 권리는 결혼지속 여부에 철저히 종속된다. 심지어는 배우자가 위장결혼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결혼관계를 청산할 가능성도 상존하지만, 이때도 결국 여성은 불법체류자로 내몰릴 뿐이다. 그밖에 의료, 교육, 소득보조 등 공공서비스 혜택에서 이주 여성은 철저히 배제된다.
국제결혼의 경우 ‘결혼’의 한 형태라는 이유로 이주 여성에 대한 폭력이나 인신매매적 요소 등에 대한 법·제도적 차원에서 규제 방법이 전무한 실정이다. 또한 국적을 취득하기 전까지는 시민으로서의 최소한의 기본권도 보장되지 않는다. 이에 이주여성운동을 중심으로 국제결혼중개업체를 규제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하고,3) 국적 취득 이전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권 적용, 각종 상담 및 교육 등에 대한 지원 확대와 관련된 법·제도 개선을 위한 활동을 진행 중이다.
국제결혼을 통한 여성이주가 제기하는 쟁점
대부분의 이주여성들이 동남아시아의 빈국 출신임을 보아 알 수 있듯, 이 여성들에게 이주는 빈곤으로부터 탈출하고 다른 삶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하나의 유력한 수단이다.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에 진입하는 이주여성들은 대부분 고국에 비해 몇 배나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 하나로 이주를 감행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본국에서 고학력, 전문직 종사라는 이력을 가지고 있다. 국제결혼을 통한 여성 이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 여성들이 가족의 생계 부양이나, 빈곤탈출, 자식에게 빈곤을 대물림하지 않는다는 동기로 국제결혼을 결심한다.
여성이주의 형태 중 국제결혼의 경우 가장 첨예한 논쟁거리를 제공한다. 가장 대표적인 쟁점은 국제결혼이 여성매매 또는 성매매와 구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한 편에는 국제결혼이 ‘노골적으로’ 상품화되어 있다는 점과 그 과정에서 가족의 압력, 중개업체의 폭력이 개입되고 실제 인신매매도 발생한다는 점을 들어 성매매와 다름없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다른 한 편에는 이미 현실에 다수가 존재하는 결혼의 한 형태라는 점과 빈곤이 여성들에게 일반화되고 있는 조건에서 국제결혼이 이주 여성들이 선택한 하나의 대응책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입장이 존재한다. 이러한 입장의 곁가지에는 국제결혼을 하는 한국남자들이 대부분 한국사회에서 주변화된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노골적으로’ 상품화된 결혼의 의미란 과연 무엇인가? 언제부턴가 성행하기 시작한 국내의 수많은 결혼중개업체들을 통한 결혼은 국제결혼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가? 또한 이와 같은 ‘노골적으로’ 상업적인 형태가 등장할 만큼 결혼이 필수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현실에서 이주 여성과 토착 거주 여성은 그 삶의 조건과 양에 있어서 매우 다르다는 점이 과소평가 될 수는 없다. 여성이 가족제도 내에서의 억압과 함께 신자유주의 시대 민족국가 내부에서 배제의 대상이라면 이주 여성은 외적 배제라는 또 다른 조건이 결합된 매우 중층적인 억압의 대상이다. 그러나 무급 가정부, 간병인, 성적 서비스 제공자로서의 이주 여성의 지위와 재생산노동과 임금노동(또는 농사일)의 병행이라는 역할은 사실 신자유주의 하에서의 가족제도가 여성에게 부과하는 일반적인 지위이며 역할이다. 또한 이주여성에게 가해지는 동정과 성적인 이유에서의 멸시라는 이중적 시각은 어느 사회에서건 존재하는 여성에 대한 ‘성녀/창녀’, ‘보호받을 자격 있는/없는 인간’이라는 이분법의 변형된 판본이다. 따라서 국제결혼이 성매매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은 본질적인 쟁점일 수 없다. 오늘날 왜 그토록 많은 여성들이 이주라는 삶의 형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가, 거기에 가족제도가 어떤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가를 말하는 것이 핵심이다. 국제결혼이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이주의 형태라는 사실은 여성 빈곤의 원인이자 결과인 가족의 역할을 사고할 때만 설명할 수 있다. 좀 더 ‘인간적인 국제결혼’을 위해 제도를 개선하라는 요구는 이주여성이 국적과 결혼지속 여부에 관계없이 여성으로서, 노동자·시민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요구로 확대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요구는 여성을 국적에 따라 차별·배제하고 자본에게만 자유로운 이동을 허락하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반대하는 것과 결합되어야 한다.
