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6.9.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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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넘어 사회운동의 이념을 재건하자

류주형 | 조직교육부장


신자유주의 금융-군사 세계화로 인한 사회의 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지난 5.31 지방선거 참패를 기점으로 집권 세력은 사실상 ‘레임덕’에 빠졌다. 이미 선거 전부터 노무현 정권의 개혁 이미지는 실종됐고 인민주의적 정치행태는 고스란히 한계를 드러냈다. 이러한 현상은 안팎의 제약으로 인해 집권 세력이 기존의 개혁-수구 구도로 지지층을 동원할 소재(개혁 의제)가 소진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집권 당시 노무현을 지지했던 집단의 ‘휘발성’이 이번 선거를 통해 극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가사 상태에 빠진 집권 세력은 교육부총리 낙마, 도박 게이트, 당청 갈등 등 임기 말 전형적인 권력 누수 현상을 보이고 있다. 집권 여당은 김근태의 ‘뉴딜’처럼 친재벌 정책을 노골화하여 기존의 이미지를 쇄신하고자 하지만 이는 궁여지책일 따름이다. 반면 역관계의 압도적 우위 속에서 한나라당과 언론은 연일 보수주의적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물론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남한 경제의 장기-구조적 불황과 이에 따른 민생 조건의 악화에 대한 대중적 불만의 표출이었다. 그러나 정작 선거 과정에서 이에 관한 ‘정치적 논의’는 철저히 차단되었다. 단적으로 집권 여당의 참패가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귀결된 것은 민주노동당으로 표상되는 사회운동 진영이 대안 세력으로 형성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사회운동 진영은 한미 FTA나 전략적 유연성, 비정규악법-노사관계로드맵 등 노무현 정권 말기 정세를 특징짓는 사안들에 대한 논쟁과 투쟁을 대중적으로 제기하지 못했다. 민주노동당의 선거 대응도 정책적 능력이라는 함정에 빠져서 대중정치를 작동시키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무현 정권은 오히려 한미 FTA에 대한 범국민적 여론을 호도하고 평택 미군기지 투쟁, 포스코 점거농성 등 민중의 투쟁이 표출되는 사건마다 노골적으로 공권력에 의존하고 있다. 또 정권은 하반기에도 비정규악법-노사관계로드맵 등 노동자 대중의 생활과 권리 및 노동자 운동을 약화시킬 이슈들을 계속해서 준비하고 있다. 이는 집권 세력의 신자유주의적 진실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앞으로 등장할 수 있는 더욱 격렬한 반동적 탄압을 예고한다.
이에 이 글은 ‘신자유주의 비판에 적합한 사회운동의 정형 창출’이라는 목표를 대안세계화 운동으로 잠정 결산하는 동시에, 한미 FTA를 비롯한 당면 투쟁의 전망을 대안세계화 운동의 지평에서 통합적으로 인식하기 위해 작성됐다. 이를 위해 이 글은 우선 자본 축적의 위기와 헤게모니의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출현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경제위기와 정치위기를 동반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이 과정에서 경제위기를 호도하고 정치위기를 착취하는 인민주의가 득세하는데,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를 소실점으로 과거와 같은 집중점을 찾지 못하는 사회운동의 위기는 인민주의가 자라나는 또 하나의 토양이 된다. 이러한 삼중의 위기 속에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극복하고 인민주의를 비판하는 대안세계화 운동은 새로운 변혁의 정치의 출발점이 된다. 특히 세계화에 따라 라틴 아메리카와 유럽에서 각각 추진된 미주자유무역협정(FTAA)와 유럽연합(EU)에 반대하는 역내 사회운동은 대안세계화 운동의 일부로서 대안적 지역 통합을 추동한다.
한편 군부독재의 문민화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을 위한 정치적 실행 조건을 갖추게 된 남한 자본주의는 김영삼 정부 이후 본격적으로 세계화에 편입한다. 장기 불황 속에서 반복적으로 출현하는 위기와 반민중적 개혁의 악순환 속에서 정치 일반에 대한 대중의 불신은 증폭되고 배제된 계급·계층의 소외감은 정치·경제 엘리트와 노조와 같은 ‘기득권’에 대한 ‘원한의 정치’에 동원된다. 한미 FTA 체결, 평택 미군기지 확장, 비정규악법-노사관계로드맵 등을 저지하는 것은 대안세계화 운동의 지향 속에서 사회운동의 이념 및 노선을 개조하고 그 지역적·대중적 토대를 강화해 나갈 때에만 가능하다.


