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외채, 그리고 아프리카민중컨센서스
패트릭 본드(Patrick Bond: 대안정보개발센터 연구원이자 비트바터스랜드 대학의 공공발전관리학 교수. '불균등한 짐바브웨: 금융, 발전 그리고 저개발에 대한 연구', '엘리트적 이행: 아파르트헤이트부터 신자유주의까지의 남아공', '황금의 도시, 석탄의 흑인지구' 등 최근의 정치경제에 관한 저서들이 있다.
전지구적 자본의 흐름에 대해 비판하다
유엔에 따르면, 오늘날 아프리카 가구들의 평균 소비는 1975년보다 20%가 감소했다. 이는 사회-경제-환경적 위기가 한층 더 심화되고 있는 아프리카대륙의 표면적 지표 중 하나일 뿐이다. 아프리카의 정치-경제적 퇴보는 얼마나 거슬러 올라가며 어떤 기원을 갖고 있는 것일까? 아프리카민족회의(ANC), 남아프리카공산당, 남아프리카 노동총동맹(COSATU)으로 구성된 3자동맹 지도부가 최근 발표한 토론문서는 '과잉축적과 이윤율 하락에 뿌리를 두고 있는 세계경제위기'의 책임이 어느 정도는 북반구 국가들과 서구사회에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윤율의 감소는 지난 25년간 대부분의 선진국경제에서 나타난 일반적 특징이다. 지난 25년간 세계화가 강화되면서, 선진국에서 이윤율감소 경향은 더욱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러한 경향은 투기적 금융자본의 지배의 급격한 증대(와 그 절대량의 기하급수적 성장)을 가져왔다. 이들은 더 높은 수익을 찾아 통제받지 않은 채 전세계를 휘젓고 있는 것이다.(아프리카민족회의, '전지구적 경제위기와 남아프리카의 관계' 1998. 10.)
이러한 흐름에 저항하는 것은, 수사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현실가능한 유토피아로서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가기 위한 첫단계이다. 따라서 이를 지적하고 현 지배체제를 비판해야 한다. 조엘 네트쉬텐제, 제레미 크로닌, 블라데 은지만데, 음바지마 쉴로와 등 이 소책자-이는 공식적으로는 아프리카민족회의저널인 'Umrabulo'와 'African Communist'에 의해 공식적으로 채택되고 발간되었다-의 저자들은 모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정치적 지도자로서 첫번째로 손꼽히는 이들이다. 이 하나만으로 희망적 징후들이 보인다. 북반구와 서구사회가 보기에 최적의 아(亞)제국주의로 간주되는 나라(와 지배 엘리트들)-동시에 아프리카 대륙 다른 나라들의 자본 축적의 추출을 재개할 수 있는 나라-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수사적으로 남아공 정부가 지난 1998년 후반부터, 많은 이들의 기대에 따라 정책방향을 바꾸었던 것이 아니라, 대신 아프리카 지식인들이 한국의 진보세력들 사이에서 일반적이듯, 전지구적 자본의 흐름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급진적인 학자들 외에 교회, 사회운동, 노동조합, 환경주의자들, 여성단체, 청년그룹에서도 같은 의견들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전세계적 상황은 권력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특히 정치적 타당성에 대해- 워싱턴에서 시작되어 다시 대중적 반응으로 고무되어 돌아오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정책과 워싱턴 콘센서스
역관계의 균형에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정치적, 경제적인 이중적 맥락은 상대적으로 간단해졌다. 1970년부터 무역/금융관계는 아프리카에서 더욱더 극단적으로 불안정한 물가를 조장하고 외채를 더욱 늘려왔다. 거시 경제모델과 사회 정책들은 결과적으로 절망적인 결과들을 낳았고 이것들은 세계은행과 IMF가 금융부문에서의 매판그룹, 무역총재, 아프리카의 중앙은행을 설립하도록 허락했다. (심지어 이름뿐인 저항이 있긴 했지만, -무가베는 이를 꺼려했다- 짐바브웨의 사례가 보여주는 십수년간 이루어진 구조조정의 실패가 그러했듯이, 권력의 이해관계는 똑같은 효과를 낳아왔다)
