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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6.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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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시민주의와 국제주의

두 가지 모델,두 가지 유산

에티엔 발리바르 |
[역주: 이번 호 <책 속의 책>에는 세계시민주의(cosmopolitisme)와 국제주의(internationalisme)를 다루는 글을 번역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에 맞서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가장 유력한 대중운동은 대안세계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대안세계화 운동은 아직까지는 어떤 확정적인 답변이라기보다는 함께 숙고해야 할 질문에 가깝다. 특히 많은 국가들에서 대안세계화 운동은 아직까지 대중운동으로 조직되고 있지 못하며, 많은 대중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주는 고통으로 말미암아 국가주의나 인종주의에 더 쉽게 이끌리는 실정이다. 전통적인 민족주의 저 편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이른바 ‘다문화주의’가 아니라, 민족주의보다 한층 배타적이고 공동체주의적인 이데올로기들 사이의 일반화된 적대다.
이 글의 저자 발리바르는 우리가 기존의 민족주의로 돌아갈 수는 없으며, 현 정세에서 그것은 사실상 국가주의와 인종주의와 분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그가 관념적이고 유토피아적인 국제주의를 주창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국제주의가 대중운동으로 전화하지 못한다는 점을 객관적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그 원인을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발리바르는 칸트에서 유래하는 근대적 세계시민주의와 맑스에서 유래하는 근대적 국제주의를 서로 구별한 후 각각의 특징을 간결하게 정식화하고 양자의 역사적 모순과 이론적 한계를 지적한다. 이는 결국 국제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우리가 사고하고 대결해야 하는 문제들과 다르지 않다.
이 글은 국제주의를 관념적 당위로 받아들이지 않고 실천적이고 대중적인 이데올로기로 부활시키고자 하는 이들에게 많은 사고거리를 던져줄 것이다. 특히 발리바르가 지난 2000년에 발표한 「공산주의 이후에 어떤 공산주의가?」와 함께 읽는다면 공산주의와 국제주의의 문제를 사고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역자가 아직 불어에 익숙하지 않아 독자들이 글을 읽는 데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너그러운 양해를 부탁드린다. 여러 바쁜 일이 있는 중에도 번역에 도움을 주신 오창룡 선배, 그리고 마찬가지로 바쁜 중에도 서툰 글을 꼼꼼하게 교정해 주신 최원 편집위원회(준) 편집위원께 감사드린다. 하지만 물론 번역 상의 모든 실수와 오류는 역자의 책임이다.

세계시민주의와 국제주의
:두 가지 모델, 두 가지 유산1)


