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라르 뒤메닐, 도미니크 레비, 『자본의 반격』
경제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는 것
사회와 역사를 연구하는 다종다양한 학문 속에서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자라 부르는 사람들을 드물게 찾을 수 있지만, 경제학계 내에서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자라 일컫는 이는 거의 없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일종의 복마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경제학계 내에서 자신의 입장을 마르크스주의로 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위험천만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경제학에서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을 취한다는 것이 사회적이고 철학적인 개념과 관점을 동원하여 경제학을 보충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들은 비주류 경제학이라는 좀 더 넓은 범위로 마르크스적인 것이 포괄되는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이런 입장들은 사실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비평(판)적 경제학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경제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자로서 경제 또는 경제학을 연구할 수 있는 어떤 마땅한 참고서적을 필요로 한다. 이런 의미에서 제라르 뒤메닐1)의 이론적 작업은 경제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례이다. 그는 경제학 내에서 이론적으로도 또한 경험적으로도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자가 경제학을 연구할 수 있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회학이나 여타 다른 종류의 이른바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이들이 경제학을 접하고, 경제학적 토론에 나서게 될 때 부딪히는 최초의 어려움은 경제학이 전개하고 있는 그 자체로 엄밀한 논리적 치밀성이다. 그 논리의 가정과 결론이 어떤 것이건 간에 경제학적 논리과정은 다른 사회과학이 침범할 수 없는 논리적 엄밀성을 지닌다. 경제학자들 자신조차 그 같은 엄밀성에 질려버릴 정도이다. 마르크스 자신이 그랬지만, 경제학에서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을 취하려고 하는 모든 이들은 바로 그 엄밀한 논리적 완결성 속에 작업을 해나가야 하고, 그 작업에 필요한 논리적 도구들을 끊임없이 증식하여 나가야만 한다. 제라르 뒤메닐과 그의 오랜 동료인 도미니크 레비의 작업은 그러한 엄밀한 작업이 마르크스 이후에도 계속되어야하고 또한 가능한 것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에 많은 주목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라르 뒤메닐과 도미니크 레비의 작업은 (대중들의) 관심에 비해 우리에게 소개된 것이 매우 적다. 이른바 ‘신해석’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작업의 일부와 최근 작업인 현대 미국 자본주의 분석과 그와 관련된 ‘신자유주의 비판’을 몇몇 연구자들이 간간히 소개했을 뿐이다. 이는 상당히 불충분한 것인데, 이런 소개 과정은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이들의 작업 전체를 포괄하여 전달할 수 있는 전문적 연구자도 찾아볼 수가 없고, 설사 소개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작업이 대중적으로 수용되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2) 뒤메닐과 레비 스스로 몇몇 저작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들 작업의 범위란 경제학의 모든 영역을 마르크스주의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뒤메닐과 레비도 알고 있는지, 그들은 최근 자신들의 작업을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저작들을 발표하였다.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들의 이론적인 작업을 포괄하여 대중적으로 소개한 책으로 데쿠베르트 출판사에서 2003년에 출간한『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3)이 대표적이다. 이번에 번역 소개된 『자본의 반격(이하 반격)』또한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이 책이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전개를 주로 다루고 있긴 하지만 곳곳에서 그들이 지속해온 오랜 작업들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번에 번역된 이 책을 꼼꼼히 읽어나간다면 미약하나마 그들의 작업에 한 발짝 다가서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뒤메닐과 레비의 마르크스 경제학 재구성에 대한 전반적 개요
뒤메닐과 레비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관점을 특징짓는 전반적인 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우선 ‘불균형 미시경제학’(microeconomie de desequlibre)이라는 이름 하에서 경쟁과 경기순환을 포괄하는 일반적 불균형 모형(modele de desequlibre general)을 구성한다. 여기서 ‘일반적’이라는 것은 흔히 주류 경제학에서 성립된 ‘일반 균형’에서의 그것과 같다. 각각의 변수들이 상호의존적이라는 의미인데, 생산은 수요의 함수이고, 수요는 소득으로부터 유도된다는 것이다. 부분(partiel)과는 대립되는 의미에서 일반적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불균형 모형에서 자본의 배분은 수익성의 차이에 기초한다. 자본가는 이 모형 내에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사이에서 생산량과 가격을 설정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 다루던 균형 (자체)에 대한 분석보다는 균형의 안정성과 불안정성에 대한 분석이 강조된다. 어떤 (구조적) 매개변수와 반응계수의 영향 하에서 균형이 안정적이거나 불안정한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또한 자본가들의 불균형에 반응하는 행위 이외에 자본가들에게 주어지는 은행 대부까지 고려된다.
이러한 모형으로부터 네 가지 경우를 유추할 수 있다. 먼저 단기(short-term)의 경우, 자본스톡은 고정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 장기(long-term)에서는 그와는 달리 자본스톡이 조정된다. 단기에서 자본가들에 의해 관찰된 불균형은 가동률(capacity utilization rates)과 가격의 조정을 야기한다. 만약 가격이 단기에 경직적이고, 심지어는 고정되어 있다면 기업은 수량조정을 통해 단기적으로 발견한 불균형을 해소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러한 단기적인 동학이 진행되는 가운데서 장기변수들의 조정도 일어나는데 단기적 가동률 조정에 의해 발생하는 신호에 따라 장기적 변수인 가동률에 의존하는 가격이 조정된다. 장기적 균형은 일시적인 (단기) 균형들의 연속으로 파악된다. 여기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이 ‘비례’(proportion)와 ‘차원’(dimension)의 구분이다. 비례는 변수들의 상대적 값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것은 상대 가격, 상대적인 산출, 상대적인 자본스톡의 값 등이 될 수 있다. 이에 비해 차원은 ‘거시경제’와 동의어로서 총생산 수준을 의미한다.
단기에서 비례(proportion in short-term)는 주어진 자본스톡 안에서 가격과 산출량이 조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장기에서 비례(proportion in long-term)는 자본스톡이 변화하는 것을 의미하며, 수익성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부문 간 자본이동을 말한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이야기하는 ‘생산가격’의 문제다. 이를테면 어떤 한 부문에 수요에 비해 너무 많은 자본스톡이 존재한다고 보자. 최초의 자본가는 수량조정에 의해 이에 반응하여 낮은 가동률을 유지한다. 이윤율은 이러한 낮은 가동률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윤율은 장기에서 자본 배분의 지표가 되고, 이에 따라 자본의 이동이 발생한다.