신자유주의 또는 '워싱턴 콘센서스'(이는 미국 재무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백악관의 의견을 중시하기 때문이다)라고 불리는 이데올로기를 가진 이 국면은, 전지구적 자본의 위기가 점차적으로 북서구 중심부에서 권력이 훨씬 미약한 남부와 동구로 대체되고 있는 모습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는 주요기제가 된다. 이는 또한 '실천적인' 프로젝트들, 국가의 사회경제적 정책들, 정책적 우선과제의 계획, 그리고 보다 일반적으로는 이른바 '건전한' 개발 전략을 만들어낸 일차적 동력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에 선행되었던 다양한 내부적 정치경제적 문제들은 확실히 아프리카를 유혹했다.-계속적으로 이어져온 식민지의 유산, 국경지대의 부패함, 식민지에서 비민주적 상황으로의 이행 등은 고위 군사관료들을 매수하고 신식민지 체제를 공고히 했다. 이 체제는 (사치재에 기반한 수입대체 산업화 등의) 성장 전략을 채택했지만, 결국 영세농민, 여성, 노동자, 지역제조업자들의 희생을 담보로 하여 소수의 도시지배계급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것이었다.
문제의 본질에 대해 이해하지 않고서는, 아프리카 유산의 실패에 대해 내부적 요인과 전지구적 권력관계(그것이 깊이 연관되어, 바뀌지 않은채 연속될 것이 확실하다) 사이의 관계를 인식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를 제대로 해명할 수 없다.
게다가 아프리카민족회의동맹의 지도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위기의 깊이와 상대적 지속성이 명백해질수록, 지배적인 경제적 패러다임(신자유주의적 워싱턴 콘센서스)은 점점 더 악평을 얻게 될 것이다."
분명 신자유주의는 정기적인 구제금융과 맹목적인 힘(1991년 '아프리카 국가들은 오염이 덜 되어 있다'고 선언한 세계은행 수석경제학자였던 로렌스 서머스의 완고함), 그리고 당혹스러운 부정(미셸 캉드쉬는 마지막 공식석상에서 '나는 절대로 워싱턴 콘센서스에 사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을 통하여 살아남은 것처럼 보인다. 자유시장 원칙에 의해, 덜 엄격하게 한계지워진 '포스트 워싱턴 콘센서스'를 소개하기 위한 조셉 스티글리츠(1997-99년까지 세계은행의 수석경제학자)의 단명한 시도는 그가 해고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이로써 제임스 울펜손은 세계은행 총재로서 5년의 임기를 더 보장받았다).
그러므로 남아공 자체가 보여주듯이, 이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워싱턴의 신용이 부족하다는 게 권력의 결핍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프레토리아에서, 재무장관인 트레버 매뉴얼은 추측컨대 '자국 고유의' 구조조정정책을 광신적으로 따르고 있으며, 이는 사실상 세계은행의 거시경제모델과 두 세계은행 학자에 의해 지원받고 있다. 그 프로그램은 실패하지도 않았고, 아프리카에서 가장 강력한 노동운동(아프리카민족회의 정치가들의 앞서말한 수사)은 프레토리아를 워싱턴의 관성적 방법틀에서 벗어나게 하지도 못했다. (게다가, IMF와 세계은행의 지도부처럼 매뉴얼은 2000년 4월 워싱턴에서 열린 춘계회의에서 커다란 항의에 맞서 버텼다)
아프리카 사회운동의 확산
남아공의 정치지도자들이 '좌파처럼 말하고 우파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아마 특이한 현상도 아니다. 그러나 로버트 무가베가 배우고 있듯이, 기층 민중들을 혼란시키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아프리카의 위기가 전쟁, 무정부적 절망을 낳게 될 경우, 시민사회내의 급진화된 지도층이 생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주빌리 2000 '남부정상회담'이 지난 11월 요하네스버그에서 회합했을 때, 아프리카 사회운동의 지도자들과 활동가들은 제3세계의 활동가들과 만나, 집단적으로 외채지불을 거부하도록 국가수반들에게 압력을 넣자고 합의했다. (이 성명을 언론에 발표하고 지금은 고인이 된 자신의 아버지가 1983년에 외쳤으나 무시되었던 채무자 연합(debtor's cartel)이라는 요구를 상기시킨 것은 바로 로즈마리 니에레레였다)
주빌리 정상회담은 또한 IMF와 세계은행을 없애자고 주장했다. 그 다음 주에 있던 시애틀에서와 마찬가지로, WTO는 일을 진행하는데 방해받았고, (남아공을 제외한)아프리카의 통상장관들은 빌 클린턴의 요구를 거절할 용기를 없애버렸다.
