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미국의 대외정책과 한반도
미국의 대북전략: '봉쇄'와 '개입'의 거리는?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대북정책은 오랜 기간 동안 '공백'에 가까운 것이었다. '동아시아의 분단'은 미국의 세계전략 속에서 장기간 유지되어 왔으며, 그 가운데 북한은 단순한 '봉쇄'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미-중 관계 또는 미-소 관계의 개선은 미국에게 있어서 '거대한' 전략적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북한은 (마치 동아시아의 고립된 섬과 같이) 이러한 전환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1990년대 들어서 북미간의 대화와 협상이 시작되고 세계언론도 이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진 듯 보이지만, 미국의 대북 인식은 현 시점에서도 과거로부터 아주 멀리 나간 것은 아닌 듯하다. 다음에 요약하는 미국 논객의 논설을 보면, 그들의 대북인식이 여전히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북한의 대량파괴무기 개발의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아직 아시아의 전역미사일방어체제(TMD)와 미국 본토의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뛰어난 전문가들은 클린턴 정부가 다가오는 6월 TMD 및 NMD 배치를 결정한다고 하더라도 실제 배치가 되기까지는 6∼7년 정도가 걸릴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따라서 우리는 대북 관계에 있어서 '최대 위기의 시기'에 놓여 있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미국-남한-일본의 최근 개입정책은 강력한 재래식전력과 핵전력에 의해 지원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북한이 가까운 시일 내에 붕괴할지도 모르는 사태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투자로 손을 써서 시간을 벌어야 한다. 이는 [북한을 지원하기 위한 게 아니라] 단지 우리가 최악의 시나리오를 다룰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개입정책을 통해 적지 않은 돈을 손해보겠지만, 동아시아 각국들의 안보를 지키고 북한의 주체 체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시간을 벌 것이다. 따라서 최근의 개입정책은 최선의 대안은 아니다. 즉 현시점에서 유일한 대안인 것이다."
-William J. Tayolr, 'South-North unification? More of ideal than policy', Korea Herald, 2000. 2. 17,
이러한 주장은 현재 미국-한국-일본이 구사하는 대북 정책을 지지하는 미국내 '보수주의자'의 시각을 대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나는 이 논설이 현재 미국정가를 주도하고 있는 클린턴 행정부의 고위관리들의 의견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평균적인 미국인들의 시각과는 매우 근접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즉 미국의 안보와 '국익'을 지키는 것은 기본적으로 강력한 군사력(핵전력-재래식전력-미사일 요격시스템)이라는 불변하는 가정, 북한의 생존 또는 붕괴 그 자체는 미국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사실, 달리 말하자면 북한은 (흡사 중국과는 달리) 미국이 무엇인가 거대한 전략적 전환을 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미국의 대북 정책은 미국의 국익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실용성을 우선해야 한다는 점 등이 특히 그러하다.
클린턴 행정부와 1990년대 미국의 외교정책
그런데 미국의 세계전략 역시 앞서 요약한 미국의 대북인식과 별도의 것은 아닌 듯하다. 미국은 '탈냉전'이라는 전략적 환경의 심대한 변화 속에서 기존에 갖고 있었던 '현실정치'(real politik)의 논리와 각각의 사안에 대한 실용주의적 대처를 종합하였다. 미국은 새로운 세계질서 속에서 미국 국익을 보호하기 위해 요구되는 최우선적 과제와 부차적인 과제들을 분류해 내면서, 여러 차원의 접근방식들을 동원해냈다.
최근 2000년 대선을 앞두고 미국 공화-민주 양당이 외교정책에 관해 벌어지고 있는 논쟁은 이러한 사정을 드러내주고 있다. 올해 초 미국 외교관계협의회에서 발간하는 잡지 {포린어페어즈}(Foreign Affairs)에서는 공화당의 부시 후보와 민주당의 고어 후보를 지지하거나 외교문제의 자문 역할을 하는 필진들이 등장해 지상 논쟁을 펼쳤다. 2000년 대선을 앞둔 시점인만큼 지난 8년간 진행된 클린턴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가 바로 핵심적인 논점이었는데, 이 중에 클린턴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실용주의'적인 논조로 지지하는 글이 눈길을 끌었다. (조금 길지만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냉전의 해체 이후 오늘날 미국의 군사적·경제적 압도적인 우위는 자신에게 거대한 행동의 자유를 부여했다. 미국의 지도자는 다른 국가들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크게 걱정할 필요없이 자신의 광범위한 목적들을 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에게 정말 심각한 위협이 되는 적들은 존재하지 않으며, 가장 명백한 적대국가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이라크, 북한, 유고슬라비아는 약체이고 빈곤하며 고립되어 있다.
여기에서 미국의 '단극성'(unipolarity)이라는 중심적인 역설이 등장한다. 미국은 막대한 영향력을 누릴 수 있지만, 그 권력을 통해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거의 모르고 있는 것이다. (…)
한편 미국의 압도적인 우월성에 조응하여, 미국 시민들은 국제문제에 대한 관심을 잃어가고 있다. 어느 설문조사에서 미국인들이 대답한 '오늘날 미국이 당면한 문제'에 대한 응답에는 외교문제가 아예 순위에 오르지 못했으며 '미국이 당면한 외교문제는 무엇인가'라는 또다른 질문에 대해서는 1위가 "모른다"였다. 만약 이라크의 사우디아라비아 공격을 가정했을 때 지상군 사용을 지지한 미국인은 절반 이하였으며, 한반도의 경우는 그 보다도 적었다.