오래 전, 집 근처 지하철을 타려고 ‘씨떼 위니베르시떼’(Cite Universitaire)2)역에 가다가, 미국 재단(la Fondation des Etats-Unis) 맞은 편 몽수리 공원 가에 있던 토마스 페인(Tom Paine) 동상 앞을 지나쳤다. 계몽주의의 세계시민주의를 강의할 때 나는 학생들에게 이 동상에 관해 자주 이야기했는데, 여기에는 내가 잘 아는 영어 비문(碑文)이 새겨져 있었다. “토마스 페인. 영국에서 출생하고 미 국적을 선택했으며 프랑스인으로 선포되었음. 세계의 시민.”(Thomas Paine. Born Englishman. American by choice. French by decree. Citizen of the World.))3) 이제 동상은 더 이상 그 곳에 있지 않다. 도로 공사를 틈타 동상을 치웠는데, 필시 시 당국이 동상 보수에 진력이 나서였을 것이다. 미국의 세계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있을 때마다 반제국주의 활동가들이 동상에 빨간 칠을 했는데, 그들은 필시 톰 페인이 누군지 몰랐거나 미국의 여느 민족 영웅쯤으로 보았을 것이다. 평소 다니는 길을 지날 때마다 나는 사라진 비문을 마음 속으로 읊조리면서, 거기서 유토피아 종말의 상징을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자문해 본다.4) 하지만 정확히 어떤 ‘유토피아’가 문제였는가? 그리고 오늘날 유토피아가 폐기된다고 믿을 수 있다면 어떤 의미에서인가?
세계시민적 유토피아의 종말이라는 관념은 전혀 독창적인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를 두 가지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들 각각은 우리 시대의 담론에 모두 나타난다. 첫 번째 방식은 오늘날의 세계화가 결국 ‘유일무이한 세계’를 만들어냈으며, 이 세계 안에서 모든 특수한 문화적·역사적 공동체들과 모든 개인들이 사실상 서로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세계시민적’인 것은 경제, 통신과 문화, 환경, 집단 안보 등의 분야에서 인류 전체에 공통적인 이익의 영역이라는 의미로 쓰이는데, 더 이상 그것은 유토피아의 범주, 즉 꿈의 범주는 아닐지라도 상상과 이상 투사(投射, projection)의 범주인 유토피아의 범주가 아니다. 그것은 이제부터 현실의 범주인데, 설사 이 현실이 갈등적이고, 통일시키는 것과 같은 정도로 분할시킨다 해도 그렇다. cosmopolis(세계국가), cosmopoliticos(세계정치가), cosmopolites(세계시민) 등 일련의 그리스 용어들 속에 있는 ‘정치’(politique)라는 관념은 ‘시민권의 구성’(politeia)이라는 관념과 명시적으로 관련되었는데, 오늘날 시민권의 한계는 전(全)세계의 한계와 일치할 것이고, 이러한 일치는 이익과 갈등이 공적 논쟁과 의식에 백일하에 드러난다는 것을 함축하며, 이를 위한 제도와 언어는, 개인들이 국가와 관용어의 경계들을 가로질러 자신들의 문제의 ‘세계적 차원을 느끼는 법’(feeling global)5)을 배움에 따라 생겨나게 된다.
따라서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처럼 ‘새로운 집단적 시민권자의 출현’(emergence of a new collective constituency)6)을 말하거나, (‘반(反)세계화’(No-Global) 운동이 자신의 이름과 모순되게 그렇게 하듯이) 전 세계의 권력 분포와 경제 정책을 다시 문제 삼는 사회적 또는 이데올로기적] 운동과 관(貫)민족적(transnationaux) 교통 네트워크의 점증하는 중요성을 관찰하면서, 심지어 낡은 특수주의적 ‘영토의 시민권’과 대립하는 ‘네트워크의 시민권’이 될 새로운 유형의 시민권의 탄생을 환영할 수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문명’은 아니라고 해도) 이익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폭력적 형태, 심지어 테러적 형태를 취한다는 사실을 든다고 정확히 반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폭력적 형태는 세계 정치의 실현을 규정짓는 형태들 중 하나일 뿐이며, 세계 정치가 역사적인 모든 정치와 마찬가지로 적대와 권력 관계에 의해 구조화된다는 점에 놀랄 필요는 없다[는 식으로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이 적대들이 더 이상 민족이나 제국, 또는 ‘진영’의 경계에 한정될 수 없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냉전’의 종말은 이 점에서 돌이킬 수 없는 전환점을 표지한다.).
그러나 이 같은 표상의 극단에서, 그 자체 지극히 양가적인 ‘세계 시민사회’라는 관념과 경쟁하는 ‘세계 내전’이라는 관념이 면모를 드러낸다. 세계적 거대도시(Megalopolis)7)의 출현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유토피아와 모순을 빚는다. 유토피아의 이론들을 현실들로 (이상적 모델을 정치적 실천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유토피아의 통일성이라는 전제 자체를 폭발시킴으로써 말이다. 아마도 우리는 오늘날 ‘유일무이한 세계’ 속에서 부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개인들이 더 이상 타자들의 행위의 효과, 특히 그 파괴적 효과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탐욕스러운 세계는 특수주의와 ‘부족주의’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강화시키는 세계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세계화는, 조절될 수 있으리라 기대되는 “지구적”(globale) 또는 “관민족적” 공통 제도들 및 언어들의 진보적 구성으로 이어지기는커녕, [그보다 앞서] 홉스적인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을 완화하는 문화적·정치적 틀, 권력과 주권의 체계를 파괴할 것이다. 현실에서 발생할 것은 따라서 세계시민적 유토피아의 합리성의 핵심이 아니라 그 허무주의적 이면(裏面), 지구적인 디스토피아(dys-topie)일 것이다.