단기에서 차원(dimension in short-term)은 대체로 거시경제학의 주요 문제가 된다. 경기순환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장기적 차원은 축적의 동학과 연관된다. 앞선 네 측면, 즉 비례와 차원과 연관된 장기와 단기적 측면에서 문제시되는 것은 ‘비례의 안정성’과 ‘차원의 불안정성’이다.4) 뒤메닐과 레비에 의하면 자본주의의 강점은 바로 비례를 관리하는 능력, 자본을 배분하고 산출을 조정하며 상대가격을 정정하는 데 있다. 반면 이러한 경제의 약점은 주기적인 과열과 침체로의 경향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누적적 과정(processus culuatifs)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비례와 차원의 안정성은 또한 일종의 상충관계를 갖게 된다. 만약 수요가 어떤 시점에서 감소하였다면, 재고가 상승하고, 이러한 수요의 축소에 영향 받은 기업은 그들의 생산능력을 축소시킨다. 그리고 기업의 반응은 개별적 기업의 입장에서는 효율적인 것이다. 이러한 측면이 바로 비례(의 안정성)와 연관된다. 이러한 개별적 기업의 반응은 거시경제에 영향을 주게 되는데, 몇몇 기업의 이러한 행동은 노동자는 물론이고, 자본가들 각각의 소득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초의 반응이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한 수요 축소는 더 낮은 수요로 이끌린다. 여기서 화폐와 신용의 존재는 모호한 측면을 갖으며, 동시에 그것은 일반적 불균형 모형의 안정성과 불안정성의 주요 결정소이다.5)
자본주의 경제의 (최)장기(very long-term)에서 동학은 역시 마르크스가 분석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과 관련이 있다. 뒤메닐과 레비는 이 분야에서도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이 논쟁과 관련된 논의는 국내에도 일부 소개되어 있다.6)
그들에 따르면 ‘이윤율의 저하’는 ‘기술’과 ‘임금결정’에 의해 설명된다. 즉, 기술변화와 분배의 장기적인 동학이 이윤율의 저하를 설명하는 핵심 부분이라는 것이다. 분배, 특히 실질임금의 (장기적) 변화에 관련한 논의는 국내에 많이 소개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기술변화에 관해 집중해보자.
경제학에서 기술변화에 대한 이론은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기술이라는 재화 자체의 특수한 성격에 주목하는 폴 로머의 이론이나, 인적 자본(human capital)을 강조하는 루카스의 이론 등이 대표하는 새성장이론(New Growth Theory)이 그러한 것이다. 주류 경제학이나 마르크스 경제학 모두 마찬가지로 경제의 장기동학, 또는 경제성장의 엔진은 ‘자본축적’과 ‘기술진보’이다. 특히 ‘기술’에 관해서는 경제학에서 어떤 제대로 된 설명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주류경제학에서는 ‘기술’을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 쯤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 대표 격이 경제성장에 대한 교과서적 설명이라 할 수 있는 솔로 모형이다. 기술이라는 것은 이러한 외생적인 요소로 묘사된다. 다시 말하자면 기술은 경제 내부에서 발생하는 내생적인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에 비해 마르크스를 비롯한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기술변화(또는 진보)를 경제 내적인 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설명해왔다. 마르크스경제학 이외의 이른바 ‘비주류 경제학’(포스트 케인지언으로 대표되는)에서는 관점을 받아들여 내생적인 기술변화이론을 전개하고 있는데, 그것이 그 유명한 ‘칼도-버둔’(Kaldor-verdoon)의 법칙이다. ‘칼도-버둔’의 법칙은 아담 스미스이론의 현대적 개역판이라고 볼 수 있는데, 수요의 확대가 분업의 확대를 가져옴으로써 일인당 생산량이 증가하는 것으로 기술변화를 묘사한다.
이전에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은 여러 기술변화에 대한 이론(및 모형)을 줄기차게 연구해왔는데, 그들은 비록 자신들의 진영에서 나온 것은 아니지만 60년대 케네디-바이제커-사무엘슨으로 이어지는 ‘유발된 기술변화’(induced technical change)에 대한 설명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유발된 기술변화’ 모형이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경제의 특징적인 기술변화 양식으로 묘사한 ‘편향적 기술변화’7)를 설명할 수 있는 모형이기 때문이었다. 샤와 데자이는 1981년, 유발된 기술변화 모형과 굳윈의 성장순환 모형을 종합하여 자본축적과 기술변화 모형을 구성8)하였으며, 덩컨 폴리는 2003년에 샤와 데자이가 구성한 것과 동일한 모형9)을 다시 소개하게 된다. 특히, 샤와 데자이는 이러한 모형 구성을 통해 자본가가 임금몫의 변동이라는 상황에서 기술변화를 통해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무기를 갖고 있음을 밝혀냈다. 즉, 임금몫의 변동을 통해 이윤몫이 줄어드는 상황에 직면하는 자본가는 기술선택을 통해서(만약 선택할 수 있는 기술의 매우 광범위하다면) 이러한 변동성으로부터 벗어나 안정적 이윤몫과 그에 따른 안정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10)
뒤메닐과 레비가 발전시킨 기술변화 모형은 훨씬 혁신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들은 그 모형을 ‘고전파-마르크스적인 스토캐스틱(stochastic)한 진화적 기술변화 모형’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이 모형을 통해 기술선택의 문제를 다루면서 주류 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경제적 동기에서 발생하는 기술진보를 설명한다.11) 또한 앞서 설명한 ‘유발된 기술변화’ 모형이 케네디-바이제커-사무엘슨에 의해 이른바 생산함수(production function)를 보충하는 설명으로 나온 것에 비해, 스토캐스틱 모형은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생산함수와 같은 일종의 기술변화에 대한 청사진을 갖고 있지 않다. 기술은 매기마다의 확률변수(스토캐스틱)로 표현되고, 자본가가 선택하게 되는 기술집합은 균등분포(uniform distribution)을 갖는다. 즉, 어떤 기술이라도 그것이 선택될 수 있는 확률은 모두 같다. 기술진보가 국소적(local)으로 발생한다면, 편향적 기술진보를 선험적으로 가정하지 않아도 ‘(기술) 혁신의 곤란’(diffculte d'innover)12)이 부과되어 자본주의 경제의 편향적 기술진보가 출현한다는 의미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형태의 기술진보 양상은 앞서 밝힌 실질임금의 장기적인 궤도와 관련되어 이윤율의 저하를 발생시킨다. 이러한 이윤율의 저하 궤도는 동학적인 관점에서 안정적인데, 그리하여 우리는 그것을 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본의 반격』읽기
