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핵 현실과 반전반핵운동
핵문제에 대한 대중적 무감각
지난 8월 6일자 동아일보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 국민의 52%가 한국의 핵무기 보유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대해서는 한국 응답자의 57%가 반대했고 41%는 용인해야 한다고 답했다. 일본인은 86%가 핵무기 보유에 반대했고 독일인도 93%가 반대의견을 나타냈다. 이는 2차 대전 패전국인 일본과 독일이 핵무기 반대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은 데 비해, 오히려 승전국인 미국, 소련 등이 핵 숭배와 군사주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한 역사를 반영한다. 한국 국민들이 승전국의 핵 숭배 이데올로기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한국의 30, 40대 응답자들은 20대나 50대 이상에 비해 한국의 핵무기 보유 찬성률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각각 58.5%, 58.7%, 46%, 46.35%),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는 비율도 더 높았다. 기사는 이를 ‘진보적 386세대의 성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는 반미의식은 높지만 그만큼 미국에 대한 열패감으로 인해 어떤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미국을 따라잡으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386의 진보에 대한 관념이 민족주의적인 열등감, 피해의식을 반영하고 결국 호전적 팽창주의로 전환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한반도는 약소국으로 외세의 침략을 당해 왔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누구도 넘볼 수 없게 힘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는 과거 지배세력이 적극적으로 유포한 것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이러한 대중의 의식은 역사적으로 핵과 관련된 논의가 억압되어 온 한국사회 지형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한국 지배계급은 미국의 한반도 핵 정책(핵무기 배치, 핵 발전)을 시종일관 지지했으며 민중적인 논의는 철저하게 차단했다. 따라서 반핵을 주장하는 것은 국가안보에 반하는 것이었고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이었다. 특히 1945년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떨어뜨린 핵폭탄 피폭자가 6만 명에 이르지만, 한국정부는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철저한 금기가 되게 했다. 한국은 핵폭탄 피폭의 당사자이면서도 해방의 ‘은인’ 미국에 보은하고, 일본을 패망시킨 핵폭탄을 축복하기 위해 이를 은폐하고 억압해 온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은 멀게는 1980년대 반전반핵운동부터 가까이는 작년 부안 핵폐기장 건설 반대투쟁에 이르기까지 ‘반핵평화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대중운동이 한국사회에 이어져 왔지만, 아직 핵에 대한 논의가 충빈히 대중화되지 않은 까닭이 가장 클 것이다.
한편, 소위 ‘북핵 문제’는 15년이 넘도록 ‘미국에 의한 북한 핵개발 의혹 제기-의혹을 둘러싼 장기간의 대치-어정쩡한 타협’이라는 도식을 반복하고 있다. 최근 6자회담 내용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체제보장과 전력공급이 현실적 목적이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둘러싼 토론 과정에서도 한반도 핵 문제에 대한 역사적이고 총체적인 접근을 발견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한반도 핵문제의 역사와 현실을 조망하여 대중적인 인식을 확장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의 핵무기와 비핵화선언
1980년대까지 한국에서 미군 핵무기의 중심 저장지는 군산공군기지였다. 1985년에도 핵공격 능력을 가진 F-4, F-16폭격기에 탑재하는 핵폭탄 60기가 군산에 저장되어 있었다. 또한 용산기지에는 폭파용 핵지뢰(ADM) 담당 공병부대가 있었고, 이들을 포함하여 남한에는 근해 핵무기(핵항공모함, 핵잠수함에서 발사하는 무기),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랜스미사일, 핵 포 등이 있었다. 이처럼 미국이 남한에 배치된 미국 핵무기의 위력은 일본에 투하한 원폭의 1,750배 수준이었다. 또한 미군이 1978년 한미연합사를 창설하고 국제연합군으로부터 작전통제권을 인수함에 따라 한미연합사령관이 미합동참모본부의 지휘 아래 핵사령관의 역할을 하였다, 즉 남한 대통령이 핵통제권을 지휘한 게 아니었다. 남한 육군의 역할은 핵탄두를 관리하는 미군에게 핵능력을 갖춘 운반수단을 제공하는 것뿐이었다. 애초 남한 당국에는 핵무기에 대한 결정권이나 핵전쟁에 대해 논의할 권리, 국내에 있는 핵무기의 종류와 숫자, 핵무기사용 시나리오 등을 알 권리가 없었던 것이다. 남한에 배치된 미국 핵무기는 미국이 북한 핵사찰을 압박하기 위해 1991년 핵무기 감축선언을 한 이후 철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한국전쟁 이후로 40여 년 간 남한 땅에는 미군이 통제하고 사용을 결정하는 핵무기가 국민들은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수천 기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1992년 남북이 한반도 비핵화선언에 서명하고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 핵안전협정을 체결하였지만 한반도의 핵 위험성은 나아졌다고 볼 수 없다.
군사적 효용가치 감소, 정치적 부담 증가로 미국은 주한미군의 전술핵을 철수했지만 한반도에 대한 핵우산정책과 유사시 핵무기를 사용하는 핵 선제공격 옵션을 유지했다. 애초 북한은 1991년 7월에 한반도 비핵평화지대화를 제안했는데, 이는 비핵3원칙(핵무기 제조, 보유, 반입 금지)을 명시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당시 남한 정부에서는 ‘비핵화’로 답했는데, 비핵지대화와 비핵화는 커다란 간극이 있었다. 즉 비핵지대화는 핵무기 반입을 금지하고 한반도에 씌워진 핵우산을 제거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었지만 비핵화는 핵무기 제조와 소유만을 금지할 뿐 미국과 같은 핵보유국들이 정치 군사적 이해에 따라 핵무기를 들여오는 것에 대해서는 제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비핵화 논리는 한반도의 핵 위협을 제거하지 못할 뿐 아니라 미국의 핵우산 유지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컨대 2005년 3월에도 미국의 로스앤젤레스급 핵추진 잠수함이 경남 진해의 해군기지에 정박했다고 운동진영이 폭로했고, 북한도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위반했다고 연일 비난했다. 군 당국은 “비핵화 원칙은 핵무기에만 관련된 것이므로 핵연료로 추진되는 핵잠수함의 입항은 위배되지 않는다”고 둘러댔고, 더욱이 “미국의 핵추진 잠수함과 항공모함은 한미 연합작전 등에 참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한반도 해역으로 들어온다”고 하면서 스스로 사실을 인정하였다. 그것들은 상황에 따라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공격형 핵잠수함이었고, 특히 로스앤젤레스급은 토마호크 미사일을 탑재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미국 해군은 지역분쟁용 전술핵의 두 가지 지주로서 핵잠수함의 핵 토마호크와 공군의 핵폭탄을 유지하기로 밝혔고(1994년 NPR), 특히 핵잠수함의 핵무장 해체만큼은 늘 소극적이었다.
