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교육카페 '아침해 가득 핀 땅'을 닫으며
카페를 만들기까지
봉천 사거리. 지난 5년 동안 우리의 터전이었던 곳이다. 연극으로 치자면 1막이 끝난 셈인데, 글쎄 2막이 언제 어떻게 다시 시작될 수 있을 지는 아직 모르겠다. 돌아보면 우리에겐 참 긴 시간이었다. 처음 그 날처럼 오늘도 겨울이 찬바람으로 성큼 다가온다.
카페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처음 한 것은 1999년이었다. 혼란과 모색 속에 있던 사회운동의 진로에 대해 좀더 안정적이고 체계적이며 또한 개방적으로 공부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이런 공간을 장기적으로 지속시킬 수 있는 경제적 자립의 방안에 대해 고민했다.
우리는 활동가들은 물론 시민들의 개방적인 만남의 장이자 동시에 시민교육의 장으로서 카페를 만들기로 결정하고 2000년 봄부터 구체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카페를 만드는데 필요한 재정은 '출자조합'을 조직함으로써 해결하였는데, 사회진보연대, 진보교육연구소, 과천연구실 등의 단체를 포함 76명의 회원이 7천만 원 정도를 모을 수 있었다. 2000년 6월에 제작한 '출자조합 가입 안내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민주적, 양심적 시민을 위한 문화인프라 - 시민교육카페
시민교육카페는 세계와 역사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형성하고 함께 나누는 주체적 시민 형성의 장이자, 동시에 편안한 만남과 문화의 장입니다.
보편적 가치와 윤리는 그 이름만 남아 있고, 진지함 없는 이익과 취향에 따라 휩쓸려 가는 것이 대세인 것 같습니다. 이런 추세에 대항할 수 있는 버팀목이 필요합니다. 시민교육카페는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끈질긴 버팀목을 자기 역할로 하고자 합니다. 카페와 강좌를 매개로 하는 만남 속에서 민주적, 윤리적, 문화적 공동체를 이루고자 합니다.
당신과 함께라면 정말 좋겠습니다.
출자조합 가입자가 조금씩 늘어갔고 11월 중순에는 봉천 사거리에 자리를 잡고 내부 공사를 시작하였다. 그럭저럭 12월 말이 되어서야 공사를 마치고, 우여곡절 끝에 '아침해 가득 핀 땅'이라는 묘한 이름을 짓고(아직도 사람들이 못 외운다) 카페의 문을 열게 되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던 우리가 카페의 문을 열기까지의 과정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만큼 어려운 것이었다. 어쨌든 한 달 정도 후, 2001년 1월 28일에 '시민교육카페 출자조합'의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2005년에 5차 총회까지 이어지게 된다. 출자조합 회칙의 전문에는 우리의 지향이 대략 표현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우리는 인간이 인간답게 존중받는 세상을 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랑과 신뢰의 공동체이다.
우리는 시민교육카페 '문화공간 아침해 가득 핀 땅'을 통하여 세계와 역사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형성하며 혼탁한 이 시대를 함께 헤쳐나가고자 이렇게 모였다. 우리는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사랑과 신뢰의 마음으로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내며 끝까지 함께 할 것이다.
시민교육, 성과와 과제
그 해 5월부터 시작한 '아침해 월례특강'은 지난 여름까지 21회가 진행되었다. 대략적인 내역을 보자면 67일간 강좌가 열렸고 매 강좌별로 평균 33명이 참석하여 총 참석자는 400여명에 이른다. 전체 강좌 목록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카페가 그냥 술집이나 찻집이기보다 원래의 의도대로 '시민교육'을 위한 카페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기를 바란다. 시민교육이란 지적 차이의 감축을 위한 하나의 시도다. 운동의 쇠퇴와 함께 그 내부에서 이루어졌던 학습, 토론회 등의 전통 또한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고,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을 통하여 지식에 대한 대중의 권리는 파괴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기초하여, 우리는 정파의 재생산을 위한 폐쇄적 학습을 반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사회운동의 독립적 교육으로 시민교육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대중의 자기통치는 오직 스스로의 지성에 의해 기초지어질 뿐이라면, 이를 뒷받침하는 시민교육은 사회운동의 필수적 과제이다.
