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우리땅? -강성대국의 꿈
한반도의 동쪽 바다에는 두 개의 아름다운 섬이 떠 있다. 바다 위로 봉긋하게 솟아있는 소나무 원시림 아래 자락에는, 험한 산과 바다에 의지해 사는 사람들의 냄새가 골짜기마다 배어있다. 이 곳이 오징어와 호박엿으로 유명한 울릉도다. 여기서 동쪽으로 뱃길을 잡아 한나절을 더 헤쳐가면 까만 바위에 하얗게 내려앉은 갈매기가 인상적인, 아름다운 돌섬이 하나 나타난다. 좀 더 가까이 가보면 東島와 西島 두 개의 돌섬이 마주보고 서있는 것이 보인다.
바로 독도다. 푸른 동해바다 한가운데, 아기배꼽처럼 솟아있는 독도의 풍광은 여러 매체를 통해 많이들 접해봤듯이 절경 그 이상이다. 망망대해의 아름다운 섬 독도. 그 풍광에 누구나 넋을 잃고 빠져들기 마련이지만, 그 섬을 놓고 수군대는 소리에 어느새 현실의 북새통으로 끌려나오게 된다.
새삼 설명할 필요 없이 1945년 이후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독도에 대한 영유권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동해의 아름다운 배꼽, 독도.
물론 우리 정부의 입장은 조금 가려워도 일단 참자는 것이다. 긁으면 덧난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식민지 시절 일본에게 당한 설움을 한꺼번에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갈매기들의 안식처인 평화로운 섬을 그냥 가만두지를 못한다. 집을 짓고 주민등록을 옮기고 심지어는 東島와 西島 사이의 물길을 콘크리트로 메워 평평하게 만들자는 주장도 나온 적이 있다.
끔찍하다. 갈매기가 떠나버린 콘크리트 덩어리 위에 서서, 휘날리는 태극기를 바라보며 뿌듯해 할 사람들의 표정이 떠올라 소름이 끼친다.
이런 사정 때문인지 조금 식상하기는 해도, 독도관련 소식은 여러 매체를 통해 잊혀질만 하면 한 번씩 등장하는 만만한 단골손님 중 하나다. 대중을 뭔가 경건하게 만드는데 있어 독도만큼 손쉽고 효과빠른 약도 드물다. 특히 매년 3.1절이나 광복절을 전후해서는 독도가 예로부터 한국 땅임을 주장하는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었다고 하는, 다소 격정적인 어투의 기사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자료를 발견했다는 분이 날도 날이니만큼, 조금 쑥스럽더라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자료를, 괜찮은 자료 중 하나라고 소개하는 것이다. 그러면 기자들은 그 자료를 뻔하디 뻔한 공식말투에 잡아넣어서 이제 더 이상 독도 얘기는 할 필요도 없다, 오랜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감격의 기사가 나오게 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정말로 애쓰고 있는 분들의 善意가 가려질까 조심스럽지만, 이런 과정은 사실의 전달이라기보다는 창작 비슷한 예술활동에 가깝다. 그리고 그 효과 또한 너무나 즉흥적이고 어찌보면 소비적이기까지 하다.
'그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물론 독도는 우리 땅이다. 필자도 본의 아니게 독도에 관심을 가질 일이 있어 남들 비슷하게 자료도 보고 고지도(古地圖)도 본 바가 있지만, 결론부터 말해 여하튼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일단 고지도를 통해 보더라도 옛부터 한반도에 살고있던 많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울릉도와는 구분되는 또 하나의 섬이 '우산도(于山島)'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다. 일본의 고지도에도 심심치 않게 울릉도와 독도가 등장하지만, 위치나 형태로 보아 한반도에 부속된 섬으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울릉도와 독도가 오랜 세월 계속된 신비스런 이미지를 벗고 본격적인 국가의 통제안으로 들어온 것은, 조선이 울릉도에 대한 '공도정책(空島政策)'-섬에 주민이 定住하는 것을 금지했던 정책-을 버리게 되는 188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특히 독도가 여러 나라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05년 러일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와서이다.
신라 장군 이사부(異斯夫)의 于山國 복속, 조선 숙종대 안용복(安龍福)의 활동 등 비록 가끔씩 역사 속에 울릉도가 고개를 내밀어 왔고 꽤 드물게는 독도에 관한 기록도 눈에 띄기는 한다. 그렇지만, 조선시대 내내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는 조운(漕運)이 안정적이지 못할 정도로 지금과는 커다란 차이를 보였던 항해술 하에서, 망망대해에 외롭게 떠있는 울릉도를 안정적으로 관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물며 여기서 또 한참이나 떨어져있는 독도는 어떠했겠는가.