관민족적이고 탈영토적인 연대의 형성 자체는 이런 의미에서 재해석될 수 있다. ‘국제적 테러리즘’을 기존 권력에 대한 발본적 도전의 새로운 형태로 만들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민족주의의 지양이 ‘다문화주의’의 촉진보다는 탈지역화된(delocalises) 공동체주의적 적대의 일반화에 있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말이다.8) 이러한 상태에서 ‘세계주의의 붕괴’와 ‘민족주의의 소생’9)을 진단할 수 있다는 점에 놀랄 필요는 없는데, 사무엘 헌팅턴(Samuel Huntington)이라는 이름으로 상징되는 현대 정치이론의 어떤 조류 전체는,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보편주의의 추가가 방도가 아니라(보편주의는 그 비현실주의 자체가 거부의 반작용을 증폭시킬 뿐이며 사실상 제국주의와 동의어를 이룬다), 경제적 세계화를 지역적이고 지정학적인 거대 집합들의 분할된 체계와 결합하는 것이 방도라고, 즉 (“문명들”로 재명명된) 종교 전통의 세계들(univers)과 일치하며, 인구 이동을 제한하고, 하나의 유일한 국가의 정치-군사적 권력에 중심을 둔 거대 집합들의 분할된 체계와 결합하는 것이 방도라고 설명한다.10)
세계시민주의의 이상들이 현실의 시련에 맞부딪히는 ‘세계화된’ 세계가 사실 역사상 가장 폭력적인 세계 중 하나이며, 즉시 예측할 수 있는 끝도 없는 세계라는 점은, 오늘날 ‘세계의 시민권’이라는 관념에 관한 모든 논쟁을 둘러싸는 깊은 곤란의 뿌리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니다. 세계적 시민권과 세계화를 내세우는 담론들의 정치적 다의성에서도 곤란이 생겨난다. 포르투 알레그레(Porto Alegre)에서 탄생하여 (뭄바이[Mumbai]로 재명명된 봄베이[Bombay]에서)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새로운 회합을 성공적으로 막 개최한 ‘세계사회포럼’은 ‘반세계화’라는 용어에서 ‘대안세계화’라는 용어로 옮겨가면서 이러한 곤란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전통 속에서 길러진 지식인들 다수가 믿고 싶어 하는 것처럼, 세계시민주의가 본성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과 지배적인 경제 세력의 편보다는 전 세계의 민중 세력(또는 ‘다중들’)―그들의 이익이 최종분석에서 제국주의와 기성 권력, 특권세력들의 ‘체계’나 ‘제국’에 대항하여 수렴할―의 편일 것이라는 점은 확실치 않다.
실은 그 반대가 아니냐고 자문할 수조차 있다. 현대화를 추진하는 자본주의와 ‘엘리트’들은 ‘빈자들’, 보다 일반적으로는 ‘피지배’ 대중들보다 오늘날 지적으로 훨씬 개방적이고, 민족적 특수주의를 훨씬 더 기꺼이 지양할 채비가 되어 있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이로부터 유럽과 다른 곳에서, (르펜(Le Pen), 하이데(Haider) 등) ‘인민주의’의 발전, 민족주의적이고 ‘토착민주의적’(nativistes)인 이데올로기들의 저항이 생겨나며, 새로운 세계에서 ‘배제되었다’고 느끼고 이러한 위협에 반응하여 ‘침입자들’과 ‘조국 없는’ 자들에 대한 외국인혐오증적 배제를 증가시킬 것을 국가에 요구하는 사회 계층들에게 이들 이데올로기가 행사하는 유혹이 생겨난다. 주지하듯이 (프랑스와 다른 곳의 새로운 ‘주권주의’(souverainisme)에서처럼) 지식인들 역시 이 같은 경향에서 면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이 새로운가? 사실 적어도 18세기 이래 부르주아 ‘세계시민주의’와 심지어 ‘국제주의’가 민중적인 세계시민주의와 국제주의만큼 그리고 그보다 더 강하게 존재해 왔을 뿐만 아니라(후술하겠지만 이는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맑스가 증명한 것의 의미였는데, 그것은 “만국의 프롤레타리아트여, 단결하라!”, 부르주아들이 자본 축적의 유일한 세계적 과정 한 가운데서 민족적 적대를 넘어 이미 단결했던 것처럼, 이라고 말한다.), 세계시민주의의 담론이 그 자체로 제국주의의 구성요소였다는 점을, 특히 제국주의가 ‘야만적’인 것으로 지칭되는 민족들을 정복을 통해 ‘문명화’하고 ‘근대화’하는 힘으로 스스로를 제시했을 때 그랬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세계시민주의는 특히 식민지 국가들의 반제국주의적인 민족주의나 민족해방운동의 정당성을 박탈하려는 시도에 복무했다. 그리고 세계시민주의는 영토적 지배와 정복에 기초한 ‘옛’ 식민 제국주의가 신제국주의로 ‘교대’되는 것을 보장했는데, 신제국주의는 금융적 지배와 상업적 헤게모니, (미주국가기구(OAS, 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등을 통한 미국의 사례가 예나 지금이나 그런 것처럼) ‘집단적 방어’의 조직으로 이어진 ‘인도주의적’ 개입과 중재, 정치적 민주주의의 개인주의적 모델의 메시아적 팽창에 기초한 것이었다. 이 같은 사례들은 분명 민족주의와 세계시민주의 간의, 또는 좀 더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특수주의와 보편주의 간의 관계라는 질문을 단순 대립보다 훨씬 복잡한 항들로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는 또한, 세계시민주의라는 개념이 아직 의미가 있다면, 오늘날 ‘세계시민주의’가 무엇이고 무엇일 수 있는지, 이 경우 그 담지자와 양상들은 무엇이며, 그 실천적 목표들은 무엇인지 새로이 자문하게 만든다. 이 질문들은 [다음과 같은 항들 사이에서] ‘선택’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구별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포함적’ 세계시민주의와 ‘배제적’ 세계시민주의11), 새로운 세계적 자본가 계급이 채택하고 대량으로 확산시킨 문화를 수동적으로 표현하는 ‘일상적’ 세계시민주의와 ‘운동들의 운동’을 능동적으로 표현하는 세계시민주의 ― 세계화에 의한 탈식민화와 냉전의 종식 이래 생겨난 질서(또는 무질서…)에 대한 대안들이 이 운동으로 통합되는 경향이 있다 ― , 그 발전이 (교통과 권력과 심지어 폭력의) ‘네트워크’의 새로운 사회성을 표현하는 세계시민주의와 새로운 세계적 공적 영역의 기획에 형태를 주는 경향이 있는 제도적 세계시민주의, 그리고 보편주의적 전통을 연장하고 예시하는 세계시민주의와 차이들의 소거불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인류 문화를 독특성들의 상호인정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는 세계시민주의, 기타 등등.