지난 5년의 카페 운영은 시민교육을 위한 하나의 시도로서 의미가 있다. 처음부터 시민교육카페를 표방하고 여러 가지 고민과 시도를 하였다. 사회과학 세미나 모임들이 카페를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고, 경제학 및 페미니즘에 대한 일상적 세미나 모임도 만들어 운영했다. 이런 모임들이 '아침해 월례특강'과 연결되어 더욱 체계적인 '교육 네트워크'가 형성될 수 있기를 바랬다. 그래서 월례특강 참석자들, 소모임들, 강사진들 등이 연결되어 지적 욕구를 일상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웹사이트도 구상했었지만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그 외에도 강좌 주제를 다양화하기 위하여 클래식 음악에 대한 강좌나 민중가요에 대한 강좌 등을 모색했었고, 매주 1회씩 진행되는 학기제 강좌의 개설도 고려 중이었다.
총 21회의 아침해 월례특강은 이러한 고민을 배경으로 하여 일관된 기조에 따라 이루어졌다. 한편으로는 카페라는 공간의 안정성이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 편하게 강좌가 이루어지는데 도움이 되었고, 또한 강좌가 끝난 후에도 참석자들의 교류와 친목을 나누기에 적합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카페라는 공간의 개방성이 활동가 이외에도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참석하는데 부담을 덜어주었는데 주로 마르크스주의라는 주제에 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카페에 드나들던 여러 손님들이 많은 관심을 가졌었다. 아침해 월례특강을 통해 마르크스주의를 처음 접했다던 한 손님은 카페 정리를 아쉬워하는 메일을 보내오기도 했다.
특히 과천연구실과 결합된 월례특강은 활동가들에게 많은 반향을 낳았다. 자기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느끼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소홀하게 되는 활동가들에게 이러한 강좌는 사회운동의 문제의식을 심화하고 확장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특히 페미니즘에 대한 몇 차례의 강좌는 '급진적 페미니즘'의 한계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가능성에 대하여 활동가들이 공통된 인식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침해 월례특강으로 진행되었던 시민교육의 시도가 활동가들 사이에서 공통된 인식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고 나아가 연대의 맹아로 뿌리내렸다면, 시간이 좀더 흐르고 난 뒤 시민교육의 새로운 시도는 좀더 넓은 지평에서 재개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5년의 시도는 경제적 실패로 이렇게 막을 내렸다. 앞으로 시민교육의 문제의식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카페라는 공간도 매우 유용하였지만 다른 가능성들도 많아 보인다. 그러나 시민교육이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정파적 협소함에 빠지지 말고, 보편성과 개방성을 통해 '지식에 대한 대중의 권리'를 실현하는데 복무해야 한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민교육카페 '아침해 가득 핀 땅'의 경험에 기반하여 향후의 과제를 몇 가지로 정리해 본다.
첫째, 시민교육의 목적에 공감하는 폭넓은 지식인 네트워크를 구성하여야 한다. 시민교육의 가장 중요한 축은 과학적 지식을 제공하고 대중들과 교통할 수 있는 강사진이다. 이러한 강사진이 좀더 넓어져야 할 것이다. 시민교육의 내용도 마르크스주의에 한정되지 않는 과학적 지식의 영역들로 확대해 나가고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형태의 강좌를 일상화할 수 있다.