1) 중심부 국가의 경우처럼 재생산노동을 위한 여성 이주가 아시아에서 확대되기는 힘든데, 그것은 일차적으로 경제적 차원의 문제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이와 같은 역할은 국내 여성들의 저임금 일자리로 제공되고 있으며, 예외적으로 조선족들의 경우가 상류층의 가정부로 고용되는 경우가 존재한다. 본문으로
2) E6 비자를 통해 입국해 성산업으로 유입된 러시아, 필리핀 여성들의 문제가 사회화되자, 정부는 2003년 6월부터 무용수들에 대한 E6비자 발급을 중단했고, 그 후 E6 비자를 통한 입국은 급감하였다. 본문으로
3) 지금까지는 결혼중개업체의 존립에 대한 법적 근거가 존재하지 않았는데,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에는 국내결혼중개업체는 신고제로, 국제결혼중개업체는 허가제로 양성화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 법안을 주도적으로 마련한 이주여성운동에서는 중개업체에 대한 허가제/금지/불법화 등의 선택지를 검토한 끝에 ‘결혼’의 속성을 고려하여, 허가제를 통해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선택했다고 한다. 본문으로
이와 같은 인식을 더욱 구체화하기 위해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는 지난 5월 말 ‘이주여성의 현실과 문제’를 주제로 월례포럼을 진행했다. 안양 이주노동자의 집과 이주여성인권연대에서 활동하는 김민정 씨가 ‘인신매매와 성착취-아시아 이주와 한국의 이주 여성’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해주셨다. 한국에서 이주 여성의 유입경로와 형태, 현황과 문제점, 이주 여성들의 권리확보를 위한 대안과 현재 진행 중인 활동 등을 중심내용으로 많은 이야기를 전해 주셨다. 특히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유입된 이주 여성에 대한 논의가 중심이었는데, 여성위원회 차원에서는 이주 여성노동자들의 문제에 비해 평소 접근이 부족했던 주제였던 만큼 여러모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 자리였다. 정리가 매우 늦었지만 이주 여성 문제에 대한 고민을 더욱 깊이 있게 가져가기 위한 계기로 삼기 위해 글을 싣는다. 김민정 씨의 발제와 토론되었던 내용을 재구성하고 이주 여성에 대한 여성위원회의 고민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글이 작성되었다. 셋째 아이 출산을 얼마 안 남겨 두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안양에서 먼 걸음 해주셨던 김민정씨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아시아에서 여성이주의 특성
아시아 내에서 이주 노동 송출국은 대부분 동남아시아 국가들이고, 수입국은 대부분 중동지방 국가들인데 2003년 당시 기준으로 약 1,000만 명 수준에 이른다. 이에 비해 한국과 일본, 홍콩, 대만 등의 동아시아 지역은 상대적으로 유입숫자가 적은 편이다. 통상 이주 노동을 선택할 때 고려하는 주요 요인이 노동시장 내의 수요 및 자본력(기술력), 임금수준, 송출 비용 정도인데, 한국과 일본, 대만의 경우 임금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아 선호가 있기는 하지만, 송출비용이 워낙 막대하고 일정한 기술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와는 반대되는 조건을 가진 중동지방으로 이동이 집중된다.
