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7.9.77호

사유화에 맞서 투쟁하는 아시아 민중

:'필수서비스 사유화에 관한 아시아노동자대회와 전략회의'참가보고

정영섭 | 노동국장
'필수에너지 사유화에 대한 아시아 노동자대회' 모습. 이번 회의에서는 아시아 지역에서 물과 에너지 사유화 현황을 분석하고 이에 맞서는 전략과 실천계획을 논의했다. 사진 앞쪽은 한국 참가자들.


배경

사유화는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이미 지난 IMF 위기 직후부터 정부는 외환위기와 재정위기를 빌미로 공공부문에서 돈 될 만한 공기업을 앞뒤 가리지 않고 팔아치워 왔다. 그러나 공공부문 사유화는 소유권의 이전을 넘어, 민중이 값싸고 질 좋은 공공서비스에 접근하여 이를 누릴 권리를 제한, 파괴하는 과정이었다. 통신부문은 민간자본의 수중으로 넘어간 지 오래며, 그 결과 사람들은 높은 통신요금과 잦은 사고에 시달리고 있다. 전력부문은 사유화 시도가 발전노동자들의 파업투쟁에 부딪쳐 제동이 걸렸으나 최근 다시 주식상장 방식으로 사유화가 추진되고 있다. 그 이외에도 철도, 상수도 등이 사유화 단계를 밟고 있다. 특히 상수도는 최근 정부가 ‘물산업 육성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긴급한 이슈로 떠올랐다. 먹는 물까지 민간자본의 손에 넘기는 것은 많은 해외 사례에서 드러난 것처럼 요금 폭등과 수질저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2007년 7월 8일~12일 태국에서는 ‘필수서비스(물과 전력) 사유화에 관한 아시아 노동자대회와 전략회의’가 열렸다. 아시아 전역에서 인간 생존의 기본 권리인 물과 전력의 사유화가 진행되는 것에 대해 현황을 분석하고 공동의 전략과 운동계획을 마련하기 위한 회의였다. 이 회의는 <주빌리사우스-아시아태평양(JS-APMDD)> 주최로 개최되었다. <주빌리사우스>는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지역에서 외채에 거부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국제적 연대운동체이며, 제국주의 지배와 외채, 국제금융기구,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등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주빌리사우스 아시아태평양>은 특히 IMF, 세계은행과 WTO 등 국제금융기구들이 강제하고 있는 공공부문 사유화에 중점을 두고 아시아 지역의 반사유화 노동자 연대를 구축함으로써 각국에서 노동자들을 투쟁의 핵심 주체로 세우고자 한다. 국내에서 전국공무원노조(이하 공무원노조)와 공공연맹은 2004년부터 을 통해 이와 연대해왔다. 특히 ‘물 사유화 관련 아시아지역 전략회의’와 토론회 등 여러 회의 및 행사에 참여하였고, 2005년 6월에는 ‘주빌리사우스-아시아태평양 회의 및 물 사유화 국제 워크샵’을 <국민행동>, 공공연맹과 공무원노조가 서울에서 직접 주관하기도 하였다.1) 이번 회의에 한국에서는 공공운수연맹, 공무원노조, <물 사유화 저지 공동행동>,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등에서 7명의 활동가들이 참여하였다. 2)한국 이외에도 인도, 스리랑카, 파키스탄, 네팔,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홍콩, 말레이시아 등에서 노조활동가들과 사회운동 활동가 80여 명이 참가하였다.

아시아 - 부족한 공공서비스, 급격한 사유화

회의에서는 우선 아시아 각국의 사유화 현황과 사례가 발표되었다. 전반적으로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등 아시아 각국에서는 전력과 상수도 서비스 공급 자체가 부실한 상황에서 사유화가 추진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전력과 상수도 보급률이 90% 이상이지만 아시아 나라들은 보급률이 채 50%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나라들에서 급격한 사유화의 추진은 대부분 천문학적인 요금인상을 초래했고, 대다수 민중들의 생활비의 많은 부분을 요금으로 지출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사유화는 여성과 아동들을 식수를 길어오는 노동으로 내몰았고, 비싼 전기요금으로 인해 기본 가전제품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해서 결과적으로 여성의 가사노동 부담만 늘려 놓았다. 예컨대 필리핀의 경우 1997년 마닐라 상하수도가 민영화되어 1100만 인구의 일상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사유화 10년 후 일부 지역에서는 수도요금이 5배 올랐고, 7배 오른 지역도 있다. 마닐라의 여성들은 밤늦게 물을 저장하기 위해(수압이 약하기도 하고 물을 천천히 받으면 요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힘든 노동력을 투여하고 있다. 전기요금은 최저임금의 10.4%에 해당한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빈곤층이 소득의 15%를 전기요금으로 내고 있고, 현재 전기 공급이 되지 않는 가구가 43%이다. 이렇듯 공급 자체가 부족한 상황에서 진행된 급격한 사유화는 공공서비스에 대한 접근 자체를 제한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윤만을 목표로 하는 초국적 물기업들은 수도관을 새로 깔거나 유지, 보수하는데 투자를 게을리 해서 애초 약속한 목표치들을 지키지 않았다. 결국 사유화는 요금의 지속적인 증가를 가져왔고 빈곤층과 지역공동체가 수도와 전력서비스에 접근하기 힘들게 하였으며 수질 악화로 인한 질병문제까지 발생시켰다. 또한 수익이 나지 않는 지역에 대해서는 서비스 공급을 확대하지 않았다. 사유화 과정에서 지역사회가 삶의 터전을 잃기도 하고 환경이 파괴되기도 했다. 계약상의 내용보다 늘어나는 비용 청구 때문에 정부 부채는 오히려 증가했다. 따라서 이러한 아시아 나라들의 긴급한 과제는 사유화를 막고 공공서비스를 충분히 보급하는 것이다.