또한 1994년에 당선된 공화당 의원의 2/3은 여권을 갖고 있지 않으며, 공화당 주류파의 지도자인 리처드 아미는 "나는 유럽을 방문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전에 한번 다녀왔기 때문이다"라고 자랑스럽게 선언했다. 바로 이들의 의회가 국제기구 및 국제문제에 대해 미국이 약속한 분담금을 삭감하고 있는 것이다. (…)
1992년 당시 클린턴 후보자는 "순수한 현실정치(realpolitik)라는 냉소적인 계산법은 새로운 시대에는 부적합하다"고 선언했다. 그렇지만 클린턴 대통령은 권력정치의 광대한 진가를 보여주었다. 그는 구 바르샤바 조약기구 국가들을 자신의 동맹으로 끌어들였고, 동아시아의 동맹들을 지지하면서 중국으로 하여금 미국의 입맛에 맞는 현재상태를 지지하도록 이끌어 내었다. 그는 대인지뢰금지조약을 거부하였고 NMD 건설을 받아들였다.
미국인들은 그들이 현실정치를 실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미국이 세계 최고인 것은 좋아한다. 동시에 미국인들은 꼭 그럴 필요가 없는데, 그들의 생명과 재산을 들이는 것 역시 원치 않는다. 아마도 클린턴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적당한 비용으로 이러한 일들을 치르게 될 것이다. 클린턴의 전략은 '비용이 싼 헤게모니'(hegemony on the cheap)이며, 그것은 미국인들이 지지하는 오직 유일한 전략이다. 미국인들은 고립주의를 원하지도 않으며 돈이 많이 드는 국제십자군을 원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바로 다음 대통령이 어느 당의 누가 될 지에 관계없이, 클린턴의 후계자가 그의 전철을 따라갈 것으로 보이는 이유이다."
Stephen M Walt, 'Two cheers for Clinton's foreign policy', Foreign Affairs, 2000.3·4
이 글에서, 오늘날 미국은 자신의 국익에 관해 매우 '솔직하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미국이 자신의 '사활적'인 이해가 걸린 전략적 지역, 이슈 등을 그렇지 않은 것들과 정확하게 구분해낸다는 점이다. (미국이 그렇지 않은 듯 행동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존재하는가?)
특히 미국은 자신의 '사활적' 이해가 걸린 주요지역의 경우, 그 누구에게 어떠한 양보도 취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즉 자신의 핵심 관심사가 걸린 문제에 대해서는 '현실정치' 전략의 정수들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기존의 군사동맹관계(특히 NATO와 미-일동맹)를 강화·발전시킴으로써 자신의 '국익'을 군사적으로 보장하는 한편, 각각의 지역들에서 미국의 지도력을 위협하는 요소들(지역적 파워의 등장, 대량파괴무기의 확산)의 출현을 억제하기 위한 역내 동맹관계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은 현재 시점까지 대체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탈냉전'과 미국의 세계전략에 대한 도전요인들
그런데 오늘날 미국의 대외 군사안보정책을 교란하는 요인들은 오히려 다른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미국의 국익에 비추어 볼 때 '부차적'인 지역, 달리 말해 오늘날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경제의 통합으로부터 배제된 지역들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지역분쟁들과 폭력이 바로 그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 "냉전 때에는 높은 군사적 위협 속에서 높은 안정성을 유지하였지만, 탈냉전 시기에는 낮은 군사적 위협 속에서도 낮은 수준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라고 표현한 바 있다)
즉, 한편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이데올로기와 결부된 제3세계의 민족주의 세력들이 군사력의 증강을 통해 최종적으로 세계경제 내에서 '정당한' 위치를 보장받으려는 전략들이 빈발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경제에 배제된 지역에서 약탈전쟁과 반동적인 분리주의가 지속적으로 재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민족주의와 분리주의의 대부분은 미국을 직접적인 타겟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궁극적으로 세계경제로의 이탈 및 그에 대한 타격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미국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실제 대부분의 분리주의 움직임은 세계시장으로부터의 자립화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세계시장으로의 편입에 있어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시도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나라 안의 가난한 지역들을 저버리고 독립을 원하는 것은 그 지역 내에서 가장 "덜" 가난한 지역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심없이 발생하고 있는 지역분쟁들과 폭력의 확산은 미국의 세계적/지역적 지도력의 신뢰성을 의심받게 하고, 미국의 세계헤게모니를 정당화하는 미국의 보편적 '가치'(민주주의와 인권)를 위협하는 요인이라는 점에서 미국으로서는 간과할 수만은 없는 문제이다. 게다가 제3세계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군사력 증강의 주된 방식은,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대량파괴무기(핵-생화학-미사일) 개발로 집중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세계 군사질서를 자신의 통제 아래에 두고 있다는 환상을 어쩌면 단번에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점에서, 미국 대외정책의 중대한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결국 앞의 글에서 묘사된 '단극성의 역설'이란 바로 이러한 상황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듯 미국의 시각에서 바라볼 때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위협들에 대한 미국의 대처방식들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지만, 이러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클린턴 행정부는 이에 유능하게 대처하기 위한 방안들을 강구해 나갔다.
