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정치세력화,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세계는 지금, ‘여풍’(女風) 시대?
지난 해 독일 최초로 여성총리가 탄생한 데 이어, 올해 초에는 칠레와 라이베리아에서 최초로 여성 대통령이 선출됐다. 핀란드의 여성 대통령인 타르야 할로넨도 올해 재선에 성공했으며 지난달 30일에는 자메이카에서 포르티아 심슨 밀러 총리가 역시 여성 최초로 총리직에 올랐다. 이 밖에 현직 여성 국가 지도자들로는 필리핀의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 라트비아의 바이라 비케프레이베르가 대통령, 아일랜드의 메리 매컬리스 대통령, 모잠비크의 루이자 디오고 총리, 방글라데시의 베굼 칼레다 지아 총리, 뉴질랜드의 헬렌 클라크 총리, 스리랑카의 찬드리카 쿠마라퉁가 대통령 등이 있다. 이런 소식들이 먼나라 일인 줄만 알았는데, 이번 달 19일 한국에서도 첫 ‘여성’총리가 탄생했다. 정말로 세계는 지금 ‘여풍’ 시대인 듯 하다. 그러나 각 국 정부 고위직에 여성들의 진출이 소란스럽게 알려지는 가운데, 지난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유엔이 발표한 여성지위보고서에 따르면, 성인 문맹자 중 여성이 67%, 급여를 받지 못하는 가내수공업 노동자 중 여성이 62%, 적당한 음식과 물, 보건 위생, 교육을 제공받지 못하는 여성은 7억 명(남성 4억 명), 학교 못 다니는 여자 아이 8500만 명(남자 아이 4500만 명), 전 세계 빈곤 인구 12억 명 가운데 70%를 여성이 차지하는 등 ‘빈곤의 여성화’ 경향은 지속,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배정치의 위기와 ‘여풍’
첫 여성총리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 강금실로 상징화된 현재의 ‘여풍’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한국여성단체연합을 위시한 여성단체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한명숙 의원을 새총리로 지명하자마자 환영 성명서를 내고 인사청문회에 참관하여 총리 인준을 위해 압력 행사를 하는 등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현재의 주류여성운동은 한명숙 여성총리 인준을 기존의 정치와 다른 새로운 여성정치시대의 서막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대적인 환영은 신자유주의 정책 추진으로 초래된 대중의 삶의 위기 및 그에 따른 불만을 관리하지 못하는 지배정치의 무능력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여성이 활용되고 있는 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2007년 대선 전초전의 성격을 가진 이번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우리당은 사회양극화 ‘심화’로 높아진 정권과 여당에 대한 불만, 이해찬 전 총리의 불명예 사퇴 등으로 낮아질 대로 낮아진 지지율을 ‘여성’을 내세운 이미지 전략으로 회복하고자 한다. 물론 여성단체들은 “한명숙 총리 국회비준에 대한 논평”에서 한명숙 총리는 단지 여성으로서만이 아니라, 가족의 후광을 가진 박근혜와 다르게, 스스로의 능력과 힘으로 총리가 된 여성 정치 참여의 ‘바람직한’ 방향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한명숙 총리 지명은 그 자체가 현 정부가 철저히 추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동의하고, 이를 추진할 수 있는 인물로 인정받았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실 여성총리의 첫 번째 과제로 제기된 ‘사회양극화 해소’는 그 원인인 정부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기조를 중단시키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총리가 인준되는 그날, 여성이기 때문에 파견업체의 비정규직이었고 파업으로 해고되었던 KTX 여성노동자들은 한명숙 총리가 사태해결에 나설 것을 요구하는 국회 점거농성을 벌였고 다음날 전원 연행되었다.
지방자치선거와 여성의 정치세력화
정치적-경제적-사회적으로 불평등한 한국 여성의 지위와 지나치게 낮은 대표성이 현실인 상황에서, 여성운동은 여성의 대표성 제고를 위한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중요한 과제로 제기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여성정치세력화 흐름이 현재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속에서 어떻게 만나고 수용되고 있는가는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여성운동 안에서 제도정치 진입과 여성의제 제도화를 중심으로 한 여성정치세력화 논의는 93년 문민정부의 등장과 94년 지방자치선거를 계기로 본격화되었다.