한반도 주변의 핵무기도 커다란 문제다. 미국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 핵무기를 비롯하여 주요 군사전력을 배치하고 있는다. 특히 핵항공모함과 핵잠수함, 핵무기적재함들이 배치되어 있고 이들은 군사작전이나 한미 연합훈련 시에 남한의 군항을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 하와이에는 미태평양사령부를 비롯하여 미태평양 각 군의 공격전략사령부들이 있으며 수백 대의 항공기와 핵잠수함, 순양함 등 10여 척의 함선들이 주둔하고 있다. 괌 섬에서는 핵전략폭격기인 B-52가 정기적으로 발진하여 한반도와 주변 상공을 오가고 있고 일본에는 미 제5공군사령부, 미 제7함대사령부가 주둔해있고 역시 미국의 핵항공모함 등이 드나든다.
요컨대 남한에 핵무기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미국은 언제든지 해외 기지에서 한반도에 핵을 사용할 수 있으므로, 한반도에 핵무기가 배치된 것과 다를 바 없다.
미사일방어체제와 핵태세보고서
미국이 1985년 발표한 전략방위구상(SDI)은 미소간의 핵무기경쟁과 우주공간에서의 군사력 경쟁(스타워즈)에서 미국이 확실한 우위를 점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이미 이전부터 미국은 ‘상호공멸보장’에 근거한 핵전쟁 억지론, 즉 미소가 서로를 확실하게 파괴할 수 있는 대등한 핵전력을 보유하게 되면 서로가 선제 핵공격을 회피할 것이라는 논리에 따라 핵전력을 계속 증강시켰다. 나아가 미국은 소련을 비롯한 적국의 핵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방어체계를 개발하고자 했고, 우주를 이용하는 군사기술을 결합시켜 SDI를 추진했다. 물론 미국은 SDI와 함께 MX나 Trident II와 같은 전략핵무기 개발을 추진했다. 완벽한 방어망은 압도적인 공격적 전략핵무기를 수반해야만 ‘승리하는 핵전쟁’을 완성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소련의 몰락 이후 전략방위구상은 미사일방어체제(MD)로 이어졌다. 1996년 2월 미 국방부는 MD개발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소련의 위협이 사라진 자리를 대체한 것은 북한이나 이란과 같은 소위 ‘깡패국가’들에 의한 미국 본토에 대한 (핵)탄도미사일 위협이었다. 물론 이는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를 잠재적인 적국으로 상정한 것이기도 했다. 즉 미국은 MD를 통해 방어체제를 완벽하게 해야만 완전한 최강의 핵무기국가가 되고 핵 선제공격의 자유를 확대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한반도에 있어서 MD의 의미는 핵 위협과 동의어일 수밖에 없다. 지난 김대중정부는 MD체제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말해 왔지만 이미 MD체제 구축에 필요한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미군기지에 배치되어 있고 이지스함 도입을 추진하는 등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구상에 편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본, 대만의 MD 참여까지 포함하면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한-미-일 삼각 핵 군사동맹이 실질적으로 완성된다.
한편, 미국은 2002년도에 핵태세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이는 중국, 러시아, 이라크, 이란, 북한, 리비아, 시리아 등 7개국에 대해 핵무기를 선제사용 할 수 있다는 것과 벙커버스터와 같은 신형핵무기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심지어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신형핵무기 개발의 목적은 핵무기를 억지무기가 아닌 실전무기로서 활용하기 위한 기술적 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핵사용의 유연성을 높여 기존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를 망라하는 공격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핵 비보유국에 대한 핵선제공격, 신형핵무기 개발은 미국 스스로 NPT(핵확산방지)체제를 위반하는 것이고 세계를 핵무기경쟁으로 몰아가는 것으로서 미국이 “핵 깡패”임을 시인한 것에 다름 아니다. 더욱이 북한에 대한 핵무기 선제공격 가능성 천명은 북한의 격렬한 반발을 불렀고 이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더욱 부추겼다.
남한의 핵개발 문제
남한은 적극적인 핵 개발정책으로 일관해 왔다. 1970년에 미국정부가 아시아 동맹들의 자주국방을 강조하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고 2만 6천명의 주한 미군을 철수하자 안보보장에 불안감을 인식한 박정희는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비밀리에 시작했다. 이에 미국은 1975년까지 프랑스로 하여금 핵 재처리시설을 남한에 넘기지 못하게 압박함으로써 남한의 핵 개발 시도를 저지했다. 이러한 미국의 압력으로 남한은 1975년 4월에 핵확산방지조약(NPT)을 체결하였다. 1977년에 박정희는 더 이상 핵 개발을 시도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비밀 프로그램은 계속되었고 이는 1979년 박정희 암살로 인해 끝난 듯 했다. 1980년대에도 핵무기 개발 계획이 있었는데 이 역시 미국의 압력 때문에 중단되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이를 미국이나 남한당국이 공식적으로 확인한 적은 없다. 미국은 남한에 대한 플루토늄 공급을 계속 금지해왔다. 1975년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안전협정을 체결할 때 남한 핵시설은 연구용 원자로 2개가 전부였으나 이후 남한정부의 적극적인 핵 발전 정책으로 인해 현재 33개의 핵시설이 있다.
남한정부는 언제나 핵무기 개발에 대한 강렬한 유혹을 느끼고 있었다. 이는 2004년에 불거진 핵물질 실험문제에서도 드러났다. 영국 BBC를 비롯한 외신은 남한이 2000년에 극비리에 우라늄 농축실험을 실시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과기부는 대덕 원자력연구소에서 핵연료 국산화를 위해 소수 과학자들이 극소량인 0.2g의 우라늄(235) 분리실험을 한 사실이 확인돼 IAEA에 이 내용을 보고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과기부 발표는 남한이 처음으로 핵무기 제조의 핵심기술인 농축 우라늄 추출에 성공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2004년 9월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은 한국이 1982년에 국제원자력기구에 신고하지 않은 시설에서 우라늄을 전환해 1백50㎏의 금속 우라늄을 생산했으며, 당시 한국에는 천연 우라늄을 '농축에 적절한 우라늄'으로 바꾸는 전환시설이 세 곳 있었고, 이 우라늄이 2000년 레이저 동위원소 분리 실험에 사용됐다고 밝혔다. 또한 국제원자력기구는 남한이 1982년에 소량의 플루토늄 추출 실험을 했다고 밝혔다. 1백50㎏의 금속 우라늄은 원심 분리법을 사용하면 90% 농축도의 무기급 우라늄 0.7㎏을 얻을 수 있는데, 핵무기 1기를 만들기 위해서 25㎏의 고농축 우라늄이 필요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양이 적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로 핵무기 프로그램이 계속 시도되어 왔고 1980년대에도 그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2000년도의 실험이 비록 실험실 수준이더라도 핵무기 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핵심기술에 관한 실험이었으며, 이미 1982년에 핵 재처리를 통해 플루토늄 추출에도 성공한 것이라는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결국 2004년 11월 국제원자력기구는 남한이 과거 핵실험을 통해 플루토늄과 ‘무기급 우라늄’을 생산했지만 핵무기 생산시도와 관련 있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며 UN안보리에는 회부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이는 막판에 미국이 한국 손을 들어준 결과일 뿐이었다.