그것은 첫째로, 미국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대량파괴무기의 확산을 저지하는데 1차적 우선성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대량파괴무기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국제적인 다자간 규범들을 활성화하거나 혹은 새롭게 창출하는 방식이 동원되었으며, 또한 쌍무적인 방식을 통해 미국이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이 채택되었다. 예컨대 클린턴 행정부는 '화학무기협정'(CWC)을 비준시키고, '포괄적핵무기실험금지조약'(CTBT)의 비준을 시도하였다. (그렇지만 1999년 미국 의회의 CTBT 비준은 공화당의 거부로 실패하였다) 또한 구 소연방 소속 국가들의 핵무기 폐기를 주도하였고,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봉쇄하기 위해 대북 선제공격 방안까지도 검토한 바 있다.
그리고 이에 조응하여 최근 들어서는 잠재적인 적국들의 대량파괴무기 개발 의도를 분쇄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항 미사일요격체계의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 초기인 1994년 에스핀 전 국방장관은 "냉전의 종식과 소련의 붕괴는 미국이 전면적 핵공격에 대비한 '미래적 방패'에 과도하게 투자할 필요가 더 이상 없음을 의미한다"고 말함으로써, 지난 1983년 레이건 대통령 당시의 '전략적방위구상'(SDI)을 공식적으로 폐기하였다.
그러나 1999년 윌리엄 코언 현 국방장관은 북한이 실시한 미사일 발사실험을 명시적으로 예시하며 "우리는 위협이 현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점점 커지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고 선언했고, 수십억 달러를 추가 투입하여 미사일방어체제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그리고 클린턴 행정부는 세계경제로부터 배제된 지역에서 빈발하고 있는 지역분쟁에 대해서는 관망적인 태도와 함께, 다자주의와 다양한 국제기관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오늘날 미국은 세계적인 갈등구도를 과거 동서 냉전구도로부터 '민주주의와 인권의 옹호자'(미국과 국제시민사회) vs '깡패국가와 근본주의자'(호전적 민족주의, 종교적 근본주의 등등)의 대립으로 전환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이로부터 미국은 '국제사회 구성원의 공동의 책임', '국제시민사회의 임무'라는 논리들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면서, 제3세계에서 발생하는 분쟁들에 있어서 UN(평화유지군) 및 각종 NGO들의 활동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난민구호-평화유지-선거관리감시-전후 개발프로그램 입안 등 분쟁의 '관리'와 '사후처리'를 위한 제반의 활동) 따라서 이러한 요소들이 오늘날의 미국 대외정책의 '현실정치'와 '저렴한 헤게모니'의 핵심축들을 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2000년 미국대선과 한반도
따라서 이처럼 클린턴의 외교정책이 미국인들이 정말로 지지할 수 있는 '절묘한' 타협점에 서있는 것이라면, 양당 후보의 대외정책에서 심각한 차별성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해도 별로 놀라울 것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화당의 외교노선을 지지하는 논자는 이러한 의견을 어떻게 생각할까?
여기에서 짚어져야 할 사실은, 위에 인용한 글에 앞서 {포린어페어즈} 2000년 1·2월호에 실린 '공화당의 대외정책'이라는 글에서, 필자 로버트 젤릭이 클린턴의 대외정책은 부시 행정부의 유산을 물려받은 것이라는 점을 확인한다는 점이다.