7-80년대 여성노동운동을 배경으로 87년 출범한 진보적 여성운동 연합체로서 여연은 민족민주운동의 부문운동으로서 자기위상을 가지고 민주화운동과 여성인권운동을 진행해왔다. 여연은 91년, 92년 정책수련회를 통해 여성운동의 대중화, 운동영역의 확대를 목표로 기존의 기층여성중심성에서 생활정치, 지역 풀뿌리운동으로 일종의 노선변화를 하게 된다. 이에 따라 기존의 전체 연대연합운동과는 ‘따로 또 함께’하고, 여성정책의 제도화에 주력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90년대 초 사회운동의 위기(와 논쟁), 군사독재정권의 ‘민주화’(사실은 신자유주의화)를 배경으로 이루어진다. 생활정치는 가족, 지역사회의 재생산노동을 전담해왔던 주부를 주요대상으로 하였는데, 이런 변화는 중공업산업 중심의 수출주도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여성노동의 비정규직화가 상당부분 이루어지고, 비공식, 서비스 산업으로 여성노동자 집중되는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여성노동의 불안정화를 선차적으로 수반했던 경제구조조정이 진행되는 가운데, 여연은 지방의회 진출을 목표로 94년 보수적인 여성단체협의회(여협)과 처음으로 함께 ‘여성할당제를 위한 여성연대’를 구성하였고, 17명의 후보 중 14명이 당선된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지역여성단체의 정책력과 조직력의 성장으로 지방정부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이 높아진 반면, 복지관 위탁 운영, 성폭력 상담소 운영비 지원 등 정부기관에 대한 재정적 의존성이 강해지면서 여성의제의 제도화를 넘어 ‘여성운동의 제도화’가 문제가 되고 있다. 이렇듯 지방분권화는 여성운동의 정부 정책 개입의 ‘기회’로 여겨져 왔으며, ‘여성정치세력화’의 정의, 방법을 둘러싼 논의를 촉발시켰다고 할 수 있다.
5.31 지방자치선거의 쟁점
이번 지방자치선거에서 여야 할 것 없이 각 당은 사회양극화 해소와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들고 나올 것이다. 그러나 이런 쟁점들은 저임금, 불안정 노동조건에서 가사와 양육노동을 전담하고 있는 여성의 현실은 가린 채, 여성을 위한 가사와 직장 양립 지원 정책으로 선전되고 있다. 특히 ‘저출산․고령화 위기’에 대한 정부 대책이 여성에게 더 많은 출산과 더 많은 노동을 요구하는 것으로 큰 틀이 잡혀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흐름은 여성의 의무를 강화하는 것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이것이 현재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성주류화 전략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이 여성의 지방의회 진출의 동인이 되고 있다. 17대 총선 이후 각 당이 비례후보 50% 할당과 지역구 여성할당을 시행하고 있어, 이전 지방의회 선거보다 많은 여성들이 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중의 삶의 위기에 따른 제도정치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어 있는 가운데, 제도정치로부터 배제된 결과 나타나는 청렴성, 참신성, 지역사회의 ‘살림꾼’으로서 여성의 이미지는 적극 활용될 것이다. 여기에 여성대표가 그 자체로 여성의 요구를 대변할 수 있다는 생각은 현재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유지한 채 여성이 다른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만들 수 있다.
신자유주의 비판과 분리된 여성정치세력화는 불가능하다.
여성정치세력화란 여성의 주체화-조직화를 의미하며 개인(그리고 시민)이 ‘남성’으로 상징되는 체계를 전복하는 여성적 시민권의 획득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 종종, 흔히 볼 수 있는 여성의 정치세력화는 제도화, 합법화된 (협의의) 정치 안에서 영향력 세력으로서 드러나는 것‘만’을 의미하거나, 그 목표 또한 여성정책의 제도화나 ‘여성’정치인 정계진출에 머물러 있다. 또한 여성정치세력화 추진의 근거가 되는 ‘여성의 과소대표’의 현실은 제도정치의 개혁(공천문화, 할당제)으로 풀려는 시도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여성정치세력화 논의에서 나타나는 정치의 협소화는 기간 여성운동의 정치 비판의 의미를 역행하는 흐름이기도 하다. 여성운동의 유명한 모토인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는 여성을 ‘사적’이라 여겨지는 가족에 유폐하면서, 공/사 분할이데올로기를 통해 여성의 시민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성차별주의를 비판한 것이었다.