삼중의 위기 속에서 개시되는 대안세계화 운동

초민족자본이 막강한 경제적 권력을 휘두르면서 자본의 세계적 집중은 점점 더 강화되었고, 이들이 구축하는 해외직접투자, 기업 내 무역, 자회사의 수출, 국가간 하청망은 미국, 서유럽, 일본을 정점으로 하는 위계화된 세계를 구축했다. 신자유주의는 중심부 국가 경제의 탁월함을 강화한 것만큼이나 지배계급의 소득과 부를 회복하는데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탁월함의 대가는 나머지 세계와 인구에겐 거대했다. 자유시장-자유무역을 기치로 1990년대 이래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공간은 미증유의 규모로 확대되었지만 수많은 나라와 지역은 심각한 부의 파괴를 경험했다. 세기말 아시아의 충격에 뒤이은 아프리카, 러시아(및 일부 동유럽), 라틴 아메리카의 연쇄적 위기, 그리고 이와 대비되는 미국과 서유럽으로의 자본집중은 세계화가 근본적으로 불평등한 과정임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중심부 외부의 국가는 세계경제 시스템의 주변부로 밀려났고 자유기업이 구축하는 세계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통합된 세계’라는 그들의 구호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주식시장 부양’을 절대 선으로 간주하는 금융권력은 노동자(특히 여성노동자)에게 고강도·장시간·저임금 노동을 강요하는 한편 주변부에서는 막대한 양의 잉여 유출과 함께 자본도피의 자유를 누렸고, 이는 세계 각지에서 반복적으로 출현하는 경제위기의 기본적 특징을 이룬다. 아울러 미국을 위시한 중심부 국가들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안정성을 침해하는 모든 세력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노골화하며 ‘무한 전쟁’을 수행 중이다. 미국은 세계화가 야기한 다양한 갈등에 맞서기 위해 군사전략을 고강도(MD/핵태세)-중강도(지역강국에 대한 선제공격옵션)-저강도(대테러/마약) 전쟁으로 세분화하며 이미 ‘열전(hot war)’을 개시한지 오래다. 때때로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라는 미명 하에 제시되는 대안 역시 지속가능한 세계화를 위한 기만에 불과하다. 결국 ‘역사의 종언’과 함께 개시된 자본의 범지구적 확장이 약속했던 평화와 민주주의는 거짓임이 판명됐고, 세계적인 부의 불평등과 빈곤의 확산, 빈곤의 여성화와 전쟁의 창궐은 역으로 세계화의 위기를 상징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동시에 세기말에 이르러 1990년대 가계 소비를 지지했던 주식시장의 호황과 ‘신경제’의 환상은 사라졌고 자본의 수익성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해외로부터 막대한 양의 소득을 흡수하는 반면 성장을 위해 거대한 규모의 국내외 신용 및 부채에 의존해왔던 미국 경제는 이중 적자를 비롯한 대외불균형의 심화 속에서 당혹스러운 형세에 처해있다. 심화되는 미국 경제의 구조적 모순은 부시 정부가 최근 보이는 대외경제정책의 양상을 이해하는 데에도 필수적이다.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상쇄하기 위해 평가절상 압력을 행사하는 동시에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를 확산하기 위해 양자간·지역간·다자간 무역협정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세계적인 수준에서 전개되는 자본의 금융화와 노동의 불안정화는 화폐와 노동력의 관리를 핵심으로 하는 개별 민족국가의 경제정책의 자율성을 심각히 훼손한다. 세계무역기구(WTO)와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과 같은 국제경제기구들과 초민족자본은 직접적으로 민족국가의 경제정책을 세계화된 금융축적체계에 통합하고 이들이 제시하는 정책을 집행하는 행정·기술관료들의 영향력이 증대한다. 이에 따라 국회의 의사결정권과 정책적 영향력은 급속히 감소하고 정당체계 또는 대의제 자체가 식물화되는 경향이 발생한다. 기존의 정당은 좌우 이념을 대표하는 대신 정책정당, 심지어 ‘무지개 정당’을 표방하며 중도우파·중도좌파적 전환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념을 통해 대중의 참여를 조직하지 못하게 된 정당들은 각종 여론 조작적 기제에 호소한다.
경제위기와 함께 정치와 대중의 분리가 심화하면서 이에 대한 불만을 흡수 또는 무마하는 한편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인민주의가 세계적으로 발호한다. 유럽에서는 인종적·지방적 동일성에 기초하여 민족국가의 분리 또는 통합을 주장하는 극우정당이 반이민·반세계화를 쟁점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영국 노동당도 노동자조직과의 연계를 해체하고 블레어를 정점으로 한 기술관료 집단의 사당(私黨)으로 변모하고 있는 중이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1980년대 외채위기를 경과하면서 인민주의 정치 지도자들이 등장하여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수반되는 대중적 불만을 무마하고 사회운동의 진출을 가로막고 있다. 특이하게도, 평화협상을 거쳐 선거정당으로 전환한 기존 사회운동 세력이 1990년대를 경과하며 선거정치와 신자유주의에 순응하게 되었고, 이들은 국제금융기구와 초민족자본에게 권력을 대폭 이양할 것을 주장하며 다른 나라의 인민주의 정치지도자를 대신해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수행하고 있다.
이처럼 인민주의는 경제위기, 정치위기 그리고 기존 사회운동의 위기를 배경으로 만개하지만 개인의 권리를 위한 집단적 운동이자 사회적 갈등의 대의 과정으로서 정치를 부정하는 반(反)정치의 정치이며 따라서 인민의 권리와 자율적 대중운동을 침식한다. 그러나 ‘잃어버린 10년’을 딛고 새롭게 태동한 대안세계화 운동은 신자유주의적 금융-군사 세계화에 맞서국제주의와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인간과 시민의 보편적 권리를 창안하는 한편 세계사회운동의 자율성과 연대를 고양시킨다는 점에서 인민주의와 정면으로 대립한다. 또 이들은 선거정치에 매몰된 좌파 정당과 코포러티즘을 수용하면서 계급대중을 분할하고 있는 노동조합 그리고 행정적 NGO로 포섭된 시민운동을 비판하며 사회운동의 이념과 조직, 운동형태의 개조를 주장한다. 특히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에서 대안세계화 운동은 유럽통합과 미주자유무역지대와 같이 초민족자본과 국제경제기구 그리고 미제국주의가 주도하는 지역화에 맞서 대안적 지역 통합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대안세계화 운동의 발전은 오늘날 변혁의 정치가 새롭게 부활하는 토대로서 작용한다.