외채에 대항한 주빌리캠페인, antiWTO활동가(가나에 기반한 아프리카 무역개발 네트워크를 포함하여)들은 모두 함께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고 지구적으로 행동하는 최상의 조건을 대표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구적 경제에 대한 비판은 확실히 (아프리카)대륙의 대표적 좌파 정치경제학자(사미르 아민, 판투 체루, 탄디카 음칸디와레, 구이 음호네, 다니 나부데레, 바데 오니모데 등)에 의해 지원받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아프리카의 출중한 사회운동전략들은 외채에 관심을 기울여왔다는 것만이 용기를 준다(데니스 브루터스, 코피 클루, 은조키 은예후 등은 세가지 극단적인 강력한 국제적 목소리를 냈다. 여기서 남아공 독자적으로,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이 외채에 대해 행동했다. 응종공쿨루 은둔가네 대주교, 머시아 앤드루스, 브라이언 애쉴리, 조지 도어, 도트 키트, 네빌 가브리엘, 파티마 미어, 트레버 응구아네, 제프 루딘지가 여기에 포함된다.
이러한 국면의 가능성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루사카 선언'의 광범위한 전략에서 몇가지 구체적인 전술들을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지난 5월 서명된 것으로 아프리카 사회운동, 외채에 대항하는 교회단체(브루키나, 레소토, 케냐, 말라위, 모잠비크, 나이지리아, 카메룬, 스와질랜드, 탄자니아, 토고, 우간다, 남아공, 잠비아, 짐바브웨)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루사카 회의에 참가한 수십명의 참가자들은 '아프리카 민중컨센서스'에 더많은 대중을 끌어들이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이것은 워싱턴 컨센서스와 약간 개량된 포스트 워싱턴 컨센서스의 정통적 발전 전략을 초월하고, 1998, 1999년 아크라, 로메, 가우텡에 유사한 지역회의를 건설함으로써 이를 이룩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2000년에 대표협정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서부아프리카에서 유사한 정상회담이 지난해 시작되었다. 이것이 '다카2000' 통합위원회이다. 이는 2000년 1월 열린 야운데(카메룬의 수도)회의에서 더 큰 추진력을 갖고 개최되었다.
5월달에 다카위원회에서는 '아프리카의 새로운 노예제, 이는 외채와 구조조정정책의 압력속에서 발생한 것으로 21세기가 시작된 이래 전례없는 수치이다....모든 이전의 행동들처럼 쾰른(1999년 6월)과 카이로(2000년 4월)에서 열린 정상회담은 더 이상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2000 다카 12월 정상회담은 수많은 서구중심아프리카 사회운동과 NGO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연구개발센터같은 그룹에 의해서 지원될 것이다. 다카2000은 제3세계를 관통하여 조직되어있다. 이는 ISGN의 호평받는 조직과 국제적 금융거래과세연합(ATTAC), 제3세계 외채탕감연합(CADT)을 통해 이루어져있다.