이렇듯 울릉도와 독도가 본격적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된 것은 이른바 근대에 들어오면서부터의 일이다. 특히 독도는 1905년에 일어난 러일전쟁에 의해 비로소 일부 물개 사냥꾼들의 사냥터에서 벗어나, 일거에 세계열강의 이목이 집중되는 지역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동해는 러일전쟁의 주요한 무대였다. 그 한가운데 떠 있는 독도의 가치가 주목받게 된 것은 당연하다. 이는 또한 항해술의 발달로 넓은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 것이 일반화된 시점과도 적잖이 연관된 일이었다.
당시 일본은 동해연안의 한 지역인 시마네켄(島根縣)의 고시(告示)를 통해 공식적으로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편입시켰다. 이것이 오늘날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가장 큰 근거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억지에 가깝다.
당시의 복잡한 정세 속에서 이것만 딱 떼어놓고 그 적법성을 따지는 것 자체가 우습다. 1905년이면 우리나라는 이미 일본의 반식민지(半植民地) 상태에 놓여있었다. 당시 분위기라면 독도가 아니라 제주도를 일본 땅이라고 했어도, 물론 조금 더 시끄럽기는 했겠지만, 일본의 시도가 과연 좌절됐겠는가를 생각해 보라.
따라서 일본의 독도 편입은 조선에 대한 침탈의 한 단계였을 뿐이며, 그 침탈 전반이 무효화된 지금 독도만 분리해 논의하자는 것은 상식 밖이다. 일본도 얼굴 꽤나 두껍다.
독도지키기 운동, 왜곡된 애국심의 발로
이와 같은 일본측의 대응이 우리까지 이전투구(泥田鬪狗)의 판으로 끌어들이는 측면도 없지 않지만,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뻔한 주장이 아니라, 그 주장이 담고있는 현실적 효과에 대해서이다. 다들 어느 정도 짐작은 하겠지만 우리나라에는 독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참 많다. 여기서 독도지키기 운동을 이끌다시피하고 있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한 교수의 주장을 한 번 살펴보자.
"한국은 독도를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 학생들과 청소년들의 훈련장과 야영장으로 활용해야 한다. 현재 서울 등지에 있는 청소년들의 극기훈련시설은 인공적 장난감과 같은 것이어서 일종의 '놀이'처럼 되어있다. 청소년.학생들이 독도를 찾아가 조국의 동쪽 끝에 있는 대자연 속에서 자기훈련을 할 때 조국과 강산에 대한 사랑이 절로 배양될 것이며, 거친 파도를 헤쳐나가면서 조국과 자기를 지킬 수 있는 큰 인물이 배양될 것이다."
이 분이 기대하는 '큰 인물'은 아마도 박정희 장군이나 전두환 장군같은 분이 아닐까 싶다. 내 생각에 그런 큰 인물은 우리 사회에 이미 충분히 많다.
지긋지긋하지 않은가. 차라리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겸손하고 이웃을 아낄 줄 아는 '작은 인물'이 아닌가 생각한다. 허나 이런 분들의 적극적인 활동에 힘입어 지금 우리 사회에는 '큰 인물'들이 계속해서 쑥쑥 자라고 있다. 웹상의 독도관련 사이트를 한 번 방문해 보라. 애국청년학생들의 열정이 가히 살벌하다. 그들 대부분이 중고등학생들이다. 중고등학생이라고 얌전히 공부나 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순수한 마음을 너무 몰라주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열정어린 모습에서, 머리 빡빡깎고 백주대낮에 한국에서 온 배낭여행족들을 린치하는 스킨헤드나 궁성요배를 마치고 비행기에 오르던 황국청년의 적성(赤誠)을 보는 것 같아 섬찟할 뿐이다. 그 열정이, 서슬 시퍼런 칼날이 결국은 우리 자신을 겨누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는 데에 생각이 이르면 두렵기까지 하다.
해방 이후, 정확히 말해 독도를 대한민국의 영토로 선포한 1952년의 이른바 '이승만 라인'이 그어진 지도 이미 50년이 가까워온다. 한 지역을 50년간 사용.관리한 주체에 대해 그 지역에 대한 국제법상의 '실효적 지배'가 인정된다는 주장이 있다. 이제 2년만 더 지키면 된다. 내 생각에 일부 사람들은 그 때가 되면 뭔가 기념식이라도 하려고 나설 것이 틀림없다. 그나마 콘크리트 덩어리 위에서의 기념식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사실 '실효적 지배'를 중시한다면, 독도는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갈매기와 물개의 것이다. 위에 잠깐 등장했던 교수는 다음과 같은 표현을 즐긴다.
"독도가 한국의 고유영토가 된 것은 삼국시대인 서기 512년에 '우산국'이 '신라'에 복속돼 그 일부가 된 때부터다."
