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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7-8. 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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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철거를 앞둔 대추리, 도두리

진재연 | 정책편집부장
장맛비가 멈추고 오랜만에 해가 났습니다. 황새울 곳곳, 약통을 어깨에 들쳐 메고 들판을 누비는 농민들이 보입니다. 노란색 약줄이 왔다 갔다 하는 파란 들판을 앞에 두고 경찰방패를 든 군인들이 줄지어 뛰고 있습니다. 또 한쪽에서는 며칠 간의 장맛비로 허물어진 구덩이를 보수하는 군인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구덩이에 물이 불어 경찰과 군인들이 다닐 길이 없어진 곳에 모래주머니를 연결해 길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런 모습들이 익숙해져 버린 대추리, 도두리 뜰에서 주민들은 철조망 바깥에 살아 남은 논이라도 살리기 위해 날마다 허리를 굽히고 있습니다. '올해도 농사짓자'라는 구호를 이제 외칠 수 없게 되었지만 마른 땅에 뿌려졌던 볍씨는 쑥쑥 잘도 자랍니다. 주민들과 지킴이들이 이른 아침부터 모여 일을 시작하던 '황새울 영농단' 앞길은 완전히 파괴돼 강이 되었지만, 포크레인도 어찌 할 수 없는 들판의 생명력은 질기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살아남은 논에서 수확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지만, 올해는 농사 못 짓더라도 힘들지만 서로서로 나눠 먹으며 살면 되지 않겠냐고 서로를 격려하는 주민들. 가끔 깊은 한숨과 함께 배어 나오는 슬픔과 체념이 병이라도 될까 걱정이지만 빼앗긴 들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코 놓을 수 없는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싸움을 이어갑니다. 예전처럼 슬쩍 제 옷소매를 붙잡으시며 "우리가 이기겠지?"라는 말을 건네지도 않으시지만 주민들은 끝을 알 수 없는 날들을 묵묵히 견뎌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김석경 할아버지네 소들이다. 대추리의 소들은 사람들만큼이나 수난을 당하고 있다. 소음에 예민한 소들은 비행기 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하고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송아지들이 죽기도 한다.


구속된 아들을 오랜만에 면회하고 온 김석경 할아버지가 바쁘게 우사로 향하고 있습니다. 매일 새벽과 오후 5시에, 하루 두 번 소 밥 주는 일을 챙기시는 할아버지는 며칠 전 태어난 여섯 마리의 송아지를 돌보러 오토바이에 올라 타셨습니다. 둘째 아들 김지태 이장이 구속되었을 때 할아버지는 울화가 치밀고 가슴이 답답해 식사도 못하시고 한참동안 약을 드셨습니다. 걱정하는 가족들 때문에 면회도 두 달 동안 두 번밖에 못 가셨다는 할아버지는 오늘만은 '소 때문에' 꼭 가야 한다며 아들이 있는 평택구치소에 다녀오셨습니다. 키우시는 소들 중 한 마리를 수정시켰는지를 아들에게 물어보고 오신 할아버지는, 수정 안 시켰다는 대답을 듣고는 바로 수의사를 불러 수정을 했습니다. 지난 5월 할아버지네 우사에 경찰이 불을 질렀을 때, 태어난 지 며칠 안 된 송아지 2마리가 깜짝 놀라서 결국 죽는 일이 있었습니다. 열 두 살 때부터 소를 기르셨다는 김석경 할아버지는 비행기 소음에, 갑작스런 사고에 예민한 송아지들이 죽어 가는 일을 많이도 보고 살았지만 요즘같이 힘든 일상 속에서는 마음이 더욱 아프다고 하셨습니다. 며칠 전 지킴이들이 대추리 아저씨들과 함께 할아버지네 우사에 꽉 찬 소똥을 치웠습니다. 할아버지는 송아지들이 똥에 푹푹 빠지며 다녔는데 덕분에 우사가 깨끗해졌다며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김지태 이장님이 구속된 지 두 달이 되어갑니다. 바쁜 투쟁 일정 속에서도 누구보다 농사일에 열심이셨던 이장님에게 지킴이들은 '무대에서 발언하는 이장님보다 트랙터 모는 이장님이 더 멋지다'는 말을 농담처럼 건넸지만 정말로 그랬습니다. 땅을 일구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농사짓는 일보다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요. 아스팔트농사에 열심이던 사람들은 논에서도 농사를 열심히 지었습니다. 볍씨와 비료를 뿌리는 논 바로 위에 원을 그리며 낮게 나는 헬기소리가 멈추지 않았지만 이장님의 트랙터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대화를 하자던 국방부는 자진출두한 김지태 이장님을 구속했고, 주민들이 '김지태 이장 석방을 선결조건으로 내세워 대화를 거부한다'며 빈집을 강제철거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국방부는 8월에 빈집을 철거하겠다고 합니다. 7월부터 빈집을 철거 할 테니 6월 30일까지 이주하라는 통보를 받았던 주민들은 7월 한 달 동안 마음을 졸이며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할머니들은 노인정에 모여 지루한 국회방송에 귀를 쫑긋 세우고 오늘은 뭐 좋은 말이라도 있을라나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던 한국정부가 7월 25일 주한미군과 함께 '미군기지이전사업단'을 창설했다고 합니다. 한국정부는 '종합적인 시각에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미군기지이전사업단을 창설했고, 현판식을 열며 샴페인으로 축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헬기에 쇠뭉치를 달아 때리는 방식으로 빈집 철거에 나서겠다고도 합니다. 강제철거를 위한 사전 준비라도 하듯 지금 대추리, 도두리는 숨막히는 불심검문과 인권침해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거대한 포로수용소를 방불케 할 만큼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며 마을을 고립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마을로 들어오는 버스에 올라타 검문하고 '외부인'이 타고 있으면 내리게 하거나 버스를 회차 시킵니다. 농활 온 학생의 출입을 철저하게 차단하고, '대학생'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출입은 무조건 막고 있습니다. 겨우 마을에 들어온 학생들이 논에 들어가 일손을 도우려 하면 '농활금지법이 생겼다'며 길을 막거나 논에서 끌어내기도 합니다. 국방부는 이렇게 사람들의 출입을 차단해 대추리, 도두리로 오는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하루하루 목을 조여와 세상과 유리된, 고립된 섬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언론을 통제하고 주민들에 대한 끊임없는 회유와 협박을 통해 공동체를 파괴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대추리, 도두리가 잊혀지기를 바라는 것이겠지요.