세계화와 지역화에 맞서는 대안세계화 운동

1) 라틴 아메리카 사회운동

1980년대 초반 라틴 아메리카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한 외채·외환위기에 직면하여 미국과 IMF는 일차적으로 채권자 즉 초민족자본의 채권 회수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외채위기의 재발을 막는다는 명분 하에 강력한 경제구조조정과 정책개혁 프로그램을 강제하였다. 그러나 국제금융체계의 불안정과 (반)주변부 국가들의 거시경제적 불균형 속에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대안적 발전모델을 애당초 제시할 수 없었으며, 경제의 금융화를 심화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미봉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그 얼개는 외채조정 방식을 ‘부채-주식 전환’ 중심으로 하며, 고금리에서 저금리로 정책기조를 전환하여 주식시장을 육성하고, 외환 및 자본거래를 자유화하고, 목표 환율대를 폐기하며, 금융산업 및 기업의 구조조정을 시도하여, 궁극적으로 해외로 도피한 자본을 다시 유인한다는 것이었다. 즉 ‘신흥공업국’을 ‘신흥시장(주식시장)’으로 전환하여 외채위기를 탈출하자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이런 정책이 대중적 불만과 사회적 소요를 증폭시킬 수 있다는 우려 속에 경제개혁의 정치적 조건을 둘러싼 논쟁이 개시되었다. 이 과정에서 군부의 퇴진과 자유주의 또는 중도좌파의 집권이 권고되고 문민화의 구체적 경로로서 군부와 책임 있는 야당의 협상이 권장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대다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외채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도 못하고 ‘협상된 이행’에도 성공하지 못한다. 무능력하고 부패한 보수정당, 분명한 정치적 전망이 결여된 중도좌파 등 군부의 퇴진에도 불구하고 대중을 대의제로 동원할 수 있는 정당의 역량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던 셈이다. 기존의 정당들은 신자유주의를 추진함으로써 내적 위기를 경험하고 대중적 토대를 상실했다. 또 사회주의·공산주의 정당들도 독자적인 이념을 상실하고 내적 분할을 경험했다.
결국 기존의 어떤 정치세력도 분명한 정치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이를 등에 업고 새로운 인민주의자들이 대거 등장하기에 이른다. 새로운 인민주의자들은 ‘반정치의 정치’를 통해 경제적 위기와 계급적 갈등을 기존의 정치와 정치 엘리트, 정당과 의회제에 대한 공격으로 치환했다. 그러나 이들은 극단적 위기를 진정시키고 민족을 재건하기 위한 필요악으로 여전히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수용한다. ‘충격요법’의 과감성은 전통적 인민주의에 대한 국제금융기구와 자본가의 불신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한편 냉전질서의 해소 이후 과거 전략적 요충지로 간주되었던 지역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원조와 군사적 지원이 삭감 혹은 철회되면서 이제 ‘적극적 배제’라는 문제가 새롭게 발생하게 된다. 미국은 자신의 이해에 있어서 사활적이라고 간주되는 지역에서는 냉전 시기 동안 육성해 온 군사적 동맹관계의 공고화를 꾀하지만, 세계경제의 통합으로부터 배제된 기타의 지역에서는 군사적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화에서 배제된 지역,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남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동유럽 등 황폐한 지역은 이미 무질서에 노출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벌이는 ‘저강도 전쟁’은 미주자유무역지대의 창설을 방해하는 세력을 마약-테러집단으로 범죄화 하여 소탕하기 위한 목적이다. 미국의 군사-안보복합체가 창안한 새로운 무기시스템은 자본의 세계화에 따른 사회의 황폐화를 겪고 있는 남반구 국가들의 인민 또는 무장세력에 맞서 미국 또는 그 동맹국이 시가전을 벌이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990년대 후반부터 촉발되기 시작한 새로운 사회운동은 기존 정당과 노동조합이 선거정치에 매몰되거나 코퍼러티즘을 수용하면서 대중운동을 분할하는 상황을 극복하고 신자유주의적 금융-군사 세계화에 정면으로 맞서는 한편, 다양하게 분출하고 있는 사회운동 간의 연대를 강화하고자 했다. 이들은 지난 해 11월 아르헨티나 마르 델 플라타에서 열린 미주정상회의에 즈음하여 ‘미주지역자유무역협정(FTAA)’ 체결 논의를 중단시켰는데, 당시 차베스 대통령은 정상회의장 안팎에서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리안 대안(ALBA)’을 주장한 바 있다. 물론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을 비롯한 역내 좌파 정권의 미래는 ‘무적의 제국’으로서 자신의 권력과 ‘신자유주의 정책의 비가역성’이라는 신화를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간섭과 자본의 초민족화라는 구조적·객관적 조건에 의해 크게 제약된다. 실제로 FTAA 협상 타결 실패 이후 미국은 하위-지역 협정을 병행 추진하며 경제통합을 시도 중이다. 도미니카공화국-중앙아메리카-미국 자유무역협정(DR-CAFTA)을 법제화하고 파나마와 여타 안데스 3개 국가들과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을 추진 중이다. 한편 역내에서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인 브라질은 남미공동시장(MrcoSur) 8개 회원국을 확대 규합한데 이어 2004년 10월에는 안데스공동체(CAN)와 정치·경제 협정을 수립했다. 또 2004년 12월에는 총 12개국이 남미공동체(SACN)를 결성하는데 합의했다. 이에 거의 대부분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자주적인 경제정책을 실용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미국·브라질과 협상중이거나 모종의 협정에 가입하고 있다. 따라서 ALBA가 실질적으로 역내 국가들에 끼치게 될 영향력이 얼마나 클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라틴 아메리카의 새로운 사회운동들은 최근 들어 각 국에서 좌파 정권이 줄을 이어 등장하고 있는 현상이 남미 대륙에서 폭발하고 있는 자유무역, 군사주의, 사유화 정책에 반대하고, 자연자원과 식량주권을 지켜내기 위한 사회운동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 ‘좌파 정권에 대한 정치적 자율성’과 ‘각국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수용하지 않도록 압박’하는 것을 재천명하며 대안적 지역통합의 노력을 구체화하고 있다. 특히 미주사회동맹이 제출한 ‘미주대륙을 위한 대안’은 차베스 대통령이 제시한 ALBA와 최근 볼리비아 모랄레스 대통령이 발의한 인민무역협정(TPC)에도 참조되었다.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들은 ALBA 협정이 ‘아래로부터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다는 취지와 다르게 각 국 정상들이 주도하는 협정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지적하지만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미국 주도의 FTAA가 아닌 다른 형태의 지역적인 교류의 가능성을 이러한 시도를 통해 제시하며 FTAA 반대 투쟁을 조직하는데 이를 활용하고 있다.

