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적 귀화불허 정당화하는 국적법 합헌 결정 규탄한다
7월 28일 헌법재판소는 ‘품행 미단정’을 이유로 귀화를 불허할 수 있도록 규정한 국적법 제5조 제3호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놨다. 우리는 기본권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스스로 저버린 헌법재판소를 규탄한다.
이번 헌법소원의 청구인 라마다와파상(한국명 민수)씨는 1997년 입국한 네팔 출신 티벳인으로 박범신 소설 <나마스테> 주인공의 실제 모델로 알려져 있다. 2006년 한국인과 혼인신고를 하고 결혼이민(F-6)자격으로 지금까지 한국에 주소를 두고 장모와 아내, 3명의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 민수씨는 2013년 귀화신청을 해 서류심사와 면접심사까지 통과했지만, 2014년 3월 법무부는 민수씨가 ‘품행이 단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귀화를 허가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네팔·티베트 음식점 ‘포탈라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민수씨가 2011년 명동재개발에 맞서 강제철거를 막다가 벌금 500만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을 핑계로 댔다. 그러나 세입자 대책을 내팽개친 재개발에 맞서 가족의 생계가 걸린 가게를 지키고자 했던 민수씨의 행위는 너무나 정당했다. 민수씨는 2014년 4월 귀화불허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소송 계류 중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했으나 기각되자 2014년 10월 이번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번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품행이 단정하다’는 품성과 행실이 얌전하고 바르다는 의미로 통용된다”며 “‘품행이 단정할 것’과 같이 어느 정도 보편적이고 가치평가적인 개념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품행 단정’의 구체적 기준은 국적법이나 같은 법 시행령, 시행규칙 등 하위 법규에 명문화된 규정이 없다. 이렇다보니 법원은‘품행 단정’의 기준에 관해 “당해 외국인의 성별, 연령, 직업, 가족, 경력, 전과관계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볼 때 그를 우리 국가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하여 주권자의 한 사람으로 받아들임에 있어 지장이 없는 품성과 행동을 보이는 것이라고 해석함이 상당하다”고 추상적으로 판단하고 있을 뿐이다(서울고등법원 2010. 7. 8. 선고 2009누39027판결).
이처럼 ‘품행 단정’ 규정은 그 자체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이를 구체화한 하위규정도 없어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해석될 여지가 크므로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 이런 이유로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도 ‘품행 단정’의 구체적인 기준을 법령 등에 마련할 것을 법무부장관에게 권고한 바 있다(11-진정-0098500).
헌법재판소의 주장과 달리 ‘품행 단정’의 의미가 불명확하다보니 법원 판결도 종잡을 수 없다. 민수씨의 형사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한 1심 판사는 판결문에 “이 사건 범죄는 방어적이어서 반사회적이거나 파렴치한 것은 아니므로 비난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을 피고인을 위하여 지적해 둔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2014년 9월 5일 서울행정법원 제1부(재판장 이승택)는 이번 헌법소원의 본안사건인 귀화불허가처분 취소소송의 1심 판결에서 “원고의 범죄사실은 정당한 절차를 거쳐 이루어진 재산권 행사를 부당하게 방해하고, 불법으로 집회를 하였을 뿐 아니라 이를 제지하는 경찰관들의 공무집행을 방해하였다는 것인데, 이는 대한민국의 법적 안정성과 질서유지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것”이라며 민수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비해 지난 3월 서울행정법원 제4부(재판장 김국현)는 경미한 교통사고로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은 것이 ‘품행 미단정’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귀화신청을 불허당한 사건에서 교통사고는 과실에 의한 것이었고 원고가 피해자와 합의했으며 벌금도 납부한 사정을 들어 원고 승소 판결했다. 지난 6월에는 1995년 마약 혐의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것이 ‘품행 미단정’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귀화신청을 불허당한 사건에서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장순욱)는 범죄전력이 있는 자에 대해 귀화허가를 하지 않음으로써 건전한 국가공동체를 유지한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이라며 원고 승소 판결하기도 했다.
이처럼 ‘품행 단정’ 규정은 △어떤 행위가 품행의 미단정에 해당하는지 △범죄 경력이 품행의 미단정에 해당하는지 △어느 정도의 범죄 경력이 불허대상인지 △한번 불허사유가 되었던 범죄 경력은 언제까지 재귀화신청에 영향을 미치는지 등 귀화허가결정의 본질적인 요소에 관한 일체의 판단을 오로지 행정청인 법무부장관에게 맡기고 있다. 이는 기본권 실현에 관련된 영역은 행정에 맡길 것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자인 입법자 스스로가 결정해야 한다는 헌법상 법률유보원칙에 위배된다.
법무부는 7월 초 국적법 개정안 입법예고를 통해 “(품행 단정의) 의미를 명확하게 하려면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하위 법령에 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며 위임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그러나 ‘품행 단정’이라는 모호한 법조항은 그대로 두고 법무부가 구체적 기준을 만들게 되면, 귀화 허가 여부가 자의적으로 결정되는 상황이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퇴보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와중에서 나온 합헌 결정은 위헌 법률을 제거함으로써 기본권을 신장한다는 헌법재판소의 역할을 스스로 저버린 것이다.
한국인의 경우 자신이 부당한 일을 당했을 경우 적극적으로 항의할 수 있고,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해 형사처벌을 당하더라도 강제퇴거나 이로 인한 가족들과의 생이별을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다. 이에 비해 귀화신청자는 민수씨처럼 한국에 장기간 체류하며 이룬 생활터전이 있고 한국인 배우자와 가족을 형성하고 자녀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도 귀화신청이 불허되면 언제든지 강제퇴거 위험에 처할 수 있어 매우 불안한 위치에 있게 되고 행동의 제약을 받게 된다. 이는 귀화신청인의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가족과의 생이별을 걱정하지 않고 함께 살 수 있는 권리는 국적과 상관없이 모든 인간이 가진 권리이다. ‘대한민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거나 ‘특정 분야에서 우수한 능력을 보유한 자’는 국적법의 일반귀화 요건을 갖추지 않아도 귀화를 허가하면서, 민수씨와 같은 이주민은 15년 이상 가족을 이루고 살았는데도 귀화를 허가하지 않는 것은 매우 차별적이다. 우리는 이번 합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국적법을 개선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2016년 8월 2일
민수씨가족의친구들
(노동자연대, 대한불교조계종 노동위원회, 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이주공동행동,이주노동희망센터,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천주교인권위원회, 향린교회 사회부, NCCK이주민소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