자본과 미국의 세계화가 아니라, 민중의 세계화를 위하여
이러한 야심찬 활동가들이 의제를 만드는 기초과정에서 해야 할 작업은 무엇인가?
만일 문제의 근원이 국제적인 자본의 과잉축적(과잉생산) 위기 때문이라면(아프리카민족회의의 지식인들이 주장하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하게 가능한 실천적 동맹은 그 자체로 특별한 외채의 문제와 맞선 싸움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루사카 선언은 외채를 갚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개발계획 자체가 아프리카 국가들을 속여서 파산시키는 게 불법적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는 외채가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의 징후라고 주장한다. 의회나 시민사회를 통한 민주주의적 개입이 아닌, 남반구의 차용자들에게 가해지는 국제은행의 권력은 그리고 세계경제의 재앙적인 특징은 남아프리카 수출물에 대해 더 낮은 가격을 지불하게 하는 반면, 북반구에서 수입물에 대해 더 큰 가격을 매기게 한다.
즉, 외채는 남반구와 이들 민족, 생산물, 자연 그 모든 것에 대한 금융지배로서 가장 중요한 북반부의 지배전략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외채에 대한 특별한 전술로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모든 외채를 탕감할 것을 되풀이해서 주장했고, 채권자들과 G7국가들이 허락받을 수 없고, 외채탕감구호를 요구하기 위해 아프리카인들은 우리 스스로 우리만의 발전전략을 결정할 것이다. 시민사회로서 우리는 강력하고 때로는 지속적인 발전을 위하여 필수적인 조건들을 결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규칙을 갖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모잠비크, 우간다같은 "중채무빈국"들은 진부한 외채협약을 잘 수행하고 있으며 루사카 가맹국들은, 변함없는 상의하달식의 워싱턴컨센서스, 이는 지난 20여년간 많은 국가들에 파괴적인 효과를 미쳐왔다"고 불평한다.
구조조정 프로그램과 강화된 구조조정 시설들은 경제적·사회적·환경적으로 대륙의 엄청난 민중들에게 어려움을 안겨주었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비판은 외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루사카 선언은 "외채탕감은 근본적으로 현재의 세계경제질서를 변화시키기 위한, 더 큰 투쟁의 일부일 뿐이다. 부유한 선진국들의 정치적 주도권과 초국적기업과 국제금융의 경제적 권력, 그리고 그들의 기제(IMF, 세계은행, WTO와 같은)들을 변화시키기 위한 투쟁이 그것이다.
남반구에 기구를 두고있는 이러한 권력들은, 즉, 우리자신의 기술적이고, 정치적이고, 상업적인 상류층(아프리카의 아주 작은 소수)은 워싱턴 컨센서스를 조종하기를 계속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발전상태'를 고려했을 때, 마지막 질문이 여기에서 도출된다.
어떤 조치들이 워싱턴에 의해 지원되었다면, 1997-99년에 일어난 정치적 노동권에의 억압과 충돌, 심각한 사회적 개발로 오염도는 체크되지도 않았던 것, 상류층의 편파성, 외국시장에 대한 더욱더 과잉축적된 수출드라이브, 투기적 금융흐름에 버티지 못하는 국가의 무능함, 그리고 다른 많은 동아시아자본주의를 평가절하하는 시각들---은 아프리카에 적절한 것인가?
컨센서스 프로세스는 의심할 바 없이 국가적/지역적 주권을 사수하기 위한 더 나은 방법이 아니다. 또한 아시아의 경우보다 훨씬더 인간적이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적용되는 최신의 방법도 아니다. 루사카 선언가맹국들은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이 생소한 것이 아니라고 논쟁하고 있다: "아파르트헤이드를 종식시키기 위해, 생태적으로 성공한 과제들을 통해-파괴적 과제(대규모댐), 지뢰를 금지하고, 초국적 자본협약인 MAI를 금지하였다. 이는 우리 시민사회에서 지난 십년간 각인되어 있다."