오늘날 철학과 정치에 공통적인 지평을 형성하는 이러한 상이한 딜레마들의 지적 배경을 밝히기 위해, 나는 칸트와 맑스의 이름으로 상징되며, 민족 국가 제도와 완전히 동연적인 시민권의 한계를 ‘지양’하는 두 가지 가능한 모델에 조응하는, 특별히 근대적인 철학적 유산에서 재출발하고 싶다.
세계시민주의적 이념―칸트가 이렇게 불렀고, 그는 이것을 ‘이성의 이념’의 원형으로 곧 그것에 따라 사람들이 역사 안에서 인류에 의해 달성된 진보를 실천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할 수 있는 원형으로 만들었다―은 항상 본질적으로 분열되어 있었으며, 그 자체로 갈등의 쟁점이었다12). 이 갈등은 맑스가 말했듯이 ‘대중들에 의한 전유’를 통해, 그것을 ‘물질적 힘’으로 만들려는 시도들을 가로지른다. 이 갈등은 현재의 정세에서 세계시민적 유산을 되찾고 방어하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노력하는 우리 시대의 담론들 안에서 그 어느 때보다 더 가시적이다(본질적인 무언가를 맑스에게 빚지고 있긴 하지만, 칸트적인 세계시민주의의 재활성화 쪽을 좀 더 향하는 데리다(Jacques Derrida)와 하버마스(Jurgen Habermas)의 저작만큼이나 서로 상이한 저작들을 생각하거나, ‘평화’나 ‘공론성’(公論性)과 같은 칸트적 문제들과 일치하는 부분이 없지 않으면서, 맑스적인 정식화들의 유산을 일정한 방식으로 공유하는 네그리(Antonio Negri)와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의 저작만큼이나 서로 상이한 저작들을 생각할 수도 있다.). 칸트와 맑스의 철학을 간략하게 재검토하면서 우리는 앞서 세계시민주의의 ‘유토피아적’ 변이들이라고 불렀던 것에 특징적인 일정한 제한들을 강조하는 것을 기대할 수도 있다.
칸트적 입장에 전형적인 것은 평화라는 문제, 법/권리(droit)와 국가 간의 관계라는 문제, 그리고 ‘공동체’의 도덕적 기초라는 문제들의 밀접한 연관이다. 이 주제들은 특히 유명한 소책자 『영구평화론』13)(1795)에서 설명되지만, 사실 역사 철학과 법 철학에 관한 칸트적인 반성 전체에 걸쳐 있으며, 비판적 절단(‘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의 전후, 그리고 특히 프랑스 혁명이라는 결정적인 정치적 대사건의 전후에 걸쳐 있다. 칸트는 이 사건의 최초 국면을 증언하는데, 이 시기의 특징은 부르주아 공화주의와 인민독재 간의 동요, 또 ‘인권’의 이름을 내건 방어전쟁에서 정복전쟁으로의 이행이다.14)
네 가지 중대한 주제를 여기서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첫째, ‘세계시민적 권리’(문자 그대로 세계의 시민의 권리, Weltburgertum)를 향한 인류 진보의 ‘동력’을 구성하는 것의 표상 속에서, 칸트는 (이성의 우위 아래 인식과 도덕성을 결합시키는) 문화의 전개와 (프랑스어 표현의 고전 용법에서처럼 매우 일반적인 통념으로서, 상업적 활동들을 포함하지만, 또한 관념들과 저작들, 개인들의 이동들에 걸쳐 있는 모든 형태의 교통을 포함하는) 교류(Verkehr)의 전개를 밀접하게 결합시킨다는 사실이다. 칸트는 도시 및 제국의 세계와 결합되어 있는 지혜라는 고대적 이상이, 전형적으로 근대적인 시민사회의 출현 덕분에, 오늘날 역사 속에 진입할 수 있다는 식으로 의견을 제시한다.
둘째, 칸트는 ‘세계시민적 시민권’을 평화와 결합시키는데, 전자는 후자의 목적인 동시에 수단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평화는 ‘실질적’ 평화이며, 이는 적대 행위의 중단, 심지어 조약으로 비준된 중단과도 구별되어야 한다(적대행위의 중단은 세력 관계들이 변화되거나, 또는 변화가 상상될 수 있길 기다리는 것으로, 이것은 전쟁을 재개하도록 국가를 유도해 그들의 이익에 맞도록 선행하는 규칙을 바꾸고, 가장 근본적으로는 서로에 대해 ‘자연상태에 있는’ 개인들처럼 행동하는 국가들이 처해 있는 외재적 관계에 본래적인 ‘세력 균형’을 바꿀 것을 기도하게 한다.). 칸트의 평화는 따라서 실체적이거나 영속적이다. 그것은 사실상 ‘공화주의’ 정치 체제의 본래적인 요청에 상응하는데, 이 정치 체제는 힘이 아니라 에 기초하지만, 국가들의 본성을 변혁하는 대가로 초민족적(supra-national) 수준에서만 실현될 수 있을 뿐이다.
셋째, 칸트는 이러한 변혁이 갈등과 법의 변증법(또는 전쟁과 평화의 변증법)으로부터 경향적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 변증법에 따르면 갈등은 장기적으로 (반사회적인 사회성이라는) 자신의 대립물을 낳게 된다. 여기서 문제는 인류의 도덕적 목적지를 전제하는, 그리고 또한 목적이 단순한 법의 영역을 초월한다고 가정하는 메타정치적 관점이다.
마지막으로 여기서 다음과 같은 점에 유의하는 것이 중요한데, ‘세계시민적 시민권’ 및 그와 분리할 수 없는 평화적 질서(이 둘을 분리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세계의 시민’이 장차 존재하게 되는 것은 시민적 평화가 국가들의 내적 질서에 관여할 뿐만 아니라, ‘공론성’의 요구에 따르는 모든 정치 영역에 관여할 때라고 말하는 것으로 돌아온다.)의 제도적 실현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칸트가 (오늘날 평화와 국제 질서, 집단 안보에 관한 논쟁에서 다시 나오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혼동되어서는 안 되는 두 가지 관념들 사이에서 진화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시기에 그는 세계 국가(또는 국가들의 세계적 ‘연방’)의 가능성의 조건들을 사고하고자 했는데, 세계 국가는 사법적 질서뿐만 아니라 이 질서를 존중하도록 만들 책임을 지는 초민족적 권력이나 권위를 말한다. 『세계시민적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1784)에 나오는 이러한 관념은 인류의 교육 과정이 자신의 모순들의 ‘해결’에 의해 종결되는 것을 표시한다. 이 관념은 혁명적 격변에 앞서, 유럽의 민족 열강들 사이에서 벌어진 왕조적·제국적 전쟁들과 동시대적이다. 두 번째 시기는 프랑스 혁명과 그것이 구 체제 국가들의 동맹과 대결을 개시한 이후로, 여기서 프랑스 혁명은 처음에는 방어적인 위치에 있었지만, 그 후 공공의 안녕과 국민 총동원에 기초한 ‘인민 전쟁’의 발명 덕분에 공세적인 위치에 있게 되었다. 이 때 칸트는 초민족적 국가라는 관념을 포기하고, 주권을 초과하는 일정 수의 ‘기본권’을 포함하는 사법적 규범들의 보편적 체계라는 관념으로 이것을 대체한다. 특히 ‘환대’에 대한 권리, 즉 ‘외국’ 영토로의 개인의 이동과 정착에 대한 권리가 중요하다. 여기서 도덕적 변혁이라는 질문이 제기되는데, 국가들은 개인들의 ‘세계시민적 권리’를 존중하거나 설립할 수 있게 되는 방식으로 이 변혁을 감수해야만(또는 보다 정확히 말해서 스스로에게 부과해야만) 한다(국가들이나 ‘개별 민족들’을 묶는 국제적 권리와는 달리, 세계시민적 권리는 개인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국가들에 부과되어야만 한다.). 