둘째, 대중적인 교육사업으로 시민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교육의 내용을 다양하게 구성하고 개방적인 분위기를 통하여 참여 대상을 적극적으로 확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적인 연대망을 통하여 지역에 뿌리내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활동가 재교육이라는 측면에서도 세심한 기획이 필요한데, 이것이 활동가들만의 공간에서보다 오히려 대중적인 공간에서 진행될 때 활동가들은 대중적인 교통 속에서 서로 반추하는 경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시민교육의 장 속에서 활동가들과 대중의 결합이 일상적인 학습조직의 구성으로 고양될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시민교육이 운동의 보편적 과제임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소위 정치공학, 현장실무, 투쟁방침 등의 '실천영역'에 대한 편향적 강조는 과학적 지식에 대한 욕구를 호사스런 일로 치부하곤 한다. 그러나 실천적 경험의 축적이 과학적 인식을 대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한 대중의 지성에 기초하지 않은 운동은 사상누각일 뿐이다. 그러므로 활동가들은 변화하는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이론적 역량을 축적하기 위하여 계속 노력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지식에 대한 대중의 권리를 확장하는 시민교육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봉천 사거리. 지난 5년 동안 우리의 터전이었던 곳이다. 연극으로 치자면 1막이 끝난 셈인데, 글쎄 2막이 언제 어떻게 다시 시작될 수 있을 지는 아직 모르겠다. 돌아보면 우리에겐 참 긴 시간이었다. 처음 그 날처럼 오늘도 겨울이 찬바람으로 성큼 다가온다.
카페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처음 한 것은 1999년이었다. 혼란과 모색 속에 있던 사회운동의 진로에 대해 좀더 안정적이고 체계적이며 또한 개방적으로 공부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이런 공간을 장기적으로 지속시킬 수 있는 경제적 자립의 방안에 대해 고민했다.
우리는 활동가들은 물론 시민들의 개방적인 만남의 장이자 동시에 시민교육의 장으로서 카페를 만들기로 결정하고 2000년 봄부터 구체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카페를 만드는데 필요한 재정은 '출자조합'을 조직함으로써 해결하였는데, 사회진보연대, 진보교육연구소, 과천연구실 등의 단체를 포함 76명의 회원이 7천만 원 정도를 모을 수 있었다. 2000년 6월에 제작한 '출자조합 가입 안내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민주적, 양심적 시민을 위한 문화인프라 - 시민교육카페
시민교육카페는 세계와 역사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형성하고 함께 나누는 주체적 시민 형성의 장이자, 동시에 편안한 만남과 문화의 장입니다.
보편적 가치와 윤리는 그 이름만 남아 있고, 진지함 없는 이익과 취향에 따라 휩쓸려 가는 것이 대세인 것 같습니다. 이런 추세에 대항할 수 있는 버팀목이 필요합니다. 시민교육카페는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끈질긴 버팀목을 자기 역할로 하고자 합니다. 카페와 강좌를 매개로 하는 만남 속에서 민주적, 윤리적, 문화적 공동체를 이루고자 합니다.
당신과 함께라면 정말 좋겠습니다.
출자조합 가입자가 조금씩 늘어갔고 11월 중순에는 봉천 사거리에 자리를 잡고 내부 공사를 시작하였다. 그럭저럭 12월 말이 되어서야 공사를 마치고, 우여곡절 끝에 '아침해 가득 핀 땅'이라는 묘한 이름을 짓고(아직도 사람들이 못 외운다) 카페의 문을 열게 되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던 우리가 카페의 문을 열기까지의 과정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만큼 어려운 것이었다. 어쨌든 한 달 정도 후, 2001년 1월 28일에 '시민교육카페 출자조합'의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2005년에 5차 총회까지 이어지게 된다. 출자조합 회칙의 전문에는 우리의 지향이 대략 표현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우리는 인간이 인간답게 존중받는 세상을 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랑과 신뢰의 공동체이다.
우리는 시민교육카페 '문화공간 아침해 가득 핀 땅'을 통하여 세계와 역사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형성하며 혼탁한 이 시대를 함께 헤쳐나가고자 이렇게 모였다. 우리는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사랑과 신뢰의 마음으로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내며 끝까지 함께 할 것이다.