한편 남한의 핵 개발을 말할 때 핵 발전 산업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한국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핵 발전량이 많은 나라이다. 국내에는 이미 고리, 월성, 영광, 울진에 18기의 원자로가 가동되고 있고 전체 전력의 40% 정도를 충당하고 있다(1,572만kW 용량). 더욱이 울진에 2기(200만kW)의 핵발전소가 추가로 더 건설되고 있으며 2015년까지 8기(960만kW)의 추가 건설이 계획 중이다. 이 추세대로라면 2020년까지 한국은 총 36기, 2,732만kW 용량의 핵발전소가 가동될 것이다. 또한 동일한 부지에 최고 12∼10기의 핵발전소가 동시에 가동되어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최대 용량, 최다 기수의 핵단지가 조성될 것이다. 핵 발전은 저렴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고 안전하지도 않으며 인류와 생태계에 치명적인 핵폐기물을 양산할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핵무기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핵물질과 핵기술 자체가 평화적 목적과 군사적 목적으로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발전 용도를 위해 사용되고 나온 사용 후 핵연료는 재처리를 통해 언제든지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수 있다. 특히 캐나다형 중수로 원자로는 경수로 원자로에 비해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방법이 용이하다. 국내 원자로 가운데 월성의 4개 원자로가 캐나다형이다. 이것은 1974년 인도의 핵무기 개발을 가능하게 했던 원자로와 같은 유형이다.
더욱이 핵발전소의 사고는 핵발전소를 ‘시멘트·콘크리트로 포장된 핵폭탄’이라고 불리게 했다. 서구에서 체르노빌, 드리마일 등 핵발전소의 대규모 사고가 발생하면서 핵발전소 폐기론이 대세를 형성했지만 여전히 한국에서는 핵무기와 핵발전이 무관한 것이고 핵 발전이 꼭 필요한 것으로 선전된다. 이를 바탕으로 다국적 핵기업들은 대거 한국을 공략했고, 그 결과 미국의 웨스팅하우스, 컴버스쳔엔지니어링, 프랑스의 프라마톰, 캐나다 원자력공사 등이 한국 핵발전소의 원자로 대부분을 공급하였다. 한국 핵 산업은 이제 국내를 넘어 국제적으로 진출하는 상황이 되었다. 최근 두산중공업은 미국 웨스팅하우스 원자력사업본부 인수에 나섰고 9월 예비 입찰과 12월 본 입찰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웨스팅하우스는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443개 가운데 절반 가까운 200여기에 원천기술을 공급했고 ‘한국 표준형’의 원천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또한 지난 8월 29일 중국 최대의 발전설비 회사인 하얼빈 전력집단(HAEC)과 중국 내 신규 원전시장에 공동 진출키로 하여 중국 원자력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언론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비판하기는커녕 대담한 투자로 치켜세우고 정부가 지원하라고 촉구한다. 그러나 핵 자본은 다른 말로 핵 군수산업이며 양자는 뿌리가 같다. 한국이 핵 자본을 키울수록 핵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워질 것이다.
북핵문제의 현재성
1992년 IAEA의 북한 핵시설 사찰, 1993년 북한의 NPT 탈퇴와 뒤이은 전쟁위기, 1994년 제네바 합의, 클린턴정부의 제네바 합의 불이행, 1998년 미국의 북한 금창리 지하시설 핵의혹 제기, 1998년 대포동 1호 시험발사, 2002년 1월 부시의 ‘악의 축’ 발언, 2002년 10월 켈리 특사의 북 핵개발 시인 발표, 2002년 12월 북한의 핵동결 해제선언과 IAEA 사찰관 추방, 2003년 8월 1차 6자회담, 2004년 2월 2차 6자회담, 2005년 2월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핵무기 보유 및 6자회담 무기한 중단 선언, 2005년 7월 3차 6자회담 등 북핵을 둘러싼 갈등은 해를 거듭하면서 반복되고 있다.
이른바 ‘우리식 사회주의’를 유지하면서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체제위협과 경제봉쇄에 시달려 왔고 내부 경제위기를 심각하게 겪고 있는 북한이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고 체제를 보장받으며 외부의 경제 원조를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생존전략의 일환이다. 그러나 핵무기 개발을 그 수단으로 삼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미국의 핵전쟁 위협과 체제위협에 대해 핵무기 개발로 맞서는 것은 과거 북한이 주장하는 한반도 비핵지대화에 모순되는 것이고 핵을 둘러싼 대중의 불안을 키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겉으로는 핵무기를 가질 의사가 없다고 하지만 핵무기에 핵무기로 맞서는 것은 군사적 대결을 높이는 것이다. 또한 이는 수십 년 간 지속된 미국의 한반도 핵 위협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하게 될 위험도 있다. 따라서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북한이 미국에 대해 핵무기 개발로 대담하게 맞서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것은 극히 주관적인 사실인식이자 위험한 주장이다.