이러한 모든 고려들 속에서 진보적 아프리카 활동가들은 자본의 세계화, 워싱턴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세계화가 아니라 민중의 세계화를 지지하고 있다.
전지구적 자본의 흐름에 대해 비판하다
유엔에 따르면, 오늘날 아프리카 가구들의 평균 소비는 1975년보다 20%가 감소했다. 이는 사회-경제-환경적 위기가 한층 더 심화되고 있는 아프리카대륙의 표면적 지표 중 하나일 뿐이다. 아프리카의 정치-경제적 퇴보는 얼마나 거슬러 올라가며 어떤 기원을 갖고 있는 것일까? 아프리카민족회의(ANC), 남아프리카공산당, 남아프리카 노동총동맹(COSATU)으로 구성된 3자동맹 지도부가 최근 발표한 토론문서는 '과잉축적과 이윤율 하락에 뿌리를 두고 있는 세계경제위기'의 책임이 어느 정도는 북반구 국가들과 서구사회에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윤율의 감소는 지난 25년간 대부분의 선진국경제에서 나타난 일반적 특징이다. 지난 25년간 세계화가 강화되면서, 선진국에서 이윤율감소 경향은 더욱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러한 경향은 투기적 금융자본의 지배의 급격한 증대(와 그 절대량의 기하급수적 성장)을 가져왔다. 이들은 더 높은 수익을 찾아 통제받지 않은 채 전세계를 휘젓고 있는 것이다.(아프리카민족회의, '전지구적 경제위기와 남아프리카의 관계' 1998. 10.)
이러한 흐름에 저항하는 것은, 수사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현실가능한 유토피아로서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가기 위한 첫단계이다. 따라서 이를 지적하고 현 지배체제를 비판해야 한다. 조엘 네트쉬텐제, 제레미 크로닌, 블라데 은지만데, 음바지마 쉴로와 등 이 소책자-이는 공식적으로는 아프리카민족회의저널인 'Umrabulo'와 'African Communist'에 의해 공식적으로 채택되고 발간되었다-의 저자들은 모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정치적 지도자로서 첫번째로 손꼽히는 이들이다. 이 하나만으로 희망적 징후들이 보인다. 북반구와 서구사회가 보기에 최적의 아(亞)제국주의로 간주되는 나라(와 지배 엘리트들)-동시에 아프리카 대륙 다른 나라들의 자본 축적의 추출을 재개할 수 있는 나라-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수사적으로 남아공 정부가 지난 1998년 후반부터, 많은 이들의 기대에 따라 정책방향을 바꾸었던 것이 아니라, 대신 아프리카 지식인들이 한국의 진보세력들 사이에서 일반적이듯, 전지구적 자본의 흐름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급진적인 학자들 외에 교회, 사회운동, 노동조합, 환경주의자들, 여성단체, 청년그룹에서도 같은 의견들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전세계적 상황은 권력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특히 정치적 타당성에 대해- 워싱턴에서 시작되어 다시 대중적 반응으로 고무되어 돌아오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정책과 워싱턴 콘센서스
역관계의 균형에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정치적, 경제적인 이중적 맥락은 상대적으로 간단해졌다. 1970년부터 무역/금융관계는 아프리카에서 더욱더 극단적으로 불안정한 물가를 조장하고 외채를 더욱 늘려왔다. 거시 경제모델과 사회 정책들은 결과적으로 절망적인 결과들을 낳았고 이것들은 세계은행과 IMF가 금융부문에서의 매판그룹, 무역총재, 아프리카의 중앙은행을 설립하도록 허락했다. (심지어 이름뿐인 저항이 있긴 했지만, -무가베는 이를 꺼려했다- 짐바브웨의 사례가 보여주는 십수년간 이루어진 구조조정의 실패가 그러했듯이, 권력의 이해관계는 똑같은 효과를 낳아왔다)
