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는 전국민중행동을 탈퇴한다. 민중운동 공동투쟁체(이하 공투체)로서 위상과 역할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합의제 운영의 무효화
 
전국민중행동은 자신의 규약에 “중요하고 본질적인 문제는 표결하지 않는다”고 명시해 놓고도 참가 단체 간 이견이 드러나자 합의제에 반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이태원 참사 대응 방식을 둘러싸고 사회진보연대는 ‘참사의 구조적 문제를 규명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사회운동의 대응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봐야 하며, 정치적 책임 공방을 앞세우다 민주당의 정쟁 도구로 전락하는 순간 안전사회와는 무관한 운동이 되고 말 것이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한국진보연대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활동에 전국민중행동이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시민추모촛불을 주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가 단체 간 이견이 있었음에도, 전국민중행동은 시민추모촛불 주관 여부를 표결 강행했다.
 
사회진보연대는 2022년 전국민중대회 대회 슬로건으로 ‘일체의 군사행동 저지’와 함께 ‘북한의 선제적 핵공격 법령화 반대’가 명시되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지만 채택되지 않았다. 또한, 2023년 사업 계획에 “반전, 반미(반제) 투쟁 전면화”를 내건 것을 두고 “북한 핵무장에 대한 비판 없이 반전, 반미(반제)투쟁을 전면화하는 것은 북핵에 대한 묵인 내지는 용인”이라고 반대했지만 묵살되었다.
 
심지어는 전국민중행동의 공동대표로 한국진보연대가 자신의 상임공동대표를 두 명이나 추천하는 일도 있었다. 한 단체가 공동대표를 두 명 내는 건 공투체에서 전례 없는 일이라며 참가 단체들 내에서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이마저도 표결 처리했다. 4.12 2차 대표자회의에서는 기어이 규약을 개정하며, “중요하고 본질적인 문제는 표결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삭제했다. 여기서도 사회진보연대는 합의 정신 파괴는 민중운동의 분열을 초래할 뿐이라며 반대했지만, 표결을 강행해 규약을 개정했다. (자세한 내용은 <전국민중행동 규약 개정을 반대한다(2023.02.15.)> 참고)
 
합의제 운영은 공투체의 기본이다. 2022년 2월 전국민중행동은 본조직을 출범하면서 합의제 운영을 약속했다. 그러면서 제 단체들에게 함께할 것을 독려했다. 1년여 만에 전국민중행동은 관련 규약을 삭제했다. 스스로 약속을 버린 것이다. 민중운동진영 공투체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다.
 
시대착오적인 정세 인식, 몰정세적인 투쟁
 
게다가 전국민중행동의 활동이 민중운동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북한의 핵무장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무력을 고도화하는 한, 상호확증파괴(핵보유국끼리 공격을 당하더라도 상대방에게 보복해 절멸시키는 전략)의 교리에 따라 동북아에서 미국의 핵 태세 역시 비례하여 강화된다. ‘핵이 국체’라며 북한이 핵보유국으로서 지위를 고수하려 든다면, 어떤 대화와 협상도 무의미해진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은 곧 NPT 체제의 붕괴를 의미하고, 이는 전 세계의 연쇄적인 핵무장, 핵 도미노로 이어지기 때문에, 북한의 핵 보유를 전제하는 협상의 진전은 불가능하다. 2019년 하노이 노딜은 정확히 이를 방증한다.
 
더더구나 북한이 핵 선제 사용을 법제화하고 남한을 상대로 전술핵 군사훈련까지 시행한다면, 남한에서의 핵무장 압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략 전쟁을 계기로 UN을 정점으로 하는 전후 국제질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지금 남한에서 핵무장을 둘러싼 이데올로기가 전반적으로 우향우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여기에 북한이 전술핵 보유를 입증할 수 있는 핵실험까지 감행한다면 한반도에서 핵전쟁의 위험은 영구화될 수도 있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전국민중행동은 한미 군사훈련만 비난한다. 그러나 북한이 모라토리엄을 파기했다는 사실을 묵과해서는 안 된다.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은 대화를 거부한 채 미사일 시험을 재개하였고 작년 3월에는 ICBM 발사까지 단행했다. 한미 군사훈련 재개를 비판하려면 적어도 모라토리엄을 선제적으로 파기한 북한 비판이 동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전국민중행동은 이를 외면했다.
 
국제 반핵평화운동은 UN의 국제질서와 NPT체제가 한계적이고, 모순적이라 비판한다. 그렇다고 해서 UN 국제질서의 해체나 NPT체제의 붕괴를 촉진하는 행위를 옹호하지는 않는다. 반핵평화운동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건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핵무기 금지조약(TPNW) 가입이지, 북한과 이란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의 핵무장이 아니다. 전국민중행동은 사회진보연대가 제안한 ‘북한의 전술핵 훈련 반대’ 주장을 소속 단체 모두가 동의하지 않는다며 의제로 삼는 것을 거부했다. ‘전 세계 핵무력 반대’를 명시하는 수준에서 토론을 종결하자는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의 중재안도 몇몇 자민통 활동가들이 반대하면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북핵에 맹목적인 전국민중행동이 민중운동을 대변할 수 있겠는가? 어불성설이다.
 
전국민중행동은 민중운동 공투체로서 위상과 역할을 상실했다
 
민중운동은 북한의 핵 위협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의 핵무장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승리가 국제질서의 다극화를 촉진할 것이라는 미망에서 헤어 나와야 한다. 다극화된 질서는 진보가 아니다. 다극화된 질서는 전후 국제질서를 무너뜨리고 무력에 의한 영토 침범을 정당화하는 전쟁과 폭력, 야만의 시대로 회귀를 촉진할 뿐이다.
 
따라서 2023년 5월 12일부로 사회진보연대는 전국민중행동을 탈퇴한다.