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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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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위험

조 사코, 함규진 옮김, <안전지대 고라즈데: 보스니아 내전의 기록>

김영식 | 회원
어느 날 집에 들어오니 우체통에 무언가 꽂혀 있다. 각설이타령마냥 매년 잊을 만하면 날아와 쓴웃음을 짓게 만드는 ‘병력동원 소집통지서’. 심심하시면 부대로 놀러와 축구라도 하면서 현역시절을 떠올리며 즐기시라는 친절한 동대장의 안내문까지 첨부되어 있다. 생판 처음 보는 동네아저씨들과의 축구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런 종이 낭비를 해마다 반복하는 동사무소 상근들의 노고가 새삼 안쓰러워진다. 전시 상황이 되면 준비를 해서 모처로 집결하라는 내용을 읽는 내 귀에, 북한의 미사일 문제에 대한 유엔의 대북결의안 통과를 알리는 TV뉴스가 들려온다.

마치 공기의 소중함을 알고 있으나 잊고 사는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기에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이 있다. 전쟁의 위협. 2년여의 군 생활 동안, “한국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200만 병력이 집결 대치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며 안보의 주적 북한은 핵을 머리에 이고서...”라고 앵무새처럼 떠들어 대는 그 놈의 정신교육 시간만 되면, ‘어떻게 해야 편하게 잘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돌아오는 사격훈련만 되면 이번엔 좀 많이 맞춰서 포상휴가 좀 따 볼까 했었고 말이다. 그러는 동안 나는 공기처럼 잊어버리고 살았었나 보다. 오늘도 내가 사람 죽이는 연습을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는 사실을.

북한 핵실험이 보도된 다음날, 친구들과 담배를 피우다 한 녀석이 문득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만약 전쟁이 나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긴, 어떻게든 살아서 와야지.”
“그럼 진짜 사람도 죽여야 하겠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잖아. 어쩔 수 없잖아.”
“쓸데없는 소리. 핵미사일 한방 떨어지면 다 끝나.”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한참 북한의 핵실험 사건으로 시끄럽던 얼마 전, 일간신문 한 켠에 남한이 사정거리 1000km급의 순항미사일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북한이 동해상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게 불과 몇 달 전이었다. 한·미·일 삼국이 입을 모아 비난을 퍼붓더니, 이건 또 뭔가. 하지만 남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에 대해 주변국이 우려를 표명했다는 소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남북한의 군사적 대결구도가 미사일 경쟁이라는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는 끔찍한 예고 앞에서, 신자유주의 군사세계화가 동아시아에 몰고 온 핵무장의 위기 앞에서, 고작 남한의 핵무기 개발 능력을 진단하겠다는 선정적인 특집들과 북한의 핵이 결국 한민족의 핵이 될 거라는 반동적인 망상들만이 떠돌 뿐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거듭되는 파멸의 위협 속에서 우리는 너무나 무신경해져 있으니까. 50년간을 전시체제 속에서 살아온 우리에게 전쟁의 공포는 어느덧 너무나 높은 역치 값을 갖게 되어 버렸나 보다. 94년에 북핵 위기가 닥쳤을 때, 동네 사람들이 앞 다투어 라면 사재기를 하는 모습도 이젠 찾아볼 수 없다. 덤덤히 뉴스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가 살아가는 남한사회에서 전쟁이 더 이상 흥밋거리조차 아님을 보여주는 단상이다.

보이지 않는 위험이 현실로 나타난 아수라장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자신의 부모와 자식들이 저격수에게 쓰러지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보며, 밤새도록 쏟아지는 포격으로 무너진 집을 나와 이웃들의 시체를 넘어, 물 대신 피가 흐르는 강을 건너 안전지대에 도착한 이들이, 너무도 담담히 자신들의 이야기를 말한다.
이미 앞서 9월호에 소개된 바 있었던 『팔레스타인』의 작가인 만화가 조 사코의 『안전지대 고라즈데』는, 이제는 기억 저편으로 넘어가 버린 보스니아 내전의 취재기다. 고라즈데는 내전 당시 세르비아계에 의해 고립되었던 무슬림들을 위해 UN이 지정한 안전지대 중 하나였다. 국제사회의 외면 속에서 UN평화유지군이 철수하자, 세르비아계들은 안전지대를 잔인하게 짓밟았다. 사코는 세르비아계의 잔혹한 인종청소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이 곳으로 95년부터 96년까지 4차례에 걸쳐 들어갔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불안한 평온을 그들과 함께 두려워하면서, 그는 자신의 입장을 말하는 대신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생생히 전달하는 것으로 분노를 표현한다. 하지만 그 역시 다음과 같이 묻는 질문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 역시 책임회피와 발뺌하기에 급급했던 서방세계에서 온 사람일 뿐이었으니까.

‘기자 선생, 스레브레니차에서 6천이 죽었어. 상상이 가시오? 그를 위해 당신은 뭘 쓰지?’
“...그들과 나와의 거리, 그들의 젠장맞을 전쟁과 동정심 넘치는 방관자들 사이의 거리는 얼마란 말인가?”

어제의 절친한 이웃이 오늘 총부리를 겨누는 잔혹한 학살자로 변하는 비극, 끝없이 거듭되는 증오의 연쇄 속에서 생존해 온 이들, 그 앞에서 누가 숙연해지지 않을 수 있는가. 누가 거대한 폭력의 바퀴 속에서 홀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오늘도 나는 이 병영국가에서, 보이지 않는 위험과 함께 살고 있다. 보스니아의 비극은 끝났지만, 전쟁의 망령은 지구 건너편 이라크로 넘어가 민중의 피를 마시고 있다. 고라즈데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와 우리의 이웃들의 모습이 되지 않으리라고는, 평택에 드리워져 있는 전쟁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위험에서 지옥의 악몽으로 도래하지 않으리라고는 그 누구도 자신할 수 없으리라. 기억하자. 바로 지금, 우리가 전쟁을 반대해야 할 이유가 있음을. 그럼으로써 증오와 학살의 굴레를 끊어내야 한다. 그것이 10년 전, 파멸의 기로에서 섰던 사람들의 기록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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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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