둘째,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논리 역시 근본적으로는 위험하다. 세계 최대의 핵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비핵보유국의 핵보유를 억압하는 미국의 이중성은 철저하게 비판되어야 한다. 그러나 핵 발전은 원래 핵무기 개발로부터 시작되었고 핵발전과 핵무기 개발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언제든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핵무기와 근본적으로 단절된 핵의 평화적 이용권, 핵 발전 권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 경쟁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다. 인도는 1974년 핵 개발에 성공했다. 이는 사실 핵기술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 간 경계가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이다. 1990년대 인도-파키스탄의 핵 경쟁 와중에 벌어진 칼길전쟁은 핵보유국 사이의 가장 큰 재래식 전쟁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은 상호 13번에 걸쳐 위협적인 핵공격 선언했다. 수천 만의 민중들은 절멸적인 핵미사일 공격 앞에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 처하고 되었고 핵미사일 공격 시 양자가 3분만에 끝장나는 상황에 직면해야 했다. 그 아슬아슬한 순간에 양국은 외부의 압력으로 핵사용 결정을 중단했지만 이는 핵무기 보유는 언제라도 핵공격에 의한 민중의 절멸이라는 파멸적인 상황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 것이다. 핵무기 보유국은 항상 핵무기를 사용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들고, 평화가 아닌 군사주의적 방향으로 전진한다.
핵무기 없는 한반도와 세계를 향하여
비핵지대화에 대한 구상은 오래 전부터 등장했다. 이는 구체적으로 세계비핵지대(NWFW) 혹은 비핵지대(NWFZ) 등의 개념으로 제시되었다. 비핵지대는 해당 지역에서 핵무기의 개발, 제조, 반입, 통과를 금지하고 핵무장 국가들에게 이 지역에서의 핵무기 공격이나 공격 위협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요구하는 제도적 장치를 말한다. 현재 세계에는 4개의 비핵지대가 존재하는데 1)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지역의 트라테롤코 조약(1967년), 2) 남태평양 지역의 라로통가 조약(1985년), 3) 동남아 지역의 방콕 조약(1995년), 4) 아프리카 지역의 펠린다바 조약(1996년, 미발효)이 있다. 2002년 스웨덴 웁살라에서 열린 비핵지대 국제회의에서는 세계비핵지대를 위한 네트워크 결성이 선언된 바 있다. 비핵지대에 대해서는 일본과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의 핵경쟁을 막기 위한 동북아 비핵지대, 인도-파키스탄의 핵전쟁 위협을 차단하기 위한 남아시아 비핵지대, 이스라엘의 핵무기를 없애고 핵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중동 비핵지대, 전술핵무기 철수와 나토 해체를 위한 중부 및 동부유럽의 비핵지대 등이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비핵지대 구상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그 실현을 위한 관심을 촉구한다는 측면에서 유의미하지만, 여러 가지 한계도 지닌다. 핵 문제의 핵심에는 미국과 핵보유국의 핵무기와 핵전략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이를 우회하고서는 비핵지대의 실효성이 없다. 또한 핵무기를 제거하기 위한 투쟁 속에서 사후적으로 조약의 형태가 필요할 수도 있지만, 조약 체결을 중심으로 비핵지대를 달성하기 위해 UN에 의존한다거나 핵보유 국가들에게 조약 준수를 촉구는 것은 기본적으로 다수 대중의 운동이 아니라 정치외교 수단에 호소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담고 있다.
한반도 비핵지대화는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없애고 핵무기 사용가능성을 없애는 것이므로, 필수적으로 동북아 비핵지대화, 나아가 전 세계의 비핵지대화와 직결된다. 또한 핵무기 뿐 아니라 모든 형태의 핵 개발에 반대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전쟁과 핵에 반대하는 반전반핵평화운동의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제일의 과제는 미국의 핵 선제공격 옵션 폐기와 한국과 일본에 대한 핵우산 정책 폐기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미국의 일방적인 핵공격 전략을 폐기하지 않고서는 핵무기의 위험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특히 미국은 핵 비보유국에 대해서도 핵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고 선언함으로써 최소한의 핵확산방지체제인 NPT마저 심대하게 위협하고 있다.
둘째, 미국의 핵공격 전략은 한-미 군사동맹, 미-일 군사동맹과 연결되어 있고 이러한 군사동맹은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으로 표현되고 있으므로, 군사동맹의 해체와 주둔 미군의 철수 역시 필수적이다. 한미일 군사동맹은 이라크 전쟁에서 침략동맹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군의 신속기동군화와 더불어 앞으로는 아시아 분쟁지역에 있어서 언제든지 개입하는 체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군사동맹 해체와 주둔미군 철수를 위한 투쟁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가야 한다. 이라크 점령과 파병 반대투쟁,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투쟁은 그러한 의미에서 중요한 투쟁이다.
셋째, 전 세계와 우주를 군사화하고 핵군비경쟁을 야기하는 미국의 MD체제를 저지해야 한다. 레이건 시대부터 추진된 ‘스타워즈’의 축소판인 MD체제는 승리하는 핵전쟁을 위한 핵 개발을 동반하는 것이고 이는 우주핵무기로 이어진다. 특히 이는 북한과 중국의 위협론을 명분으로 삼고 있는 만큼 핵 없는 세계를 위해서는 반드시 철폐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핵폐기장 반대투쟁을 비롯하여 핵발전소 반대투쟁을 지속해야 한다. 한국의 반핵운동은 핵폐기장 반대운동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989년부터 2004년까지 여섯 차례에 걸친 핵폐기장 건설을 정부가 추진했지만 번번이 반대운동에 밀려 실패하였다. 안면도, 굴업도, 부안 등에서 주민들과 한 몸이 된 반핵운동의 끈질기고 격렬한 투쟁은 익히 알려져 있고 그에 따라 핵에 대한 인식도 많은 부분 바뀌었다. 그리하여 핵폐기물을 만들어 내는 핵발전소 가동 중단, 핵폐기물의 수송 반대, 핵폐기물의 지하저장 반대와 같은 원칙도 대중운동에 각인되었다. 죽음을 부르는 핵산업과 핵발전소, 핵 폐기장을 반대하는 대중운동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의 적극적인 반전반핵평화를 향한 국제주의는 미국의 핵전쟁 전략과 핵무기 정책, 군사동맹과 미군주둔을 비판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세계전략을 변화시키고 헤게모니를 허물어뜨리는 투쟁이 핵무기 없는 세계와 한반도를 불러 올 수 있다.