한국을 포함하여 아시아 내에서의 여성 이주는 앞서 언급한 여성 이주의 국제적 추세와 기반을 공유하면서도 다소 다른 양상도 함께 보인다. 아시아 내에서 여성 이주는 주로 제조업 부문의 노동과 국제결혼을 통한 이주가 주를 이룬다.1) 아시아에서 이주 노동과 국제결혼을 촉진하는데 있어 대만의 역할은 매우 컸다. 대만은 1980년대 중반부터 미국, 중국, 동남아시아 지역에 대한 해외직접투자를 활성화했는데, 그에 따라 제조업의 상당수가 동남아시아로 이전하고 동시에 높은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값싼 이주 노동이 대거 수입되었다. 이 과정에서 대만과 동남아시아 국가 간 국제결혼중개업이 형성되었고, 대만의 하층 노동자계급과 몰락한 농촌의 남성들이 그 수요층으로 부상하였다. 현재 대만에서 국제결혼을 통한 이주 여성은 약 40만 명에 달한다. 한편 국제결혼을 위한 이주 여성의 주요 송출국인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경우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대만의 해외투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자국으로 진출한 대만남성들과의 거래를 통해 국제결혼을 산업화했다. 그 후 1990년대 이후 급격한 개방정책과 1990년대 말 경제위기 상황에서 국제결혼은 국가 차원의 외화벌이의 주요 수단으로 확대된다.
여성 이주는 1990년대 이후 급격히 확대되긴 했지만, 여전히 남성 이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약조건이 많다. 이는 국제결혼이 두드러지게 증가하는 하나의 요인이 된다. 여성 이주의 제약 조건은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가부장적 통념, 현실과 결합되는 것들이 대부분인데, 이주노동의 형태, 결혼 여부에 따른 제약, 교육수준으로 인한 제약, 성산업으로의 유입 가능성 등이 여성 이주의 조건을 형성한다. 예를 들어 방글라데시, 파키스탄의 경우 국가가 정책적으로 미혼 여성의 국제이주를 금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 국가들의 이주여성은 대부분 3·40대 기혼여성들이다. 최근 국제결혼의 주요 대상국으로 떠오른 베트남의 경우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여성들의 경우 2차 산업에 유입되는 경우가 많으며, 저학력에 특별한 기술력이 없는 경우 국제결혼을 통한 이주가 매우 많다(명목상 기술력이 이유가 되지만 실제로는 현재 한국의 2차 산업 구조가 남성중심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는 이유가 크다). 이와 같은 조건 속에서 여성 이주의 형태는 저임금 2차 산업과 서비스산업, 국제결혼 등으로 집중된다. 남성 이주에 비해서도 매우 취약한 여성 이주의 조건은 여성의 비공식 이주를 증가시키는데, 이로써 성산업으로의 유입이나 인신매매의 위험이 생겨난다. 실제 전 세계 여성 인신매매의 1/3이 동남아시아 여성들을 대상으로 벌어지고 있으며, 비공식 경로를 통해 이주에 나섰던 태국여성이 서아프리카의 성산업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사례들이 존재한다.
한국에서 이주 여성의 현황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이주여성은 전체 이주자 중 약 37%에 이른다. 13만 명 정도가 2차 산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국제결혼을 통한 이주가 13만 명, E6 비자(공연예술비자)를 통해 들어온 경우가 대략 1,200~1,300명 수준이다. 한국남성들의 국제결혼은 1990년대 이래 꾸준히 증가하여, 1990년 600여명 수준에서 2004년에는 연간 25,500여명으로 확대된다(아래 계속해서 제시될 통계수치는 통계청과 법무부 자료를 따른 것이다). 국적별 분포를 보면, 2004년을 기준으로 중국이 70%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은데, 대부분 조선족들로 언어와 문화적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가장 선호되고 있다. 그 다음으로 베트남(9.6%), 일본(4.8%), 필리핀(3.8%)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길거리 광고가 등장할 만큼 급증하고 있는 베트남 여성과의 국제결혼은 수치상으로 그리 큰 비중은 아니지만, 여타 국가 여성과의 국제결혼이 1년 사이(2003년~2004년) 감소한 것에 비해 거의 유일하게 증가세(2003년의 경우 7.3%)에 있는 것으로 보아 현실의 체감도가 어느 정도 반영되고 있다. 미디어에서 다루는 한국 남성과 이주 여성의 국제결혼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농촌 거주하는 사람들의 사례에 집중되는데, 실제 현실은 많이 다르다. 국제결혼을 통한 이주여성의 거주지 분포를 보면, 2004년 기준으로 서울이 25%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경기(23%), 부산(7%), 인천(6%) 등 대도시가 주를 이룬다. 반면 농촌지역이 많이 포함되는 전라도, 경상도 지역의 경우 3~4% 수준이다. 초혼과 재혼 등을 기준으로 한 결혼 종류에 따른 구분을 보면, 2001년 당시 초혼이 6,700여명, 재혼이 3,200여명이었는데 그 후 재혼의 사례가 단기간에 꾸준히 상승하여 2004년이 되면 각각 13,700여명과 11,600여명으로 비슷한 비율에 이르게 된다.