(즉 1990년대 미국의 대외정책의 기본적인 틀은 부시행정부(공화당)에 의해 세워졌다는 것) 예컨대 부시행정부는 NAFTA 협상을 개시했으며, 서구의 주변부 지역으로까지 자유무역을 확장시키기 위해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을 지지했으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진척시켰고, UR 협상을 주도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부시행정부는 1990년대 초반 통일독일을 NATO에 가입시키면서 유럽과 러시아를 포괄하는 전략적 전망을 구상하였고, 재래식무기 및 핵무기 감축 협상의 이정표를 세웠다는 것이다. (물론 필자는 클린턴 행정부가 일관성과 단호함의 부족으로 인해 미국의 국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이러한 기회를 흘려버렸다고 대단히 강조한다)
그렇지만, 실제적으로 고어와 부시진영의 대외정책은 서로 수렴하고 있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중대 현안인 △WTO와 관련된 경제·무역자유화 △IMF를 비롯한 국제금융체계의 개혁 등의 대외경제 이슈나, △기존 군사동맹체계의 유지(NATO 및 미일동맹) △미국에게 잠재적 도전이 되는 러시아, 중국, 인도 등과 같은 지역강국에 대한 전략 △대량파괴무기의 반확산 등의 군사·안보 이슈에 대해서 상호 수렴하고 있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민주-공화 양당의 대북 정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관련하여, 로버트 매닝 미외교관계협의회 선임연구원과 {조선일보}의 인터뷰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조선일보는 부시후보가 당선된다면 그가 대북 정책 입안의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는데,) 그는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가 미국의 동북아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주당의 앨 고어 부통령이 승리한다면 클린턴 정부와 유사한 정책이 취해질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가 승리할 경우, 아시아와 미국과의 관계가 훨씬 나아질 것으로 본다. 중국 입장에서 볼 때 클린턴 행정부를 상대하기 힘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정책의 일관성을 찾기가 힘들었다는 점일 것이다. 정치적 기류의 변화에 따라 너무 변화가 많았다. 하지만 부시 지사의 외교팀들이 등장할 경우, 중국은 클린턴 정부가 내건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는 미사여구는 포기해야 할지 모르지만, 최소한 미국을 상대하는데 어디까지가 한계인지를 분명히 알게 될 것이므로 좀더 예측가능한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이 점은 북한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설명에서도 역시 부시의 외교팀이 보다 일관성과 단호함을 구비할 수 있을 것이리라는 점을 대단히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구체적인 조치들에서 당장 어떤 차이가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가리기 위한 정치적 제스처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결국 차기 미국정부의 대북 정책의 기본적인 골조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이 점은 '페리보고서'가 클린턴 행정부의 독자적인 구상이 아니라, 이미 공화·민주 양당의 대북 정책을 이미 수렴한 것이라는 사실에서도 결정적으로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동아시아의 유일패권으로 존속할 것인가?
20세기의 세계자본주의경제의 중심부-반주변부-주변부로의 분할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적 군사안보질서로서의 중심-보호국-세력권이라는 구획선과 거의 정확하게 일치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세계자본주의경제의 위계질서와 군사안보질서는 냉전이라는, 고강도의 군사적 긴장감을 조건으로 하여 비교적 안정된 형태를 유지해왔다. 그렇지만 오늘날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 전략에 따라, 이러한 형태의 기존 질서는 여러모로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예컨대 중심부 국가들간에 그리고 혹은 중심부-반주변부 국가들간의 경제적 통합을 가속화되고 있는 반면, 주변부 국가들에 대한 경제적 배제 현상도 점차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탈냉전이라는 새로운 환경을 통해 강력하게 추동되고 있는 바, 미국이 주도하는 전략이 심각한 저항없이 대체적으로 관철되어가는 양상이다.
한편, 한반도가 위치한 동아시아는 20세기 후반기에 걸쳐 미국과 일본 경제에 포섭된 신흥공업국들이 생성되고 미국 주도의 강력한 군사동맹 체계가 작동하는 핵심적 지역으로 부상해 왔다. 이러한 경향은 바로 지금 시점에서도 강화되고 있는데, 미국과 일본 주도의 경제통합이 점차 수위를 높여가고 있으며, 기존의 강고한 군사동맹 체계 역시 한층 발전되어가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놓고 본다면, 이제 동아시아에서의 북한의 존재는 미국의 시각에서 볼 때 매우 기묘한 하나의 물음표로 남아있는 셈이다. 미국 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퍼져 있는 정치가들과 분석가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북한이 독자적으로 체제를 유지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공유하고 있다. 이것은 북한이 현재 취하고 있는 전략을 여전히 모호하거나 압도적인 지금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북한의 대량파괴무기 확산 시도를 저지한다는 것을 기본전제로 한다면 장기적인 대치상황(즉 미국에게는 현재의 봉쇄상태의 전반적인 유지)은 미국에게 불리할게 전혀 없다는 가정과 일맥상통하다.
그렇다면, 만약에 미국이 북한의 대량파괴무기 확산 시도를 막아내지 못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어떨까? 달리 말해, 미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의 포기를 약속받을만큼 응분의 양보조치를 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 최종적으로 드러난다면 어떨까? 이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을 파탄내는 중대한 계기가 될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북한'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다른 어떤 제3세계 나라들을 상정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질문이다. (그런데 최근 일각에서는 '이미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공공연하게 도전하고 있다'고 주장을 실제로 펼치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는 만에 하나 이러한 상황이 온다고 하더라도 미국이 동아시아로부터 퇴각하는 경로로 발전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미국과 소련이 '인류절멸'의 위기를 감수하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각각 상대측의 본토에 대량의 핵무기로 서로 보복할 수 있는 전략핵전쟁을 상정한 군사적 전략과 무기체계를 개발해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미국에게 