이 관념은 그런데 반정립적인 해석들에 열려 있다. ‘세계 시민’이 그 담지자인 보편적 질서가 더 이상 국가나 주권의 모델이 아니라, (옛날 스토아주의의 현자들의 공동체처럼) 본질적으로 도덕적인 원동력을 갖는 공동체의 모델에 기초하여 사고되는 이상, 이 질서는 사법적 모델들에서 영감을 받든지 종교적 모델들에서 영감을 받든지 할 수 있다(국가를 넘어가는 제도라는 불가사의한 가능성을 특징짓기 위해 이 질서가 사법적 모델들과 종교적 모델들의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순환적인 방식으로 진동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포스트민족적이고 포스트식민적인 갈등들에 관한 현재적 논쟁 안에서 그 어느 때보다 더 활발하게 활동 중인) 이 같은 칸트적 표상에 대해, 즉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라는 맑스적 관념을 비교할 수 있는데, 이 관념은 1848년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선포됐고(“만국의 프롤레타리아트여, 단결하라!”), 국제노동자협회의 규약(1864)에서 다시 채택됐으며, (극단적으로 다양한 운명과 함께) 국제적인 사회주의(나중에는 공산주의) 운동의 조직과 활동 안에서 실행된 바로 그것이다.15) 칸트적 사고가 세계시민적 권리와 ‘부르주아’ 공화주의를 결합시키면서 군주제적 원리와 민주주의적 원리에 대해 동등하게 거리를 두는 데 반해, 맑스적인 국제주의는 어떤 의미에서 세계시민적 관념을 새로운 혁명적 ‘보편’ 계급으로 이송할 것을 제안한다. 그 계급의 특수 이익은 (역사에서 이제껏 모든 ‘혁명적’ 계급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에게 유리하게 새로운 지배 형태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착취와 지배 일반을 종식시키며, ‘인민을 위한 인민에 의한’ 정치의 발본적 민주화와 분리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 전위는 프롤레타리아 또는 모든 전통적 소속에서 풀려난 생산자 대중(따라서 그에 상응하는 ‘환상’ 즉 이런저런 민족적, 종교적, 언어적… 공동체의 단일성과 우월성에 대한 집단적 믿음에서 풀려난 생산자 대중)이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국제주의를 유산자 계급의 사회적 지배 및 국가 체계에 대한 비판과 결합시키며,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주목할 만한 결과를 포함한다.
첫째, ‘국제주의’가 된 세계시민주의는 더 이상 역사 속에서 실현될 것이라고 추정되는 경향이나 규제적 이념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지배와 권력 체계에 맞선 실제적 투쟁의 구호가 되는데, (다수자) 계급의 현재 상황과 물질적 이익에 뿌리박고 의식과 조직으로 구성되는 그 구호는 경계선들의 정당성과 안정성을 의문시한다. 이 같은 실천적 투쟁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팽창의 모순 자체 속에 단단히 묶여 있으며, 자신의 방식으로 사회화와 세계화의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이지만, 지배와 주권의 구조들과 충돌한다. 이 투쟁이 기성 구조의 방어와 영속적으로 대결해야만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국제주의는 따라서 엄밀하게 말해 평화주의가 아니다. 국제주의는 아주 정확하게 ‘투쟁’을, 자본주의가 전쟁을 영속화하고 활용하는 형태에 대립시킨다(유명한 경구에 나오는 것처럼, “큰 구름이 뇌우를 몰고 다니듯, 자본주의는 자신 안에 전쟁을 품고 있다.”). 이러한 관념은, 자본주의의 발전이 자본주의의 ‘최후 단계’를 이루는 제국주의와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보일 때, 이율배반적인 정식화로까지 밀어붙여질 것이다. 레닌과 제2 인터내셔널의 좌익 반대파는 민족적 사회주의 정당이 지도적 부르주아지들을 추종하고, 1914년 ‘위대한 애국 전쟁’의 ‘신성 동맹’을 수용하는 것에 대응하여 “제국주의 전쟁의 혁명적 내전으로의 전화”라는 구호를 내지를 것이고, 이 구호는 소비에트 혁명 이후 사회주의 운동 조직이 맞이하는 새로운 국면의 거점이 될 것이다. 다른 편에서 ‘민족적’ 사회주의 운동들은 전쟁을 ‘무법’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부분적으로 칸트적 전망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또한 미국적 진보주의에서도 영감을 받은) 집단적 안보와 국제 법 조직의 창설을 지지해야 한다는 확신을 전쟁의 살인적인 경험에서 이끌어낼 것이다. 국제연맹, 켈로그-브리앙 조약, 그 후에는 국제연합(UN)이 그것이다.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가 스스로를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평화 추구의 상관물이 아니라 투쟁의 실천으로 제시한다는 사실 때문에 또한 시민권과 국제주의의 관계가 전환된다. 시민권 관념은 국제주의에서 빠져 있지 않을 뿐더러, 어떤 면에서는 실천적 지평 위에, 신분이 아니라 ‘활동’으로서 재정초된다. 국제주의는 사실상 경계들을 가로지르는 전투적 집단들을 형성하는 개인들의 사회화 양식으로 나타난다(이 집단들은 온갖 종류의 조직 양태에 따라 사고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주의적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당 장치들은 모든 수단들을 동원해 그 집단들의 자발성을 통제하고 중립화하려고 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한 편 시민권과 국제주의의 관계는 하나의 역설을 포함한다. 이 관계는 집단적인 시민적(civique) 활동을 미래의 이상이 아니라 현재의 현실로 만들면서도 이 활동을 ‘[공산주의로의] 이행기 속에’ 기입하며, 심지어 극한에서는 (지배적 민족주의에 대한 ‘전복’이나 ‘저항’의 문화라는) 집단적인 시민적 활동을 가능케 하는 고유한 조건들을 폐지하려고 노력해야만 한다고 제안한다.16)
이 특징들은 오늘날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유산이 갖는 양가성을 이해하는 데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한 편에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현실 사회주의’(또는 당과 국가의 공산주의)가 가장 신속하게 파묻고, 20세기 역사에 걸쳐 가장 철저하게 왜곡시킨 맑스주의 전통의 측면인데, 현실 사회주의는 국제주의를 헤게모니적, 심지어 그 자체 (하위적인 방식의) 제국주의적 민족 정치에 봉사하게 만들었다. 이는 그 관념의 명예를 극도로 실추시켰다. 다른 한 편에서 이 관념은 공산주의의 비극적 경험 후에도 경향적으로 살아남아 새로운 저항 운동들의 실천 안에서 해방의 희망을 품게 한다(데리다는 이것을 ‘맑스의 유령들’이라고 불렀고, ‘새로운 인터내셔널’이라는 관념과 명시적으로 결합시켰다.).17)