2) 유럽 사회운동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유럽통합은 금융자본의 이동을 제약하는 규제를 철폐하고 공동시장을 개혁하는 차원에서 1970년대 후반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이중에서 유럽화폐단위(ECU)와 환율조정제도(ERM)을 주축으로 하는 유럽화폐제도(EMS)는 특히 기술력과 생산력이 낮은 이탈리아와 같은 국가에게 타격이 되었다. 이탈리아는 대외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주로 실질임금을 하락시키는 인플레이션과 수출가격을 하락시키는 평가절하에 의존해왔다. 하지만 환율조정에 한계가 부가되자 이와 같은 정책은 불가능하게 되었고, 그 결과 노동의 신축화를 통해 노동일을 연장하고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방법이 추구되었다.
이어 유로를 단일화폐로 채택하기 위해 마스트리히트조약(1992)에서 제시되는 경제정책의 4가지 수렴 기준은 민족국가의 화폐 주권을 유럽중앙은행에 완전 이양하는 것을 의미했다. 유럽화폐제도에서 제한적으로나마 존재하던 개별 국가의 환율조정의 가능성은 완전히 폐기되었고, 이로써 기술력과 생산력이 열세인 국가가 대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을 신축화하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지가 되었다. 반면 화폐동맹에 상응하는 재정동맹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복지정책은 여전히 민족국가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 회원국의 재정정책 폭은 크게 제약을 받게 되었고, 이에 각국은 적자재정을 포기하고 균형재정의 범위 내에서 예산을 분배했다.
유럽연합을 출범시킨 마스트리히트조약, 유럽연합을 확대하려는 암스테르담조약(1997)·니스조약(2000)에 이어 2004년 회원국 정상들이 그 초안에 서명한 헌법조약은 유럽연합을 지지하는 다양한 조직들을 단일화하고 체계화하여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를 제도적으로 공고화하려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 게다가 유럽연합은 입법권과 집행권을 모두 기술관료집단인 각료평의회와 집행위원회가 장악한 반면 유럽의회는 실제로 자문기관에 불과하여 ‘민주주의의 결핍’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유럽헌법조약은 유럽의 시민들이 직접 선출한 제헌의회에 의해 제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헌법’일 수 없었다. 또 유럽중앙은행이 완전한 독립성을 보장받고 유럽경제인회의와 같은 초민족자본가단체가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우위가 명시됨으로써 유럽의 외교정책에 대한 미국의 지배가 보장된다.
한편 유럽헌법조약에서 제시되는 ‘시민권’의 내용도 지극히 제한적인 것이었다. 조약에 따르면 노동자의 기본권은 노사정 협약에 의해 크게 제약되고 피임·낙태·이혼과 같은 여성의 기본권도 카톨릭의 권위에 의해 제약된다. 특히 유럽연합의 시민은 회원국의 국적을 지닌 자로 한정됨으로써 유럽 이외 국가 출신의 이주자를 배제하고 있다.
경제위기와 그에 뒤이은 유럽통합은 결과적으로 전후 호황기에 구축된 노동 안정성과 사회복지 모델의 쇠퇴를 의미했다. 이러한 ‘사회적 민족국가’의 위기 속에서 한정된 일자리와 복지 서비스를 종족 공동체의 성원에 국한하여 배분함으로써 위기의 충격을 완화하고 낙후된 삶의 질을 회복해야 한다는 요지의 인민주의적 선동이 가세하면서 이주자에 대한 배제와 폭력이 점증한다. 프랑스 민족전선, 이탈리아 북부동맹, 오스트리아 자유당 등 극우정당은 이민 반대나 유럽연합 반대와 같이 인종주의와 인민주의적 반세계화 논리를 동원하여 세계화와 유럽연합으로 인해 피해가 가장 극심한 하층 노동자와 청년실업층으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다.
이에 <금융거래과세시민연합>(ATTAC)이나 <공산주의재건당>(PRC)과 같이 대안세계화 운동을 추동하는 핵심적 사회운동들은 유럽헌법조약에 반대하여 ‘대안적 유럽’을 주창하며 노동권과 여성권을 핵심으로 시민권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를 광범하게 조직하고 있다. <금융거래과세시민연합>은 금융세계화에 대한 발본적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인식하게 시민교육운동을 자신의 주된 과제로 천명하는 한편 정당이나 노조의 사회운동적 개조, 사회운동적 마르크스주의의 부흥에 복무함으로써 오늘날 유럽에서 대안세계화 운동의 진원이 되고 있다. 공산주의재건당은 ‘자율적이고 동시에 세계에 개방된 유럽, 자본주의적 세계화와는 다른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모델을 가진 유럽’을 주창하며 노동자운동과 페미니즘과의 결합, 정당의 사회운동적 개조를 이러한 전망 속에서 구현하고 있다. 이들이 주축이 된 유럽의 사회운동들은 2004년 10월에 열린 유럽사회포럼에서 채택한 사회운동 호소문을 통해 유럽헌법조약이 구현하고자 하는 유럽에 명백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남한에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전개