우리 내부에 있는 경계짓기의 관행
천년 전의 왕국과 지금의 대한민국을 맞바로 동일시하는 '廣幅' 연구가 인상적이기도 하지만, 이 논리대로라면 그 교수는 조선이 일본에 복속된(?) 식민지기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이야기가 조금 지저분해지지만, 지금이라도 울릉도 주민 하나가 우산국의 후예라고 주장하면 독도의 영유권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깊이 고민해 볼 문제가 아닌가 싶다.
이런 사정은 사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일본 시마네켄(島根縣)의 거리 곳곳에는 '竹島! 戾どれ!'(죽도여! 돌아오라!)라는 구호가 커다랗게 붙어있다. 일본도 참 딱하다. 이런 대립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그래서 그것은 소비적이다. 그래도 일본에는 독도를 한국 땅이라고 말하는 이가 꽤 있다. 그러고보면, 한국에서는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아직 본 적이 없다. 아니 조금 차분하게 다른 길을 찾아보자는 사람도 보기 힘들다.(혹시 있다면 김종필씨 정도?) 일심단결의 대오가 뿌듯하기는 하지만 일사분란함이 주는 폐해를 이것저것 많이 본 우리들로서는 마냥 좋을 수만은 없지 않을까 싶다.
물론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는 현실적으로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깊이 들어가보면, 서로 닮은 점이 많다는 것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인정한다. 본질적인 차이를 설명하려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그건 쉽지 않은 문제다. 처한 환경과 그 주장의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닮은 점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설명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그것을 '자신에 대한 넘쳐나는 자부심과 그것에 기반한 자기를 둘러싼 경계에 대한 집착'이라고 표현해 보고 싶다.
독도는 우리나라의 동쪽 '경계'이다. 시간적인 의미에서든 공간적인 의미에서든 '경계'는 그것으로 둘러싸인 '전체'의 속성을 잘 드러내준다. 독도와 그것에 대한 많은 이들의 사랑(?) 역시 얼핏 감추어져 있는 한국 사회의 속내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독도에 대한 집착은 확실히 사회 내부를 다잡는 효과를 갖고 있다. 독도지키기 운동이 사실은 국가정보원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다는 류(類)의 코믹한 발상은 아니다. 경계를 찾아 허둥대고 조금이라도 기존의 경계에 대한 도전이 있으면 불안해하는 와중에, 어느 덧 우리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섬뜩한 구획이 지워져가고 있는지 모른다. 가끔씩 벗어나려고 노력하기도 하지만, 이미 우리는 그 경계를 확인하고 그 안에 안주하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경계에 대한 집착이 우리 자신을 옭죄는 질곡으로 변할까 두려울 뿐이다. 의식 속에서나마 경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경계에 대한 집착을 버리자!
그런데 요즘 우리들 주변에 존재하던 또 하나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이 세상 무엇보다 높고 두터운 경계로 보였던 분단의 벽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얼마전에 있었던 역사적인 '북남상봉' 즉 '남북정상회담'이 그것이다. 정말 엄청나게 환영할 일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고통으로 다가왔던 분단의 아픔을 생각한다면, 또한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들먹이면서 벌어졌던 어처구니없는 그 동안의 역사를 생각한다면, 실로 감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단순한 기쁨을 넘어 우리의 의식과 삶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한다. 당국자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오늘 레드컴플렉스라는 또 하나의 경계가 허물어진 이 사건은 남북한 모두에 있어 인간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효과를 낳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도 하고싶은 말이 조금 있다. 좋은 일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것은 아니다. 한-미 공조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바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둘러싼 요즘 세간의 분위기 또한, 필자가 위에서 언급한 '경계에 대한 집착'이라는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이다. 황장엽씨의 망명에서 예고되었던 남북한 권력의 화해가능성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현실화되었다. 주체사상의 이데올로그에서 21세기 민족의 나아갈 길을 설파하는 연사로 무리없이 변신할 수 있었던 황장엽씨의 인생역정에서 살필 수 있듯, 오늘 남북한의 화해는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바야흐로 '광폭정치'의 '신광개토시대'가 열리게 되었으며, '강성대국'의 건설이라는 깃발아래 남북한은 쉽게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독도에 대한 우리 주변사람들의 열정에서 보이는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심성이 두렵다. 최근의 김정일을 무슨 '성군(聖君)'이라도 난 것처럼 추켜세우는 신드롬이 위태로워 보인다. 더 이상 큰 이야기 속에 누군가의 소중한 작은 삶이 쓸려 떠내려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독도를 바라볼 때도 통일을 기원할 때도, 나 자신을 살찌우고 우리만의 경계를 확고히 하겠다는 심보를 버리고, 모든 이웃과 자연과 어우러지는 세상에 대한 꿈을 지켜나갔으면 한다. '강성대국' 또한 누군가를 겨냥한 칼날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