지난 8월 6일자 동아일보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 국민의 52%가 한국의 핵무기 보유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대해서는 한국 응답자의 57%가 반대했고 41%는 용인해야 한다고 답했다. 일본인은 86%가 핵무기 보유에 반대했고 독일인도 93%가 반대의견을 나타냈다. 이는 2차 대전 패전국인 일본과 독일이 핵무기 반대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은 데 비해, 오히려 승전국인 미국, 소련 등이 핵 숭배와 군사주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한 역사를 반영한다. 한국 국민들이 승전국의 핵 숭배 이데올로기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한국의 30, 40대 응답자들은 20대나 50대 이상에 비해 한국의 핵무기 보유 찬성률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각각 58.5%, 58.7%, 46%, 46.35%),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는 비율도 더 높았다. 기사는 이를 ‘진보적 386세대의 성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는 반미의식은 높지만 그만큼 미국에 대한 열패감으로 인해 어떤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미국을 따라잡으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386의 진보에 대한 관념이 민족주의적인 열등감, 피해의식을 반영하고 결국 호전적 팽창주의로 전환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한반도는 약소국으로 외세의 침략을 당해 왔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누구도 넘볼 수 없게 힘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는 과거 지배세력이 적극적으로 유포한 것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이러한 대중의 의식은 역사적으로 핵과 관련된 논의가 억압되어 온 한국사회 지형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한국 지배계급은 미국의 한반도 핵 정책(핵무기 배치, 핵 발전)을 시종일관 지지했으며 민중적인 논의는 철저하게 차단했다. 따라서 반핵을 주장하는 것은 국가안보에 반하는 것이었고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이었다. 특히 1945년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떨어뜨린 핵폭탄 피폭자가 6만 명에 이르지만, 한국정부는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철저한 금기가 되게 했다. 한국은 핵폭탄 피폭의 당사자이면서도 해방의 ‘은인’ 미국에 보은하고, 일본을 패망시킨 핵폭탄을 축복하기 위해 이를 은폐하고 억압해 온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은 멀게는 1980년대 반전반핵운동부터 가까이는 작년 부안 핵폐기장 건설 반대투쟁에 이르기까지 ‘반핵평화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대중운동이 한국사회에 이어져 왔지만, 아직 핵에 대한 논의가 충빈히 대중화되지 않은 까닭이 가장 클 것이다.
한편, 소위 ‘북핵 문제’는 15년이 넘도록 ‘미국에 의한 북한 핵개발 의혹 제기-의혹을 둘러싼 장기간의 대치-어정쩡한 타협’이라는 도식을 반복하고 있다. 최근 6자회담 내용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체제보장과 전력공급이 현실적 목적이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둘러싼 토론 과정에서도 한반도 핵 문제에 대한 역사적이고 총체적인 접근을 발견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한반도 핵문제의 역사와 현실을 조망하여 대중적인 인식을 확장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의 핵무기와 비핵화선언
1980년대까지 한국에서 미군 핵무기의 중심 저장지는 군산공군기지였다. 1985년에도 핵공격 능력을 가진 F-4, F-16폭격기에 탑재하는 핵폭탄 60기가 군산에 저장되어 있었다. 또한 용산기지에는 폭파용 핵지뢰(ADM) 담당 공병부대가 있었고, 이들을 포함하여 남한에는 근해 핵무기(핵항공모함, 핵잠수함에서 발사하는 무기),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랜스미사일, 핵 포 등이 있었다. 이처럼 미국이 남한에 배치된 미국 핵무기의 위력은 일본에 투하한 원폭의 1,750배 수준이었다. 또한 미군이 1978년 한미연합사를 창설하고 국제연합군으로부터 작전통제권을 인수함에 따라 한미연합사령관이 미합동참모본부의 지휘 아래 핵사령관의 역할을 하였다, 즉 남한 대통령이 핵통제권을 지휘한 게 아니었다. 남한 육군의 역할은 핵탄두를 관리하는 미군에게 핵능력을 갖춘 운반수단을 제공하는 것뿐이었다. 애초 남한 당국에는 핵무기에 대한 결정권이나 핵전쟁에 대해 논의할 권리, 국내에 있는 핵무기의 종류와 숫자, 핵무기사용 시나리오 등을 알 권리가 없었던 것이다. 남한에 배치된 미국 핵무기는 미국이 북한 핵사찰을 압박하기 위해 1991년 핵무기 감축선언을 한 이후 철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한국전쟁 이후로 40여 년 간 남한 땅에는 미군이 통제하고 사용을 결정하는 핵무기가 국민들은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수천 기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1992년 남북이 한반도 비핵화선언에 서명하고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 핵안전협정을 체결하였지만 한반도의 핵 위험성은 나아졌다고 볼 수 없다.
군사적 효용가치 감소, 정치적 부담 증가로 미국은 주한미군의 전술핵을 철수했지만 한반도에 대한 핵우산정책과 유사시 핵무기를 사용하는 핵 선제공격 옵션을 유지했다. 애초 북한은 1991년 7월에 한반도 비핵평화지대화를 제안했는데, 이는 비핵3원칙(핵무기 제조, 보유, 반입 금지)을 명시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당시 남한 정부에서는 ‘비핵화’로 답했는데, 비핵지대화와 비핵화는 커다란 간극이 있었다. 즉 비핵지대화는 핵무기 반입을 금지하고 한반도에 씌워진 핵우산을 제거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었지만 비핵화는 핵무기 제조와 소유만을 금지할 뿐 미국과 같은 핵보유국들이 정치 군사적 이해에 따라 핵무기를 들여오는 것에 대해서는 제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비핵화 논리는 한반도의 핵 위협을 제거하지 못할 뿐 아니라 미국의 핵우산 유지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컨대 2005년 3월에도 미국의 로스앤젤레스급 핵추진 잠수함이 경남 진해의 해군기지에 정박했다고 운동진영이 폭로했고, 북한도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위반했다고 연일 비난했다. 군 당국은 “비핵화 원칙은 핵무기에만 관련된 것이므로 핵연료로 추진되는 핵잠수함의 입항은 위배되지 않는다”고 둘러댔고, 더욱이 “미국의 핵추진 잠수함과 항공모함은 한미 연합작전 등에 참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한반도 해역으로 들어온다”고 하면서 스스로 사실을 인정하였다. 그것들은 상황에 따라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공격형 핵잠수함이었고, 특히 로스앤젤레스급은 토마호크 미사일을 탑재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미국 해군은 지역분쟁용 전술핵의 두 가지 지주로서 핵잠수함의 핵 토마호크와 공군의 핵폭탄을 유지하기로 밝혔고(1994년 NPR), 특히 핵잠수함의 핵무장 해체만큼은 늘 소극적이었다.
한반도 주변의 핵무기도 커다란 문제다. 미국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 핵무기를 비롯하여 주요 군사전력을 배치하고 있는다. 특히 핵항공모함과 핵잠수함, 핵무기적재함들이 배치되어 있고 이들은 군사작전이나 한미 연합훈련 시에 남한의 군항을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 하와이에는 미태평양사령부를 비롯하여 미태평양 각 군의 공격전략사령부들이 있으며 수백 대의 항공기와 핵잠수함, 순양함 등 10여 척의 함선들이 주둔하고 있다. 괌 섬에서는 핵전략폭격기인 B-52가 정기적으로 발진하여 한반도와 주변 상공을 오가고 있고 일본에는 미 제5공군사령부, 미 제7함대사령부가 주둔해있고 역시 미국의 핵항공모함 등이 드나든다.