미국계 법인자본의 진출을 위한 사적 해외투자 확대 방식으로 고안된 마셜플랜을 통해 급격한 경제 부흥을 이룰 수 있었던 서유럽과 미국의 배후지로서 주로 미국계 법인 자본의 직접투자를 토대로 수입대체 공업화를 단행한 라틴 아메리카와 달리 동아시아는 반공·발전주의의 쇼케이스로서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원 하에 수출주도 공업화를 통해 성장해왔다. 미국은 냉전 이후 ‘군국주의 해체’에서 ‘전후 부흥’으로 대일본 정책을 전환한 뒤 대대적인 원조와 일본-동아시아 연계망의 형성을 통해 동아시아 지역을 일본의 자원 공급지로 재정립했다. 이는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원 하에 일본을 정점으로 하는 역내 피라미드 망의 국제적 하청 체제의 수립을 통해 동아시아 지역을 재통합하려는 시도였다. 또 지정학적 차원에서 중요성을 지니는 남한, 대만 등은 신흥공업국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다. 동아시아의 신흥공업국은 미국의 역개방 정책에 따라 노동 신축화와 평가절하를 통해 대미 상품 수출 경쟁력을 확보한다. 그러나 냉전 질서의 이완과 더불어 미국의 역개방 정책이 철회되고 평가절상 압력과 함께 보호주의가 현실화되자 동아시아 경제는 일대 위기에 처한다.