우리는 지금까지 뒤메닐과 레비가 거의 20년 넘게 발전시켜 온 이론의 가장 중요한 부분들을 검토해 보았다. 이 내용들은 이번에 번역된 『반격』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어가 있다. 앞서 정리한 내용들은 사실 일반독자들이 보기에는 굉장히 난해하고 전문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뒤메닐과 레비는 그것들이 본문에서 소화되기 어려울 경우에는 박스를 통해 설명해주고 있다. 『반격』을 읽는 독자들이 박스 속에서 들어있는 내용들만이라도 꼼꼼히 읽어 내려간다면, 그들의 신자유주의 비판 배후에 있는 경제이론적 기초를 부족하나마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성미가 급한 사람들은 번역된 책을 입수하면, 제일 처음 역자(들)의 후기를 보곤 한다. 그것은 아마도 번역한 저자들이 이 분야의 전문가일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책의 내용을 조금이라도 빨리 접하고 싶은 조급함에서 비롯되는 것일 게다. 물론 이런 방식의 독서는 필자도 취하고 있는 방식이고, 때때로 이런 독서가 책의 본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때도 있다. 그것은 역자들이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며, 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였을 때 가능한 것이다. 역자후기가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면, 그들의 번역에 아무리 흠잡을 곳이 없다고 할지라도, 번역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필자는 이번에 번역된 『반격』을 반쯤 읽다가 덮어버렸는데, 그것은 사실 이미 번역되기 전에 영어로 발간된 책을 읽은 것도 하나의 이유이겠지만, 주로 그 책 끝에 덧붙여진 역자후기의 불성실함 때문이었다. 이 역자들의 이전 작업을 대충 알고 있는 필자로서는 대단히 당혹스럽고, 이런 식의 서평을 쓰는 것 자체가 매우 곤혹스럽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서평이 오히려 뒤메닐과 레비의 작업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역자들은 자신들의 후기에서 뒤메닐과 레비의 작업 속에서 ‘이윤율 저하’에 대해 명확한 메커니즘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필자는 납득하기가 어렵다. 뒤메닐과 레비의 이윤율 저하 메커니즘은 자본주의 경제의 장기적인 기술변수와 분배변수의 동학에서 발생한다. 역자들의 말처럼 그들의 분석이 ‘사후적이고, 역사적이라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우리가 앞서 살펴본 뒤메닐과 레비의 전체 이론적 맥락을 전혀 알지 못하는(또는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우리에게 알려진 이윤율의 경험적 추정이라는 사실에만 주목할 경우 발생하는 오독이다. 물론 역자들이 이윤율의 저하를 제도들의 변화와 ‘계급투쟁’이라는 관점에서 모두 총괄하는 어떤 틀의 부족을 이야기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또한 상당한 오독에 근거한다. 역자들은 뒤메닐과 레비가 이윤율의 저하를 ‘경제’ 변수와 관련시키고, 제도만을 ‘계급투쟁’의 결과라고 말함으로써 결국 구조적 위기와 계급투쟁의 관계를 경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역자들의 이러한 관점은 계급투쟁에 대한 역자들의 모호한 정의로부터 비롯되는 것으로, 그들은 역사적 계기로서의 계급투쟁과 계급관계 그 자체로 설명될 수 있는 계급투쟁의 존재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역자들의 관점은 역사적 계기로서의 계급투쟁과 가깝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설명하고 있는 계급투쟁은 단순한 사건, 또는 역사적 계기로서의 계급투쟁이 아니다. 계급투쟁은 생산관계의 조건이자 결과인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뒤메닐과 레비의 설명은 충실하다. 사실 뒤메닐과 레비는 거시경제적 안정성과 기술진보와 관련된 관리계급의 출현과 계급관계 또는 생산관계의 변형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다룬 바 있다. ‘이윤극대화 노동’(profit maximization labor)이라고 불리는 관리계급의 노동이 거시경제적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과 R&D과정으로 대표되는 기술혁신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바로 그것이다.13) 다시 말해 뒤메닐과 레비는 역자들의 관점에서처럼 제도의 형성과 기술변화를 따로따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윤율 저하에 대한 반작용과 관련하여 이른바 생산관계 변용의 조건이자 결과로서의 계급투쟁을 설명한다. 이는 『반격』의 전반적인 구성이기도 하고, 이 책이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경제학 비판에 대한 본격적 논의의 조건들
필자는 이 서평을 쓰고 있는 중에 『반격』이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음을 전해 들었다. 이는 매우 환영할만한 결과이며, 한국어 번역과 관련해서도 몇 군데를 제외하면 마르크스 경제학의 재구성에 큰 공헌을 하고 있는 뒤메닐과 레비의 작업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한다. 다만 역자후기를 접하는 이들이 불필요한 오해를 갖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현재적 상황, 특히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을 피해갈 수는 없다. 물론 ‘경제학 비판’의 관점은 현재적 시각에서 재구성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수학적 방법에 의해서건, 또는 개념적인 측면에서건 말이다. 뒤메닐은 경제학 비판의 역사 속의 가장 논쟁적인 쟁점들에 개입하면서, 경제학 비판을 재구성할 수 있는 전거들을 마련해왔다. 뒤메닐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재구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역사와 경제학 비판의 역사에 대한 학습은 물론이고, 그의 작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논의 또한 절실하다.
