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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8-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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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대란과 박정희의 유산

이수강 | 자유기고가
의약분업의 시행방식에 반발하여 병원이 다시 문을 닫는다고 한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역사상 처음이라는 지난 6월의 병원폐업과 그 후의 사태 전개를 되돌아보면, 새삼 '박정희가 이 땅에 남긴 유산의 지속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박정희'란 물론 개인 박정희라기보다는, 그가 중심에 서 있었고 또 그와 분리되어 생각될 수 없는 이른바 한국적 근대화, 개발독재체제의 인격화된 표현이다. 그럼 어떤 점에서?


유산 하나: 의료 저수가 정책과 '소득원 자체 개발'

먼저, 의사들은 왜 그렇게 '의약품 및 주사약 조제권 소재'에 민감하고 치열하게 반응하고 있는가?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데 말이다. 한마디로 그게 이제까지 주요 소득원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이러한 '밥그릇 문제의 공공연화'에 대해선 뒤에서 이야기하자). 우째 이런 일이? 여기서 박정희의 유산을 발견할 수 있다.
박정희 정권은 저곡가(低穀價) 정책으로 도시 중하층민을 다독거렸듯이, 의료 저수가(低酬價) 정책으로 '복지정책 제로 상태'에 처한 국민들의 불만을 무마하려 했으며, 그것이 이후 수십년간의 '의료보험수가 동결정책'으로 유지되어온 것이다. 그러한 기본생활에 관련된 것마저도 전적으로 '시장'에 내맡긴다면 어떤 치명적인 저항이 터져나올지 모르는 일이었을 테니까. 그것이 박정희식 사회보장제도(?)였다.

{한겨레21} 대담에 실린 원진녹색병원 김록호 원장의 말.

"의료보장 면에서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의사들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했고, 그런 가운데 값싼 서비스로 국민들을 만족시키는 쪽으로 왔어요. 총자본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의료서비스에 들어가는 비용이 손실이기 때문에 총자본을 대변하는 국가는 의료보장에 들어가는 부분을 최소화한 것이고…."

그래서 '일방적 희생을 강요'당한 의사들은 어떻게 대처했나? 그들은 제도를 뜯어고치기보다 나름의 '소득원 개발'을 찾아나섰는데, 그 방법들이 이렇다.

"그 첫번째 방법이 의료보험에 해당되지 않는 불요불급의 의료서비스를 개발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종합검진, 성형수술 등 비싼 것들 있잖아요.… 두번째로 더 불행한 것은 진료 내용의 왜곡이에요. 지금 의료보험에서는 행위별 수가제라고 해서 의사가 하나하나 행위를 할 때마다 보수가 지불되게 돼 있어요.… 이렇다보니 아이템을 늘릴수록 의사들에게 유리하게 되죠. 그래서 과잉진료, 과잉투약의 문제가 생깁니다."

여기에 제약회사 리베이트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즉 저부담·저급여·저수가의 의료보험 체제에 대하여 의사들은 과잉진료·과잉투약·'딴주머니 차기' 전략으로 적응해온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의약분업이 돼가지고 약이나 주사에서 생기는 마진이나 추가이익을 약사들에게 넘기겠다 그러니까 의사들은 졸지에 '우리는 모두 망한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된 거죠."

현 정부도 잘한 것은 없지만, 이번 의약분업 분쟁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박정희식 사회보장제도(?) 속에 잠복해온 모순의 폭발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유산 둘: '집단이기주의'라는 공격

이런 사회적 갈등이 표출되면 으레 제기되는 비판이 '집단이기주의'이다. 이번에도 많은 언론들이 집단이기주의를 거론하며 정부 당국의 '엄정한 대응'을 주문한 바 있다.
그런데 '모든 국민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바이거니와, '집단'이 결성되고 활동하는 이유는 각 개인들이 개별적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권익보호를, 집단을 통해 이루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집단'은 무릇 '이기'적으로 행동하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다면 뭐하러 집단을 만들고 거기에 소속해있겠나? 집단행동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다. 한데 이러한 상식적인 내용이 아직 많은 곳에서 외면받는 것은 왜 그런가? 왜 아직까지 '집단이기주의'라는 여론몰이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가?

역시 박정희식 체제의 유산이라고 본다.
박정희 총사령관이 지휘하는 부대 안에는 여러 예하부대가 있다. 보병부대도 있고 포병대, 헌병대, 문선대 그리고 의무대도 있다. 이 모든 부대는 사령관 각하의 말씀 따라 일사분란, 총화단결의 대오를 유지해야 하거늘, 불만이 좀 있기로소니 동네방네 떠들고 아예 부대 문을 닫어?
더구나 적들이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이런 사고방식하에서는 '집단적 목소리의 분출'일랑은 당연히 적전분열이고 자중지란이며 한마디로 '사회악'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갈등의 요인을 겉으로 드러내놓고 사회적 룰에 따라 해결해나가는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 중 어디가 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것인가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의약분업 문제만 하더라도 기존에 사회문제화될 수 있는 여건이 존재했더라면 이번처럼 커다란 파문과 불편을 초래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걸핏하면 여론몰이를 해대고, 공권력의 '엄정 대처'를 촉구하는 사람은 언젠가 자신에게도 어떤 '억울한' 일이 닥칠지 모른다는 점을 상기해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 의약분업 사태의 경우, 대중의 반응 측면에서 보면 집단이기주의라는 낙인찍기가 약간은 줄어든 것 같은 반면, '밥그릇 문제의 중요성·후퇴불가능성'이 공공연화된 것 같다. 만약 이 말이 맞다면 의사들은 의도했건 아니건, 국민대중이 사회적 갈등을 접근하는 방식에 있어 매우 영양가있는 주사 한방을 놓아준 셈이 아닐까.
막대한 광고비용과 사회적 비난을 감수한 의사들의 투쟁은, 지금까지 자신의 소기의 목적을 얼마나 달성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국민들에게 몇 가지 중요한 인식을 심어주는 데는 뚜렷한 성과를 기록했다고 본다. 파업을 노동자만 하는 건 아니구나, '전문직'들도 뭉칠 때는 정말 잘 뭉치는구나, 그럴 때는 알고보면 대체로 '밥그릇' 문제더라, 공권력의 대응은 사안마다 달라지는구나…등등 말이다.