1) 문민화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개혁

1979-80년 위기 이후 남한 경제는 새 케인즈주의적 의미에서 거시적 안정화와 금융과 기업 등 경제구조의 미국화라는 의미에서 미시적 구조조정 양자를 핵심으로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된다. 특히 1986-88년 ‘3저 호황’ 이후 재발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김영삼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WTO에 가입함으로써 세계화에 본격적으로 편입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재벌을 주체로 하는 세계화는 오히려 반도체?전자산업과 자동차산업 등에서 고정자본투자의 급증과 이윤율의 급락을 초래함으로써 1997-98년 경제위기 및 외환위기로 귀결되었다.
김영삼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이 IMF의 충격과 노동자·농민의 대중적 저항으로 좌초되면서 야당세력은 군사정부 및 그들과 제휴한 자유주의 세력을 ‘지역패권주의’와 경제위기·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낙인찍으며 집권에 성공한다. 그러나 이들 집권세력은 오히려 보수주의 지역정당과 야합하는 한편 정책개혁의 실행력을 제고하기 위해 386세대와 진보적 지식인, NGO를 동원했다. 특히 NGO는 소액주주운동이나 낙천낙선운동을 선도함으로써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개혁과 인민주의에 동조했다.
김대중 정권은 정리해고제 수용, 외환관리법 전면 개정, 적대적 인수·합병(M&A) 허용, 집단소송제 도입 등 김영삼 정부가 IMF와 맺은 협약에는 없었던 내용을 추가적으로 승인하였다. 아울러 비상대권을 활용하여 의회정치를 무력화하는 동시에 ‘국난극복’을 위해 ‘고통분담’을 호도하며 대중적 저항을 미연에 봉쇄한다. 결과적으로 당시 IMF 구조조정은 금융개방을 정점으로 재벌 및 금융산업, 노동시장을 국제금융시스템에 적합하도록 개조하는 것이었다. 외환위기의 결과 원화는 50% 정도 평가절하 되었고, 이로 인해 재벌들의 대미 수출을 통한 경쟁력은 점차 회복되었다.
그 결과 초민족자본과 이에 편승한 일부 재벌이 막대한 경제회복의 대가를 누린 반면, 노동자 대중은 이중삼중의 착취를 감수해야만 했다. 나아가 이러한 일련의 정책개혁은 장기적으로 재벌과 한국 경제에 대한 초민족자본의 금융지배가 강화되는 효과를 낳았다. 또 IMF 이후 남한경제는 장기침체에 진입했는데, 재벌이 중국을 통한 우회 수출을 시도하면서 국내 고정자본투자가 정체되었고 초민족자본의 지배에 따라 국내총생산(GDP)과 국민총생산(GNP)의 괴리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1997-98년 동아시아 위기 이후 남한을 비롯한 동아시아 경제는 수출달러의 환류와 자본도피를 통해 미국으로 자본을 수출함으로써 미국경제의 달러 발권이익과 이중 적자를 지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2) 장기불황과 노무현 정권의 인민주의

그러나 투기적 호황이 종료하고 ‘3홍 비리’가 폭발하는 등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의 후과가 여실히 드러나며 집권 여당은 분열하게 되고, 이 와중에서 ‘노사모’와 ‘국민경선’ 등 초유의 정치 스타일에 의존한 노무현이 ‘반한나라당’이라는 부정적 동일성을 기초로 하여 정권 재창출에 극적으로 성공한다. 노무현 정권은 의회나 정당을 우회하여 대통령 비서진이나 자문단에 의존해 정책을 입안하고 미디어와 NGO를 동원해서 개혁을 합리화했다. 심지어 집권 초기 여권의 분당 과정에서 지지기반이 취약해지자 탄핵을 불사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노무현과 집권 세력은 탄핵을 ‘의회쿠데타’로 규정하고 한나라당 등 반대세력과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공격을 통해 원내 과반석을 차지한다.
그렇지만 장기불황이 지속되는 상황, 아울러 ‘북핵 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노무현 정권은 자신의 주장과는 달리 진보적 정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노무현 정권은 신자유주의에서 배제된 계층이나 지역에 대한 수혜를 약속하면서 대중을 실리주의적·지역주의적으로 동원하고 있으며, 각종 위원회를 남발함으로써 행정부 권력의 비대화를 동반한다. 다른 한편으로 대통령 개인에 대한 충성심을 강화하면서 정당의 사당(私黨)화를 꾀하고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이념이나 정책보다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등 노무현 정권은 전형적인 인민주의적 정치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의 인민주의는 기본적으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조차 배제하며 노동자운동이 국가와 자본의 하위 파트너가 될 것을 일방적으로 종용한다. 노사정 위원회를 통해 노동자계급 내부의 분할과 경쟁을 촉진하는 한편 노동조합의 비리를 폭로하고 군사독재 시절을 능가하여 구속·수배 및 손배·가압류를 남발함으로써 노동자운동을 무력화한다. 또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 노동자의 이기심이 원인이라며 기존의 노조를 공격하거나 도리어 정규직의 ‘유연화’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자고 호도한다.
한편 노무현 정권은 이라크 파병을 강행함으로써 미국의 무한 전쟁에 적극 동조하고 미국의 탈냉전 군사전략에 조응하여 한미동맹 현대화와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함으로써 한반도와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켰다. 이와 동시에 경제특구 확대, 금융규제 완화 등을 통해 초민족자본을 적극 유치하고 대내적으로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투기붐을 조성함으로써 장기불황을 탈출하려 한다. 무엇보다 노무현 정권은 한미 FTA를 체결함으로써 미국과의 포괄적 동맹을 강화하는 것만이 남한 경제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유포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성장 동력의 약화와 중국 위협론의 부상이라는 상황에 처한 지배계급이 한미 FTA를 기화로 다시금 재벌 중심의 세계화를 추진하려고 하는 셈이다.