1) 우리에게 도미니크 레비와의 공동작업으로 주로 알려진 뒤메닐은 1970년대에는 주로 독자적인 저작들을 발표해왔으며(이 때 발표한 주요저작들에서 대부분의 핵심적인 입장들이 모두 수립된다. 후에 이루어지는 레비와의 작업은 이러한 입장에 대한 정교화 및 재구성이라고 볼 수 있다), 레비의 공동작업은 80년대에 이르러 시작된다. 레비와의 작업은 그의 작업에 핵심을 이루는 것으로, 이른바 고전파 장기이론과 연관된 생산가격 분석과 경기순환을 통합하는 작업, 그리고 이윤율 저하에 대한 경험적 추정과 이론적 기반의 재구성(기술변화와 임금이론에 관련한)등이 중심을 이루었다. 최근에 뒤메닐은 ATTAC 학술 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그곳에서는 주로 『금융의 세계화』로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바 있는 도미니크 플리옹과 저술 및 강의활동을 하고 있다. 도미니크 플리옹은 역시 ATTAC 학술 위원회 소속으로 최근에 마르크스-케인즈-슘페터를 종합하는 관점에서 미국의 90년대 신경제를 분석한 Le nouveau capitalisme, La decouverte, 2003을 발표하였으며, 그의 화폐와 금융 메커니즘에 대한 교과서인 La monnaie et ses mecanismes, Quartrieme editions, La decouverte, 2004은 해당분야에 대한 적절한 참고서적이 없는 우리로서는 또한 주목할 만한 책이다. 그들은 ATTAC 학술 위원회에서 현대 자본주의(신자유주의)에 대한 케인즈주의와 마르크스주의 분석의 차이와 공통점에 관해서 강의하기도 하였으며, 2004년 뭄바이에서는 프랑스 ATTAC의 대표 격으로 유럽통합과정과 연관된 자유무역과 금융통합의 문제를 다루는 논문, 세계화와 더불어 발생하는 사회적 불안정성(insecurite sociale)를 지적하는 논문등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본문으로
2) 이것은 언어적 장벽과 기술적 장벽, 두 가지 차원에서 기인한다. 뒤메닐과 레비의 작업에서 핵심을 이루는 부분은 상당한 난이도의 수학적 기술을 요구한다. 본문으로
3) G. Dumenil & D. Levy, Economie marxiste du capitalisme, La decouverte, 2003. 이에 상응하는 짤막한 논문이 「마르크스 경제학의 현재성」,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 2006으로 번역 소개되어 있다. 2003년 저작이 번역되기 전까지는 이 논문을 통해 그들 작업을 개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뒤메닐과 레비의 2003년 책은 필자에 의해 곧 번역되어 국내에 소개될 예정이다. 본문으로
4) 경기순환에 대한 분석은 단기에서 비례, 장기에서 비례, 그리고 단기에서 차원에 대한 단일한 모형을 구성하는 것이다. 장기에서 차원은 바로 축적의 동학을 다루는 것으로 굳윈의 모형이 대표적이다. 본문으로
5) 여기서 금융부문의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거시적 측면에서의 안정성과 불안정성을 야기하는 모호한 효과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에 대해서는 뒤메닐과 레비의 일반적 불균형 모형과는 달리 자신의 독특한 자본순환(capital circuit) 모형에서 발생하는 비선형(nonlinear)동학을 연구하는 폴리의 작업 또한 검토해야 한다. 이 모형에서도 금융부문은 (거시)경제적 안정성의 주요요소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불안정성의 결정소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것으로 "Liquidity-Profit Rate Cycle in a Capitalist Economy", Journal of Economic Behavior and Organization, vol. 8, 1987, pp. 363-76과 "Stabilization Policy in a Nonlinear Business Cycle Model", Competition, Instability, and Nolinear Cycle, ed. W. Semmler, Springer-Verlag를 참고하라. 여기서 주의해야할 것은 폴리의 모형만이 비선형 분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뒤메닐과 레비의 모형에서 또한 경기순환을 분석하는 데 있어 비선형 항(nonlinear term)의 도입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영속적인 불안정성 또는 안정성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불안정성과 안정성의 공존과 순환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비선형 항이 존재하여야만 한다. 본문으로
6) 이 논쟁에 대해서는 『반격』의 역자 서문에서도 설명되고 있는데, 더 자세한 논의는 김숙경, 「마르크스 위기이론과 이윤율의 경제학」, 『자본주의의 위기와 역사적 마르크스주의』, 2001, 공감을 참조하라. 본문으로
7) 이에 대해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2006, 공감을 참조할 수 있는데, 단순히 설명을 하자면 자본주의 경제가 점점 노동에 비해 자본을 많이 사용하게 되는 기술변화의 경로를 겪는다는 의미이다. 본문으로
8) A. Shah & M. Desai, "Growth Cycles with Induced Technical Change", The Economic Journal, Vol. 91, No. 364, 1981. 본문으로
9) D. K. Foley, Unholy Trinity: Capital, Labor and Land in New Economy. Routledge, 2003. 본문으로
10) 이러한 과정에 발생하는 것이 바로 해로드 중립적인 기술변화(Harrod neutral technical change)이다. 여기서 중립적이라고 하는 것은 소득의 분배몫이 변화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변화 유형에서는 이윤율이 저하하지 않고 일정하다. 이것은 경제학에서 균제상태(steady state)에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기술변화 유형이다. 본문으로
11) 경제적 동기에 의해 발생하는 ‘내생적 기술변화’는 주류경제학의 새성장이론에서도 설명되기는 한다. 그래서 이들을 ‘내생적 성장론자’라고 부른 적도 있다. 그러나 최근에 찰스 존스 등에 의해 내생적 성장론자들의 기술변화 이론이 비판받게 되는데, 그것을 존스의 비판(Jones's critique)이라 부른다. 존스의 비판은 내생적 성장이론에서 제기하는 연구방정식(research equation)이 특정한 파라미터 값에 의존함으로써, 결국 내생적 기술진보에 대한 설명이 인구규모효과에 의해 설명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생적 성장에 대한 설명은 수년 내에 경제가 ‘폭발적인’ 성장을 하리라 예견하는 것으로 현실과 어울릴 수 없다. 존스의 비판을 통해 주류 경제학 내에서는 솔로의 모형이 다시 복귀한다. 본문으로
12) 여기서 말하는 ‘혁신의 곤란’이란 노동생산성과 자본(에 대한) 생산성을 동시 증가시킬 수 있는 기술을 발견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의미이다. 기술진보의 궤적이 로지스틱하게 표현된다고 하면(이는 기술의 진화형태에 달려있다) 초기의 패러다임의 이동에 따른 기술진보는 빠르게 발전하는 양상을 갖다가 변곡점을 지나 초기에 빠른 성장을 가져온 패러다임 자체가 소모되는 과정을 겪는다는 의미이다. 본문으로
13) 이에 관련해서는 G. Dumenil & D. Levy, "Production and Management: Marx's Dual Theory of Labor", www.jourdan.ens.fr/~levy와 "The Economic Function of Managerial and Clerical Personnel: A Historical Perspective", Bureaucracy: Three Paradigms, ed. Neil Garstion, 1993을 참조. 본문으로