국제금융기구 - 사유화의 주범

사유화를 주도하는 것은 주로 국제금융기구들이다. 세계은행, IMF, WTO, ADB(아시아개발은행) 등이 사유화에 자금을 대거나 정책을 강제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수출입신용기관도 가세하고 있다.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 등은 재정 지원, 전문성, 위험 보장 등을 미끼로 하여 사유화에 자금을 지원하고 그 돈은 결국 민간자본에 흘러들어 간다.
인도에서는 세계은행이 국가의 경제발전전략에 개입하여 구조조정이 확대되었고 1990년대 후반부터는 물 사유화가 더 늘어났다. 또한 금융자본 유치를 위해 부채-자산 전환, 주식전환 인정 등이 이루어졌다. 사유화로 인해서 요금인상, 공급부족, 약속했던 투자의 부진 등이 발생했지만 책임지지 않았다. 아시아판 세계은행인 ADB는 아시아 지역에서 개발자금 지원의 조건으로 사유화와 구조조정 정책을 강요한다. 이미 필리핀, 네팔 등지에서 ADB는 사유화에 자금을 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초국적 물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통상 ECA(Export Credit Agency)라 불리는 수출입신용기관들도 사유화의 행위자들이다. 한국으로 따지자면 수출입은행이나 수출보험공사가 이에 해당하는데, 이들은 투자와 무역을 촉진한다는 미명하에 수출업자나 투자자들의 리스크를 줄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예컨대 일본 자본이 아시아 나라들에 진출하여 사유화를 추진하고자 할 때, 이에 대해 자금을 지원하거나 위험 보장을 해주는 방식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ECA가 가장 자금이 풍부하며 연간 8천억 달러를 지원한다고 한다.
이러한 국제금융기구들은 투자와 무역의 자유화를 주도하면서 자본의 이윤추구에 유리한 환경을 끊임없이 창출하기 위해 보고서를 내고, 자금을 지원하고 각국 정부를 압박한다. 그러나 이들이 주도한 지난 10여 년간의 사유화 추진은 각국에서 민중의 저항에 부딪치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도 국제금융기구에 대한 투쟁이 주요한 투쟁 영역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2007년 10월 14~21일은 ‘사유화와 국제금융기구에 반대하는 국제 행동주간’으로, 10월 17일은 ‘사유화 반대 노동자 국제 행동의 날’로 결의되었다. 이 시기가 세계은행, IMF 등의 연차 총회가 열리는 기간이라는 것은 국제금융기구에 대한 반대투쟁이 핵심에 놓여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필수서비스 사유화에 반대하는 아시아 민중의 투쟁

사유화가 초래하는 재앙에 맞서는 투쟁은 나라별로 다양한 수준에서 전개되고 있지만 사유화에 대한 민중들의 거부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인도에서는 전력 사유화 법안 폐기를 걸고 2006년에 전국적 파업이 진행되었고 지속적인 저항운동을 벌이고 있다. 전력 분할 사유화, 세계은행의 개입 반대, 요금인상 반대 투쟁 등 사유화와 관련한 많은 이슈들에 대해 활발한 투쟁이 인도에서 벌어지고 있다. 네팔에서도 필수서비스 사유화와 전력 분할 법안에 맞서 노동조합과 사회운동이 연대하여 운동을 벌이고 있다. 방글라데시 역시 사기업의 전력산업 진출을 막는 투쟁을 하고 있다. 파키스탄에서는 두 개의 전력 공기업 가운데 하나는 사유화되었는데 전력요금 인상에 대한 대중 폭동이 일어날 만큼 재국유화 요구가 높다. 9개의 정당, 좌파조직, 노동조합 등이 함께하여 사유화 반대운동을 하면서 노동자 통제를 요구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20여 개의 물 사유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데, 지방정부가 사유화를 추진하지 않도록 조례를 제정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마닐라 상수도를 공공소유로 되돌리자는 운동과 함께 현재 사유화된 기업에서 추진되는 아웃소싱과 계약직화 반대 운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운동들은 사유화에 대한 반대와 더불어 필수서비스를 인권으로 규정하며 민중의 권리 증진, 국제금융기구와 초국적 자본에 대한 반대를 공통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투쟁전략에 있어서도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공동체, 사회운동 단체 등과 광범위한 동맹을 통해 효과적인 운동을 추구하며, 사유화의 파괴적인 효과를 대중들에게 알려서 여론을 형성하고 노동자와 시민의 개입능력을 확대하고자 한다. 나아가 국내에서 지역적, 전국적 연대를 넘어 국제적인 수준에서 연대를 꾀하고 있다.