3)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한미 FTA-전략적 유연성 비판

이러한 한미 FTA 체결이 초래할 효과는 자명하다. 우선 한미 FTA는 지금까지 추진되어온 금융세계화의 구도를 강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사회 전반에 글로벌 스탠더드를 정착시켜 투자자의 자유로운 활동을 최대한 보장하는 반면 노동자 대중의 권리를 초민족자본의 이윤 추구 활동을 방해하는 장벽으로 취급하고 철저하게 짓밟는 것이 바로 한미 FTA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 일반적 결과는 노동의 불안정화와 이로 인한 노동자 대중의 궁핍화다. 또 교육, 보건의료, 기타 공공사회서비스 부문을 초민족자본의 투기 대상으로 전락시켜 민중의 기본적 권리를 박탈한다. 아울러 농업 역시 농산물 시장 개방으로 인해 대대적인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은 물론 초민족적 농기업이 주도하는 녹색혁명에 더욱 깊숙이 종속될 것이다. 반면 지배계급이 주장하듯 한미 FTA가 남한 경제의 장기침체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하다. 가령 경상수지 흑자가 감소할 것인데, 그럴 경우 국내총생산과 국민총생산도 감소할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한미 FTA 체결과 전략적 유연성 합의를 통한 한미 관계의 포괄적 동맹 강화는 역내에서 미국의 지위를 재차 공고화한다. 우선 미국은 한미 FTA 체결을 기반으로 미국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초민족자본의 활동성을 보장할 수 있는 자유무역체제를 더욱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미국은 ‘개방적 지역주의(open regionalism)’ 구상을 통해 동아시아의 배타적 블록화는 물론 EU와 NAFTA 등 역내 무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역 블록들의 배타성을 경계하면서 WTO 체제의 순항과 자유무역 체제의 완성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는 APEC을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협정으로 발전시키려는 구상에서 확인된다.
한편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미군이 주둔한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사활적 이익을 갖고 있다. 미국은 2002년 9월 ??국가안보전략??을 통해 자유기업 또는 자유무역·자유시장이라는 원칙이 세계 각지에서 문제시될 때 미국의 국가안보는 보장될 수 없다고 천명하고 예방적 선제공격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주조했다. 이러한 국가안보전략에 조응하여 미국의 군사전략도 변화하는데, 군사분야혁명(RMA)과 소위 ‘럼스펠드 독트린’이라 불리는 군대의 경량화·유연화·첨단화가 그것이다. 이에 따라 해외 주둔 미군의 재편(GPR)이 추진되는데, 한미동맹 현대화 및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으로의 전화, 한국군(‘자주 국방’)과 한·미 연합군 전력의 변화에 대한 요구는 그 일환으로 제기되는 것이다.
또 부시 행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미 주력 군사력 배치의 중심을 유럽에서 동아시아로 옮기는 동시에 동북아 중심의 전력배치 구조를 동남아로 확대할 것을 주장해왔다. 이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신흥시장으로서 미국경제에 사활적 지위를 점하고 있는 반면 ‘북핵 위기’와 ‘잠재 세력(중국)’의 부상, 중동과 남아시아 지역에서 다양한 수준의 군비경쟁 등 대규모 군사적 경쟁과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항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시아 전역의 미군기지와 그 기반 시설에 대한 접근성을 제고하고 원거리 작전을 지속할 수 있는 역내 시스템을 우선적으로 개발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동시에 역내에서 발생하는 ‘우발적’ 사태에 대해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기동성과 신축성을 확보하는데 초점을 맞춘 전략이 모색되어 왔다. 이에 따라 범태평양 동맹을 지지하는 한-미-일 군사 동맹의 공고화가 추진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주한 미군 이전/재배치가 불러올 파장이 비단 한반도 전쟁위기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바로 이 때문이다.