있어서 현재 북한과의 군사적 대결은 훨씬 수월하게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궁극적으로 동아시아에서의 핵군비의 급격한 증가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이를 감당할 만한 경제규모를 갖고 있는 미국 혹은 일본을 포함한 몇몇 국가들 외의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파괴적인 악순환을 동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미국이 공식적으로 표방하고 있는 2010년 아니 그 이상의 시기를 넘어서는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유일패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물론 앞서 가정해 본 방식을 기대한다면 이는 위험천만할 뿐만 아니라, 성공할 가능성 역시 매우 희박해 보인다. (왜냐하면 미국은 이러한 방식의 도전에 이미 익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로 이 지점으로부터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에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는 것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 와 경제적 불평등과 배제에 맞서는 투쟁과 평화를 위한 투쟁이 대중적으로 종합될 때 얻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대북정책은 오랜 기간 동안 '공백'에 가까운 것이었다. '동아시아의 분단'은 미국의 세계전략 속에서 장기간 유지되어 왔으며, 그 가운데 북한은 단순한 '봉쇄'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미-중 관계 또는 미-소 관계의 개선은 미국에게 있어서 '거대한' 전략적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북한은 (마치 동아시아의 고립된 섬과 같이) 이러한 전환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1990년대 들어서 북미간의 대화와 협상이 시작되고 세계언론도 이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진 듯 보이지만, 미국의 대북 인식은 현 시점에서도 과거로부터 아주 멀리 나간 것은 아닌 듯하다. 다음에 요약하는 미국 논객의 논설을 보면, 그들의 대북인식이 여전히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북한의 대량파괴무기 개발의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아직 아시아의 전역미사일방어체제(TMD)와 미국 본토의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뛰어난 전문가들은 클린턴 정부가 다가오는 6월 TMD 및 NMD 배치를 결정한다고 하더라도 실제 배치가 되기까지는 6∼7년 정도가 걸릴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따라서 우리는 대북 관계에 있어서 '최대 위기의 시기'에 놓여 있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미국-남한-일본의 최근 개입정책은 강력한 재래식전력과 핵전력에 의해 지원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북한이 가까운 시일 내에 붕괴할지도 모르는 사태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투자로 손을 써서 시간을 벌어야 한다. 이는 [북한을 지원하기 위한 게 아니라] 단지 우리가 최악의 시나리오를 다룰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개입정책을 통해 적지 않은 돈을 손해보겠지만, 동아시아 각국들의 안보를 지키고 북한의 주체 체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시간을 벌 것이다. 따라서 최근의 개입정책은 최선의 대안은 아니다. 즉 현시점에서 유일한 대안인 것이다."
-William J. Tayolr, 'South-North unification? More of ideal than policy', Korea Herald, 2000. 2. 17,
이러한 주장은 현재 미국-한국-일본이 구사하는 대북 정책을 지지하는 미국내 '보수주의자'의 시각을 대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나는 이 논설이 현재 미국정가를 주도하고 있는 클린턴 행정부의 고위관리들의 의견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평균적인 미국인들의 시각과는 매우 근접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즉 미국의 안보와 '국익'을 지키는 것은 기본적으로 강력한 군사력(핵전력-재래식전력-미사일 요격시스템)이라는 불변하는 가정, 북한의 생존 또는 붕괴 그 자체는 미국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사실, 달리 말하자면 북한은 (흡사 중국과는 달리) 미국이 무엇인가 거대한 전략적 전환을 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미국의 대북 정책은 미국의 국익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실용성을 우선해야 한다는 점 등이 특히 그러하다.
클린턴 행정부와 1990년대 미국의 외교정책
그런데 미국의 세계전략 역시 앞서 요약한 미국의 대북인식과 별도의 것은 아닌 듯하다. 미국은 '탈냉전'이라는 전략적 환경의 심대한 변화 속에서 기존에 갖고 있었던 '현실정치'(real politik)의 논리와 각각의 사안에 대한 실용주의적 대처를 종합하였다. 미국은 새로운 세계질서 속에서 미국 국익을 보호하기 위해 요구되는 최우선적 과제와 부차적인 과제들을 분류해 내면서, 여러 차원의 접근방식들을 동원해냈다.
최근 2000년 대선을 앞두고 미국 공화-민주 양당이 외교정책에 관해 벌어지고 있는 논쟁은 이러한 사정을 드러내주고 있다. 올해 초 미국 외교관계협의회에서 발간하는 잡지 {포린어페어즈}(Foreign Affairs)에서는 공화당의 부시 후보와 민주당의 고어 후보를 지지하거나 외교문제의 자문 역할을 하는 필진들이 등장해 지상 논쟁을 펼쳤다. 2000년 대선을 앞둔 시점인만큼 지난 8년간 진행된 클린턴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가 바로 핵심적인 논점이었는데, 이 중에 클린턴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실용주의'적인 논조로 지지하는 글이 눈길을 끌었다. (조금 길지만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냉전의 해체 이후 오늘날 미국의 군사적·경제적 압도적인 우위는 자신에게 거대한 행동의 자유를 부여했다. 미국의 지도자는 다른 국가들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크게 걱정할 필요없이 자신의 광범위한 목적들을 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에게 정말 심각한 위협이 되는 적들은 존재하지 않으며, 가장 명백한 적대국가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이라크, 북한, 유고슬라비아는 약체이고 빈곤하며 고립되어 있다.
여기에서 미국의 '단극성'(unipolarity)이라는 중심적인 역설이 등장한다. 미국은 막대한 영향력을 누릴 수 있지만, 그 권력을 통해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거의 모르고 있는 것이다. (…)
한편 미국의 압도적인 우월성에 조응하여, 미국 시민들은 국제문제에 대한 관심을 잃어가고 있다. 어느 설문조사에서 미국인들이 대답한 '오늘날 미국이 당면한 문제'에 대한 응답에는 외교문제가 아예 순위에 오르지 못했으며 '미국이 당면한 외교문제는 무엇인가'라는 또다른 질문에 대해서는 1위가 "모른다"였다. 만약 이라크의 사우디아라비아 공격을 가정했을 때 지상군 사용을 지지한 미국인은 절반 이하였으며, 한반도의 경우는 그 보다도 적었다.