비 개인 도두리. 한 주민이 들깨 밭에 풀약을 주고 있다.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사람들은 하루도 몸을 가만히 놔두지 못하고 땅을 찾는다.


8월 1일은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이 촛불을 든 지 700일이 되는 날이고, 9월 1일이면 2년이 됩니다. 2004년 9월 1일 시작되었으니 참으로 긴 시간을 또박또박 걸어왔습니다. 아직도 대추리, 도두리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물어보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을 뿐 아니라 매일 저녁 촛불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하루라도 촛불행사에 오지 않으면 궁금해서 살수가 없다는 할머니들은 구부러지지 않는 무릎을 앞세워 매일 저녁 7시 30분이면 어김없이 모이십니다. 대추초등학교가 파괴되던 5월 4일, 600일 넘게 이어온 촛불행사장이었던 비닐하우스도 무너졌습니다. 하얀 모자를 쓴 용역깡패들이 비닐하우스를 지탱하던 나무판자와 철근을 부수고 비닐을 발기발기 찢어 놓았습니다. 그 날 이후 주민들은 언덕에 만들어 놓은 평화동산에서 촛불을 이어갔고, 지금은 미술인들의 전시장으로 쓰이는 농협창고에서 촛불을 밝힙니다. 촛불행사 장소는 여러 번 바뀌었지만 촛불을 들고 팔을 쭉 뻗으며 함성을 지르는 주민들은 변함없이 이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학교가 무너지기 전, 솔부엉이 도서관 창문 너머를 바라보면 비닐하우스가 바로 보였습니다. 매일 저녁 대책위에서 마련해 나누어 가진 초록색 담요를 들고 비닐하우스로 모여들던 주민들의 모습이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제 머릿속에서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아마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럴 것입니다. 주민들은 그렇게 겨울을 났고 봄을 빼앗겼고 여름을 견디고 있습니다. 강제 철거를 앞 둔 지금, 마을에는 또다시 긴장감이 흐릅니다. 빈집에 들어와 살고 있는 지킴이들이 온몸으로 막아내겠지만 마을에 있는 몇몇 사람들만으로는 수천의 야만적인 공권력을 당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이 땅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야만적인 지배세력의 폭압을 막아내고 주민들의 정당한 저항이 승리하기 위해 구름 떼 같은 사람들이 이곳 대추리, 도두리로 몰려오기를 바랍니다.
주제어
평화 생태
태그
핵안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