사회운동의 이념을 재건하자, 노선을 개조하자

그러나 현재 남한 사회에서 신자유주의에 정면으로 맞서는 사회운동의 실체는 극히 미약하다. 이는 현존하는 운동 내에서 사회변혁에 대한 지향이나 이념이 대단히 취약하며 운동의 지역적·대중적 토대 역시 점점 유실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적으로 한미 FTA 저지 투쟁만 놓고 보더라도 대개의 반론이나 대응은 체결 절차에 대한 비판 또는 민족적·계층적 이해를 방어하거나 산업별·부문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실정이다. 지난 2차 협상 저지 투쟁 당시 ‘정권 퇴진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 대세를 이루었지만, 실상 이에 참여하는 다양한 세력들이 어떠한 정치적 목표를 내걸고 단결과 연대를 이루어 낼 것인지는 여전히 논란으로 남아 있다(‘전선 확대’라는 명목으로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과의 연계를 부정한 것은 단적인 사례다).
그러나 민족적·계층적 이해를 방어하거나 산업별·부문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일관할 경우, 정부의 기만적인 피해 부문 지원 계획에 농락당할뿐더러 그에 맞선 투쟁을 협소화하고 무력화하는데 기여할 따름이다. 따라서 한미 FTA를 둘러싼 사회운동의 대응은 형식적 대응이나 코포러티즘적 반대를 넘어 한미 FTA가 제기되는 진정한 원인이 무엇인지, 한미 FTA를 통해 지배계급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민중적 대안은 무엇인지를 제기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리에게 당면한 과제는 한미 FTA 협상을 중단시키는 것이지만 지배계급 내 일부 분파조차 명목상으로 한미 FTA 체결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한미 FTA 체결 저지는 우리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라 출발점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미 FTA 저지 투쟁을 필두로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 비정규악법-노사관계로드맵 반대 투쟁을 펼쳐나감에 있어 노무현 정권 퇴진이라는 분명한 방향 속에서 정치적·조직적 집중점을 형성해 나가야 한다. 각 사안은 현재 집권 세력을 포함한 지배계급 모두에게 반동적 질서재편을 위해 사활적인 과제로 제기되는 것인 만큼, ‘타협’의 여지는 극히 협소하며 반대 세력에 대한 탄압과 회유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집요할 것이다. 그만큼 각각의 투쟁이 정권 퇴진이라는 방향 속에서 공명할 때에만 운동의 공간은 확장될 것이고, 이 확장된 공간을 통해 각 사안에 반대하는 투쟁은 개별적으로도 더욱 활력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런데 현재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 등 주요 연대체는 각 사안별 대응을 넘어 ‘정권 퇴진’이라는 기조로 통일적인 활동을 펼쳐나가는 것에 소극적인 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비단 운동주체의 ‘진정성’의 문제를 넘어 대중운동의 상황을 반영하는 문제라고 할 때, ‘정권 퇴진’이라는 구호를 채택할 것인가 여부로 연대의 범위를 제한하기보다는 대중운동들의 민주적 조정과 통합을 구체화하려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각각의 투쟁이 상정하고 있는 정치적·조직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정권에 맞서 민중의 연합을 실현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라는 점을 끈질기게 설득해야 한다. 더불어 이미 ‘레임덕’에 빠진 노무현 정권이 우익적 반격에 노출된 상황에서, 정권 퇴진 투쟁을 막연한 분노의 표출이나 즉자적 반발의 차원에서 협소하게 이해해서도 곤란하다. 단발성 대중 동원을 넘어 투쟁의 과정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교육·토론·선전 등 일상적 정치활동을 복원하면서 사회운동의 이념적 지향을 수립하고 대중적 저항 주체를 형성하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단일연대체’의 전망도 신자유주의 반대의 맥락에서 견결한 정세적 투쟁을 조직할 때 비로소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은 결국 기존 사회운동의 내용과 형식 모두를 개조하는 과정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운동이 기존의 성과를 방어하는데 급급하거나 업종별·산업별 이해득실에 머무르지 않고, 신자유주의에 맞선 사회운동의 주체로 서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정부의 농업 포기 정책에 의해 궤멸 상태에 처한 농민운동은 기존의 농산물 개방 반대 투쟁을 넘어, 초민족적 농기업에 지배·포섭되어 자기착취 당하는 농민의 현실을 인식하고 이에 걸맞는 투쟁을 벌여나가야 한다. 여성운동은 ‘노동과 가사의 양립’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여성을 신자유주의의 보완물로 활용하는 전략에 편승하여 제도화 하려는 경향과 단절하고, 여성권을 실현하기 위한 운동을 새롭게 개시해야 한다.
동시에 대안세계화를 지향하는 사회운동의 경향성을 창출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신자유주의적 금융-군사 세계화에 대한 객관적·이론적 이해를 바탕으로 운동 방향에 대한 공통의 인식을 창출해야 한다. 지방적 수준에서, 전국적 수준에서 나아가 범지역적 수준에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운동들의 통합과 조정을 위한 프로세스를 구상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정파와 현장을 넘어서는 새로운 주체를 형성하고 연합적 조직틀을 형성해 나가야 한다. 그 일환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고양하는 노동자-시민 교육운동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진보연대는 대안세계화를 지향하는 활동가·시민들의 운동체이자 교육기관으로서, 또 사회운동들의 교류와 소통을 매개하는 통합적 사회운동체로서 지역적-대중적 토대를 강화하고 그 역량을 전국적으로 응집시켜 나감으로써 이 과정에 적극 복무할 수 있어야 한다.
주제어
정치 경제 노동
태그
인민주의 정치위기 민주당 안철수 안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