요컨대 남한에 핵무기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미국은 언제든지 해외 기지에서 한반도에 핵을 사용할 수 있으므로, 한반도에 핵무기가 배치된 것과 다를 바 없다.
미사일방어체제와 핵태세보고서
미국이 1985년 발표한 전략방위구상(SDI)은 미소간의 핵무기경쟁과 우주공간에서의 군사력 경쟁(스타워즈)에서 미국이 확실한 우위를 점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이미 이전부터 미국은 ‘상호공멸보장’에 근거한 핵전쟁 억지론, 즉 미소가 서로를 확실하게 파괴할 수 있는 대등한 핵전력을 보유하게 되면 서로가 선제 핵공격을 회피할 것이라는 논리에 따라 핵전력을 계속 증강시켰다. 나아가 미국은 소련을 비롯한 적국의 핵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방어체계를 개발하고자 했고, 우주를 이용하는 군사기술을 결합시켜 SDI를 추진했다. 물론 미국은 SDI와 함께 MX나 Trident II와 같은 전략핵무기 개발을 추진했다. 완벽한 방어망은 압도적인 공격적 전략핵무기를 수반해야만 ‘승리하는 핵전쟁’을 완성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소련의 몰락 이후 전략방위구상은 미사일방어체제(MD)로 이어졌다. 1996년 2월 미 국방부는 MD개발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소련의 위협이 사라진 자리를 대체한 것은 북한이나 이란과 같은 소위 ‘깡패국가’들에 의한 미국 본토에 대한 (핵)탄도미사일 위협이었다. 물론 이는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를 잠재적인 적국으로 상정한 것이기도 했다. 즉 미국은 MD를 통해 방어체제를 완벽하게 해야만 완전한 최강의 핵무기국가가 되고 핵 선제공격의 자유를 확대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한반도에 있어서 MD의 의미는 핵 위협과 동의어일 수밖에 없다. 지난 김대중정부는 MD체제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말해 왔지만 이미 MD체제 구축에 필요한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미군기지에 배치되어 있고 이지스함 도입을 추진하는 등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구상에 편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본, 대만의 MD 참여까지 포함하면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한-미-일 삼각 핵 군사동맹이 실질적으로 완성된다.
한편, 미국은 2002년도에 핵태세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이는 중국, 러시아, 이라크, 이란, 북한, 리비아, 시리아 등 7개국에 대해 핵무기를 선제사용 할 수 있다는 것과 벙커버스터와 같은 신형핵무기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심지어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신형핵무기 개발의 목적은 핵무기를 억지무기가 아닌 실전무기로서 활용하기 위한 기술적 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핵사용의 유연성을 높여 기존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를 망라하는 공격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핵 비보유국에 대한 핵선제공격, 신형핵무기 개발은 미국 스스로 NPT(핵확산방지)체제를 위반하는 것이고 세계를 핵무기경쟁으로 몰아가는 것으로서 미국이 “핵 깡패”임을 시인한 것에 다름 아니다. 더욱이 북한에 대한 핵무기 선제공격 가능성 천명은 북한의 격렬한 반발을 불렀고 이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더욱 부추겼다.
남한의 핵개발 문제
남한은 적극적인 핵 개발정책으로 일관해 왔다. 1970년에 미국정부가 아시아 동맹들의 자주국방을 강조하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고 2만 6천명의 주한 미군을 철수하자 안보보장에 불안감을 인식한 박정희는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비밀리에 시작했다. 이에 미국은 1975년까지 프랑스로 하여금 핵 재처리시설을 남한에 넘기지 못하게 압박함으로써 남한의 핵 개발 시도를 저지했다. 이러한 미국의 압력으로 남한은 1975년 4월에 핵확산방지조약(NPT)을 체결하였다. 1977년에 박정희는 더 이상 핵 개발을 시도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비밀 프로그램은 계속되었고 이는 1979년 박정희 암살로 인해 끝난 듯 했다. 1980년대에도 핵무기 개발 계획이 있었는데 이 역시 미국의 압력 때문에 중단되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이를 미국이나 남한당국이 공식적으로 확인한 적은 없다. 미국은 남한에 대한 플루토늄 공급을 계속 금지해왔다. 1975년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안전협정을 체결할 때 남한 핵시설은 연구용 원자로 2개가 전부였으나 이후 남한정부의 적극적인 핵 발전 정책으로 인해 현재 33개의 핵시설이 있다.
남한정부는 언제나 핵무기 개발에 대한 강렬한 유혹을 느끼고 있었다. 이는 2004년에 불거진 핵물질 실험문제에서도 드러났다. 영국 BBC를 비롯한 외신은 남한이 2000년에 극비리에 우라늄 농축실험을 실시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과기부는 대덕 원자력연구소에서 핵연료 국산화를 위해 소수 과학자들이 극소량인 0.2g의 우라늄(235) 분리실험을 한 사실이 확인돼 IAEA에 이 내용을 보고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과기부 발표는 남한이 처음으로 핵무기 제조의 핵심기술인 농축 우라늄 추출에 성공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2004년 9월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은 한국이 1982년에 국제원자력기구에 신고하지 않은 시설에서 우라늄을 전환해 1백50㎏의 금속 우라늄을 생산했으며, 당시 한국에는 천연 우라늄을 '농축에 적절한 우라늄'으로 바꾸는 전환시설이 세 곳 있었고, 이 우라늄이 2000년 레이저 동위원소 분리 실험에 사용됐다고 밝혔다. 또한 국제원자력기구는 남한이 1982년에 소량의 플루토늄 추출 실험을 했다고 밝혔다. 1백50㎏의 금속 우라늄은 원심 분리법을 사용하면 90% 농축도의 무기급 우라늄 0.7㎏을 얻을 수 있는데, 핵무기 1기를 만들기 위해서 25㎏의 고농축 우라늄이 필요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양이 적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로 핵무기 프로그램이 계속 시도되어 왔고 1980년대에도 그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2000년도의 실험이 비록 실험실 수준이더라도 핵무기 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핵심기술에 관한 실험이었으며, 이미 1982년에 핵 재처리를 통해 플루토늄 추출에도 성공한 것이라는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결국 2004년 11월 국제원자력기구는 남한이 과거 핵실험을 통해 플루토늄과 ‘무기급 우라늄’을 생산했지만 핵무기 생산시도와 관련 있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며 UN안보리에는 회부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이는 막판에 미국이 한국 손을 들어준 결과일 뿐이었다.