신자유주의 또는 '워싱턴 콘센서스'(이는 미국 재무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백악관의 의견을 중시하기 때문이다)라고 불리는 이데올로기를 가진 이 국면은, 전지구적 자본의 위기가 점차적으로 북서구 중심부에서 권력이 훨씬 미약한 남부와 동구로 대체되고 있는 모습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는 주요기제가 된다. 이는 또한 '실천적인' 프로젝트들, 국가의 사회경제적 정책들, 정책적 우선과제의 계획, 그리고 보다 일반적으로는 이른바 '건전한' 개발 전략을 만들어낸 일차적 동력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에 선행되었던 다양한 내부적 정치경제적 문제들은 확실히 아프리카를 유혹했다.-계속적으로 이어져온 식민지의 유산, 국경지대의 부패함, 식민지에서 비민주적 상황으로의 이행 등은 고위 군사관료들을 매수하고 신식민지 체제를 공고히 했다. 이 체제는 (사치재에 기반한 수입대체 산업화 등의) 성장 전략을 채택했지만, 결국 영세농민, 여성, 노동자, 지역제조업자들의 희생을 담보로 하여 소수의 도시지배계급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것이었다.
문제의 본질에 대해 이해하지 않고서는, 아프리카 유산의 실패에 대해 내부적 요인과 전지구적 권력관계(그것이 깊이 연관되어, 바뀌지 않은채 연속될 것이 확실하다) 사이의 관계를 인식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를 제대로 해명할 수 없다.
게다가 아프리카민족회의동맹의 지도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위기의 깊이와 상대적 지속성이 명백해질수록, 지배적인 경제적 패러다임(신자유주의적 워싱턴 콘센서스)은 점점 더 악평을 얻게 될 것이다."
분명 신자유주의는 정기적인 구제금융과 맹목적인 힘(1991년 '아프리카 국가들은 오염이 덜 되어 있다'고 선언한 세계은행 수석경제학자였던 로렌스 서머스의 완고함), 그리고 당혹스러운 부정(미셸 캉드쉬는 마지막 공식석상에서 '나는 절대로 워싱턴 콘센서스에 사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을 통하여 살아남은 것처럼 보인다. 자유시장 원칙에 의해, 덜 엄격하게 한계지워진 '포스트 워싱턴 콘센서스'를 소개하기 위한 조셉 스티글리츠(1997-99년까지 세계은행의 수석경제학자)의 단명한 시도는 그가 해고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이로써 제임스 울펜손은 세계은행 총재로서 5년의 임기를 더 보장받았다).
그러므로 남아공 자체가 보여주듯이, 이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워싱턴의 신용이 부족하다는 게 권력의 결핍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프레토리아에서, 재무장관인 트레버 매뉴얼은 추측컨대 '자국 고유의' 구조조정정책을 광신적으로 따르고 있으며, 이는 사실상 세계은행의 거시경제모델과 두 세계은행 학자에 의해 지원받고 있다. 그 프로그램은 실패하지도 않았고, 아프리카에서 가장 강력한 노동운동(아프리카민족회의 정치가들의 앞서말한 수사)은 프레토리아를 워싱턴의 관성적 방법틀에서 벗어나게 하지도 못했다. (게다가, IMF와 세계은행의 지도부처럼 매뉴얼은 2000년 4월 워싱턴에서 열린 춘계회의에서 커다란 항의에 맞서 버텼다)
아프리카 사회운동의 확산
남아공의 정치지도자들이 '좌파처럼 말하고 우파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아마 특이한 현상도 아니다. 그러나 로버트 무가베가 배우고 있듯이, 기층 민중들을 혼란시키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아프리카의 위기가 전쟁, 무정부적 절망을 낳게 될 경우, 시민사회내의 급진화된 지도층이 생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주빌리 2000 '남부정상회담'이 지난 11월 요하네스버그에서 회합했을 때, 아프리카 사회운동의 지도자들과 활동가들은 제3세계의 활동가들과 만나, 집단적으로 외채지불을 거부하도록 국가수반들에게 압력을 넣자고 합의했다. (이 성명을 언론에 발표하고 지금은 고인이 된 자신의 아버지가 1983년에 외쳤으나 무시되었던 채무자 연합(debtor's cartel)이라는 요구를 상기시킨 것은 바로 로즈마리 니에레레였다)
주빌리 정상회담은 또한 IMF와 세계은행을 없애자고 주장했다. 그 다음 주에 있던 시애틀에서와 마찬가지로, WTO는 일을 진행하는데 방해받았고, (남아공을 제외한)아프리카의 통상장관들은 빌 클린턴의 요구를 거절할 용기를 없애버렸다.