또한 1994년에 당선된 공화당 의원의 2/3은 여권을 갖고 있지 않으며, 공화당 주류파의 지도자인 리처드 아미는 "나는 유럽을 방문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전에 한번 다녀왔기 때문이다"라고 자랑스럽게 선언했다. 바로 이들의 의회가 국제기구 및 국제문제에 대해 미국이 약속한 분담금을 삭감하고 있는 것이다. (…)
1992년 당시 클린턴 후보자는 "순수한 현실정치(realpolitik)라는 냉소적인 계산법은 새로운 시대에는 부적합하다"고 선언했다. 그렇지만 클린턴 대통령은 권력정치의 광대한 진가를 보여주었다. 그는 구 바르샤바 조약기구 국가들을 자신의 동맹으로 끌어들였고, 동아시아의 동맹들을 지지하면서 중국으로 하여금 미국의 입맛에 맞는 현재상태를 지지하도록 이끌어 내었다. 그는 대인지뢰금지조약을 거부하였고 NMD 건설을 받아들였다.
미국인들은 그들이 현실정치를 실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미국이 세계 최고인 것은 좋아한다. 동시에 미국인들은 꼭 그럴 필요가 없는데, 그들의 생명과 재산을 들이는 것 역시 원치 않는다. 아마도 클린턴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적당한 비용으로 이러한 일들을 치르게 될 것이다. 클린턴의 전략은 '비용이 싼 헤게모니'(hegemony on the cheap)이며, 그것은 미국인들이 지지하는 오직 유일한 전략이다. 미국인들은 고립주의를 원하지도 않으며 돈이 많이 드는 국제십자군을 원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바로 다음 대통령이 어느 당의 누가 될 지에 관계없이, 클린턴의 후계자가 그의 전철을 따라갈 것으로 보이는 이유이다."
Stephen M Walt, 'Two cheers for Clinton's foreign policy', Foreign Affairs, 2000.3·4
이 글에서, 오늘날 미국은 자신의 국익에 관해 매우 '솔직하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미국이 자신의 '사활적'인 이해가 걸린 전략적 지역, 이슈 등을 그렇지 않은 것들과 정확하게 구분해낸다는 점이다. (미국이 그렇지 않은 듯 행동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존재하는가?)
특히 미국은 자신의 '사활적' 이해가 걸린 주요지역의 경우, 그 누구에게 어떠한 양보도 취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즉 자신의 핵심 관심사가 걸린 문제에 대해서는 '현실정치' 전략의 정수들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기존의 군사동맹관계(특히 NATO와 미-일동맹)를 강화·발전시킴으로써 자신의 '국익'을 군사적으로 보장하는 한편, 각각의 지역들에서 미국의 지도력을 위협하는 요소들(지역적 파워의 등장, 대량파괴무기의 확산)의 출현을 억제하기 위한 역내 동맹관계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은 현재 시점까지 대체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탈냉전'과 미국의 세계전략에 대한 도전요인들
그런데 오늘날 미국의 대외 군사안보정책을 교란하는 요인들은 오히려 다른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미국의 국익에 비추어 볼 때 '부차적'인 지역, 달리 말해 오늘날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경제의 통합으로부터 배제된 지역들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지역분쟁들과 폭력이 바로 그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 "냉전 때에는 높은 군사적 위협 속에서 높은 안정성을 유지하였지만, 탈냉전 시기에는 낮은 군사적 위협 속에서도 낮은 수준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라고 표현한 바 있다)
즉, 한편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이데올로기와 결부된 제3세계의 민족주의 세력들이 군사력의 증강을 통해 최종적으로 세계경제 내에서 '정당한' 위치를 보장받으려는 전략들이 빈발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경제에 배제된 지역에서 약탈전쟁과 반동적인 분리주의가 지속적으로 재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민족주의와 분리주의의 대부분은 미국을 직접적인 타겟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궁극적으로 세계경제로의 이탈 및 그에 대한 타격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미국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실제 대부분의 분리주의 움직임은 세계시장으로부터의 자립화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세계시장으로의 편입에 있어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시도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나라 안의 가난한 지역들을 저버리고 독립을 원하는 것은 그 지역 내에서 가장 "덜" 가난한 지역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심없이 발생하고 있는 지역분쟁들과 폭력의 확산은 미국의 세계적/지역적 지도력의 신뢰성을 의심받게 하고, 미국의 세계헤게모니를 정당화하는 미국의 보편적 '가치'(민주주의와 인권)를 위협하는 요인이라는 점에서 미국으로서는 간과할 수만은 없는 문제이다. 게다가 제3세계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군사력 증강의 주된 방식은,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대량파괴무기(핵-생화학-미사일) 개발로 집중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세계 군사질서를 자신의 통제 아래에 두고 있다는 환상을 어쩌면 단번에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점에서, 미국 대외정책의 중대한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결국 앞의 글에서 묘사된 '단극성의 역설'이란 바로 이러한 상황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듯 미국의 시각에서 바라볼 때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위협들에 대한 미국의 대처방식들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지만, 이러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클린턴 행정부는 이에 유능하게 대처하기 위한 방안들을 강구해 나갔다.