증가하고 있는 국제결혼의 경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흔한 경우가 국제결혼중개업체를 통한 유입이다. 중개업체를 통한 국제결혼에서 남성은 상대 여성의 가족에게 전달되는 지참금과 방문절차 비용, 중개수수료 등을 포함하여 대략 1,400만 원 정도를 소요한다. 이 외에 통일교 등 종교단체의 알선을 통한 결혼이나 국제결혼을 한 당사자의 개인적 소개를 통한 결혼, 아주노동자 생활 과정에서 만난 사람끼리의 연애결혼 등이 있다. 국제결혼의 일부는 안정적인 거주기간을 확보하기 위한 위장결혼이다. 이 경우 한국에서 취업 이후 벌어들일 소득을 고려하여 선불-후불 분납제도를 적용하기도 하는데, 이 때 상호 얼굴 한번 대면한 적 없는 서류상의 ‘종이남편’은 이 비용의 일부를 할당받는다. 성산업으로 유입되는 경우는 가장 많은 경로가 E6 비자를 통한 입국2) 이고, 그밖에 단기비자로 입국하여 미등록 상태로 장기체류 하는 경우, 이주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신매매를 통한 유입 등의 경로가 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상업화된 형태의 국제결혼은 결혼이 성사되고 실제 이주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도 많은 문제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배우자에 대한 왜곡된 정보, 인신매매적 요소, 결혼 중개업체의 횡포 등이 대표적인 위험들이다. 많은 상담사례에서 여성에게 ‘한국에서는 농부가 부자이고 존경받는 직업이다’, ‘한 달에 300달러씩 친정에 송금해주겠다’,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얘기나 가족관계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사례가 드러났다. 남성의 한 두 차례 방문으로 성혼이 이루어지고 대부분 그 방문에서 중개업체들이 성관계를 갖도록 유도하기 때문에 여성은 원치 않는 성관계, 임신 같은 성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게다가 여성이 결혼을 거부할 경우 소요된 모든 비용을 여성에게 물어내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폭력적 조건 속에서 여성들은 결혼여부와 배우자를 결정할 수 있을 만한 최소한의 기회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밖에 최근 베트남처럼 국제결혼이 왕성하게 이루어지는 국가에서는 결혼중개업체가 송출국 차원에서 집단적으로 여성들을 모집하고 합숙생활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 합숙생활 자체가 감금과 같은 방식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는 여성들의 이탈을 방지하려는 의도에서 행해지는 강제적 조치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인신매매적 요소가 다분하며, 실제 합숙 이후 성산업으로의 인신매매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갈취는 이 밖에도 매우 다양하다. 성관계 경험여부에 따라서 여성의 가족에게 차등적으로 지참금을 지불하는 사례도 있고, 처녀막 재생 수술을 종용하기도 하며, 금품을 갈취하기도 하는 등 여성 이주의 과정에는 매우 다양한 폭력이 존재한다.
이주한 여성의 생활조건과 지위
이주여성에 대한 폭력은 그 과정에서의 문제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주 이후 한국에서의 삶 또한 결코 순탄치 않다. 국제결혼을 하는 한국남성은 대부분 불안정한 직업, 빈곤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거나 농촌지역에 거주하는 소농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주여성들이 처하는 일차적인 어려움은 경제적 빈곤에서 기인한다(최근 보건복지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제결혼 부부 중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을 벌고 있는 가구가 52%, 끼니를 굶어본 경험이 있는 여성이 16%에 이르고 있다). 극도의 내핍생활을 감당하거나 한국 여성에 비해 열등한 조건으로 취업에 뛰어들어야 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여성들의 이탈을 우려하여 취업은 남편의 동의 하에서만 가능하며, 조선족들의 경우 서비스업으로 취업이 용이하다는 이점 때문에 오히려 ‘돈 벌어올 것’을 강요받거나 그를 목적으로 국제결혼을 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물론 어느 경우나 재생산노동에 대한 책임은 기본적으로 여성에게 부과된다.