한편 남한의 핵 개발을 말할 때 핵 발전 산업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한국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핵 발전량이 많은 나라이다. 국내에는 이미 고리, 월성, 영광, 울진에 18기의 원자로가 가동되고 있고 전체 전력의 40% 정도를 충당하고 있다(1,572만kW 용량). 더욱이 울진에 2기(200만kW)의 핵발전소가 추가로 더 건설되고 있으며 2015년까지 8기(960만kW)의 추가 건설이 계획 중이다. 이 추세대로라면 2020년까지 한국은 총 36기, 2,732만kW 용량의 핵발전소가 가동될 것이다. 또한 동일한 부지에 최고 12∼10기의 핵발전소가 동시에 가동되어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최대 용량, 최다 기수의 핵단지가 조성될 것이다. 핵 발전은 저렴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고 안전하지도 않으며 인류와 생태계에 치명적인 핵폐기물을 양산할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핵무기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핵물질과 핵기술 자체가 평화적 목적과 군사적 목적으로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발전 용도를 위해 사용되고 나온 사용 후 핵연료는 재처리를 통해 언제든지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수 있다. 특히 캐나다형 중수로 원자로는 경수로 원자로에 비해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방법이 용이하다. 국내 원자로 가운데 월성의 4개 원자로가 캐나다형이다. 이것은 1974년 인도의 핵무기 개발을 가능하게 했던 원자로와 같은 유형이다.
더욱이 핵발전소의 사고는 핵발전소를 ‘시멘트·콘크리트로 포장된 핵폭탄’이라고 불리게 했다. 서구에서 체르노빌, 드리마일 등 핵발전소의 대규모 사고가 발생하면서 핵발전소 폐기론이 대세를 형성했지만 여전히 한국에서는 핵무기와 핵발전이 무관한 것이고 핵 발전이 꼭 필요한 것으로 선전된다. 이를 바탕으로 다국적 핵기업들은 대거 한국을 공략했고, 그 결과 미국의 웨스팅하우스, 컴버스쳔엔지니어링, 프랑스의 프라마톰, 캐나다 원자력공사 등이 한국 핵발전소의 원자로 대부분을 공급하였다. 한국 핵 산업은 이제 국내를 넘어 국제적으로 진출하는 상황이 되었다. 최근 두산중공업은 미국 웨스팅하우스 원자력사업본부 인수에 나섰고 9월 예비 입찰과 12월 본 입찰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웨스팅하우스는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443개 가운데 절반 가까운 200여기에 원천기술을 공급했고 ‘한국 표준형’의 원천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또한 지난 8월 29일 중국 최대의 발전설비 회사인 하얼빈 전력집단(HAEC)과 중국 내 신규 원전시장에 공동 진출키로 하여 중국 원자력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언론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비판하기는커녕 대담한 투자로 치켜세우고 정부가 지원하라고 촉구한다. 그러나 핵 자본은 다른 말로 핵 군수산업이며 양자는 뿌리가 같다. 한국이 핵 자본을 키울수록 핵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워질 것이다.
북핵문제의 현재성
1992년 IAEA의 북한 핵시설 사찰, 1993년 북한의 NPT 탈퇴와 뒤이은 전쟁위기, 1994년 제네바 합의, 클린턴정부의 제네바 합의 불이행, 1998년 미국의 북한 금창리 지하시설 핵의혹 제기, 1998년 대포동 1호 시험발사, 2002년 1월 부시의 ‘악의 축’ 발언, 2002년 10월 켈리 특사의 북 핵개발 시인 발표, 2002년 12월 북한의 핵동결 해제선언과 IAEA 사찰관 추방, 2003년 8월 1차 6자회담, 2004년 2월 2차 6자회담, 2005년 2월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핵무기 보유 및 6자회담 무기한 중단 선언, 2005년 7월 3차 6자회담 등 북핵을 둘러싼 갈등은 해를 거듭하면서 반복되고 있다.
이른바 ‘우리식 사회주의’를 유지하면서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체제위협과 경제봉쇄에 시달려 왔고 내부 경제위기를 심각하게 겪고 있는 북한이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고 체제를 보장받으며 외부의 경제 원조를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생존전략의 일환이다. 그러나 핵무기 개발을 그 수단으로 삼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미국의 핵전쟁 위협과 체제위협에 대해 핵무기 개발로 맞서는 것은 과거 북한이 주장하는 한반도 비핵지대화에 모순되는 것이고 핵을 둘러싼 대중의 불안을 키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겉으로는 핵무기를 가질 의사가 없다고 하지만 핵무기에 핵무기로 맞서는 것은 군사적 대결을 높이는 것이다. 또한 이는 수십 년 간 지속된 미국의 한반도 핵 위협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하게 될 위험도 있다. 따라서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북한이 미국에 대해 핵무기 개발로 대담하게 맞서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것은 극히 주관적인 사실인식이자 위험한 주장이다.
둘째,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논리 역시 근본적으로는 위험하다. 세계 최대의 핵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비핵보유국의 핵보유를 억압하는 미국의 이중성은 철저하게 비판되어야 한다. 그러나 핵 발전은 원래 핵무기 개발로부터 시작되었고 핵발전과 핵무기 개발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언제든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핵무기와 근본적으로 단절된 핵의 평화적 이용권, 핵 발전 권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 경쟁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다. 인도는 1974년 핵 개발에 성공했다. 이는 사실 핵기술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 간 경계가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이다. 1990년대 인도-파키스탄의 핵 경쟁 와중에 벌어진 칼길전쟁은 핵보유국 사이의 가장 큰 재래식 전쟁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은 상호 13번에 걸쳐 위협적인 핵공격 선언했다. 수천 만의 민중들은 절멸적인 핵미사일 공격 앞에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 처하고 되었고 핵미사일 공격 시 양자가 3분만에 끝장나는 상황에 직면해야 했다. 그 아슬아슬한 순간에 양국은 외부의 압력으로 핵사용 결정을 중단했지만 이는 핵무기 보유는 언제라도 핵공격에 의한 민중의 절멸이라는 파멸적인 상황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 것이다. 핵무기 보유국은 항상 핵무기를 사용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들고, 평화가 아닌 군사주의적 방향으로 전진한다.