사회와 역사를 연구하는 다종다양한 학문 속에서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자라 부르는 사람들을 드물게 찾을 수 있지만, 경제학계 내에서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자라 일컫는 이는 거의 없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일종의 복마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경제학계 내에서 자신의 입장을 마르크스주의로 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위험천만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경제학에서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을 취한다는 것이 사회적이고 철학적인 개념과 관점을 동원하여 경제학을 보충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들은 비주류 경제학이라는 좀 더 넓은 범위로 마르크스적인 것이 포괄되는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이런 입장들은 사실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비평(판)적 경제학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경제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자로서 경제 또는 경제학을 연구할 수 있는 어떤 마땅한 참고서적을 필요로 한다. 이런 의미에서 제라르 뒤메닐1)의 이론적 작업은 경제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례이다. 그는 경제학 내에서 이론적으로도 또한 경험적으로도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자가 경제학을 연구할 수 있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회학이나 여타 다른 종류의 이른바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이들이 경제학을 접하고, 경제학적 토론에 나서게 될 때 부딪히는 최초의 어려움은 경제학이 전개하고 있는 그 자체로 엄밀한 논리적 치밀성이다. 그 논리의 가정과 결론이 어떤 것이건 간에 경제학적 논리과정은 다른 사회과학이 침범할 수 없는 논리적 엄밀성을 지닌다. 경제학자들 자신조차 그 같은 엄밀성에 질려버릴 정도이다. 마르크스 자신이 그랬지만, 경제학에서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을 취하려고 하는 모든 이들은 바로 그 엄밀한 논리적 완결성 속에 작업을 해나가야 하고, 그 작업에 필요한 논리적 도구들을 끊임없이 증식하여 나가야만 한다. 제라르 뒤메닐과 그의 오랜 동료인 도미니크 레비의 작업은 그러한 엄밀한 작업이 마르크스 이후에도 계속되어야하고 또한 가능한 것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에 많은 주목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라르 뒤메닐과 도미니크 레비의 작업은 (대중들의) 관심에 비해 우리에게 소개된 것이 매우 적다. 이른바 ‘신해석’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작업의 일부와 최근 작업인 현대 미국 자본주의 분석과 그와 관련된 ‘신자유주의 비판’을 몇몇 연구자들이 간간히 소개했을 뿐이다. 이는 상당히 불충분한 것인데, 이런 소개 과정은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이들의 작업 전체를 포괄하여 전달할 수 있는 전문적 연구자도 찾아볼 수가 없고, 설사 소개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작업이 대중적으로 수용되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2) 뒤메닐과 레비 스스로 몇몇 저작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들 작업의 범위란 경제학의 모든 영역을 마르크스주의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뒤메닐과 레비도 알고 있는지, 그들은 최근 자신들의 작업을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저작들을 발표하였다.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들의 이론적인 작업을 포괄하여 대중적으로 소개한 책으로 데쿠베르트 출판사에서 2003년에 출간한『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3)이 대표적이다. 이번에 번역 소개된 『자본의 반격(이하 반격)』또한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이 책이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전개를 주로 다루고 있긴 하지만 곳곳에서 그들이 지속해온 오랜 작업들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번에 번역된 이 책을 꼼꼼히 읽어나간다면 미약하나마 그들의 작업에 한 발짝 다가서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뒤메닐과 레비의 마르크스 경제학 재구성에 대한 전반적 개요
뒤메닐과 레비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관점을 특징짓는 전반적인 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우선 ‘불균형 미시경제학’(microeconomie de desequlibre)이라는 이름 하에서 경쟁과 경기순환을 포괄하는 일반적 불균형 모형(modele de desequlibre general)을 구성한다. 여기서 ‘일반적’이라는 것은 흔히 주류 경제학에서 성립된 ‘일반 균형’에서의 그것과 같다. 각각의 변수들이 상호의존적이라는 의미인데, 생산은 수요의 함수이고, 수요는 소득으로부터 유도된다는 것이다. 부분(partiel)과는 대립되는 의미에서 일반적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불균형 모형에서 자본의 배분은 수익성의 차이에 기초한다. 자본가는 이 모형 내에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사이에서 생산량과 가격을 설정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 다루던 균형 (자체)에 대한 분석보다는 균형의 안정성과 불안정성에 대한 분석이 강조된다. 어떤 (구조적) 매개변수와 반응계수의 영향 하에서 균형이 안정적이거나 불안정한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또한 자본가들의 불균형에 반응하는 행위 이외에 자본가들에게 주어지는 은행 대부까지 고려된다.
이러한 모형으로부터 네 가지 경우를 유추할 수 있다. 먼저 단기(short-term)의 경우, 자본스톡은 고정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 장기(long-term)에서는 그와는 달리 자본스톡이 조정된다. 단기에서 자본가들에 의해 관찰된 불균형은 가동률(capacity utilization rates)과 가격의 조정을 야기한다. 만약 가격이 단기에 경직적이고, 심지어는 고정되어 있다면 기업은 수량조정을 통해 단기적으로 발견한 불균형을 해소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러한 단기적인 동학이 진행되는 가운데서 장기변수들의 조정도 일어나는데 단기적 가동률 조정에 의해 발생하는 신호에 따라 장기적 변수인 가동률에 의존하는 가격이 조정된다. 장기적 균형은 일시적인 (단기) 균형들의 연속으로 파악된다. 여기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이 ‘비례’(proportion)와 ‘차원’(dimension)의 구분이다. 비례는 변수들의 상대적 값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것은 상대 가격, 상대적인 산출, 상대적인 자본스톡의 값 등이 될 수 있다. 이에 비해 차원은 ‘거시경제’와 동의어로서 총생산 수준을 의미한다.
단기에서 비례(proportion in short-term)는 주어진 자본스톡 안에서 가격과 산출량이 조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장기에서 비례(proportion in long-term)는 자본스톡이 변화하는 것을 의미하며, 수익성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부문 간 자본이동을 말한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이야기하는 ‘생산가격’의 문제다. 이를테면 어떤 한 부문에 수요에 비해 너무 많은 자본스톡이 존재한다고 보자. 최초의 자본가는 수량조정에 의해 이에 반응하여 낮은 가동률을 유지한다. 이윤율은 이러한 낮은 가동률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윤율은 장기에서 자본 배분의 지표가 되고, 이에 따라 자본의 이동이 발생한다.