앞서 남성의 초혼과 재혼 등의 결혼 형태에 따른 분포를 살펴보았는데, 재혼이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제결혼을 통한 이주 여성의 지위를 가늠하는데 있어서 매우 상징적으로 읽어야 하는 대목이다. 국제결혼을 하는 이주여성들의 연령이 대부분 20대 초·중반이고 종종 10대 후반도 있는데, 재혼을 하는 한국 남성의 경우 4~50대 어떤 경우 60대에 이른다. 이 경우 이주 여성들은 무급가정부, 간병인, 성적 서비스의 제공자나 다름없는데, 실제로 연로하고 병든 부모나 자식들을 돌보기 위해 국제결혼을 하는 한국 남성이 적지 않다. 단기 가정부, 간병인을 고용하느니 비용 면에서도 오히려 저렴하고 기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장기 고용인을 고용하는 셈인 것이다.
이와 같은 양상이 연령대가 높은 남성들의 사례 또는 몇몇 예외적인 사례에만 한정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 많은 이주여성들이 성적학대, 구타와 같은 신체적 학대, 재생산노동과 유급 노동의 이·삼중 부담, 문화·언어·민족적 차이 등을 악용한 언어·정서적 학대를 경험하고 있다. 이렇게 폭력적 상황으로부터 이탈하고 싶어도 이주 여성들에게 그것은 곧 불법체류를 의미하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설령 이탈을 한다고 해도 아주 극소수의 쉼터 체류자들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는 여성들은 대부분 다시 남편에게로 돌아간다. 직·간접적인 폭력이 아니더라도 언어생활의 문제, 문화적 차이, 외국인 혐오증, 국제결혼을 한 이주 여성들에게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사회적 인식은 이주 여성들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수용되고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는 데 있어 한계로 작용한다.
대부분 동남아 국가 출신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국제결혼은 그 형태와 절차가 ‘노골적으로’ 상업화되었다는 점에서 이주여성들의 선택과 결정의 폭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서 한국의 법·제도 또한 이주 여성들을 취약한 지위로 내몰고 있다. 이주 여성의 신분보장과 거주, 기본적 권리와 관련되는 법·제도로는 국적법, 출입국관리법, 그밖에 공공서비스 차원의 기본권의 문제가 있는데, 신분보장 및 거주의 권리는 결혼지속 여부에 철저히 종속된다. 심지어는 배우자가 위장결혼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결혼관계를 청산할 가능성도 상존하지만, 이때도 결국 여성은 불법체류자로 내몰릴 뿐이다. 그밖에 의료, 교육, 소득보조 등 공공서비스 혜택에서 이주 여성은 철저히 배제된다.
국제결혼의 경우 ‘결혼’의 한 형태라는 이유로 이주 여성에 대한 폭력이나 인신매매적 요소 등에 대한 법·제도적 차원에서 규제 방법이 전무한 실정이다. 또한 국적을 취득하기 전까지는 시민으로서의 최소한의 기본권도 보장되지 않는다. 이에 이주여성운동을 중심으로 국제결혼중개업체를 규제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하고,3) 국적 취득 이전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권 적용, 각종 상담 및 교육 등에 대한 지원 확대와 관련된 법·제도 개선을 위한 활동을 진행 중이다.
국제결혼을 통한 여성이주가 제기하는 쟁점
대부분의 이주여성들이 동남아시아의 빈국 출신임을 보아 알 수 있듯, 이 여성들에게 이주는 빈곤으로부터 탈출하고 다른 삶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하나의 유력한 수단이다.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에 진입하는 이주여성들은 대부분 고국에 비해 몇 배나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 하나로 이주를 감행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본국에서 고학력, 전문직 종사라는 이력을 가지고 있다. 국제결혼을 통한 여성 이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 여성들이 가족의 생계 부양이나, 빈곤탈출, 자식에게 빈곤을 대물림하지 않는다는 동기로 국제결혼을 결심한다.