나는 이제 아주 간략하게 ‘세계시민적 시민권’의 칸트적 모델과 맑스적 모델의 한계들을 환기시키려 하는데, (세계화의 갈등들이라는) 현재적 정세는 이 한계들을 다소 뚜렷하게 재출현시킨다. 이들 제한 각각은 따라서 ‘세계화’의 정세 속에서 ― 선재하는 해법 없이 ― 다시 취해야 하는 열린 문제들의 집합과 결합되어야만 한다. 나는 (완전히 독립적이지는 않은) 세 가지 문제들을 고려하고자 한다.
첫째, 칸트적인 관념과 맑스적인 관념은 근원적으로 ‘자유주의적’이다. 이는 이 견해들이 시민사회와 그 자생적 발전에 특권을 준다는 의미에서인데, 이 점은 (칸트)과 정치적 실천(맑스)에 결정적 중요성이 부여될 때조차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열쇠가 되는 것은 제도라는 용어이다. 칸트와 맑스의 관념들 자체는 공적 인격이나 행위와 사적 인격이나 행위 사이의 ‘로마’법적 대립에서 유래하고, 민족 국가의 발전이 일반화한 시민사회와 정치 공동체 사이의 전통적 구별을 (칸트처럼) 지양하거나, (맑스처럼) 문제삼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들은 어떻게 ‘정치적인 것’의 제도가 국가 외부에서, 국가적 제도로서가 아닌 방식으로 인식되고 구축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미결 상태로 덮어 둔다.
둘째, 칸트적인 관념과 맑스적인 관념은 역사에 대한 ‘유럽중심적’ 전망과 분리할 수 없다. 그들의 보편주의는 따라서 근원적으로 모순적이다. 이 때 주의 깊은 논의가 필요한데, 특히 이론적 ‘유럽중심주의’를 제국주의 전제의 반복으로 단순하게 동일시하지 않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가야트리 차크라보티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이 중심, 양극성, 그리고 동질적 질서의 표상과 분리할 수 없는 ‘세계’(monde)라는 통념을 ‘플래닛’(planete)라는 통념으로 대체하자고 제안할 수 있었던18) 데에는 이유가 없지 않다19). 나는 『우리, 유럽의 시민들?』(Nous, citoyens d'Europe?)에서 정치 공동체들은 우연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헤르만 판 휜스테른(Herman van Gunsteren)의 테제를 논하는 것을 계기로 이 착상을 다시 취한 바 있다(모든 정치 공동체들은 그의 용어법에서는 운명 공동체들(communities of fate)인데, 이는 자연적이거나 숙명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역사에 의해 ‘내던져진’ 서로 다른 출신지의 개인들과 집단들을 결합시킨다.). 문제는 유일무이한 문명이라는 특성, 따라서 유일무이한 보편주의의 정식화와 유일무이한 진보의 시각에 ‘중심을 둔’ 세계사라는 관념을 지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비판 자체는 충분치 않다. (세계의 통일이나 세계 경계들의 상대화로 나타나는) 세계의 세계화가 또한 (칸트가 문화에, 맑스가 자본주의에 부여한) 전진적 동질화를 함축한다는 관념을 문제 삼아야만 한다. 결국 오늘과 내일의 세계에서의 교통은 어제의 세계에서보다 더 쉽지 않을 것이다. 차이들은 폐지되지 않았으며, 정반대로 더욱 가시적이 되고 이 때문에 더 갈등적이 된다.20)
셋째, 칸트적인 관념과 맑스적인 관념은 근원적으로 ‘세속적’이거나,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역사와 정치의 ‘세속화’라는 사회학적인(그리고 더 근원적으로는 인간학적인) 전제와 분리할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은 합리주의의 아주 특수한 형태를 이룬다. 이는 우선 부정적으로는 그것이 ― 고전적인 사회학과 역사 철학의 모든 전통처럼 ― 문명의 진보를 세계의 ‘세속화’ 또는 ‘탈주술화’(desenchantement)로의 불가항력적인 경향으로 여긴다는 것(지나치는 김에 말해 두자면, 이것은 베버(Max Weber)의 관념이 전혀 아니었다.)을 의미한다. 이 경향은 반드시 종교적 신앙과 믿음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법과 정치의 정교분리적 제도의 가능성, ‘교회와 국가의 분리’의 가능성을 신중하게 대하는 방식으로, 종교적 신앙과 믿음을 ‘사적’ 영역 속에 설치하는 것이었다. 칸트에게 거기서 문제는 종교를 그것의 고유한 ‘한계’ 내로 환원하는, 즉 종교에 대한 도덕적 해석을 주는, 이성의 진보의 어떤 귀결이다. 맑스에게 문제는 세계와 인간의 이상적 표상들을 ‘모독하고’, 그에 상응하는 전통적인 공동체적 관계들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의 보편적 발전의 어떤 귀결이다(다른 곳에서 맑스가, ‘상품의 물신주의’와 정치의 관념론을 다루면서, 근대 사회의 사회적 관계들이 그 자체로 ‘신학적’ 표상들을 띠고 있다고 설명한다손 치더라도 말이다.). 긍정적으로 볼 때 이는 칸트와 맑스가 공히 계몽의 전통에 따라 정치를 반성의 ‘비판적’ 판단과 숙고된 행동의 결합으로 상상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주체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의식’하거나 세계를 변혁하기 위해 이 상황을 ‘문제화’하는 가능성이 나올 것이다. 칸트와 맑스에게 공히 세계―인간의 변혁적 행동이 ‘세계화’되는―는 점점 더 ‘투명한’ 세계이기도 하다. 이는 ‘동일성들’이라는 질문을 실천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중화’하는 것으로 귀착된다…. 또는 이는 다시 현대 세계가 ‘성전’(聖戰)의 진지가 된다는 관념을 배제하는 것으로 귀착되는데, 그러한 진지 속에서 신학적 정념들은 ― 이것들은 적을 경쟁자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적이며, 결국 ‘신의 적’이나 절대적인 적, 악의 체현으로 표상하는 것과 연관된다 ― 신학적 ‘근본주의’, ‘신의 보복’을 통해서든, 뵈겔린(Eric Herman Wilhelm Voegelin)적 의미에서 ‘세속적 종교’의 출현을 통해서든, 총력전에 자신을 맡길 방도를 찾아낸다. ― 그리고 국제 질서에 관한 슈미트(Carl Schmitt)의 테제들에 반드시 동조하지 않더라도 ‘인권의 종교’나 ‘인도주의적 종교’가 신학적 정념들 중 하나가 아닌지 자문할 수 있다. 왜냐하면 20세기 동안 우리는 실로 19세기를 특징지었던 ‘새로운 종교들’, 즉 인종의 종교나 신-이교도(neo-paienne)의 종교뿐만 아니라, 인류의 종교나 신(新)-기독교, 실증주의의 종교의 정초라는 기획이 실현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칸트와 맑스의 문헌들과의 엄밀한 토론 속에서 종교적 형태들과 경제적 형태들 사이의 관계에 관해 베버가 제기한 ‘세계의 탈주술화’라는 질문을 심화시키는 정치의 ‘탈주술화’라는 질문을 다시 취해야 한다.
이해할 테지만, 완전히 예비적인 지위를 갖는 이 같은 일반적 언급들은, 칸트적 세계시민주의와 맑스적 국제주의가 우리에게 물려준 전통의 강점들과 그 한계들을 이중적으로 환기함으로써 양자의 전제들을 완전히 탈안정화하고 그 효력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정세 속에서 이들의 정치적 실현의 내용과 조건들을 재사고하도록 우리를 자극하는 것 외에 어떤 다른 목적도 갖지 않는다.