여성이 정치적-경제적-사회적으로 과소대표되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현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제도정치 진출이나, 여성할당제를 통한 제도개선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 역시 현실이다. 그렇다면 ‘현실’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새로운 질문이 필요하다. 여성 과소대표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인가, 즉 무엇이 여성의 주체화․조직화를 가로막고 있는가, 더 나아가 “무엇이 과소대표되고 있는가?” 가장 중요한 과소대표의 원인은 현재의 가족형태에서 차별적으로 재생산되는 여성성과 남성성, 그리고 가사․양육 등 재생산노동의 1차적 책임이 가족 내 여성에게 전가되는 상황에 있다. 여기에 여성을 광범위한 불안정 노동층으로 유인하기 위해 직장과 가사 양립 지원 정책과 같은 보완정책을 동반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 하에서 여성의 요구가 무엇인지 조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진다. 왜냐하면 현재의 여성인력활용 정책이 일면 여성에게 기회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이는 더욱 관건적이다.
물론 여연을 비롯한 여성운동 내에서 여성정치세력화를 위한 ‘끼어들기 vs 새판짜기’ 논쟁이 있어왔다. 여연은 17대 총선 평가에서 ‘새판짜기’를 위해선 여성국회의원 5.9%란 현실 자체가 ‘끼어들기’ 전략이 불가피함이었다고 설명하고, 13%는 새판짜기의 기초를 다진 것이고 16대 국회와 다르게 17대 국회에서 ‘호주제 폐지’를 그 성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새판짜기 역시 현재 신자유주의적 지배정치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여성의 제도정치 진출, 제도화에 머무는 것이라면, ‘끼어들기 vs 새판짜기’는 그 자체로 차별점을 가지기 힘들다.
신자유주의가 강요하는 노동의 불안정화에 맞선 노동권 쟁취, 국가의 여성의 출산 통제와 강요에 맞선 여성권 쟁취 투쟁이 아래로부터 조직되는 것, 이것이 여성정치세력화의 출발일 것이다. 빈곤과 여성에 대한 폭력에 맞서 여성들의 권리를 제기하며 여성들이 스스로 조직화, 투쟁하는 것이 여성이 진정으로 스스로를 대표할 수 있는 힘이다.
지난 해 독일 최초로 여성총리가 탄생한 데 이어, 올해 초에는 칠레와 라이베리아에서 최초로 여성 대통령이 선출됐다. 핀란드의 여성 대통령인 타르야 할로넨도 올해 재선에 성공했으며 지난달 30일에는 자메이카에서 포르티아 심슨 밀러 총리가 역시 여성 최초로 총리직에 올랐다. 이 밖에 현직 여성 국가 지도자들로는 필리핀의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 라트비아의 바이라 비케프레이베르가 대통령, 아일랜드의 메리 매컬리스 대통령, 모잠비크의 루이자 디오고 총리, 방글라데시의 베굼 칼레다 지아 총리, 뉴질랜드의 헬렌 클라크 총리, 스리랑카의 찬드리카 쿠마라퉁가 대통령 등이 있다. 이런 소식들이 먼나라 일인 줄만 알았는데, 이번 달 19일 한국에서도 첫 ‘여성’총리가 탄생했다. 정말로 세계는 지금 ‘여풍’ 시대인 듯 하다. 그러나 각 국 정부 고위직에 여성들의 진출이 소란스럽게 알려지는 가운데, 지난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유엔이 발표한 여성지위보고서에 따르면, 성인 문맹자 중 여성이 67%, 급여를 받지 못하는 가내수공업 노동자 중 여성이 62%, 적당한 음식과 물, 보건 위생, 교육을 제공받지 못하는 여성은 7억 명(남성 4억 명), 학교 못 다니는 여자 아이 8500만 명(남자 아이 4500만 명), 전 세계 빈곤 인구 12억 명 가운데 70%를 여성이 차지하는 등 ‘빈곤의 여성화’ 경향은 지속,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배정치의 위기와 ‘여풍’