자연자원과 필수서비스에 대한 민중의 권리 캠페인

이번 회의의 결론 격으로 논의된 것은 향후 아시아 지역에서 사유화에 반대하는 국제적인 연대운동을 어떠한 조직적인 틀로 전개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논의를 통해 결정된 반사유화 운동 네트워크의 명칭은 <자연자원과 필수서비스에 대한 민중의 권리 캠페인(Campaign for People's Rights to Natural Resources and Essential Services)>이다. 사유화 반대를 명칭에 넣지 않은 이유는 사유화 반대를 넘어 적극적으로 필수서비스에 대한 민중의 권리를 주장하고 확대하자는 의미이다. 이 네트워크의 운영위원회는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동아시아에서 각각 2명씩(물, 전력 1명씩)으로 구성하기로 하였으며 동아시아는 한국이 맡기로 하였다. 또한 연구그룹과 이주노동자 단체도 운영위원회 성원이 되기로 하였다. 물론 이러한 네트워크의 결성이 곧바로 국제적인 반사유화 연대운동의 활성화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각국에서 사유화 반대 운동을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관건적이며 그 과정에서 국제연대의 필요성도 인식하게 되고 연대를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운동에 참여하는 주체들이 국제적인 시야에서 정세를 조망하고 국내 운동이 어떻게 국제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 일부인지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기반 위에서 ‘국제 공동행동의 날’과 같은 실천적 연대가 더욱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12월에 일본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물 포럼’ 역시 연대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회의장 모습. 각종 플랭카드와 노동조합 깃발이 걸려 있다. 가운데 걸려있는 것이 한국 참가단이 준비해간 "물과 에너지는 인권이다" 플랭카드.


당면 과제 - 물 사유화 저지

한국 정부는 7월에 ‘물산업 육성 5개년 세부 추진계획’을 발표하였다. 지난 수년 간 추진되어 온 물 사유화 정책이 실제 계획으로 드러난 것이다. 지자체가 맡고 있는 상하수도사업을 30여개 유역권으로 묶어 광역화하고, 2012년까지 공사화, 민영화 또는 위탁관리 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를 2008년에 법제화하겠다고 한다. 이미 164개 지자체 가운데 33개가 수자원공사와 상수도 민간위탁 기본협약을 맺었고, 9개는 위탁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물산업 육성이라는 미명하에 상수도를 자본에 넘기려는 계획을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물을 ‘공공재’가 아닌 ‘경제재’로, ‘공공서비스’가 아닌 ‘상업서비스’라고 규정하면서 물을 이윤논리로 접근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공공이 책임지던 국내 상수도를 자본의 새로운 이윤 창출 분야로 탈바꿈시키려는 사유화 전략이다. 정부는 상수도의 영세성, 과잉 중복투자, 농어촌의 저조한 보급률, 수질에 대한 불신, 지역별 요금 불균등, 열악한 지자체 재정 등을 이유로 들고 있으나 그것은 공공의 책임성 강화와 투자 확대, 노동자와 시민의 통제 강화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자본의 손에 넘김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해외에서 무수한 사유화 사례가 민중의 피해로 드러났듯이 사유화는 대안이 아니다. 특히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시대에 금융의 논리로 움직이는 자본은 철저한 수익성 추구, 주주이익 극대화, 구조조정과 외주화 등을 앞세우면서 공적 서비스를 후퇴시킬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인천상수도를 초국적 물기업 ‘베올리아’에 위탁하기 위한 양해각서가 작년에 체결되었고 그에 따라 연구용역까지 진행된 것을 고려하면 초국적 자본에 상수도를 넘기는 것도 멀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우리는 당면한 물 사유화 공세를 막아내는 운동을 시급하게 전개해야 한다. 이번 국제회의에서 확인하였듯이 물 사유화는 아시아 지역, 나아가 세계적인 문제이며 이에 저항하는 민중들의 투쟁도 그러하다. <물 사유화 저지 공동행동>을 중심으로, 국제적인 반사유화 운동과 연대하면서 사유화를 반드시 막아내고 필수서비스에 대한 민중의 권리를 쟁취하자.


1)사회진보연대 홈페이지 자료실 784, 785번 자료 참고.본문으로

2)
회의보고서는 사회진보연대 홈페이지 자료실 1100번 자료 참고.본문으로
주제어
경제 노동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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