외채에 대항한 주빌리캠페인, antiWTO활동가(가나에 기반한 아프리카 무역개발 네트워크를 포함하여)들은 모두 함께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고 지구적으로 행동하는 최상의 조건을 대표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구적 경제에 대한 비판은 확실히 (아프리카)대륙의 대표적 좌파 정치경제학자(사미르 아민, 판투 체루, 탄디카 음칸디와레, 구이 음호네, 다니 나부데레, 바데 오니모데 등)에 의해 지원받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아프리카의 출중한 사회운동전략들은 외채에 관심을 기울여왔다는 것만이 용기를 준다(데니스 브루터스, 코피 클루, 은조키 은예후 등은 세가지 극단적인 강력한 국제적 목소리를 냈다. 여기서 남아공 독자적으로,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이 외채에 대해 행동했다. 응종공쿨루 은둔가네 대주교, 머시아 앤드루스, 브라이언 애쉴리, 조지 도어, 도트 키트, 네빌 가브리엘, 파티마 미어, 트레버 응구아네, 제프 루딘지가 여기에 포함된다.
이러한 국면의 가능성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루사카 선언'의 광범위한 전략에서 몇가지 구체적인 전술들을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지난 5월 서명된 것으로 아프리카 사회운동, 외채에 대항하는 교회단체(브루키나, 레소토, 케냐, 말라위, 모잠비크, 나이지리아, 카메룬, 스와질랜드, 탄자니아, 토고, 우간다, 남아공, 잠비아, 짐바브웨)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루사카 회의에 참가한 수십명의 참가자들은 '아프리카 민중컨센서스'에 더많은 대중을 끌어들이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이것은 워싱턴 컨센서스와 약간 개량된 포스트 워싱턴 컨센서스의 정통적 발전 전략을 초월하고, 1998, 1999년 아크라, 로메, 가우텡에 유사한 지역회의를 건설함으로써 이를 이룩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2000년에 대표협정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서부아프리카에서 유사한 정상회담이 지난해 시작되었다. 이것이 '다카2000' 통합위원회이다. 이는 2000년 1월 열린 야운데(카메룬의 수도)회의에서 더 큰 추진력을 갖고 개최되었다.
5월달에 다카위원회에서는 '아프리카의 새로운 노예제, 이는 외채와 구조조정정책의 압력속에서 발생한 것으로 21세기가 시작된 이래 전례없는 수치이다....모든 이전의 행동들처럼 쾰른(1999년 6월)과 카이로(2000년 4월)에서 열린 정상회담은 더 이상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2000 다카 12월 정상회담은 수많은 서구중심아프리카 사회운동과 NGO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연구개발센터같은 그룹에 의해서 지원될 것이다. 다카2000은 제3세계를 관통하여 조직되어있다. 이는 ISGN의 호평받는 조직과 국제적 금융거래과세연합(ATTAC), 제3세계 외채탕감연합(CADT)을 통해 이루어져있다.
자본과 미국의 세계화가 아니라, 민중의 세계화를 위하여
이러한 야심찬 활동가들이 의제를 만드는 기초과정에서 해야 할 작업은 무엇인가?