첫 여성총리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 강금실로 상징화된 현재의 ‘여풍’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한국여성단체연합을 위시한 여성단체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한명숙 의원을 새총리로 지명하자마자 환영 성명서를 내고 인사청문회에 참관하여 총리 인준을 위해 압력 행사를 하는 등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현재의 주류여성운동은 한명숙 여성총리 인준을 기존의 정치와 다른 새로운 여성정치시대의 서막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대적인 환영은 신자유주의 정책 추진으로 초래된 대중의 삶의 위기 및 그에 따른 불만을 관리하지 못하는 지배정치의 무능력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여성이 활용되고 있는 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2007년 대선 전초전의 성격을 가진 이번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우리당은 사회양극화 ‘심화’로 높아진 정권과 여당에 대한 불만, 이해찬 전 총리의 불명예 사퇴 등으로 낮아질 대로 낮아진 지지율을 ‘여성’을 내세운 이미지 전략으로 회복하고자 한다. 물론 여성단체들은 “한명숙 총리 국회비준에 대한 논평”에서 한명숙 총리는 단지 여성으로서만이 아니라, 가족의 후광을 가진 박근혜와 다르게, 스스로의 능력과 힘으로 총리가 된 여성 정치 참여의 ‘바람직한’ 방향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한명숙 총리 지명은 그 자체가 현 정부가 철저히 추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동의하고, 이를 추진할 수 있는 인물로 인정받았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실 여성총리의 첫 번째 과제로 제기된 ‘사회양극화 해소’는 그 원인인 정부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기조를 중단시키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총리가 인준되는 그날, 여성이기 때문에 파견업체의 비정규직이었고 파업으로 해고되었던 KTX 여성노동자들은 한명숙 총리가 사태해결에 나설 것을 요구하는 국회 점거농성을 벌였고 다음날 전원 연행되었다.
지방자치선거와 여성의 정치세력화
정치적-경제적-사회적으로 불평등한 한국 여성의 지위와 지나치게 낮은 대표성이 현실인 상황에서, 여성운동은 여성의 대표성 제고를 위한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중요한 과제로 제기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여성정치세력화 흐름이 현재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속에서 어떻게 만나고 수용되고 있는가는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여성운동 안에서 제도정치 진입과 여성의제 제도화를 중심으로 한 여성정치세력화 논의는 93년 문민정부의 등장과 94년 지방자치선거를 계기로 본격화되었다.
7-80년대 여성노동운동을 배경으로 87년 출범한 진보적 여성운동 연합체로서 여연은 민족민주운동의 부문운동으로서 자기위상을 가지고 민주화운동과 여성인권운동을 진행해왔다. 여연은 91년, 92년 정책수련회를 통해 여성운동의 대중화, 운동영역의 확대를 목표로 기존의 기층여성중심성에서 생활정치, 지역 풀뿌리운동으로 일종의 노선변화를 하게 된다. 이에 따라 기존의 전체 연대연합운동과는 ‘따로 또 함께’하고, 여성정책의 제도화에 주력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90년대 초 사회운동의 위기(와 논쟁), 군사독재정권의 ‘민주화’(사실은 신자유주의화)를 배경으로 이루어진다. 생활정치는 가족, 지역사회의 재생산노동을 전담해왔던 주부를 주요대상으로 하였는데, 이런 변화는 중공업산업 중심의 수출주도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여성노동의 비정규직화가 상당부분 이루어지고, 비공식, 서비스 산업으로 여성노동자 집중되는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여성노동의 불안정화를 선차적으로 수반했던 경제구조조정이 진행되는 가운데, 여연은 지방의회 진출을 목표로 94년 보수적인 여성단체협의회(여협)과 처음으로 함께 ‘여성할당제를 위한 여성연대’를 구성하였고, 17명의 후보 중 14명이 당선된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지역여성단체의 정책력과 조직력의 성장으로 지방정부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이 높아진 반면, 복지관 위탁 운영, 성폭력 상담소 운영비 지원 등 정부기관에 대한 재정적 의존성이 강해지면서 여성의제의 제도화를 넘어 ‘여성운동의 제도화’가 문제가 되고 있다. 이렇듯 지방분권화는 여성운동의 정부 정책 개입의 ‘기회’로 여겨져 왔으며, ‘여성정치세력화’의 정의, 방법을 둘러싼 논의를 촉발시켰다고 할 수 있다.