1)이 발표문은 「세계의 시민권: 유토피아의 종말?」이라는 제목 하에 미국 뉴저지 럿거스(Rutgers) 대학 현대 문화 비판 분석 센터(Center for the Critical Analysis of Contemporary Culture)에서 2004년 3월 24일 개최된 강연의 1부를 수정한 것이다.본문으로

2)[역주] 파리 14구 몽수리 공원과 파리 외곽의 경계에 위치한 국제 대학기숙사촌. 미국과 중국, 캄보디아와 말레이시아 등 세계 36개국 기숙사가 모여 있다.본문으로

3)‘프랑스인으로 선포되었다’는 표현은 국민공회의 법령을 가리키는 것인데, 당시 국민공회는 프랑스 혁명에 참여하러 온 토마스 페인, 아나르카르씨스 클로츠(Anarcharsis Cloots), 그리고 몇몇 다른 ‘외국인들’에게 프랑스 시민권을 수여했는데, 이들은 프랑스 혁명에서 미국 혁명의 뒤를 이은 인류 해방의 거대한 과정의 새로운 단계를 보았고, 특히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와 같은 적수에 맞서 혁명을 웅변적으로 옹호했다. cf. Thomas Paine, Rights of Man, Edited with an Introduction by Henry Collins, Penguin Books 1969.[국역: 필맥, 2004]본문으로

4)라틴 아메리카의 에스파냐 식민지 독립의 영웅이며 불로뉴쉬르메르에서 사망한 호세 데 산 마르틴(Jose de San Martin)의 쌍둥이 동상은 항상 제자리에 있다. 산 도밍고(오늘날의 아이티) 노예 해방의 지도자이자 수장이며, 아메리카 대륙의 연쇄적 자유 봉기에서 세 번째로 꼽을 만한 인물인 투생 루베르튀르(Toussaint Louverture)의 경우, 프랑스 정부도 시장도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본문으로

5)Cf. Bruce Robbins, Feeling Global, Internationalism in Distress, New York University Press 1999.본문으로

6)E. Said, Orientalism, New Paperback Edition, Vintage Books 1979, p. ⅩⅩⅧ.[국역: 교보문고, 2007]본문으로

7)특히 오스왈드 스펭글러(Oswald Spengler)가 사용한 스토아주의적 기원의 표현.본문으로

8)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은 특히 탈영토화된 ‘상상적 공동체’(‘원거리 민족주의’(Long Distance Nationalism))의 재구성에 관심을 가졌다. (cf. The Spectre of Comparison. Naionalism, Southeast Asia and the World, Verso 1998.) 이 같은 문제설정을 유럽의 현대적 인종주의의 발전에 적용시킨 것을 보려면 Esther Benbassa, La Republique face a ses minorites: les Juifs hier, les Musulmans aujourd'hui, Mille et Une Nuits (A. Fayard), Paris 2004.본문으로

9)John Ralston Saul, The Collapse of Globalism and the Rebirth of Nationalism, Harper's Magazine, March 2004.본문으로

10)(이제는 유명해진 그의 저작 『문명의 충돌』에서 전개된) 헌팅턴의 모델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1940년대에 칼 슈미트(Carl Schmitt)가 정교화한 공영권(Grossraume) 이론에서 영감을 얻는데, 이 이론은 (‘신(新)먼로주의’라는) 독일의 유럽-지중해 헤게모니 요구를 정당화하고, 그가 전통적인 민족 국가 체계의 위기로 보는 집단안보협약(국제연맹, 국제연합)에 대한 제도적 대안을 제안하기 위한 것이다. Cf. E. Balibar, Le Choc des civilisations et Carl Schmitt: une coincidence?, in L'Europe, l'Amerique, La Guerre. Reflexions sur la mediation europeenne, Editions La Decouverte, Paris, 2003.본문으로

11)Cf. Amanda Anderson, Cosmopolitanism, Universalism, and the Divided Legacies of Moderntiy, in Bruce Robbins and Pheng Cheah (eds), Cosmopolitics. Thinking and Feeling beyond the Nation,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8, p. 265~289.본문으로