단기에서 차원(dimension in short-term)은 대체로 거시경제학의 주요 문제가 된다. 경기순환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장기적 차원은 축적의 동학과 연관된다. 앞선 네 측면, 즉 비례와 차원과 연관된 장기와 단기적 측면에서 문제시되는 것은 ‘비례의 안정성’과 ‘차원의 불안정성’이다.4) 뒤메닐과 레비에 의하면 자본주의의 강점은 바로 비례를 관리하는 능력, 자본을 배분하고 산출을 조정하며 상대가격을 정정하는 데 있다. 반면 이러한 경제의 약점은 주기적인 과열과 침체로의 경향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누적적 과정(processus culuatifs)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비례와 차원의 안정성은 또한 일종의 상충관계를 갖게 된다. 만약 수요가 어떤 시점에서 감소하였다면, 재고가 상승하고, 이러한 수요의 축소에 영향 받은 기업은 그들의 생산능력을 축소시킨다. 그리고 기업의 반응은 개별적 기업의 입장에서는 효율적인 것이다. 이러한 측면이 바로 비례(의 안정성)와 연관된다. 이러한 개별적 기업의 반응은 거시경제에 영향을 주게 되는데, 몇몇 기업의 이러한 행동은 노동자는 물론이고, 자본가들 각각의 소득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초의 반응이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한 수요 축소는 더 낮은 수요로 이끌린다. 여기서 화폐와 신용의 존재는 모호한 측면을 갖으며, 동시에 그것은 일반적 불균형 모형의 안정성과 불안정성의 주요 결정소이다.5)
자본주의 경제의 (최)장기(very long-term)에서 동학은 역시 마르크스가 분석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과 관련이 있다. 뒤메닐과 레비는 이 분야에서도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이 논쟁과 관련된 논의는 국내에도 일부 소개되어 있다.6)
그들에 따르면 ‘이윤율의 저하’는 ‘기술’과 ‘임금결정’에 의해 설명된다. 즉, 기술변화와 분배의 장기적인 동학이 이윤율의 저하를 설명하는 핵심 부분이라는 것이다. 분배, 특히 실질임금의 (장기적) 변화에 관련한 논의는 국내에 많이 소개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기술변화에 관해 집중해보자.
경제학에서 기술변화에 대한 이론은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기술이라는 재화 자체의 특수한 성격에 주목하는 폴 로머의 이론이나, 인적 자본(human capital)을 강조하는 루카스의 이론 등이 대표하는 새성장이론(New Growth Theory)이 그러한 것이다. 주류 경제학이나 마르크스 경제학 모두 마찬가지로 경제의 장기동학, 또는 경제성장의 엔진은 ‘자본축적’과 ‘기술진보’이다. 특히 ‘기술’에 관해서는 경제학에서 어떤 제대로 된 설명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주류경제학에서는 ‘기술’을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 쯤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 대표 격이 경제성장에 대한 교과서적 설명이라 할 수 있는 솔로 모형이다. 기술이라는 것은 이러한 외생적인 요소로 묘사된다. 다시 말하자면 기술은 경제 내부에서 발생하는 내생적인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에 비해 마르크스를 비롯한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기술변화(또는 진보)를 경제 내적인 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설명해왔다. 마르크스경제학 이외의 이른바 ‘비주류 경제학’(포스트 케인지언으로 대표되는)에서는 관점을 받아들여 내생적인 기술변화이론을 전개하고 있는데, 그것이 그 유명한 ‘칼도-버둔’(Kaldor-verdoon)의 법칙이다. ‘칼도-버둔’의 법칙은 아담 스미스이론의 현대적 개역판이라고 볼 수 있는데, 수요의 확대가 분업의 확대를 가져옴으로써 일인당 생산량이 증가하는 것으로 기술변화를 묘사한다.
이전에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은 여러 기술변화에 대한 이론(및 모형)을 줄기차게 연구해왔는데, 그들은 비록 자신들의 진영에서 나온 것은 아니지만 60년대 케네디-바이제커-사무엘슨으로 이어지는 ‘유발된 기술변화’(induced technical change)에 대한 설명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유발된 기술변화’ 모형이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경제의 특징적인 기술변화 양식으로 묘사한 ‘편향적 기술변화’7)를 설명할 수 있는 모형이기 때문이었다. 샤와 데자이는 1981년, 유발된 기술변화 모형과 굳윈의 성장순환 모형을 종합하여 자본축적과 기술변화 모형을 구성8)하였으며, 덩컨 폴리는 2003년에 샤와 데자이가 구성한 것과 동일한 모형9)을 다시 소개하게 된다. 특히, 샤와 데자이는 이러한 모형 구성을 통해 자본가가 임금몫의 변동이라는 상황에서 기술변화를 통해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무기를 갖고 있음을 밝혀냈다. 즉, 임금몫의 변동을 통해 이윤몫이 줄어드는 상황에 직면하는 자본가는 기술선택을 통해서(만약 선택할 수 있는 기술의 매우 광범위하다면) 이러한 변동성으로부터 벗어나 안정적 이윤몫과 그에 따른 안정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10)
뒤메닐과 레비가 발전시킨 기술변화 모형은 훨씬 혁신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들은 그 모형을 ‘고전파-마르크스적인 스토캐스틱(stochastic)한 진화적 기술변화 모형’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이 모형을 통해 기술선택의 문제를 다루면서 주류 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경제적 동기에서 발생하는 기술진보를 설명한다.11) 또한 앞서 설명한 ‘유발된 기술변화’ 모형이 케네디-바이제커-사무엘슨에 의해 이른바 생산함수(production function)를 보충하는 설명으로 나온 것에 비해, 스토캐스틱 모형은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생산함수와 같은 일종의 기술변화에 대한 청사진을 갖고 있지 않다. 기술은 매기마다의 확률변수(스토캐스틱)로 표현되고, 자본가가 선택하게 되는 기술집합은 균등분포(uniform distribution)을 갖는다. 즉, 어떤 기술이라도 그것이 선택될 수 있는 확률은 모두 같다. 기술진보가 국소적(local)으로 발생한다면, 편향적 기술진보를 선험적으로 가정하지 않아도 ‘(기술) 혁신의 곤란’(diffculte d'innover)12)이 부과되어 자본주의 경제의 편향적 기술진보가 출현한다는 의미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형태의 기술진보 양상은 앞서 밝힌 실질임금의 장기적인 궤도와 관련되어 이윤율의 저하를 발생시킨다. 이러한 이윤율의 저하 궤도는 동학적인 관점에서 안정적인데, 그리하여 우리는 그것을 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본의 반격』읽기