5.31 지방자치선거의 쟁점
이번 지방자치선거에서 여야 할 것 없이 각 당은 사회양극화 해소와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들고 나올 것이다. 그러나 이런 쟁점들은 저임금, 불안정 노동조건에서 가사와 양육노동을 전담하고 있는 여성의 현실은 가린 채, 여성을 위한 가사와 직장 양립 지원 정책으로 선전되고 있다. 특히 ‘저출산․고령화 위기’에 대한 정부 대책이 여성에게 더 많은 출산과 더 많은 노동을 요구하는 것으로 큰 틀이 잡혀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흐름은 여성의 의무를 강화하는 것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이것이 현재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성주류화 전략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이 여성의 지방의회 진출의 동인이 되고 있다. 17대 총선 이후 각 당이 비례후보 50% 할당과 지역구 여성할당을 시행하고 있어, 이전 지방의회 선거보다 많은 여성들이 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중의 삶의 위기에 따른 제도정치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어 있는 가운데, 제도정치로부터 배제된 결과 나타나는 청렴성, 참신성, 지역사회의 ‘살림꾼’으로서 여성의 이미지는 적극 활용될 것이다. 여기에 여성대표가 그 자체로 여성의 요구를 대변할 수 있다는 생각은 현재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유지한 채 여성이 다른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만들 수 있다.
신자유주의 비판과 분리된 여성정치세력화는 불가능하다.
여성정치세력화란 여성의 주체화-조직화를 의미하며 개인(그리고 시민)이 ‘남성’으로 상징되는 체계를 전복하는 여성적 시민권의 획득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 종종, 흔히 볼 수 있는 여성의 정치세력화는 제도화, 합법화된 (협의의) 정치 안에서 영향력 세력으로서 드러나는 것‘만’을 의미하거나, 그 목표 또한 여성정책의 제도화나 ‘여성’정치인 정계진출에 머물러 있다. 또한 여성정치세력화 추진의 근거가 되는 ‘여성의 과소대표’의 현실은 제도정치의 개혁(공천문화, 할당제)으로 풀려는 시도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여성정치세력화 논의에서 나타나는 정치의 협소화는 기간 여성운동의 정치 비판의 의미를 역행하는 흐름이기도 하다. 여성운동의 유명한 모토인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는 여성을 ‘사적’이라 여겨지는 가족에 유폐하면서, 공/사 분할이데올로기를 통해 여성의 시민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성차별주의를 비판한 것이었다.
여성이 정치적-경제적-사회적으로 과소대표되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현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제도정치 진출이나, 여성할당제를 통한 제도개선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 역시 현실이다. 그렇다면 ‘현실’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새로운 질문이 필요하다. 여성 과소대표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인가, 즉 무엇이 여성의 주체화․조직화를 가로막고 있는가, 더 나아가 “무엇이 과소대표되고 있는가?” 가장 중요한 과소대표의 원인은 현재의 가족형태에서 차별적으로 재생산되는 여성성과 남성성, 그리고 가사․양육 등 재생산노동의 1차적 책임이 가족 내 여성에게 전가되는 상황에 있다. 여기에 여성을 광범위한 불안정 노동층으로 유인하기 위해 직장과 가사 양립 지원 정책과 같은 보완정책을 동반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 하에서 여성의 요구가 무엇인지 조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진다. 왜냐하면 현재의 여성인력활용 정책이 일면 여성에게 기회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이는 더욱 관건적이다.
물론 여연을 비롯한 여성운동 내에서 여성정치세력화를 위한 ‘끼어들기 vs 새판짜기’ 논쟁이 있어왔다. 여연은 17대 총선 평가에서 ‘새판짜기’를 위해선 여성국회의원 5.9%란 현실 자체가 ‘끼어들기’ 전략이 불가피함이었다고 설명하고, 13%는 새판짜기의 기초를 다진 것이고 16대 국회와 다르게 17대 국회에서 ‘호주제 폐지’를 그 성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새판짜기 역시 현재 신자유주의적 지배정치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여성의 제도정치 진출, 제도화에 머무는 것이라면, ‘끼어들기 vs 새판짜기’는 그 자체로 차별점을 가지기 힘들다.
신자유주의가 강요하는 노동의 불안정화에 맞선 노동권 쟁취, 국가의 여성의 출산 통제와 강요에 맞선 여성권 쟁취 투쟁이 아래로부터 조직되는 것, 이것이 여성정치세력화의 출발일 것이다. 빈곤과 여성에 대한 폭력에 맞서 여성들의 권리를 제기하며 여성들이 스스로 조직화, 투쟁하는 것이 여성이 진정으로 스스로를 대표할 수 있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