12)이는 세계시민적 이념의 고대적 기원인 헬레니즘과 로마 시대에 이미 적용되었다. cf. Giuseppe Giliberti, Cosmopolis. Politica e diritto nella tradizione cinico-stoica, European Commission (D.G. Education and Culture), Rete Tematica, Una filosofia per l'Europa, Pesaro 2002, 그리고 Etienne Tassin의 위대한 최근작 Un monde commun. Pour une cosmopolitique des conflits, Ed. du Seuil 2003.본문으로

13)칸트의 소책자 제목은 가공할 언어 유희를 내포하는데, 왜냐하면 ‘영구 평화’나 ‘영면’(永眠)은 일상어에서 묘지의 문구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논평 중에서 특히 오트프리트 회페(Otfried Hoffe) 편, Immanuel Kant, Zum ewigen Frieden, Klassiker Auslegen, Akademie Verlag, 1995.본문으로

14)1790년 5월 22일, 혁명으로 생겨난 국민의회는 세계 평화를 장엄하게 선언했고 모든 정복 전쟁을 부인했다. cf. J. Godechot, La grande nation. L'expansion revolutionnaire de la France dans le monde de 1789 a 1799, 2e ed. Paris: Aubier, 2004 et Fl. Gauthier, Triomphe et mort du droit naturel en Revolution, 1789, 1795, 1802, Paris: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1992.본문으로

15)칸트적 테제들(이 테제 자체는, 유럽 공법 체계(Jus Publicum Europaeum) 틀 안에 있는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설립된 권력 정치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영구 평화’에 관해 고전 시대에 벌어진 거대한 논쟁에서 유래한 것이다.)과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창설자인 맑스와 엥엘스의 정식화 사이에 다른 기획이 삽입되는데, 특히 생시몽(Saint-Simon)의 기획이 그것이다(이는 낡은 국가들과 군국주의 제국들의 신성동맹에 대항하여 ‘산업’ 발전의 틀 안에서 민족들을 연합시키는 유럽합중국이다.).본문으로

16)중요한 점은 맑스에게 있어 국제주의는 공산주의(즉 목적의 지배의 맑스적 판본)이 아니라, 공산주의로의 ‘이행’ 또는 공산주의로 인도하는 정치 투쟁이라는 점이다(다른 의미에서는, ‘공산주의’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정확히 무한한 과정, 현행적 정치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두 사실들을 접근시키면 더욱 흥미로워진다. a)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맑스는 ‘총체성의 단계에 도달한 생산력’의 ‘세계시민적’이거나 차라리 ‘세계경제적’ 구조를 서술했는데, 이는 생산력의 집단적 ‘재전유’에 의해 공산주의로 전환될 수 있다. 1847년 『공산주의자 선언』이 바꾸게 되는 것은 바로 정치적 계기의 삽입인데, 이는 국제주의를 이 ‘재전유’의 조건으로 만들어낸다(『선언』에서 소유 변혁을 실현하는 임무를 민족적 틀 내에서의 ‘민주주의의 쟁취’에 맡기기 때문에, 이 민주주의가 획득된 다음 특정한 특수 이익을 방어하는 것으로 전환되는 것을 막는 구성적이거나 봉기적 요소가 국제주의라고까지 생각할 수 있다.). b) 『정치경제학 비판』과 『자본』은 보편적 상품 공화국 안에서 (칸트적) ‘세계시민주의’의 역사적 현실을 발견한다.본문으로

17)J. Derrida, Spectres de Marx. L'etat de la dette, le travail de deuil et la nouvelle Internationale, Galilee 1993.본문으로

18)Imperative zur Neuerfindung des Planeten/Imperatives to Re-Imagine the Planet, Edition Passagen, Frankfurt am Main 1999. [역주] 여기서 스피박이 특히 문제삼는 것은 세계를 ‘지구’(地球, globe)의 이미지, 즉 분명한 중심을 갖는 동심원적 위계 구조로 보는 사고방식인 것 같다. 이 같은 사고방식은 오늘날의 세계화 ― 이 맥락에서는 ‘지구화’(globalization)라고 옮기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 즉 중심의 ‘지구적 표준’(global standard)을 (반)주변들로 확산시키고, 이로써 (반)주변들을 한층 더 종속시키거나 내부적으로 배제하는 새로운 제국주의의 근저에도 깔려 있거니와, 'planet'이라는 신조어는 이 같은 지구적 표상과의 분명한 대비를 통해 세계 안의 복합성과 불균등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planet'을 ‘지구’라고 번역할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행성’이라고 새기는 것도 저자의 진의를 살리기 어려워 보인다. 적당한 대안을 떠올리지 못해 여기서는 부득이하게 'planet'을 ‘플래닛’로 번역하고 원어를 병기한다.본문으로

19)Against Rac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0에서 폴 길로이(Paul Gilroy)의 경우, 세계시민적 관념과 세계의 ‘인종학적’ 표상 사이에 ‘은밀한 관계’가 있으며, 칸트가 문화 발전의 시각에서 ‘인종’의 지리학적 분배의 ‘목적론적’ 의미작용을 정의하는 방식이 그 증거라는 주장을 제시한다. 칸트에게서 인종 개념이라는 질문에 관해서는 이제부터 Raphael Lagier, Les races humaines selon Kant, PUF 2004의 연구를 읽을 수 있다.본문으로

1)세계시민주의와 국제주의는 이런 식의 비판을 얼마간 완전하게 적용할 수 있는 변이들을 분명히 포함하고 있다. (제2 인터내셔널, 그 후에는 코민테른 등) 사회주의․공산주의 전통에서는 ‘동방 민족들’의 반제국주의 투쟁을 인정함으로써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에 착수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거대한 질문은 이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보편주의적 사명을 통합하는 유럽 외적 대항모델이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반둥의 ‘비동맹’ 운동 이래의 ‘제3 세계주의’가 제기한 문제로, 이들은 두 ‘진영’의 영향력이 미치는 영역들로 세계를 나누는 것을 다시 한 번 문제삼으려 했고, 그 흔적은 오늘날 ‘대안세계화’ 운동 안에서 아주 잘 나타난다.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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