시민교육, 성과와 과제
그 해 5월부터 시작한 '아침해 월례특강'은 지난 여름까지 21회가 진행되었다. 대략적인 내역을 보자면 67일간 강좌가 열렸고 매 강좌별로 평균 33명이 참석하여 총 참석자는 400여명에 이른다. 전체 강좌 목록은 다음과 같다.
제1회 2001. 5. 2 <한국경제의 현주소> 정운영(경기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제2회 2001. 6. 4 <문화 예술의 진정성> 김정환(시인, 한국문학학교 교장)
제3회 2001. 7.23∼7.28 (6회)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 윤소영(한신대학교 국제경제학과 교수)
제4회 2001. 9.28 <21세기 여성문화> 이혜경(여성문화예술기획 대표)
제5회 2001.10.29 <性과 경제: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의 불행한 결혼'?> 권현정(과천 연구실)
제6회 2001.11.19 <性적 차이의 페미니즘: 뤼스 이리가레 사상의 독자성> 이미경(과천 연구실)
제7회 2002. 1.24∼2.7 (5회) <자본주의의 위기와 역사적 마르크스주의> 과천연구실
제8회 2002. 3.18 <한국 교육의 나아갈 길> 정은교(진보교육연구소 소장, 교육비평 편집위원)
제9회 2002. 4.15 <현 정세와 민중운동의 과제> 임필수(사회진보연대 정책국장)
제10회 2002. 7.15∼8.1 (6회)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 과천연구실
제11회 2002.10.22 <현 정세와 민중운동의 과제> 김종섭(노동의 미래를 여는 현장연대 대표)
제12회 2002.11.18 <性매매와 여성인권> 전수경(성매매 피해여성 지원센터 새움터 사무국장)
제13회 2003. 2.10∼2/14 (5회)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과 평의회 마르크스주의> 윤소영(한신대학교 국제경제학과 교수)
제14회 2003. 3.17 <인권의 역사, 그리고 사회권에 대하여> 이주영(인권운동사랑방)
제15회 2003. 4.21 <근대 자본주의 사회와 아동: 아동 인권의 완전한 실현을 위한 조건의 탐색> 배경내(인권운동사랑방)
제16회 2003. 5.19 <과거청산과 인권> 박래군(인권운동사랑방)
제17회 2003. 8.18∼9.28 (8회) <페미니즘 역사의 재구성: 가족과 성욕을 둘러싼 쟁점들> 과천연구실
제18회 2004. 2.16∼2.20 (5회) <'인권의 정치', 정치철학, 사회학, 페미니즘> 과천연구실
제19회 2004. 7. 4∼8.22 (8회) <현대경제학 특강> 윤소영(한신대학교 국제경제학과 교수)
제20회 2005. 2.14∼3.1 (6회) <대중교육: 역사 이론 쟁점> 과천연구실
제21회 2005. 8.29∼9.7 (6회) <인민주의 비판> 과천연구실
우리는 카페가 그냥 술집이나 찻집이기보다 원래의 의도대로 '시민교육'을 위한 카페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기를 바란다. 시민교육이란 지적 차이의 감축을 위한 하나의 시도다. 운동의 쇠퇴와 함께 그 내부에서 이루어졌던 학습, 토론회 등의 전통 또한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고,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을 통하여 지식에 대한 대중의 권리는 파괴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기초하여, 우리는 정파의 재생산을 위한 폐쇄적 학습을 반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사회운동의 독립적 교육으로 시민교육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대중의 자기통치는 오직 스스로의 지성에 의해 기초지어질 뿐이라면, 이를 뒷받침하는 시민교육은 사회운동의 필수적 과제이다.
지난 5년의 카페 운영은 시민교육을 위한 하나의 시도로서 의미가 있다. 처음부터 시민교육카페를 표방하고 여러 가지 고민과 시도를 하였다. 사회과학 세미나 모임들이 카페를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고, 경제학 및 페미니즘에 대한 일상적 세미나 모임도 만들어 운영했다. 이런 모임들이 '아침해 월례특강'과 연결되어 더욱 체계적인 '교육 네트워크'가 형성될 수 있기를 바랬다. 그래서 월례특강 참석자들, 소모임들, 강사진들 등이 연결되어 지적 욕구를 일상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웹사이트도 구상했었지만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그 외에도 강좌 주제를 다양화하기 위하여 클래식 음악에 대한 강좌나 민중가요에 대한 강좌 등을 모색했었고, 매주 1회씩 진행되는 학기제 강좌의 개설도 고려 중이었다.