만일 문제의 근원이 국제적인 자본의 과잉축적(과잉생산) 위기 때문이라면(아프리카민족회의의 지식인들이 주장하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하게 가능한 실천적 동맹은 그 자체로 특별한 외채의 문제와 맞선 싸움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루사카 선언은 외채를 갚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개발계획 자체가 아프리카 국가들을 속여서 파산시키는 게 불법적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는 외채가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의 징후라고 주장한다. 의회나 시민사회를 통한 민주주의적 개입이 아닌, 남반구의 차용자들에게 가해지는 국제은행의 권력은 그리고 세계경제의 재앙적인 특징은 남아프리카 수출물에 대해 더 낮은 가격을 지불하게 하는 반면, 북반구에서 수입물에 대해 더 큰 가격을 매기게 한다.
즉, 외채는 남반구와 이들 민족, 생산물, 자연 그 모든 것에 대한 금융지배로서 가장 중요한 북반부의 지배전략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외채에 대한 특별한 전술로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모든 외채를 탕감할 것을 되풀이해서 주장했고, 채권자들과 G7국가들이 허락받을 수 없고, 외채탕감구호를 요구하기 위해 아프리카인들은 우리 스스로 우리만의 발전전략을 결정할 것이다. 시민사회로서 우리는 강력하고 때로는 지속적인 발전을 위하여 필수적인 조건들을 결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규칙을 갖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모잠비크, 우간다같은 "중채무빈국"들은 진부한 외채협약을 잘 수행하고 있으며 루사카 가맹국들은, 변함없는 상의하달식의 워싱턴컨센서스, 이는 지난 20여년간 많은 국가들에 파괴적인 효과를 미쳐왔다"고 불평한다.
구조조정 프로그램과 강화된 구조조정 시설들은 경제적·사회적·환경적으로 대륙의 엄청난 민중들에게 어려움을 안겨주었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비판은 외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루사카 선언은 "외채탕감은 근본적으로 현재의 세계경제질서를 변화시키기 위한, 더 큰 투쟁의 일부일 뿐이다. 부유한 선진국들의 정치적 주도권과 초국적기업과 국제금융의 경제적 권력, 그리고 그들의 기제(IMF, 세계은행, WTO와 같은)들을 변화시키기 위한 투쟁이 그것이다.
남반구에 기구를 두고있는 이러한 권력들은, 즉, 우리자신의 기술적이고, 정치적이고, 상업적인 상류층(아프리카의 아주 작은 소수)은 워싱턴 컨센서스를 조종하기를 계속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발전상태'를 고려했을 때, 마지막 질문이 여기에서 도출된다.
어떤 조치들이 워싱턴에 의해 지원되었다면, 1997-99년에 일어난 정치적 노동권에의 억압과 충돌, 심각한 사회적 개발로 오염도는 체크되지도 않았던 것, 상류층의 편파성, 외국시장에 대한 더욱더 과잉축적된 수출드라이브, 투기적 금융흐름에 버티지 못하는 국가의 무능함, 그리고 다른 많은 동아시아자본주의를 평가절하하는 시각들---은 아프리카에 적절한 것인가?
컨센서스 프로세스는 의심할 바 없이 국가적/지역적 주권을 사수하기 위한 더 나은 방법이 아니다. 또한 아시아의 경우보다 훨씬더 인간적이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적용되는 최신의 방법도 아니다. 루사카 선언가맹국들은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이 생소한 것이 아니라고 논쟁하고 있다: "아파르트헤이드를 종식시키기 위해, 생태적으로 성공한 과제들을 통해-파괴적 과제(대규모댐), 지뢰를 금지하고, 초국적 자본협약인 MAI를 금지하였다. 이는 우리 시민사회에서 지난 십년간 각인되어 있다."
이러한 모든 고려들 속에서 진보적 아프리카 활동가들은 자본의 세계화, 워싱턴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세계화가 아니라 민중의 세계화를 지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