우리는 지금까지 뒤메닐과 레비가 거의 20년 넘게 발전시켜 온 이론의 가장 중요한 부분들을 검토해 보았다. 이 내용들은 이번에 번역된 『반격』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어가 있다. 앞서 정리한 내용들은 사실 일반독자들이 보기에는 굉장히 난해하고 전문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뒤메닐과 레비는 그것들이 본문에서 소화되기 어려울 경우에는 박스를 통해 설명해주고 있다. 『반격』을 읽는 독자들이 박스 속에서 들어있는 내용들만이라도 꼼꼼히 읽어 내려간다면, 그들의 신자유주의 비판 배후에 있는 경제이론적 기초를 부족하나마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성미가 급한 사람들은 번역된 책을 입수하면, 제일 처음 역자(들)의 후기를 보곤 한다. 그것은 아마도 번역한 저자들이 이 분야의 전문가일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책의 내용을 조금이라도 빨리 접하고 싶은 조급함에서 비롯되는 것일 게다. 물론 이런 방식의 독서는 필자도 취하고 있는 방식이고, 때때로 이런 독서가 책의 본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때도 있다. 그것은 역자들이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며, 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였을 때 가능한 것이다. 역자후기가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면, 그들의 번역에 아무리 흠잡을 곳이 없다고 할지라도, 번역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필자는 이번에 번역된 『반격』을 반쯤 읽다가 덮어버렸는데, 그것은 사실 이미 번역되기 전에 영어로 발간된 책을 읽은 것도 하나의 이유이겠지만, 주로 그 책 끝에 덧붙여진 역자후기의 불성실함 때문이었다. 이 역자들의 이전 작업을 대충 알고 있는 필자로서는 대단히 당혹스럽고, 이런 식의 서평을 쓰는 것 자체가 매우 곤혹스럽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서평이 오히려 뒤메닐과 레비의 작업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역자들은 자신들의 후기에서 뒤메닐과 레비의 작업 속에서 ‘이윤율 저하’에 대해 명확한 메커니즘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필자는 납득하기가 어렵다. 뒤메닐과 레비의 이윤율 저하 메커니즘은 자본주의 경제의 장기적인 기술변수와 분배변수의 동학에서 발생한다. 역자들의 말처럼 그들의 분석이 ‘사후적이고, 역사적이라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우리가 앞서 살펴본 뒤메닐과 레비의 전체 이론적 맥락을 전혀 알지 못하는(또는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우리에게 알려진 이윤율의 경험적 추정이라는 사실에만 주목할 경우 발생하는 오독이다. 물론 역자들이 이윤율의 저하를 제도들의 변화와 ‘계급투쟁’이라는 관점에서 모두 총괄하는 어떤 틀의 부족을 이야기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또한 상당한 오독에 근거한다. 역자들은 뒤메닐과 레비가 이윤율의 저하를 ‘경제’ 변수와 관련시키고, 제도만을 ‘계급투쟁’의 결과라고 말함으로써 결국 구조적 위기와 계급투쟁의 관계를 경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역자들의 이러한 관점은 계급투쟁에 대한 역자들의 모호한 정의로부터 비롯되는 것으로, 그들은 역사적 계기로서의 계급투쟁과 계급관계 그 자체로 설명될 수 있는 계급투쟁의 존재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역자들의 관점은 역사적 계기로서의 계급투쟁과 가깝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설명하고 있는 계급투쟁은 단순한 사건, 또는 역사적 계기로서의 계급투쟁이 아니다. 계급투쟁은 생산관계의 조건이자 결과인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뒤메닐과 레비의 설명은 충실하다. 사실 뒤메닐과 레비는 거시경제적 안정성과 기술진보와 관련된 관리계급의 출현과 계급관계 또는 생산관계의 변형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다룬 바 있다. ‘이윤극대화 노동’(profit maximization labor)이라고 불리는 관리계급의 노동이 거시경제적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과 R&D과정으로 대표되는 기술혁신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바로 그것이다.13) 다시 말해 뒤메닐과 레비는 역자들의 관점에서처럼 제도의 형성과 기술변화를 따로따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윤율 저하에 대한 반작용과 관련하여 이른바 생산관계 변용의 조건이자 결과로서의 계급투쟁을 설명한다. 이는 『반격』의 전반적인 구성이기도 하고, 이 책이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경제학 비판에 대한 본격적 논의의 조건들
필자는 이 서평을 쓰고 있는 중에 『반격』이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음을 전해 들었다. 이는 매우 환영할만한 결과이며, 한국어 번역과 관련해서도 몇 군데를 제외하면 마르크스 경제학의 재구성에 큰 공헌을 하고 있는 뒤메닐과 레비의 작업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한다. 다만 역자후기를 접하는 이들이 불필요한 오해를 갖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현재적 상황, 특히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을 피해갈 수는 없다. 물론 ‘경제학 비판’의 관점은 현재적 시각에서 재구성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수학적 방법에 의해서건, 또는 개념적인 측면에서건 말이다. 뒤메닐은 경제학 비판의 역사 속의 가장 논쟁적인 쟁점들에 개입하면서, 경제학 비판을 재구성할 수 있는 전거들을 마련해왔다. 뒤메닐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재구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역사와 경제학 비판의 역사에 대한 학습은 물론이고, 그의 작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논의 또한 절실하다.