총 21회의 아침해 월례특강은 이러한 고민을 배경으로 하여 일관된 기조에 따라 이루어졌다. 한편으로는 카페라는 공간의 안정성이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 편하게 강좌가 이루어지는데 도움이 되었고, 또한 강좌가 끝난 후에도 참석자들의 교류와 친목을 나누기에 적합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카페라는 공간의 개방성이 활동가 이외에도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참석하는데 부담을 덜어주었는데 주로 마르크스주의라는 주제에 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카페에 드나들던 여러 손님들이 많은 관심을 가졌었다. 아침해 월례특강을 통해 마르크스주의를 처음 접했다던 한 손님은 카페 정리를 아쉬워하는 메일을 보내오기도 했다.
특히 과천연구실과 결합된 월례특강은 활동가들에게 많은 반향을 낳았다. 자기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느끼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소홀하게 되는 활동가들에게 이러한 강좌는 사회운동의 문제의식을 심화하고 확장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특히 페미니즘에 대한 몇 차례의 강좌는 '급진적 페미니즘'의 한계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가능성에 대하여 활동가들이 공통된 인식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침해 월례특강으로 진행되었던 시민교육의 시도가 활동가들 사이에서 공통된 인식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고 나아가 연대의 맹아로 뿌리내렸다면, 시간이 좀더 흐르고 난 뒤 시민교육의 새로운 시도는 좀더 넓은 지평에서 재개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5년의 시도는 경제적 실패로 이렇게 막을 내렸다. 앞으로 시민교육의 문제의식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카페라는 공간도 매우 유용하였지만 다른 가능성들도 많아 보인다. 그러나 시민교육이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정파적 협소함에 빠지지 말고, 보편성과 개방성을 통해 '지식에 대한 대중의 권리'를 실현하는데 복무해야 한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민교육카페 '아침해 가득 핀 땅'의 경험에 기반하여 향후의 과제를 몇 가지로 정리해 본다.
첫째, 시민교육의 목적에 공감하는 폭넓은 지식인 네트워크를 구성하여야 한다. 시민교육의 가장 중요한 축은 과학적 지식을 제공하고 대중들과 교통할 수 있는 강사진이다. 이러한 강사진이 좀더 넓어져야 할 것이다. 시민교육의 내용도 마르크스주의에 한정되지 않는 과학적 지식의 영역들로 확대해 나가고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형태의 강좌를 일상화할 수 있다.
둘째, 대중적인 교육사업으로 시민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교육의 내용을 다양하게 구성하고 개방적인 분위기를 통하여 참여 대상을 적극적으로 확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적인 연대망을 통하여 지역에 뿌리내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활동가 재교육이라는 측면에서도 세심한 기획이 필요한데, 이것이 활동가들만의 공간에서보다 오히려 대중적인 공간에서 진행될 때 활동가들은 대중적인 교통 속에서 서로 반추하는 경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시민교육의 장 속에서 활동가들과 대중의 결합이 일상적인 학습조직의 구성으로 고양될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시민교육이 운동의 보편적 과제임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소위 정치공학, 현장실무, 투쟁방침 등의 '실천영역'에 대한 편향적 강조는 과학적 지식에 대한 욕구를 호사스런 일로 치부하곤 한다. 그러나 실천적 경험의 축적이 과학적 인식을 대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한 대중의 지성에 기초하지 않은 운동은 사상누각일 뿐이다. 그러므로 활동가들은 변화하는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이론적 역량을 축적하기 위하여 계속 노력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지식에 대한 대중의 권리를 확장하는 시민교육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