핵무기 없는 한반도와 세계를 향하여
비핵지대화에 대한 구상은 오래 전부터 등장했다. 이는 구체적으로 세계비핵지대(NWFW) 혹은 비핵지대(NWFZ) 등의 개념으로 제시되었다. 비핵지대는 해당 지역에서 핵무기의 개발, 제조, 반입, 통과를 금지하고 핵무장 국가들에게 이 지역에서의 핵무기 공격이나 공격 위협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요구하는 제도적 장치를 말한다. 현재 세계에는 4개의 비핵지대가 존재하는데 1)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지역의 트라테롤코 조약(1967년), 2) 남태평양 지역의 라로통가 조약(1985년), 3) 동남아 지역의 방콕 조약(1995년), 4) 아프리카 지역의 펠린다바 조약(1996년, 미발효)이 있다. 2002년 스웨덴 웁살라에서 열린 비핵지대 국제회의에서는 세계비핵지대를 위한 네트워크 결성이 선언된 바 있다. 비핵지대에 대해서는 일본과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의 핵경쟁을 막기 위한 동북아 비핵지대, 인도-파키스탄의 핵전쟁 위협을 차단하기 위한 남아시아 비핵지대, 이스라엘의 핵무기를 없애고 핵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중동 비핵지대, 전술핵무기 철수와 나토 해체를 위한 중부 및 동부유럽의 비핵지대 등이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비핵지대 구상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그 실현을 위한 관심을 촉구한다는 측면에서 유의미하지만, 여러 가지 한계도 지닌다. 핵 문제의 핵심에는 미국과 핵보유국의 핵무기와 핵전략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이를 우회하고서는 비핵지대의 실효성이 없다. 또한 핵무기를 제거하기 위한 투쟁 속에서 사후적으로 조약의 형태가 필요할 수도 있지만, 조약 체결을 중심으로 비핵지대를 달성하기 위해 UN에 의존한다거나 핵보유 국가들에게 조약 준수를 촉구는 것은 기본적으로 다수 대중의 운동이 아니라 정치외교 수단에 호소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담고 있다.
한반도 비핵지대화는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없애고 핵무기 사용가능성을 없애는 것이므로, 필수적으로 동북아 비핵지대화, 나아가 전 세계의 비핵지대화와 직결된다. 또한 핵무기 뿐 아니라 모든 형태의 핵 개발에 반대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전쟁과 핵에 반대하는 반전반핵평화운동의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제일의 과제는 미국의 핵 선제공격 옵션 폐기와 한국과 일본에 대한 핵우산 정책 폐기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미국의 일방적인 핵공격 전략을 폐기하지 않고서는 핵무기의 위험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특히 미국은 핵 비보유국에 대해서도 핵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고 선언함으로써 최소한의 핵확산방지체제인 NPT마저 심대하게 위협하고 있다.
둘째, 미국의 핵공격 전략은 한-미 군사동맹, 미-일 군사동맹과 연결되어 있고 이러한 군사동맹은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으로 표현되고 있으므로, 군사동맹의 해체와 주둔 미군의 철수 역시 필수적이다. 한미일 군사동맹은 이라크 전쟁에서 침략동맹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군의 신속기동군화와 더불어 앞으로는 아시아 분쟁지역에 있어서 언제든지 개입하는 체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군사동맹 해체와 주둔미군 철수를 위한 투쟁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가야 한다. 이라크 점령과 파병 반대투쟁,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투쟁은 그러한 의미에서 중요한 투쟁이다.
셋째, 전 세계와 우주를 군사화하고 핵군비경쟁을 야기하는 미국의 MD체제를 저지해야 한다. 레이건 시대부터 추진된 ‘스타워즈’의 축소판인 MD체제는 승리하는 핵전쟁을 위한 핵 개발을 동반하는 것이고 이는 우주핵무기로 이어진다. 특히 이는 북한과 중국의 위협론을 명분으로 삼고 있는 만큼 핵 없는 세계를 위해서는 반드시 철폐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핵폐기장 반대투쟁을 비롯하여 핵발전소 반대투쟁을 지속해야 한다. 한국의 반핵운동은 핵폐기장 반대운동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989년부터 2004년까지 여섯 차례에 걸친 핵폐기장 건설을 정부가 추진했지만 번번이 반대운동에 밀려 실패하였다. 안면도, 굴업도, 부안 등에서 주민들과 한 몸이 된 반핵운동의 끈질기고 격렬한 투쟁은 익히 알려져 있고 그에 따라 핵에 대한 인식도 많은 부분 바뀌었다. 그리하여 핵폐기물을 만들어 내는 핵발전소 가동 중단, 핵폐기물의 수송 반대, 핵폐기물의 지하저장 반대와 같은 원칙도 대중운동에 각인되었다. 죽음을 부르는 핵산업과 핵발전소, 핵 폐기장을 반대하는 대중운동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의 적극적인 반전반핵평화를 향한 국제주의는 미국의 핵전쟁 전략과 핵무기 정책, 군사동맹과 미군주둔을 비판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세계전략을 변화시키고 헤게모니를 허물어뜨리는 투쟁이 핵무기 없는 세계와 한반도를 불러 올 수 있다.
- 덧붙이는 말
[편집자주] 2004년 11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한국의 농축우라늄 추출 실험을 적발했다는 보도가 발표됐다. 2005년 3월 북한은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다. 이로써 한반도의 핵문제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또한 최근 뉴스의 초점이 된 ‘북한이 핵을 평화적으로 이용할 권리가 있다’는 남한 정부의 입장은 핵 발전과 핵무기의 상호 관계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어느 국가나 핵을 평화적으로 이용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은 핵 발전이 핵무기 개발이라는 동전의 뒷면이라는 사실을 은폐한다(북한이 핵 발전을 지속할 권리가 있다는 남한 정부의 주장은 남한이 어느 시점에서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는 주장의 복선이다). 또한 민중운동 일부도 핵무장은 민족국가의 안보를 위한 고유한 권리라는 통념을 지지한다. 이 상황에서 이른바 ‘핵 자주권’이 민중의 정치적 권리와 양립할 수 있느냐는 질문은 현실정치를 무시한 순진한 주장으로 취급되곤 한다. 사회진보연대 반전팀은 한반도 핵 경쟁과 핵 숭배에 의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우리는 핵확산의 원인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파국을 준비하고 있는지 그에 맞서는 가장 유력한 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을 모을 것이다. 연재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한반도 핵 현실과 반전반핵운동 2. 핵 경쟁과 핵확산, 비극의 역사 3. 세계 반핵평화운동의 역사와 쟁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