1) 우리에게 도미니크 레비와의 공동작업으로 주로 알려진 뒤메닐은 1970년대에는 주로 독자적인 저작들을 발표해왔으며(이 때 발표한 주요저작들에서 대부분의 핵심적인 입장들이 모두 수립된다. 후에 이루어지는 레비와의 작업은 이러한 입장에 대한 정교화 및 재구성이라고 볼 수 있다), 레비의 공동작업은 80년대에 이르러 시작된다. 레비와의 작업은 그의 작업에 핵심을 이루는 것으로, 이른바 고전파 장기이론과 연관된 생산가격 분석과 경기순환을 통합하는 작업, 그리고 이윤율 저하에 대한 경험적 추정과 이론적 기반의 재구성(기술변화와 임금이론에 관련한)등이 중심을 이루었다. 최근에 뒤메닐은 ATTAC 학술 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그곳에서는 주로 『금융의 세계화』로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바 있는 도미니크 플리옹과 저술 및 강의활동을 하고 있다. 도미니크 플리옹은 역시 ATTAC 학술 위원회 소속으로 최근에 마르크스-케인즈-슘페터를 종합하는 관점에서 미국의 90년대 신경제를 분석한 Le nouveau capitalisme, La decouverte, 2003을 발표하였으며, 그의 화폐와 금융 메커니즘에 대한 교과서인 La monnaie et ses mecanismes, Quartrieme editions, La decouverte, 2004은 해당분야에 대한 적절한 참고서적이 없는 우리로서는 또한 주목할 만한 책이다. 그들은 ATTAC 학술 위원회에서 현대 자본주의(신자유주의)에 대한 케인즈주의와 마르크스주의 분석의 차이와 공통점에 관해서 강의하기도 하였으며, 2004년 뭄바이에서는 프랑스 ATTAC의 대표 격으로 유럽통합과정과 연관된 자유무역과 금융통합의 문제를 다루는 논문, 세계화와 더불어 발생하는 사회적 불안정성(insecurite sociale)를 지적하는 논문등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본문으로
2) 이것은 언어적 장벽과 기술적 장벽, 두 가지 차원에서 기인한다. 뒤메닐과 레비의 작업에서 핵심을 이루는 부분은 상당한 난이도의 수학적 기술을 요구한다. 본문으로
3) G. Dumenil & D. Levy, Economie marxiste du capitalisme, La decouverte, 2003. 이에 상응하는 짤막한 논문이 「마르크스 경제학의 현재성」,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 2006으로 번역 소개되어 있다. 2003년 저작이 번역되기 전까지는 이 논문을 통해 그들 작업을 개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뒤메닐과 레비의 2003년 책은 필자에 의해 곧 번역되어 국내에 소개될 예정이다. 본문으로
4) 경기순환에 대한 분석은 단기에서 비례, 장기에서 비례, 그리고 단기에서 차원에 대한 단일한 모형을 구성하는 것이다. 장기에서 차원은 바로 축적의 동학을 다루는 것으로 굳윈의 모형이 대표적이다. 본문으로
5) 여기서 금융부문의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거시적 측면에서의 안정성과 불안정성을 야기하는 모호한 효과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에 대해서는 뒤메닐과 레비의 일반적 불균형 모형과는 달리 자신의 독특한 자본순환(capital circuit) 모형에서 발생하는 비선형(nonlinear)동학을 연구하는 폴리의 작업 또한 검토해야 한다. 이 모형에서도 금융부문은 (거시)경제적 안정성의 주요요소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불안정성의 결정소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것으로 "Liquidity-Profit Rate Cycle in a Capitalist Economy", Journal of Economic Behavior and Organization, vol. 8, 1987, pp. 363-76과 "Stabilization Policy in a Nonlinear Business Cycle Model", Competition, Instability, and Nolinear Cycle, ed. W. Semmler, Springer-Verlag를 참고하라. 여기서 주의해야할 것은 폴리의 모형만이 비선형 분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뒤메닐과 레비의 모형에서 또한 경기순환을 분석하는 데 있어 비선형 항(nonlinear term)의 도입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영속적인 불안정성 또는 안정성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불안정성과 안정성의 공존과 순환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비선형 항이 존재하여야만 한다. 본문으로
6) 이 논쟁에 대해서는 『반격』의 역자 서문에서도 설명되고 있는데, 더 자세한 논의는 김숙경, 「마르크스 위기이론과 이윤율의 경제학」, 『자본주의의 위기와 역사적 마르크스주의』, 2001, 공감을 참조하라. 본문으로
7) 이에 대해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2006, 공감을 참조할 수 있는데, 단순히 설명을 하자면 자본주의 경제가 점점 노동에 비해 자본을 많이 사용하게 되는 기술변화의 경로를 겪는다는 의미이다. 본문으로
8) A. Shah & M. Desai, "Growth Cycles with Induced Technical Change", The Economic Journal, Vol. 91, No. 364, 1981. 본문으로
9) D. K. Foley, Unholy Trinity: Capital, Labor and Land in New Economy. Routledge, 2003. 본문으로
10) 이러한 과정에 발생하는 것이 바로 해로드 중립적인 기술변화(Harrod neutral technical change)이다. 여기서 중립적이라고 하는 것은 소득의 분배몫이 변화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변화 유형에서는 이윤율이 저하하지 않고 일정하다. 이것은 경제학에서 균제상태(steady state)에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기술변화 유형이다. 본문으로
11) 경제적 동기에 의해 발생하는 ‘내생적 기술변화’는 주류경제학의 새성장이론에서도 설명되기는 한다. 그래서 이들을 ‘내생적 성장론자’라고 부른 적도 있다. 그러나 최근에 찰스 존스 등에 의해 내생적 성장론자들의 기술변화 이론이 비판받게 되는데, 그것을 존스의 비판(Jones's critique)이라 부른다. 존스의 비판은 내생적 성장이론에서 제기하는 연구방정식(research equation)이 특정한 파라미터 값에 의존함으로써, 결국 내생적 기술진보에 대한 설명이 인구규모효과에 의해 설명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생적 성장에 대한 설명은 수년 내에 경제가 ‘폭발적인’ 성장을 하리라 예견하는 것으로 현실과 어울릴 수 없다. 존스의 비판을 통해 주류 경제학 내에서는 솔로의 모형이 다시 복귀한다. 본문으로
12) 여기서 말하는 ‘혁신의 곤란’이란 노동생산성과 자본(에 대한) 생산성을 동시 증가시킬 수 있는 기술을 발견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의미이다. 기술진보의 궤적이 로지스틱하게 표현된다고 하면(이는 기술의 진화형태에 달려있다) 초기의 패러다임의 이동에 따른 기술진보는 빠르게 발전하는 양상을 갖다가 변곡점을 지나 초기에 빠른 성장을 가져온 패러다임 자체가 소모되는 과정을 겪는다는 의미이다. 본문으로
13) 이에 관련해서는 G. Dumenil & D. Levy, "Production and Management: Marx's Dual Theory of Labor", www.jourdan.ens.fr/~levy와 "The Economic Function of Managerial and Clerical Personnel: A Historical Perspective", Bureaucracy: Three Paradigms, ed. Neil Garstion, 1993을 참조.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