그것은 첫째로, 미국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대량파괴무기의 확산을 저지하는데 1차적 우선성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대량파괴무기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국제적인 다자간 규범들을 활성화하거나 혹은 새롭게 창출하는 방식이 동원되었으며, 또한 쌍무적인 방식을 통해 미국이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이 채택되었다. 예컨대 클린턴 행정부는 '화학무기협정'(CWC)을 비준시키고, '포괄적핵무기실험금지조약'(CTBT)의 비준을 시도하였다. (그렇지만 1999년 미국 의회의 CTBT 비준은 공화당의 거부로 실패하였다) 또한 구 소연방 소속 국가들의 핵무기 폐기를 주도하였고,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봉쇄하기 위해 대북 선제공격 방안까지도 검토한 바 있다.
그리고 이에 조응하여 최근 들어서는 잠재적인 적국들의 대량파괴무기 개발 의도를 분쇄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항 미사일요격체계의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 초기인 1994년 에스핀 전 국방장관은 "냉전의 종식과 소련의 붕괴는 미국이 전면적 핵공격에 대비한 '미래적 방패'에 과도하게 투자할 필요가 더 이상 없음을 의미한다"고 말함으로써, 지난 1983년 레이건 대통령 당시의 '전략적방위구상'(SDI)을 공식적으로 폐기하였다.
그러나 1999년 윌리엄 코언 현 국방장관은 북한이 실시한 미사일 발사실험을 명시적으로 예시하며 "우리는 위협이 현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점점 커지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고 선언했고, 수십억 달러를 추가 투입하여 미사일방어체제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그리고 클린턴 행정부는 세계경제로부터 배제된 지역에서 빈발하고 있는 지역분쟁에 대해서는 관망적인 태도와 함께, 다자주의와 다양한 국제기관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오늘날 미국은 세계적인 갈등구도를 과거 동서 냉전구도로부터 '민주주의와 인권의 옹호자'(미국과 국제시민사회) vs '깡패국가와 근본주의자'(호전적 민족주의, 종교적 근본주의 등등)의 대립으로 전환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이로부터 미국은 '국제사회 구성원의 공동의 책임', '국제시민사회의 임무'라는 논리들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면서, 제3세계에서 발생하는 분쟁들에 있어서 UN(평화유지군) 및 각종 NGO들의 활동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난민구호-평화유지-선거관리감시-전후 개발프로그램 입안 등 분쟁의 '관리'와 '사후처리'를 위한 제반의 활동) 따라서 이러한 요소들이 오늘날의 미국 대외정책의 '현실정치'와 '저렴한 헤게모니'의 핵심축들을 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2000년 미국대선과 한반도
따라서 이처럼 클린턴의 외교정책이 미국인들이 정말로 지지할 수 있는 '절묘한' 타협점에 서있는 것이라면, 양당 후보의 대외정책에서 심각한 차별성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해도 별로 놀라울 것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화당의 외교노선을 지지하는 논자는 이러한 의견을 어떻게 생각할까?
여기에서 짚어져야 할 사실은, 위에 인용한 글에 앞서 {포린어페어즈} 2000년 1·2월호에 실린 '공화당의 대외정책'이라는 글에서, 필자 로버트 젤릭이 클린턴의 대외정책은 부시 행정부의 유산을 물려받은 것이라는 점을 확인한다는 점이다.
(즉 1990년대 미국의 대외정책의 기본적인 틀은 부시행정부(공화당)에 의해 세워졌다는 것) 예컨대 부시행정부는 NAFTA 협상을 개시했으며, 서구의 주변부 지역으로까지 자유무역을 확장시키기 위해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을 지지했으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진척시켰고, UR 협상을 주도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부시행정부는 1990년대 초반 통일독일을 NATO에 가입시키면서 유럽과 러시아를 포괄하는 전략적 전망을 구상하였고, 재래식무기 및 핵무기 감축 협상의 이정표를 세웠다는 것이다. (물론 필자는 클린턴 행정부가 일관성과 단호함의 부족으로 인해 미국의 국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이러한 기회를 흘려버렸다고 대단히 강조한다)
그렇지만, 실제적으로 고어와 부시진영의 대외정책은 서로 수렴하고 있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중대 현안인 △WTO와 관련된 경제·무역자유화 △IMF를 비롯한 국제금융체계의 개혁 등의 대외경제 이슈나, △기존 군사동맹체계의 유지(NATO 및 미일동맹) △미국에게 잠재적 도전이 되는 러시아, 중국, 인도 등과 같은 지역강국에 대한 전략 △대량파괴무기의 반확산 등의 군사·안보 이슈에 대해서 상호 수렴하고 있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민주-공화 양당의 대북 정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관련하여, 로버트 매닝 미외교관계협의회 선임연구원과 {조선일보}의 인터뷰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조선일보는 부시후보가 당선된다면 그가 대북 정책 입안의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는데,) 그는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가 미국의 동북아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주당의 앨 고어 부통령이 승리한다면 클린턴 정부와 유사한 정책이 취해질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가 승리할 경우, 아시아와 미국과의 관계가 훨씬 나아질 것으로 본다. 중국 입장에서 볼 때 클린턴 행정부를 상대하기 힘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정책의 일관성을 찾기가 힘들었다는 점일 것이다. 정치적 기류의 변화에 따라 너무 변화가 많았다. 하지만 부시 지사의 외교팀들이 등장할 경우, 중국은 클린턴 정부가 내건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는 미사여구는 포기해야 할지 모르지만, 최소한 미국을 상대하는데 어디까지가 한계인지를 분명히 알게 될 것이므로 좀더 예측가능한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이 점은 북한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설명에서도 역시 부시의 외교팀이 보다 일관성과 단호함을 구비할 수 있을 것이리라는 점을 대단히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구체적인 조치들에서 당장 어떤 차이가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가리기 위한 정치적 제스처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결국 차기 미국정부의 대북 정책의 기본적인 골조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이 점은 '페리보고서'가 클린턴 행정부의 독자적인 구상이 아니라, 이미 공화·민주 양당의 대북 정책을 이미 수렴한 것이라는 사실에서도 결정적으로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동아시아의 유일패권으로 존속할 것인가?