여성이주의 형태 중 국제결혼의 경우 가장 첨예한 논쟁거리를 제공한다. 가장 대표적인 쟁점은 국제결혼이 여성매매 또는 성매매와 구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한 편에는 국제결혼이 ‘노골적으로’ 상품화되어 있다는 점과 그 과정에서 가족의 압력, 중개업체의 폭력이 개입되고 실제 인신매매도 발생한다는 점을 들어 성매매와 다름없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다른 한 편에는 이미 현실에 다수가 존재하는 결혼의 한 형태라는 점과 빈곤이 여성들에게 일반화되고 있는 조건에서 국제결혼이 이주 여성들이 선택한 하나의 대응책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입장이 존재한다. 이러한 입장의 곁가지에는 국제결혼을 하는 한국남자들이 대부분 한국사회에서 주변화된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노골적으로’ 상품화된 결혼의 의미란 과연 무엇인가? 언제부턴가 성행하기 시작한 국내의 수많은 결혼중개업체들을 통한 결혼은 국제결혼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가? 또한 이와 같은 ‘노골적으로’ 상업적인 형태가 등장할 만큼 결혼이 필수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현실에서 이주 여성과 토착 거주 여성은 그 삶의 조건과 양에 있어서 매우 다르다는 점이 과소평가 될 수는 없다. 여성이 가족제도 내에서의 억압과 함께 신자유주의 시대 민족국가 내부에서 배제의 대상이라면 이주 여성은 외적 배제라는 또 다른 조건이 결합된 매우 중층적인 억압의 대상이다. 그러나 무급 가정부, 간병인, 성적 서비스 제공자로서의 이주 여성의 지위와 재생산노동과 임금노동(또는 농사일)의 병행이라는 역할은 사실 신자유주의 하에서의 가족제도가 여성에게 부과하는 일반적인 지위이며 역할이다. 또한 이주여성에게 가해지는 동정과 성적인 이유에서의 멸시라는 이중적 시각은 어느 사회에서건 존재하는 여성에 대한 ‘성녀/창녀’, ‘보호받을 자격 있는/없는 인간’이라는 이분법의 변형된 판본이다. 따라서 국제결혼이 성매매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은 본질적인 쟁점일 수 없다. 오늘날 왜 그토록 많은 여성들이 이주라는 삶의 형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가, 거기에 가족제도가 어떤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가를 말하는 것이 핵심이다. 국제결혼이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이주의 형태라는 사실은 여성 빈곤의 원인이자 결과인 가족의 역할을 사고할 때만 설명할 수 있다. 좀 더 ‘인간적인 국제결혼’을 위해 제도를 개선하라는 요구는 이주여성이 국적과 결혼지속 여부에 관계없이 여성으로서, 노동자·시민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요구로 확대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요구는 여성을 국적에 따라 차별·배제하고 자본에게만 자유로운 이동을 허락하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반대하는 것과 결합되어야 한다.
1) 중심부 국가의 경우처럼 재생산노동을 위한 여성 이주가 아시아에서 확대되기는 힘든데, 그것은 일차적으로 경제적 차원의 문제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이와 같은 역할은 국내 여성들의 저임금 일자리로 제공되고 있으며, 예외적으로 조선족들의 경우가 상류층의 가정부로 고용되는 경우가 존재한다. 본문으로
2) E6 비자를 통해 입국해 성산업으로 유입된 러시아, 필리핀 여성들의 문제가 사회화되자, 정부는 2003년 6월부터 무용수들에 대한 E6비자 발급을 중단했고, 그 후 E6 비자를 통한 입국은 급감하였다. 본문으로
3) 지금까지는 결혼중개업체의 존립에 대한 법적 근거가 존재하지 않았는데,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에는 국내결혼중개업체는 신고제로, 국제결혼중개업체는 허가제로 양성화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 법안을 주도적으로 마련한 이주여성운동에서는 중개업체에 대한 허가제/금지/불법화 등의 선택지를 검토한 끝에 ‘결혼’의 속성을 고려하여, 허가제를 통해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선택했다고 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