그 중에 '밥그릇 문제의 공공연화'를 잠깐 보자. 의사들은 다급해서였는지 어째서였는지, 이번 의약분업이 가져올 자신의 대차대조표상 변화를 상세하게 알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것을 밝힘으로 해서 의약분업 거부의 대국민 설득력을 높이는 데 얼마나 주효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의약분업 거부의 주요이유'라는 점만은 국민들에게 충분히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국민들은 이번 사태를 통해 모처럼 한국 의사와 약사들의 소득 획득방식과 소득 수준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투쟁 여부와 수위를 결정짓는 것은 그들이 공히 내걸고 있는 '국민건강권의 수호'가 얼마나 달성되었느냐가 아니라, 그들의 밥그릇 이해관계가 얼마나 만족스럽고 불만족스럽게 반영되었는가에 있다는 객관적이고 경험적인 사실을 '공공연하게' 확인하게 된 것이다.

아울러, 그러한 밥그릇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정하고 설득력있는 방식으로 해결하지 않는다면 그같은 갈등 표출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으며, '헌병대의 출동'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일시적인 침묵일 뿐이라는 사실도 함께 말이다. 이같은 인식의 확산은, 향후 또다른 사회적 갈등이 표출될 경우 대중들의 태도를 무언가 다르게 만들 것이다. 그것이 박정희체제를 극복해나가는 길이 아닐까. 비록 매우 느린 속도라 하더라도.


유산 셋: '사회'와 따로노는 전문성

위의 두가지 유산 언급은 결과적으로 의사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쪽으로 기운 것으로 보일 지 모르겠다. 그러나 박정희체제의 부정적 유산은 의사라고 피해갈 수 없는 것이며, 특히 사회적 의식의 미발전의 측면에서 보면 국민일반의 그것보다 이른바 전문가집단들의 경우 부정적 영향이 더욱 심각하다 할 것이다.
의사들은 이번 사태 과정에서 드러난 국민들의 불신과 냉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다 국민을 위해 하는 투쟁인데 몰라도 너무 몰라준다고 항변하고 있을까? 의사폐업에 대해 집단이기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비합리적인 것이지만, 일반 대중의 비판감정에는 '전문가이기주의' '기득권이기주의' 비판이라는 합리적 지점도 분명히 내재해있는 것이다.

한 신문 광고의 구절.

"아무리 뛰어난 수재라 하더라도 의사가 되는 길은 쉽지 않습니다. 무려 11년간의 잠못 이루는 공부 끝에 의사면허를 손에 쥐게 되고 또 병의원을 개업하려면 최소 2억 5천∼3억원은 족히 듭니다. 이런 노력과 투자 끝에 오는것이 이번에 개정된 법으로 진행되면 겨우 월 100만원 내외의 수익 밖에 안 된다니!"라고 하더니 그 다음에 작은 활자로 "(이런 사실이 국민은 이해가 안 가겠지만)"이라고 썼다({한겨레} 7월 25일자, '민주의사회' 명의의 광고 중).
비용에 비해 들어오는 수익이 너무 작다는 사실이 '이해가 안 가겠다'는 건지, '월 100만원 내외의 수익밖에 안 된다니!'라고 분개하는 감정에 이해가 안 가리라는 건지? 그 구절에서 분명한 것은, 비싼 돈을 들여 국민의 지지를 호소하는 그 지면에서조차 자기 주장의 핵심적 근거에 대해 '국민에게 이해가 안 갈 것'이라는 우려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보고 국민은 무슨 생각을 하라고 하는 걸까?
아마도 의사들은 법과 전문적 지식을 갖고 다투는 이 사안에 대해 국민들에게 일일히 이해를 구하고 설득해야 한다는 사실이 마땅치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혹은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옛날 사회가 아니다. 예전 '박정희 총사령관 시대'에는 한번 의무대면, 또는 한번 헌병대면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그들의 불가침적 권위와 힘과 존재조건은 위로부터 보장되었으며, 그들은 '전문적 지식'을 수행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총사령관 같은 '보이는 손'의 시대가 아니다. 의사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모든 전문가집단은 자신의 존재조건을 사회적으로 탐문해봐야 하며, 자기들이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는 근거에 대하여 스스로, 사회적으로, 평소에 해명해야 할 의무를 갖게 된 것이다. 예전처럼 '전문가니까'라고 자문자답한다거나 '전문가니까' 그 성채를 외부에서 보호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거나, '왜 우리에게만?'이라고 항변할 수가 이젠 없다. 그러한 의무를 소홀히 한다면? 바로 이번 의료대란 때처럼 싸늘한 냉소와 불신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의료계 내에도 이러한 '사회성'을 고민하는 세력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 보면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같은 곳에서도 분명한 입지와 태도를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 그러한 '사회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것은, 앞으로 단지 몇 단체의 진로 문제가 아니라, 의료계 전체의 존립을 흔드는 문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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