20세기의 세계자본주의경제의 중심부-반주변부-주변부로의 분할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적 군사안보질서로서의 중심-보호국-세력권이라는 구획선과 거의 정확하게 일치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세계자본주의경제의 위계질서와 군사안보질서는 냉전이라는, 고강도의 군사적 긴장감을 조건으로 하여 비교적 안정된 형태를 유지해왔다. 그렇지만 오늘날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 전략에 따라, 이러한 형태의 기존 질서는 여러모로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예컨대 중심부 국가들간에 그리고 혹은 중심부-반주변부 국가들간의 경제적 통합을 가속화되고 있는 반면, 주변부 국가들에 대한 경제적 배제 현상도 점차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탈냉전이라는 새로운 환경을 통해 강력하게 추동되고 있는 바, 미국이 주도하는 전략이 심각한 저항없이 대체적으로 관철되어가는 양상이다.
한편, 한반도가 위치한 동아시아는 20세기 후반기에 걸쳐 미국과 일본 경제에 포섭된 신흥공업국들이 생성되고 미국 주도의 강력한 군사동맹 체계가 작동하는 핵심적 지역으로 부상해 왔다. 이러한 경향은 바로 지금 시점에서도 강화되고 있는데, 미국과 일본 주도의 경제통합이 점차 수위를 높여가고 있으며, 기존의 강고한 군사동맹 체계 역시 한층 발전되어가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놓고 본다면, 이제 동아시아에서의 북한의 존재는 미국의 시각에서 볼 때 매우 기묘한 하나의 물음표로 남아있는 셈이다. 미국 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퍼져 있는 정치가들과 분석가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북한이 독자적으로 체제를 유지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공유하고 있다. 이것은 북한이 현재 취하고 있는 전략을 여전히 모호하거나 압도적인 지금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북한의 대량파괴무기 확산 시도를 저지한다는 것을 기본전제로 한다면 장기적인 대치상황(즉 미국에게는 현재의 봉쇄상태의 전반적인 유지)은 미국에게 불리할게 전혀 없다는 가정과 일맥상통하다.
그렇다면, 만약에 미국이 북한의 대량파괴무기 확산 시도를 막아내지 못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어떨까? 달리 말해, 미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의 포기를 약속받을만큼 응분의 양보조치를 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 최종적으로 드러난다면 어떨까? 이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을 파탄내는 중대한 계기가 될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북한'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다른 어떤 제3세계 나라들을 상정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질문이다. (그런데 최근 일각에서는 '이미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공공연하게 도전하고 있다'고 주장을 실제로 펼치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는 만에 하나 이러한 상황이 온다고 하더라도 미국이 동아시아로부터 퇴각하는 경로로 발전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미국과 소련이 '인류절멸'의 위기를 감수하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각각 상대측의 본토에 대량의 핵무기로 서로 보복할 수 있는 전략핵전쟁을 상정한 군사적 전략과 무기체계를 개발해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미국에게 있어서 현재 북한과의 군사적 대결은 훨씬 수월하게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궁극적으로 동아시아에서의 핵군비의 급격한 증가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이를 감당할 만한 경제규모를 갖고 있는 미국 혹은 일본을 포함한 몇몇 국가들 외의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파괴적인 악순환을 동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미국이 공식적으로 표방하고 있는 2010년 아니 그 이상의 시기를 넘어서는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유일패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물론 앞서 가정해 본 방식을 기대한다면 이는 위험천만할 뿐만 아니라, 성공할 가능성 역시 매우 희박해 보인다. (왜냐하면 미국은 이러한 방식의 도전에 이미 익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로 이 지점으로부터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에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는 것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 와 경제적 불평등과 배제에 맞서는 투쟁과 평화를 위한 투쟁이 대중적으로 종합될 때 얻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